집중형이 아닌 재판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먼저, 쟁점이 명확하지 않다. 처음에는 대략적인 청구를 해놓은 다음 나중에 추가하는 식으로 소송이 진행된다. 미국에서는 준비기일에 쟁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준비에 오랜 시간이걸린다. 하지만 대륙법계 변호사는 재판 준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 P191
증거조사라고 해봐야 하루에 증인 한 명을 부르거나 증거를 한두 개 확인하는 것으로 끝난다. 재판 초기 미국 변호사가 재판 준비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대륙법 변호사는 받지 않는다.
불의의 일격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워낙 짧은 시간 동안 사건의 일부에 관한 조사만 이루어지고 다음 기일에 반론을 제기할 충분한 시간도 있다. 또 집중형이 아닌 재판에서는 증거개시(상대방 증인과증거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것)와 변론준비기일(양 당사자의 변호인이 쟁점을 정리하면서 재판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의 중요성이 훨씬 떨어진다. 불의의 타격을 가할 목적이라면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대방 정보에 목말라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매 기일이 다음 기일에 대한 준비기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따로 준비기일을 열 필요도 없다. - P192
집중형이 아닌 대륙식 재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증거를 보고 조서를 작성하는 판사와 그걸 보고 승패를 결정하는 판사가 다르다는 점이다. 앞서 제2장에서 본 것처럼 대륙법의 소송절차는 교회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세 교회법에서 증거는 판사가 아니라 서기가 보고 기록했고, 이걸 기초로 판사가 재판했다. 나중에 절차가 바뀌어 증거조사도 서기가 아니라 판사의 주도하에 진행되었지만 지금도 기록을 작성한 판사가 아니라 다른 판사 또는 합의부가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교법 학자들은 이를 두고 "영미법의 판사는 현장에서 ‘직접‘ 증거를 조사하지만 대륙법 판사는 ‘간접‘적으로 조사한다"고 표현한다. 영미법이 직접 (immediacy) 재판이라면 대륙법은 간접(mediacy) 재판이라는 것이다. 양쪽을 비교해본 법률가들은 대체로 영미법의 재판 방식이 더 나은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대륙법도 직접성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애초 당사자와 판사 사이에 ‘문서 장벽‘을 치고 문서를 통해 당사자가 판사와 소통하도록 한 취지는,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고 당사자의 입김이 재판에 작용하지 않도록 하려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판사에 대한 압력과 회유를 걱정할 계제가 아니다. 직접 승패를 결정하는 판사가 당사자이야기를 직접 듣고, 태도를 관찰하고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간접재판은 문서가 중심이 되는 재판이다. 영미법에서는 재판에 증인이 나와서 선서한 후 판사와 배심원 앞에서 구두로 진술하고이에 대해 상대방이 반대신문하는 식으로 재판이 진행된다. 변호인도 구두로 각종 신청과 이의제기를 하고, 판사도 구두로 답한다. 그래서 ‘구두‘ 재판이라고도 한다. 반면 대륙법에서는 증인에게 하는질문조차도 당사자가 준비한 질문지를 판사가 읽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게다가 증거조사를 하는 사람과 조서를 꾸미는 사람, 재판하는 사람이 각각 다를 경우에는 구두보다는 서면이 중심일 수밖에없다. 대륙법도 최근 들어 집중적인 재판, 구두재판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집중심리주의, 직접주의, 구두주의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 P193
바깥에서 볼 때 대륙법의 이상한 점 하나는 증인에게 당사자가 질문하지 않고 판사가 질문하는 것이다. 대륙법에서는 영미법과 달리 무엇을 어떤 범위에서, 어느 정도로 물어볼지를 판사가 결정한다. 대륙법은 판사가 물어보는 ‘직권주의‘ 시스템이고, 영미법은 당사자가 물어보는 ‘당사자주의‘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성급한 결론인 것 같다. 적어도 민사재판에 관한 한 이런 구별법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 같지 않다. 민사는 대륙법과 영미법이든 기본적으로 ‘처분권주의‘를 따른다. 처분권주의에 따르면, 쟁점이 무엇인지, 그에 대한 증거가 무엇인지, 어떤 주장을 펼칠지는 전부 당사자 마음이다. 당사자가 결정하고 처분한다. 거기에 두 법 전통 모두 판사에게 탐구의 역할을 약간 부여할 뿐이다. 대륙법 국가 중에서도 독일은 판사가 그 역할을 좀 더많이 하고, 다른 국가에서는 판사가 역할을 조금 덜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다.
이만 있다. 반면에 영미법에서는 판사가 끼어드는 경우가 훨씬 적다. 두 법 전통 간에는 그 정도의 차이만 있다. 영미법 판사는 청소년 혹은 소송 능력이 제한되는 자의 재판이나 당사자가 제대로 입증을 못하는 경우에만 공익적 차원에서만 판사가 마지못해 끼어든다. 대륙법에서 검사나 이와 비슷한 직위를 가진 자가 공익의 대표자로서 소송에 참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대부분은 당사자가 주도해서 소송을 한다. 양쪽 모두 재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당사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주로 달려 있다. 그래서 당사자가 신청하는 경우에만 판사가 증인에게 질문을 하고, 질문 내용도 당사자가 준비한다.
다만 여기서 대륙법이 구두주의에 의하지 않는다는 점이 또 한번 드러난다. 보통 증인에게 질문하려는 변호인은 먼저 질문사항을적은 ‘질문지‘를 작성하고, 증인신문기일 이전에 판사와 상대편 변호인에게 질문지를 제출한다. 따라서 상대편 변호인(가끔은 증인조차도)은 어떤 내용에 대한 질문이 오갈지 미리 알아서 그에 대한 준비를 한다. 질문하는 변호인이나 대답하는 증인이나 무엇을 할지 알기 때문에 미국 재판처럼 직접적인 구두신문과 반대신문의 긴장감은 한껏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질문도 판사가 하기 때문에 당사자끼리 부딪치는 장면은 잘 연출되지 않는다.
반대신문이라는 것도 대륙법계 변호인에게는 낯선 절차 중 하나다. 대륙법에서는 배심원도 없고, 증인을 탄핵할 일도 별로 없다(실무에서는 당사자나 변호인, 친인척, 기타 이해관계인이 증인으로 나올 수 없다).
재판을 주재하는 재판장은 관련성 있는 사실을 능숙하고 공정하게취합하며, 질문 내용도 적절하게 거른다. 질문이 적절치 않으면 재판장에게 "이의제기서 (offer of proof)‘를 낼 수 있어서 느닷없는 질문때문에 당황할 이유도 없다. 상대방 변호사가 할 일이라는 것도 증인신문조서에 기재될 어구를 지적하는 것이 전부다.
집중심리주의, 직접주의, 구두주의와 관련해서 대륙법과 영미법의 차이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대륙법에서는 먼저 원고측 변호인이 주로 서면으로 증인신청서를 판사에게 전달한다. 그 신청서 사본을 판사가 피고 측에게 전달하면, 피고 측 변호인은 가령, 증인이 원고와 친족관계 또는 가족관계가 있어서 적절치 않다는 식으로 반론을 제기한다. 보통 증인신문 청구를 받은 판사는 2~3주 후로 기일을 잡고 기일 전에 양측 변호인이 서면을 제출한다음 기일에 출석해 구두로 의견을 나눈다. 의견을 다 듣고 판사는다시 2주 정도 후에 증인신청에 대한 결정을 내리며, 인용 결정이나면 몇 주 후에 증인신문 기일을 잡아 증인의 진술을 듣는다. 이와 같이 증인을 신청해서 증인신문을 하기까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이 걸린다. 판사와 변호인 사이에 불과 몇 분 오가는 대화로 결론이 나는 미국법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원고 측 변호인이 판사에게 증인을 신청하고 피고 측 변호인은 이의를 제기하면서 간단하게 이유를 대고, 이에 원고 측이 다시 반박한 다음 판사가 결정을 내린다. 증인 채택 결정이 나면 바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증인을 출석시켜 진술을 들으면 된다. 이것이 미국법이다. - P196
대륙법 국가의 법원에서 실제로 증인을 소환해서 진술을 듣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판사는 이를 메모해서 증인의 진술 취지를서기에게 낭독해준다. 서기가 적은 데 대해서 양측 변호인이 맞다고 동의하면 적은 것이 기록되어 재판부에 전달된다. 기록을 받은재판부는 기록에 적힌 대로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다른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심지어 이탈리아처럼 증인신문을 진행한 판사가 재판부 중에 포함되어 있어도 결론은 같다. 증인이 주저하고 진실되어 보이지 않다든가, 증인의 태도가 이상해 보였어도 기록에 그사실이 적혀 있지 않으면 기록대로 사실인정을 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영미법의 배심재판에서는 기록도 필요 없고 사실 확정도 필요없다. 증인의 태도나 다른 정황들을 배심원이 체크한다. 평결문에는 그걸 적을 필요조차 없다. 보고 느낀대로 판단하면 된다. 배심원이 아닌 직업법관이 재판할 때도 그렇다. 영미에서는 증인의 진술을 직접 들은 법관이 판단한다. 증인의 말을 듣고 그 태도를 잘 관찰한 다음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법이 요구하고 있다. - P197
대륙법과 영미법이 증거법과 관련해서 차이 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심원 유무의 문제다. 영미법의민사재판에서는 제출한 증거 가운데 일부를 배심원이 보지 못하게하는 ‘증거제한법칙‘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재판을 해보니까 어떤증거는 배심원에게 보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증거의 오염 가능성은 경고하되 증거 자체는 보게 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았다. 신빙성이 적은 증거는 아예 배심원에게 보여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전문증거 (남에게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증인이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고 법정에서 그들은 바를 증언한다고 치자. 영미에서는 변호인이 바로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이 진술은 전문증거입니다!"라고 제지한다.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들어서 전달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게 전문법칙이기 때문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증인은 직접 법정에 나와서 증언해야 하고, 그에 대해 상대방 변호인이 반대신문을 하고, 그 전 과정을 배심원이 보아야 한다. 그럴 기회가 없는 전문진술은 증거에서 제외된다. 배심원이 아닌 직업법관의 재판에서는 전문진술을 받아도 되지 않느냐는 견해도 있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또 전문법칙에는 여러 가지 예외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문법칙은 법칙으로 엄연히 존재한다. 충분히 믿을 만한 증거임에도 전문이라는 이유로 증거로 쓸 수 없는 경우가 지금도 아주 많다.
대륙법에는 반대로 전문법칙이 없다. 민사에 관해서는 배심재판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륙의 재판에서 모든 증거가 자유롭게 법정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대륙법에도 증거제한법칙은 있다. 다만 그 기원과 목적이 다르다. 가령 대륙법에서 말하는 증거제한법칙 가운데 하나인 ‘증거법정주의‘는 이런 내력을 가지고 있다. - P198
증거법정주의는 중세 초결투(battle)나 신판(ordeal)에 의한 재판말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재판제도를 도입하고자 한 노력의 결과다. 이는 양측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검증해서 진실에 도달하는 방편이었다.
당시에도 대륙법 판사는 그다지 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단단하게 마음을 먹어도 뇌물이나 권유, 협박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돈 많고 힘센 사람의 협박에는 판사가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판사가 그런 외부적인 압력에 버틸 수 있도록 재판제도를 개혁했고, 그 결과 증거법정주의, 증거제한법칙, 선서제도가 도입되었다.
이 중 먼저 증거법정주의는 증인의 수, 신분, 나이, 성별 등을 기준으로 증인의 진술에 일정한 비중을 의무적으로 부여하는 제도다.
가령 어떤 사실을 진실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의 증인이 필요했고(증인 둘의 법칙‘ 등), 귀족이나 성직자, 토지 소유자의 증언은 일반 시민, 평민, 무소유자의 증언보다 신빙성에서 높은 점수를주었으며, 청년보다 노인의 진술에 무게를 두고, 여자의 진술은 아예 믿지 않거나 믿더라도 남자의 진술보다 덜 믿게 했다. 이처럼 증거를 평가할 때 각각 완전한 증거, 절반의 증거, 4분의 1의 증거로차이를 둔 것은 오랜 재판경험을 통해 얻어낸 결론이었다.
증거제한법칙은 어떤 증인은 아예 증언대에 설 수 없게 한 것이다. 재판 당사자나 그들의 친족, 이해관계인의 증언은 기본적으로 믿을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증언할 자격도 주지 않은 것이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 당사자 등이 양심에 반하는 증언을 할 기회자체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 그들이 법정에 서면서 판사를 미리매수할 가능성도 없앨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서제도는 다음과 같이 재판이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사자 일방 A가 상대방 B와 다투고 있는 쟁점 사실(가령돈을 빌린 적이 있는지)에 관해 선서하에 사실대로 진술할 것을 요구한다. 만약 B가 선서를 거부하면 B에게 불리한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간주된다.
반면에 B가 선서하에 진술을 하면 B에게 유리한 사실이 있었던 것이 된다. 이때 B가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서하에 거짓진술을 하면 B는 종교적으로도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형법상위증죄로 처벌받고, 그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까지 배상할 책임이있다.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배심제도가 발달해서 대륙법에서 이와 같이 증거의 제출 및 평가와 관련하여 만든 증거제한법칙이 적용될여지가 없었다.
여러 명의 배심원에게는 한 명의 판사에게 했던 것처럼 협박하기가 쉽지 않고, 배심원이 외부 사람의 영향을 받는 것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심원을 시민 가운데서 뽑았기 때문에 증거법정주의라는 이름으로 증거를 제한할 이유가 직업법관에 의한 재판보다는 훨씬 적었다. 이해관계인을 증인으로 부르지 않고, 증인의 진술 가운데 일부는 증거로 쓸 수 없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배심에 의한 재판이 사실확정에 유효한 수단이었던 점, 그리고 판사에 비해서 외부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에서 영미의 배심제도는 대륙법의 다른 장치, 즉 증거법정주의나 선서제도보다 나은 제도라고 여겨졌다.
대륙법 세계에는 지금도 중세 시대 증거법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가령 증거법정주의는 현대 대륙법에서 추정의 법칙 (어떤 사실이 있으면 상대방이 반대로 입증하기 전까지 사실로 추정된다는 법칙)으로 남아 있고, 몇몇 국가에서 당사자에게는 지금도 증인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며, 선서제도가 공격방어 전략의 하나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대륙법이 ‘자유심증주의‘라는새로운 증거법칙을 도입했다. 기본적으로 능력이 부족하고, 국민들의 신뢰도가 높지 않지만, 증거 판단을 판사에게 전적으로 맡기자는 취지에서 전향적으로 도입한 것이 바로 자유심증주의다. 판사가 자유로운 심증(마음의 확신)으로 증거를 평가해서 판결을 하도록 하는 제도다. - P201
또 하나 대륙법의 민사소송제도에서 특이한 것은 변호사 수임료다. 보통 미국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재판에서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자기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낸다. 그런데 영국과 대륙법에서는 패소한 쪽이 승소한 쪽의 수임료까지 내야 한다. 졌으니까 이긴 사람의 변호사 비용까지 내는 것이 당연하고, 실무에서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패소한자에게 너무 심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원이 수임료를 일정 금액으로 정한다는 점이다. 승소한 변호사는 보통 자신이 투자한 비용 전부를 청구하지만, 법원은 조견표에 따라 지불할 변호사 비용을 정한다. 의뢰인에게 더 많은 돈을 받기로 약정했어도 별수 없다. 진 쪽으로부터는 약정한 액수의 일부만 보전받고, 그 차액은 이긴 쪽 의뢰인이 직접 부담한다.
또 대륙법은 소송 결과에 따라변호사의 금전적 이익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을 비윤리적이라고생각해서 성공보수 약정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공공연히 성공보수를 받는 걸 보면 깜짝 놀란다. 성공보수를 받을 자격이 있는 대룩법 변호사 자신들도 생각이 같다. 변호사가 돈 때문에 일을 더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것이다. - P202
원칙적으로 대륙법의 민사소송에서는 상소할 권리가 보장된다. 이것이 또 미국법과 중요한 차이점이다. 미국에서 상소란 1심 법원이 법적으로 잘못한 경우에만 인정된다. 하지만 대륙법에서는 법를 문제뿐만 아니라 사실관계를 다시 봐달라는 것도 항소 이유가된다.
물론 사실관계를 검토할 때도 주로 1심이 봤던 기록에 의하겠지만, 상소심에서 1심에서 내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를 제출할 수있게 하는 국가도 아주 많다. 상소법원이 모든 증거를 다시 검토해서 사실이 무엇이고, 법적으로 어떤 판단이 맞는지 처음부터 다시 정해도 된다. 상소심 재판부도 판결문을 다시 쓰는데, 여기에는 법적 쟁점뿐만 아니라 사실적 쟁점도 포함된다.
보통법(common law)에서는 배심재판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상소심에서 사실관계를 또 다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실 1심에서조차 배심원은 어떤 사실을 발견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게아니고, 당사자들의 태도나 여러 가지 정황을 보고 평결을 내릴 뿐이다. 평결 내용을 설명할 의무도 없으며, 재판절차가 기록으로 남지도 않는다.
1심 평결문에 어떤 사실이 있다고 적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배심재판에 대해서 상소심이 다시 보겠다는 이야기는 배심의 결정을 전부 무시하고 새로 판단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영미에서 사실에 대한 상소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반면에 대륙법에서는 사실에 대한 상소를 폭넓게 인정할 뿐만 아니라, 법률 문제에 대한 상소를 따로 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파기제도나 독일의 파기환송제도가 그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법적인 쟁점에 관하여 상급법원이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려준다. 영미법에서는 보통 상소라고 하면 법률 문제만을 다루기 때문에 대륙법의 파기제도나 파기환송제도는 그와 기본적으로 아주 비슷하다. 다만 이런 제도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적인 경위가 조금 다르다.
우리는 제7장에서 혁명기의 이념은 법원의 법률해석권을 전부 부정하는 데 있다고 했고, 그래서 프랑스의 파기원은 엄밀히 말하면 법원이 아니라, 법원이 제기한 법률해석 문제에 대하여 최종적인 유권해석을 해주던 별개의 기관이라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프랑스와 프랑스의 모델을 따른 국가들에서 파기원이 법원의 일부인 파기법원으로 성격이 변해갔다. 이름이 바뀌어 일반법원의 정점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임무도 당연히 법률의 정확한 해석에 둔다. 프랑스처럼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도 법원은 법령의 통일된 해석을 책임지고 있고, 이론적으로는 법원의 결정은자신이나 하급법원을 기속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최고법원의 해석이 법원의 해석으로 공인되고 있다. - P203
또 하나, 대륙법의 민사소송에서는 1심은 물론이고 상소심에서도 반대의견이 없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 만장일치를 요구한다. 투표도 없다. 판사가 자신이 속한 법원의 결정에 반대하는 것 자체를 적절치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법은 모름지기 확실하거나 최소한 그렇게 보여야 하는데, 반대의견을 적거나 따로 출간을 하게 되면 법의 확실성에 흠이 생긴다고 믿는다. 다만 최근 들어 일부 국가에서 헌법법원을 중심으로 반대의견과 보충의견을 적거나 공표하기 시작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할 수 있다.
어떤 국가에서는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판사들이 별도로 학회지등에 논문을 출간함으로써 약한 의미의 항명을 하는 사례가 있다. 본인들은 그것이 순전히 ‘이론적‘인 목적이었다고 말하겠지만 동료판사와 다른 변호사는 그것이 학문적 목적이 아니라 반대의견을 표명하기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 P204
집행 면에서도 대륙법과 영미법은 차이가 있다. 대륙법에서는 먼저, 영미법에서 말하는 ‘법정모독죄‘가 없다. 제8장에서 우리는 미국의 경우 법원이 개인에게 어떤 행위를 하라고 명하거나 하지 말라고 명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걸 어기면 법정모독죄, 즉법원의 명령을 어긴 죄로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한다. 이처럼 영미법에서는 사람에 대한 강제조치가 가능하다.
그런데 대륙법은 그렇지 않다. 대륙법의 민사소송에서는 법정모독죄도 없고, 사람이아닌 물건에 대한 강제조치만 가능하다. 쉽게 말하면 상대방에 대해서 무엇을 청구하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금전배상밖에없다. 이 차이는 그대로 절차의 차이를 낳고, 계약의 정의 차이로귀결된다. 가령 대륙법에서는 금전으로 배상이 가능한 것만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계약이라고 생각한다.
대인적 강제, 즉 사람에 대한 강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절차 면에서 여러 가지 차이를 낳는다. 영업장부 같은 서류나 기타 증거를내라고 하거나 재산을 조사하는 것도 대륙법에서는 영미법만큼 단호하게 요구할 수 없다.
민사소송에서 배상은 원칙적으로 피고 소유 재산의 경매, 피고 물건의 인도, 주거로부터의 퇴거 같은 피고의 재산에 대해 집행 가능한 배상만 가능하다. 아니면 불법건축물의 철거와 같이 피고가 아닌 제3자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만 요구할수 있다.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피고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판사가 사람에 대해 형벌을 부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판사가 형사법원에 고발하는 것이 대륙법에서 아마도 사람에 대해 할수 있는 최대한일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강제명령(amparo)‘이라고 해서,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고 명했음에도 이를 어길 경우 판사가 아주 예외적으로 피고를 체포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 역시 영미법에서 법정모독으로 판사가 직접 형벌을 부과하는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은 영미법과 대륙법의 차이를 약간 거리를 두고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그 바탕에 이념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영미법에서 판사는 법의 집행자이면서 도덕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형평법의 집행자이기도 하다. 판사는 원고와 피고의 이웃들로 구성된 배심원을 모아놓고 공동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고 집행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법정모독죄라는 것도 결국은피고가 공동체의 결정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피고를 처 벌하거나 피고에게 특정한 행위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다. 공동체 구성원인 배심원이 모인 자리에서 판사가 ‘어른‘으로서 여러 가지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반면 대륙법에서 판사는 영미법과 같은 어른은 아니다. 판사의 결정에 반한다고 해서 당사자나 증인이 판사에게 혼난다는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륙법상 소송절차는 그만큼 윤리와 도덕의 색채가 옅은 단순한 공적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손해배상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미법에서 고의또는 중과실 책임이 있는 피고에게 형벌과 유사한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피해 규모 이상의 삼배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일이 흔히 있다.
하지만 대륙법에서는 이런 식의 배상이 최소한 민사에서는 있을 수없다. 민사와 형사의 차이가 분명하기 때문에 고의나 중과실은 형사가 다룰 문제지 민사가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사에서 원고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정확하게 손해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피고가 도덕적으로 위반되는 행위를 했다고 해서 공동체가 그에게 벌을 내리는 것은 ‘형벌은 행위 시 법률에 따라서 범죄로 인정되는행위를 한 때에만 부과한다‘는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 대륙법에서 형벌은 법에 정한 것만 부과할 수 있다. 판사가 원한다고 할 수있는 일이 아니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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