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개론 - 제12판
성낙인 지음 / 법문사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분량을 확줄인 헌법학 개론서입니다.
기본서보다는 암기장으로 활용하는게
더 맞지 않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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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의의

(i) 헌법 또는 헌법학(Constitutional Law, Droit 
constitutionnel, Verfassungsrecht)은 다른 실정법(학)과 마찬가지로, 한국이나 동양의 전통적인 법규범 · 법질서에서 유래하기보다는 서양의 법질서 · 법체계를 이어받았다.
근대한국에서 헌법개념은 장정, 국제, 국헌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고유한 의미에서의 헌 (학)은 
"국가의 조직과 구성에 관한 기본원리를 정립한 법"이다. 
즉, 헌법은 국가에서 작동되고 있는 모든 법규범 중에서 
최고법이고 기본법(근본법)이다.

(ii) 1787년에 제정된 미국 헌법과 1789년 프랑스 
혁명기에 천명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으로부터 
비롯된 일련의 입헌주의 문서는 주권재민에기초한 
근대입헌주의 헌법의 풀뿌리 역할을 다져왔다. 
이제 헌법은 단순히 국가의 조직과 구성에 관한 기본법을 
뛰어넘어 주권자인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을 위한
권리장전으로 자리매김한다. 이에 따라 근대입헌주의의 
정립 이래 헌법은 "국민주권주의에 기초하여 국가의 
조직과 구성을 설계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최고의 기본법"으로 정의할 수 있다. - P3

대한민국헌법의 이해

(i) 헌법학의 이해에는 그 사상적 뿌리인 근대 자연법론에 
기초하면서, 동시에 법실증주의의 이론과 제도를 동시에 
포섭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헌법의 이해에는 
근대입헌주의 헌법의 보편적 가치인 근대자연법론의 
사상적 세계에 기초하면서도, 한국에서의 실존적 법규범과 법현실을 인식하고 이에 순응할 줄 아는 법적 실존주의에 
깊이 천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대에 
정립하고자 하는 법이념과 법적 안정성의 상호 조화로운 
발전을통하여 헌법학의 이해와 실천에 균형이론이
터 잡을 수 있다.

(ⅱ) 국가의 기본법이자 최고법인 헌법이 국가 속에서 
구현되고 국민과 호흡을 함께할 때 비로소 헌법은 
"국민의 생활헌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바로 그때 국민주권주의에 기초한 민주법치국가는 
국민의 삶 속에 자리 잡는 생활법치의 장을 열어갈 수 있다.
- P7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란 헌법의 성문 · 불문 여부를 묻지 
아니하고 법규범의 유형에 관계 없이 그 실질적 내용이 
헌법적 가치를 가진 규범의 총체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성문헌법이 없더라도 실질적 의미의 헌법은 
존재한다. 또한 성문헌법에 존재하지 아니한 사항도 
실질적 의미의 헌법의 내용이 될 수 있다. - P9

형식적 의미의 헌법은 성문헌법전에 명시된 규범만을 
지칭하는바, 특별한 기관에 의하여 제정되고 특별한 
절차를 통하여서만 개정될 수 있다 - P9

실실적 의미의 헌법과 형식적 의미의 헌법의 조화

실질적 의미의 헌법개념이 강학상개념인데 비하여, 
형식적 의미의 헌법개념은 법적 개념이다. 형식적 의미의 
헌법과 실질적 의미의 헌법은 서로 일치하지 아니하며 
그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① 실질적 헌법 사항인지 여부는시대에 따라 가변적이다. 
② 입법기술상 모든 내용을 헌법에 담을 수가 없다. 
비록 국가권력작용과 기본권보장 등에 관한 기본적 
사항은 상당부분 공통된다 하더라도, 형식적 의미의 
헌법 즉 성문헌법전에는 그 내용이 실질적 의미의 
헌법개념에 포섭될 수 있는 선거·의회·정당 등에 관한 
많은 사항이 제외되어 있다.
③ 실질적 헌법에 해당되는 사항이라도 빈번하게 개정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헌법전에 규정하지 아니한다. 
④ 헌법적 가치를 가진 사항이 아니라 하더라도 특유의 
사정에 의하여 정책적으로 헌법전에 규정하기도 한다
(예컨대, 1999년 개정 전의 스위스 헌법 제25조 추가조항의 가축도살방법에 관한 규정, 미국 수정헌법 제18조와
제21조의 알코올음료에 관한 규정 등), - P9

성문헌법이란 성문의 헌법전을 지칭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헌법은 성문헌법일뿐만 아니라, 헌법개정을 위한 특별한 
기관이나 절차가 마련된 경성헌법이다. - P9

관습헌법이란 국가에서 용인되는 헌법적 가치를 가진 
관습적 규범의 총체를 말한다. 하지만, 헌정실제는 
규범적 효력이 없고 단순한 현실적 사실에 불과하므로 
관습헌법과 구별된다. - P10

영국 등과 같이 성문헌법이 존재하지 아니한 불문헌법
국가에서는 관습헌법에입각하여 헌정질서가 유지된다. 
즉, 영국에는 성문헌법은 없지만, 관습헌법에 기초한 
실질적 의미의 헌법은 있다. - P10

관습헌법의 인정 여부

성문헌법 속에 헌법사항을 구체적으로 모두 규정하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성문헌법에서 헌법적 가치를 가진 
사항이 누락되거나 모자랄 수도 있으므로, 관습헌법의 
필요성과 규범력을 인정하여야 한다. - P10

관습헌법 논의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사건으로 
촉발되었다. 논의의 핵심은 수도가 서울이라는 사실이 
관습헌법인가의 여부이다.

헌법재판소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은 관습헌법이므로 
법률로써 수도를 이전할 수 없으며 헌법에서 명시한 
제130조의 헌법개정 국민투표권을 침해하는 위헌법률이라고 판시한다. 반대의견은 관습헌법의 효력은 성문헌법의 
보완적 효력을 가질 뿐이며, 관습헌법의 개정은 헌법개정
사항이 아니라고 보았다(8:1) 

위 위헌결정에 따라 수도이전 대신 제시된 행정중심복합
도시 건설과 관련하여, 7인의재판관은 "국민에게 특정의 
국가정책에 관하여 국민투표에 회부할 것을 요구할 권리가인정된다고 할 수도 없다"라고 하여 각하의견을 제시하였다. 다만, 6인의 재판관은 기존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은 관습헌법에 속한다고 본, 반면에 3인의
재판관은 관습헌법을 부인한다. 한편, 2인의 재판관은 
신행정수도는 결과적으로 수도를 분할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합의나 동의 절차를 생략하고 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 법률에 대하여는 수도분할이라는 
비판론을 반영한 개정안이 2010년에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부결되었다.

생각건대 헌법재판소가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을 
관습헌법으로 보았다면, 수도분할을 의미하는 
위 특별법도 또한 위헌이라고 판시하였어야 마땅하다.  - P10

관습헌법의 성립요건

(i)관습헌법도 관습법의 일종이므로 관습법의 성립에서 
요구되는 일반적 성립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① 기본적 헌법사항에 관하여 어떠한 관행 내지관례가 
존재하고, ② 그 관행은 국민이 그 존재를 인식하고 
사라지지 아니할 관행이라고 인정할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반복 내지 계속되어야 하며 (반복ㆍ 계속성), 
③ 관행은 지속성을 가져야 하며 그 중간에 반대되는 
관행이 이루어져서는아니 되고(항상성), ④ 관행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모호하여서는 아니 되고 
명확한 내용을 가져야 한다(명료성). ⑤ 이러한 관행이 
헌법관습으로서 국민들의 승인 내지 확신 또는 폭넓은 
컨센서스를 얻어 국민이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어야 
한다(국민적 합의)(헌재 2004.10.21,2004헌마554 등)

(ii) 하지만, 관습헌법은 성문의 규범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기관의 인정은 요구되지 아니한다. - P10

관습헌법사항

(i) 관습헌법이 성립하기 위하여서는 헌법에 규율되어 
그 효력이 법률보다우위를 가져야 할 만큼 헌법적으로 
중요한 기본적 사항이어야 한다.

(ii) 국호(대한민국), 국어(한국어), 수도(서울) 외에도 국기
(태극기), 국가(애국가), 국시 등도 관습헌법에 포섭할 수 
있다. 이들 국가정체성에 관한 사항은 외국헌법(예컨대, 
프랑스헌법)의 예와 같이 헌법에 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 P11

관습헌법의 효력

관습헌법도 헌법규범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성문헌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하지만, 관습헌법은 그 효력에 있어 한계를 가진다.

(i) 관습은 결코 성문헌법전에 규정된 내용을 바꿀 수는 없다.

(ii) 관습은 성문헌법이 침묵을 지키는 경우에 일정한 조건에 따라 성문헌법을 보충할 수 있다. 특히 헌법규정이 명확하지 아니할 경우에 이에 대한 평석을 가할 수 있다. - P11

관습헌법의 변경관습헌법이 성립되기 위하여서는 관행의 
존재, 반복. 계속성, 명료성, 항상성, 국민적 합의와 같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를테면 관행의 연속이 
단절 또는 변경되거나, 국민의 법적 확신이 변경되는 경우, 관습헌법은 다른 내용으로 변경될 수 있다. - P11

한국헌법은 근대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에 기초하여 
현대 사회복지주의적 의미의 헌법을 수용하는 헌법이고, 
성문헌법 · 민정헌법 · 모방적 헌법 · 단일국가헌법 ·
강한 경성헌법ㆍ (수정)자본주의헌법 · 입헌주의헌법이다. 그러나 명목적 헌법에서 규범적 헌법으로 발전과정에 있는 헌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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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갈등

PC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새로운 매카시즘‘이자
 ‘나치돌격대의 사상 통제 운동‘ 인가? 배리 글래스너는
이런 과장된 비난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반격이 작은 
불안요인을 뻥튀기하는 미국 특유의 ‘공포의 문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비난이
미국에만 국한된 건 아니기에 미국 문화의 특수성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 - P32

이 논란은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와 ‘적극적 자유
positive freedom‘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과 맞닿아 있다. 소극적 자유는 남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자유이며, 적극적 자유는 
공동체 참여를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 P33

분류를 제시한 이사야 벌린이 지적했듯이, 적극적 자유는 가치에 관한 일원론적 관점을 전제한다는 
점에서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가치 일원론이란, 
"사람들이 믿어온 모든 적극적 가치들이 궁극적으로 
양립 가능하며, 어쩌면 그것들사이에 서로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확신"을 가리키는데, 이 관점에 따르면, 
"국가, 계급, 국민"이라는 주체가 이성이나 역사의 
필연성이라는 이름 아래 진정한 자유의 목표를 
설정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이사야 벌린은 "단일 기준이 있다는 신념이 지성과 
감성에게 공히 만족감을 주는 깊은 원천인 것으로 
언제나 판명되어왔다"며, 그런 만족감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것으로 보았다. 

마크 트웨인이나 윌리엄 포크너처럼 인종차별에 
비판적이었던 백인 작가들조차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 공격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특히 대학들이 
시류에 편승해 앞다투어 PC를 학칙으로 만드는
 ‘과잉 경쟁‘을 한 것도문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코네티컷대학은 ‘부적절한 웃음‘을 금지시켰고, 
듀크대학은 흑인 학생을 조롱하는얼굴 표정을 찾아내기 
위한 감시위원회를 조직했다. 미네소타대학은 성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여학생들의 치어리더 
활동을 금지시켰다. 치어리더 여학생들이 그렇지 않으며 
자신들은 괜찮다고 반발하자 대학 측은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희생자가 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여러 대학에서 PC 위반에 대한 규제와 징계를 하는데 
적용한 원칙에도 무리가 많았다. 예컨대, 누군가를 모욕할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는 건 면책이 안 되었으며, 증거는
필요 없고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충분했다. 미시간대학은
그간의 경험상 피해자가 거짓 진술은 하지 않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스탠퍼드대학에선 백인 학생이 흑인 학생에게
욕을 하는 건 안 되지만, 그 반대는 가능하다는 ‘스피치 코드‘를 제정했다. 피해자의 특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자유는 건전한 절제를 전제로 한다"

PC 운동의 과잉은 반드시 자제되고 교정되어야 한다는 건 당연하지만, 문제는 그런 과잉이나 일탈이 PC 운동자체에 내재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 과잉은 ‘집단 극화
group polarization‘와 ‘정보의 폭포 현상information 
cascade‘으로 설명할 수 있다. 

카스 선스타인은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견해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서로 비슷한 사고방식을가진 사람들은 주로 
서로 간에만 대화를 나눌 것이고, 이는더욱 심한 극단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바로 이런이유로, 많은 캠퍼스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정말 극단적이고 때로는 심지어 터무니없는 수준까지 가기도 한다"고 말한다. - P37

그 결과 사회 전반에서 널리 공유되는 보수적이거나
온건한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점점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느낌을 갖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게 바로 PC 운동을 비난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 P37

그런데 이런 현상은 모든 운동이 갖고 있는 속성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과잉과 일탈은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존재와 가치를 
의심하진 않았듯이 말이다. 그런 과잉과 일탈은 디지털 
미디어로 인해 증폭된 것인데, 디지털 미디어의 부작용은 
모든 분야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PC에만 그로 인한 문제를 PC가 떠맡아야 한다는 건 불공정한 게 
아닌가? - P38

미국에 비해 정도와 범위는 훨씬 약하지만, 한국에서도 
PC 운동의 과잉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 비판 중엔 타당한 것들도 있지만, 과잉의 정도가 심한 
서구에서 나온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현실‘과 ‘가능성‘의 경계가 모호한 비판들도 있다. PC의 주제와 관련된 ‘종속 
혹은 지배‘의 상태를 비교 평가하면서 비판이 이루어진다면소통의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 P38

문강형준은 "정치적 올바름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 필요한 진리를 자신만 안다는 믿음 때문에 교조적 성향을 지니게 된다"고 했는데, 사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것이 바로 그런 
교조적 성향이다. 그런 교조적 성향을 ‘종속 혹은 지배‘의 
상태에 대한 견해 차이와 표현의 방식으로 인한 문제로 
재해석한다면, 좀더 구체적인 논의와 논쟁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 P39

가치 일원론을 경계했던 이사야 벌린이 적극적 자유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벌린이 적극적 자유에 비해 소극적 자유를 자유 개념의 
핵심으로 삼은 이유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적극적 자유에
대한 옹호가 오히려 자유에 대한 지배로 전도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소극적 자유는 그런 경우가 훨씬 더 드물다는
점이었다.  - P39

1997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가 사망 직전의 벌린에게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구분에 관한 편지를 쓴것도 
적극적 자유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뜻에서였다. 벌린은 적극적 자유라는 개념을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했는데, 그중 몇 가지만이 전체주의적인 경향성을 갖고 있었다. 블레어가 적극적 자유 개념을 옹호한 것도 전체주의적인 경향성이 없는 적극적 자유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블레어가 옹호한 적극적 자유 개념은 
유럽과 북미의 중도좌파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 P39

필요하지만 위험의 가능성이 높은 일에 필요한 것은
절제이지 금지는 아닐 것이다. "자유는 건전한 절제를 
전제로 한다"는 건 누구다 다 동의하는 상식이지만, 
우리가 일상적 삶의 작은 일에서조차 자주 절제하지 
못하듯이, 절제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평등을 
위한 자유를 시도해보기도 전에 자유와 평등은 양립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서둘러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인류 역사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해온 긴 여정이었던 만큼 
둘을 양립시키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절제는 PC에 대한 찬반 양측 모두에게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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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사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 P29

사람들은 저마다 윤리관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만의 
윤리적 목표가 있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욕먹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부터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사람까지 다양합니다. 하지만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 빠지면 그러한 윤리의 목표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면,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 과장된 매출자료를 
제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대답을 통해 그 사람의 윤리의 목표를 찾아볼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리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요? - P30

정의 추구

인간에게는 누구나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법과 도덕을 준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부터 
공정한 경쟁을 위해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의 구조화된 불의를 지적하고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정의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지혜, 용기, 절제, 정의는 고대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4주덕입니다. 앞의 세 덕목은 정의라는 덕을 위해 존재하는 덕목일정도로 고대 철학자들은 
정의를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했습니다.
특히, 마이클 샌델은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를 이해하는세 가지 방식을 설명합니다.

첫째, 공리주의의 관점으로 "정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것" 입니다.

둘째, 자유주의의 관점으로 "정의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것"입니다.

셋째, 공동체주의의 관점으로 "정의란 공동체의 미덕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의의 개념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윤리의 목표로인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의를 윤리의 목표로 삼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의의 개념이 변화한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정의로 생각했던 것이 더이상 정의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국가에서 철인만이 국가를 통치해야 하고, 
일반 시민계급은 생산자 계급으로 절제된 욕망을 통해서 
행복을 찾는 것이 정의로운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이 생각한 정의는 현대인의 감각으로 볼 때 
사람을 차별하는 불의입니다.

게다가 정의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예를들어, 자신이 일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자유주의)을 정의로 생각하게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능력에 따라 
일하는 것은 같지만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것(평등주의)을 정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의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성경 또한, 정의와 공의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대상 18:14 시 
99:4, 106:3; 잠8:20 21:3; 사 32:16 59:14;렘 33:15: 겔 
18:5; 암 5:7).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성경 구절들의 
공통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공통점은 정의를 사랑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사회 안의 경제적 약자에 대한 최우선적인 관심을 
보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는 대표적인 경제적 약자입니다(출 22:22 신10:18,24:17; 즉7:10:
욥 22:9, 24:3; 시 68:5, 94:6, 109:9). 성경은 이러한 약자를 압제하거나 해를 가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선지자들은 사회 내의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약자인 그들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착취하는 사람이 왕이라도 그들의 
목숨을 걸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만큼 성경은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의를 윤리의 목표로 삼는 것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경제적 약자를 돕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여도, 그것이 
내면적인 동기와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관대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 혹은 성공하기 위해 표면적으로정의를 외칠 수 있습니다.

윤리의 목표는 내면과 표면이 일치해야 합니다. 즉, 표리부동하지 말아야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표리부동에 대해 회칠한 무덤이라는 말로 강하게 견책합니다(겔 13:14-15 마 23:27; 행 23:3). 그러므로 정의를 윤리의 목표로 삼는것은 성경의 맥락과는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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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스는 개인의 강력한 자기 이익의 추구가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도 경계했다. 아담 스미스는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이 자신의 이기심만을 추구할 때 
초래할 결과를 기술하면서 사용한 말을 연상하게 하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는 "결코 뿌리지 않은 곳에서 
거두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탐욕은 인간의 심성 가운데 
하나임을 경고했다. 이런 심성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상태에서는 홉스가 말하는 문명이 싹틀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기심, 탐욕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씨를 
뿌리고 가꾸는 노고는 하지 않고 거두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는 제한없는 탐욕이 다른 사람의 
생명, 자유, 인격, 재산을 침해할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이기심이 무한정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아담 스미스는 남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제한 없는 이기심이 
허용되지 않는 이유는 그런 행위가타인이나 공정한 
관찰자의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에게서 이기심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공정한 관찰자‘의공감이다. ‘공정한 관찰자‘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이기심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담 스미스의 믿음이었다. - P46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이기심이 제어될 때만 이기심에 
기초한 시장경제는 사회에 질서와 번영을 보장한다. 
그는 이기심이 공감에기초한 ‘공정한 관찰자‘에 의해 
제어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는 점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낙관주의적인 견해를 유지하였다.

인간은 타인에 공감하고 타인의 공감을 바라는 존재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심뿐만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의지, 교환하려는 의지, 타인에 대한 관심,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공감에서 나온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감정과 행위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공감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공감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공정한 관찰자‘를 
형성하고, 사람들은 ‘공정한 관찰자‘의 눈을 의식한다. 
자신의 감정과 행위가 공정한 관찰자의 칭찬을 받을 수
있길 원한다. 물론 인간의 마음속에는 공정한 관찰자를 
무시하려는 나약함도 있으나, 대체로 공정한 관찰자가 
비난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한다. 

아담 스미스의 ‘공정한 관찰자‘는 이기심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다. 인간의 이기심은 피할 수 없는 자연적 
속성이긴 하지만, 그것의 작동을 무한정 허용하지 
않는 것이 조물주의 의도라는 것이다.

인간은 마음속에 ‘공정한 관찰자‘의 판단에 따르는 
것을 일반적 규칙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고려하는 
감각 곧 의무감을 형성한다.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을 정하여 
처벌한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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