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의 핵심적인 리딩 판례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관습법이란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한 사회생활
규범이 사회의 법적 확신과 인식에 의하여법적 규범으로 
승인 강행되기에 이르른 것을 말하고 사실인 관습은 
사회의 관행에 의하여 발생한 사회생활규범인 점에서는 
관습법과 같으나 다만 사실인 관습은 사회의 법적 
확신이나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서 승인될 정도에 
이르지 않은것을 말하여 관습법은 바로 법원으로서 
법령과 같은 효력을 갖는 관습으로서 법령에 저촉되지 
않는한 법칙으로서의 효력이 있는 것이며 이에 반하여
사실인 관습은 법령으로서의 효력이 없는 단순한
관행으로서 법률행위의 당사자의 의사를 보충함에
그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법령과 같은 효력을 갖는 관습법은 
당사자의 주장 입증을 기다림이 없이 법원이 직권으로 
이를 확정하여야 하나 이와 같은효력이 없는 사실인 
관습은 그 존재를 당사자가주장 입증하여야 한다고 
파악할 것이나 그러나 사실상 관습의 존부 자체도 
명확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그 관습이 사회의 법적 
확신이나 법적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까지 
승인된 것이나또는 그에 이르지 않은 것이냐를 
가리기는 더욱어려운 일이므로 법원이 이를 알 수 
없을 경우 결국은 당사자가 이를 주장 입증할 필요에 
이르게 될 것이다.

한편 민법 제1조의 관습법은 법원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하는데 반하여 같은 법 제106조는
일반적으로 사법자치가 인정되는 분야에서의 
관습의 법률행위의 해석기준이나 의사보충적 효력을
정한 것이라고 풀이할 것이므로 사법자치가 인정되는 
분야 즉 그 분야의 제정법이 주로 임의규정1일 경우에는 
위와 같은 법률행위의 해석 기준으로서 또는 의사를 
보충하는 기능으로서 이를 재판의자료로 할 수 있을 
것이나 이 이외의 즉 그 분야의제정법이 주로 강행규정일 
경우에는 그 강행규정자체에 결함이 있거나 강행규정 
스스로가 관습에따르도록 위임한 경우 등 이외에는 
이 관습에 법적 효력을 부여할 수 없다고 할 것인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정된 가정의례준칙 
(1973.5.17 대통령령 제6680호) 제13조는 사망자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상제가 되고 주상은 장자가 되나 
장자가 없는 경우에는 장손이 된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원심인정의 관습이 관습법이라는 취지라면(원심판시의 
취지로 보아 관습법이라고 보여지나 반드시 명확하지는 
않다) 관습법의 제정법에 대한 열후적, 보충적 성격에 
비추어 그와 같은 관습법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관습법의 법원으로서의 효력을 정한위 민법 제1조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할 것키고 이를 사실인 관습으로 보는 취지라면 우선 그와 같은 관습을 인정할 수 있는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이 있어야 할 것 뿐만 아니라
사실인 관습의 성격과 효력에 비추어 이 관습이 사법자치가
인정되는 임의규정에 관한 것이어야만 비로소 이를
재판의 자료로 할 수 있을 따름이므로 이 점에 관하여도
아울러 심리 판단하였어야 할 것이므로, 따라서 원심인정과
같은 관습을 재판의 자료로 하려면 그 관습이 관습법인지
또는 사실인 관습인지를 먼저 가려 그에 따라 그의 적용
여부를 밝혔어야 할 것이다.

본 판결은 사실인 관습에 대하여, 사법자치(사적자치의 
의미임)가 인정되는 분야 즉 그 분야의 제정법이 주로 
임의규정일 경우에는 법률행위의 해석기준으로서 또는 
의사를 보충하는 기능으로서재판의 자료로 할 수 있을 
것이나, 이 이외의 그분야의 제정법이 주로 강행규정일 
경우에는 그 강행규정 자체에 결함이 있거나 강행규정 
스스로가관습에 따르도록 위임한 경우 등 이외에는 
이 관습에 법적 효력을 부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원심 인정의 관습을 사실인 관습으로 보는 
취지라면, 우선 그와 같은 관습을 인정할 수 있는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실인 관습의 성격과 효력에 비추어 그 관습이 
사법자치가 인정되는 임의규정에 관한 것이어야만 비로소
재판의 자료로 할 수 있다고 한다.

본 판결의 내용은 대체로 받아들일 만하다. 
다만, 사실의 관습의 존부도 법관이 당연히 직권으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대법원은 대판 1977. 4.
12, 76다1124에서는 사견과 같이 판시하였는데,
이 판결이 옳다.
한편 본 판결 사안의 궁극적인 문제(분묘 철거등 청구의 
상대방)는 현재에는 제1008조의 3의 해석의 문제이다(제사주재자의 확정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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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학 에세이




















































법리(doctrine)는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실정법과 판례 또는 학설을 소재로 
만들어진 구체적 법명제들의 체계적 집합이다. 
법 도그마틱(Rechtsdogmatik) 또는 법적 논리이다. 
실정법으로서의 민법은 민사 법리의 집합체이다. 

실무(practice)는 법률가가 실제 사건을 대상으로 
하여 이에 관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업무수행과정이다.엄밀히 말하면 실무는 이론이나 법리와는 다소 다른 
영역에 위치한다. 이는 법적 삼단논법의 관점에서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법적 삼단논법은 대전제에 해당하는 법규범을 확정하고(제1단계), 소전제에 해당하는 사실관계를 확정한 뒤(제2단계), 소전제인 사실관계에 대전제인 법규범을 
적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이다. 이론이나 법리는 법규범의 확정과 관련되므로 제1단계에 
속하는 요소들이다. 실무는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규범을 여기에 적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것과 관련되므로 
제2단계와 제3단계에 속하는 요소이다. 
이처럼 이질적인 단계에 속하는 실무를 같은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여 이론이나 법리의 개념과 대조하는 
것은, 실무가 규범(norm)과 현실(reality)을매개하고, 
나아가 규범을 현실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등
이론이나 법리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또한 법의 풍경을 삶의 풍경과 최대한 일치시킬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법리는 법적 안정성을 증진하고, 행위지침을 제공한다.
법리는 민사재판 이전 단계에서 사람들의 행위를 
적정하게 유도하여 분쟁을 예방한다. 

일단 분쟁이 발생하면, 법리는 법관에게 유용한 판단지침을 제공하여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억제하고 법률해석을 균등화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예측가능성을 부여한다. 또한 법리는 분쟁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벌어지는 논의의 합리적 출발점을 제공함으로써 법관이 백지상태에서 판단기준을 정립해 나가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고 그만큼 사회적 비용을 줄여준다. 법관과 변호사들은이미 서로에게 익숙한 법리의 토대 위에 서서 다음 단계로 전진할수 있다. 법리는 더 질 높은 논쟁을 벌일 수 있도록 안정적인 논쟁의 판을 깔아 준다. 이처럼 미리 체계적으로 정리된 법리 체계가있다는 것은 법관의 판단재량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오히려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제고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에서는 긍정적이다.

법리가 이러한 기능들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고정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즉 법리가 너무 변덕스럽거나 
경박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만약 법리가 공고함과 
안정성을 상실한다면 법리의 순기능은 상당 부분 감소될 
것이다. 다행스럽게 민법의 경우에는실정법뿐만 아니라 
이를 소재로 한 판례들이 대량 축적되어 있는관계로 상당히 구체화되고 구조화된 법리 체계가 존재한다. 재판실무에서 이러한 법리 체계에 의지하는 정도나 빈도도 매우 높다. 
물론 법리는 만고불변의 것이 아니어서 사후적으로 수정 · 
변경될 수도있다. 법리도 진화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법에 관련된 법리중 상당수는 끊임없는 검증의 
세파 속에 살아남아 확립되어 왔다는점에서 일단 그 보편적 타당성이 추정된다. 따라서 법리의 수정 내지 변경이 
주장되었다면 법리의 실질적 내용을 변경할 만한 
정당성이 있는지를 엄밀하게 검증하는 작업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다.

법리에는 유연성도 요구된다. 법리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사회현상을 올바르게 규율하기 위해서역사 속에서 발전하여 온 도구적인 틀이다. 법리는 어느 정도 고정적인 실정법에 기초하는 것이지만, 그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그 배후의 이론적, 가치적 문제나 현실 전면에 드러나는 재판실무상 문제와 연동하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이론 또는 실무의 외부적 차원에서 변화의 자극과 동력을 부여받음으로써 기존의 법리를 성찰하고 수정할 가능성도 열려 있어야 한다. 미국의 불법행위법학자 Leon Green의 표현을 빌리자면, 600년에 걸친 보통법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법리의 잔해만 남긴채 새로운 법리를 새로운 토대에 건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18) 이와 같이 법리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에서는 형식과 실질의대립으로도 상징될 수 있는 고정성과 유연성의 형량 내지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

법관은 그러한 감정적 호소의 배후에 있는 이론적인 요청을 간파하고 이러한 생활 언어를 법적 논리로 번역한 뒤 그 당부를 따질 수 있는 관대함과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판사님, 무슨 법이 이런가요?"라는 필부의 외침은 사실 법의위헌성에 대한 심오한 문제 제기일 수도 있다. 
"판사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왜 저만 법적 책임을 져야 하나요?"는 피고의 하소연은 법 앞에서의 
평등을 향한 외침 또는 현실을 배려한 주의의무의 
설정을 촉구하는 간절한 호소일 수도 있다. 
조정을 권유하는 판사 앞에서 "판사님, 무조건 계약서대로 
해야지요." 라고 밉살맞게 말하는 채권자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채 문언주의와 사회적효율성을 향한 깊이 있는 논변의 한 자락을 전개하고 있는지 모른다. 

법관은 "대외적으로는 존경받고 대내적으로는 확고부동한 위치를 누리고자 하는 국가에게 국민의 법 감정보다 더 보호하고 장려할 만한 귀중한 자산이 없다."는 루돌프 폰 예링(1818~1892) 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법률가의 작업은 곧 생활세계에서의 요구를 법적 요구로 번역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우리 법리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외국의 법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법리가 언제나 나라와 문화를 초월하는 
만고불변의 보편적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법리가 외국 법리에 뿌리를두고 있다고 하여 
특정한 외국 법리와 똑같은 모습을 지니는 것도 아니다. 
공통점도 있지만 다양함과 고유함도 있다. 

법리는 특정한나라의 역사, 문화, 현실과 상호작용하면서 
그 모습을 형성하여 나간다. 비유하자면 원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맞춘 옷을 가지고 와서자신에게 맞게 
수선하여 입는 사람처럼 법리의 수선, 때로는 공격적 해체와 재구성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규모의 수선 작업은 입법부가 하는 것이지만, 사법부도 이 작업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다. 사법부도 밖에서 들여온 법과 존재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부담을 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법관들이지난 수십 년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법리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들은 
비교법적 분석을 중요한 법학방법론의 하나로여기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특히 그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비교법적 분석은 법제 업무, 재판실무, 그리고 법학을 
지탱하여온 중요한 방법론이었다. 그러므로 외국의 
법제나 판례, 학설 등을탐구하여 그 나라에서는 어떤 
법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여해법을 도출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제한적이나마의미 있는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국제화가 급속하게 진전된 오늘날 우리의 법리나 실무가 국제적 흐름 또는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에 얼마나 가까운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여러 법 분야에서는 국제적인 
법의 표준화 노력이경주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법학자와 
실무가도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외국법 또는 국제적 흐름에 대한균형 잡힌 
시각과 최소한의 이해를 갖추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실체법을 둘러싼 경쟁은 단지 학문적, 재판실무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법제 수출경쟁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압도적 경제력과 유구한 법 전통을 앞세운 영미 법제의
수출 경쟁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몽골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의 법제 수출 
노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법제 
수출은 특별법 분야에 국한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법제 경쟁은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국제규범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UN에서 만드는 각종 협약이나 
모델법이 국제규범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다수 국가들을 수범 대상으로 삼는국제규범 작성 
과정에서의 법제 경쟁은 특정 국가를 향한 법제 경쟁과 
다른 양상을 띤다. 특정 국가를 향한 법제 경쟁은 관련 
국가의 경제적 지위와 영향력, 양국간 역사와 문화의 
유사성, 과거의 학술적, 법제적 교류 경험 등 수많은 
법제 외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국제규범 작성 과정에서의 법제 경쟁도 이러한 법제 
외적인요소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특히 국제사회에서의 발언력은 그 나라의 국력과 비례하고, 이는 국제규범을 
만드는 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론의 역할은 법리나 실무의 역할과 대비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론과 법리는 특정한 사건에서 한걸음 떨어져 
추상화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에 법리는 넓은 의미의 이론에 
포함된다. 하지만 대체로 법리는 특정한 법 분야를 
대상으로 구체적 적용이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이론은 많은 경우 법 분야를 망라하여 포괄적으로 
전개된다는 차이가 있다.

한편 실무는 특정한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론이나 법리와 구별된다. 즉 이론과 법리가 실재하는 
사회현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이를 관조하는 것이라면, 
실무는 법과 사회현상의 접점에 직접 서 있다. 
이론은 법의 자양분을 제공하고, 법리는 법의 주된 
모습을 형성하며, 실무는 사건과의 맥락 아래에서 
법을 구체화한다.

이론이 마그마(magma), 법리가 지하라면 실무는 
지표에해당한다. 이론, 법리, 실무는 각각 가치, 논리, 
직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이론, 법리, 실무는 
관념적으로는 별도의 영역으로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하나로 얽혀서 작동한다. 따라서 이들은독자성과 
유기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론은 법리와 실무의 한 발자국 뒤에서 이들을 
정당화해주는기능을 수행한다. 재판에서 등장하는 
쟁점들은 그 껍질을 하나씩 벗겨나가면 궁극적으로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또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가운데에서 법원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귀착되는 때가 많다. 

법관은 이러한 결정적 순간에 이론을 돌아보고 
의지하여야 한다. 이론이 구체적인 문제에 대하여 항상 
구체적인 답변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를 근본적인 가치의 거울에 비추어 보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법해석학의 바탕에 흐르는 
변화의 동력으로 기능한다.

"모든 판사의 판결이유는 그 자체가 법철학의 
한 단편이다(Anyjudge‘s opinion is itself a piece of legal philosophy). "라는 유명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법관은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어떤 법리를 실제 사건에 적용함에 있어서 그 배후에 있는 가치의 무게를 판단한다. 

특히 법관은 어려운 사건 (hard case)을 처리하면서 
그러한 고민을 한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사건들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판단을 해야 한다. 법관들이 이와중에 겪게 되는 고민은 
고답적인 영역에서 운신하는 법학자들의고민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치열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모든 것을 하나의 핵심적인 비전, 즉 명료하고 일관된 하나의 시스템과 연관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런 시스템은 모든 것을 조직화하는 하나의보편 원리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런 시스템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이해하고 생각하며 느낀다.

다른 한 부류는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 목표들은 흔히 서로 관계가 없으며 때로는 모순되기도 
한다. 물론 심리적이고생리적인 이유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관계이지만 도덕적이고 미학적원리에 근거한 관계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행동지향적이며, 
생각의 방향을 좁혀가기보다는 확산시키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그들의 생각은 산만하고 분산적이다. 또한 다양한
면을 다루면서 아주 다채로운 경험과 대상의 본질을 
포착해나간다.
그러나 그들은 찾아낸 본질을 받아들일 뿐, 모든 것을 포괄적이며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의 비전에 그들 자신을 맞춰가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런 비전은 간혹 자기모순적이며
불완전하며 때로는 광적인 경향을 띤다.

-이사야 벌린 지음, 고슴도치와 여우

민법의 기본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개인과 공동체의 
상호관계일 것이다. 민법의 3대 기본 원리라고 일컬어지는 사유재산권 존중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은 대체로 개인의 자유를 넓게 보장하려는 사상적 기초 위에 서 있다. 한편 이러한 원칙의 적용 범위를 수정하려는 그 이후의 움직임은 대체로개인의 자유가 과도하게 강조됨에 따라 발생하는 공동체 차원의폐해를 최소화하려는 사상적 기초 위에 서 있다. 따라서 민법의기본 원리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의 배후에는 자유주의적 사상과 공동체주의적 사상, 또는 개인과 공동체의 긴장관계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공동체주의자들은 개인의정체성과 성장에 있어서 공동체에 존재하는 사회 제도 또는 덕의윤리 (virtue ethics)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유주의적 정의이론이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해 편향된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을 주장하여 왔다. 이러한 최근의 흐름은 "근대 개인주의의 보편화에 따른
윤리적 토대의 상실, 즉 고도산업사회화에 따른 도덕적 
공동체의 와해와 이기적 개인주의의 팽배에 의한 
원자화 등의 현상에 대한불만의 이론적 표출"이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문제는 비단 정치철학뿐만 아니라 법철학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민법학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표현에 따르자면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긴장관계는 "개인의 공동체적 관련성과 공동체에의 귀속성(Gemeinschaftsbezogenheit und Gemeinschaftsgebundenheit der Person)" 라는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10)이러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는 법질서 전체의 차원에 구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므로 민법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에계약법이라는 이름의 성문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민법의 많은 조항들은 계약 또는 그 상위 개념으로서의 법률행위에 대해 규정한다. 이러한 조항들을 다루는 민법 분야를 편의상 계약법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계약법은 근대 민법의 핵심 정신을 직접적으로 담고 있는 
분야이다. 계약법은 태어날 때부터 또는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사회질서 속에서 타율적으로 결정된 신분(stanus)이 아니라 자기 의사에따라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타인과 
체결하는 계약 (contract)이 그 개인의 법적 운명을 결정하는 지표가 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 이념을담고 있다. 
개인의 법률관계는 신분제가 표상하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계약이 표상하는 수평적 관계라야 한다는 평등주의의 이념을 담고 있다.

계약법은 계약을 탐구대상으로 삼는다. 계약은 계약 당사자들의 자율적 합의에 의해 성립된다. 이를 통해 계약 당사자는 외부세계의 법질서와는 별도로 그들 세계의 법질서를 사적으로 형성한다(이른바 ‘private ordering). 헌법재판소의 
표현을 빌리면, 사적 자치의 원칙은 "인간의 자기결정 및 
자기책임의 원칙에서 유래된 기본원칙으로서, 법률관계의 형성은 고권적인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법인격자 자신들의 의사나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원칙"이다.

이로써 인간이 자신의 인격을 발현하고 스스로의 법적 
운명을 결정할 자유가 보장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상호작용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신장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의존엄성이 제고된다. 이러한 계약의 
본질과 기능에 비추어 볼 때, 계약법은 당사자의 자율을 
승인할 뿐만 아니라 이를 최대한 관철시키고 강화하는 
규범체계라야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자율 패러다임이라고 표현하기로 한다.

자율 패러다임은 계약법의 기본 패러다임이다. 계약법의 
전반을 관통하는 계약자유의 원칙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대표적 표현이다.

우리 민법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민법 조항들이 이 원칙을 당연한 
전제로 삼고있다. 

예컨대 반사회적 법률행위의 무효에 
관한 민법 제103조나 폭리행위의 무효에 관한 민법 
제104조는 법에서 정한 테두리 내에서는 당사자들이 
계약을 자유롭게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당연한 전제로 
삼고 있다. 계약자유의 원칙을 선언하지 않은 채 그것이 
제한되는 경우만 열거하는 태도도 역설적으로 계약자유의 원칙이 당연하다는 점을 나타낸다. 

임의규정보다 당사자의 의사가 우선한다고규정하는 
민법 제105조 역시 그러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민법의
대원칙으로 일컬어지는 사적 자치의 원칙의 계약법적 
발현이다. 사적 자치의 원칙은 "개인이 자신의 법률관계를 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형성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이는 "인간의 자기결정및 자기책임의 원칙에서 유래된 
기본원칙"으로서, "법률관계의 형성은 고권적인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인격자 자신들의 의사나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자율 패러다임의 정당성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총론의 영역에서 각론의 
영역으로, 이상을 논하는 장에서 현실을 논하는 장으로 
내려오면 논의 양상은 사뭇달라진다. 이 패러다임은 어떤 
영역에 적용되어야 하는가? 그 운신의 폭은 어디까지인가?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자율성인가? 이를 고양하는 길은 
무엇인가? 한계선상에 있는 구체적 사례의 맥락에서
이러한 질문이 주어지면 사람마다 서로 다른 해답을
내놓을 것이다. 자율 패러다임 또는 사적 자치에 대한
추상적 이해는 비슷하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 이해는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율 패러다임으로 계약법의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 계약은 사적(private) 이지만, 계약법은 
공적(public)이다. 계약법 내에도 당사자의 의사가 아니라 
법률의 규정이 지배적 역할을 수행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사회질서 또는 이를 실정법화한 민법 내외의 강행규정들에 의해 자율에는 일정한 테두리가 지워진다.
특히 계약의 체결 단계가 아니라 구제, 소멸 내지 청산 
단계에 이르게 되면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형성되는 
법률관계의 역할이중요해진다. 한편 임의규정에는 공정이나형평과 같은 사회적 가치가 녹아들어가 있다. 이는 비록 
당사자의 의사에 의해 배제할 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사자의 계약관계에 고스란히 영향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율 패러다임의 적용범위에는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

제어되지 않는 자율은 객관적인 제3자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오히려 당사자나 사회에 해악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해악이 관찰되거나 예견된다면 이를 바라보는 
공동체는 개인의 자율을 중시하여 이러한 결과를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자율을 일정부분 제어하더라도 
이를 막을 것인가? 후자의 입장에 서면 계약에관한 
자율의 폭을 제한하면서 그로 인해 생긴 빈 공간에 국가가 
후견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다. 계약법에 있어서 이러한 
후견적 관여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도모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을 후견 패러다임이라고
표현하기로 한다.

후견 패러다임은 자율 패러다임과 상호보완관계에 있다. 
우선자율 패러다임이 계약법의 기본 패러다임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계약법도 법질서의 일부이므로 필연적으로 사회관련성을 가지는 이상 자율 패러다임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따라서 후견 패러다임에 따른 보완이 반드시 요구된다. 
이미 계약법은 자율을 한계지우는 다수의 강행규정들을 
담고 있어, 이미 그 범위 내에서 후견 패러다임을 승인하고 
있다. 또한 자율 패러다임이 기초하고 있는 인간상의 
현실성이 의심받으면서 후견 패러다임이 운신 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우선 계약의 구속력 근거를 ‘자기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련성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그 첫 번째 단계이다. 대표적으로 상대방의신뢰보호를 계약법의 핵심영역에 끌어들이려는 사고를 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고를 과연 후견적 사고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또한 계약법에서 
신뢰의 문제는고유한 의미의 후견의 문제와 구별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신뢰보호의 사고에서 후견의 맹아적 요소도 발견된다. 계약의 관련자들을 ‘단일한 계약 당사자 계약 
당사자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계약 공동체 계약 공동체 
바깥에 있는 거래사회나 국가 등 더 큰 의미의 공동체‘로 
단계화해 본다면, 신뢰보호의 이념은 가급적 단일한 계약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를 최대한보호하고 관철시켜 
주려는 사고방식으로부터 상대방의 신뢰보호를위해 
계약 공동체의 합리적 규율을 도모하려는 사고방식으로의 이행을 수반한다. 여기에는 자기지향에서 공동체지향으로 옮겨가는 후견 패러다임적 요소가 숨어 있다.

실제로도 신뢰보호의 폭은 자율보호의 폭에 반비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대 계약체결 전 단계에서 계약체결에 대한 상대방의 신뢰보호의 폭을 넓힐수록 ‘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할 자유‘의 폭은 줄어든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신뢰보호는 의사가 아니라 법에의한 
요청이라는 이유 때문에 신뢰를 중시하는 계약이론은 의사를중시하는 계약이론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독일에서는 1861년 예링(Jhering, 1818~1892)이 계약체결상 과실책임(Culpain contrahendo)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면서 신뢰책임론의 토대를 마련한 이후,
계약법에 있어서 신뢰책임(Vertrauenshaftung)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44) 미국에서는 1932년 
제1차 계약법 리스테이트먼트 제90조45) 에 약속에 의한 
금반언(promissoryestoppel)의 원칙이 수용되어 
약인이 없어도 약속에 따른 신뢰보호를 근거로 계약을 
강제할 길이 열렸고,46) 1936년에는 풀러 (Fuller,
1902~1978)가 계약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본질은 
계약 당사자의 신뢰를 보호하는데 있다고 주장하면서, 
의사주의의 압도적 영향력아래에 있던 미국 계약법학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계약기간의 장기성도 영향을 미친다. 계속적 계약에서는 
계약체결 시에 당사자들이 계약기간 동안 발생할 변수들을 완전히 예측하여 이를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계약기간에 걸쳐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과거에 규정된 계약관계의 틀에당사자를 묶어놓는 것이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또한 이로 인해 이익을 보는 당사자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계속적 계약에서는 
사정변경의 원칙이나 각종 부수의무의 부과, 신뢰보호의 
필요성 등 당사자의 의사만으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관계지향적 요소들이 더욱 선명한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는 속성상 후견을 불러들이기 쉽다.

후견을 불러오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클수록 
후견이 관여하기 쉬워진다. 이 역시 사회의 가치 체계에 
따라 후견의 폭도달라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대주의가 
강한 유럽이 자유주의가 강한 미국에 비해 계약법에 
있어서 후견의 폭이 크다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콩 하나라도 나누어 먹고, 백짓장 하나라도 함께 드는 
우리문화 속에서는 유달리 ‘손해의 공평한 분담‘도 강
조되기 쉽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아무래도 계약법에도 
영향을 미쳐 계약해석이나 계약위반에 대한 구제수단, 나
아가 법원에 의한 화해적 해결이 가지는 역할과 비중에도 
순차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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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교과서의 클래식
























법을 크게 公法과 私法의 두 가지로 구별하는 것은, 로마법 이래 전통적인 
태도이다. 법질서를 이와 같이 나누는 경우에, 民法은 私法에 속한다. 여기서 민법의 의의를 확정하려면, 
私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떠한 사회관계를 
대상으로 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둘 중 앞의 것은 公法과 私法의 구별 표준에관한 문제이고, 뒤의 것은 私法의 실질적 내용에 관한 문제이다. 

성질설(종속설) 

법이 규율하는 법률관계가 평등관계이냐 아니냐를 그 표준으로 하여, 불평등관계 즉 권력 · 복종의 관계(수직관계)를 규율하는 법을 공법이라고 하고, 평등 · 대중의 관계(수평관계를 규율하는 법을 사법이라고 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도 공법 · 사법을 구별하는 하나의 표준이 될 수 
있지만, 역시 비난은 있다. 
즉, 국제법은 공법에 속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인데, 
성질설에 의하면, 국가는 서로 평등한 까닭에, 
그것은 사법에 속한다고 하여야 하는 결과가 되어, 
이 표준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또한 민법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불평등관계이므로, 그것을 
규율하는 법은 공법이라고 하여야 하는 부당한 결과가 된다.

주체설 

이 견해는 규율하는 생활관계의 주체에서 구별의 표준을
찾는다. 국가 기타 공공단체 상호간의 관계 또는 이들과 
개인의 관계를 규율하는법이 공법이고, 개인 상호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은 사법이라고 설명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국가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국제법은 공법이라는 것이 된다. 
한편,국가 또는 공공단체가 사인과 매매 · 운송 등의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를 공법에 속한다고 하여야 하는 
부당한 결과가 된다. 이러한 부당한 결과를 피하기 위하여
국가나 공공단체가 사인과 같은 자격으로 개인과 관계를 
맺는 경우에, 이를 규율하는법은 사법이라는 예외를 
인정한다. 이 점에서 이 견해는 구별의 표준이 
이원적이라는 비난이 있다. 그러나 가장 알기 쉽고 또한 
실질적으로 공법 · 사법을 올바르게 구별하고 있는 
학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권 특히 소유권과 계약의 자유에 새로운 공법적 제한을 
더하는 국가의 사회정책·노동정책 및 경제정책적 입법이 
점점 많아지고, 이들이 쌓여서 공법 · 사법의 어느것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의 법영역을 이루게 되었다. 
노동법(노사관계 또는 근로관계및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규율대상으로 하는 법의 총체, 경제법(국민경제 전체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각종 입법의 총체. 독점금지 · 
경제통계 · 소비자보호에 관한 입법이 특히 중요하다), 
사회보장법 (자력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구민에 
대하여 공적 부조 · 보험 등의 방법으로 일정수준의 
생활을 보장하고, 나아가 모든 국민에게 문화적 사회의 
성원으로서의 최제한도의 생활을 보장하려는 법의 총체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독자의 사회적인 법질서, 
즉 사회법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종래에는 전적으로 사법의 지배에 
맡겨져 있었던 사적당사자 사이의 경제적 관계에 대하여 
국가가 끼어들고 참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법적 법률관계에 공법적 요소가 파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학자들은
"사법의 공법화니, 공법과 사법의 혼합 또는 공법에 의한 
사법의 지배"라고 부르고 있다. 

사회법은 이제는 전과 같은 공법 · 사법의 구별을 가지고는 분간할 수 없는, 말하자면 그것은 중간적 영역이다. 특히 
최근에는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공공복리의 원리에 
의거하여, 사회법이 확대·강화되는 경향이 더욱 현저하다. 
뿐만 아니라, 장차 공법과 사법이 서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다른 방면에서도 마련되어 있다. 헌법은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모든 국민에게 근로권(헌법 32조), 
근로3권(헌법 33조), 생활보호(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헌법 34조), 환경권(헌법 35조), 
혼인과 보건을 보호받을 권리 (헌법 36조) 등을 인정하고,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국가는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하고 있으며(헌법 119조 2항), 
또한 여러 곳에서 공공복리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헌법 23조 · 37조 등 참조). 

이러한 헌법의정신에 입각한 입법으로 말미암아 각종의 
사법적 법률관계에 공법적 요소가 끼어들 것이다.
나아가 ‘기본권의 대사인‘효력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는데, 
헌법상의 기본권 규정이 사인들 사이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결국 공법과 사법은 앞으로 더 접근해 갈 것이다.
이에 따라 그만큼 공법과 사법의 구별이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위와 같은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볼 때에, 공법 · 사법의 
구별을 부정하는 학자나학파(예컨대, Kelsen과 그의 학파=Wien 학파)가 있다고 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공·사법의 구별은 단념하여야 하는가? 비록 그 구별이 곤란하다고 하더라도, 구별에 어떤 의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하나하나의 법률에 관하여 공·사법의 구별이나 공법관계·사법관계의 구별을 뚜렷하게 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들 
사이에는 각각 다른 법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즉, 사법원리와 공법원리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다. 특히 사법에서는 개인이 자유로이 법률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 넓은 범위에서 인정되며(사적 자치의 원칙), 이 점에서 공법과 다르다. 
이와 같이 사법원리와 공법원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법·사법을 구별할 실익이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법률관계를 규율할 규정이 분명하지 않은 때에는, 이에 적용할 법규와 법원칙을 결정하기 위해서도 공·사법의 구별이 필요하다. 
법률상의 쟁송에 관하여 행정사건과 민사사건의 구별의 
표준을 세우기 위해서도, 공법과 사법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행정소송은 피고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행정법원의 전속관할이다. 행정소송법 3조 · 9조·38조 · 40조 · 46조 참조). 
결국 실정법이 그 구별을 인정하고 있고, 또한 실정법상 
공·사법의 구별이 가지는 위와 같은 의의에 비추어, 적어도 실정법상 공법 · 사법의 구별은 여전히 유지되어야 한다.

재산관계와 가족관계 

개인 상호간의 생활관계는 이를 자기보존위한 관계와 종족보존을 위한 관계라는 서로 성질을 달리하는 두 가지로 
나누어서 관찰할 수 있다. 사람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생활을 하려면 각종재화의 지배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기보존을 위한 사회관계는 결국재화를 획득하고 지배하는 것에 관한 관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경제관계」 또는 「재산관계」라고 부른다(보통 일반적으로는 이들 두 용어 중 재산관계」라는 말이 관용되고 있다. 한편 사람은 남녀의 성적 결합에 의하여 자손을 늘리고, 집단을 이루어 외적을 막고 자연의 위협과 싸우면서 그의 존속 · 발전을 꾀하는 종족보존의 본능도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족보존에 관한 사회관계를 「가족관계」라고 
일컫는다.

종래의 통설에 의하면, 가족관계는 다시 친족관계와 상속관계로 잘게 나누어진다고 한다. 친족관계는 특정의 남녀의 결합에 의한 일정범위의 혈연적 집단,
즉 친족집단에서의 생활관계를 의미하며, 상속관계는 친족집단의 생존의 기초가 되는 재산의 승계(재산상속)에 관한 
생활관계라고 설명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설은 과거의 민법 친족상속편에 대해서는 타당한 주장이었다고 할 수 있어도 지금의 우리 민법에서는 합당하지 않다.즉, 1990년 말의 민법개정으로 종래상속편에서 규율하고 
있었던 호주상속을 호주승계로 변경하여 친족편으로 
옮김으로써 그 후 호주제는 2005년 민법개정으로 아예 
폐지되었다. 현행 상속법은 사람의 사망에의한 재산의 
승계만을 규율하는 근대적인 순수한 재산상속법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행 상속법은 재산관계만을 
규율하는 것이라고 하여야 한다. 본래상속제도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 그의 유산이 무주의 재산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며, 따라서 상속법은 그 본질이
재산에 관한 법이다.

하여 마련된 것이며, 따라서 상속법은 그 본질이 재산에 
관한 법이다. 상속법이 배우자와 일정범위의 혈족을 
상속인으로 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윤리관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일정한 가족 구성원에게 
유산이 승계된다고 해서 상속관계를 구태여 재산관계가 
아닌 가족관계라고 할 것은 아니다. 
요컨대, 현행법에서상속관계는 순수한 재산관계라고
하여야 한다.

물론 재산관계와 가족관계는, 서로 전혀 다른, 그리고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두 개의 세계는 아니다. 사람이 재화를 얻고 지배하는 것은 종족보존의 본능과도 관련이 있고, 또한 종족보존의 관계도 자기보존의 본능에 의하여 크게 영향을받는다. 그러나 두 개의 사회관계가 질적으로 크게 다르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두 관계는 어떠한 특질을 가지고 있을까? 
재산관계는 각자가 자기의 이해를 고려하여 타산적으로 
이기심을 가지고 결합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만들어진,선택,계산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가족관계는 
종족보존의 본능을 바탕으로 경제적 이해의 타산을 
넘어서, 애정을 가지고 각자가 인격적으로 맺어지는 
「주어진」 「숙명적인 관계이다.
위와 같은 재산관계와 가족관계가 바로 사법이 규율하는 
사회생활관계, 즉「사법관계」이다.

1. 일반법과 특별법 

사람 · 장소 · 사항 등에 특별한 한정 없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을 일반법」 또는 「보통법」이라 하고, 
한정된 사람 · 장소 또는 사항에 관해서만 적용되는 법을 
특별법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구별은 상대적인 것임을 
주의해야 한다(상법은 민법의 특별법이다. 그러나 각종의 
상사특별법은 상법의 특별법이다. 일반법·특별법을 
구별하는 실익은 특별법이 일반법에 우선하여 
적용되는 데있다 (특별법 우선의 원칙. 
즉, "특별법은 일반법을 깨뜨린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사항에 관하여 특별법이 있으면, 
그 특별법이 일반법에 우선해서 먼저 적용되고, 
그러한 특별법이 없는 경우에 일반법이 적용된다.

2. 일반사법으로서의 민법 
사법을 위와 같이 일반법과 특별법으로 나눈다면, 민법은 
사법의 일반법, 즉 일반사법이다. 그것은 사람 · 장소 · 사항 등을 한성하지 않고 개인의 일상. 보통의 사적 생활관계에 
적용되는 원칙법이다. 민법은 사법의 핵심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법이다. 말하자면, 민법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각종의 특수 · 구체적인 사법관계를 직접 규율하는 많은 
특별법들이 쌓아 올려지고,전체로서 「피라밋」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전체가 사법의 법체계, 즉 사법질서를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3. 특별사법일반사법인 민법에 대하여, 많은 특별사법이 
있다. 그런데 가족관계에 관해서는 민법 이외의 특별법이 
몇 개 되지 않으며, 특별사법의 대부분은 재산관계에 
관한 것이다. 특별사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사를 
규율하는「상법」(1962년 법 1000호)이다. 
그러므로 상법이 무엇이며, 민법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별사법으로서의 상법은, 일반사법인 민법과 비교할 때, 어떠한 특질을가지는 것일까? 원래 기업의 주체, 즉 상인은 
일반사인과는 다르다. 개인주의적인 사법, 특히 재산법은 
날카롭게 이익을 인식하고 항상 이를 뒤쫓는 이기적인 사람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 전형적인 사람이 바로 상인이다. 그는 이윤의 추구와타산으로 밤낮을 보내며, 아주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그리하여 상인의 업무인 기업활동 즉 상행위는 영리성을 가지고 있고, 상인은 이를 기술적·합리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반복성과 집단성, 또는 그 결과로서 
개성의 상실과 정형화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관계에는 이와 같은 특성이 
나타나는데, 그에 적합한 특수한 제도들(회사, 어음 • 운송 · 보험 등)이 형성되고, 상법이 민법의특별법으로서 발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상법은 가족관계나 일반의 재산관계를 
규율하는 법처럼 각 경우의 당사자의 처지를 고려하여 
구체적인 타당성을 실현하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일반적인 견지에서 합리적인 의사를 존중하고, 획일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그 지도원리로 삼게 되었다.

1. 실체법과 절차법

권리,의무의실질적 사항을 규정하는 법이 실체법이고,
실체법상의 권리를 실행하거나 또는 의무를 실현시키기 위한 절차를 정하는 법이 절차법이다.

2. 실체법으로서의 민법

실정법을 실체법과 절차법으로 나누는 경우에,
민법은 실체법에 속한다. 법치국가를 원칙으로 하는 
근대국가에서 법의 위반이 있거나 법률관계에 다툼이 
생기는 경우에 최종적으로는 재판을 통해서 국가권력의
발동을 요구하여야 한다. 실체법이 정하는 내용을 법원 
기타의 공적 기관에 의하여실현하는 절차를 정하는 
법이 절차법이므로, 민법도 궁극에 가서는 절차법을 
통하여 그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실체법과 
절차법, 민법과 민사절차법의밀접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법의 연원淵源(Rechtsquellen)을 짧게 줄여서, 
「법원(法)」이라고 한다(이장에서 다루는 법원은 재판을 담당하는 法院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 용어는 여러 가지의뜻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반드시 
명백한 용어는 아니지만(법을 형성하는 원동력, 법을
형성하는 기관, 법을 형성하는 형식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보통은 법의 존재형식 또는 현상형태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원래 법은 사회생활의 준칙으로서 의식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며, 공간적 · 외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실천적 사회규범으로서 그 내용은 
어떤 소재를 통하여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법은 일정한 형식으로 나타나고 존재해야 한다. 
그와 같은 법을 인식할 수 있는법이 드러나 있는 모습을 
가리켜 법의 연원 또는 법원이라고 한다. 따라서
민법의 法源은 실질적 의미의 민법의 존재형식을 말한다.

법원에는 성문법과 불문법이 있다. 성문법은 문자로 
표시되고 일정한 형식 및 절차에 따라서 제정되는 법이며, 
「제정법」이라고도 한다. 성문법(제정법)이 아닌 법을 
불문법이라고 한다. 불문법으로서 보통드는 것으로는 
관습법,판례법,조리 등이 있으나, 판례법과 조리의 법원에 
관해서는 나중에 살피는 바와 같이 학설이 나누어져 있다.
한 나라의 법이 대부분 성문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에, 
그 나라는 성문법주의를 취한다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불문법주의의 나라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제정법을 제1차의 법원으로서 인정하는 주의가 성문법주의이고, 판례법 · 관습법 등을 제1차 법원으로서 인정하는 
주의가 불문법주의이다. 어느 주의를 채택할지는 주로 
전통과 정책에 의하여 정해진다. 사법에 관하여 본다면, 
영국은 불문법주의이며, 부부재산관계 · 동산의 매매 · 
건물임대차 등의 특별한 사항에 관해서는 제정법이 있지만, 민법 전체를 포함하는 제정법은 없다. 미국의 많은 주(State)도 이에 가깝다. 이에 반하여, 독일·프랑스 · 스위스를 비롯하여 유럽대륙의여러 나라들은 모두 성문법주의를 취하여 민법전 · 상법전 등의 대법전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성문법주의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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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가운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두고 가장 큰 논란을 야기한 사람은 제17대 대통령 이명박과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건국 60년 기념사업과 건국절 제정 시도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건국 100주년 선포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1948년 정부 수립과1919년 임시정부 수립‘으로 다르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였다.
여기에 역사 교과서‘ 논쟁이 더해지면서 진보와 보수진영 간의 이념대결이 빚어졌다. 그 갈등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건국과 역사 교과서 문제를 두고 벌어진 논쟁을 학계와 언론에서 ‘역사전쟁‘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짐작할 수가 있다.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1948년 8월 15일이라는 ‘1948년 건국설‘은정치학자인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었다. 1998년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아 출간한 《대한민국 건국사》에서 처음으로 ‘1948년 건국설‘을 주장했던 그는 ‘건국절 제정‘을 둘러싼 역사전쟁의 거대한 폭풍이 한 차례 지나간 2016년 "건국일이없는 대한민국은 생일도 없는 국가"라고 비판하면서 ‘건국 논쟁‘을재점화시켰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70년이 되어간다. 건국의 역사가 70년이 되는 국가에서 조국의 건국일이 언제인지 모르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대한민국말고 또 있을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건국 후 67년이 넘도록 건국일이 언제인지를 국민에게 정확히 가르쳐 주지 못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국가이다.

‘1948년 건국설‘의 또 다른 주창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이영훈 교수이다. 이영훈은 2006년 7월 <동아일보>에 실은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칼럼을 통해서 "그해(2008년)부터 지난 60년간의 광복절‘을 미래지향적인 ‘건국절‘로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대한민국은 모든 나라에 있는 건국절이 없는 나라이다. 나에게 1945년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우리 2000년의 국가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주권‘을 선포했고, 국민 모두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 대다수의 민초에게 조선 왕조는 행복을 약속하는 문명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
그날에 찾아왔다. 우리도 그날에 국민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건국절을 만들자."

성신여대 김영호 교수는 "분단 극복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국사학계의 역사관이 분단사관과 통일지상주의 역사관이어서 건국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비판하면서 "대한민국의 탄생과 발전과 시련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를조망하는 새로운 역사 인식으로서 건국사관 정립의 필요성을 주창하였다.

지금까지 왜 건국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지 
못했을까요?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자인 에릭 보글린(Eric Voegelin)의 ‘현실의 일식 현상‘이라는 용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보글린은 현실을 왜곡하여 인류를 파탄으로 몰아간 현대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어떤 사상이나 역사 인식의 허구성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역사관은 분단사관과 
통일지상주의 역사관이었습니다.
분단 상태가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은 근대국가적 의미에서 미완성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하고, 건국조차도 조국의 분단을 불러 온 민족분열 행위로 간주합니다. 이에 비해 
건국사관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발전과 시련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를 조망하는 역사 인식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논쟁은 곧 헌법을 둘러싼 논쟁이다. 한시준의 주장처럼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명문화하였다. 이것이 1919년 건립된 대한민국을 1948년에 재건한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면서 역사적으로 ‘1919년건국설‘을 뒷받침하는 명분으로 이해되었다. 그뿐 아니라 1987년에개정된 현행 헌법의 전문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되어 있어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계승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헌법은 1919년건국을 명문화하였으며, 1948년 건국은 이러한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측의 논거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헌법학자인 서울대 김철수 명예교수는 "헌법 전문도 독립정신의 계승을 말하고, 대한민국의 재건이라고 하는 점에서 임시정부의 종말을 인정했기에 임시정부가 계승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계승‘과 ‘재건‘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정신이나 사상적인 
측면에서의 연속성을 말하는 것이지,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법적인 동일체를 나타내는 
말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현재는 2001년 <한일어업협정과 관련한 판결문>에서 
헌법 전문에3·1운동을 계승한다는 것은 ‘연혁적 · 이념적 
선언‘ 이라고 판단했다.
이 결정은 3·1정신과 이를 바탕으로 수립된 임시정부는 
1948년 건국에 대한 ‘연혁적 이념적인 기초‘에 불과하고, 
국가로서의 법적인효력은 없다는 것을 암시한 취지로 
원용될 수가 있다.

역사적으로 1919년 9월 6일 상해 임시정부는 
한성 정부와 노령 정부를 통합하는 절차를 거쳤다. 
개헌 형식을 거쳐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국호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대한민국을 사용했으며,
정부 조직은 한성 정부의 것을 채택했다. 
그 결과 집정관을 대통령이라는 칭호로 바꾸어 한성 정부의 조직과 각료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상해 임시정부 안에서는 이들 조직간의 내부 갈등이 여전했으며,
1925년 3월 26일 임시의정원에서는 이승만 임시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런데 탄핵 사유중의 하나가 임시정부의 결의를 부인하고 한성 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승만의 취임사는 한성 정부의 역사성을 말한 것으로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과는 무관한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된 
것이 맞다. 그렇지만 건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신용하는 "대한민국 건국은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에 걸쳐 이뤄진 역사적 과정으로 
봐야 한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으로 시작되어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완성됐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하고 
1781년까지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인 결과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이후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이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건국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것은 건국이 완성된 
정부 수립보다건국의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건국 60주년을 맞아서 시작된 건국절 제정과 건국 시점 논쟁은 역사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역사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성찰해 보면 그로 인해 얻은 교훈 또한 
적지않다.
그런 점에서 원로 사회학자인 신용하 교수의 당부는 
주목할 만하다.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1919년 건국론‘과 ‘1948년 건국론‘이 서로 상대방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다. 후자는 임시정부가 독립을 위해 
마지막까지 피 흘려 싸운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전자는 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 건국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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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상의 핵심적인 사상을 담아낸 책
번역이 매끄럽고 잘 되었습니다.
















선교사에 의하여 중국문화가 서양에 전해졌을 때 
서양의 사상가들이 가장 경이롭게 여겼던 점은 바로 중국 사람들에게 
서양의 기독교와 같은 일신교의 종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양호한 
도덕문명과 사회질서가 가능한가 라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상제의 감화가 필요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학습과 깨달음을통하여 자연스럽게 
자아와 공리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타자와 
도의적인 것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신학자 한스 큉(Hans King)은 이것이 바로 중국의 
지혜이고 공자의 지혜라 여겼다.

공자는 ‘예‘의 함의, 본질과 기능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밝혔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이 어질지못하면 음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덕이 없고 진실한 감정이 없는 예약은 다만 형식적이고 기계적이며 허위적인 
예의범절일 뿐이고 심지어 지배적인 사회적 강요로
전락되어 사람들이 진실한 개체로서의 사람이 될 수 
없도록 하는데 이것이 바로 공자가 비판하려는 것이다. 
임방이 예의 근본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가 답하였다. 

"훌륭한 질문이다. 예는 사치스럽게 행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게 행하여야 한다. 상례는 겉치레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

"인이 멀리 있겠는가? 내가 인을 바라면 곧 인이 이른다. 
여기서는 예약의형식 배후가 생명의 감통 인간의 
내재적이고 진실한 감정과 도덕적인 자각임을
지적하였다. ‘인도‘와 그 표준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사람이 자각이 있고 ‘仁‘을 
실천하고자 하면 안은 바로 거기에 있다. 도덕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주재하는 것임을 확실하게 
나타내었다. 도덕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자기에게 달려 있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즉 타율의 제약이나 타력의 강요에 의하여 좌우지되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 도덕적인 
주체성과 도덕적인 자유를 인식한 문화 위인 중의 
한사람이다. 물론 이는 결코 ‘禮‘의 적극적인 의미를 
말살하는 것이 아니고, ‘예‘는사회적인 절도이며 ‘예‘는 
군자의 행위가 일정한 절도를 유지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주체성, 자율성 원칙의 확립에 유리하다. 
‘예‘에 부합하고 ‘예‘를 실행하는 과정은 인성화의 과정이고 
특수한 사회조건 하에서 ‘인‘(내재적인 도덕)의
외재적인 표현이다.

공자는 ‘인‘과 ‘예‘ 사이의 창조적인 긴장을 
유지하였는데 이는 군자의 인격을 배양하고 도덕적인 자기수양에 
종사하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이로부터 안의 의미는 수가 즉 자신에 대한 수양에 
있고 ‘예‘를 실천하는 것을 통하여
교양이 있게 되는 동시에 ‘예‘를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예‘의 내재적인 핵심을 확실하게 이해하고자 노력하여
 ‘인덕‘을 자각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율적으로 실천하는 
경지에 도달하고 도덕적인 주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자와 초기의 유가가 주장하였던 사랑은 차등이 있는 
사랑이었다. 공자가 비록 "널리 많은 사람을 사랑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기독교의 ‘박애‘ 묵자의 ‘겸애‘와는 매우 큰 구별이 있다. 
사랑에 차등이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신의 부모, 형제, 자매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은 
자연스럽고 진실한 감정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제자는 집에서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공손하고 삼가고 미더우며널리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어진 이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 
이는 소년이 집에서는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웃어른을 공경하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신중하고 
말에 신용이 있으며 널리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인덕‘이 있는 사람과가까이함을 말한 것이다. 
이로부터 널리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전제는 ‘효‘ 즉
우선 자신의 부모를 사랑한 뒤에 다시 확충시켜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공자의 제자 유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는데 근본이 서야 도가생긴다. 효와 제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여기서 ‘위인‘은 바로 행인안을 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즉 ‘인‘을 실천함은 ‘효‘와 ‘제로부터 시작하고 ‘효‘와
‘제는 ‘안‘의 한 가지 일이며 ‘인‘의 시작이지 인의 전부 
혹은 근본이 아니라는것이다. ‘인은 근본이고 ‘효‘와 ‘제는 
쓰임(用)이다. 공자는 부모와 형제, 자매에대한 진실한 
사랑과 존경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고 타인에게 미칠 것을 
주장하였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 주고자기가 이루고 싶으면 남도 이루도록 해 준다. 자신의 처지에서 남의 처자를 유추할수 있는 것을 인의 방법이라 이른다."
무엇이 仁인가? 仁은 바로 자기가 서려고하면 동시에 
남을 깨닫게 하여 남도 설 수 있게 하고, 자기가 
통달하면 남을 도와주어 남도 통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생활에서
사소한 것으로부터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인도를 
실천하는 방법이다. 
공자의 뜻은 외부에서 강제로 남을 서거나 통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분위기 혹은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남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똑바로 세우고 사회에정착하고 세상을 통달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진 사람의 풍격이다.

공자는 정치를 하는 자가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음을 
중시하였고 공권력은반드시 백성들의 이익을 수호하고 
백성들에게 도움과 실제적인 혜택을 주어야함을 
강조하였다. 정치를 하는 자의 지혜는 실제로부터 
출발하여 백성들이 이익을얻을 수 있는 곳을 따름으로써 
그들이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백성들이 이득을 얻음에 정부는 자원을 소비하지 않거나 
적게 소비하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늘 백성들을 징집하여 노역을 시켰기 
때문에 대량의 노총각, 노처녀들이 있었고 가끔은 확실히 
농사 시기를 어기기도 하였다. 농업사회에서 백성들이
농작물을 재배하고 거둘 수 없다면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따라서 공자는 노동할수 있는 시간 조건과 사람을 선택하여 노동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함을 강조하였으니
누가 그를 원망하겠는가?

관리철학의 측면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德으로써 정치함은 마치 북극성이 자기 자리에 
그대로 있음에도 모든 별들이 그것을 에워싸는 것과 같다."
정치를 하는 자가 만약 도덕적인 인격으로써 국정을 
주관하고 다스리거나 혹은사회를 관리한다면 다른 
별들이 북극성을 에워싸는 것처럼 사람들의 옹호를 
받게된다는 의미이다. 관리하는 자는 권세나 지위가 
아닌 덕에 의한 정치, 인격으로써마음으로 기꺼이 
심하게 하여야만 동료나 아랫사람들한테 추대를 받게 된다.
실제로 매 부서, 매 기업의 주요한 리더가 만약 스스로 
바르게 행동하고 몸으로써힘써 행하며 솔선수범하여 
규범을 엄격하게 지키고 몸소 모범을 보이며 또한
의지력, 이상, 아량을 갖추어 포용할 수 있다면 
이 부문은 응집력이 있게 된다.
이는 법규를 반대하고 제도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제도의 구성, 법규의 관리도매우 중요하지만 제도와 
법규는 어디까지나 사람에 의하여 집행된다. 
현대사회에서는 반드시 법치와 덕치를 결합시켜야 한다.

"법령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은 형벌을 모면하려고만 하고 수치를모른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은 수치심을 느껴 선에 이른다."

이 말의 뜻은 만약 정치를 하는 자가 법령으로 이끌고 
형벌로써 백성들을 다스리면 백성들은 범죄는 면할 수 
있지만 수치스러운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정치를 하는 자가 도덕으로 이끌고 ‘禮‘의 문화로 
백성들을 교화하면 백성들은수치스러움을 알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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