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이 행해질 때, 필연으로 생기는 아주 희한한 결과는 
결백한 사람이 죄를 지은 사람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 결백한 사람의 경우,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털어놓고 유죄 판결을 받거나, 받아서는 
안 되는 형벌을 치르고 나서 무죄를 선고받는다. 

반면에 죄를 저지른 사람은 유리한 상황에 놓인다. 
만일 그가 강인함과 결단력으로 고문을 버텨낸다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큰 형벌을 작은 
형벌과 바꾸는 셈이 된다.

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기 위해 어떤 증거가 필요할지 
결정하는 것은 재판관의 권한에 속한다. 죄인이 무죄로 
판명될 수도 있지만, 우선은 유죄로 추정해야 한다. 
이것이 18세기인 오늘날 앞서간다는 유럽 전역에서 
형사절차의 전형적인 실상인 ‘공격적 기소‘ 다. 

고발에 대한 진정한 기소, 즉 이성이 명하는 사실에 대한 
공평한 심리는 군법에서 채택하고 있으며 아시아적 
전제정치에서도 경미한 소송의 경우 이를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유럽 법정에서는 거의 실행되고있지 않다. 

이는 참으로 황당하지 않은가. 우리보다 더 행복한 시대를 
살아야 할 후손들에게 이런 어리석은 절차는 믿을수 없을 
정도로 부조리할 것이다. 그나마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그 같은 어리석은 제도가 왜 가능했는지 밝혀낼 것이다.

왜 우리는 신을 화나게 하는 것과 우리 자신의 즉각적인 
파멸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하는가? 선서를 요구하는 
법률은 요구당한 당사자에게 나쁜 신자가 될지 순교자가 
될지 두 가지 선택지만 남겨둘 뿐이다. 그런 탓에 선서는 
단순히 의례적인 형식으로 변질되었으며, 그로써 정직함을 유일하게 보장하는모든 종교 감정은 무너졌다.

나는 선서가 얼마나 쓸모없는지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선서만이 범죄자의 입에서 진실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재판관이 있든 없든, 모든 재판관에게 이렇게 
호소하고싶다. 이성은 우리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래야 하지만,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에 반하는 모든 법은 
쓸모가 없어지고 결국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런 법은 
강의 본류와 맞부딪치는 제방과 같은 운명을 맞으며, 
곧 스스로 만든 소용돌이에 휘말려 점차 약해지다가 
사라질 것이다.

범죄가 발생한 후 곧바로 처벌이 가해질수록 그만큼 처벌은 공정하고 유용하다. 즉각적인 처벌은 불확실성이라는 잔인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이 불확실성은
범죄자의 상상력과 나약함에 비례해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유를 박탈하는 것도 일종의 형벌이기 때문에, 
형에 대한 선고가 있기 전에 가능한 한 짧은 기간에 
행해져야 한다.
구금은 피고인이 유죄를 선고받은 무죄를 선고받든 
피고인을 가두어 놓는 수단에 지나지 않으므로, 기간이 
짧아야 하고 최대한 가혹하지 않아야 한다. 구금 기간은 
재판에 필요한 준비 기간에 한해야 하며, 오랜 기간 구금된 피고인부터 순차적으로 재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금은 범죄자의 도주를방지하거나 범죄 증거를 인멸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 그 이상이어서는 안 되며, 재판은 최단 기일 안에 종결해야 한다.

타인의 명예를 손상하는 행위, 즉 개개인이 타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 평판에 해를 끼치는 행위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해야 한다. 명예훼손죄는 공적 반감의 
표시로 같은 주변 사람, 나라의 신뢰, 같은 사회 구성원 사이에 존재하는 우애심을 박탈하는 행위다. 다만, 불명예가 
항상 법의 테두리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법에서 말하는 
불명예는 대상의 관계, 보편적 도덕률, 또는 공통된 의견을 반영하는 특수한 도덕과 일치해야 한다. 법적 불명예가 
보편적 혹은 특수한 도덕과 상반된다면 법은 대중의 
존경을 상실하거나 도덕과 성실에 대한 기존 관념에서 
멀어질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도덕적으로 무관한 
행동을 불명예스럽다고 강조해도 결국은생생한 본보기의 
힘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재산몰수형을 반대하는 것은 앞서 말한 복잡한 
논지 때문이 아니다. 재산몰수가 사적 복수나 개인적인 
권력 남용을 억제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형벌이 유용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서 반드시 
정당하다고말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형벌이 정당하려면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입법자는 아무리 폭정을 경계하는 유용한 법이라도 정당하지 못한 법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정당하지 못한 
법은 일시적인 이익을 구실로 영구적인 파괴의 원칙을 
세우고, 높은 지위에 있는 소수의 편익을 위해 수많은 
가난한 이들을 눈물 흘리게 할 것이다.

가족을 구성단위로 하는 국가에서는 나라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가장 유용한 자원인 자녀의 행동이 
가장의재량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공화국에서는 자녀가 신성불가침한 상호원조라는 
의무감으로 부모에게 애착을 가지며, 부모에게 받은 
혜택에 감사해야 한다.

이런 의무감이라는 정서가 파괴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개개인의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법이 잘못 규정한 복종을 
맹목적으로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법과 국가의 기본법 사이에서 생기는 이런 모순은 사적 도덕과 공적 도덕 사이에 혼재하는 많은 모순의 원천이 되며, 계속해서 정신적인 갈등의 원인이 된다.

범죄를 더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길은 형벌의 엄중함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따라서 치안관은 철저한 경계심을 
재판관은 냉정한 엄격함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 덕목이 유익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으려면 관대한 입법이 
뒷받침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형벌이라도 확실하다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요행수와 결부된 어떤 가혹한 형벌의 공포감보다 강력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반면에 하늘이 주신 최고의 선물, 즉 
요행히 처벌되지 않겠지 하는 희망은 더 가혹한 처벌에 
대한 공포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특히 재판관의 나약함과 탐욕스러움 때문에 너무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형 면제 
사례들을 보면 이런 희망은 더욱 커진다.

형벌이 잔인해질수록 우리의 정신은 완강해지고 
둔감해진다. 액체가 주위를 둘러싼 물체와 같은 높이에 
도달하려는 것처럼 죄인의 사지를 벌린 상태에서 바퀴에 
묶어 처형하는 수레바퀴형과 같이 심한 형벌도 100년간 
이어지면 이전의 감옥보다 더 큰 공포감을 주지 못한다. 

형벌은 이를 통해 받은 해악이 범죄로부터 얻는 이익을 
넘어서는 정도이면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하다. 이를 
넘어서는 모든 가혹함은 필요하지않으며, 압제일 뿐이다.

잔혹한 형벌은 이 밖에도 다른 두 가지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범죄 예방이라는 법의 목적과 상반된다. 
첫째, 범죄와 처벌 사이의 정확한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교묘한 잔혹함으로 고통이 매우 증가하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그 이상의 고통을 주는 형벌을 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형벌의 면제(불처벌)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의 본성은 한없이 선할 수있지만 한없이 악할 수도 있다.사람들에게 너무나 잔혹한 처형의 볼거리는 일시적인 걱정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어도 법적 당위에 부합하는 영구적인 제도의 일부가 될 수는 없다.
진정으로 잔혹한 법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형벌 면제를 조장할 것이다.

사형은 우리를 더 낫게 한 적이 없는 무익한 형벌로, 
공정하고 제대로 통치되는 국가에서 실제로 유용한지 
묻고 싶다.
사람이 무슨 권리로 자기 이웃의 목을 벨 수 있단 말인가.
사형은 주권과 법의 근간에도 위배된다. 앞서 말했듯이, 
법은 각 개인의 사적 자유 중 가장 작은 부분의 합산일 
뿐이며, 각 개인의 의지가 총합한 일반의지를 나타낸다.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권리를 타인에게 부여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희생된 각 개인의 
가장 작은 자유가 모든 선 가운데 가장 큰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가 없다는 말과어떻게 양립할 수 있겠는가. 내게도 없는 권리를 남에게 양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무리 강렬해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인 망각의 힘은 이기지 못한다. 폭력에 대한 인상은 
우리를 놀라게 할 수는 있어도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인상은 평범한 사람을 한순간에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인이나 페르시아인으로 바꾸는 혁명을 일으킬 
때나 통할 것이다.

하지만 자유롭고 평화로운 정부에서는 강한 인상보다 
지속적인 인상이 더 필요하다.
범죄자의 사형 집행은 일부 국민에게 분노가 뒤섞인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분노와 연민은 법이 의도하는 유익한
공포보다 사람들의 정신을 훨씬 더 강하게 사로잡는다. 
반면에 계속되는 고통을 생각해보면 공포가 더 압도적으로 사람의 정신을 지배한다. 형벌의 가혹함은 관중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이면 충분하다. 형벌은 범죄자가 아닌 
국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법으로 매우 엄하게 처벌되며, 범죄의 증거를 
찾기 위해, 그리고 결백한 자를 굴복시켜 유죄로 이끌기 
위해고문이 사용된다. 동성애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의 욕구가 아닌, 사회적이고 예속된 상태에 있는 
인간의 욕구에서 비롯된다. 교육이 쾌락의 포만감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동성애는 인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 있게만들기 위해 인간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으로시작되는 교육 때문이다. 열정적인 청춘들의 모든 이성교제를 철저하게 차단하는 
교육시설은 자연적인 활력을 인류에게무익한 방식으로 
소모하게 하고, 청춘을 서둘러 늙게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조국을 영원히 떠나는 사람보다 사회에 해를 덜 끼친다. 전자는 자신의 재산을 국가에 남겨 두지만, 후자는 재산 중 적어도 일부는 다른 곳으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의 힘은 국민의 수에서 나오기 때문에 한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은 사회에 두배로 손실을 끼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있다. 한 국가의 구성원에게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사는
무한한 특권이 주어지는 것은 국가에 이익이 될까 아니면 
해가 될까?

힘으로 지배받거나 상황에 따라 효력이 사라지는 법률은
공포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을 지배하는 여론은 입법자의서서히 그리고 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에는 순종하지만,
폭력적이고 직접적인 인상을 받을 때는 반발한다. 그리고 
쓸모없는 법은 사람들이 유익한 법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하며, 공익의 안전장치가 아닌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기게한다. 우리의 통찰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명백히 
쓸모가 없는 법을 준수함으로써 진정으로 유익한 법의 
영향력을 파괴할 수 있다.

법에서는 유도적인 신문을 금한다. 법률가들에 의하면 유도신문이란 범죄 상황에 관한 일반적인 질문이 아닌,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질문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범죄에 
직접적인 관련 있는 즉각적인 답변을 권하는 질문이다. 
법규에 따르면 신문할 때 간접적이고 우회적으로 질문해 
사실을 밝혀내야 하며, 직접적으로 질문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피고인의 혐의를 풀 수 
있는 즉각적인 답변을 피고인에게 암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른 이유는 그 반대의 경우로, 
피고인이 자신을 고발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기 
때문이다.

나는 형벌의 가혹한 정도는 그 국가의 상황에 비례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싶다. 아직 야만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가의 국민에게 형벌은 강력한 인상을 주어야 하므로 
극도로 가혹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인간 정신은 부드러워진다. 
사람들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가 일정하게 유지되려면 
형벌의 가혹함은 완화해야 한다.

정의의 칼이 우리 손에 쥐어져 있지만, 우리는 칼날을 
날카롭게 갈기보다는 무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왕이 있는 자리에서 칼집 안에 칼을 두는 것은 왕 
앞에서는 칼을 거의 뽑지말아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한 나라라도 고문이라는 관습을 폐지한다면,
그래서 그 나라에서 범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줄어든다면, 
그리고 고문 폐지 이후 더 개화되고 더 번영한다면, 확실히 다른 나라들에 충분한 모범이 될 것이다. 영국의 사례가 
다른나라에 모범이 될 수 있지만, 영국만 모범을 보인 것은 아니다. 고문은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개화된 국가의 국민이라면 
인간애에 대한자부심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단지 과거부터 내려온 관습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문이라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끝까지 고집할 것인가? 최소한 나의 부모, 아니 
나라의 아버지를 암살한무정한 철면피들을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이 잔혹한 행위는 아껴두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은 잘못을 저지른 젊은이에게 살인과 같은 고통을 준다면 이것이야말로 쓸모없는 야만적인 행위가 아닌가.

자연이 우리 마음에 새겨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는 법규를 자연법이라고부른다. 예를 들면 절도, 폭력, 살인, 자비로운 부모에 
대한 배은망덕, 무죄에 반하는 거짓 증언, 조국에 대한 
배신과 같은 행위는 명백한 범죄로 다소 가혹하지만 
보편적으로 정당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 안정을 주거나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 현재의 필요로 만든 법을 정치법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도시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정보가 적에게 새어나갈까 염려해 
성문을 닫고 아무도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데, 
이를 어기는 자에게는 사형이라는 형벌이 내려질 것이다.

보복에 대한 권리 역시 국가에서 채택한 법이다. 예를 들어 적군이 당신의 용감한 장군 중 한 명을 교수형에 처했다고 가정하자. 이 장군은 적의 군대 전체에 맞서 폐허가 된 
성을 끝까지 수호하려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의 
대장 중 한 명이 당신의 수중에 들어왔다. 당신은 그를 
존경하지만 보복의 일환으로 그를 교수형에 처한다.
그리고 당신은 이것이 법이 아니냐고 말한다. 나의 적이 
엄청나게 큰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나 역시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야 할까?

이런 정치적 피비린내 나는 법은 오래 존속되지 못한다. 
진리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법이 아니다. 
이 법은 극심한 기근 상태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어야 하는 필요와 유사하다. 이 경우에는 빵만 주어지면 더이상 
인육을 먹지않을 것이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제정한 법은 다음과 같다. 
"형제나 아버지가 죄가 없기에 고통을 피하거나 삶에 
지치거나 절망해서, 혹은 광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더라도 자살자의 유언은 유효하며 그의 상속자는 법에 
따라 유산을 물려받아야 한다."

고대 로마의 통치자들이 이런 인도적인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는데도 우리는 지금도 범죄자들을 화형대로 
불러 모으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범죄자들의 이름을 
욕되게 하면서 가족들에게 불명예를 안겨준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을 벌하고 남편을 잃었다는 이유로 
과부를 벌한다. 심지어 고인의 유품을 몰수하는데, 
이는 가족의 정당한 권리를 앗아가는 것이다. 
이런 관행은 다른 많은 관습과 함께 교회법에서 생겨났다. 
교회법은 자살한 사람에 대해 기독교식 매장을 거부하고
하늘에서 상속받지 못한 자로부터 땅을 상속받는 것은 
옳지않다고 결론 내린다. 교회법은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것보다 목을 매어 죽은 것이 더 큰 죄였음을 우리에게 확신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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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9, 03. 21. 선고 201716593-1 
전원합의체 판결34] [약사법위반]

【판시사항]

[1] 이른바 ‘상고이유 제한에 관한 법리‘의 의의와 근거 / 상고심은 항소심에서 심판대상으로 되었던 사항에 한하여 상고이유의 범위 내에서 그 당부만을 심사하여야 하는지 
여부(적극) 및 항소인이 항소이유로 주장하거나 항소심이 
직권으로 심판대상으로 삼아 판단한 사항 이외의 사유를 
삼고이유로 삼아 다시 상고심의 심판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은 상고심의 사후심 구조에 반하는지 여부(적극) /피고인이 유죄가 인정된 제1심판결에 대하여 항소하지 
않거나 양형부당만을 이유로 항소하고 검사는 
양형부당만을 이유로 항소하였는데, 항소심이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그보다 높은 형을 
선고한 경우, 피고인이 항소심의 심판대상이 되지 않았던 
법령위반 등 새로운 사항을 상고이유로 삼아 상고하는 것이 적법한지 여부(소극)

[2] 피고인들이 약사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제1심에서 각각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 항소하지 않게나 양형부당만을 이유로 항소하였고 검사도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였는데,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이유가 인용됨으로써 제1심판결이 파기되고 피고인들에 대해 각각 그보다 높은 형이 선고되자, 피고인들이 항소심에서 심판대상이 되지 않았던 채증법칙위반, 심리미진 및 법리오해의 새로운 사유를 상고이유로 삼아 삼고한 사안에서, 피고인들의 위 상고이유 주장은항소심에서 심판대상이 되지 아니한 사항이므로 적법한 상고이유가 아니라고 한 사례

[주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사건의 개요 및 쟁점

가.피고인들은 한약사로서 공소외인과 공모하여 한약사 
자격이 없는 공소외인이 한약국을 개설하여다이어트 
한약을 판매할 수 있게 하였고, 피고인 1은 자신이 개설한 
한약국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정한 조제 방법을 따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의사의 처방전 없이 한약을 조제하고, 전화 상담만을 받고 고객들에게 이를 택배로 판매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각 약사법 위반죄로 기소되었다.

나. 제1심은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인정하면서 각 벌금 
1,000만 원의 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인 2는 
양형부당만을 이유로 항소하였으나 피고인 1은 항소하지 
않았고 검사는 피고인들에 대해 양형부담을 이유로 
항소하였다.

다. 원심은 검사의 항소이유를 받아들여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 1에 대해 징역 6월 및 집행유예1년, 
피고인 2에 대해 벌금 2,000만 원의 형을 각 선고하였다. 
피고인들은 원심판결에 대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였거나 법리를 오해하였다는 점을, 피고인 2는 이에 덧붙여 양형이 부당하다는 점을 상고이유로 삼아 상고하였다.

라. 이 사건의 쟁점은, 피고인들은 항소하지 않거나 
양형부당만을 이유로 항소하고 검사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였는데 항소심이 검사의 항소이유만을 
받아들여 제1심판결을 파기자판하면서 형이
높아진 경우라도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항소이유로 
주장하지 아니함으로써 심판대상이 되지 않았던
법령위반 등 새로운 사유는 이를 상고이유로 삼아 
상고할 수 없다고 하는 이른바 ‘상고이유 제한에 관한 
법리‘(이하 ‘상고이유 제한 법리‘라고 한다)를 선언하고 
있는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의 변경여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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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0.12. 10. 선고 2019 17879 판결
[위계공무집행방해·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작성 · 허위작성공문서행사]

【판시사항】

지방자치단체장이 승진후보자명부 방식에 의한 5급 공무원 승진임용 절차에서 미리 승진후보자명부상 후보자들 중에서승진대상자를 실질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내용을 인사위원회 간사, 서기 등을 통해 인사위원회 위원들에게 ‘승진대상자 추천‘이라는 명목으로 제시하여 인사위원회로 하여금 
자신이 특정한 후보자들을 승진대상자로 의결하도록 
유도하는 행위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요건인 
‘직권의 남용‘ 및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승진후보자명부 방식에 의한 5급 
공무원 승진임용 절차에서 인사위원회의 사전심의·의결 
결과를 참고하여 승진후보자명부상 후보자들에 대하여 
승진임용 여부를 심사하고서 최종적으로 승진대상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승진후보자명부상 후보자들 
중에서 승진대상자를 실질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내용을
인사위원회 간사,서기 등을 통해 인사위원회 위윈들에게
‘승진대상자 추천‘ 이라는 명목으로 제시하여 인사위원회로
하여금 자신이 특정한 후보자들을 승진대상자로 의결하도록
유도하는 행위는 인사위원회 사전심의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요건인 ‘직권의 남용‘ 및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된
경우‘로 볼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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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장 한문장이 명문입니다.
















체사레 베카리아는 1764년에 짧지만 기념비적인 책 
<<범죄와 형벌>>을 세상에 내놓았다. 범죄와 형벌을 
다룬 이 책은 출간한 다음해에프랑스어판이 나온 데 이어 
1800년까지 23개의 이탈리아어판, 14개의 프랑스어,
11개의 영어판이 나왔으며, 네덜란드, 스페인, 덴마크, 
그리스, 러시아, 일본을 비롯해 22개국에 번역되었다.

<<범죄와 형벌>>은 억측과 예단, 종교적 편견으로 뒤덮인 
야만적인 형형제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역사적 사건으로 꼽힌다. 베카리아는 이 책에서 종교적인 죄악과 세속적인 
범죄를 구분하고, 낡은 범죄관과 형벌체계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형벌의 목적을 새롭게 설정했다. 이 책은 사회계약에 의한국가형벌권, 죄형법정주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비롯한 주요 법 원리를 논리적으로다루었으며, 특히 고문과 사형 등 가혹하고 모순적이며 자의적인 관행과 법제를 비판하고 이를 막을 제도적 원리를 확인시켜 주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이 책을 계몽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저서라며 ‘우리의 정신을 치유하는 치료법‘으로 
격찬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법은 자유로운 사람들 사이의 계약이며
그래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소수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쓰이거나, 우발적 또는 일시적인 필요로 생겨났다. 
지금껏 인간성을 현명하게 탐구해 인간의 행동을 한눈에 
통찰한 법은 없었다. 법은 오로지 ‘최대 다수가 공유하는 
최대 행복‘을 목표로 해야 한다.

법은 독립적인 사람들이 사회에서 결속하기 위해 만든 
조건이다.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유는 가치가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자유를 더욱 평화롭고 안전하게 지키고 
누리기 위해 일부를 희생하기로 했다. 그렇게 각 개인의 
자유 중 남은 부분이 합해져 한 국가의 주권을 형성했고, 
자유는 합법적인 집행자인 주권자의 손에 맡겨졌다.

그러나 맡겨 놓은 자유를 확고히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자신의 몫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몫까지 노리는
자들의 약탈로부터 자유를 지켜야 했다. 개인의 횡포가 
사회를 이전의 혼돈 속으로 몰아넣지 못하게 하려면 
강력한 계기가 필요했다. 이 계기가 법을 위반한 자에게 
적용하는 형벌이다. 

공익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기대는 공상 속에서나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타인을 
속박하는 계약에서 자신은 벗어나기를 원한다.

인류는 엄청나게 많이 번식해왔고, 그에 따라 필요한 
물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자연이 제공하는 
수단으로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자, 기존 사회는 분열되고 
부득이하게 이에대항하는 새로운 사회를 형성해야 했다. 
이는 당연히 개개인이 아니라 체제의 변화로 이어지면서, 
대립은 개인과 개인 간의 싸움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각 개인이 가진 자유 가운데 일부를 포기하도록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개인은 자기가 가진 것 중 
최소한의 몫을 공공 저장소에 내놓았으며, 그것은 포기한 
자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지켜달라고 요청하기에 충분한 
정도였다. 이 최소한의 몫이 모인 집합체가 형벌을 행사할 
권리를 형성하며, 그 이상의 것은 모두 정의가 아니라 
권력의 남용이다.

오직 법만이 범죄에 대한 형벌을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형법을 제정하는 권한은 사회적인 협약으로 통합된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입법자만이 가질 수 있다. 이때 그 어떤 
법관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의라는 명목으로 그가 속한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게 법에서 정하지 않은 형벌을 
적용할 수 없다.

법으로 확정된 것 이상의 가중된 형벌이 다른 벌을 추가함으로써 정당해질 수 있지만, 어떤 재판도 지나친 열망이나 
공익을 구실로 이미 법에 따라 정해진 것 이상의 형벌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형법을 적용해야 하는 사건에서 법관은 입법자가 아니므로형법을 해석할 권한이 없다. 이들에게 형법은 전통에 따라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유언자의 의지에 따라 후손과 
집행자가 이행하라고 지시받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 혹은 국가의 대표자인 주권자에게서 받았다.

법의 권한 역시 겉치레적인 의무나 고대의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이런 의무나 관습은 법이라는 제도가 수립될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구속할 수 없으므로 아무런가치가 없다. 관습에 뿌리를 두고 정의롭지 못한 법을 만들면 다음 세대는 판단력과 실행력도 없는 짐승의 무리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법의 힘과 권위는 개개인의 사적 이익으로
일어나는 갈등을 통제하기 위해서이며, 국민이 묵시적 혹은명시적으로 주권자에게 한 서약의 산물이다. 


모든 범죄 사건에서 법관은 삼단논법으로 추론해야 한다.
이 중 일반법으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는 중요하고, 
행동의 적합성 또는 법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문제는 
사소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유 아니면 형벌을 택해야 
한다. 법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법관이 의무를 지거나 
이보다 더 많은 삼단논법을 만든다면 이는 불확실성을
 더 끌어들이는 셈이 된다.

‘법의 정신을 고려하라‘ 라는 말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이 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론이라는 급류에 법을 
내맡긴다는 뜻이다. 이런 잘못된 원칙을 채택하면 눈앞의 
사소한 무질서에 몰두해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저속한 이들에게는 이 말이 역설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압제자와 피압제자 사이의 거리가 더더욱 가까울수록 
압제자가 저지르는 폭정은 한층 더 잔혹해진다. 다수의 
폭정은 한명의 폭정보다 더욱 치명적이다. 한 사람이 폭정을 할 때는호소라도 할 수 있으나 다수가 폭정을 할 때는 
떨쳐버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폭정은 더 많은 반대에 
부딪힐수록 더 잔인해진다. 즉 폭군의 잔인성은 그가 가진 
권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가로막은 장애물에 
비례한다.

법은 인명과 재산의 안전을 가장 잘 지켜주는 수단이다. 
이는 사회의 단결이 목적이기에 정당하며, 개개인이 모든 
범죄에 수반되는 불편함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으므로 
유용하다. 이로써 국민은 독립과 자유의 정신을 누리고 
변덕스럽고 여론에 맹목적으로 복종하거나 이를 미화하는 이들에게 정당하게 대항할 수 있다.

법을 해석하는 것이 해악이라면, 법의 모호성 역시 해악이다.법의 해석은 법의 모호성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법이 사람들이 모르는 언어로 이루어졌다면, 
이에 따른 해악은 훨씬 더 커진다. 그럴 때 사람들은 자기가 한 행동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 법을 해석하는 
몇몇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법은 공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닌, 사적이고 특수한 문서로 바뀔 수 있다. 문명이 개화된 유럽에서 모호한 법조문을 가장 훌륭한 
관습으로 지속해오는 것을 보면, 인류가 진보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않는다.

더 많은 사람이 법전을 읽고 이해한다면 그만큼 범죄는 
줄어들 것이다. 반대로 형벌에 무지하거나 법조문이 
불확실할수록 감언이설과 잘못된 여론 역시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성문화된 법이 없다면 어떤 사회도 확고한 
정부형태를 갖추지 못한다. 권력은 사회의 일부에 
속해 있는것이 아니라 전체에 귀속되므로, 법 역시 
사회 전체의 의지에 따라 바뀌어야 하고 소수의 
개인적인 힘에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가 지켜온 
전통은 그 기원에서 멀어질수록 영향력 또한 약해지고, 
이는 우리의 경험과 이성으로 알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계약을 상기시키는 기록물이 없다면 어떻게 
법이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힘을 버텨낼수 있을까.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인류에게는 공통된 이익이므로, 범죄의 발생 빈도가 낮아야 사회에 양산되는 해악이 줄어든다. 범죄가 공공의 안전과 행복을 파괴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유인책도 강력해진 만큼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입법기관이 사용하는 수단 역시 더욱 강력해져야 한다. 이는 범죄와 형벌이 일정한 비례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범죄는 사회에 끼친 해악으로만 그
경중을 측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그 죄가 더 심각하거나 가벼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이들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범죄의 심각성은
범죄를 당한대상의 실제 생각과 개인의 성향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생각과 성향이 각각 다르고 심지어 같은 사
람이라도 때에 따라 관점이나 감정 그리고 환경 등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체계에서는 모든 개인에 대한 
특정한 규약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형법이 필요하다. 때로는 최선의 의도를 가진 
사람이 사회에 가장 큰 해를 끼치기도 하고, 최악의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위가 사회에 가장 큰봉사를 
가져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어떤 일이든
할 권리가 있으며, 행동 자체의 정당한 결과에 따른 그 어떤불편함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 원칙은 법으로 수호해야 
하며, 법관이 계속 강조해 누구나 이 원칙을 믿게 해야 하는 정치적인 신조다. 법치국가라면 이 신성한 믿음은 당연히 
존재한다. 이것은 분별력 있는 모든 존재에게 공통으로 
보장되는 보편적인 자유 행위이며,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고, 제한받는 것은 우리의 본능적인 힘뿐이다. 

명예는 하나의 복합적인 개념이다. 단순한 개념일 수 있지만, 매우 복잡한 다른 개념들이 모인 하나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인간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방식으로 때로는 그요소의 일부를 포함하고 때로는 그 일부를 배제한다. 이는 많은 복합적인 숫자 속에서 공약수를 찾는 것과 유사하다. 명예라는 단어에 붙은 서로 다른 개념들의 공약수를 찾으려면 사회가 처음 형성된 시기를 살펴봐야 한다.

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자신이 유죄일 때와 무죄일 
때를 알아야 한다‘ 라는 일반적인 공리에 예외적인 상황을 
잘알지 못한다. 정부에 검열관이나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법 집행자가 필요하다면 그 나라의 법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은밀한 폭정에 희생된 사람이 
범죄의 불확실성과 잔혹 행위로 고통받은 사람보다 많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형벌의 목적은 지각 있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이미 저지른 범죄를 원상태로 되돌리려는 
것이아니다. 그런데 고문과 부질없는 잔학한 행위, 
즉 맹목적인 광신도나 무능한 폭군이 함부로 휘두르는 
이런 수단이 어떻게 정치체제에서 뿌리내릴 수 있었을까? 
형벌은 격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며, 개인은 각자의 격정을 스스로 냉정하게 제어해야 한다. 고문당하는 사람의 비참한 비명이 시계를 되돌려 이미 저질러진 행위를 이전의 원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형벌의 목적은 오직 다른 사람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행사해야 하며, 범죄자의 육체에는 최소한의 고통만 
주어야 한다.

악의적인 행위처럼 범죄의 잔혹성이 심할수록, 그리고 
마법처럼 개연성이 낮은 행위일수록 증언의 신뢰성은 
떨어진다. 그런데 형법 관련 저술가들은 범죄가 잔혹할수록 증언의 신뢰성이 높아진다는 반대 원칙을 채택해왔다. 
이들이 철칙으로 여겨온 가장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명제는
 ‘인간은 자신이 알지도 못한 채 복종하는 수많은 불합리한 원칙 중 하나를알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라도 가장 사소한 추측만으로도 증명할 수 있으며 
재판관들은 이 법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재판은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를 결속하는 
유일한 접합체인 여론이 권력자의 권한과 재판관의 
격정을 억제할 수 있다. 
사람들이 "우리는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무엇이든 
잘 아는 주권자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이며, 
모든 국민에게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공개적인 고발이 군주정보다 공화정에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공화정 안에서 공공의 선은 시민의 
으뜸가는 감정인 데에 반해, 군주정에서는 공공의 선이라는 감정이정부의 성격상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주정에서는 범법자를 대중의 이름으로 고발하는 검찰기관을 두는것이 가장 현명한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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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보면 헌법이 보장하는 모든 개별 기본권들은 
직·간접적으로 인격의존중 · 실현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본권 보장은 곧 ‘인격 존중·실현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이런 
인격존중 · 실현 체계의 기초와 윤곽을 형성하는 지도적 · 
총괄적 의미와 성격을 가진 가치이자 기본권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개별 기본권 
규정의 해석 · 적용에 있어서 지도적 원리 · 지침으로 작용한다. 또한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지만 헌법 제37조 제1항의 
개방조항을 통해 기본권으로 인정될 수 있는 가치나 
이익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헌법 제10조는 제37조 제1항과 결합하여 
해석상으로 기본권을 도출할 수 있는주된 창구조항이 
될 수 있다(예: 생명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이 지닌 총괄적 성격은 개별 기본권과의 
관계에서는 보충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개별 기본권이 별도로 있고 그로써 효과적인 인격 보호가 
이루어진다면 인간의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뒤로 
물러날 수 있다. 그리하여 행복추구권은 포괄적 성격을 
지닌 보충적으로 적용되는 기본권으로 이해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또한 주관적 기본권으로서는, 
인격의 최소 핵심을 위한 최후의 기본권 보호수단으로 
남는다.

평등권은 인간의 권리이다. 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평등권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인정되지 않는 
기본권 (예: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권에관하여는 
평등권의 주체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와 달리, 입법자가 법률 차원에서 외국인의 권리나 
법적 지위를 규율할 때 행해진 차등에 대해서는 평등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예: 미국거주 외국국적동포와 중국거주 외국국적동포를 출입국의 조건에서 자동취급).

법인(권리능력 없는 사단·재단 포함)도 평등권의 주체이다. 다만, 자연인에게만 존재하는 표지를 기초로 하는 차별, 
예를 들어 성별, 국적, 인종 등에 기초한차별로부터의 
보호에 있어서는 법인의 평등권 주체성은 부인된다.

비례성심사는 차등취급(입법적 구분)의 목적과 수단 간에 
비례관계가 성립하는지를 심사한다. 그런데 평등 심사기준으로서의 비례성원칙이 자유권 심사기준으로서의 과잉금지원칙과 같은지, 같아야 하는지 문제된다. 헌법재판소는 과잉금지원칙의 틀과 방법을 기본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입법목적의 정당성, 차별취급의 적합성, 차별취급의 필요성(차별효과의 최소성), 법익균형성이라는 4단계 하위기준에 의한 심사를 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잉금지원칙은 보호영역이 있는 자유권에 대한 
국가의 개입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사고가 반영된 심사기준으로서, 보호영역이 없고 상대적 
관계만을 규율하는 평등의 심사기준으로 그대로 
전환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평등위반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 엄격한 심사척도에 의할 것인지, 완화된 심사도에 의할 것인지는 입법자에게 인정되는 입법형성권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게 될것이다. 먼저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 엄격한 심사척도가 적용될 수 있다. 헌법이 스스로 차별의 근기로 삼아서는 아니되는 기준을 제시하거나차별을 특히 금지하고 있는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면 그러한 기준을 근거로 한 차별이나 그러한 영역에서의 차별에 대하여 엄격하게 심사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다음으로 차별적 취급으로 인하여 관련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게 된다면입법형성권은 축소되어 보다 엄격한 심사척도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1999. 12. 23. 98헌마363)

"헌법 제11조 제1항 후문의 위와 같은 규정은 불합리한 차별의 금지에 초점이있고, 예시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절대적으로 차별을 금지할 것을 요구함으로써입법자에게 인정되는 입법형성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성별‘의 경우를 살펴보면, 성별은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고 변경하기 어려운 생래적인 특징으로서 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매우 오랜 기간 동안 대표적인 차별가능사유로서 정당화되어 왔기 때문에, 불합리한 차별을 극복해야 할 절실한 필요에 의하여 우리 헌법이 이를 차별금지의 사유로 예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헌법규정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 예컨대 임신이나 출산과 관련된 신체적 차이 등을 이유로한 차별취급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며, 성별에 의한 차별취급이 곧바로 위헌의강한 의심을 일으키는 사례군으로서 언제나 엄격한 심사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우리 헌법은 ‘근로‘, ‘혼인과 가족생활‘ 등 인간의 활동의 주요부분을 차지하는 영역으로서 성별에 의한 불합리한 차별적 취급을 엄격하게 통제할필요가 있는 영역에 대하여는 양성평등 보호규정(제32조 제4항, 제36조제1항을별도로 두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위와 같이 헌법이 특별히 양성평등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하여 왔으나, 이 사건 법률조항은 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병역법 사건. 현재 2010. 11, 25. 2006헌마328)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헌법 제10조 제2문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현재 2008, 7. 31. 2004헌바81 현재 2008. 7. 31. 2004헌마1010등 : 현재 2010.
5. 27. 2005헌마346 현재 2012. 8. 23, 2010헌바402 
참조).... 생명의 연속적 발전과정에 대하여 생명이라는 공통요소만을 이유로 하여 언제나 동일한 법적 효과를부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생명이라 할지라도 법질서가 생명의 발전과정을 일정한 단계들로 구분하고 그 각 단계에 상이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현재 2019. 4 11. 2017헌바127)

"우리 헌법은 절대적 기본권을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지 아니하며, 헌법 제37조제2항에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비록 생명이 이념적으로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법적평가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생명권 역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생명권의 경우, 다른 일반적인 기본권 제한의 구조와는 달리, 생명의 일부 박탈이라는 것은 상정할 수 없기때문에 생명권에 대한 제한은 필연적으로 생명권의 완전한 박탈을 의미하게 되는바.... 사형이 비례의 원칙에 따라 최소한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 아니한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됨으로써 생명권의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에는 그것이 비록생명권의 박탈을 초래하는 형벌이라 하더라도 이를 두고 곧바로 생명권이라는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 볼 수는 없다.... 형법 제41조 제1호 규정의 사형제도 자체는 우리의 현행 헌법이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형벌의 한 종류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생명권 제한에 있어서의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할 수 없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제10조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현재 2010.2. 25, 2008헌가23)

자기 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결정가능기간 중에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이유로 낙태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전면적·일률적으로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고 있다.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하였으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자기낙태죄 조항과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보아야 한다.

(현재 2019. 4. 11. 2017헌바127)

"미성년자에게 음란성 또는 잔인성을 조장할 우려가 있거나 기타 미성년자로하여금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게 하는 만화(이하 ‘불량만화‘라 한다)의 반포등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를 처벌하는 이 사건 미성년자보호법 조항은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통하여도 그 규범내용이 확정될 수 없는 모호하고 막연한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그 적용범위를 법집행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기고있으므로,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현재 2002. 2. 28, 99헌가8)

형벌불소급원칙은 실체적 형벌법규의 소급금지를 의미한다.범죄구성요건부분이든, 법정형 부분이든 소급적으로 가벌성을 신설하거나 강화해서는 안 된다. 형벌불소급원칙에서
의미하는 ‘처벌‘은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형식적 의미의
형벌 유형에 국한되지 않으며, 범죄행위에 따른 제재의 
내용이나 실제적 효과가 형벌적 성격이 강하여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이에 준하는 정도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에는 형벌불소급원칙이 적용된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노역장유치도 
형벌불소급원칙의 적용대상이 된다고 하였다(현재 2017. 10. 26, 2015239).


"헌법 제12조 제1항과 제13조 제1항의 근본 뜻은 형벌법규는 허용된 행위와 금지된 행위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여 어떠한 행위가 금지되어 있고, 그에 위반한경우 어떠한 형벌이 정해져 있는가를 미리 개인에 알려 자신의 행위를 그에 맞춤수 있도록 하자는데 있다. 이로써 위 헌법조항은 실체적 형사법 영역에서의 어떠한 소급효력도 금지하고 있고,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행위"라고 표현함으로써절대적 소급효금지의 대상은 "범죄구성요건과 관련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현법이 위 조항에서 비록 범죄구성요건만을 언급하고 있으나, 책임없는 형벌을 금하고 행위의 불법 행위자의 책임은 형벌과 적정한 비례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적법절차의 원칙과 법치주의원칙에서 파생되는 책임원칙에 따라 범죄구성요전과 형벌은 불가분의 내적인 연관관계에 있기 때문에, 
결국 죄형법정주의는 이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가벌성"을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가발성의조건을 사후적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공익의 요청도 개인의 신뢰보호와 법적안정성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규정함으로써, 위 헌법조항은 소급적인범죄구성요건의 제정과 소급적인 형벌의 가중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러므로우리 헌법이 규정한 형벌불소급의 원칙은 
형사소추가 "언제부터 어떠한 조건하에서" 가능한가의 
문제에 관한 것이고, "얼마동안" 가능한가의 문제에 관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헌법의 규정은 "행위의 가벌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소추가능성에만 연관될 뿐, 가벌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공소시효에 관한 규정은 원칙적으로 그 효력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행위의 가벌성은 행위에 대한 소추가능성의 전제조건이지만 소추가능성은 가벌성의 조건이 아니므로 공소시효의 정지규정을 과거에 이미 행한 범죄에 대하여 적용하도록 하는 법률이라 하더라도그 사유만으로 헌법 제12조 제1항 및 제13조 제1항에 규정한 죄형법정주의의 파생원칙인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언제나 위배되는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공소시효제도가 헌법 제12조 제1항 및 제13조 제1항에 정한 죄형법정주의의 보호범위에 바로 속하지 않는다면, 
소급입법의 헌법적 한계는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원칙을
포함하는 법치주의의 원칙에 따른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헌재 1996. 2 .16. 96헌가2)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게 신고의무를 부담시키고 
있는 도로교통법 제50조 제2항, 제111조 제3호는
피해자의 구호 및 교통질서의 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한 
범위내에서 교통사고의 객관적 내용만을 신고하도록 
한 것으로 해석하고,형사책임과 관련되는 사항에는 
적용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반대의견] "다수의건은 도로교통법 제50조 제2항이 사고운전자들로 하여금 신고하도록 한 내용은 사고가 일어난 곳, 
사상자 수 및 부상정도, 손괴한 물건 및손괴정도 그 밖의 
조치상황 등 교통사고의 태양에 한정되어 있지만 이것들은 사실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업무상과실재물손괴죄의 
구성요건 및 양형의 요소들이므로, 이러한 사실들을 
신고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범죄발각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어서 그것만으로도 진술거부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하고있다. 그러면서도 위 신고사항 외에 
형사책임과 관련되는 사항의 신고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재 1990. 8. 27. 89헌가118)

"정당의 회계책임자가 불법 정치자금이라도 그 수수 내역을 회계장부에 기재하고 이를 신고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위 조항들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진술거부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반대의견] 정치자금법은 불법 정치자금의 수수에 관하여 
‘정치자금 부정수수죄"의 죄명(동법 제30조 제1항)으로 
형사처벌하고 있으므로, 정당의 회계책임자가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하여 일단 범법행위를 행한 이상 자신은 형사소추를 받을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법률조항들은 범죄행위자인 정당의회계 책임자로 
하여금 자기에게 형사상 불리한 사실을 정당의 공식 
회계자료에기재하고 다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형벌로써 강제함으로써, 범죄행위자로 하여금 형사소추의 위험성을 극대화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으로 자신의 범죄를 스스로 진술하도록 법률로써 강제하는 것으로서 진술거부권이 보장하고자 하는 자
기부죄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할 것이다."

(현재 2005. 12. 22. 2004헌바25)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그와 같은 접견교통권에 그치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 피고인이 그의 변호인을 통하여 수사서류를 포함한 소송관계 서류를 열람·등사하고 이에 대한 검토결과를 토대로 공격과 방어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가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수사의 본질상 내재적 한계가 있다. 수사기록 중 열람·등사가 허용되는 것은 피고인에 대한 수사의 범위 내에서 수집된 것으로서 장차 법원에 증거로 제출될 서류,
증거물 등과 같은 피고인의 공격과 방어의 준비를 위하여 필요한 부분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검사가 보관중인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는 당해사건의 성질과 상황, 열람·등사를 구하는 증거의 종류 및 내용 등 제반 사정을 감안하여 그 열람·등사가 피고인의 방어를 위하여 특히 중요하고 또 그로 인하여국가기밀 누설이나 증거인멸, 증인협박, 사생활침해, 관련사건 수사의 현저한지장 등과 같은 폐해를 초래할 우려가 없는 때에 한하여 허용된다고 할 것이다."

(현재 1997. 11. 27. 94헌마60), 또한 현재 2010. 6. 24, 2009헌마257.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피구속자의 권리는 피구속자를 "조력" 변호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유명무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피구속자를 조력할 변호인의권리 중 그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피구속자가 변호인으로부터 조력을 받는다는 것이 유명무실하게 되는 핵심적인 부분은, "조력을 받을 피구속자의 기본권"과 표리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핵심부분에 관한 변호인의 조력할 권리 역시 현법상의 기본권으로서 보호되어야 한다....구속적부심절차에서 피구속자의 변호를맡은 청구인으로서는 피구속자에 대한 고소장과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열람하여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피구속자가 무슨 혐의로 고소인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피구속자가 수사기관에서 무엇이라고 진술하였는지 그리고 어느 점에서 수사기관 등이 구속사유가 있다고 보았는지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구속적부심절차에서 피구속자를 충분히 조력할 수 없음이 사리상 명백하므로 위 서류들의 열람은 피구속자를 충분히조력하기 위하여 변호인인 청구인에게 그 열람이 반드시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되는 핵심적 권리로서 청구인의 기본권에 속한다 할 것이다."

(현재 2003. 3. 27. 2000헌마474)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와 더불어 정신적 자유의 근원을 이룬다.
이들 자유권들은 도덕적·정신적·지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위한 기본조건이다.

양심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양심"이란 무엇이며, 사상, 종교, 세계관·가치관 등과 같은 유사개념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양심의 형성은 널리 종교, 사상, 
세계관 등에 기초하여 이루어질 수 있고, 종교나 사상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구의 역사에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종교의 자유와 함께 주창되고, 발전되었다. 
이들은 그 형성의 계기가 무엇이든내면에서 형성된 진지한 신념(belief)을 보호하려는 점에서 같다. 이런 점에서,
종교, 양심, 사상의 자유를 병렬적으로 규정하고 같은 
선상에서 보장하는 입법례를 참고할 만하다. 
이 경우 이러한 정신적 자유들을 통합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상이한 보호영역들의 틈바구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호의 흠결을 막을 수있는 장점이 있다.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양심의 자유를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양심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추구하는 가치적 • 도덕적 마음가짐으로, 개인의 소신에 따른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 형성과 변경에 외부적 개입과 억압에 의한 강요가 있어서는 아니되는 인간의 윤리적 내심영역이다. 보호되어야 할 양심에는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윤리적 판단도 포함될 수 있다(현재 2005. 5. 26, 99헌513, 2004헌마190, 판례집 17-1, 668, 684). 나아가 ‘양심상의 결정‘이란 선과악의 기준에 따른 모든 진지한 윤리적 결정으로서 구체적인 상황에서 개인이 이러한 결정을 자신을 구속하고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양심상의 심각한 갈등 없이는 그에 반하여 행동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2004. 8. 26, 2002헌가1, 판례집 16-2상, 141, 151)."

(현재 2008. 10. 30. 2006헌마1401)

집시법 제10조는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 
즉 야간 옥외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야간의 특수상황으로 인해 기본권 제한이 강화될 수 있다고 보아 이를 합헌이라 한 바 있었으나(현재 1994. 4. 28. 91헌바14),
야간 옥외집회의 금지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다(현재 2009. 9. 24. 2008헌가25,판례 변경)
 과잉금지원칙 위배의 주된 이유로는, 야간 옥외집회의 
폭력집회 위험성은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 막연한 우려에 불과하다는 점, 오늘날 야간조명이 충분하고 야간생활이 
보편화 일상화되었다는 점, 직장인이나 학생의 집회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박탈하게 되는 점을들고 있다.

허가제 여부가 문제되지 않는 야간 시위금지에 대하여는, 
과잉금지원칙위반을 이유로,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의 시위‘에 적용하는 한 위헌이라는 한정위헌결정이 
내려졌다(현재 2014 3. 27, 2010헌가2).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자유권으로서 대국가적 방어권으로서의 작용을 가짐은 물론이나 대사인적 효력도 가진다. 
오늘날 민간기업체, 금융기관, 의료기관,
정보통신망 사업자 등을 비롯한 각종 사적 주체들은 그 업무처리와 이윤 창출을위하여 방대한 개인정보를 수집 · 축적 · 처리하고 있다. 
스마트폰, CCTV, GPS, SNS, Cloud Computing 등의 
기술 확산은 사인에 의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침해 문제를 더욱 심각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반면에, 동의권을 통
하여 정보통제력을 확보하려는 것은 사적 시장에서는 명목상의 보호장치에 그칠 수 있다. 취업, 서비스 이용 등의 
사적 거래에서, 특히 시장에서의 지배력이 동등하지않을 
경우 동의유보는 형식적 정당화에 그칠 우려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사인에 의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침해로부터 정보주체를 보호할 기본권보호의무를 진다. 
개인정보 보호는 더 이상 사적 자치에 맡겨둘 수 없는 
국가의 과제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입법으로, 개별분야에 관한 것으로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등이 있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일반법으로 ‘개인정보 보호법‘이 제정되어 
2011. 9. 30.부터시행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단순한 개인식별번호에서 더 나아가 표준식별번호로 기능함으로써, 개인에 관한 정보가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여 구축되고 그 번호를 통해또 다른 개인정보와 연결되어 결과적으로 개인정보를 통합하는 연결자 (key data)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개인에 대한 통합관리의 위험성을 높이고, 종국적으로는 개인을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관리대상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으므로 주민등록번호의 관리나 이용에 대한 제한의 필요성이 크다... 주민등록번호 유출 또는 오·남용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피해 등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일률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될 수 있다."

(현재 2015. 12 23. 2013헌바68)

정당한 보상‘이란 ‘원칙적으로‘ 피수용재산의 객관적인 재산가치를 완전하게보상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완전보상을 뜻하는 것으로서, 재산권의 객체가 갖는객관적 가치란 그 물건의 성질에 정통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거래에 의하여 도달할 수 있는 합리적인 매매가능 가격, 즉 시가에 의하여 산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헌법 제23조 제3항에 규정된 ‘정당한 보상‘의 원칙이 모든 경우에 예외없이 개별적 시가에 의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거듭, 토지의 경우에는 그 특성상 인근 유사토지의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하여 토지의 가격형성에 미치는 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합리적 조정을 거쳐서 객관적인 가치를 평가할 수밖에 없음을 전제로, 토지수용으로 인한 손실보상액의 산정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한 것이 헌법상의 정당보상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아니라고 하였다."

(현재 2002. 12. 18, 2002헌가4)

‘사회국가‘가 무엇인지 분명히 개념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국가원리에는 상이한 전통과 요청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사회국가를 이해하는 모델도 상이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사회(적)‘(sozial) 이란, (국가가 개입하여) 사회적·경제적 약자와 근로대중의 생존과 복지를 보호하고 공정한 분배를 지향하는 것을의미하므로, 사회국가란 이를 국가의 과제로 인정하는 국가, 다시 말해서 국가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특히 사회적·경제적 약자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물질적 급부 등의 적절한 조치와 배려를 하는 것을 그 목적과 과제로 삼는국가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질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승인,
요구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개입하는 사회질서)의 대표적 영역은 재화질서, 시장질서, 노동질서이다.

자유주의 법치국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장을 목표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원리와 제도를 구상하였지만, 
자유의 실질적·물질적 조건이 마련않으면 그러한 법치주의적 보장은 공허할 수 있다. 사회국가원리는 자유의 실질적 
조건 마련을 국가의 과제와 의무로 인정하는 국가이다. 
물질, 생존의 기초 없는 자유, 사회정의, 인간존엄은 있을 
수 없으므로 실질적 법치국가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법치국가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회국가는 평등, 특히 경제적, 실질적 평등을 지향하고 박애와 연대의 
정신을 중시하는 이념에 터잡고 있다.

자유주의 법치국가가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과 시민사회의 자유와 이익을보호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국가가 최대한의 자유‘라는 기치 하에 국가의 기능을소극적인 것에 한정하려 한 것에 반해, 사회국가에서는 실질적 자유와 평등의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가 시민사회나 시장의 문제에 개입하고 공정한 분배구조를 창출하려 하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국가활동이 수반된다.

"우리 헌법은 사회국가원리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헌법의 전문, 사회적 기본권의 보장(헌법 제31조 
내지 제36조), 경제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유도하고 재분배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는 경제에 관한 조항(헌법제119조 제2항 이하) 등과 같이 사회국가원리의 구체화된 여러 표현을 통하여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였다. 
사회국가란 한마디로,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하여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국가이다."

현재 2002. 12. 18. 2002헌마52)

헌법 제6조 제2항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규정하여 외국인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라고 함으로써 상호주의원칙에 따라, 즉 상대국의 한국 국민 보장에 상응하여 
그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할 것임을 선인하고 있다.
외국인의 지위에 관한 법률로는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등이 있다.

외국인의 법적 지위는 외국인이 기본권의 주체가 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외국인의 기본권주체성 여부는 개별 
기본권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하는데, 인간으로서의 권리의 경우에는 외국인이라도 그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고있다.외국인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주체가 아닌 경우에도 법률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예: 공직선거법에 의한 지방선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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