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이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 분위기를 백분 활용하면서다원주의와 도덕적 허무주의 그리고 무신론과 좌파 이데올로기에적극 편승하여, 동성애가 정상으로부터 일탈이나 비행 또는 비난받을 만한 불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즉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적기호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되고 결정된 부도덕한 변태행위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다른 성적 지향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더욱이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바에는 이성애와 비교하여 차별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던 사상가로 널리 추앙받는 미셀 푸코는 그 자신이 동성애자였던 만큼, 동성애가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사회 제도와 생명 권력과 생명정치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서 동성애자가 비정상인과 같이 취급되는 것은 그들이 변태성욕자 또는 정신병자이기 때문이아니라 단지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며 출산을전제로 한 가족제도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추종한다면, 전통적 가치관이나 기본적인 윤리, 결혼과 가족제도에 관한 기존의 관념들은 뒤죽박죽이 될 것이고, 인간의 성관계는 동물과 다른 4계절 전천 후 성생활에서뿐만 아니라 동물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성적 지향성을 가진 종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
더 나아가 동성애와 포스트모더니즘이 연관된 증거로 이른바성 정치학을 들 수 있다. 이 분야의 이론가 제프리 웍스(JeffreyWeeks)는 성 정치를 성차와 성적 분화의 현재와 미래를 둘러싼 투쟁"이라고 정의한다. 이 용어는 1970년 초기페미니즘 이론가인 Kate Millett의 성정치 (Sexual Politics) 에서 유래한 것으로사회구조를 성차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도구였으나, 그 후 성 정치운동의 투쟁도구로 확산되었다. 한국에서 이 운동을 전개한 서동진은 "누가 성 정치학을 두려워하랴!"라는 글에서 ‘이성애 중심, 성인 중심, 생식 중심의 성‘을 지배적인 성의 3대 이데올로기로 규정하고, 이것을 정상적, 보편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다른 형태의 성을변태적, 퇴폐적인 것으로 단정하는 기존관념을 분쇄하는 데 성 정치학이 나서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을 사회적 억압도구를 읽는 열쇠로 본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커밍아웃은 일부 언론에 칭송을 받는 행위가 되었고,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규제하는 인권보도준칙이나 혐오표현규제법안도 우후죽순처럼 돋아나고 있다. 지금까지 정신장애인이나 지체아, 한센병 환자, 전과자, 이주민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 부류에 속한 소수자는 권력과 물질의 향유에서 뒤쳐진 그래서 사회적 보살핌과 동정이 필요한 대상이었다. 그들은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도식에서 처음부터 배제된 자들이거나 애당초 보편성의 무산 밑에 들 수 없는 부류의 사람에 불과했다. 그들은 지배집단에 의해 억압받아 왔으며 그 분위기속에서 형성된 차별과 편견의 대상으로 전락되기 일쑤였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 성적 소수자 문제는 서구에 비해 조금 복잡한 양상을 띤다. 1990년대까지 미국에서는 동성애를 처벌했지만, 한국의 법은 어느 곳에서도 동성애를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이들이 폐쇄된 곳에서 은밀히 자기들의 문화를 누리는 것에 만족해 하는 경향이 있었다. 1995년에 이르러 한국에서도 사정의 급격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제 볼셰비키 그룹에서 동성애와자본주의의 억압이란 글이 나오고, 신좌파가 한국에도 수입되면서서구처럼 동성애자 권리운동을 주장하는 그룹들이 만들어지고 거리로 뛰쳐나온 동성애자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펴면서 점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자발적 소수자들은 보편적인 윤리와 전래되어 온 문화전통이나 제도를 거부하고 아울러 집단 속의 표준화된 개인으로존재하기를 거부한다. 현존재의 삶의 방식은 자신이 선택한 실존적 결단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면서까지 동질화와 규범적 정형화를 요구하는 사회 속에 편입되기를 거부한다. 같은 맥락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거부하면서까지정상성의 일원으로 복귀하도록 강요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공동체나 집단 속의 개인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요구하는 것이 성적 소수자들의 외침이다. 내 현재적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일 뿐이며, "보편적이 되라 (Werde Allgemein!)"는 칸트의 정언명령 대신 "자기 자신이 되라 (Wercle Selbst!)"는 니체의 경구가 그들의 삶의 모토가 되어 있는 셈이다. 문제는 더불어 공유할수 있는 가치와 윤리의 지평이 이러한 그들과 공동체의 삶 사이에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느범위에까지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서구사회의 유명인 중에서 동성애자인 사람들에게 다른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요구하거나 강요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자 미국에서 2015년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이후에 연예인들 중에서 게이라고 커밍아웃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는 정작 ‘유리하니까 커밍아웃 한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다는소 문도 들린다.
커밍아웃에 의한 소수자들의 성정체성 추구는 사회적 약자에대한 보호와 다른 논리를 갖는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성정체성은 인간의 정체성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의 정체성, 즉 신과 자연과 사회와 자아와의 관계 속에서 규정될 인간존재의 독특한 의미는 한 개인의 성정체성으로써 대체하거나 환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의 성정체성은 사회의 중심축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특이성향을 운명이나 현실로받아들임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자각 위에서 자신들의 존재와 실존을 위한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편견과 차별적 시스템에대항하여 안티운동을 벌여나가는 데 필요한 자기의식화가 바로 커밍아웃인 셈이다.
주목할 대목은 동성애 단체측은 성적 지향이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고, 버틀러의 젠더 이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성은 유동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개인의 판단에 따라 선택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특정 성향으로고정되어 있다는 성적 지향론을 부정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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