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 근대 · 탈근대적 요소가 동시에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 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도 미국에 비해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사회내부의 사회문화적 논쟁과 토론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예컨대, 인문사회과학은 학계 내부 경쟁과 인정 투쟁으로 매우 높은 서양 의존도를 기록한 덕분에 선진적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한국적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데에 있다.
PC도 미국에선 수십 년간 실천되어왔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적잖이 노출되었기에 이념의 좌우를 떠나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적 운동으로서 PC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한국에서 그런 비판을 곧장 적용해도 좋은 건지는 의문이다.
PC는 ‘나치돌격대의 사상 통제 운동‘인가?
PC라는 용어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어 무어라고 단정 짓긴 어려우나, 현재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법의 기원은 1960년대 미국 신좌파의 애독서였던 마오쩌둥의 [작은 빨간 책 Little Red Book]에 나오는 ‘올바른 생각correct thinking‘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신좌파는 PC를 교조주의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독선적인 동료의 과격함을 지적하는 일종의 농담으로 사용했지만, 우파는 좌파를 비난하기 위한 목적으로 PC를 ‘좌파의 대학·문화계 장악 프로그램‘으로 재정의해 사용함으로써 사실상 오늘날 사용되는 용법의 토대를 만들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진보좌파도 PC라는 용어를 쓰게 되었지만, 그들에게 PC는 ‘대학 문화계 장악 프로그램‘이아니라 ‘ 소수자의 인권 보호 프로그램‘이었다. 진보좌파가추진한 PC 운동은 1980년대에 미국 각지의 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됨으로써 성차별적·인종차별적 표현을 시정하는 데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PC 운동은 그간 대학에서 가르쳐온 ‘위대한 책‘이니 ‘걸작‘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서구 백인들의 문화유산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소수 인종 문학 텍스트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소수 인종 교수채용과 학생 모집, 교과과정 개편을 위해 노력했다.
또 PC 운동은 나이에 대한 차별ageism,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차별heterosexism, 외모에 대한 차별lookism, 신체의 능력에 대한 차별ableism 등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했다.
1991년 5월 4일 조지 H. W. 부시는 미시간대학의 졸업식 연설의 대부분을 PC 운동을 비난하는 데에 할애함으로써 ‘PC 운동‘을 둘러싼 논란을 격화시켰다.
부시의 연설 직후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각종 PC 특집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하면서 PC에 관한 논쟁 논란 붐이 일어난 것이다. 그 결과 1991년 이전엔 미국 언론에서 PC라는 표현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나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매년 5,000번 이상 미국의 주요 일간지와 잡지에 등장했으며, 1997년 한 해에만 7,200번이나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PC 비난은 주로 표현의 자유에관한 것이었다. PC 반대자들은 PC 운동가들이 자신들의운동에 반대하거나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인종차별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라는 딱지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런 행태가 죄 없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새로운 매카시즘‘이라고 비난했다. 또 ‘미국의 역사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수정 제1조에 대한 가장 큰 위협‘, ‘나치돌격대의 사상 통제 운동‘, ‘AIDS 만큼 치명적인 이데올로기 바이러스‘ 등과 같은 비난과 더불어, PC 운동가들을 ‘언어 경찰languagepolice‘, ‘사상 경찰 thought police‘로 비난했다.
특히 PC 운동가들이 서구 백인들의 문화유산을 공격하고 나선 건 이념과 무관하게 많은 지식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에코는 1990년대 후반에 이렇게 경고하고 나섰다. "억압받는 소수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미국에서 탄생한 ‘정치적 올바름‘이 새로운 근본주의로 전환되려 하고있다." 그는 "불행히도 ‘정치적 올바름은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치는 자를 비난하고, 도곤(아프리카 서부에 사는 종족) 신화를 가르치는 자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 "그것은 또 다른 형식의 광신주의와 근본주의를 대변한다"고 비판했다.
PC의 연구 주제와 언론 보도 주제의 다양성
PC 논쟁은 주로 표현의 자유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이념적 차이를 기반으로 한 문화 전쟁의 양상을 띠었기 때문에 그 어떤 해결이나 타협의 지점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PC 연구도 동어반복의 한계를 넘어서긴 어려웠지만, PC가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연구는 계속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00년대 들어 나온 주요 연구들은 표현의 자유, 미디어, 집단 커뮤니케이션, 교육, 페미니즘, 종합적 평가, 국제 커뮤니케이션, 사상적 배경, 심리, 대응방안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2016년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PC 연구가 새로운 국면을맞게 되었다는 점이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PC운동가와 지지자들의 ‘위선‘을 집중 공격함으로써 이전에 비해 훨씬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PC는 1990년대 중반 영문학자 김성곤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지만, 이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201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PC 비난을 전면에 내세웠던 트럼프의 선거 전략이 시사하듯이, 미국에서 ‘PC 피로증‘은 중도층 유권자들은 물론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존재했다. 2015년 10월민주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그걸 잘 말해준다. "PC가 국가적으로 큰 문제"라는 진술에 동의한 사람은 6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진술이 트럼프가 한 말이라는 걸 밝혔을 땐 동의율은 36%로 급감했지만, 응답자들의 정파적 반감을 감안하자면 ‘PC 피로증‘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예일대학 조사에선 심층 인터뷰를 한 3,000명 중에서 80%가 "PC가 문제"라는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미국 PC 운동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이런 부정적인 여론과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다. 나는 기본적으로 PC 운동의 취지와 당위성인 동의와 지지를 보내면서도, 동의와지지를 보낼 뜻이 있는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운동방식의 문제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운동 방식의 문제는 과유불급의 원리와 관련된 것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로 압축해 지적할 수 있다. PC 운동이 애초에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출발한 것임에도 어떤 사람들이 그 예의를 지키지 않거나 소홀히 대한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너무 거친 비판을 퍼부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건 자기모순이다.
너무 거친 비판은 주로 언어 본질주의 문제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누군가를 본질이 담긴 단어로 딱지 붙이기를 할 때에 언어는 곧잘 현실을 왜곡한다. 어떤 사람이 무심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을 때 "그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다"고 지적하는 것과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PC에 근거한 비판은 곧잘 후자의 딱지 붙이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본질주의적인 딱지 붙이기는 일반 대중에게 필요 이상의 반발을 초래해 원래 의도했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PC 운동을 일상적 삶의 ‘상식‘을 무시하는 엘리트 중심의 운동으로 인식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 나아가 이른바 ‘트럼프 현상‘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반反엘리트 우익 포퓰리즘이 미국을 넘어서 서구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갖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을 가능성마저 제기되었다. - P31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 대중의 ‘PC 피로증‘과 서양의 적잖은 진보좌파 지식인들이 PC비판에 나선 것은 상호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이런PC 비판은 국내에서 이루어진 진보적 PC 비판에 적잖은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제부터 PC의 3대 쟁점을 탐구하면서 다루기로 하자. 자유, 위선, 계급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는 3대 쟁점의 핵심을 하나씩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는 ‘PC 논쟁‘의 초기부터 제시된 우파의 반대 논리로, PC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한다. 둘째, 위선은 PC의 지지자들이 말로만 떠드는 기득권 세력이라는 우파의 반대 논리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인정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이는 ‘말과 행동의 괴리‘로 인한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한다. 셋째, 계급은 PC가 빈부격차의 문제를 비롯한 계급 정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좌파의 비판 논리로, 분열로 귀결되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를 자제하고 정치경제적 구조를 바꾸는데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체성 정치‘와 ‘계급 정치‘의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한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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