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학의 최신 흐름과 중요한 논점을 잘 짚어줍니다.




































































































형법은 법익보호를 위해 일정한 행위를 형벌로써 금지하거나 요구하는 사회 통제의한 수단이다. 달리 말하면 형법은 법익보호의 이름으로 - 또는 사회의 질서유지를위해 -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이른바 ‘자유제한법이다. 형법에서 금지되거나요구되는 행위들은 모두 형법에 규정된 일정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범죄가 성립되고거기에 예정되어 있는 법효과인 형벌이 부과된다. 형법은 범죄성립요건을 범죄유형별로 그리고 개별 법죄종류별로 총칙과 각칙에 분할하여 규정하고 있다.
총직규정은 범죄 성립요건의 대강을 일반화하여 규정하고 있어 그 대강의 윤곽이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형법학은 일반적 범죄성립요건을 보충하기 위해 오래전부터형법이론학에서 정립해 왔거나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는 법원칙들을 동원하여 공백과흠결을 충전해 넣어 두었다. 이뿐만 아니라 총칙규정들은 각칙상의 개별 범죄종류를유형별로 분류할 수 있는 규정들을 두고 있다. 형법학은 이를 기초로 해당 유형에공통되는 범죄성립요건들을 합리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범죄성립요건을 도식화하였다. 다른 한편 범죄종류별로 구성요건을 규정하고 있는 각칙규정도 범죄를 기술함에있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구체적인 행위자의 행위가그러한 개념들에 포섭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각칙 구성요건의 법적 개념들을 구체화하는 정밀한 해석이 요구된다.

형법규정의 적용여부는 확인된 사실을 전제로 해서만 판단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에 적용되어야 할 형법의 규정은 개별사건에 적용될 만큼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있지 않고 일반적 추상적인 개념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을해야 하는데 이 일이 바로 형법의 해석이다. 형법해석은 형법각칙과 형법총칙의 규정들에 대해 이루어진다. 총칙규정 가운데 해석이 요구되는 중요한 규정 및 법적개념들은 특히 범죄유형별 ‘범죄구성요건‘의 요소들(고의 과실, 인과관계 결과적가중범의 예견가능성, 부진정부작위범의 작위의무, 미수범의 자의성과 위험성. 공동정범에서 기능적 행위지배와 공동가담의 의사, 간접정범의 우월적 의사, 교사범의교사 및 이중의 고의, 방조범의 방조행위 및 이중의 고의 등) 및 ‘범죄성립배제사유가운데 위법성조각사유(정당방위, 긴급피난 자구행위, 피해자의 승낙, 정당행위 등)의 요건들과 책임조각사유(책임무능력 강요된 행위, 위법성의 착오 등)의 요건들을손꼽을 만하다. 각칙규정의 경우에는 특징 범죄종류에 고유한 주체, 객체, 실행행위행위상황, 범행도구 등에 초점이 맞추어 개별 개념요소들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해석 및 그 결과에 대한 법적 지식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활용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한 사건(유서대필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유서대필사건에서는 갑이 자살을 하려는 A를 위해 유서를 대신작성해 줌으로써 A의 자살을 도와주었다는 점이 
문제되었고, 검사는 갑을 자살방조죄)로 기소하였다.

형법도그마틱적 실용지식들은 대법원의 판례에서 확인되거나 재산 또는 재생산되었다. 형법이 제정된 지 70여 년 동안 형법적용의 과정에서 대법원의 해석을 통해명제화되고 공식화되어 온 ‘법리들‘은 형법규정의 전범위에 걸쳐 집적되어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판례의 법리들은 법률가 양성 교육의 판도를 바꾸고있다. 판례공부의 비중이 점점 높아져 판례의 법리가 법률규정 자체보다 우선적으로직관적으로 활용될 정도로 법학교육 현장의 모습이 변모되었다. 법원의 판결문에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논술형 답안지에도 사실관계에 대한 법적 평가를 내림에 있어법률 대신 판례를 직접적 근거로 삼고 있음은 이미 익숙한 장면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원의 판례실증주의는 사안을 법률에 포섭함에 있어 기계론적인연역론의 방법에 따랐던 형식적 법률실증주의 만큼이나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연역추론의 방법이 법적 결정에서 타당하려면 당해 법률규정이나 법률의 법적 개념속에 구체적인 사안을 포섭할 수 있는 정보가 빠짐없이 모두 내장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현실 변화에 따라 법률규정의 개정 요구가 뒤따르듯이, 법원의 법적결정도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달라지면 법률의 법적 개념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고그에 따라 법실무의 법적 결정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물론 법실무의 법적 결정이달라지는 것은 기존 판례의 법리 자체의 변경을 동반할 경우도 있고, 관례변경 없이구체적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그 결론만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보면 특정 사실관계에 기초한 판결의 내용에 불과한 판례를 그대로 익히는 법학 공부는 경험적 사실만 축적하는 암기식 차원의 공부일 뿐, 새로운 사실관계와 접촉하면서새롭게 발견(획득)된 법에 의거하여 법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차원의 형법공부는 결코 되기 어렵다.

법실무에서 정당한 판결을 지향점으로 삼는 법발견(획득)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형법적 개념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태도들이 그러한 해석결과를 내놓기 위해서 어떤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이 선택하는해석태도의 타당성을 근거지우기 위해 다른 해석태도들과 논증에서 대결구도를 형성하거나 배척되어야 할 해석태도들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관례와 학설의 태도가 상이한 경우에는 판례가 학설과 다른 태도를 취하는 근거를 정확하게 공부하여야 하고, 판례에 대해 비판적 생각을 하는 경우에도 결론에대한 반대가 아니라 그러한 결론을 도출하게 한 근거상의 문제점을 그 판례의 태도와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는 견해의 근거와 비교하면서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위와 같은 형법공부 방법과 태도를 견지하다 보면 형법적 개념이나 법형상에 저절로 익숙해지고 그 개념내용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어지며, 새로운 사안의 도전에직면하더라도 합리적 근거에 기초한 법적 결정에 이를 수 있는 기초실력을 쌓을 수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법은 법전 속의 법률이아니라 구체적인 사례와 접촉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법적개념에 대한 해석은 그 개념 자체의 문자적 의미를 기계론적으로 밝히는 것이 아니라거기에 적용될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조응하면서 확장과 축소를 반복한다. 현실 법정에서의 법적용(판결)이 순수 학문적인 영역에서의 개념해석과 달리 논리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지만 개별사례의 구체적 타당성을 최대한 추구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것도 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당한 판결에 기여하는 유능한 법실무가로 길러지는교육과정에서도 법률 속의 개념에 적용될 구체적인 사례와 관련성 속에서 학문적으로 정립된 법학방법론에 따라 -법발견(획득)을 하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한다.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추상적인 형법규정을 적용하는 일은 외국어의 ‘번역‘과정에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피고인의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몰랐다‘라는 말에대해 형법 
제13조의 규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행위자의 그러한 진술을 ‘구성요건적 사실의 불인식‘ 혹은 ‘구성요건적 착오‘로바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거기에 따른형법적 법효과
(고의조각 범죄불성립)를 정확하게 부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자가 부도덕하다고 해서 고함을 치거나 일장 훈시를 하는 것은 검사나 판사의일이 아니다. 무엇이 사건의 진실인가를 입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그나마 밝혀진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정확한 형법개념으로 번역하기를 태만히 하면서
‘상황이 불리하게 되었으니 자백할 것은 자백하게 하고 숨길 것은 적당히 숨겨 양형에서 유리한 판단을 받아보자"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법률가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행위자의 ‘모든 말‘. 그의 행위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형법 개념 및 형법도그마틱적 개념으로 치환(번역)하는 것이 법률가의 역할 중 기본에 해당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발생하는 형사사건에 형법을 적용하는 형사실무에서 90퍼센트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형법규정에 대한 해석문제가 아니라 사실확정의 문제이다. 규범은 확정된 사실에 대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단계에서나 검찰에 의해 기소된 후 법원의 재판에서도 대부분 피의자 내지 피고인이 그 행위를 한 장본인으로서 그 범행을 한 것임을 입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문제되는 것은이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입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각 소송주체에게 허용되어 있는 사실확인 방법과 금지되어 있는 사실확인 방법들 그리고이러한 국가기관에 의해 주도된 사실규명절차에서 피의자/피고인 또는 그 변호인이행사할 수 있는 절차적 기본권이나 적법절차원칙들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법률이다.
형사재판의 여러 절차를 통해 검찰에서 기소된 사실이 사실로 확인되고 나면 그 사실에 대해 형법규정을 적용하고, 적용 상 문제되는 것이 있으면 그 규정의 해석을 통해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사실확인 절차는 생략한 채, 이미 확인된 사실을 전제로 그사실에 적용될 법률 및 그 법률의 해석내용을 공부하는 것이다. 실제로 범죄 성립여부가 쟁점이 되어 법률의 해석태도가 법정공방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전체 형사사건에서차지하는 비율은 지극히 낮다. 이 낮은 점유율을 가진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형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법원칙들을 배우며 형법적 개념들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지면 그 효과는 사람의 목이나 살갗 위에 나타난다. 따라서 난해하고 복잡한 형법개념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허점없는 근거를 통해 범죄성립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리기 위해서는 형법공부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특히 사실확정에 관한 한 엄격한 절차를 통해서 입증된 사실만이사실로 확정되는 것이므로 장차 실무에서 예단이나 속단을 자행하지 않기 위해서는공부하는 과정에서부터 과거사실에 대한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간접경험을 통해서나마 인간사나 세상사를 접해보는 기회도가져봐야 한다. 다시 말해 사실에 대한 법적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감정이입과과학적 자세를 가지고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나날이접하는 비슷한 일상적 사건에 함몰되어 그 사건이 당사자에게는 일생의 사건임을간과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적 개념에 대한 언어적지배력을 높이는 법적 감수성뿐 아니라 사회적 현실과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촉수를예민하게 가다듬어 사실 감수성도 키워야 한다.

법은 그 자체 객관적으로 주어진 고정물이 아니라 탄력적인 언어의 옷을 입고있다. 따라서 법적 결정에 있어서도 적용자(해석자)의 주관선이해)이 필연적으로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단순한 ‘법률의 말하는 입이 되는데 그치거나 사례를법적 개념의 연역추론적으로 포섭하는 ‘자동판매기‘ 같은 역할은 현대적 법률가의소임과 거리가 멀다. 법적용자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법을 발견하는 일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짐을 부정할 수 없다면 법률가가되기 위해 법학을 공부하는 자가 견지해야 할 자세는 분명해 보인다. 정의는 결국승리하는 것임을 가르쳐주는 역사공부를 통해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법의적용과 변경을 통해 사회의 진보도 가져올 수 있다는 사회과학의 실천적 의미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법적인 결정이 가치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은가치무관함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진리가 아니라 권위(힘=권력)가 법을 만든다‘는 홉스의 통찰이 근대국가를 시작케 하였지만, 이 슬로건은 현대 법치국가에서의 법적 결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바꾸어져야 한다. ‘권위(법원)가 아니라 진실 (학문)이 법을 구성한다. 법학은 규범학이지만 법학에서 추구하는 진실(진실)은 규범적인 언명이 아니라 법규범에 관한 기술적 진술을 통해 드러난다. 무엇보다 이 진술은 약속된 법학적 방법론에 따라 이루어져야 법률을 정당한 법으로 판결을 정당한 판결로 만들 수 있다. 사법권력을 가진 법관의자의적 해석에 의해 법적 결정이 좌지우지되면 법관국가의 길을 재촉할 뿐이고 법치국가로 이르는 길이 막혀버린다. 법치국가에 이르기 위해서는 학문적 방법으로 발견된
‘정당한 법"에 의거하여 법적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 법치국가의 체질을튼튼하게 하여 법적 결정에 정의와 법적 안정성 또는 평등한 법적용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요소들에 대해 면역력을 키우려면 전체를 바라보며 비판정신을 가진 법률가가길러져야 한다. 재판관이 달라지면 판결(법적 결정)도 달라질 정도로 ‘법의 잣대는허약하다. 사실이 달라지면 법의 모습도 달라지고 그 다른 법이 적용된다. 법적 개념)의 내용은 존재론적으로 선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종속성을 가지고 가변적으로 구성되는 인공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형법은 ‘범죄‘와 ‘형벌‘을 규정하고 있는 법규범의 총체이다. 바꾸어 말하면 형법은어떤 요소가 범죄의 요소이며 범죄에 대한 법효과로 어떤 형벌을 부과할 수 있는지를규정하고 있는 법규범을 말한다.
우리나라 형법전은 범죄에 대한 법효과로서 형벌만을 규정하고 있지만, 치료감호법이나 소년법 등에는 치료감호나 보호관찰과 같은 ‘보안처분‘도 규정되어 있다. 이점을 고려하면 형법을 ‘범죄와 그에 대한 법효과인 형벌과 보안처분을 규정하고 있는법규범의 총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형벌과 보안처분이라는이원주의 형사제재체계를 뛰어넘어 피해자에 대한 ‘원상회복‘ 명령과 같은 형사제재수단이 형법의 제3원으로 도입될 수 있는지가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새로운 형사제재수단까지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형사제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형법을 ‘범죄와 그에 대한 법효과로 형사제재를 규정하고 있는 법규범의 총체‘라고정의내릴 수도 있다.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기본적 범죄행위들을 일정하게 변형시켜 거기에 더 가중된형벌을 부과하거나 절차상의 특별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는 법률을 ‘특별형법‘ 또는
‘형사특별법‘이라고 부른다.
이와는 달리 행정관청이 부과하는 의무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행정의무위반적 행위들에 대해 형벌을 부과해 놓은 규정들을 ‘행정형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행정법이라는 용어 사용은 실제로 형벌부과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 행위들의 성격을 왜곡시켜 형법의 적용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행정법의 적용대상으로취급할 빌미를 주게 된다. 형벌부과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실질적으로 
범죄이고 실질적 의미의 형법영역에 들어오는 행위로써 
행정 형법 속의 행위들도 형법총칙의 규정이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범죄‘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용어들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조세형법‘, 
‘의료형법‘ 또는 ‘환경형법‘ 등과같은 용어 사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형법은 사회통제의 한 부분영역으로서 법익을 보호해야 할 것을 제1차적 과제로삼는다. ‘법익‘(Rechtsgut)이란 우리가 사회 내지 국가에서 평화로운 공존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률을 통해 보호해야 할 가치 또는 이익을 말한다.
형법의 법익보호 과제는 법익을 침해하거나 위태화시키는 일정한 행위에 대해형벌을 부과하는 방법으로 수행된다. 형법은 과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벌로 대응하는
‘억압적 법익보호과제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당해 형벌법규에 반영되어 있는 법익의 가치를 일반인에 대해 확증시킴으로써 장래의 범죄행위를 예방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예컨대 살인행위를 금지하기 위해 형벌을 부과하는 입법자의 의도는 이를 통해생명이라는 법익의 중대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생명에 대한 장래의 침해행위를 억제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형법의 과제를 ‘예방적 법익보호과제‘라고 한다.
하지만 법익을 예방적으로 보호하는 일이 지나치게 되면 형법이라는 수단의 투입범위가 과도하게 확장될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형법은 형법 이외의 다른 사회통제수단으로는 목적달성이 불가능한 경우에 최후수단(ultima ratio)으로서만 투입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형법의 법익보호과제를 ‘보충적‘ 법익보호라고 하기도 한다.

오늘날 자유주의 국가이념을 강조하는 태도에 따르면 인간행위의 내부적 태도에 대한평가는 도덕의 영역에서만 가능하고 형법적 평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오늘날 형법은 법익보호를 제1차적 과제로 삼는 기반위에서 사회윤리적 행위 가치는 부차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형법의 모습이다. 사회윤리적 행위가치의 보호를 형법의 제1차적 과제로 삼게 되면 형법이 양심의 법정을 대신하거나 형법이도덕규범으로 탈바꿈될 경향성을 피하기가 어렵기 되기 때문이다.
형법이 보호하려고 하는 법익의 침해 또는 법익의 구체적인 위대화는 범죄의 결과적 측면에서의 반가치 나타내고, 보호법익이나 
공격객체를 위태화시키는 행위 그 자체는 범죄의 ‘행위‘ 그 자체가 가지는 반가치를 보여준다. 
이에 따라 불법의 실질도를결과반가치적 요소와 행위반가치적 요소가 이원적으로 결합된 것이라고 파악하는 
태도가 지배적이고(이원적 불법론), 범죄의 본질 역시 법익침해와 의무위반이라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있다고 보게 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법익보호와 사회윤리적 행위가치의 보호라는 두 가지 형법의과제는 평가규범인 동시에 의사결정규법으로 작동하는 형법의 두 가지 성격을 규정지운다.
형법의 평가규범적 성격은 형법에 의하여 일정한 법익침해적 행위가 가치에 반하고 위법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점에 있고, 형법의 의사결정규범적 성격은 규범수범자로하여금 형법을 통해 형법이 내린 가치결단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의무를부과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형법의 자유보장과제와 법익보호과제는 서로 역설적인 
관계에 있다. 형법은 원래 ‘피해자의 이익을 일반화.추상화하여 그것을 법익으로 격상시키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유형을범죄로 만들었다. 따라서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행위자로부터 법익과 사회를 보호해야할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당연한데, 형법은 다시 자기성찰과 자기발전을 통해 국가의형벌권을 제한하기 위해 범죄자의 자유보장이라는 법치국가적 과제를 설정하게 되었기때문이다. 사실상 헌법적 원칙이나 그 원칙들이 구체화된 형사소송법의 원칙들을 보면범죄피해자를 보호하는 원칙보다는 범죄행위자의 자유보장을 위한 원칙들이 훨씬 많고더 중요한 원칙들로 취급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범죄피해자학의 연구성과 및 범죄피해자를 무시하는 형사사법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는 자각 하에형법의 무대에서 잊혀진 인물인 범죄피해자의 이익과 권리를 다시 재조명하려는 이른바
‘피해자 르네상스적 경향이 뚜렷하게 가시화되고 있다. 피해자의 이익과 관심사 및 피해자의 권리신장에 관련된 주제는 피해자학의 연구 주제이다.

죄형법정주의란 어떤 행위가 범죄로 되고 그 범죄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가 행위자의 행위 이전에 미리 성문의 법률로서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근대형법의 기본원리인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형벌 없다 (nullum crimen, nullapoena sine lege)‘는 말로 표현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는 오늘날 국가가 형벌이라는수단을 가지고 범죄에 대응함에 있어 형벌권의 남용과 과잉을 막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원칙은 가벌성 자체뿐 아니라 형벌의 종류와 정도도범죄행위 이전에 미리 성문화된 법률에 확정되어 있어야 함을 뜻하기 때문에 일반적법치국가원리와 마찬가지로 국가형벌권의 발동근거인 동시에 한계선을 그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형벌 없다‘는 슬로건은 범죄와 형벌이반드시 법률의 형식을 통해 규정되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의 문자적 의미에 불과하다. 국가가 형벌권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형법의 형식적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바, 성문법률주의. 명확성의 원칙, 유추금지원칙, 소급금지원칙이 그와 같은형식적 요건들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헌법 제12조 제1항이 "누구든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선언하고 있고형법 제1조 제1항이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한다"라고 
규정하여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확인하고 있다.

헌법은 일정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법률 이외의 명령이나 
규칙에 의해서도 범죄와형벌을 규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사회현상의 복잡다기화와 국회의 전문적 기술적 능력의
한계 및 시간적 적응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형사처벌에 
관련된 모든 법규를 예외없이 형식적 의미의 법률에 
의하여 규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아니라 
실제에 적합하지도 아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히 긴급한 필요가 있게나 미리 법률로써 자세히 정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법률의하위법규에 범죄와 형벌에 관해 규정할 것을 위임할 수 있다.

성문의 법률이 아닌 관습법에 의해 어떤 행위를 범죄로 평가하고 거기에 대해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성문법률주의라는 죄형법정주의원칙에 반한다. 따라서 관습법에 의한 형벌법규의 신설이나 형의 가중은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죄형법정주의의 이념에 비추어보면 행위자에게 유리한 관습법은 인정될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관습법 적용이 허용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관행이 계속 반복된 것이어야 하고, 그 관행에 대해 일반인이 주관적으로법적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라는 요건을 갖추어야 할뿐 아니라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전체 법질서에 반하지 않아 정당성과 합리성도 구비하여야 한다. 이러한요건을 구비하는 관습법은 형법의 규정개념을 해석함에 기준이 될의수 있다.

범죄구성요건이 명확성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형법이 
가지는 의사결정규범으로서의 성격상 누구든지 당해 
법률조항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명확성의 원칙은 범죄의 적극적 요소를 규정하고 있는 범죄구성요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소극적으로 범죄성립을 부정하는 요소를 담고 있는 위법성조각사유 및책임조각사유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이러한 규정들은 그러한 조각사유에 
해당하지 않는경우 결국 범죄성립을 인정하게 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형법은 형법각칙 규정에서 법정형을 부과하는 방법으로서 절대적으로 어떤 액수나기간을 정하지 않고 액수의 범위(상한액 하한액) 내지 기간의 범위(장기와 단기)를정하여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판사가 유죄판결을 내릴 때에는 상대적인 부정기형이아니라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법정형을 기준으로 하여 그 범위 내에서 가장 내지 감경사유를 적용한 후에 최종적으로 선고형을 내리게 된다. 따라서 법정형의 경우에는 상대적부정기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선고형‘의 경우에는 ‘절대적 정기형‘이 되어야 하는것이 원칙이다.

미수범의 경우 "제 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고 되어 있지만 형법 제25조에서 제27조에 미수의 유형에 따라 각기 그 처벌정도를 달리 규정하고 있고, 형법 제28조에는예비도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 처벌범위는 예비를 처벌하는 각칙규정에 별도로 정하고 있으므로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않는다. 그러나 (구)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5조 제4항처럼 동법 제5조 제1항의 예비·음모는 이를 처벌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고 그 힘에 관하여 따로 규정하고 있지아니한 경우에는 법정형에 절대적 부정기형을 두고 있으므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원칙에 반한다.

소년은 인격이 성숙하는과정에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의 
범죄에 상응한 형벌을 미리 결성할 수는 없고 개선·교화상황에 따라 석방시기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특별예방목적에 
부합한다. 따라서 소년법 제60조 제1항은 절대적 정기형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여 선고형의 경우에도 그 기간의 범위를 정해서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예컨대 절도죄를 범한 소년에게
징역형을 선고할 경우에는 법관은 반드시 ‘단기 2년, 장기 
3년‘ 둠과 같은 형식의 부정기힘을 선고해야 하고, 
징역 1년, 징역 3년 둠과 같은 정기형을 선고해서는 안 된다.

어떤 행위자의 행위에 적용될 법률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그 행위가 원래어떤 특정 규정에 적용될 것이 당연히 예상되는 행위와 유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유추적용을 허용하면 형벌권의 자의적 행사를 막기 어려운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생길수 있다. 더 나아가 형벌법규가 아무리 법률명확성의 원칙을 지키더라도 당해 사안에적용되지 말아야 할 형벌법규가 적용된다면 명확성의 원칙이 무의미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형법은 죄형법정주의의 한 내용으로 유추의 허용 자체를 막는것이 유추의 오용을 봉쇄하여 국가형벌권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확보할 수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행위자에게 불리한 유추는 절대적으로 불허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대법원은 행위자에게 유리한 경우에도 무조건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유추를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현저히 형평과 정의에 반하거나 심각한 불합리가 초래되는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유추금지는 원칙적으로 소송법상의 규정에 대해서는 적용이 없고, 범죄와 그 법적 효과를 규정하는 형벌법규의 모든 요소에 대하여 적용된다. 따라서 이 원칙은형법총칙의 위법성조각사유와 책임조각사유 및 각칙상의 범죄구성요건 
소추조건,인적처벌조각사유와 객관적 처벌조건,형면제사유, 
더 나아가 형벌과 보안처분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형법의 유추금지원칙은 그 형벌법규의 적용대상이 행정법규가규정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경우에 그 행정법규의 규정을 해석하는 데에도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형법규정의 해석을 물리적 해석으로만 국한시킨다면 형법을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나갈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생길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역사적 해석, 체계적 해석, 또는 목적론적 해석을 동원하면 다양한 사례들에 대해 형법 규정들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이로써 형법의 규정의 문리적 의미내용을 어느 정도 확장해석할 수 있을지에 있다. 이와 같은 차원의 확장해석을 무한히 허용하게 되면 해석의한계를 벗어나 결과적으로 유추와 구별되지 않을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산모가 주기적인 분만진통을 느낀 시점에 이른 후에 태아를 모체 안에서 질식사 시킨경우 그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그 태아를 형법 제250조의 ‘사람‘으로 보아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가 문제될 수도 있고(낙태죄의 규정과 살인죄의 규정의체계론적 해석),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이라는 법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스토커가한밤중에 반복적으로 전화를 하여 상대방을 괴롭히는 경우에도 형법 제319조 제1항의 주거침입죄의 ‘침입‘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목적론적 해석).

대법원은 형법상의 자수개념을 범행발각 전으로 해석하는 태도에대한 평가를 단순한 목적론적 축소해석‘이 아니라 유추해석이라고 평가하고 있는데(대법원의 다수의견), 이러한 태도에는 목적론적 축소해석은 허용되는 것으로 보는시각이 전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대법원의 소수의견은 자수개념을 범행발각 전으로 한정시키는 해석을 금지되는 유추해석으로 보지 않고 입법의 취지를 살리는 목적론적 축소해석이라고 보면서
이러한 목적론적 축소해석은 
그것을 통해 처벌의 범위가 확대되는 경우에도 허용되는
해석이라고 한다.

소급금지원칙이란 행위 당시 처벌법규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입법을제정하는 것은 물론(소급입법금지), 법관이 법을 적용함에 있어 법률시행 이전의행위에까지 행위자에게 불리하게 소급하여 적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원칙(소급적용금지)을 말한다. 형법 제1조 제1항은 특히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시의 법률에의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소급금지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형법의 소급 금지원칙은 국가형벌권의 발동에 대한 국민의 예측가능성과 신뢰의보호 및 법적 안정성을 보장을 그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다.

소급금지원칙은 형벌법규에 제시된 가벌성에 관한 
모든 조건에 대해 적용된다.
따라서 이 원칙은 그것이 실체법적인 범죄와 형벌에 관한 것인 한 위법성조각사유의소급적인 폐지나 제한 객관적 처벌조건이나 인적 처벌조각사유 등을 소급적으로행위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 형벌의 부수효과 기타 자격상실 또는 
자격정지,몰수 선고유예 또는 집행유예의 조건 등을 행위자에게 불리하게 소급 변경하는 것에대해서도 적용된다.
그러나 소급금지원칙은 사후입법에 의한 법률의 소급효를 금지하는 것이므로 예컨대 소년인 때에 범죄를 범한 자가 재판 중에 성인이 되면 통상의형을 과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사후입법에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부진정소급효는 인정하지만 진정소급효는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소급입법은 우선진정소급입법(새로운 입법으로 이미 종료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작동케 하는경우)과 부진정소급입법(새로운 입법으로 현재 진행중인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만 작용케 하는 경우)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부진정소급입법은 소급효를 요구하는공익상의 사유와 신뢰보호의 요청 사이의 교량과정에서 신뢰보호의 관점을 우선하여허용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허용하지만, 진정소급입법은 기존의법에 의하여 형성되어 이미 굳어진 개인의 법적 지위를 사후입법을 통하여 박탈하는것 등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진정소급입법도허용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즉 "형벌불소급의 원칙은 ‘행위의 가벌성 즉 형사소추가 언제부터 어떠한 조건하에서 가능한가의 문제에 관한 것이고 ‘얼마동안 가능한가의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법률이 형벌불소급의 원칙에언제나 위배되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소급금지원칙의 예외사유로는 "일반적으로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거나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워 보호할만한 신뢰이익이 적은 경우와 소급입법에 의한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아주 경미한경우 그리고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정당화하는 
경우 등"이다.

대법원은 보안처분에 대해 형벌의 경우와 동일한 정도로 소급금지원칙을 적용하지는 않는다. 자유박탈을 전제로 하지 않는 보호관찰의 경우에는 소금금지원칙의적용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여 왔고, 다만 자유를 박탈하는 (구) 사회보호법상의보호감호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소급 금지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해왔기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2005년 8월 이후 보호감호제도가 폐지되었기 때문에보호감호에 대한 소급금지원칙의 적용문제는 더 이상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치료감호가 소급금지원칙의 적용대상이 되는가에 관한 대법원의 판례는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장차 치료감호에 대해서 동일한 문제가 제기된다면 소급금지원칙의 적용대상이 된다는 결론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소급금지원칙의 적용 여부를 시설 내에서의자유박탈이나 사회 내에서의 자유제한이냐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대법원의 태도라면 치료감호제도 역시 과거의 보호감호제도와 마찬가지로 시설 내에서의 자유박탈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대법원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등에관한 특례법상의 사회봉사명령도 소급 금지원칙의 적용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형법 제1조 제1항과 헌법 제13조 제1항이 행위시의 법률에 의한 ‘처벌‘이라고 규정하고 있음을 근거로 소급금지원칙을 원칙적으로 ‘형벌‘ 불소급의 의미로 제한해서이해하는 것이 실무의 태도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죄형법정주의가 형사제재로서 "형벌만 존재하였을 당시에 정립된 연혁을 가지고 있고 시민의 자유영역을 국가의 부당한 강제적 개입으로부터 확보하려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의 헌법적 이념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형벌이 아니라 보안처분도 국가의 강제적 개입을 내용으로 하는 한 소급금지원칙의 적용대상에서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죄형법정주의를 천명하고 있는 우리 헌법 제12조 제1항은 "누구든지 법률과 적법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을 받지 아니한다" 라고 규정하여 형벌과 보안처분을 동열에두어 다 같이 실질적 법치국가원칙의 우산아래 넣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보면 보안처분 가운데 보호관찰도 자유박탈을 내용으로 하지 않지만 자유가 어느정도 제한되는 불이익처분이기 때문에 이는 피보호관찰자에 대한 국가공권력의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보안처분은 그것이 형벌적 성격의 보안처분이든 비행벌적 보안처분이든 그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소급금지원칙의 적용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대법원은 "형사처벌의 근거가 되는 것은 법률이지 판례가 아니고, 형법 조항에관한 판례의 변경은 그 법률조항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여 이로써그 법률조항 자체가 변경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행위 당시의 판례에 의하면처벌대상이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던 행위를 판례의 변경에 따라 확인된내용의 형법조항에 근거하여 처벌한다고 하여 그것이 헌법상 평등의 원칙과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부부간의 강간죄성립을부정하는 입장을 40여년간 유지되어 오다가 최근 부부간의 강간죄성립을 인정하는입장으로 판례 변경을 한 경우에도 그대로 인정되고 있다.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판결은 당해 사건에 대해 드러낸 법률 자신의 변화된 
모습으로서 원칙적으로 판결시점이전의 사건에 대해 
소급적으로 따라서 당해 사건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법률의 개념이 추상적이거나 일반조항과 같이 법원의 가치충전적 해석을거쳐서야 비로소 확정될 수 있는 경우에는 법원의 판결이 입법작용과 유사한 기능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는 법원의 판결을 통해 표현된 법적 견해가 사실상의구속력을 가지므로 이에 대한 시민의 신뢰보호가 필요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변경된 판결(사법)에 요구되는 신뢰보호의 수준은 ‘법률‘(입법)에 대해 요구되는 수준은 아니다. 변경된 판결이 헌법적 요청에 부합하는 신뢰보호의 수준으로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예견가능한 범위밖의 법발견‘이어야 한다. 법치국가적 요청하에서 신뢰보호는 예측가능성 내지 예견가능성을 보장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판례 변경판결에 대해 헌법상의 "소급금지원칙의 적용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같은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변경전의 판례가 지속적으로 확립된 판례이어야 한다. 종전 판례가 지속적이고 확립된 판례가 아니라면 신뢰보호의 대상조차 될 수 없으므로 얼마든지 변경가능하다. 시간의 변화에 대한 법의 대응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지속되고확립된 판례라도 변경될 수 있지만 그 변경이 충분히 근거지워져서 자의적인 변경이아니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판례변경이 자의적인 변경이라고 한다면, 이를 ‘사법적 불법‘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론적으로 이에 대한 당사자의 권리구제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비례성원칙은 국가가 공익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권력을 수단으로삼을 경우 그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제한원리를 말한다. 헌법상의 비례성원칙은 법률을 통한 기본권제한에 대한 제한원리로서 그 법률이 형벌법규인 경우에도 당연히적용된다. 이 때문에 형사입법의 영역에서는 형사법권의 과도함을 제한한다는 의미에서 과잉금지원칙이라고도 하고 일정한 행위를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를 심사하는 차원에서 적정성의 원칙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죄형법정주의가 형벌법규의 형식적 요건에 관한 헌법적 지침이고 책임원칙이 형벌법규의 실체요건에 관한 헌법적 지침인 것과는 달리, 비례성원칙은 어떤 행위가 가벌성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를 심사함에 있어 형벌법규의 실질적 
내용을 제한하는 헌법적 지침이다.

비례성원칙이 형벌법규의 정당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위상은 형사법뿐 아니라 형법적용 분야에서도 그대로 타당하다. 헌법은 제37조 제2항 후단에서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한 입법목적으로 형벌법규를 만들 경우 수법자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비례성원칙을 준수할 것을요구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형벌법규를 만들 경우 뿐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당해형벌법규를 해석 · 적용할 경우에도 당해 형벌법규를 통해 제한되는 기본권의 종류와무게를 고려하여 입법목적의 달성을 위해 필요한 한도내에서의 기본권제한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경우 그러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제310조의위법성조각사유의 요건을 넓게 해석하는 것이 비례성원칙을 고려한 형벌법규의 해석인 것이다. 이와 같이 비례성원칙은 법적용자에게도 헌법합치적 형법적용을 촉구하는기능을 한다.

헌법재판소는 형벌법규가 비례성원칙에 위배되는지를 
심사함에 있어서 수단의 적합성,
필요성, 균형성 외에 ‘목적의 정당성 여부도 판단한다. 이 경우 목적의 정당성은 형벌법규를 통해 추구하는 입법목적을 의미하고, 형벌법규의 입법목적을 법익보호와 동의어로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입법자가 어떤 입법목적을 추구할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형성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지금까지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부정된 예는드물다. 이 때문에 형사입법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할 목적으로 만드는 법률과같이 명백하게 헌법질서에 반하는 입법목적을 내세우지 않는 한 어떤 법익이라도 당해형벌법규의 보호법익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이와 같이 보호법익이 입법자의 형법구상을제한하여 형벌법규를 필터링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란 그 보호하고자 하는 바가 명백히헌법질서에 반하는 경우에 그칠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더라도 헌법국가에서 입법자의 입법형성권을 제한함으로써 형법을 제한하는 것은 입법목적 내지 형법의 법익개념이아니라 헌법의 비례성원칙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2009년 11월 헌법재판소는 혼인빙자간음죄가 "남녀 평등의 사회를 지향하고 실현해야 할 국가의 헌법적 의무(헌법 제36조제1항)에 반하는 것이자, 여성을 유아시함으로써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사실상 국가 스스로가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 등을 근거로 삼아 이례적으로 입법목적의 정당성을 부정하였다. 이 죄를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여성의 존엄과 가치"라는 헌법질서에 역행하기 때문것이다. 그이라는러나 헌법재판소는 혼인빙자간음죄의 입법목적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수단의 적합성, 필요성 (피해의 최소성), 균형성도 부정함으로써 혼인빙자간음죄가 비례성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형법의 시간적 적용범위는 원칙적으로 시행시부터 폐지시까지이다. 그런데 행위시와 재판시에 형법이 변경되어 범죄의 성부가 달라지거나 혐의 경중이 있는 경우 행위시법(구법)과 재판시법(신법) 중 어느 법을 적용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이에 관하여 형법은 제1조 제1항에서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시의 법률에의한다"고 규정하여 소급금지원칙과 행위시법주의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행위시에 그 행위를 범죄로 보아 처벌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에그러한 법률이 만들어져서 그 법률을 근거로 재판하여 처벌하면 신법재판시법)의 소급효를 인정하는 것이 되어 죄형법정주의의 소급금지원칙에 위배된다.

소급금지원칙이 언제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행위자에게 유리한 소급형법은 언제나 가능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혐의 경중에 변화가 있는 때에는 행위자에게 유리하도록경한 신법을 소급적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와 무관한 일이 된다. 이에따라 우리 형법 제1조 제2함은 "범죄 후 법률의 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거나 형이 구법보다 가벼워진 경우에는 신법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제3항은 "재판확정 후 법률의 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때에는형의 집행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재판시법주의의 표명‘이라고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재판시법보다행위시법과 재판시법의 사이의 중간시법이 더 경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이러한 경우에는 행위자에게 유리하게 하려면 중간시법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재판시법주의보다는
‘행위시법주의의 예외‘라고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법원도 ‘행위시와 재판시 사이에 수차 법령의 변경이 있는 경우에는 ..… 그 각각의 형의 경중을 비교하여그 중에 가장 경한 법규정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한다.

형법 제1조 제2항의 법률의 변경에 법률의 폐지도 
포함시키면 법률이 폐지되는모든 경우 행위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한시법‘의 추급효 인정여부를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시법이란 미리 유효기간을 정해놓은 법률을 말한다 (협의의 한시법),유효기간을 미리 정해놓은 법률의 경우 그 유효기간이 종료되면 규율 법률이없어지기 때문에 유효기간 종료에 직면하여 법률위반사건이 폭증하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시법이 폐지된 후에도 유효기간 중의 행위에 대해 한시법을 적용할필요성이 생긴다
(한시법의 추급효라고 한다).
종래 ‘한시법의 추급효‘ 문제는 한시법의 유효기간중의 위반행위에 대하여 유효기간이 지난 후에도 구법인 한시법을 적용하여 행위자를 처벌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다루어져 왔다. 문헌상으로는 한시법의 추급효 인정 여부와 관련해서 ‘추급효긍정설‘
과 ‘추급효부정설‘ 그리고 ‘동기설‘이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여 왔다.

우리 형법은 한시법의 효력에 관하여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형법의 해석론으로는 한시법의 추급효 문제는 한시법이라는 독립된 소재에 관련된문제로 다루기보다는 ‘한시법의 폐지‘가 형법 제1조제2항의 ‘법률의 변경‘에 포함되는가의 문제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것이 옳은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한시법의추급효를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제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법원은 입법자가 행한 법률변경의 동기를 물어서 행위시법의 추급효를 인정할것인가 형법 제1조 제2항의 적용을 인정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에 의하면 법률의변경이 과거의 형벌법규가 부당하다는 반성적 고리에서 이루어진 경우에는 ‘법적견해의 변경‘ 내지 ‘법률이념의 변화‘에 의해 법률이 변경된 것이기 때문에 그 과거의형벌법규에 대한 위반행위가 가벌성이 소멸되므로 처벌할 수 없고, 단순한 일시적사정의 변화나 사실관계의 변화 때문에 법률이 변경된 때에는 과거의 위반행위의 가벌성이 소멸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폐지된 법률이 한시법인가 한시법이 아닌가는 문제가 되지 않고 당해형벌법규를 폐지한 입법자의 ‘동기‘에 따라 행위시법의 추급효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백지형법이란 형벌의 전제가 되는 구성요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법률이나명령 또는 고시에 위임하여 공백을 남겨두는 형벌법규를 말한다. 예컨대 형법 제112조의 중립명령위반죄나 행정법규 가운데 대부분의 경제통계법령이 여기에 해당한다.
백지형법의 공백을 보충하는 규정을 ‘보충규범‘ 또는 ‘충전규범‘이라고 한다.
백지형법의 경우 형법 제1조 제2항의 적용범위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기본이 되는 형벌법규 그 자체는 변경이 없고 보충규범만 변경되거나 폐지되는경우에도 형법 제1조 제2항의 ‘법률의 변경‘에 해당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이고 다른하나는 보충규범을 한시법으로 보아 추급효를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다.

속지주의란 자국의 영역 내에서 행하여진 범죄에 대하여는 범인의 국적 여하를불문하고 자국의 형법을 적용하는 원칙을 말한다. 이 원칙은 주권평등의 원칙상 모든나라가 국제형법의 제1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원칙이다. 우리 형법 제2조는 "본법은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적용한다"고 규정하여 속지주의를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다. 

속인주의란 자국민의 범죄에 대하여는 범죄지 여하를 불문하고 자국형법을 적용하는 원칙을 말한다. 우리 형법 제3조는 "본법은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에게 적용한다"라고 하여 속인주의를 ‘속지주의‘를 보충하는 국제형법의 원리로 채택하고 있다. 이 규정에서 대한민국 국민인
"내국인"이 되려면 ‘범행 당시‘에 대한민국의국적을 가져야 한다. 

속인주의를 자국형법의 적용기준에 관하여 국적을 기준으로 삼는 원리라고 이해할때 속인주의를 다시 두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자국민이 범죄의 주체로서범죄행위자인 경우에 범죄지 여하를 불문하고 자국형법을 적용한다는 의미의 속인주의(적극적 속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자국민이 범죄의 객체로서 범죄피해자인경우에 범죄지 여하를 
불문하고 자국형법을 적용한다는 의미의 속인주의(소극적
속인주의)이다. 형법 제3조에서 말하는 속인주의는 적극적 속인주의를 말하는 것이지만, 소극적 속인주의는 형법 제6조의 보호주의의 내용에 해당한다.

절대적 적극적 속인주의는 1940년 나치형법이 국외에 체류하면서 나치체재에 저항하는 독일인을 빈틈없이 처벌하기 위해 도입한 입법태도였다. 절대적 적극적 속인주의는 한국형법을 ‘위성형법‘으로 
만들 우리가 있다. 왜냐하면 행위자가 대한민국 국민인한 
그가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심지어 무인도나 대기권 밖에 있더라도 위성처럼 감시하여 그가 형법의 명령과 금지에 위반한 경우에는 속인주의에 따라 형사처벌하게 되기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형법 제3조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해석론을 통해서나 쌍방가벌성의 원칙을 제3조에 
도입하는 입법론을 통해서 우리 형법 제3조가 가지고 있는국수주의적인 모습은 재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형법에서 채택하고 있는 국제형법의 원리를 적용하면 외국에서 그 국가의국제형법의 원리에 의해 처벌된 우리나라 국민에 대해서도 다시 우리나라 형법이적용되어 처벌될 수 있다. 종래 형법은 이 경우 범죄자의 이중처벌의 부담을 줄이기위해서 ‘범죄에 의하여 외국에서 혐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집행을 받은 자에 대하여는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규정을 두어 대응해왔다.
이러한 형법 제7조의 태도가 헌법 제13조 제1항 후단의 
이중처벌금지원칙에반할 소지가 있고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일사부재리원칙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견해가 없지 않았지만,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은 국내적인 구속성을 가지는 데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헌법재판소가 형의 임의적 감면만을 허용하고 있는 형법 제7조에대해 ‘정신적 자유와 더불어 헌법이념의 핵심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유로서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조건인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제한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2016.12.20.
외국에서 혐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집행받은 사람에 대해 국내에서 형을 선고할 경우그 집행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선고하는 형에 필요적으로 산입하도록 형법개정이이루어졌다. 이에 따르면 예를 들어 도쿄에서 일본인 乙을 살인한 한국인 甲이 일본에서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10년간 교도소에 복역하다가 한국으로 송환되어 한국형법의 속인주의에 의거하여 형사법정에서 10년형을 선고받을 경우, 법원은 일본
에서 집행된 10년의 형이 모두 산입하여 면제해야 한다.
그러나 형사사건으로 외국법원에 기소되었다가 무죄판결 받기까지의 미결구금된 기간은 형법 제7조의 산입대상이 되지 않는다.

형법은 속인주의에 의해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적용되고, 속지주의나 보호주의에 의해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
속인주의의 예외로서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대통령과 
국회의원 범한 일정한 범죄에 대해 형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는이견해가 있다. 그러나 헌법 제84조("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에 의하면 대통령이 내란 · 외환죄를 범한 경우에는 재직 중에도 형사소추가 가능하고, 그 밖의 다른 범죄를 범한경우에는 형법적용의 대상이 되고 수사도 가능하지만 재직 중 형사소추만 불가능하다.
헌법 제45조("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역시 국회의원의 직무상의 발언과 표결에 관한 처벌조각사유(인적 처벌조각사유)를 규정한 것이지 형법의 적용 자체가 배제된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형법이 예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아니라 원칙적으로 형법이 적용되지만 소추조건의 결여 또는 인적 처벌조각사유에의해 처벌되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외국인 가운데 외국원수 · 외교관에게는 치외법권을 인정하여 우리 형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도 우리 형법은 적용되지만
국제법상의 면책특권(privileges)에 의거하여 
형사처벌되지 않을 뿐이라고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미 SOFA(Status of Forces of Agreement)에 의해 ‘공무집행중‘에 있는 미군의 범죄에 대해서도 우리 형법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형법은 적용되지만 형사관할권만 배제될 수 
있을 뿐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위 협정은 형법의 적용범위를 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경우
형사관할권의 행사주체를 미국으로 할 것인가 대한민국으로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을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군이 공무집행 중 범죄행위를 저지른 때에도 위 협정에 의해 행사관할권을 우리나라가 행사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위 협정에 의하더라도 공무집행과관계없이 행한 범죄와 미군의 가족에 대하여는 우리나라 형법이 적용될 뿐 아니라형사관할권도 우리나라가 행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군의 군속 중 통상적으로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는 위협정)이 적용되는 군속의 개념에서 배제되므로,
그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형사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형법이 형벌을 통해 금지하고 있는 행위유형을 범죄라고 한다면, 형식적으로 범죄란 ‘법률에 형벌이라는 법효과가 부과되어 있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형법은도대체 어떤 행위에 대해 어떤 이유에서 형벌을 부과하였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미 범죄라고 평가받은 기존의 범죄행위 뿐 아니라 아직범죄라고 평가받지 않았지만 장차 범죄로 될 소지가 있는 행위가 어떤 속성을 가지고있는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범죄란 형법에서 형벌이 부과되어 있는 행위‘를 말한다는 범죄개념을 ‘형식적 의미의 범죄‘ 개념이라고 하고, ‘어떠한 행위에 대해 형벌을 부과할 것인가‘하는 물음을통해 규명하려는 범죄개념을 실질적 의미의 범죄‘ 개념이라고 한다. 형법의 적용자는형식적 의미의 범죄개념을 출발점으로 삼고, 형사입법자는 실질적 의미의 범죄개념에대해 관심을 갖는다.

형법이 보호하는 법익은 형식적 의미의 범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벌법규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형벌법규는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고.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살해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법적용자는 새로운 법익을 발굴하거나 종래의 법익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이미 입법자에 의해 보호되어 있는 법의 개념을 척도심이 형법규정 속의 개념을 해석하는 일에 주력하게 된다.
규범인 형법을 공부하는 법학도가 구제적인 사실관계가 형법규범의 각 개념요소들에 의해 포섭되는지를 확인하는 경우 형법적용자의 입장이 되어 각 개념요소들을고전적인 해석방법론 (물리적 해석, 역사적 해석, 체계적 해석, 목적론적 해석)에 따라해석할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적용될 구성요건의 보호법익을 준거로 삼아 각 개념요소들의 내용을 구체화하한다. 특별형법의 경우 보호법익은 주로 당해 법률의 입법목적조항에 들어 있다. 형법각칙 및 특별형법등에 기술된 범죄구성요건, 즉 형식적 의미의범죄에 대한 체계적인 해석론은 형법각론의 주된 과제이다.

형법각칙에는 수 백 가지의 범죄종류들이 죄명 살인죄, 절도죄, 강도죄 등)로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범죄종류들은 총칙상의 몇 가지 기준에 의해 다시 분류될수 있다. 각최상의 범죄종류들을 재분류하는 총칙상의 두 가지 중요한 기준은 ‘행위자의 내적 태도(주관적 요소와 행위가 진행되어 가는 외부적 모습 객관적 요소이다.
형법칙은 행위자의 내적 태도로서 고의 (제13조)와 과실(제14조)을 제시하고 있는데, 행위의 외부적 모습에 관해서는 작위와 부작위 제18조)로 대별하고 있다. 이와같이 고의·과실 그리고 작위 · 부작위라는 두 가지 기준의 조합에 따라 형법각각의범죄종류들은 다음과 같이 유형화되어 각각에 대해 일정한 명칭이 붙여질 수 있다.
형법총론학에서는 각최상의 구체적인 범죄종류별 죄명을 언급하는 대신에 아래의범죄유형별 명칭을 주로 사용한다.

형법각칙의 범죄종류에는 행위주체의 능동적인 행위가 범죄구성요건의 행위로되어 있는 범죄도 없고 행위자가 일정한 행위로 나아가지 않는 것을 범죄구성요건의행위로 하고 있는 범죄도 있다. "사람을 살해하는 자"
살인죄 규정은라는적극적인 살해행위가 "타인의 주거에서 퇴거요구를 받고 응하지 아니한 자 (0)리는 퇴거불응죄의 규정은 소극적인 퇴거불응이 범죄구성요건의 행위로 되어 있다.
이렇게 행위의 외부적 모습이 능동적 · 적극적인 행위로 나타나는 범죄종류들은 작위범‘이라고 하고, 행익의 외부적 모습이 소극적인 부작위로 나타나는 범죄종류들을
‘부작위범‘이라고 한다.
부작위법 가운데에는 퇴거불응죄와 같이 구성요건에 처음부터 부작위를 구성요건적 행위로 예정하고 있는 경우(진정부작위범)도 있고, 살인죄와 같이 원래 작위를구성요건적 행위로 예정해 두었으나 사망의 결과를 방지해야 할 법적 의무 있는 자가적극적인 구조행위를 불이행(부작위) 함으로써, 사망의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경우(부진정부작위범)도 있다.

범죄종류는 행위의 외적인 모습 뿐 아니라 내적인 모습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예컨대 살인죄와 같이 행위자가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 또는 결과 등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의욕까지 하고서 행위하는 경우를 예정해 둔 경우도 있고, 과실치사죄와 같이 행위자가 사망의 결과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경우에도 처벌한다는 규정도 있다. 전자의경우를 ‘고의범‘이라고 부르고 후자의 경우를 ‘과실범‘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형법에는 일정한 결과를 발생시키려고 행위했지만 예상외로 다른중요한 결과가 발생한 경우를 유형화하여 행위자에게 더 중한 형벌을 부과하고 있는범죄종류들도 있다. 예컨대 사람에게 상해를 가하려는 고의를 가지고 칼로 찔렀으나칼에 찔린 피해자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사망하고 만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와같이 고의와 과실 또는 고의와 고의)이 결합될 때 성립하는 범죄를 ‘결과적 가중범‘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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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철학 입문서


























































이 책은 칸트사상이 어떻게 싹이 트고, 어떤 배경에서 성장해나갔으며, 어떤 결실을 맺었고, 남겨 놓은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간명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누군가 최소한의 서술을 통해 칸트의 인간됨이나 그의 사상의전개 과정과 체계에 대한 일람을 필요로 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칸트철학의 주요 개념들사이의 내용상의 그리고 발생상의 유기적 관계를 쉽게 알 수 있기때문이다.
카울바흐는 무엇보다도 칸트철학의 대명사가 된 초월철학에서
‘초월적‘의 의미 맥락을 밝혀주고 있다. 칸트의 초월철학은 한낱의식의 선험성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선험적인 의식의 초월적 운동 내지 활동에 대한 서술이다. 카울바흐는 ‘초월‘을 스콜라 학파,
라이프니츠 볼프 학파, 칸트로 이어지는 맥락에서 이해함으로써
‘초월철학‘이 자칫 인식론의 한 유형으로만 읽힐 수 있는 위험을방지하는 한편, 형이상학 및 존재론의 계몽주의(휴머니즘적 적통임을 밝혀내고 있다.

칸트가 1755 년 아직 라이프니츠와 함께 공동으로 대변했던 신이성론에 의하면, 신이 자연에 투여한 보편적인 법칙들은인간의 이성에 의해서도 인식된다. 자연의 기계성을 말할 때, 칸트는 자연을 단지 외부의 한 톱니바퀴가 다른 톱니바퀴를 건드려 돌아가게 하는 시계조직 같은 것이라고 묘사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상호 간에 맞아 들어가는 힘들의 작동을 생각하고 있다. 칸트는 물체의 표면이 아니라 물체의 내부에 영향을 미치는, 예컨대 중력과 같은, "뚫고 들어가는 힘있다는 역동적 기계성 이론을 대변했다. 
열힘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이 뚫고 들어가는 힘들이란 힘에 관한 칸트의 첫 저술에서 화제였던, 철학적으로 해석된 힘의 표현이다. 이 힘은 충격을 주는 밀치거나 당기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한 물체의 표면의 끝에서 다른 물체의 표면의끝으로 전달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분들을 하나의 유일한 연속적인 물체 형태로 통합시키는 내적인 끈으로 작용한다. 이와는 달리 물체 형태의 표면에서는 다른 물체들이 그것을 뚫고 들어갈수 없는 경계임을 나타내도록 영향을 미치는 반발력이 작동한다.

세계의 전개가 궤도 진입하기 위해서는 당초에 어떤 전제들이 있어야만 할까? 이에서 칸트는 단 한 곳의 빈자리도 없이 전 공간을연속적으로 꽉 채우고 있는 세계질료를 생각한다. 이 질료는 원소적인 힘 중심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라 한다.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가 아니라 일종의 물리적 단자를 생각한다. 이 질료의 원리적 속성으로 그는 인력 [1]과 척력을 든다. 만약 질료가 "본질적인 인력을 갖추고만 있다면, 세계체계의 대체를 구축하는 데 작용했을 원인을 정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칸트는 어떻게 하나의세계가 독자적으로 형성되는가를 보이기 위해서 그가 기계론적이라고 이름 붙인 전제들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지를 생각한다.
칸트의 기계성 개념은 특수하다. 그것은 끌어당기고 밀치는 작용을하는 소위 하나의 양극적인 힘쌍이 활동하는 운동의 법칙이 적용되는 단자적인 힘 중심 유형에 그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바로이 연관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이 형이상학적 사고는 하나의 한계와마주친다. 우주적인 세계체계의 골조 구성은 이런 식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과연 사람들이, "나에게 질료를 다오. 나는 너희에게 하나의애벌레가 어떻게 산출될 수 있는지를 보이겠다."라고도 말할 수 있는지를 칸트는 묻는다. 우리는 사념적으로는 생명체의 복잡성의 주인이 될 수 없으므로, 객관의 "진짜 내적 성질은 여기서 우리에게전혀 알려져 있지 않을 터이다. 여기서 "내적 성질" 이라는 말을 통해예고되는 것이 현상들의 근거에 놓인 "본질" 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질료"가 모든 사물의 원료인 이상, 질료는 "그것이 자유롭게 내맡겨져 그에 따라서 반드시 아름다운 결합들을 만들어낼 모종의 법칙들에 묶여 있을 터이다. 질료의 자유는 이러한 완전성의 계획을이탈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의 법칙성에 있다. 절대 이성으로서의 신은 자연에게 일정한 기본구조를 부여했고, 자연은 그에 따라 자유롭게 아무런 강제 없이 스스로 발전한다. 일반 자연사의 제1부에서 칸트는 항성들 사이의 체계적 기본구조의 개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케플러의 법칙들이 알려진 이래로 우리는 현상하는 우주 자연을 이성의 가시화된 체제로 파악할 수 있다. 세계의체계적 구조에는 공간상의 중심점이 있는데, 그것을 차지하는 것이태양이다. 이 중심을 일정 수의 천체들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조화롭게 운동하면서 회전한다. 이를 통해 매우 큰 잡다함 중에서도 가시화된 통일성이 드러나는데, 이 통일성은 행성들의 회전에서 구심점이 되는 바로 그 중심점에 의해 대표된다. "우리의 세계건물에 속하는 모든 행성과 혜성은 하나의 공동의 중심체 주위를 회전함으로써 본래 하나의 체계를 구성한다. 

세계연관을 설정을 통해 실존하게 하는 그 주에는 그 자신이 반드시 실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개의 내적 가능성이 실존할 수 있기 위해서 그것은 세계연관에 포섭되어 있어야 하고, 이 세계연관은 다시금 절대적으로 실존하는 것에 의해 현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자의 존재자는 절대적으로 필연적으로 실존해야만 한다. 절대적으로 실존하는 것, 즉 신은 어떤 타자에 의해 정립되고 현존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예컨대 창조된 유한한 세계사물들에게나 해당된다. 신은 비로소 현존하게 되고 실재화되어야 할이념으로 어디엔가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칸트의 말처럼, 오히려실존이 본질에 선행하는 유일한 존재자이다. 이 존재자에서는 실존이 심지어는 동시에 본질을 이룬다. 이 실존은 절대적으로 필연적인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의 정립이 어떤 유한한 동기연관에 조건 지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의 실존에는 근원적으로 서로 다른 두 원리 즉 본질과 
실존의 통일이 현재한다.

칸트는 줄곧 자연신학적 신 증명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그는 이증명이 "매우 생동감 있고 잡아끄는 힘이 있다"고 칭찬한다. 게다가모든 사람은 우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주목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이 증명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사람들은 이러한 증명을 통해 장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지혜에 대한, 또는 기도를바칠 만한 존재자의 위력에 대한 "직관적 개념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증명은 우리로 하여금, 주관이 미시 세계나 거시 세계를 바라볼때 받는 인상인 "숭고함과 존엄함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 주관은하나의 현실에 참여하여, 형이상학적 길들만을 좇지는 않는다. 칸트는 이 자연신학적 증명을 다른 증명. 가령 존재론적 증명에 비해 장점이 있다고 칭찬한다. 자연신학적 증명은 적어도 직접적인 자연 경혐으로 채워져 있고, 최소한 공허한 형이상학적 개념들에서는 멀리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사물들을 접해보고, 성공과 착오를 겪으면서 이제야 성공에 이르고 사태에 적합한 태도를 터득한 그래서 이 사태를 올바르[연함/능숙함]"이라고 표현한다. 예컨대 많은 여행을 한 사람은 이 세게 다루는 자가 도달하는 "경험 있는 위치를 칸트는 "경험 있음[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고, 이 세계에서 올바르게 처신할 줄도안다. 그는 "경험 있음"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철학 교육에서도 중요한 것은 젊은이를 스스로 걷는 경험의 길로 이끄는 일이다. 공부하는 젊은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그들이 "경험 있음의 위치에 들어설 수 있는 충분한 역사적[자료를 바탕으로 한 지식도 없이, 일찍부터 궤변적 논리 구사를 배우는" 일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시대는 진정한 비판의 시대요. 모든 것은 비판에 부쳐져야 한다. 종교는 그 신성성에 의거해서, 법칙수립[입법]은 그 위엄을 들어 보통 비판을 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럴 때 종교와 법칙수립은 당연히 자신들에대한 혐의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꾸밈없는 존경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성은 오직 그의 자유롭고 공명한 검토를 견뎌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꾸밈없는 존경을 승인한다. 또한 칸트는 자기시대의 "성숙한 판단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바, 성숙한 판단력은자신을 그렇게 오래도록 사이비 지식에 맡겨놓지 않으며, 이성에 다음과 같은 일을 촉구한다. 즉 "이성이 하는 업무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인 자기 인식의 일에 새로이 착수하고, 하나의 법정을 설치하여, 정당한 주장을 펴는 이성은 보호하고, 반면에 근거 없는 모든월권에 대해서는 강권적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의 영구불변적인 법칙에 의거해 거절할 수 있을 것을 요구한다.

이 "비이기적이고 진실된 성정"에서,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선하다고 또는 참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타인들의 판단과 비교해보아 양자를 일치시키며, 또한 만약 그들이 우리가 접어든 길과는다른 보도를 걷는 것으로 보이면, 모든 인간의 영혼이 참된 인식의 길에 말하자면 발길을 멈추도록 하는" 숨겨진 특성이 감지된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판단을 보편적인 인간 지성에 의거하게 하는 자각이며, 생각하는 존재자 전체에게 일종의 이성 통일성을부여하는 수단이 된다. "
형이상학은 이런 이성의 통일성에 관심이 있다. 그러므로 칸트가 만약 이 시기에 형이상학적 언표들의 표준척도". 즉 실재성 기준을 얻었다면, 그는 위의 문장들의 행간에 나타나 있는 회의적인 징후들을 기꺼이 무조건적인 긍정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우리 바깥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우리 자신과 관계 맺고 서 있는 한에서만 감관을 통해 인지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 세계의 물체들이 우리와 만나지는 그런 공간의 중심점에 서 있는 것으로 경험한다. 또한 우리가 신체적으로수직으로 걸어 다니는 표면을 지평(수평)이라고 일컫는 식으로 정위한다. 우리는 우리의 정위를 목적으로 우리의 주관적인 중실점 위치를 기준으로 해서 세계공간을 여러 "구역/방위"로 분할한다. 방금 위에서 언급한 지평면은 예컨대 이 공간에서 위와 아래를경계 짓는다. 여기서 뚜렷이 알 수 있는 바는, "구역들/방위들"의 이런 차이란 우리 신체가 태생적으로 차지하는 위치와의 관계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이 구역들/방위들을 구별 짓는 제1의 근거는 주관성과 세계공간 안에서의 주관성의 정위이다. 지평면 위에두 개의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는 수직면이 서 있을 수 있고, 그리하여 인간의 신장은 이 교차선에서 생각된 것이다. 두 수직면 중 하나는 신체를 외적으로 유사한 두 쪽으로 나누는데, 이것이 오른쪽과왼쪽을 구별하는 근거가 된다. 이 수직면에 연직으로 서 있는또 하나의 수직면은 우리가 앞쪽과 뒤쪽이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게끔 해준다."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시대는 진정한 비판의 시대요, 모든 것은 비판에 부쳐져야 한다. 종교는 그 신성성에 
의거해서, 법칙수립 [입법]은 그 위엄을 들어 보통 비판을 
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럴 때 종교와 법칙수립은 당연히 
자신들에대한 혐의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꾸밈없는 존경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성은 오직, 그의 자유롭고 
공명한 검토를 
견뎌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꾸밈없는 존경을 승인한다. 

순수 이성 비판은 모든 가능한 선험적 인식의 성과 전체의 설계도를 기획한다. 그것은 선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분명하게 밝혀내고, 그렇기에 그것은 "초월철학의 시작이자 이념이다. 여기서 칸트는 전통적으로 통용되던 ‘초월철학‘이라는 용어에 새로운의미를 부여한다.
칸트 자신이 그렇게 불렀듯이 "옛사람들의 초월철학"은 신이 자연에서 현실화했던 최고 보편 개념들의 이론이었다. 그러한 보편적 원리적 개념들이란 예컨대 참임, 선함, 하나 등이었다. 그것들은 그 안에서 개별자를 하나이고, 참이고, 선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가능하게 되는 보편적인 틀로 이해되었으므로, 초월자라고 이름 붙여졌다. 그것들은 개별자를 넘어서면서도[초월하면서도 포괄하는 개념들이다. 칸트로서는 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후에는 이런 초월철학의 신이성론적 전제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 그는 이제 [개별자]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인 개념들과 원리들을 주관 안에서 찾는다. 주관은 이것들에 의거해서 객관적 학문으로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인식의 획득은 종합 판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한 개념이 그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없는 또 다른 개념과 결합되고, 그래서 하나의 새로운, 이제까지 그 개념에 속하지 않던 내용이그 개념에 덧붙여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분석 판단에서는 사고내용이 판단의 주어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논리적 지성은 여기서 한 학문의 언표들과 개념들의 구성 성립에 주목한다. 그래서 분석 판단의 원리는 모순을 내지 동일률이다. 이 원리는 종합 판단들의 영역에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모순적인 개념들은 아니지만,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볼 때 상호 간에 아무런 관계가없고, 상호 간에 아무런 연역 관계도 없는 그러한 개념들을 결합하는 일이 문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에서도 인식의 진보, 다시 말해 종합 판단의 산출이 주요 문제이므로, 전체 관심이 이런 종합 판단에 쏠린다.

지성의 작업도구는 개념과 판단이다. 직관의 영역에서처럼 지성의 영역에서도 경험적인 표상들과 감각이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한 표상들은 구별된다. 경험적인 표상들은 현상하는 사태의 실제적 현재를 전제한다. 감성도 순수하고 선험적인 직관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감성에 비해도 지성은 자발적임을 보인다. 지성의경우는 대상들에 의해 우리가 촉발되는 방식과는 상관이 없고, 이는 자유롭게 그리고 가능한 대상적인 영향들의 현재와는 독립적으로 수행한다. "감성이 없다면 우리에겐 아무런 대상도 주어지지 않을 터이고, 지성이 없다면 아무런 대상도 사고되지 않을 터이다. 내용 없는 사상들은 공허하고, 개념들 없는 직관들은 맹목적이다."
칸트는 사고의 법칙, 유형, 수행 방식들을 대상으로 삼는 하나의전통적 학문을 끌어대고 있는데,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초된 논리학이다. 그것은 선험적인 학문의 전형으로 생각되며, ‘일반논리학‘으로서 사고의 모든 특수한 내용을 사상한다. 그것은 지성 사용에 특유한 순수 형식들과 유형들만을 고찰한다.

지성은 범주들을 통해 통일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니까 범주들은주관을 사고하도록 작동시켜 자발적인 능력으로서 종합적인 절차를 이행하도록 하는 "형식들"이다. 무릇 이미 로크도, 우리가 초록이나 파랑과 같은 색깔을 감각하는 상태에서는 발생하는 것을 그대로인정하도록 강요당하지만, 지성이 감각 내용들을 결합하는 일에 나서는 경우에는 자유롭고 그리고 의사대로 일을 수행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에서 객관성의 표준척도에 대한 물음이 등장하지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대목에서 자의의 작은 문 큰 문이 모두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초월철학자에게는 더욱 심각하게 대두한다. 초월철학자는 선험적 종합들을 말하고, 지성의 순수한 선험적인 결합들이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다고 지성을 위한 주장을 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선험적 결합의 원리들, 즉 범주들이 객관적으로 실재적인, 사태적인 기본개념들임을 입증하고,
이것들의 객관적 정당성을 밝히는 일이 과제로 설정된다. 
그래서 칸트는 범주들에 대해 그 유명한 권리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범주들의 초월적 연역"에서 다룬다.

칸트가 우리 이성에게 불가결하고 불가피한 무조건적 필연성 이념을 "인간 이성에게는 진짜 심연"이라고 설명할 때 우리는 그의 입에서 거의 (현대적 의미에서의 실존철학적인 말을 듣는다. 영원에 대한 사상조차도 바로 이 무조건적 필연성이라는 이념처럼 우리마음에 "현기증 나는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 이념의 대상이 맡은 과제는 모든 존재자의 존립을 감지하고, 모든 존재자에게 지주("밑받침")를 제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가능한것 가운데서도 최고의 것이라고 표상하는 존재자도 이를테면 자기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영원에서부터 영원까지 있으며, 나의 밖에는순전히 나의 의지에 의한 어떤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이 나는 것을 막을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것을 견뎌낼 수도 없다. 여기서 모든 것은 우리 아래로 가라앉는다. 최대 완전성도 최소 완전성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밑받침 없이 한낱 사변 이성 앞에서 흔들리지만, 사변 이성은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최대 완전성도 최소 완전성도 최소한의 장에도 없이 소멸되도록 내버려둔다. 

순수 이성의 건축술이란 세계의 기술을 뜻한다. 여기서는 유기체의 유형이 표준척도가 된다. 형식상으로 보아 철학 또한 세계적 성격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그 언표 하나하나는 전체와의관계에서 의미를 얻고 그 위치가 정당성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입장에서 보면 철학은 실제로는 아직까지 등장한 바 없는 가능한 하나의 학문의 순전한 이념이다. 칸트의 견해는 이러한원형의 이제까지 실제로 이루어진 모상들을 인간에게 가능한 방식으로 그 원형에 가장 근접한 어떤 것으로써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사람들은 철학을 배울 수 없다.
도대체 어디에 철학이 있는가. 누가 철학을 소유하고 있는가. 무엇에서 철학이 인식될 수 있는가?" 사람들은 단지 철학함을 배울수 있을 뿐, 철학을 배울 수는 없다고 하는 자주 인용되는 칸트의 말은 철학적 체계성의 이상적 원형의 대표할 만한 모상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철학의 잠정적인 역사적 상태와 관련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눈앞에 주어진 어떤 한 철학 체계를 배운다고 나설 수는 없는것이다. 각자는 자신 안에 있는 철학적 이성을 가동시키고, 자기의
"생산적 능력"을 발동시켜, 이상을 최대로 본뜰 수 있는 길로 매진해야 한다. 철학의 이 국면에서 철학의 학교개념이 결정적 역할을 하거니와, 이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이 [지식]의 체계적 통일, 그러니까 인식의 논리적 완전성 이상의 어떤 것을 목적으로 갖지 않는 단지 학문으로 추구되는"인식의 체계이다.

"훗날의 숙성된 윤리학의 정언명령"에서도 "보편적인 자연성이라는 개념은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여기서 자연본성이라는 말이이미 만났던 자연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성찰들과의 연관 속에서파악되어야 함에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 인간 주체주관의 "자연본성"의 도덕적 역할을 포착하는 데 있어서는 칸트 초기의 신 · 인간 · 세계 사이의 상호 관계에 대한 성찰들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칸트는 예컨대 유일 가능한 신의 현존 증명근거」에서 철학적 이성이 필연적 존재자 (ens necessarium)" 개념을 세계 내의 우연적인 것들에 기초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신은 전제자나전횡의 신으로서가 아니라, 자연 안에 있는 필연적 존재자들의 주[1]로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신에 의해 "보편적 법칙들‘에 따라서 그 기본틀이 갖춰졌으며, 이 보편적 법칙들이 자연에게 일정한 독립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 자연 독립성의 본질이법칙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대상들과 사건들은 자의적으로그리고 단지 개별적인 사례에서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신의 질서를충족시킨다. 칸트의 초기 실천 철학에도 인간의 자연본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면, 그때 이 말은 신에 의해 인간에게 부여된 내적 도덕법칙에 대한 지시를 함축하고 있다. 이 법칙은 원리적 기본체제의 표현으로서, 이 체제에 기초해서 인간의 자연본성은 자유 중에서 도덕적 선량의 규칙들에 따라서 바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실천이성에 의해 수립된 법칙은 모든 법칙적인 것들 일반의 "범행"을 보여준다. 즉 그것은 어떤 예외도 인정하지 않고, 이성적 주체주관들이 어떤 특권을 갖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자연법칙 앞에서뿐만 아니라 윤리법칙 앞에서도 모든 이성적 주체들은 동등하다.
그래서 이 법칙은 개개 주체의 인격 안에 있는 "인간성"을 대변한다.
이 법칙은 개인이 자기의 개인적 구역의 사적인 것들로 들어가, 공적이고 만인에게 타당한 표준척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를배제한다. 이 법칙에는 직접적 객관성이라는 특성이 있다. 즉 이 법칙이 객관성을 갖는 것은 감각적으로 주어지는 내용이 그것을 "매개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이로써 이론 철학의 상황과는 다른 출발점이 주어진다. 즉 실천적 인식과 사고를 위한 바탕이 감성적 직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성 자신에 의해서 마련되는 것이다.

칸트가 보기에, 무엇이 의무인지는 모든 사람의 윤리적 의식에 언제나 생생하게 인지되어 있다. 그에 반해 우리의 이익과 우리의 필요욕구를 가장 잘 충족시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은 포괄적인 세계경험과 세상사에 대한 지혜의 문제로서, 이에는 명민한 지성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도덕 인식은 세계경험이나 인간의 자연본성에 대한 경험적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모든 경험인식은 단지 조건적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오른손과 왼손의 차이가 우리 모두에게 분명하듯이 건전한 윤리 의식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선험적으로 선과 악을구별할 줄 안다.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칙에따라서만 행위하라."

"마치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에 의해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질, 양, 관계, 양태범주를 실마리로 해서 전개되는 
"미의 분석학에서는 "미[아름다운 것]"에 대한
네 가지 "설명들"이 제시된다.
질의 징표에서 고찰하면, "대상 또는 표상 방식을 일체의 관심 없이흡족이나 부적의]함에 의해 판정하는 능력으로서의 취미를표준척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한 흡족의 대상을 아름답다[미적이다]고 일컫는다. 흡족의 무관심성으로 인해 취미판단은 "쾌적한" 것을 대상으로 갖는 판단이나 도덕적으로 선한 것에 대한 판단과 구별된다. 쾌적한 것은 "즐거움쾌락]"을 주는 것이고, 아름다운 것은 순전히 "적의한 것이며, 선한 것은 "존중" 내지는 시인되는것이다. 취미의 흡족은 아무런 이해관심이 없는 것으로서 그야말로
"자유로운" 흡족이다. 이 흡족에서 표준척도적인 것은 쾌적한 것의경우에서처럼 경향성이나, 도덕의 경우에처럼 존경이 아니라, 오직
"호의이다. 이런 이해에서 자유는 무관심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며,
모든 관심은 필요욕구를 전제하거나 산출하는 한에서, "찬동의 규정근거"로서 대상에 관한 판단을 더 이상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는다.
취미판단을 양의 면에서 고찰하면, 
미의 두 번째 정의가 나온다
"개념 없이 보편적으로 적의한 것은 아름답다."
대상들의 미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들이 있다.

칸트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을 구별하며, 숭고한 것을 다시 수것에서는 성(性), 완결성, 균비성(性) 등이 척도 역할을학적으로-숭고한 것과 역학적으로-숭고한 것으로 나눈다. 미적인하지만, 숭고한 것은 일체의 척도를 뛰어넘는다. 수학적 의미에서숭고한 것이란, 예컨대 그것과 비교하면 다른 모든 것이 작은 그런것, 그리고 "그것을 단지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관의 모든자(척도를 뛰어넘는 마음의 능력을 증명하는 그런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무한자"가 역할을 하게 된다. 미적인 것의 판정에서는 상상력이 "지성"과 관계를 맺는다면, 숭고한 것의 영역에서는 이성이 그의 이념들과 함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바, 이념들에서는 무조건성과 무한성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맞추어 역학적으로-숭고한 것도 모든 통상적인 유한한 척도를 넘어간다. 그런 것을우리는 예컨대 막강한 자연의 위력들의 형식에서 마주친다. 숭고한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익숙해진 척도를 뛰어넘는 (가령 별들이총총한 하늘과 같은) 자연의 크기를 
이념들의 현시로 생각하게끔 한다.

자연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형식들을 만난다. 다시 말해 자연은1 특수한 법칙들 안에서" 우리의 판단력에 파악 가능한 것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자연은 주관적으로 합목적적인 것으로 보여서, 그것의 "아름다운" 형상들에서 그것이 "마치 우리의 인식능력들을 위해마련된 것처럼" 그런 성질을 가진 것인 양하다. 합목적적인 전체로서 하나의 아름다운 자연형태는 자연의 특수한 현상들이 총합되어있는 하나의 완결된 체계를 연출한다.
그러나 반성적 판단력은 자연에서 객관적 합목적성이라는 사념도생각할 수 있다. 목적이란 그것을 지향해서 정리되어 있는 잡다한수단들의 통일 원리이다. 거기에 하나의 밀집한, 우연의 틈새를 메우는 통일성이 성립하는데, 그것은 지성이 기계적인 자연에서 만들어내는 법칙적인 결합이다. 그래서 목적과 체계는 서로 짝을 이루어하나의 전체를 만든다. 반성적 판단력은 자연이 "마치 기술적으로아주 잘 질서 지어진 것으로 판정하면서, 자연을 체계적으로 구조지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합목적성의 이념은 단지 판단력을위한 규칙으로서만 타당할 수 있는 것으로, 이성은 이에 따라 그 자신의 통일성 관리의 징표에서 "마치 자연이 완벽한 체계적 통일체인 것처럼" 그렇게 자연을 판정하는 것이다. 생산작업이 산출자와생산물이 하나의 단일한 전체를 이루는 통일 운동인 한에서, 체계성은 오직 생산이라는 이념의 징표에서만 전개될 수 있다.

들이 효력을 갖는 평화상태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한 것이다. 공화적 현정체제는 국가법들이 개개인의 자유에 합당하게끔 되는 유일한 체제이다. 
그래서 "영원한 평화를 위한 제1 확정 조항"은 각 국가에서 시민적 [헌정체제는 공화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국가와 다른 국가 사이의 관계와 관련해서 영원한 평화를 위한 제2의 확정 조항은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제[연방주의]에 기초해 있어야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계시민법"과 관련해서 제3의 확정 조항은, 세계시민법이 보편적인 "우호"의 조건에 국한되어야 함을 다시 말해 "지구 표면의 공동 점유"
의 권리에 기초해서 모든 사람에게 타국의 영토를 방문하여 머물고,
"교제를 청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이 확정 조항들에 앞서 영원한 평화를 위한 "예비조항들"이 제시되어 있다. 1. 장래의 전쟁 소재를 의도적으로 위장해서 함유하고 있는 어떠한 조약도 평화조약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2. 어떠한 독립국가도 어떤 다른 국가에 의해 상속, 교환, 매매 또는 증여를 통해취득될 수 있어서는 안 된다. 3. 상비군은 점차 완전히 폐지되어야한다. 4. 군비를 목적으로 하는 어떠한 국가부채도 져서는 안 된다.
5.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헌정체제와 통치정부에 폭력으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6. 전쟁 중에 있는 나라들은 장래의- 평화를 위한 전제인 상호 신뢰를 잃지 않도록 행위해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인간과 세계에 관해서 단지
"개념을 놓지 않고, 능숙한 이성"의 의미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자 한다면, 노련함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 실용적 이성은 인생을 성찰적으로 판정하고 자신이 성공적임을보여주기 위해서 이러한 노련함에 관심을 갖는다.
비록 인간이 지상 피조물의 일부를 이룰 뿐이라 하더라도, 만약사람들이 인간을 "종적 성질상으로 이성을 갖춘 지상 존재자"로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세계 지식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다.
인간이 자연본성상 무엇을 하는지를 인식하는 자연학적 인간인식과는 반대로 실용적 인간 지식의 관심사는 인간 자신이 "자유롭게 행위하는 존재자로서 스스로 무엇을 하고, 또는 할 수 있으며 해야만하는지"이다. 이러한 인간학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인간의 자연본성에 대한 지식을 통해,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고려해야만 하고, 또인간 관계들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할 때에 계산에 넣어야 할 긍정적인 가능성들과 동시에 장애들을 인식할 위치에 서도록 하고자 한다. 

은 그러한 행위에 의해 정초될 수 없는 것이다.
근원적 취득 개념의 실재성 또한 입증(연역)된다.
즉 그 실재성은물건들의 사용을 법적으로 배분하고, 비록 그 대상... 이 감관객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그것들의 예지적 점유를 정초하는 보편적으로 결합하며 합일된 의지에 대한 사상에서 생긴다. "소유"란 "실체적으로 누군가의 자기 것"인 외적 대상이라고 이해할 수있는 것이므로,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단지 물체적 물건이지 인격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인격은 자기 목적인인간성을 표상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한낱 다른 목적들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물권"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대인권"에 관한 절에서는, 자유법칙에 따라 나에게 특정한 급부를 이행하는 타인의 "의사"를 대상으로 갖는 점유에 관해 논하고 있다. 여기서 표준척도가 되는 것은 "계약" 인데, 계약이란 "그것에 의해 일반적으로 어떤 자의 자기 것이 타자에게 넘어가는, 두 인격의 합일된 의사"의 행위라고 
규정된다. 계약에 의해 취득되는 "외적"인 것은 물건이 아니라, 타인이 우리에게 선험적으로 공통적인 실천 의지를 관철함에있어서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나에 대해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의무지운 타인의 행동이다.

법칙수립의 권력은 모든 "국가시민의 합치되고 합일된 의지에 의거한다. 국가시민들의 본질속성"은 법률적 자유, 시민적 평등, 그리고 시민적 독립성이다.
시민권에는 다음의 기본명제들이 타당하다. 

1. 국가들이란, 그 상호 간의 외적 관계를 살펴보자면, 
본래 무법적인 상태에 있다. 
2. 이 313상태는 원리적으로 전쟁의 상태이다. 
3. 지속적인 평화 달성을 위해서는 근원적인 사회계약
 이념에 따른 국제연맹이 필수적이다. 
4. 이결합은 시시로 갱신되어야 한다. 국제법의 최종 목표는 영원한 평화이며, 그것은 결국은 순전히 규제적 이념으로 간주할 수밖에는 없지만, 그것에로의 계속적인 접근은 가능하다. 이에 기여할 정치적 원칙들은 실현 가능하다."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몇몇 국가의연합은 "상설제국회의 [常設諸國會議]"라고 부를 수 있다.

자연이 인간을 제한된 토지 위에, 즉 둥근 지구의 표면에 세워놓은 사실을 숙고해본다면, 세계시민법 사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인간적신체적 주체의 물리적 실존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할당된 토지에대한 근원적 권리가 있다.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는 자연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동물적 자연본성을 자기보존하는 데에 있다. 도덕적 존재자로서 보자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는 거짓말, 다라움, 거짓 겸양과같은 부덕들의 배제이다. 인간은 자기의 행위에 관한 법정 또한 열어야 하는 자기 자신의 실천이성의 법칙수립에 의무 지어져 있다.
즉 "양심은 "인간 안의 내부 법정"에 대한 경험 현장이다.
양심에서는 내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나 자신과 나누는 지속적인내적 대화 운동이 나타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의무들의 첫째계명", "너 자신을 알라(탐구하라, 천착하라)."
이다. 과연 "너 자신의 심정이 선한지 악한지. 너의 행위들의 원천이 순정한지 불순한지, 너의 심정을 꿰뚫어보도록 하라"는 것이다. 

인간의 객관적 목적과 관련한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들로는, 예컨대 자기의 정신력, 영혼력, 체력의 개발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의무들을 세세히 규정할 수는 없다. 즉 그래서 이런 것들은 불완전한 의무라고 일컬어진다.
타인에 대한 의무에 관해 말하자면, 여기서는 사랑의 의무와 존경의 의무의 구별이 기준이 된다. 사랑은 "감정", 다시 말해 타자에 대한 미감적 흡족으로 이해되지 않고, 타인의 완전성에 대한 쾌감으로이해된다. 사랑은 "친절"을 결과로 갖는 호의의 준칙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사랑의 의무로는 자선, 감사, 동정의 의무가 있다. 다른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덕의무에는 거만, 비방, 우롱의 패악이 맞서있다. 사랑과 존경의 내밀한 합일[하나됨]이 우애를 위한 토대이다.
신의와 사물들에 대한 합치하는 파악이 친구들로 하여금 확장된 삶의 자유를 향유하기 위하여, 서로 교제를 트고 고독의 감옥을 탈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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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헤겔 논리학을 분석하다.


























헤겔의 위대한 적대자 쇠렌 키르케고어는 만약 헤겔이 자신의 논리학을 쓰고 그것을사유 실험이라고 불렀더라면 아마도 그는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사상가일 것이라고말한다. 헤겔의 학설에 전반적으로 대립된 철학 체계를 옹호하는 막스 분트는 헤겔을
"가장 위대한 정신사적 사상가"라고 부른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헤겔에 대해 "모든시대의 가장 박식한 두뇌"라고 말한다. 레닌은 헤겔의 논리학‘에 대해 "헤겔은 논리적형식들과 법칙들이 빈껍데기가 아니라 객관적 세계의 반영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증명했다. 아니 증명했다기보다는 천재적으로 헤아려 알아냈다"고 말한다.
그런데 헤겔의 논리의 학이 실제로는 거의 상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고 이 저작이좀 더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점은 우선 헤겔의논리의 학이 고도의 추상성에서 ‘순수한 본질성들‘을 다루고, 일반적으로 독일 철학의가장 난해한 저작이거나 그런 저작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하지만 헤겔 논리의 학은 이 책에서 해명하듯이, 파악하기가 극단적으로 어렵지않다. 특히 우리가 몇몇 구절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이, 만약 헤겔이 더 오래 살았더라면그 역시 아마도 그리 했을 것이듯이, 우리가 바로 잡아야만 하는 불완전한 마무리에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이해하기가 더 쉬워진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헤겔의 논리의 학』은 
그 자체로서 인정되거나 부인될 수 있는 존재 개념들의 입장 
초월적 전개이자 서술이다.19마지막으로 헤겔의 논리의 학이 세계 내지 자연과 일치하지 않는다는이유로 그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하고 그 연구를 포기할 것도 아니다.
필자는 세계가 헤겔 『논리의 학』의 존재 개념들 하에서 
무리 없이 파악될수 있으며, 따라서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헤겔의 존재 개념들을 사용하여 우리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까닭에 논리의 학』연구를 위한 충분한 동기가 존재한다는 점을 제시한 바 있다.

헤겔 철학을 분류하기 위해 우리는 사유와 존재가 지니는 관계의 발전으로부터 생겨나는 철학의 단계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철학은 존재와 관계하는 사유다. 과학이 지성 Verstand 사유로써 존재와관계하는 데 반해, 철학은 이성Versunfl 사유를 가지고서 존재와 관계한다.
과학적으로 사유하는 주관에 대해서는 사유의 대상들이 외적인 반면,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주관에 대해 사유의 대상들은 내적이다.
우리는 철학의 두 가지 커다란 단계를 구별할 수 있다. 더 오래된 혹은하위의 철학은 감성적 이성의 철학이다. 근대의 혹은 좀 더 고차적인종류의 철학은 정신적 이성의 철학이다.
a. 감성적 이성의 철학에 있어 사유의 대상들은 철학하는 주관에게내적인 낯선 대상들이다. 이 철학이 사유하는 필연성들은 존재자의 감성적으로 사유된 본질의 표상 필연성들이다.

초월론적 관념론은 비판 철학에 의해 여전히 남겨진 사물 
자체라는 환영,
곧 이렇듯 모든 내용으로부터 단절된 추상적인 그림자의 
허무함을 인식하는 가운데 그것을 철저히 분쇄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녔다. 그 다음으로 헤겔은 논리학이 그에 따라 
고찰되고 장래에도 "영원히...
그 위에 세워져야 할 유일하게 참다운 순수 학문 내지 객관적 사유의입장을 제시한다. 
"절대지는 의식의 모든 방식들의 진리다. 왜냐하면...
오직 절대지 속에서만 대상과 바로 이 대상 자신에 대한 확신의 분리가완전히 해소되어 진리는 이 확신에,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 확신은 진리에동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수 학문은 의식의 대립으로부터의 해방을 전제한다. 순수 학문은 사상이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사태 자체자신인 한에서 사상을, 또는 사태 자체 자신이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순수사상인 한에서 사태 자체 자신을 포함한다. 학문으로서의 진리는 순수한자기 전개하는 자기의식이며 자신Selest의 형태를 지니는데, 다시 말하면자체적으로도 대자적으로도 존재하는 것이 알려진 개념이지만, 그러나 개념그 자체가 자체적으로도 대자적으로도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객관적 사유야말로 순수 학문의 내용이다. 따라서 순수 학문은결코 형식적이지 않으며, 현실적이고도 참된 인식이기 위한 질료를 결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내용은 유일하게 절대적으로 참된 것이며,
또는 우리가 여전히 질료라는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참다운 질료인데-그러나 이 질료는 형식이 그에 대해 외면적인 것인 그런 것이 아닌바,
왜냐하면 이 질료는 오히려 순수 사상이며, 그리하여 절대적 형식 자신이기때문이다. 따라서 논리학은 순수 이성의 체계로서, 순수 사상의 나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헤겔의 논리의 학은 또한 존재적 범주들과 논리학에 대한 그것들의 관계와 관련해서도 분류될 수 있다.
헤겔 이전에는 존재적 범주들에 관한 학설과 형식 논리학에 관한 학설들이 따로 존재한다. 헤겔은 논리의 학』에서 양자를 총괄한다(그렇긴 하지만이 논리학은 그 자신이 존재자의 순수한 개념들의 체계에 관한 학설로서의객관적 논리학과 개념에 관한 학설[개념론]로서의 ‘주관적 논리학‘으로나누어진다. 존재적 범주들에 관한 이전 학설들의 소재와 이전의 형식논리학의 소재는 이제 그것이 이성의 철학의 논리학인 최초의 사변적논리학으로 됨으로써, 헤겔의 논리의 학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형태화되었다.
존재적 범주들이 철학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존재 개념들이고, 철학의두 번째 단계에서는 한갓 사유 규정들일 뿐이었다면, 이제 철학의 세 번째단계에서 그것들은 존재와 사유의 규정들이다. 철학의 첫번째 단계에서는(칸트가 말하듯이) "그저 우연할 뿐인 일정한 수의 범주들이 존재했다면,
철학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지성의 근본 법칙들에 따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부류들로 구분하는 일정한 수의 범주들" (칸트)이 존재하며, 철학의 세 번째단계에서는 "존재자의 순수한 개념들의 체계‘(헤겔)가 존재한다.

헤겔의 「논리의 학』은 또한 이념들에 관한 철학적 직관들의 역사적연관에서도 파악, 분류될 수 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세계를 형성하는 데미우르고스 앞에 존재하고 데미우르고스가 그것들에 따라야만 하는 까닭에 세계의 근저에 놓여 있는 이념들이존재한다.
플로티노스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는 신 자신의 사상들로서 세계에 선행하고 그것의 근저에 놓여 있는 이념들이 존재한다.
필론과 둔스 스코투스에게 있어서는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의해 산출된이념들이 존재한다.
헤겔에게 있어서는 신 자신이 이념이며, 그 이념은 헤겔에 의해 논리의학에서 서술된다.

헤겔 논리학의 일반적 개념

논리학 일반
"따라서 논리학은 순수 이성의 체계로서,
순수 사상의 나라로서파악되어야 한다."
Log. I 31/4.45/5.44.

첫 번째 논리학
"이 나라는 어떤 껍데기도 없이자체적으로도 대자적으로도 존재하는 진리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이 내용이자연과 유한한 정신의 창조에 앞서그의 영원한 본질 속에 존재하는신의 서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Log. I 31/4.46/5.44.

두 번째 논리학:
"정신의 학문에서 개념은자기 자신에 의해 자기의 해방을 완성하며,
자기를 개념 파악하는순수한 개념으로서의 논리적 학문에서자기 자신의 최고의 개념을 발견한다."
Log. II 506/5.353/6.573.

헤겔의 논리의 학』은 개념der Begift, 즉 하나의 개념을 다룬다. 헤겔의논리학‘이 무엇이고 무엇을 서술하고자 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헤겔이 개념이라는 것에서 무엇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있다. 
세계 이전의 존재와 세계의 존재는 헤겔에 의해 
생성의 삼단계 진행,
곧 논리적인 것 - 자연 -정신으로 간주되는데 그것은 곧 개념의 삼단계진행이다.
개념은 참다운 존재다. 순수 사유의 학문인 논리학에서 존재는 순수 개념으로서 그리고 순수 개념은 참다운 존재로서 알려진다. 다른 한편 헤겔의 논리의 학은 이념die Ide에 관한 학설이다. 헤겔은논리학이 자체적이고도 대자적인 이념의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제 이념이 무엇이고 ‘개념‘과 ‘이념은 서로 어떤 관계를맺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이념은 실재적 개념, 즉 개념과 실재성의통일이다.(그러므로 존재를 개념으로서 고찰할 때 우리는 그리함으로써 그것에서 논리적인 것을 파악한다.
‘개념‘은 한갓 순수한 사상이 아니라, 그것이 실재적이고 따라서 ‘이념인한에서 범형 Vorbilaner이자 내적 형성자inmener Bildper 다. 

헤겔은 순수 학문의 사유 자신의 논리학의 사유를 다음과 같이특징짓고 있다.
논리학이라는 "죽은 해골이 정신을 통해 내실과 내용을 지니고서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논리학의 방법이 오로지 그것만이 논리학으로 하여금순수 학문일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만 한다. 철학적 학문의이러한 참다운 방법은 그 학문 내용의 내적인 자기 운동의 형식에 관한 의식이다. "나는 정신현상학에서 이 방법에 관한 하나의 예를 좀 더 구체적인대상에서, 즉 의식에서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는 의식의 형태들 각각이저마다 실현되는 가운데 동시에 자기를 스스로 해소하여 그 자신의 부정을자기의 결과로 지니며, 그리하여 더 고차적인 형태로 이행해 있다. 학문적 전진을 획득하기 위해 유일한 것 - 그리고 본질적으로 그에 대한 전적으로 단순한 통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부정적인 것은 그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이다, 또는 자기모순 하는 것은 영, 추상적인 무로 해소되는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만 그것의 특수한 내용의 부정으로 해소될뿐이다. 또는 그러한 부정은 전면 부정이 아니라 해소되는 규정된 사태의부정이며 따라서 규정된 부정 bestimile Negation 이다. 그러므로 결과 속에는본질적으로 그 결과가 그로부터 결과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논리적 명제의 인식인데, 이것은 본래 하나의 동어 반복인바, 왜냐하면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직접적인 것이지 결과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하는 것, 즉 부정이 규정된 부정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내용을 지닌다.

그러므로 헤겔은 자신이 스스로의 논리학 체계에서 따르는 방법은 좀 더올바르게 말하자면 이 체계가 그 자신에서 따르고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방법은 그것의 대상이나 내용으로부터 구별된 어떤 것이 아니다. 내용을 끊임없이 움직여 가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내용, 즉 내용이 그 자신에서 지니는변증법이다. 방법의 리듬은 사태 자신의 진행이다. "개념 자신이 스스로를계속해서 이끌어 가게 하는 것은 조금 전에 제시된 개념이 자기 자신안에 지니는 부정적인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변증법적인 것을 이룬다."내적 부정성은 자기 자신을 움직이는 영혼이며, 모든 자연적이고 정신적인생동성 일반의 원리다. 이러한 변증법적인 것에 따라서 대립자를 그것의통일 속에서 혹은 긍정적인 것을 부정적인 것 속에서 파악하는 데에 사변적인 것이 존립한다. 

"그에 따르면 논리학은 순수한 앎을 자기의 원리로 지니는, 즉 추상적인통일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대자적인 존재자와 두 번째의 그러한 존재자,
즉 객관적인 것과의 의식의 대립이 그 속에서 극복되어 존재가 순수한개념 자체 자신으로서 그리고 순수한 개념이 참다운 존재로서 알려짐으로써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통일을 자기의 원리로 지니는 순수한 사유의학문으로 규정되었다. 따라서 이들(즉 순수한 개념과 참다운 존재옮긴이)은 논리적인 것에 포함되어 있는 두 계기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제분리될 수 없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알려지는데, 의식 속에서처럼 각각이또한 그 자체로[대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도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동시에 구별된(그렇지만 그 자체로 존재하지는 않는)것들로서 알려짐으로써, 그것들의 통일은 추상적이고 죽어 있으며 운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다."
의식의 대립은 사라졌다. "그리하여이전에(진리로의 도정에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규정들, 즉 주관적인 것과객관적인 것이나 또한 사유와 존재나 개념과 실재성과 같은 규정들은,
그것들이 어떠한 관점에서 규정되어 있었든지간에, 이제 그것들의 진리속에서, 다시 말하면 그것들의 통일 속에서 형식들로 격하되어 있다. 의식의 대립으로부터 해방된 객관화하는 행위는 좀 더 상세하게는 사유그 자체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 행위는더 이상 의식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의식은 자아와 그의대상의 대립을 자기 안에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헤겔의 말들에는 헤겔 논리학의 사유가 지니는 특성에 관한몇 가지 고찰하고 해설하는 논의가 덧붙여질 수 있을 것이다.

헤겔 논리학 연구의 특수한 어려움은 그 연구가 "개념의 노고를요구한다는 점에 놓여 있다. 이 연구는 전적으로 비일상적인 입장, 즉헤겔 이전의, 그러므로 또한 칸트에게서의 철학적 사유와는 전혀 다른자유 방식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사정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바로 여기서는더 이상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유 이성 대상들에 대한단순한 지성-견해가 아니라 이성 대상들에 대한 이성-견해)가 문제로된다는 점이다.63 이러한 사유를 뒤따라 수행해 나가기 Nacheollone 위해서는헤겔이 정신 현상학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사유가 내용의 자의적으로 운동하는 원리인 대신에 이 자유를 내용 속에 침잠시키고 내용을그의 고유한 본성에 의해, 다시 말하면 그의 것으로서의 자신 Selesa 에의해 스스로 운동하게끔 하는 64 노고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반 일은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사유 방식을 대단히 직관적으로 묘사한다. "개별적인 인간의 의식 행위와 그에 의해 사유된 내용의 사변적 융합은 사유가직관의 힘을 자기화하지만 직관은 스스로를 완전히 사유의 사태에 넘겨줌으로써 이루어진다. 자명한 일이지만 후자는 직관이 전적으로 모든 감성적인 것과 경험적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해방될 때에만 가능하다. 상상력이넘쳐흐르는 사유는 더 이상 자기의 개념들을 고정시키고 조합하며 분류하는 일에 매여 있지 않다. 아니, 사유는 개념들 속에서 살아간다. 사유는개념들을 관통하며 그 자신이 개념들에 의해 관통된다. 의식은 스스로를대상에게 건네주고 넘겨주며 그 속에 머무르고 대상이 그에 의해 자기의것이 될 수 있게 스스로 대상에 몰두한다. 

헤겔은 해소되지 않은 (그리고 해소되지 않은 채 머무르는) 모순들과 모순들의 해소(따라서 해소된 모순들)를 구별한다. 헤겔에 따르면 오직 정신절대 정신과 인간의 정신만이 모순들을 해소할 수 있고 이를 통해좀 더 고차적인 것을 창조할 수 있다. 자연 전체는 해소되지 않은 모순이다.83 "이른바 세계는・・・・・ 그런 까닭에어디서도 모순이 없을 수 없지만 그것을 견딜 수 없으며 그런 까닭에발생과 소멸에 내맡겨져 있다.84 그런 한에서 자연 안에는 자연으로부터는 단지 모순들만이 존재하며, 나아가 자연은 그것들을 견디거나 해소할수 없기 때문에 발생과 소멸만이 존재할 뿐 발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발전은오히려 오로지 개념의 지배 하에서만 이루어진다. "자연은 하나의 단계가다른 단계로부터 필연적으로 출현하고, 가장 나중의 단계가 그것이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결과한 것들의 진리인 바의 그러한 단계들의 체계로 고찰될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단계가 다른 단계로부터 자연적으로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근거를 형성하는 내적인 이념에서 산출된다.
형태 변화anophase는 오직 개념 그 자체에게만 속하는데, 왜냐하면 개념의변화만이 발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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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슈미트의 정치적 결단주의 사상의 원류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낭만주의는 순전히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운동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보수적이거나 반동적인 것도 아니다. 반혁명가들의 정치적인 견해는 [결국] 논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으며, 낭만주의운동의 거개를 완전히 자의적으로 도외시하거나 아니면 [낭만주의자들의]순진무구한 표현들에 사악하고 나쁜 의도를 덧씌우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그 견해는 성선설에 의한 설명을 불충분한 것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약점을 드러낸다. 즉, 그것은 낭만적인 것의 역사적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반혁명가들의] 견해는 낭만주의 운동을 이끈 사람들의 사회적 특성에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 고찰을 위해서는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 비록 정확성과 완결성의 측면에서 미심스런 구석이 있다 할지라도, 낭만적인 것에 대한 모든 규정 - 이 책은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 은 적어도 토론해볼 만한 가치는 갖는다. 그런 점에서 요제프 나들러 Josef Nadler의 관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의관점은 단순히 [낭만주의의] 성격 규정이나 논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제대로 된 정의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실체 없는 세계, 직무상의 구속력 기능적 결합을 모르는 
세계, 확고한 지도 체계가 부재한 세계, 결론도 정의도 결정도 최종 판결도 모른 채 우연이라는 마법의 손길 the magie hand of chance에 이끌려 끝없이 방황하는 세계다.
이 세계에서 낭만주의자는 모든 것을 자신의 낭만적 흥미를 [채우기] 위한수단으로 만들 수 있으며, 세계란 단지 하나의 계기일 뿐이라는 환상이것 역시 어느 때는 무고한 것, 또 어느 때는 음험한 것일 수 있다―을 품을수 있다. 이와 다른 모든 정신적 영역에서, 그리고 일상적 현실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곧장 터무니없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낭만적인 것의 영역에서 그것은 특별한 미적 성취로 여겨진다. 기회가 닿아 [기연적] 계기로 사용된 구체적 현실 속 장소와 [그것을 이용하는 창조적 낭만주의자 사이에서 하나의 다채롭고 흥미로운 세계, 놀랍도록 아름다운 매력을 가득 품은 세계가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미학적인 차원에서라면이 세계를 수긍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덕적이고 실제적인 차원에서 이 세계를 진지하게 취급한다는 것은 반어적인 표현을 의도하지 않은바에야,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또한 이 낭만주의적 생산성은 전래된 모든예술 형식들도 순전히 [자기를 위한 계기로만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형식과 구체적 현실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비록 낭만주의가 언제나 어떤 구체적인 출발점을 찾는다 해도 말이다. 사람들이심리학적 견지에서 낭만적 무형식성, 과거와 먼 곳을 향한 낭만적 탈주고 부르는 것, 즉 오직 먼 곳에만 있는 사물들을 낭만적으로 미화verklarung하는 것은 이러한 [기연적] 태도의 결과일 뿐이다. 멀리 있는 것, 즉 지금이곳에 부재하는 것은 쉽게 저지되거나 반박되지 않는다. 엄연한 현실의무게 Konsequenz도, 지금 이곳에서 당장 지켜야 하는 규범도 그것을 저지하거나 반박할 수 없다. 멀리 있는 것을 계기로 삼는 편이 [언제나] 더 쉽다.
왜냐하면 멀리 있는 것은 [실제 삶에 있어서 ] 성가신 일 Sache 혹은 문제 Ge-genstand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초의 낭만주의자들은 정신의 혁명가를 자처했다. 그들이 역사적으로반동과 결부되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보기에 낭만적인 것의 본질에 속하는 여러 역설들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거꾸로 그들이 혁명과 결부되었다는 사실 또한 한낱 우연일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이 널리 알려진 단순한정식, 즉 ‘정신 혹은 문화의 혁명이란 정치적 반동‘이라는 정식 [일종의]해답처럼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세이에르에게는 다름 아닌 정치적혁명이 낭만주의적 경향의 표출이었고, 다름 아닌 낭만적인 것의 측정 불가능한 정치적 에너지가 그의 합리주의적 경험주의를 뒤흔드는 것이었다.
여기서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낭만주의가 개인주의와 비합리주의를 자신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주장은 확실하고 분명한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낭만주의자들을 역사적-객관적 사유의 창시자로 칭송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자들이야말로 전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들이며, 나아가 "민족Volk "이란 유기적이고 초개인적인 통일체 Einheit 라는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체 감각을 일깨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18세기의 합리주의에 대항해 일어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항 운동에는 아주 다양한 유형들이 있으며, 따라서 근대 합리주의가 아닌 모든 것을 낭만주의적이라 칭하는 것은 피상적인 생각이다.
셀링의 자연철학 안에는 낭만주의가 무정한 지혜 licbeleere Weisheit" 라고 여긴 철학적 반대가 존재한다. 추상적 합리주의에 반대한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감정적인 적대는 철학적인 적대와는 다르다. 이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철학적인 문제를 순수하게 감정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다시 모든 체계적인 논의는 하나의 지성적인 실천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철학적 체계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감정의 절대적 직접성을 위협하게된다. 거꾸로 끝없이 만족을 추구하는 [감정적인] 체험은 지성을 마비시킬수 있다. 피히테의 지식학은 칸트주의에 대한 철학적 반동을 포함하고 있다. 절대적으로 활동하면서 비아를 정립하는" 자아는 추상적 보편성으로 상승하는 분석적 개념으로 구성된 합리주의의 논리에
따르면 결코 개념이라 할 수 없다.

옛 형이상학에서 가장 확실한 최고의 실재였던 초월신은 제거되었다.
이제 철학자들의 쟁투보다 더 중요해진 것은, 가장 확실한 최고의 실재로서 신이 담당했던 역할을 역사적 현실 속에서 누가 맡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두 개의 현세적 실재가 등장했고, 새로운 존재론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식론적 논의의 종결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 두 가지실재란 인류와 역사다. 18세기의 합리주의 철학의 논리로 본다면 완전히비합리적이지만, 초개인적 타당성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객관적이고 명백한 것으로 여겨진 양자는 새로운 조물주Demiurgen 로서 인간의 사유를 실질적으로 in realitate 지배하였다. 전자, 즉 인간 사회는 민족Volk, 공동체, 인류등의 여러 상이한 형태로 등장했지만, 항상 동일한 한 가지 혁명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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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의 고전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치원리이다. 자유주의라함은 국가권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옹호하고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사상적 입장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의 자유주의는 18세기에 와서신흥시민계급이 주장한 이데올로기로서 개인의 자유를 이상으로 하고, 자유경쟁에 입각한 자율적 행동원리를 그 수단으로 하는 정치철학이요 정치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라 함은 국민에 의한 지배또는 국가권력이 국민에게 귀속되는 것을 내용적 특징으로 하는 정치원리를말한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人民民主義와 社會民主主義 등과 구별되는 개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구체적으로 그 내용과 특징이 어떤 것인가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독일연방헌법법원에 의하면,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폭력적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그때 그때의 다수의 의사와 자유 및 평등에 의거한 국민의토대로 하는
법치국가적 통치체제」
라고 한다.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적 요소로서 인간의 
존엄과 인격의 존증을 기본으로 하는 인권의 보장, 
국민주권의 원리, 권력분립의 원리, 책임정치의 원리, 
행정의 합법률성, 사법권의 독립, 복수정당제와 
정당활동의 자유 등을 들고 있다.

민주주의는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국가생활과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실천해야 할 하나의 생활원리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는 이론적 개념이라기보다 역사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사유작용을 통해 추상적으로 구성된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국가생활이나 사회생활의 실천과정에서 형성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국가생활과 사회생활의 실천원리로서의 민주주의는 그 실천의 측면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사회생활상의 정치생활상의 경제생활상의 민주주의 등이 바로 그것이다. 더욱이 민주주의는 특수적 개념이 아니라 보편적 개념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특정의 시대와 장소에서의 국가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개별적 · 특수적 원리가 아니라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모든 공동체생활에 타당하는 원리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한 통치를 그 수단과 방법으로 하면서도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 내지 공동선을 실현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민주주의의 이상형은 정치형태로서의 민주주의와 정치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동시조화적으로 구현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양자의 동시적 실현이 곤란할 경우에는 양자택일이 불가피할 것이다.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민주주의를 정치질서형성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방법이라고 인식하는 쪽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험을 내포하는 最善보다는 위험이 없는 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민주주의는 국가의사가 국민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국민 중의 능동적 시민의 총체가 직접 국가의사를 결정하거나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하여금 국가의사를 결정하게 하는 정치원리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헌법 제8조 제4항에서 말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의미한다(통설). 민주주의는 이미 본 바와 같이 다양한 민주주의의 상위개념이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등 그 밖의 민주주의도고 내포로 한다. 
하지만 헌법 제8조 제4항의 민주적기본질서에서의 민주주의는 오로지 자유민주주의만을 의미한다. 정당해산조항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그 개념이 다르다고 할 뿐 아니라「제8조 제4항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라는 이설이 있지만, 정당조항의 민주적 기본질서만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해석해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현행 헌법의 경우, 사회민주주의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사회국가의 원리 · 사회정의의 실현 ·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등은 여러 헌법조항에서 따로이 규정하고 있으므로, 제8조 제4항의 민주적 기본질서 중에 반드시 사회민주주의를 포함시켜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법치국가인 독일의 기본법조차도 정당해산의 사유로는 동법 제21조에서 명문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만으로 제한하여 규정하고 있다. 국가적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하여, 정당의 해산사유까지 반드시양자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국가적 성격이나기본질서가 사회민주주의까지 수용하는 것일지라도 정당의 해산사유는 그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에 의 위배만을 그 해산의 사유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공무원도 근로자이기는 하나 일반근로자에 비하여 다음과 같은 신분상의특수성을 가진다.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지만, 일반근로자는개인적 이윤추구를 직접 목적으로 한다. 공무원의 보수는 근로의 대가로서의 성격 외에 공직의 효과적 수행에 대한 보상이라는 의미도 가지는 것이지만, 일반근로자의 보수는 제공된 근로의 대가라는 성격을 가진다. 다 공무원의 보수는 수의 규율대상이지만, 일반근로자의 보수는 단체 협약의 주된 대상이 된다. 공무원이 담당하는 
업무는 공적업무이므로 공무원에게는 여러가지 공법적 
권리·의무가 인정되지만, 일반근로자의 근로는 사적 
업무이므로 공법적 권리·의무가 인정되지 아니한다.

군은 주권자인 국민이 병역의무와 납세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조직되고 유지되는 기구이기 때문에, 
민주국가의 군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國民의 軍이어야 한다. 
특히 헌법 제7조가 공무원의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지위를규정하고 있으므로 
군공무원으로서의 군인도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라야 한다. 
또한 헌법은 군을 國民의 軍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국민개병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헌법 제39조 제1항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하고 있는 것과 동조 
제2항이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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