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학 에세이




















































법리(doctrine)는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실정법과 판례 또는 학설을 소재로 
만들어진 구체적 법명제들의 체계적 집합이다. 
법 도그마틱(Rechtsdogmatik) 또는 법적 논리이다. 
실정법으로서의 민법은 민사 법리의 집합체이다. 

실무(practice)는 법률가가 실제 사건을 대상으로 
하여 이에 관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업무수행과정이다.엄밀히 말하면 실무는 이론이나 법리와는 다소 다른 
영역에 위치한다. 이는 법적 삼단논법의 관점에서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법적 삼단논법은 대전제에 해당하는 법규범을 확정하고(제1단계), 소전제에 해당하는 사실관계를 확정한 뒤(제2단계), 소전제인 사실관계에 대전제인 법규범을 
적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이다. 이론이나 법리는 법규범의 확정과 관련되므로 제1단계에 
속하는 요소들이다. 실무는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규범을 여기에 적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것과 관련되므로 
제2단계와 제3단계에 속하는 요소이다. 
이처럼 이질적인 단계에 속하는 실무를 같은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여 이론이나 법리의 개념과 대조하는 
것은, 실무가 규범(norm)과 현실(reality)을매개하고, 
나아가 규범을 현실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등
이론이나 법리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또한 법의 풍경을 삶의 풍경과 최대한 일치시킬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법리는 법적 안정성을 증진하고, 행위지침을 제공한다.
법리는 민사재판 이전 단계에서 사람들의 행위를 
적정하게 유도하여 분쟁을 예방한다. 

일단 분쟁이 발생하면, 법리는 법관에게 유용한 판단지침을 제공하여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억제하고 법률해석을 균등화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예측가능성을 부여한다. 또한 법리는 분쟁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벌어지는 논의의 합리적 출발점을 제공함으로써 법관이 백지상태에서 판단기준을 정립해 나가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고 그만큼 사회적 비용을 줄여준다. 법관과 변호사들은이미 서로에게 익숙한 법리의 토대 위에 서서 다음 단계로 전진할수 있다. 법리는 더 질 높은 논쟁을 벌일 수 있도록 안정적인 논쟁의 판을 깔아 준다. 이처럼 미리 체계적으로 정리된 법리 체계가있다는 것은 법관의 판단재량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오히려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제고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에서는 긍정적이다.

법리가 이러한 기능들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고정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즉 법리가 너무 변덕스럽거나 
경박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만약 법리가 공고함과 
안정성을 상실한다면 법리의 순기능은 상당 부분 감소될 
것이다. 다행스럽게 민법의 경우에는실정법뿐만 아니라 
이를 소재로 한 판례들이 대량 축적되어 있는관계로 상당히 구체화되고 구조화된 법리 체계가 존재한다. 재판실무에서 이러한 법리 체계에 의지하는 정도나 빈도도 매우 높다. 
물론 법리는 만고불변의 것이 아니어서 사후적으로 수정 · 
변경될 수도있다. 법리도 진화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법에 관련된 법리중 상당수는 끊임없는 검증의 
세파 속에 살아남아 확립되어 왔다는점에서 일단 그 보편적 타당성이 추정된다. 따라서 법리의 수정 내지 변경이 
주장되었다면 법리의 실질적 내용을 변경할 만한 
정당성이 있는지를 엄밀하게 검증하는 작업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다.

법리에는 유연성도 요구된다. 법리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사회현상을 올바르게 규율하기 위해서역사 속에서 발전하여 온 도구적인 틀이다. 법리는 어느 정도 고정적인 실정법에 기초하는 것이지만, 그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그 배후의 이론적, 가치적 문제나 현실 전면에 드러나는 재판실무상 문제와 연동하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이론 또는 실무의 외부적 차원에서 변화의 자극과 동력을 부여받음으로써 기존의 법리를 성찰하고 수정할 가능성도 열려 있어야 한다. 미국의 불법행위법학자 Leon Green의 표현을 빌리자면, 600년에 걸친 보통법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법리의 잔해만 남긴채 새로운 법리를 새로운 토대에 건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18) 이와 같이 법리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에서는 형식과 실질의대립으로도 상징될 수 있는 고정성과 유연성의 형량 내지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

법관은 그러한 감정적 호소의 배후에 있는 이론적인 요청을 간파하고 이러한 생활 언어를 법적 논리로 번역한 뒤 그 당부를 따질 수 있는 관대함과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판사님, 무슨 법이 이런가요?"라는 필부의 외침은 사실 법의위헌성에 대한 심오한 문제 제기일 수도 있다. 
"판사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왜 저만 법적 책임을 져야 하나요?"는 피고의 하소연은 법 앞에서의 
평등을 향한 외침 또는 현실을 배려한 주의의무의 
설정을 촉구하는 간절한 호소일 수도 있다. 
조정을 권유하는 판사 앞에서 "판사님, 무조건 계약서대로 
해야지요." 라고 밉살맞게 말하는 채권자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채 문언주의와 사회적효율성을 향한 깊이 있는 논변의 한 자락을 전개하고 있는지 모른다. 

법관은 "대외적으로는 존경받고 대내적으로는 확고부동한 위치를 누리고자 하는 국가에게 국민의 법 감정보다 더 보호하고 장려할 만한 귀중한 자산이 없다."는 루돌프 폰 예링(1818~1892) 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법률가의 작업은 곧 생활세계에서의 요구를 법적 요구로 번역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우리 법리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외국의 법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법리가 언제나 나라와 문화를 초월하는 
만고불변의 보편적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법리가 외국 법리에 뿌리를두고 있다고 하여 
특정한 외국 법리와 똑같은 모습을 지니는 것도 아니다. 
공통점도 있지만 다양함과 고유함도 있다. 

법리는 특정한나라의 역사, 문화, 현실과 상호작용하면서 
그 모습을 형성하여 나간다. 비유하자면 원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맞춘 옷을 가지고 와서자신에게 맞게 
수선하여 입는 사람처럼 법리의 수선, 때로는 공격적 해체와 재구성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규모의 수선 작업은 입법부가 하는 것이지만, 사법부도 이 작업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다. 사법부도 밖에서 들여온 법과 존재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부담을 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법관들이지난 수십 년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법리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들은 
비교법적 분석을 중요한 법학방법론의 하나로여기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특히 그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비교법적 분석은 법제 업무, 재판실무, 그리고 법학을 
지탱하여온 중요한 방법론이었다. 그러므로 외국의 
법제나 판례, 학설 등을탐구하여 그 나라에서는 어떤 
법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여해법을 도출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제한적이나마의미 있는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국제화가 급속하게 진전된 오늘날 우리의 법리나 실무가 국제적 흐름 또는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에 얼마나 가까운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여러 법 분야에서는 국제적인 
법의 표준화 노력이경주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법학자와 
실무가도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외국법 또는 국제적 흐름에 대한균형 잡힌 
시각과 최소한의 이해를 갖추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실체법을 둘러싼 경쟁은 단지 학문적, 재판실무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법제 수출경쟁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압도적 경제력과 유구한 법 전통을 앞세운 영미 법제의
수출 경쟁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몽골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의 법제 수출 
노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법제 
수출은 특별법 분야에 국한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법제 경쟁은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국제규범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UN에서 만드는 각종 협약이나 
모델법이 국제규범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다수 국가들을 수범 대상으로 삼는국제규범 작성 
과정에서의 법제 경쟁은 특정 국가를 향한 법제 경쟁과 
다른 양상을 띤다. 특정 국가를 향한 법제 경쟁은 관련 
국가의 경제적 지위와 영향력, 양국간 역사와 문화의 
유사성, 과거의 학술적, 법제적 교류 경험 등 수많은 
법제 외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국제규범 작성 과정에서의 법제 경쟁도 이러한 법제 
외적인요소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특히 국제사회에서의 발언력은 그 나라의 국력과 비례하고, 이는 국제규범을 
만드는 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론의 역할은 법리나 실무의 역할과 대비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론과 법리는 특정한 사건에서 한걸음 떨어져 
추상화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에 법리는 넓은 의미의 이론에 
포함된다. 하지만 대체로 법리는 특정한 법 분야를 
대상으로 구체적 적용이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이론은 많은 경우 법 분야를 망라하여 포괄적으로 
전개된다는 차이가 있다.

한편 실무는 특정한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론이나 법리와 구별된다. 즉 이론과 법리가 실재하는 
사회현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이를 관조하는 것이라면, 
실무는 법과 사회현상의 접점에 직접 서 있다. 
이론은 법의 자양분을 제공하고, 법리는 법의 주된 
모습을 형성하며, 실무는 사건과의 맥락 아래에서 
법을 구체화한다.

이론이 마그마(magma), 법리가 지하라면 실무는 
지표에해당한다. 이론, 법리, 실무는 각각 가치, 논리, 
직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이론, 법리, 실무는 
관념적으로는 별도의 영역으로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하나로 얽혀서 작동한다. 따라서 이들은독자성과 
유기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론은 법리와 실무의 한 발자국 뒤에서 이들을 
정당화해주는기능을 수행한다. 재판에서 등장하는 
쟁점들은 그 껍질을 하나씩 벗겨나가면 궁극적으로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또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가운데에서 법원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귀착되는 때가 많다. 

법관은 이러한 결정적 순간에 이론을 돌아보고 
의지하여야 한다. 이론이 구체적인 문제에 대하여 항상 
구체적인 답변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를 근본적인 가치의 거울에 비추어 보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법해석학의 바탕에 흐르는 
변화의 동력으로 기능한다.

"모든 판사의 판결이유는 그 자체가 법철학의 
한 단편이다(Anyjudge‘s opinion is itself a piece of legal philosophy). "라는 유명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법관은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어떤 법리를 실제 사건에 적용함에 있어서 그 배후에 있는 가치의 무게를 판단한다. 

특히 법관은 어려운 사건 (hard case)을 처리하면서 
그러한 고민을 한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사건들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판단을 해야 한다. 법관들이 이와중에 겪게 되는 고민은 
고답적인 영역에서 운신하는 법학자들의고민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치열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모든 것을 하나의 핵심적인 비전, 즉 명료하고 일관된 하나의 시스템과 연관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런 시스템은 모든 것을 조직화하는 하나의보편 원리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런 시스템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이해하고 생각하며 느낀다.

다른 한 부류는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 목표들은 흔히 서로 관계가 없으며 때로는 모순되기도 
한다. 물론 심리적이고생리적인 이유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관계이지만 도덕적이고 미학적원리에 근거한 관계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행동지향적이며, 
생각의 방향을 좁혀가기보다는 확산시키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그들의 생각은 산만하고 분산적이다. 또한 다양한
면을 다루면서 아주 다채로운 경험과 대상의 본질을 
포착해나간다.
그러나 그들은 찾아낸 본질을 받아들일 뿐, 모든 것을 포괄적이며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의 비전에 그들 자신을 맞춰가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런 비전은 간혹 자기모순적이며
불완전하며 때로는 광적인 경향을 띤다.

-이사야 벌린 지음, 고슴도치와 여우

민법의 기본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개인과 공동체의 
상호관계일 것이다. 민법의 3대 기본 원리라고 일컬어지는 사유재산권 존중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은 대체로 개인의 자유를 넓게 보장하려는 사상적 기초 위에 서 있다. 한편 이러한 원칙의 적용 범위를 수정하려는 그 이후의 움직임은 대체로개인의 자유가 과도하게 강조됨에 따라 발생하는 공동체 차원의폐해를 최소화하려는 사상적 기초 위에 서 있다. 따라서 민법의기본 원리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의 배후에는 자유주의적 사상과 공동체주의적 사상, 또는 개인과 공동체의 긴장관계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공동체주의자들은 개인의정체성과 성장에 있어서 공동체에 존재하는 사회 제도 또는 덕의윤리 (virtue ethics)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유주의적 정의이론이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해 편향된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을 주장하여 왔다. 이러한 최근의 흐름은 "근대 개인주의의 보편화에 따른
윤리적 토대의 상실, 즉 고도산업사회화에 따른 도덕적 
공동체의 와해와 이기적 개인주의의 팽배에 의한 
원자화 등의 현상에 대한불만의 이론적 표출"이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문제는 비단 정치철학뿐만 아니라 법철학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민법학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표현에 따르자면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긴장관계는 "개인의 공동체적 관련성과 공동체에의 귀속성(Gemeinschaftsbezogenheit und Gemeinschaftsgebundenheit der Person)" 라는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10)이러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는 법질서 전체의 차원에 구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므로 민법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에계약법이라는 이름의 성문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민법의 많은 조항들은 계약 또는 그 상위 개념으로서의 법률행위에 대해 규정한다. 이러한 조항들을 다루는 민법 분야를 편의상 계약법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계약법은 근대 민법의 핵심 정신을 직접적으로 담고 있는 
분야이다. 계약법은 태어날 때부터 또는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사회질서 속에서 타율적으로 결정된 신분(stanus)이 아니라 자기 의사에따라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타인과 
체결하는 계약 (contract)이 그 개인의 법적 운명을 결정하는 지표가 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 이념을담고 있다. 
개인의 법률관계는 신분제가 표상하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계약이 표상하는 수평적 관계라야 한다는 평등주의의 이념을 담고 있다.

계약법은 계약을 탐구대상으로 삼는다. 계약은 계약 당사자들의 자율적 합의에 의해 성립된다. 이를 통해 계약 당사자는 외부세계의 법질서와는 별도로 그들 세계의 법질서를 사적으로 형성한다(이른바 ‘private ordering). 헌법재판소의 
표현을 빌리면, 사적 자치의 원칙은 "인간의 자기결정 및 
자기책임의 원칙에서 유래된 기본원칙으로서, 법률관계의 형성은 고권적인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법인격자 자신들의 의사나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원칙"이다.

이로써 인간이 자신의 인격을 발현하고 스스로의 법적 
운명을 결정할 자유가 보장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상호작용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신장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의존엄성이 제고된다. 이러한 계약의 
본질과 기능에 비추어 볼 때, 계약법은 당사자의 자율을 
승인할 뿐만 아니라 이를 최대한 관철시키고 강화하는 
규범체계라야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자율 패러다임이라고 표현하기로 한다.

자율 패러다임은 계약법의 기본 패러다임이다. 계약법의 
전반을 관통하는 계약자유의 원칙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대표적 표현이다.

우리 민법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민법 조항들이 이 원칙을 당연한 
전제로 삼고있다. 

예컨대 반사회적 법률행위의 무효에 
관한 민법 제103조나 폭리행위의 무효에 관한 민법 
제104조는 법에서 정한 테두리 내에서는 당사자들이 
계약을 자유롭게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당연한 전제로 
삼고 있다. 계약자유의 원칙을 선언하지 않은 채 그것이 
제한되는 경우만 열거하는 태도도 역설적으로 계약자유의 원칙이 당연하다는 점을 나타낸다. 

임의규정보다 당사자의 의사가 우선한다고규정하는 
민법 제105조 역시 그러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민법의
대원칙으로 일컬어지는 사적 자치의 원칙의 계약법적 
발현이다. 사적 자치의 원칙은 "개인이 자신의 법률관계를 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형성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이는 "인간의 자기결정및 자기책임의 원칙에서 유래된 
기본원칙"으로서, "법률관계의 형성은 고권적인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인격자 자신들의 의사나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자율 패러다임의 정당성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총론의 영역에서 각론의 
영역으로, 이상을 논하는 장에서 현실을 논하는 장으로 
내려오면 논의 양상은 사뭇달라진다. 이 패러다임은 어떤 
영역에 적용되어야 하는가? 그 운신의 폭은 어디까지인가?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자율성인가? 이를 고양하는 길은 
무엇인가? 한계선상에 있는 구체적 사례의 맥락에서
이러한 질문이 주어지면 사람마다 서로 다른 해답을
내놓을 것이다. 자율 패러다임 또는 사적 자치에 대한
추상적 이해는 비슷하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 이해는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율 패러다임으로 계약법의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 계약은 사적(private) 이지만, 계약법은 
공적(public)이다. 계약법 내에도 당사자의 의사가 아니라 
법률의 규정이 지배적 역할을 수행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사회질서 또는 이를 실정법화한 민법 내외의 강행규정들에 의해 자율에는 일정한 테두리가 지워진다.
특히 계약의 체결 단계가 아니라 구제, 소멸 내지 청산 
단계에 이르게 되면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형성되는 
법률관계의 역할이중요해진다. 한편 임의규정에는 공정이나형평과 같은 사회적 가치가 녹아들어가 있다. 이는 비록 
당사자의 의사에 의해 배제할 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사자의 계약관계에 고스란히 영향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율 패러다임의 적용범위에는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

제어되지 않는 자율은 객관적인 제3자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오히려 당사자나 사회에 해악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해악이 관찰되거나 예견된다면 이를 바라보는 
공동체는 개인의 자율을 중시하여 이러한 결과를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자율을 일정부분 제어하더라도 
이를 막을 것인가? 후자의 입장에 서면 계약에관한 
자율의 폭을 제한하면서 그로 인해 생긴 빈 공간에 국가가 
후견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다. 계약법에 있어서 이러한 
후견적 관여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도모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을 후견 패러다임이라고
표현하기로 한다.

후견 패러다임은 자율 패러다임과 상호보완관계에 있다. 
우선자율 패러다임이 계약법의 기본 패러다임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계약법도 법질서의 일부이므로 필연적으로 사회관련성을 가지는 이상 자율 패러다임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따라서 후견 패러다임에 따른 보완이 반드시 요구된다. 
이미 계약법은 자율을 한계지우는 다수의 강행규정들을 
담고 있어, 이미 그 범위 내에서 후견 패러다임을 승인하고 
있다. 또한 자율 패러다임이 기초하고 있는 인간상의 
현실성이 의심받으면서 후견 패러다임이 운신 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우선 계약의 구속력 근거를 ‘자기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련성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그 첫 번째 단계이다. 대표적으로 상대방의신뢰보호를 계약법의 핵심영역에 끌어들이려는 사고를 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고를 과연 후견적 사고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또한 계약법에서 
신뢰의 문제는고유한 의미의 후견의 문제와 구별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신뢰보호의 사고에서 후견의 맹아적 요소도 발견된다. 계약의 관련자들을 ‘단일한 계약 당사자 계약 
당사자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계약 공동체 계약 공동체 
바깥에 있는 거래사회나 국가 등 더 큰 의미의 공동체‘로 
단계화해 본다면, 신뢰보호의 이념은 가급적 단일한 계약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를 최대한보호하고 관철시켜 
주려는 사고방식으로부터 상대방의 신뢰보호를위해 
계약 공동체의 합리적 규율을 도모하려는 사고방식으로의 이행을 수반한다. 여기에는 자기지향에서 공동체지향으로 옮겨가는 후견 패러다임적 요소가 숨어 있다.

실제로도 신뢰보호의 폭은 자율보호의 폭에 반비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대 계약체결 전 단계에서 계약체결에 대한 상대방의 신뢰보호의 폭을 넓힐수록 ‘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할 자유‘의 폭은 줄어든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신뢰보호는 의사가 아니라 법에의한 
요청이라는 이유 때문에 신뢰를 중시하는 계약이론은 의사를중시하는 계약이론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독일에서는 1861년 예링(Jhering, 1818~1892)이 계약체결상 과실책임(Culpain contrahendo)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면서 신뢰책임론의 토대를 마련한 이후,
계약법에 있어서 신뢰책임(Vertrauenshaftung)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44) 미국에서는 1932년 
제1차 계약법 리스테이트먼트 제90조45) 에 약속에 의한 
금반언(promissoryestoppel)의 원칙이 수용되어 
약인이 없어도 약속에 따른 신뢰보호를 근거로 계약을 
강제할 길이 열렸고,46) 1936년에는 풀러 (Fuller,
1902~1978)가 계약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본질은 
계약 당사자의 신뢰를 보호하는데 있다고 주장하면서, 
의사주의의 압도적 영향력아래에 있던 미국 계약법학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계약기간의 장기성도 영향을 미친다. 계속적 계약에서는 
계약체결 시에 당사자들이 계약기간 동안 발생할 변수들을 완전히 예측하여 이를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계약기간에 걸쳐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과거에 규정된 계약관계의 틀에당사자를 묶어놓는 것이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또한 이로 인해 이익을 보는 당사자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계속적 계약에서는 
사정변경의 원칙이나 각종 부수의무의 부과, 신뢰보호의 
필요성 등 당사자의 의사만으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관계지향적 요소들이 더욱 선명한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는 속성상 후견을 불러들이기 쉽다.

후견을 불러오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클수록 
후견이 관여하기 쉬워진다. 이 역시 사회의 가치 체계에 
따라 후견의 폭도달라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대주의가 
강한 유럽이 자유주의가 강한 미국에 비해 계약법에 
있어서 후견의 폭이 크다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콩 하나라도 나누어 먹고, 백짓장 하나라도 함께 드는 
우리문화 속에서는 유달리 ‘손해의 공평한 분담‘도 강
조되기 쉽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아무래도 계약법에도 
영향을 미쳐 계약해석이나 계약위반에 대한 구제수단, 나
아가 법원에 의한 화해적 해결이 가지는 역할과 비중에도 
순차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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