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가운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두고 가장 큰 논란을 야기한 사람은 제17대 대통령 이명박과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건국 60년 기념사업과 건국절 제정 시도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건국 100주년 선포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1948년 정부 수립과1919년 임시정부 수립‘으로 다르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였다.
여기에 역사 교과서‘ 논쟁이 더해지면서 진보와 보수진영 간의 이념대결이 빚어졌다. 그 갈등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건국과 역사 교과서 문제를 두고 벌어진 논쟁을 학계와 언론에서 ‘역사전쟁‘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짐작할 수가 있다.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1948년 8월 15일이라는 ‘1948년 건국설‘은정치학자인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었다. 1998년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아 출간한 《대한민국 건국사》에서 처음으로 ‘1948년 건국설‘을 주장했던 그는 ‘건국절 제정‘을 둘러싼 역사전쟁의 거대한 폭풍이 한 차례 지나간 2016년 "건국일이없는 대한민국은 생일도 없는 국가"라고 비판하면서 ‘건국 논쟁‘을재점화시켰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70년이 되어간다. 건국의 역사가 70년이 되는 국가에서 조국의 건국일이 언제인지 모르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대한민국말고 또 있을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건국 후 67년이 넘도록 건국일이 언제인지를 국민에게 정확히 가르쳐 주지 못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국가이다.

‘1948년 건국설‘의 또 다른 주창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이영훈 교수이다. 이영훈은 2006년 7월 <동아일보>에 실은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칼럼을 통해서 "그해(2008년)부터 지난 60년간의 광복절‘을 미래지향적인 ‘건국절‘로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대한민국은 모든 나라에 있는 건국절이 없는 나라이다. 나에게 1945년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우리 2000년의 국가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주권‘을 선포했고, 국민 모두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 대다수의 민초에게 조선 왕조는 행복을 약속하는 문명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
그날에 찾아왔다. 우리도 그날에 국민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건국절을 만들자."

성신여대 김영호 교수는 "분단 극복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국사학계의 역사관이 분단사관과 통일지상주의 역사관이어서 건국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비판하면서 "대한민국의 탄생과 발전과 시련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를조망하는 새로운 역사 인식으로서 건국사관 정립의 필요성을 주창하였다.

지금까지 왜 건국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지 
못했을까요?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자인 에릭 보글린(Eric Voegelin)의 ‘현실의 일식 현상‘이라는 용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보글린은 현실을 왜곡하여 인류를 파탄으로 몰아간 현대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어떤 사상이나 역사 인식의 허구성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역사관은 분단사관과 
통일지상주의 역사관이었습니다.
분단 상태가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은 근대국가적 의미에서 미완성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하고, 건국조차도 조국의 분단을 불러 온 민족분열 행위로 간주합니다. 이에 비해 
건국사관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발전과 시련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를 조망하는 역사 인식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논쟁은 곧 헌법을 둘러싼 논쟁이다. 한시준의 주장처럼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명문화하였다. 이것이 1919년 건립된 대한민국을 1948년에 재건한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면서 역사적으로 ‘1919년건국설‘을 뒷받침하는 명분으로 이해되었다. 그뿐 아니라 1987년에개정된 현행 헌법의 전문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되어 있어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계승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헌법은 1919년건국을 명문화하였으며, 1948년 건국은 이러한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측의 논거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헌법학자인 서울대 김철수 명예교수는 "헌법 전문도 독립정신의 계승을 말하고, 대한민국의 재건이라고 하는 점에서 임시정부의 종말을 인정했기에 임시정부가 계승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계승‘과 ‘재건‘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정신이나 사상적인 
측면에서의 연속성을 말하는 것이지,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법적인 동일체를 나타내는 
말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현재는 2001년 <한일어업협정과 관련한 판결문>에서 
헌법 전문에3·1운동을 계승한다는 것은 ‘연혁적 · 이념적 
선언‘ 이라고 판단했다.
이 결정은 3·1정신과 이를 바탕으로 수립된 임시정부는 
1948년 건국에 대한 ‘연혁적 이념적인 기초‘에 불과하고, 
국가로서의 법적인효력은 없다는 것을 암시한 취지로 
원용될 수가 있다.

역사적으로 1919년 9월 6일 상해 임시정부는 
한성 정부와 노령 정부를 통합하는 절차를 거쳤다. 
개헌 형식을 거쳐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국호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대한민국을 사용했으며,
정부 조직은 한성 정부의 것을 채택했다. 
그 결과 집정관을 대통령이라는 칭호로 바꾸어 한성 정부의 조직과 각료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상해 임시정부 안에서는 이들 조직간의 내부 갈등이 여전했으며,
1925년 3월 26일 임시의정원에서는 이승만 임시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런데 탄핵 사유중의 하나가 임시정부의 결의를 부인하고 한성 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승만의 취임사는 한성 정부의 역사성을 말한 것으로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과는 무관한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된 
것이 맞다. 그렇지만 건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신용하는 "대한민국 건국은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에 걸쳐 이뤄진 역사적 과정으로 
봐야 한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으로 시작되어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완성됐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하고 
1781년까지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인 결과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이후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이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건국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것은 건국이 완성된 
정부 수립보다건국의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건국 60주년을 맞아서 시작된 건국절 제정과 건국 시점 논쟁은 역사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역사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성찰해 보면 그로 인해 얻은 교훈 또한 
적지않다.
그런 점에서 원로 사회학자인 신용하 교수의 당부는 
주목할 만하다.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1919년 건국론‘과 ‘1948년 건국론‘이 서로 상대방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다. 후자는 임시정부가 독립을 위해 
마지막까지 피 흘려 싸운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전자는 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 건국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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