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법학과 독일법학에서 인과관계를 사실적 측면과 법률적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래 인과관계의 개념은 책임 귀attribution of responsibility 과 관련된 것이고, 책임 귀속의 근거로부터 아주단절될 수는 없다. 인과관계가 규범적 분석보다는 사실상의 분석이라고 하여, 인과관계의 개념을 자연과학적 개념과 연결시켰던 초기의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법학에서 인과관계의 문제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야기했는지 여부와 전혀 다른 문제다. 철학적 또는 과학적 인과관계의 분석과는 대조적으로, 법학에 있어서 인과관계의 분석은 자연이나 세상의 작동에 대한 기본적이고 경험적인 사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학에서 인과관계론의 목적은 사회적 해악의 발생에 대해 누가 어느범위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사실상의 인과관계는 법적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풀pool을 만드는 기능을 하는것이며, 사실상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것들 중에서 법적 원인을 찾아내야하는 것이다. 영미법상 법적 인과관계와 독일의 객관적 귀속의 판단기준은 사실 모호한 측면이 있다. 사실상 인과관계와 달리 법적 인과관계의 분석에 있어서는 통일된 그리고 신뢰할 만한 결과를 도출해 낼 과학적 공식이 존재하지않기 때문이다. 행위와 결과 사이의 법적 인과관계는 발견되는 discover 것이아니라, 선택되는 select 것이다. 법적 인과관계의 문제는 현실세계에서 과학적 검토를 통하여 밝혀질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이에 대한 답은 광범위하게 공공 정책과 피고인의 책임과 관련하여 내려지는 가치판단valuejudgment 및 특정 사건에서의 직관적 정의감에 따른 판단에 의존하게 된다. 법적 인과관계나 객관적 귀속의 판단은 다양한 정책적 고려를 포함하는 신축적인 분석이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정책의 문제로서 피고인이 특정한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형법학에서 법적 판단의 기준을 엄격히 객관적 사실에 두는 경우와 적극적으로 평가적 관점을 반영하는 경우는 각각 장단점을 갖고 있다. 이 중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방법론이 더 과학적이고 법치국가적 안정성의 요정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형법학도 규범학이고, 갈수록 복잡다기해져가는 사회현상이 법해석과 판결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규범적 또는 가치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방법론도 의미를 갖는다. 대법원 판례의 경향도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판단기준을 취하는 것에서 다양한 평가적 관점을 고려하여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대응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기하려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 행위사실Tatsache에 기초하지 않은규범적인 형법 도그마틱 normative Strafrechtsdogmatik은 공허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형법이론학에서도 존재론적 해석이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 규법적 내지 평가적 관점을 고려하는 해석론으로 변화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규범적 판단으로서 법적 판단은 실증적 분석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실증적 분석과 가치관에 입각한 판단이 함께 적용되어야 한다. 법적 판단에는 객관적 사실과 규범적 요소가 모두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법학은가치관련적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며, 평가적 관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없기 때문이다. 법관도 판결을 기계처럼 찍어낼 수는 없으며, 법적 결론을도출하는 과정에 있어 항상 다양한 가치적 판단 사이에서 고뇌할 수밖에없다. 기계적 법리학mechanical jurisprudence 이 가능하다면 법적 생활에 있어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겠지만,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용의 신축성이 희생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법적 판단에 평가적 관점은필요한 것이다. 다만 다양한 정책적 요소와 가치관련적 요소를 고려할 때는 유형화와 세분화를 통하여 합당한 판단의 기준을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상황적 맥락을 고려한 가치판단을 하면서도, 법의 보편성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법적 판단에서 사실과 가치의 딜레마는 일도양단하듯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양자 사이에서 끝없는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존엄의 형량가능 여부를 둘러싼 위의 제반 논의는 일종의 법의 딜레마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는 인간존엄 법리의 구체적 타당성과 법체계내에서 그것이 수행하는 일반적 기능 사이의 딜레마이기도 하면서, 동시에현대 현정국가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의견차에 기인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존중의무와 보호의무 중 무엇이 우선하는지, 예외상태론이얼마나 인정될 수 있는지, 합헌적 국가권력작용의 범위는 어디인지, 기본권의 법률유보의 한계가 무엇인지 등의 물음은 모두 헌정국가에 대해 어떤 규범적 자기이해를 갖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 헌정국가가 그냥 국가가 아니라, 이념과 가치를 지향하는국가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귀결이기도 하다. 이렇게 근본적 문제들이 결부되어 있는 이상, 그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고자 제안된 최근의 제3의 시도들 역시 완전한 것일 수 없다. 예컨대 ‘법적 가치평가로부터 자유로운 영역‘과 같은 개념이나 법체계와 도덕체계의 원칙적 분기를 받아들이면서도 이들의 상호보충성을 활용해 보고자 하는 이론구성‘ 등이 그것이다. 이들 제안이 갖는 고도의 이론적 성격은 이들이 법철학적 논쟁과 깊숙이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잘 확인되는데, 결과적으로 딜레마를 해소한다기보다 딜레마의 위치를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곧잘 직면하고있다.
사람에 의한 통치(인치주의)가 아닌 법과 제도에 의한 통치를 내용으로 하는 법치주의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세워졌다. 특히 형사사법제도는 그 운용을 담당하는 주체에게 엄청난권력을 쥐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에 매우 취약하다. 그러므로수사구조를 재편하려는 개혁입법이 그 우아한 목적대로 국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여부를 생각함에 있어, 형사사법제도의 운용에 관여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든지, 투철한인권의식을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인간적 선량함에 근거를 두어서는 안 된다.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 경찰이든, 나아가 민주적 통제를 한다는 정치권력이든, 그들의 선량함에 제도의 성패를 맡겨서는 아니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가장 악독한 검사와 경찰이 수사를 맡더라도 인권이 침해되지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제도설계자의 이상이다. 물론 제도는 이를 실제로 운용하는 사람의 자질과 자세와 가치관에 따라 그 결과가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제도개혁이 성공할지 여부는제도의 내용에 더하여 운용주체의 성격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운용주체의 행동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혁입법의 성패를 예측하는 일은 단지 확률적으로만 말할 수 있다. 제도의 예상현실은 그 운용주체가 인간적 한계의 범위 내에서 통상적인 인간처럼 행동할 경우 예상되= 양상이 가장 높은 확률로 전개될 것이다.
한편, 정치권력은 다수의 대표로 여겨지지만, 정치권력의 의사가 언제나다수의 의사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간접민주제하에서 선거에 의한 위임은포괄적이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가지는 회사는 다수의 의사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언제나 정치권력의 의사가 다수의 의사라고 한다면 이는 ‘민주주의를 형식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가령 국민이 A에 투표하였다고하여 그의 모든 정책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고 선출 후 A의 모든 정책결정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A를 선택한 선출표나 선출 후 A에 대한 지지의사 자체가 실체와 다른 주장에 기망담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정치권력의 의사는 실제로는 다수의사를 반영하고 있지 않아, 정치권력에 의한 통제는 실질적인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정치권력에 의한 검찰통제가 실질적인 국민의시에 반하는 경우는 민주적 통제라 할주권자인 국민은 헌법을 제정하였다. 헌법은 국민의 기초의사이다. 헌법이 민주주의를 채택함으로써 다수의 지배를 구조화하였으나 그 다수의 의사는 헌법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않는 한도에서 정당성을 가진다. 헌법가치를 침해하는 다수의사는 민주적 정당성이 없다. 헌법은 민주주의와 동시에법치주의를 채택하였다. 헌법가치는 법치주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헌법가치는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지혜를 바탕으로 한 인간이성의 산물이다. 민주주의가 다수의사에 정당성의 근거를 둔다면 법치주의는 인류의 지혜에정당성의 근거를 둔다. 인류의 지혜는 시·공간적으로 확대된 국민의 의사라고 할 수 있다. 법치주의는 결국 민주주의와 만난다. 특히 법치주의가 강조되는 형사사법영역에서 정치권력의 의사는 단지정치권력의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고 헌법가치에 부합할때 비로소 정당화된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우리 헌법은 형사사법절차에서의 개인의 인권 보장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제12조 등), 형사사법제도의국민 인권 보장은 바로 국민의 절대적 의사이다. 개혁입법의 민주적 정당성은 다수의 국회의원이 찬성하여 의결하였다는형식적인 면에 있지 아니하다. 진정한 민주적 정당성은 개혁입법이 국민의 인권과 권익을 신장시키는가 하는 점에 있다.
인간은 항상 인지오류와 판단오류의 위험에 직면하여 있다. 형사사법기관을 구성하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형사사법기관은 또한 개인이나 집단적인 사익을 추구하여 의식적인 오류에 빠질 위험도 있다. 형사사법제도의 목표는 이러한 오류로부터 국민의 인권을 지켜주는 데에 있다. 오류를 수정하는 방법은 인지 판단에 대한 검증에 있다. 자기 검증도 오류의 수정에 기여하지만 제3자의 검증이 훨씬 효과가 크다. 경찰의 수사에대하여 검사가 기소단계에서 오류를 검증한다는 면에서 개혁입법의 수사·기소 분리론은 수사절차에 대한 일종의 제3자 검증제도를 설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검증방법은 실질에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국민이 수사에서 억울함을 당하는 것은 최종적인 결론에서만이 아니다. 오히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억울함을 당하는 경우가 더 많고 과정의억울함은 결론의 억울함으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 경찰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사의 방향(기소 쪽이든 불기소이든) 이나 방법에 대한 제3자 검증은전혀 없고 수사가 일단락된 뒤에 비로소 검증이 시작된다면, 효과적인 검즘의 시기를 놓치고 사건은 어느 한쪽으로 고착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 내부의 통제 시스템을 확충하여 부당함이 없도록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 사기업인 주식회사에서조차 상장법인 등 통제의 필요가큰 경우는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는 내부통제가 그만큼 효과성이작기 때문이다. 제3자 검증, 즉 당해 수사기관이 아닌 외부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의미 있는 보호책이 된다. 개혁입법은 기존에 있던 검찰의 수사지휘를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제3자 검증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수사와 기소의 형식적 분리는 형사사법의 기능에 역효과를 초래한다. 변론을 주재하고 나아가 판결까지 함으로써 재판권을 남용할 위험이 있다고 하여 사실을 심리하는 판사와 판결을 선고하는 관사를 분리하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은 본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할 두 절차를 억지로 절단한 것으로서, 사람의 효과성도, 효율성도 적법성도 모두 위협하게 된다.
개혁입법은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축소하였다. 그동안 검찰이 비판을받아온 주된 분야가 바로 직접수사이다. 이 점에서 직접수사를 제한하는 개혁입법은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수사를 완전히 금지하지않고 일부 범위에서 남겨놓았다. 이는 아마도 검찰 직접수사 권력의 진로도 고려되었을 터이지만 무엇보다 일면에서 효과적인 수사기능을 수행해온 검찰의 수사용량을 그대로 폐기함으로써 오는 국가 수사기능의 약화도 고려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직접수사가 문제되었던 것은 그 수사가 검찰이 행했다는 사실때문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통제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경찰수사는검사의 수사지휘하에 있었지만, 검사의 수사는 내부통제 외에 제3자 검증이 없었기 때문에 오류와 독단에 빠질 위험이 컸던 것이고 이 때문에 늘 직접수사가 문제되어 왔던 것이다. 개혁입법이 직접수사를 유지한 부분은 종래 직접수사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개혁입법이 직접수시를 금지한 부분은 검찰에 의한 폐해는 사라질 것이지만, 그 직접수사를 맡은 다른 수사기관이 그 폐해를 이어받을 것이다. 공수처는 외부통제 없는 수사와 기소를하므로 종래 검찰의 직접수사의 문제점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고, 경찰은 간접적이나마 검사의 통제를 받으므로 문제의 강도는 약화되지만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강조된 제도 아래에서 유사한 문제점은 그대로 존재한다. 직접수사권의 분산은 또 정치적 중립성 문제도 악화시켰다. 사실 그동안 검찰에 대한 비판은 주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직접수사에서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점에 있었다. 이제 이 부분에 대한 직접수사를 금지한다면 검찰의 중립 문제는 해소될 것이다. 그런데 개혁입법이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으로 남겨 둔 분야는 여전히 정치적 사건과 연관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인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위임함으로써 대통령이 정치적 고려에 의하여 수사범위를 정할 가능성을 열어주어, 오히려 종전보다 더욱 정치적인 영향에 취약하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절대군주 시대에 "특별사면 없는 법은 불법이다 Bocht chaeGnite ist Unreche" 라는 법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더 이상 절대군주 시대가 아닌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민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절대군주 시대의낡은 유물인 특별사면을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속적으로 남용해 왔다. 헌정질서파괴범죄자인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특별사면과 같이 대다수 국민의동의를 얻지 못한 ‘사이비 국민화합형 특별사면‘과 정략적 차원의 ‘끼워넣기형 특별사면 내지 ‘셀프형 특별사면‘이 그것이다. 특히 판결문의 씽크가바르기도 전에, 그리고 시민들의 경악과 분노가 가라앉기도 전에 단행된특별사면, 범죄의 종류나 형의 경중, 혐기 및 반성유무, 그리고 피해에 대한 배상 여부를 불문하고 국민적 공감대와는 거리가 멀게 행해진 무분별한 특별사면이 역대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행사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특별사면의 역사는 오·남용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뿌리깊은 특별사면의 오.남용의 적폐 헌정질서파괴범죄자 등에 대한 특별사면 대상자의 제한 등의 요건통제, 공정하고 투명한 사면심사위원회의 구성 등의 절차통제, 사법부의 의견 청취 등의 외부통제 및 헌법소원심제도의 이용과 같은 사후통제에 의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절대군주 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 대통령에 의한 특별사건은 사면법에서 관련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폐지되어야 하며,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특별사면 없는 법이 진정한 법이다."라고 법언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실체적 진실을 발견한다는 형사소송법의 이념은 사실을 오판하지 않는다는 이념이다. 이 이념을 구현할 목적으로 구성된 형사소송법에 의해 형사절차를 진행하면 죄지은 자를 무죄로 잘못 판단하는 무죄판과 무고한자를 유죄로 잘못 판단하는 유죄오관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윌리엄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 판사는 유죄와 무죄의 판단을 정확히 해서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 받는것보다 10명의 죄인이 도망하는 것이 더 좋다It is better that ten guilty persorySscapy than that one innocent suffer"고 말하였다. 법학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지성인들을 감동시킨 이 유명한 경우에는 무죄판과 유죄오관 중 하나는 불가피하다는 전제가 내재한다. 오판의 불가피성을 전제했을 때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 기준(법 제307조)이 합리성을 가진다. 형사재판에서사실인정을 위해 사용되는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 기준은 유죄판을범하지 않기 위한 엄격한 기준이다. 이 기준을 성실하게 일관되게 사용해서 사실인정을 하면 무고한 사람이 고통 받는 유죄오판은 최소화될 것으로기대된다.
판례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위에 있는 측에게 실질적 자기결정이 이루어있음을 증명할 책임을 지우곤 한다. 그러나 이는 문제가 될 만한, 어떻든결정주체에게 최선은 아닌 자기결정 대부분을 의심스럽게 한다. 불편하고불리한 선택을 자발적으로 심사숙고하여 하였음을 직접 증명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안에서 불가능하다. 결정체가 이제와 결정의 질을 문제 삼고 있는 상황에서 그 결정주체의 내심의 의사형성과정을 증명하여야 하기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실질적 자기결정의 증명은 결정과정에서 상대방의결정을 더 배려하는 외관을 취함으로써 행해질 수밖에 없다.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거래조건을 교섭할 수 있게 배려하고, 사직서를 내는 경우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지 심사숙고하여 편안한 분위기에서 결정하게 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 결정이 그 자체 불리하고 불편한 결정인 이상, 그리고 시간과 공간, 상황의 제약 하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인 이상, 위와 같은 절차나외관이 자기결정의 질(質)을 충분히 확보해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위와 같은 외관을 넘어 자기결정의 질을 확인할 방법도 마땅치 아니하다. 선택지는 대개의 경우 결국 위와 같은 외관이 갖추어지면 실실적자기결정이 있다고 보는 것과 위와 같은 외관만으로는 실질적 자기결정이증명되었다고 보지 않는 것 둘로 축소된다. 어느 쪽이든 현재로서는 상당한 위양성false positive 또는 위음성 false negative 을 감수하여야 한다. 그러한위험은 그로 인하여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결정주체의 상대방의 행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민주적 과정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국가와 사회의 분리는 하나의 절대적인 명제로 받아들여지며, 그들은 민주주의적 과정에 의하여 매개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적 의지형성은 절대적이지 않고, 헌법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은법치주의(기본권, 권력분립, 법률에 따른 권력행사 등)를 통하여 국가권력을 제한한다. 이것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법치주의(인권)와 민주주의(국민주권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재기술해보면 다음과 같다. 자유주의적 견해는 ‘다수의 횡포‘를 경계하면서 인권의 우선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인권은 자연상태부터 개인에게 주어져 있는 것으로서 우리의 도덕적고찰에 있어서 회피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견해는 민주주의보다는 입법자의 결정이라고 할지라도 개입할 수 없는한계를 제시하는 법치주의를 더 중요시한다.반면에 공화주의적 견해에 따르면 민주적 과정은 그러한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적 과정은 윤리적-정치적 자기이해의 형식 속에서 이루어진다. 시민들의 사이에 이루어지는 토론은 이미 주어져 있는 배후합의, 즉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배후합의에 기초한다는 사실에 의하여 올바른 결과를 제시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정치는 "자연발생적인 연대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상호의존관계에 있음을 인식하고, 또 기존의 상호인정의 관계를 자유롭고 평등한 법적 동료들의 연합체로 확대발전시키는 매체로서 이해된다.
하버마스는 자유주의적 견해와 공화주의적 견해가 가지는 장단점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면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담론적 민주주의" 를 제시한다.
내가 보기에 공화주의 모델의 장점은 그것이 의사소통적으로 단합된 시민들에 의한 사회의 자율조직이라는 급진민주주의적 의의를 고수하고 집단적 목표를 단지 대립하는 사적 이해관계들 간의 ‘거래‘deal만 축소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단점은 그것이 너무 이상주의적이며민주적 과정을 공공복지 지향적인 시민들의 덕성에 의존하는 것으로만든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정치는 윤리적 자기이해의 문제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더구나 그러한 문제들이 일차적인 문제들인 것도아니기 때문이다. 공화주의 모델의 오류는 정치적 논의를 윤리적인 것으로 협소화시킨 것에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정립된 경험과학과 법정책에서는 고정관념을 통해 사태를 이해하고 정보를 획득하며, 장래의 가능성을 전망한다. 범죄학의 ‘프로파일링‘은 고정관념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사건 현장의 여러 단서를 통해 용의자의 사회인구학적 특성을 추론하는 프로파일링 작업은 먼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인구학적 특성의 도출을 전제로 한다. 즉 통계적으로 타당한 특성 내지 속성을 도출해서 일반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반화된 사회인구학적 특성을 통해 범죄 행위자‘의 범위를 좁히는추론이 가능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행위‘의 특성을 찾아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오류가능성이 있기 마련이며, 따라서 프로파일링 작업은여전히 정립 중에 있는 수사 방법이다. 요컨대 고정관념은 실증적 근거를통해 개인이나 집단의 특성 내지 속성을 추론한다는 점에서 ‘사태‘라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지평일 뿐만 아니라 일반화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고정관념화 혹은 프로파일링이 통계적으로 지지 가능한 일반화의 산물이라면, 다시 말해 실증적 근거를 갖춘 추론의 한 형식이라면, 그에 따른분류와 일반화는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타당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여전히 일반화에는 오류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은 한계이며, 이 때 추른 형식으로서 가추abduction 가 실천성을 갖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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