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1. 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
인간이 과연 존엄한 존재인가,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철학적, 도덕적 종교적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헌법 제10조 제1문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존엄함을 당위명제로 선언하고 있다. 세계관적, 종교적 다원성과 중립성에 기반하고 있는 우리 헌법이 선명한 인간의 존엄성을 이해할 때에는 특정의 철학적, 도덕적, 종교적 견해나 가치관에 입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인격적 존재라는 인간상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인간은 자율성과 이성을 지닌 인격적 존재이다. 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각자가 자신의 인격을 자유로이 발현할 때 존엄하고 행복하다. 각 개인에게 내재된 인격성이 존중받고, 각자의 개성적인 인격 형성과 발전이 방해받지 말아야 한다. - P298
넓게 보면 헌법이 보장하는 모든 개별 기본권들은 직·간접적으로 인격의존중 · 실현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본권 보장은 곧 ‘인격 존중 · 실현의 체계‘ 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이런 인격존중 · 실현 체계의 기초와 윤곽을 형성하는 지도적 · 총괄적 의미와 성격을 가진 가치이자 기본권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개별 기본권 규정의 해석 · 적용에 있어서 지도적 원리 · 지침으로 작용한다. 또한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지만 헌법 제37조 제1항의 개방조항을 통해 기본권으로 인정될 수 있는 가치나 이익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헌법 제10조는 제37조 제1항과 결합하여 해석상으로 기본권을 도출할 수 있는주된 창구조항이 될 수 있다(예: 생명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이지난 총괄적 성격은 개별 기본권과의 관계에서는 보충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개별 기본권이 별도로 있고 그로써 효과적인 인격 보호가 이루어진다면 인간의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뒤로 물러날 수 있다. 그리하여 행복추구권은 포괄적 성격을 지닌 보충적으로 적용되는 기본권으로 이해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또한 주관적 기본권으로서는, 인격의 최소 핵심을 위한 최후의 기본권 보호수단으로 남는다. - P299
2. 인간의 존엄과 가치
가. 의의 및 법적 성격
(1) 헌법의 최고원리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단순히 하나의 개별 기본권이 아니라 헌법의 최고가치를 담고 있는 객관적 헌법원리이다. 최고의 객관적 헌법규범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모든 국가생활, 국가활동의 목표와 기준을 제공하는 원리이다.
모든 국가작용을 구속하며, 국가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해서는 안 될 뿐만아니라 모든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 · 보호해야 할 객관적 의무를 부담한다. 또한 기본권 보장의 이념적 기초이자 지향점으로서 모든 개별 기본권 규정의 해석의 지침이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기본권 제한의 한계로서 ‘본질적 내용‘의 침해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바, 이에 관한 절대설과 상대설의 어느 입장을 택하든, 개별 기본권의 핵심 영역이 훼손되고 있는지(절대설) 혹은 형량의 대상인 가치 · 이익이 개인에게 얼마만큼 중대한 의미가 있는지(상대설)를 판단함에 있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의미 있는 잣대로 작용할 수 있다. - P299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개별 기본권 영역에서 특별히 구체화 한 것으로는 현법 제32조 제3항(근로조건의 기준에서 인간의 존엄성 보장), 제36조 제1항(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 보장)이 있다.
헌법개정의 한계를 인정하는 입장이라면, 헌법의 최고가치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규정은 헌법개정의 한계로 작용할 것이다. - P300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헌법이념의 핵심으로, 국가는 헌법에 규정된 개별적 기본권을 비롯하여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자유와 권리까지도 이를 보장하여야 하며, 이를 통하여 개별 국민이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확보하여야 한다는 헌법의 기본원리를 선언한 조항이다. 따라서 자유와 권리의 보장은 1차적으로 헌법상 개별적 기본권규정을 매개로 이루어지지만, 기본권제한에 있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거나 기본권형성에 있어서 최소한의 필요한 보장조차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한다면,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다."
(헌재 2000. 6. 1. 98헌마216). - P300
(2) 주관적 권리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주관적 권리로서의 성격을 가지는지에 관하여 이를부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라고 규정하고 있어 다른 주관적 권리의 표현방식과 다르지 않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국가작용에 대한 방어적 지위를 개인에게 부여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를 부인할 이유가 없다. 다른 기본권으로는 마땅히 혹은 충분히 보호할 수 없는 인격의 핵심영역에 대한 보호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통해서만 고유하게 보호될 수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주관적 권리인 이상 그 침해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심판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도 이러한 것이다. - P300
나. 내용
주관적 권리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내용(보호영역)이 무엇인지 확정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인 자유권과 달리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특정한 생활영역에서반 문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개별 기본권 규정들에 의해 인간의 인격성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보호는 인격의 최소 핵심영역에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인격의 최소 핵심 영역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비교적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채택한 바 있는 이른바 ‘객체설‘이 있다. 이는 한 인간을 국가나 타인과의관계에서 단순한 수단이나 객체로 전락시키는 것은 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가치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 P301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보호내용은 그에 대한 전형적인 침해유형이나 문제 영역을 중심으로 사례별로 파악되고 있다. 물론 그 보호내용은 시대와 사회, 기술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나, 현재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문제로 파악되는 사례군은 다음과 같이 나눠볼 수 있다.
① 노예제도, 인신매매, 매매혼, 생체실험 이는 인간을 도구,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전형적인 예이다. 인간복제도 문제될 수 있고 군 위안부 강제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② 고문, 세뇌, 단종이나 강제불임시술, 인간 신체·정신의 온전성을 극단적으로 와해시키거나 신체·정신에 관한 지배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반인격적 처사이다.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도 문제될 수 있는데, 사형, 감형의 가능성이 없는 종신형, 체형, 화학적 거세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밖에 교정시설의 과밀수용도 문제될 수 있다. - P301
헌법재판소는 구치소의 실제 개인사용가능면적이 1.27㎡(약 0.3평)이어서 우리나라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인 사람이 팔다리를 마음껏 뻗기 어렵고, 다른 수형자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하여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할 정도로 매우 협소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없게 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헌재 2016. 12. 29. 2013헌마142). - P302
③ 생명, 신체에 대한 지배권을 박탈한 채 인격과 품위에 반하는 연명을 강요하는 것도 인간존엄의 침해가 될 수 있다.연명의료중단에 관하여는 사법부를통한 문제 제기와 인간의 존엄, 인격적 자기결정권의 관점에서 헌법적 기준 제시가 있었고(대법원 2009. 5. 21.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호스피스·완화의료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 · 시행되고 있다. 의사의 조력을 받아 생을 마감할 권리를 원천 봉쇄하는 형법조항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 P303
④ 수사기관이나 교정기관에 의한 비인도적 굴욕, 수치의 강요도 해당된다.
경찰서 유치장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흉기 등 위험물 및 반입금지물품의 소지·은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경찰관에게 등을 보인 채 돌아서서 상의를 속옷과 함께 겨드랑이까지 올리고 하의를 속옷과 함께 무릎까지 내린 상태에서 3회에 걸쳐 앉았다 일어서게 하는 방법으로 실시한 신체수색(현재 2002. 7. 18, 2000헌마327).
또한 "시설이나 비용의 제한을 이유로 수용자들에게 비인간적인 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정신에 위반되며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헌재 2003. 12. 18, 2001헌마163).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주일에 1회 내지 많으면 수회, 각 약 30분 내지 2시간 동안 탄원서나 소송서류의 작성, 목욕, 세탁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해제된 것을 제외하고는 항상 이중금속수갑과 가죽수갑을 착용하여 두 팔이 몸에 고정된 상태에서 생활하였고 이와 같은 상태에서 식사, 용변, 취침을 함으로써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으므로 그로 인하여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에 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유지조차 어려운 생활을 장기간 강요한 사안. - P303
⑤ 물질적인 최저 기초의 보장. 사회적 기본권 규정이 없는 가운데,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인간의 존엄과 사회국가 원리를 결합하여,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저한의 조건들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고, 개인은 이에 대응하는 기본권을갖는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에서는 제34조 제1항에서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받을 권리에 의해 이것이 보장된다. 헌법재판소도 같은 입장이다. - P304
다. 제한
주관적 권리로서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정당하게 제한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양론이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최고의 헌법가치로서 불가침이고, 다른 가치 · 이익과의 형량을 통해 배제 · 제약될 수 없는 절대적 기본권이라는 견해도 있고, 다른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일반적 법률유보 하에 있다는 견해도 있다.
개별 기본권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보호하는 내용은 인격의 최소한의 핵심영역에 국한되는 만큼 그러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곧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문제되는 영역 · 사례 중에서도 대립되는 가치 · 이익이 대단히 중대하여 형량을 필요로 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유전자공학, 생명의료, 테러와 안전 등의 분야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사회적·기술적 상황과 이를 규율하려는 윤리와 법의 문제는 인간 존엄의 보장과 한계라는 헌법적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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