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정의와 책임 - P21

정의와 책임은 법학 법철학뿐만 아니라 사회철학에서 
중요한 문제로 취급된다. 많은 법학자뿐만 아니라 
사회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다루고 각기 나름대로 독자적인 이론을 전개한 것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책임의 경우에는 최근 독일 형법학에서 책임의 
본질과 근거에 관해 논쟁이 전개되었다.
 또한 영미철학에서는 ‘의사의 자유‘나 ‘행위의 자유‘와 
관련하여 논의가 이루어졌다. 정의론에 관해서는 과거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 사이에서 벌어졌던 형식적 · 
실질적 정의론 논쟁이나 최근 영미철학에서 전개되었던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이 이를 시사한다. - P21

그렇지만 그동안 전개되었던 논의를 보면 각기 책임과 
정의에만 논의가 집중되었을 뿐 이러한 책임과 정의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관해서는 분명하게 논의한 것 
같지 않다. 그 때문에 책임과 정의는 우리의 경우를 예로 
보면 각각 별개의 중요한 법적 개념으로, 가령 정의는 
법철학 영역에서 그리고 책임은 주로 민법학이나 
형법학과 같은 실정법학 영역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았다. - P22

그런데 이에 관해 영국의 법철학자 토니 오노레는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주장을 하였다.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자기존중 및 개인적·사회적 복리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배분적 정의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 P22

이러한 오노레의 주장은 책임과 정의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 상관관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제3장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법철학적 견지에서 책임과 정의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간단하게 스케치하는 데 목표를 둔다. 
책임과 정의 사이에는 모종의 상관관계가 존재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 관계는 도대체 무엇인지 다루고자 한다. - P22

오노레에 따르면 우리는 ‘도덕적인 비난‘을 받지 않는 
경우에도 또는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에도 
책임을 부담할 수있다. 

또한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경우에도 책임을 질 수 있고, 
나아가 합리적인 판단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행위한 
경우 또는 자유가 제한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행위한 
경우에도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한다. 
오노레에 따르면 도덕적인 책임이나 법적인 책임, 
무엇보다도 형사책임은 오노레 자신이 말하는 책임 
개념보다 좁은 개념이다. - P23

물론 오노레에 따르면 우리에게 책임이 인정되지 않고 
그 대신 우리가 혼경의 희생자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행위자에게 책임능력이 없는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책임의 의미가 약화된다. 

이때 책임과 행위자의 능력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문제될 수 있는데 이에 오노레는 비난과 제재 사이의 
비례성이라는 응보적 관점을 한 대답으로 내놓는다. 
그렇지만 오노레는 이러한 경우에도 책임은 인정되고 
다만 그 비난의 강도가 약해질 뿐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영국법을 전제로 했을 경우에 그렇다고 한다.
오드레는 이렇게 책임능력이 없는 경우 책임을 감경시킴으로써 책임과 환경을 모고려할 수 있다고 한다. - P23

여기서 오노레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어느 정도로 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책임을 
판단할 것인가? 오노레에 따르면 이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 P23

이는 곧 책임구상이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지역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책임능력이 없는 경우 영국법은 책임을 감경하는 것에 
만족할 뿐이지만 독일법은 아예 책임을 조각한다는 
차이점이 이를 예증한다. - P24

이처럼 오노레에 따르면 우리는 원칙적으로 책임 있는 
행위자나 환경의 희생자 모두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오노레는 이러한 경우에 우선적으로는 책임을
인정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 이유는 이렇게 하는 것이 
개인적·사회적 공공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환경의 희생자‘로 보아야 할 
경우 역시 있을 수 있다고 한다. - P24

오노레는 책임 개념이 반드시 법적 책임이나 도덕적 
책임을 전제로 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오노레가 책임 개념을 법적인 책임개념이나 도덕적인 
책임 개념보다 더욱 확장하고 있음을 간취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근거에서 오노레는 책임 개념을 확장하는 
것일까? - P24

Ⅱ. 토니 오노레의 테제

책임과 관련한 ‘이원적 코드화의 문제를 다룬다. 이에 관해 오노레는 다음과 같은 테제를 제시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통상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넓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오노레에 따르면 인간이 부담하는 책임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 · 사건에 대한 책임이며,
셋째는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신뢰에 기초를 
둔 책임, 즉 가족이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그것이다.

- P24

그런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오해가
제기된다고 한다. 첫째, 우리는 오직 우리의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둘째, 우리는 우리가 
비난받을 만한 경우에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며, 
셋째, 우리는 오직 우리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노레는 이러한 주장은 
모두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우리는 법적으로도 타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 P24

나아가 도덕적인 비난과는 무관하게 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선택권이 없는 
경우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 P25

이러한 주장을 통해 오노레는 책임 개념을 확장한다. 
이때 책임 개념을 확장하는 데 기초가 되는 것은 신뢰와 
위험이라고 한다. 가령 오노레는 위험을 인수함으로써 
책임이 성립하는 경우도 있고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울러 오노레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도 
우리는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한다. - P25

그러면 오노레가 이렇게 책임 개념을 확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오노래는 이렇게 책임 개념을 확장하여 
부과하는 것이 ‘자기존중‘(self-respect)과
‘개인적·사회적 복리‘ (individual and social well-being)를 증진하기 때문이라고한다.
또한 이러한 책임 개념은 분배적 정의에도 기여한다고 
말한다. - P25

그러나 오노레는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개인적 · 사회적 
복리에 기여한다 하더라도 행위자의 행위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에도 이렇게 책임을 부과할 것인지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행위자를 제재할 것인가
아니면 그 행위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을 제거하는 데 만족할 것인가 하는 쟁점과 관련을 맺는다고 한다. 

이는 책임과 관련해 논란을 빚는 ‘결정주의와 자유‘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오노레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오노레는 우선적으로 
책임을 인정하는 쪽을 선택한다. - P25

그렇지만 이렇게 책임을 우선적으로 인정하면 행위자가 
진정 책임질 수 없는 경우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노레는 인간이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건전한 거짓말‘(salutary lie) 일지도 모른다고한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귀속이 실제로 ‘건전한 거짓말‘에 불과한지 확신할 수도 없다고 한다.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오노레는 책임귀속의 대상이 되는 행동의 근거 또는 원인을 찾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근거 
또는 원인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행동이 결정된다는 것은 다소 
약한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 P26

한편 오노레는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심리적인 법칙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물론 만약 이러한 법칙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말 복잡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만약 인간의 행동이 이러한 심리적인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면, 이렇게 심리적인 법칙에 따라 행동을 하고 
또 이에 책임을 부담한다고 해서 이를 환경의 희생자가 
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경우 책임을 지는 이유는 행위자의 외부에 
속하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심리적인 법칙은 책임부과의 
바탕이 되는≪행위의도→ 행위선택 → 행위결정 → 행위≫라는 일련의 내적 체계와 양립할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논증을 통해 오노레는 결국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환경의 희생자로 보는 것보다 더욱 많은 근거를 갖고 있고 
이렇게 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의 복리를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 P26

그렇지만 이렇게 책임을 우선적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행위자를 환경의 희생자로 볼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 때문에 오노레는 도덕과 법 영역에서어느 경우에 
행위자를 환경의 희생자로 볼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 P27

이에 오노레는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한 
대답으로 내놓는다. 물론 엄격하게 말하면 이러한 능력은 
‘정도의 문제‘ (a matter ofdegree)일 수 있다고는 한다. 
여하간 오노레는 이렇게 능력에 장애가 있을 때는
행위자를 환경의 희생자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오노레는 그 이유로 비례성 원칙을 제시한다. - P27

그렇다면 이렇게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에 
장애가 있을 때 책임을 경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오노레는 ‘핸디캡 이론‘을 제안한다. 

오노레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공정한 경쟁을 기초로 하는데, 이렇게 능력에 결함이 있을 때에는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으므로 이를 위해 책임을 경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책임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되며, 더 중요한 
것은 ‘자기존중‘(self-respect)과 ‘정체성 의식‘(sense of 
identity)증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 P27

분석 및 평가

이러한 오노레의 책임구상은 주로 독일 법학의 성과를 
계수하여 발전시킨 종래의 책임구상과 비교할 때 
획기적인 관점을 여럿 담고 있다. 여기서는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오노레의 책임구상이 가지는 획기적인 쟁점을 
분석 및 평가하고자 한다. - P27

(1) 책임의 근거로서 개인적·사회적 복리

우선 오노레는 전통적인 책임구상과는 달리 책임을 
도덕적인 비난과 결부시키지 않는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하기 때문에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개인적 · 사회적 복리를 
증진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기존중을 
증진하는 데도 기여하기 때문에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 P27

이러한 오노레의 책임구상은 책임과 정의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오노레는 책임과 정의 
사이에 일정한 상호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P28

그러나 이러한 오노레의 책임구상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오노레는 책임을 부과함으로써 
개인의 자기존중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만약 도덕적인 비난가능성이나 각 개인이 가진 의사의 
자유를 책임의 전제로 삼지 않는다면 어떻게 책임을 통해 
자기존중을 증진할 수 있는가의 의문이 그것이다. 
더군다나 자기존중과 사회적 복리 증진이 책임의 범주 
아래서 양립할수 있는지에도 의문이 없지 않다. - P28

(2) 책임능력의 근거로서 공정한 경쟁에 대한 참여

다음으로 오노레는 공정한 경쟁에 대한 참여라는 
관점에서 책임능력을 근거 짓는다. 시장경제 질서는 
자유롭고 평등한 경쟁을 전제로 하는데, 책임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이러한 경쟁에 참여할 수 없기에 
이러한 행위자들이 어떤 일탈행위를 저지른 경우에는 
그에 대한 비난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종래 독일 형법학이 발전시킨 책임 
(Schuld)에 대한 이해와 비교해볼때 차이가 있다. 

독일 연방대법원이 수용한 규범적 책임론에 따라 
책임 개념을 파악하면 책임은 비난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비난가능성은 다시 행위자에게 의사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는 ‘자율적인 자기결정에 따른 자기책임‘이라는 칸트적인 사고를 반영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규범적 책임이론이 응보형 이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 P28

그러나 오노레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측면, 
즉 공리주의의 측면에서 책임을 이해한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공정한 경쟁에 대한 참여라는 관점에서 책임능력을 이해한다. 이러한 오노레의 주장은 ‘책임구상‘과 ‘참여‘라는 관점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종래의 규범적 책임론이 의사의 자유를 강조함으로써 
주체중심적인 책임구상에 머물러 있는 반면, 오노레의 
책임구상은 참여를 부각시킴으로써 탈주체적인, 
다시 말해 상호주관적인 책임구상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 P28

그러나 책임을 공리주의의 관점에서만 이해한다는 점, 
이의연장선상에서 공정한 경쟁에 대한 참여라는 일종의
 ‘경제적 참여‘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오노레의 책임구상은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책임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는 더욱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기 때문이다. - P29

한편 오노레의 책임구상은 독일의 형법학자 귄터 야콥스
(Günther Jakobs)가제시한 책임구상과 비슷한 측면을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야콥스는 자신의 
책임구상에서 인격 개념 (Personenkonzept)을 전제로 
하면서도 책임을 적극적 일반예방이라는 관점에서 근거 
짓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은 자기존중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책임부과가 
개인적·사회적 복리에 기여한다는 오노레의 구상과 
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사실이 그렇다면 야콥스에 
제기되는 비판은 기본적으로 오노레에게도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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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법에 따라 산다. 주인공은 권리의무의 주체인 
당사자이다. 법률가는 그들의 권리의무를 밝히는 
전문직이다. 법학(jurisprudence)은 법(ius)에 관한
지혜(prudence)의 체계이다. 여기에서 지혜는 공동체의 
지혜를 말한다. 그 발견을 위하여 법률가는 때때로 법적 
양심(legal conscience)에 의지한다. 그것은 법률가로서 훈련된 법률가가 법률직역의 일원으로서 전문적 직능을 
수행할 때, 가슴에 손을 얹고 마음속의 영성의 소리에 
귀기울임을 의미한다. 개별 법률가가 자신의 개성이나 
불만을 내세워 법으로 강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일은 법률가의 몫이 아니다. 정치가로서 법을 만들 
때에도, 정치적 과정을 통해야한다. 이런 공적 과정을 
우회하여, 법률가(특히 판사)의 위치에 있음을 기화로 
개인적 생각을 집어넣으려 해서는 안 된다. 법률전문가는 
우선 법적 안정성을 제공해야 한다. - P10

물론, 법적 확실성(legal certainty)내지 법적 안정성이 
궁극적 정의와 충돌할 때에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드물다. 기존의 법(현행법)이나 
과거의 선례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면 유지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적이다. 사람들은 ‘전(前)부터 그렇게 해 왔다‘는 말을 대개 납득하고 받아들이며, 기존의 규율이 유지되는 
것을 편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최선에 못 미치는 차선의 규율이라도 일관되게 적용하면, 같은 사안유형을 같게 
규율하는 일관성(내지 평등)과 예측가능성은 고도로
보장될 수 있다. 예측가능한 규율 하에서 개인의 자유는 
확보된다. - P10

법적 안정성은 법적 평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평화는 전쟁을 불사하는 의지와 
전쟁수행의 능력이 가지는 전쟁억제력에 의존한다.
법적 평화도 입법 단계에서의 세력균형과, 재판상 또는 
재판외의 권리주장 및그 가능성에 의하여 유지되고 
회복된다. 법률가는 논란을 일으킴으로써 논란의 해결에 
기여하고, 그럼으로써 법적 평화에 기여한다.  - P10

그렇지만 법적 평화가 자동적으로 도달,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쓸만한 법과 실무가 마련되었으면, 
한편으로는 기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기존의 법과 실무의 
안정적 활용에 힘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적 안목에서 
비교법적 연구를 하는 것이 좋다. 입법부도 신중해야 한다. 대증요법식으로 수시로 입법하는 것은 금물이다.  - P11

법이 항상 어김없이 관철되기는 어렵지만, 법에 의하여 
정해지는 권리의무가 중시되어야 하고, 권한과 권리의 
행사가 부적절한지를 판단할 때에도 법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다만, 법이 어디까지, 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는 각국의 정치,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법칙(法治)의 개념은 영미법과 대륙법에서 
조금 다르다. - P11

영미법에서 말하는 "법의 지배" (rule of law)는 용어상으로 완벽히 표현되지않는 역사성을 가진 개념이다.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법을 수단으로 한 지배(법에 의한 지배)" (rule 
by law)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법의 지배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영미법계의 법률가들은 "법의 지배"와 "법에의한 지배가 아주 이질적이라고 애써 
강조한다. "법에 의한 지배"와 "법의 지배"는 비슷한 것이 
아니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의 지배" 의 진정한 특징은 무엇인가? 
영미법계의 법률가들이 법의 지배를 설명할 때, 
법이 국왕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유달리 강조한다. 
이렇게 말할 때, 그들은 법이 국왕처럼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 P11

영미법에서 "법의 지배"는 "국왕의지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을 의미한다. 법은 국왕의 자의 통제한도다. 
"법의 지배"로써 국왕의 권리가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법이 국왕보다 위에선다는 데 초점이 있다. 국왕의 자의가 
있던 자리에 법이 들어선다. 그 법은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국왕에 대응되는 기능도 해야 한다. 

결국, 영미권에서 "법의 지배"는 ‘의인화된 법‘의 지배를 
뜻한다. 왕이 국토와 신민을 지배하듯이 법이 국토와 
신민을 지배한다. 국왕도 법 아래에 있다. 
- P11

이처럼 법은 사람, 통치자에 비유된다. 이런 의제적 요소는
독일의 법치국가(Rechtsstaat) 개념에는 없다. 
독일의 법치국가 원리가 순수한 헌법원칙이라면 영미의
 ‘법의 지배‘(법치)는 정치철학의 색채를 함께 가진다. - P12

법을 자애로운 지배자에 비유하는 사고방식은 이론적으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땅에 부착되어 사는 존재로 
생각하고, 땅(영토) ("this land")을 국가의 가장 본질적 
요소로 여겨 온 영국인들의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지배자이자 지배원리인 법은 인간현실을 굽어살피고 법적 안정성의 요청에 부응할 것이 기대된다. 법은 영생하는 
국왕에 비유되어 의인화된다. 그래서 과거,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법은 일관되는 것이 좋다. 민주적 입법이 기존의 
법을 개혁하는것을 인정하지만, 판례는 시간을 통하여 
일관되어야 한다. - P12

영미법계에서 ‘법률가집단의 자율이나 지배‘를 이야기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법이 왕정 하에서의 국왕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점에도 주목을 요한다.
 
영미법은 법의 형성과 운영을 전문가 집단에만 맡기지 
않는다. 오히려 보편적 전문가(generalist) 내지 비전문가
(아마추어)가 특수직 전문가(specialist)의위에 서서, 
중요한 원칙을 정하고 까다로운 사안에서 최종적 답을 
정한다. 영국법은 법조직역 내로 수용된 근대화된 
원님재판을 특수적 전문가의 재판보다 높이 산다. 
영국의 법칙에서는 이것도 가능하며, 또 여기에 묘미가 있다.

법치의 전통이 취약한 국가에서 섣불리 흉내내었다가는 
폭정으로 직결될 만한 일이지만, 영국에서는 유연한 
법발달의 실무로서 행해지며, 영국 법률가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 P12

이와 달리, 대륙법계에서는 전문가가 법의 형성과 운영에서 주도적 역할을한다. 제도적으로 법률가직역의 자율성에 
기초하여 ‘법의 자율성‘을 이야기한다.

국가도 이를 존중하여야 한다. 즉, 나랏일 즉 국사도 법에 
따라 수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때그때 법의 입법, 해석, 
적용을 담당한 사람이 전단적이거나 인간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독일어권의 법치국가(Rechtstat) 개념이다. 
여기에서는 법과 법률가집단의 전문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어 있고, 법학계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히틀러가 패권을 잡고 법치주의를 
마비시키는 과정에서 법학자들의 대대적 숙청(purge)이 
있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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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제도와 권리감각의 조화

내가 이러한 그림자를 하늘에서 불러와 보여주는 것은, 
이념적인 차원에까지 높아진 강력한 권리감각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법제도로 인해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경우, 
바로 그러한 권리감각 때문에탈선할 위험이 생긴다는 
것을 하나의 감동적인 실제 사례를 통해명백하게 밝히기 
위해서였다.  - P112

여기서 법률을 위한 투쟁은 법률에 대한 투쟁이 된다. 
자신을 지켜주어야 할 권력으로부터 버림받은 권리감각은 스스로 법률이라는 토대를 떠나서 법률을 실행해야 할 
사람의 무이해와 악의와 무력으로 인해 인정받지 못한 
것을 자력으로 확보하고자 한다. 

그때, 국민적 권리감각이 그러한 법과 권리의 상태에 대해 
행하는 고발과 함의의 담당자가 되는 것은, 특별하게 강인한 성격이나 저돌적인 성격의 사람만이 아니다. 

그러한 고발과 항의는 모든 사람에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반복되고, 그것은 그 목적으로부터, 또 국민 전체나 해당 
계층이 받아들인 실행 방식으로부터도, 국가적 제도의
민중적 대체물이자 보완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113

그러한 것으로 중세의 유혈재판과 결투권이 있었다. 
이러한것들은 당시 국가차원의 형사법원이 무력했고 
당파적이었으며, 국가권력이 약했음을 웅변한다. 
현대에는 결투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국가가 명예훼손죄에 부과한 형벌이, 사회의 일정 
계층이 갖는 민감한 명예감각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사실로 증명하는 사례다. - P113

나아가 코르시카 특유의 혈투, 북아메리카의 국민재판
소위 린치재판도 들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국가적 제도가 
국민이나그 특정 계층의 권리감각에 적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 P114

여하튼 그것은 국가에 대한 비난(국가가 그것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이나 국가가 그것을 허용한다는 
비난)을 포함하는 것이다. 

법률이 이를 금지하는 만큼 실제로 금지될 수 없는 경우,
개인에게 는 심각한 모순의 원천이 된다. 국가가 명령하는 
바에 따라피의 복수를 거부하는 코르시카인은 자신들의
동료로부터 멸시를 받고 제외된다. 반면 민중이 갖는 법과 
권리 관념의 압력에 양보해 피의 복수를 하는 사람은 이를 
처벌하는 사직당국에 체포된다. - P114

우리나라에서 보는 결투에서도 마찬가지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결투를 하는 것이 의무인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자신의 명예가 침해되고, 결투를 하는 사람은 처벌된다. 이는 당사자에게도, 재판관에게도 마찬가지로 
곤란한 상황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유사한 현상을 찾을 수 
없다. 그곳에서는 국가적 제도와 국민의 권리감각이 완전히 합치되었기 때문이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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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폰 사비니 (Carl von Savigny)를 탁월한 대표자로 
하는 역사학파는 실정의) 법은 항상 역사와 관련을 맺으며 그 시대의 사고방식이나 사회적 · 정치적인 환경 및 다른 
많은 요소들과 상호 작용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파악함으로써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 학파는 실정법의 제반 규율을 연구하고 그것을 보다 
높은 차원의 추상(Abstraktion)으로 드높이며 그로부터 
법내적인 관련에의 동찰을 얻어 내는, 말하자면 법률에 
의하여 정하여진 구획을 벗어남이 없이 실정법에 ‘정신을 
불어넣는‘ 법교의학(Rechtsdogmatik)의 기초를 쌓았다.  - P6

이 교의학은 19세기 중에 판결과 법적거래를 통한 법의 
발전을 저해하는 편협한 개념학으로 퇴화하였다. 
이것은 ‘법실증주의‘ (juristischer Positivismus) 또는
‘법률실증주의‘(Gesetzespositivismus) ㅡ
이는 법률 및 그것에 초점을 맞춘 교의학을 과대평가하고, 
다른 한편 판례, 법감정, 직관, "법률해석 이전의 가치판단에 
있어서의 명증가능성에의 추급" (에써의 표현)의 
각기 창조적인 모멘트를 과소평가하는 태도라고 이해된다―에 반대하는 여러 가지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 P6

한편 슈타들러가 반대한 바 있는 법에 대한 다른 하나의 
기본태도인 법철학상의 실증주의는 이와는 다른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실증주의적인 학문 개념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에 따르면 논리학과 수학 이외의 분야에 있어서의 
순수한 인식은, 관찰 특히 실험을 통하여 경험적으로 
증명 · ‘검증‘ㆍ ‘반증‘될 수 있는 자연과 사회생활의 
법칙성에 관하여만 가능하다. 

이러한 순수한 인식이 윤리적인 명령, ‘가치‘나 어떠한 
법이 ‘정당한 법‘ 인가를 판단할 준거에 관하여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간주관적인 인식이 불가능한 순수히 주관적인 것 또는 각자의 의견에 따르는 것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어떠한 사회계층에 널리 퍼진 의견을 경험적으로 조사하고, 통계로써 파악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그 ‘정당성‘ 또는
 ‘부당성‘에 관하여는 아무것도 발언하는 것이 없다. 
그 결과로 ‘정당함‘에 대한 물음은 윤리의 영역에서도 법의 
영역에서도 답할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학문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P7

정당화에 대한, 따라서 법의 효력주장의 근거에 대한 물음, 자연법론의 근저에 놓였던 이 물음은 폐기되고, 수천년의 
철학적 전통은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이제서야 슈타믈러가 금세기 초에 이 물음을명백하게 제기하고 이를 ‘회피할 수 
없는‘ 문제로 선언한 것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 이후로 
이 물음은 비록 소수가 이를 제기했더라도 더 이상 
묵살되지 않는다. - P8

실증주의적인 학문개념은 측정가능한 양들과 그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에 입각하여 형성되었다. 
‘정밀한‘ (exakt), 극단적인 정확성을 요구하는 인식이 
양적인 것에 대하여만 가능함은 즉각 시인할 수 있다. 

- P8

그러나 사람이 살고 있는 현실이 측정가능한 것만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사람은 많은 사물, 사건 그리고 그들의 
의사표현과 행위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은 이 의미에 관하여 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고, 
또 그 의미는 사물과 사건에 대한 태도, 그리고 이로써 
현실적인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 P8

사람들은 규범적인 것에 관한 진술을 위하여 고유한 
언어를 발전시켰다.  ‘정당화‘, ‘귀책‘, 또 ‘권리‘
(자격부여라는 의미로서의), ‘의무‘와 같은 표현은 사실
과학 술어로 번역될 수 없다. 

또한 사람들은 당위 또는 정당함에 관한 간주관적인 
대화를 위하여 일정한 입론방식을 발전시켰으며, 
당위에 관한 경험을 합리적으로 공구할 수 없다고 
인정할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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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헌법의 개념과 과제 - P6

1. 현대적 의미의 헌법의 생성

역사적으로 현대적 의미의 헌법의 탄생은 한편으로는 
헌법의 규율대상인 ‘현대적 의미의 국가의 성립‘과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지배의 정당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계몽주의적 자연법사상‘에 기인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최초의 현대적 헌법은 미국의 
연방헌법 (1787)과 프랑스의 혁명헌법(1791)이다. - P6

가. 현대적 의미의 국가의 성립

헌법의 규율대상은 정치적 지배의 조직인 국가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헌법의 규율대상인
 ‘통일적이고 일원적인 지배권력을 가진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절대국가 · 주권국가의 탄생과 함께 
비로소 법적으로 통일적이고 일원적인 규율을 요청하는 
현대적 의미의 국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절대국가에서 
헌법의 규율대상인 ‘현대적 의미의 국가‘는 존재하였으나, 
절대국가란 바로 ‘법적인 구속의 부정‘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헌법에 의한 규율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 P6

나. 미국·프랑스의 혁명과 자연법적 계약이론

헌법의 탄생에 기여한 획기적인 사건은 바로 1776년과 
1789년의 미국과 프랑스에서의 혁명이었다.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세력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자연법사상에 기초하여 점의로운 질서와 기본적 인권의 
우위를 주장하였고, 이러한 사고를 버지니아 권리장전
(1776), 미연방헌법(1787), 프랑스 인권선언 (1789) 및 
혁명헌법(1791) 등의 형태로 실정법적으로 확인하였다.

자연법사상은 국가에게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봉사하는 
존재 의미를 부여하면서 정치적 지배의 정당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고, 국가를 ‘정당성을 필요로 하는 인간 
이성의 창작물‘로 이해하였다. 

자연법적 계약이론에 의하면, 지배를 받는 자에 의하여 
정치적 지배가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이었고, 
정치적 지배의 정당성은 지배를 받는 자의 동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었다. 이로써 종교적 • 전통적으로 정당화된 군주주권주의는 합리적 이성에 기초하는 ‘민주적 자기지배의 원칙‘에 그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 - P6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규명하기 위하여, ‘자연법적 계약이론‘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가운데 지배가 없는 상태를 상징하였다. 인간이 ‘자연적 자유와 평등‘을 ‘지배의 상태‘와 교환하고자 하는 이유를 계약론자들은 자연 상태에서의 자유의 근본적인 불안전성에 있다고 보았고, 조직된 강력한 국가권력의 
설립은 평화와 안전, 자유의 보장을 위하여 합리적인 
이성에 의하여 요청되는 것이었다. 

- P6

이러한 조건 하에서 정치적 지배는 오로지 모든 사람의 
자발적인 합의(모든 사람의 모든 사람과의 국가계약)에 
의하여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모든 정치적 지배는 
지배를 받는 자의 동의에 기초해야 한다는 혁명적인 
사고를 실정법적으로확인한 것이 바로 최초의 현대적 
헌법이다. 이제 헌법은 정치적 지배를 법적으로 구속하고 
정당화하는 과제를 담당하게 되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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