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은 유럽의 법과 정치, 사상과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여러 세기에 걸쳐 ‘유럽 공통의 문화‘가 
생겨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마법 연구의 중심지는 시대에 따라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로 이동해왔고, 오랜 역사만큼 연구 문헌의 
분량 또한 방대해서 독자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은 유스티니아누스 법부터 현대 민법전에 이르기까지
2,000년이 넘도록 서양 문화가 발달해온 전 과정을 
함께한 로마법의 역사를 간결하고 명료하게 담았다.

제1장 서설

고전 고대의 유산이라고 하면 우리는 먼저 고대 그리스 
예술, 고대 그리스 연극, 고대 그리스 철학을 생각하게 된다.
로마가남긴 것은 아마도 도로와 로마법일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법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회에서 법이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이 사유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리스 도시국가의 법은 고도로 발전했다고 보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법학이라 할만한 것이 거의 존재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로마인들은법 이론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고, 로마의 법철학은 대체로 그리스에서 차용한 것이었다. - P13

로마인들의 관심사는 개인의 재산 관계를 규율하는 법리들,
소송 절차를 통해 어떤식으로 일방이 상대방의 이행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로마법의 상세한 내용은 전문법률가들이 발전시켰고 대단히 세련된 수준에 도달했다. 

로마법 법리는 기술적으로 탁월해서 후대의 여러 전문 
법조인들을 매료시킨 반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로마법의 우수성은 예술이나 잘 닦인 도로에 비하면 당장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러 세기에 걸쳐 
로마법은 유럽 공통의 문화라는 것이 생겨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13

고대 로마법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들은 대부분 6세기에 
비잔틴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명에 따라 편찬된 법률 문헌에 의거한 것이다. 이 편찬 작업에 포함된 문헌들은 
1,000년에걸쳐 계속된 법 제도 발달의 산물이고 그 기간 
동안 로마법은고유한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대략 기원전 
500년에서 기원후550년에 이르는 1,000년의 기간 동안 
로마는 조그마한 도시국가에서 세계적인 제국으로 성장했다. 

정치적으로는 왕정으로시작하여 공화정을 거쳐 기독교가 
득세하기 조금 전부터는 황제의 통치하에 있었다. 
같은 기간 동안 로마의 법도 사회상의변화에 상응하여 
적응하고 변화해왔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먼 옛날 
로마인들 삶의 일부분이었던 법이 그대로 계속된다는
생각이 유지되었다. - P14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편찬된 로마법 문헌들은 유럽 
역사의 각 시대별로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로마법의 부흥 또는 부활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고, 
중세 후기 내내 로마법의 연구와 발전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16세기에 들어서는 인문주의가 
등장하면서 프랑스가 로마법 연구와 발전의 주역이 되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가 로마법 연구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고, 19세기에 와서는 독일 학자들이 로마법을 
또 한번 변화시켰다. 

이러한 각 시기마다 로마법의 다른 측면이 강조되었다. - P14

로마법에 대해서는 열렬한 신봉자와 맹렬한 반대자들이 
있어왔다. 1947년에 허버트 졸로비치가 지적했듯이
로마법 반대자들은 다음 세 가지 논거에 기반을 두었다. 
첫째, 로마법은 낯선 남의 나라 법이라는 것이다. 
노예를 부리고 살던 고대 사회의 법이므로 후대의 
사회 이상에 비추어 보면 낯설다. 
둘째, 로마법은 절대 군주를 옹호하고 자유로운 정치 
제도에 적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왔다. 
셋째, 로마법은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면서 
공공선보다는 이기주의를 옹호해왔다("로마법의 정치적 
함의 PoliticalImplications of Roman Law", Tulane Law Review 제22호, 1947). 때로는 이들 각각의 논거들이 
결합되기도 한다. 독일 나치당의원래 강령 중에는 
"물질주의적 세계 질서에 부역하는 로마법은 폐기하고 
독일 고유의 공통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태도에 자극받아 독일의 위대한 법사학자
파울 코샤커 Paul Koschaker는 로마법의 위기를 
알리는 ‘유럽과로마법‘이라는 저서를 집필했고 이 책도 
1947년에 출간되었다. - P15

그로부터 5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로마법 연구자들은 
일종의 위기를 겪고 있지만, 유럽 문화에 로마법이 기여한 
바에 대해서는 이제 좀 더 차분하게 검토해볼 수 있게 되었다. 

- P15

이 책은 코샤커의 책과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다. 
고대 로마법의 특성이무엇인지를 대략적으로 묘사하고, 
로마법 문헌들이 일종의 법률 문헌 슈퍼마켓처럼 되어 
각 시대의 법률가들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거기에서 
가져다 쓰게 된 이력을 추적해보려는것이다. 로마법은 
유럽의 법과 정치사상에 지울 수 없는 특징을 각인시켰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가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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