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주체
형법상 범죄의 주체는 사람(人)이다. 범죄의 주체는 바로 행위의 주체로서 " 행위자" 또는 "범죄인"이라고도 부른다. 형법상의 구성요건은 범죄의 주체를 "... 한 자"라는 형식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사람인 이상 원칙적으로 범죄의 주체를 한정하지 않는다.
다만 ① 법률상 예외적으로 범죄의 주체가 일정한 ‘신분‘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신분범의 경우가 있고, ② 이론상 범죄의 주체인 사람(人)은 자연인에 국한되는가 아니면 법인도 포함되는가 하는 법인의 범죄능력에 관한 논쟁이있으며, ③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는 경우에도 법인의 형벌능력만큼은 인정할 수 있겠는가, 즉 책임주의의 예외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 P102
1. 범죄의 주체와 신분범
신분범이란 "법률상 범죄의 주체가 일정한 신분을 갖출 것을 필요로 하는범죄" 이다. 여기에서 신분이란 "남녀의 성별, 내·외국인의 구별, 친족관계, 공무원인 자격과 같은 관계뿐만 아니라, 널리 일정한 범죄행위에 관련된 범인의 인적 관계인 특수한 지위 또는 상태"라고 정의된다.
신분범에는 ① 범죄의 주체가 일정한 신분을 갖춘 경우에만 범죄가 성립하는 진정신분범과 ② 범죄의 주체가 일정한 신분을 갖춘 경우에 범죄의 성립이 좌우되지는 않고 단지 형벌이 가중 또는 감경되는 부진정신분범이 있다. - P102
(1) 진정신분범
진정신분범에서는 범죄의 주체가 일정한 신분을 갖추어야만 범죄가 성립하기 때문에 그 신분을 ‘범죄구성적 신분‘이라고 한다.
범죄구성적 신분으로는수뢰죄에 있어서 ‘공무원‘, 위증죄에 있어서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 허위진단서작성죄에 있어서 ‘의사‘ 등, 업무상 비밀누설죄에있어서 ‘의사 · 변호사‘ 등, 단순횡령죄에 있어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 단순배임죄에 있어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등이 있다. - P102
(2) 부진정신분범
부진정신분범에서는 범죄의 주체가 일정한 신분을 갖추지 않아도 범죄는 성립하지만, 일정한 신분이 있음으로 해서 형벌이 가중되거나 감경되기 때문에 그 신분을 ‘형벌가감적 신분‘이라고 한다.
존속살해죄에서 직계비속이에서라는 신분은 가중적 신분의 예이고, 영아살해죄에서 직계존속이라는 신분은 감경적 신분의 예가 된다.
그외 가중적 신분으로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 • 업무상횡령배임죄 • 업무상낙태죄에서의 ‘업무자‘, 상습범가중처벌규정에서의 ‘상습자‘, 대(對) 존속범죄 가중처벌규정에서의 ‘직계비속‘ 등이 있고, 감경적 신분으로는 영아유기죄에서의 ‘직계존속‘이 있다. - P103
2. 법인의 범죄능력
자연인 이외에 법인도 범죄의 주체(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법인도범죄능력을 갖는가라는 문제에 있어서 먼저 입법론과 해석론을 구별하여야한다. 형법학상 논의의 초점은 ‘해석상‘ 범죄의 주체에 법인을 포함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법인‘의 범죄능력에 대하여는 학설이 대립하고 있지만, ‘법인격 없는 단체‘는 민법과 달리 형법상으로 범죄의 주체가 될 수 없고 단체행동에 참가한 구성원 개개인을 범죄의 주체로 파악하여야 한다는 점에 이론이 없다. 법인격 없는 단체의 범죄는 개인책임의 원칙과 공범론에 의하여 구성원 각자의 형사책임을 정하게 된다. - P103
"법인격 없는 사단과 같은 단체는 법인과 마찬가지로 사법상의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법률에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그 범죄능력은 없고, 그 단체의 업무는 단체를 대표하는 자연인인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에 따른 대표행위에 의하여 실현될 수밖에 없다. 구건축법 (1995. 1. 5. 법률 제491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6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건축물의 유지·관리의무를 지는 ‘소유자 또는 관리자‘가 법인격 없는 사단인 경우에는 자연인인 대표기관이 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므로 같은 법 제79조 제4호에서 같은 법 제26조 제1항의 규정에 위반한 자라 함은 법인격 없는 사단의 대표기관인 자연인을 의미한다" (대판 1997. 1. 24, 96도 524). - P103
(1) 입법례와 입법론
먼저 민법상의 법인의 본질론과 관련하여 보자면, 법인은 관념상의 무형의 존재이며 법률이 인정하는 목적범위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법인의제설‘의 입장에서는 법인의 범죄능력을 당연히 부정하게 됨에 반하여, 법인은 사회적으로 실재한다는 ‘법인실재설‘의 입장에서는 법인도 범죄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논리적 결론이다. - P103
그러나 영미법계에서는 법인의제설에 입각하면서도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반대로 독일법계에서는 법인실재설에 입각하면서도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는 입장이 지배적이라는 비교법적 사례로 볼 때, 법인의 본질론과 법인의 범죄능력 상호간에 논리필연적 관계는 없다고 하겠다. - P104
독일법계에서는 책임의 본질을 윤리적으로 파악하여 (도의적 책임론) 윤리적 인격자로 볼 수 없는 법인의 범죄능력을 전통적으로 부정하여 온 데 반하여, 영미법계에서는 실용주의적 성격에 치중하여 법인처벌의 사회적 필요성을 중시한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특히 독일은 법인의 범죄에 대한 대처방식에 있어서 ‘제재수단‘에 주안점을두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즉 법인의 위법행위를 형법에서가 아니라 ‘질서위반법‘에서 규율하면서 ‘질서위반금‘ (범칙금)이라는 금전적 제재를 과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형법에서는 법인이 아니라 법인의 ‘임 · 직원‘을 처벌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 P104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역할의 대부분은 개인보다도 법인체인 기업이 담당하고 있으며 그 비중도 계속 증대하고 있다. 법인기업은 막대한 인적·물적자원과 법적 지원을 이용한 재화생산으로써 매우 유용한 사회적 존재가 되어있으나, 만일 반사회적 반윤리적인 기업활동으로 나아가는 경우에는 그 엄청난 조직의 힘으로 말미암아 사회에 미치는 피해와 파장도 막대해진다. 최근 기업범죄 조직범죄에 대한 형사정책적 연구가 중시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 P104
따라서 탁상공론보다도 법인기업체가 저지르는 심각한 범죄현실을 직시하여 법인의 범죄능력과 법인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수단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법인이 유기적 조직체를 이용하는 차원에서 행한 범죄는 법인 자신의 범죄로 간주된다는 사회적 인식과 필요한 경우에는 법인 자체를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행정형법의 영역에 있어서 위법행위를 한 행위자 이외에 법인 또는 업무를 처벌하는 ‘양벌규정‘이 대폭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며, 양벌규정에서 부과되는 벌금형도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액수가 현실화되고 있다. - P104
(2) 해석론
형법의 해석상, 특히 행정형법에서 법인을 처벌한다는 명문규정을 두고 있을 때 이 규정이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 부정설, 긍정설, 부분적 긍정설이 대립하고 있다. - P104
(가) 부정설
우리나라의 다수학자와 판례가 지지하고 있는 부정설의 주요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 법인은 의사와 육체를 가지지 않는 무형적 존재이므로 형법상 행위능력이 없다.
② 의사없는 법인에 대하여 자유의사를 전제로 한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윤리적 책임비난도 무의미하다.
③ 법인의 처벌은 범죄와 무관한 다른 구성원까지 처벌하는 결과가 되므로 개인책임의 원칙에 반하고, 행위자 이외에 법인까지 처벌하는 것은 이중처벌이 된다.
④ 현행 형벌체계의 중심은 자유형에 있는데, 법인에게는 자유형과 생명인 사형을 과할 수 없다.
⑤ 법인은 적법한 목적의 범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하는 목적에 의한 제한을 받는데,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범행을 법인의 목적범위 안에 넣는 결과가 된다. - P105
대법원은 "법인에 있어서의 법률행위는 그 대표자인 자연인의 행위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요. 그 자연인의 행위가 법인 자신의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리고 형사법상의 형사책임은 그 행위자인 자연인에 대하여 자기행위에 대한 자기책임으로서 형벌을 가하게 되고 다만 법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법률효과의 귀속자인 법인에 대하여 형벌로서 벌금형의 처벌을 과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따름이다"라고 판시하면서,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는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다. - P105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는 대표적 관례로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판결로서 [다수의견]형법 제355조 제2항의 배임죄에 있어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할 의무의 주체가 법인이 되는 경우라도 법인은 다만 사법상의 의무주체가 될 뿐 범죄능력이 없는 것이며, 그 타인의 사무는 법인을 대표하는 자연인인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에 따른 대표행위에 의하여 실현될 수밖에 없어 그 대표기관은 마땅히 법인이 타인에 대하여 부담하고 있는 의무내용대로 사무를 처리할 의무가 있다할 것이므로 법인이 처리할 의무를 지는 타인의 사무에 관하여는 법인이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없고, 그 법인을 대표하여 사무를 처리하는 자연인인 대표기관이 바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자, 즉 배임죄의 주체가 되는 것"(대판 1984 10. 10, 82 도 2595 - 전원합의체 同旨, 대판 1985. 10 .8, 83도1375) - P105
(나) 긍정설
긍정설의 주요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 법인은 기관을 통하여 의사결정을 하고 행위할 수 있으므로 의사능력과 행위능력이 인정된다.
② 사회적 위험성이 있는 법인에 대하여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③ 법인의 기관의 행위는 행위자 개인의 행위이면서 동시에 법인의 행위라는 양면성을 가지는 까닭에 행위자와 법인을 모두 처벌하는것이 이중처벌은 아니며, 특히 종업원의 위법행위와 그에 대한 법인의 감독상의 과실행위는 별개의 범죄행위로 파악된다.
④ 법인에 대한 형벌로 재산형을과할 수 있고, 법인의 해산 · 영업취소 등은 자연인에 대한 사형에 해당하며, 영업정지는 자연인에 대한 자유형에 해당한다.
⑤ 법인의 설립목적과 설립 후의 범죄목적수행과는 구별하여야 하므로, 적법한 목적을 가지고 설립한 법인에게 설립 후의 범죄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 P106
(다) 부분적 긍정설
부분적 긍정설은 형사범 (자연법)에 있어서는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고, 행정법 (법정범)에 있어서는 긍정하는 견해이다. 행정범은윤리적 색채가 약한 반면 합목적적 • 기술적 색채가 강하다는 특수성이 있으므로 행정범에 한하여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논거가 제시된다. - P106
우리나라 학자들 중 법인의 범죄능력을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전면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아니고, "형법상의 범죄는 대부분 반윤리적인 성격이 강한 범죄이므로 법인에게 행위능력이 있다고 해서 이러한 범죄까지 법인이 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인의 범죄는 윤리적 색채가 희박한 행정단속법규에서 인정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든가, "다만 법인의 행위능력은 특히 자연인의 인격적 표현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 조직체의 활동으로 보기 곤란한 구성요건에서는 인정될 수 없다. 예컨대 살인·강도· 강간 등의 범죄가 그것이다"라고 하는 등, 엄격히 보자면 ‘부분적‘ 긍정설을 취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 P106
(라) 결론: 책임주의의 관철과 부분적 긍정의 타당성
행정형법의 영역에는 "법인의 대표자 법인 또는 개인의 대리인, 사용인 기타의 종업원이 그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 또는 재산에 관하여 본법에 규정하는 위반행위를 한 때에는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개인에 대하여도 각 본조의 벌금형에 처한다"라는 입법형식의 양벌규정이 산재해 있다. - P106
부정설의 ‘치명적인 결함‘은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면서도 이 실정법상의 양벌규정의 존재 때문에 법인의 ‘형벌‘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함에서 나온다.
즉 부정설은 일면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면서 타면 ‘형벌‘능력을 긍정하는데, 이러한 모순을 설명하기 위한 해석론으로 ‘책임주의의 예외‘라고 하는 고육지책을 동원한다.
그러나 민법과는 달리 형법에서 책임주의는 결코 예외를 허용할 수 없는 철칙에 속한다. 책임주의의 포기 (예컨대 무과실책임의 인정)는 항상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하므로 죄형법정주의의 포기를 의미한다.
"범죄(능력) 없이 형벌(능력) 없다"를 분석해 보자면, "행위능력 없이 책임능력 없다" ( 행위책임의 원칙)와 "책임 (능력) 없이 형벌 (능력) 없다" (책임주의)로 나눌수 있는데, 범죄없이 형벌을 인정하려는 부정설은 ‘형법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이론‘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 P107
① 이상과 같이 책임주의의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는 논거 이외에 ② 법인도 기관을 통하여 자유로이 ‘단체의 고유한 의사‘를 형성할 수 있으며, ③ 단체의사에 의하여 지배되는 외부적 행태에 대하여 사회가 자연인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법인의 행위로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사실이고 (사회적 행위론), ④사회에 유익한 것이 아니라 범죄로써 사회에 해를 끼치는 법인에 대하여는 사회적 책임비난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책임비난을 가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며(사회적 책임론과 도의적 책임론), ⑤ 형사제재 중에는 이익단체인 법인에게 가장 효과적인 금전적 제재수단과 법인격의 취소 · 해산명령 · 영업정지등과 같은 행정적 제재수단 내지 보안처분으로써 목적형주의의 이념을 달성할 수 있으므로, 법인의 범죄능력을 ‘긍정‘함이 옳다. - P107
다만 자연인과 법인을 전적으로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차이점을 고려해야 하므로, 범죄의 성격과 형벌체계에 따라 법인의 범죄능력과 형벌능력이 일정한 제한을 받는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부분적 긍정설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 P108
부분적 긍정설에 대한 비판으로는, 행정법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여 형사범과 행정법의 구별이 어렵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러나 비록 형사범과 행정범의 구별이 상대적이어서 질적 차이를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당해 형벌법규의윤리적 · 합목적적 · 기술적 성격에 있어서의 ‘양적‘ 차이를 분간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고 또한 실정법상의 양벌규정은 그 처벌대상이 행정범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해석할 것이므로, 크게 문제될 비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P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