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개념
제1장 범죄론의 기초
범죄의 일반적인 형태는 ‘고의의 작위범‘인데, ‘과실범‘과 ‘부작위범‘은 범죄의특수형태를 보이는 것으로서 고의범 및 작위범과는 다른 특이점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범죄론 분야에서는 고의의 작위범을 ‘기본형‘으로 삼아 이에 관한 일반론을 먼저 고찰한 후에, 범죄의 특수형태로서 과실범, 결과적가중범, 부작위범을 별개의 장(제7장)에서 취급하기로 한다. - P95
범죄의 개념
형법에는 범죄개념을 내용적으로 정의한 규정은 없다. 범죄의 개념은 실질적 관점과 형식적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데, 각각의 관점에 따라 ‘실질적 범최개념‘과 ‘형식적 범죄개념‘으로 구별된다.
형식적 범죄개념은 현행 실정형법상의 법률질서에서 도출되는 범죄개념(범죄의 법률적 의의)임에 반하여, 실질적범죄개념은 실정법을 떠나 전법률적으로 범죄의 본질을 규명해 주는 범죄개념이다(범죄의 전법률적 의의). - P95
1. 범죄의 실질적 개념
오늘날 형사법학(형법학ㆍ 범죄학 ㆍ형사정책 등)에서는 범죄의 실질적 개념을 정의함에 있어서 「법익」 (Rechtsgut) 의 개념을 빌리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법익이란 "사회의 공존ㆍ공영 조건을 확보하기 위하여 형벌로써 보호해야할 생활재(財)"를 말한다. 따라서 범죄의 실질적 개념은 "사회의 공존공영 조건을 확보하기 위하여(필요한 사회윤리규범에 위배되고) 형벌로써 보호해야 할 생활재를 침해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 P95
실질적 범죄개념의 연구대상은 범죄의 실질‘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① 법익침해를 범죄의 실질로 파악하는 ‘법익침해설‘ ② 사회윤리규범내지 법질서준수의 의무에 대한 위배를 범죄의 실질로 파악하는 ‘의무위배설‘ ③ 법익침해와 의무위배의 양자가 범죄의 실질을 이룬다는 결합설이 있다.
이 학설의 대립은 바로 형법의 보호적 기능에 있어서의 법익보호기능과 사회윤리규범보호기능의 대립, 위법성의 실질ㆍ불법의 내용에 있어서의 결과반가치론과 행위반가치론의 대립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본서의 해당분야에서 논급하는 바와 같이 양학설의 택일이 아니라 결합이 타당하다고 보아, ③의 견해가 범죄의 실질을 제대로 해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범죄의 실질적개념을 정의함에 있어서는 법익침해설에 가까운 표현이 사용되고 있을 따름이다. - P96
실질적 범죄개념은 형사법에 있어서 가이드 라인 (지침)을 제시하며, 실정형법질서에 있어서도 해석론의 지주가 된다. 형사입법자가 어떠한 행위를범죄로 규정하여 형벌을 부과할 것인지 현행형법상의범죄 중 어떠한 것이 실질적 의미에서 더 이상 범죄로 간주될 수 없는 까닭에실정형법에서 삭제해야 할 것인지(비범죄화의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서 실질적 범죄개념은 그 정책적 판단기준을 제공해 준다.
즉 실질적 범죄개념은형법 및 형벌권력의 정당성의 근거와 한계에 대한 검토를 가능하게 해 주는형사정책적 기준점이 된다. 이러한 관점을 실질적 범죄개념의 ‘형사정책적 의의‘라고 하며, 기존 형법질서의 정당함을 검증하는 잣대로서 "체계비판적 기능"을 수행한다. - P96
2. 범죄의 형식적 개념
범죄개념을 형식적으로 정의하자면, "(실정) 법률에 의하여 형벌이 부과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법률만이 범죄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 죄형법정주의상의 법률적 범죄개념이다. 형식적 범죄개념은 형법의 자유보장적 기능을 달성케 해 주는 장점이 있지만, 기존형법의 "체계내재적 범죄개념이므로 그정당성을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즉 형식적 범죄개념은 ‘범죄란 무엇이냐‘라고 하는 질문에 대하여 ‘법률이 범죄라고 하면 범죄인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법실증주의‘의 견지에 서 있으며, 전혀 범죄의 본질이라고 할 만한 것을 제시하지 못하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 - P96
형식적 범죄개념은 형법상 범죄가 성립되기 위하여 어떠한 ‘요건‘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 하는 논제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에서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성이라는 범죄의 세 가지 성립요건을 내용으로 하여, 형식적 범죄개념은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하며 유책한 행위"라고 정의된다.
그리고 실질적 범죄개념의 핵심요소였던 ‘법‘ 개념은 형법각칙상의 범죄의 본질을 밝혀 줌으로써 형법 ‘해석‘의 한 원리를 제공해 주고 각종의 범죄를 ‘체계화‘할 수 있는 분류도구가 된다. 이 점에 있어서 법익개념은 체계내재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형식적 범죄개념과도 관련을 갖는다. - P97
범죄의 성립요건·처벌요건 소추요건
1. 범죄의 성립요건
형식적 범죄개념은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성이라는 범죄의 세 가지 성립요건을 개념요소로 하고 있다. 형법총론의 범죄론 분야는 이 세 가지 범죄성립요건의 분석을 중심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그 간략한 소개에 그치기로 한다. - P97
(1) 구성요건해당성
범죄는 형법 제2편의 각칙 기타 개개의 형벌법규에 규정되어 있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구성요건이란 통상적 의미로는 "형벌을 부과할 행위를 유형적 추상적으로 파악하여 법률에 기술해 놓은 것"을 말한다. 예컨대 형법 제250조 제1항 살인죄에서 "사람을 살해한 자"라고 기술해 놓은 부분이 구성요건이다.
- P97
구체적 범죄사실(삼단논법에서의 소전제)이 추상적 · 법률적 구성요건(대전제)에 합치(포섭)되면 ‘구성요건해당성‘ (결론)이 ‘있다‘고 하고, 합치되지 아니하면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다‘고 하거나 구성요건해당성이 ‘부정‘ 또는 "배제"된다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구체적 범죄사실을 ‘구성요건해당사실‘이라고 한다. - P97
죄형법정주의에서는 구체적인 인간의 행위가 범죄로 되기 위해서는 맨 먼저 형벌법규가 규정하는 일정한 구성요건에 해당해야만 한다. 법률상의 구성요건만이 범죄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반도덕적·반사회적인 행위라고 하더라도 법률이 정하는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면 범죄로 되지 아니한다. - P98
(2) 위법성
범죄는 위법한 행위이다. 위법성이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가 전체법질서에 비추어 보아 허용되지 아니한다는 부정적 가치판단"을 말한다. 즉 특정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가 전체 법질서에 ‘모순‘, ‘배치된다고 하는성질을 의미한다. - P98
구성요건은 원래 위법행위를 유형적으로 규정해 놓은 것이므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는 일단 위법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법질서는 일정한 행위를 금지 · 명령‘ 하는 규범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고, 일정한 사정하에서 행위를 ‘허용‘하는 규범도 가지고 있다.
행위의 허용규범을 위법성조각사유 또는 정당화사유라고 하고, 형법 제20-24조에 규정된 정당행위, 정당방위, 긴급피난, 자구행위.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가 이에 속한다. 예컨대 형법 제250조 제1항 살인죄에서 "사람을 살해한 자‘라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구체적 살인행위가 정당방위로서 행해진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범죄로 성립되지 않는다. - P98
(3) 책임
범죄는 책임있는, 즉 ‘유책‘한 행위이다.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정한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위법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행위자 개인을 비난할 수 있는 유책한 행위여야 한다. 책임이란 위법행위를 한 "행위자 개인에 대한 비난가능성"을 말한다. - P98
행위자에 대한 비난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유를 책임조각사유 또는「면책사유」 라고 하고, 비난의 정도를 저하시키는 사유를 책임감경사유라고 한다. 책임무능력,정당한 이유있는 위법성인식의 결여 또는 착오,강요된 행위 등이 책임조각사유가 되고, 한정책임능력은 (임의적)책임감경사유가 된다. 예컨대 위법한 살인행위라도 정신병자의 살인행위는 책임이 조각되므로 범죄로 성립되지 않는다. - P98
2. 범죄의 처벌요건
범죄의 성립요건과 구별하여야 할 것은 처벌요건 또는 가벌성의 요건이다.「처벌요건」이란 "일단 성립한 범죄의 가벌성, 즉 형벌부과의 가능성만을 좌우하는 요건"이다.
처벌요건에는 ‘객관적 처벌요건‘과 ‘인적 처벌조각사유‘로서의 ‘소극적 처벌요건‘이 있다. - P99
(1) 객관적 처벌요건
객관적 처벌요건이라 함은 일단 성립한 범죄의 가벌성만을 좌우하는 ‘객관적 · 외부적 사실‘을 말한다. 형벌권의 발동을 저지하는 객관적 사유를 객관적 처벌(형벌) 조각사유라고 한다.
객관적 처벌요건의 예로는 파산죄에 있어서 ‘파산선고가 확정된 사실‘, 사기죄에 있어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사전수뢰죄에 있어서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된 사실‘ 등이 있다. - P99
(2) 인적 처벌조각사유
인적 처벌조각사유란 일단 범죄는 성립하였으나 ‘행위자의 특수한 신분관계‘로 말미암아 형벌권이 발생하지 않게 되는 사유를 말한다. 이 사유가 없어야만 가벌적이므로 ‘소극적‘ 처벌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인적 처벌조각사유의 예로는 친족간의 재산범죄에 있어서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등의 신분있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있어서 국회의원이라는 신분도 이에 속한다. - P99
3. 범죄의 소추요건
범죄의 성립요건 및 처벌요건과 구별해야 할 것은 소추요건(소송요건)이다. 소추요건은 범죄의 성립 및 가벌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단지 공소제기 및 소송추행의 유효요건에 불과하다. 따라서 소추요건은 원래 형사소송법의 연구대상이지만, 실체법인 형법전이 규정하고 있는 ‘친고죄에 있어서 고소‘와 ‘반의사불벌죄에 있어서 피해자의 의사‘라는 소추요건을 한도로 해서 형법학에서도 언급된다. - P100
그 밖에 ‘특별법‘상으로 당해 행정관청의 ‘고발‘을 소추요건으로 규정한 경우도있다(조세범처벌법 제21조). 행정법에 있어서 사건의 기술성·전문성이 반영된 것이다. - P100
(1) 친고죄에 있어서의 고소
친고죄란 "피해자 기타 고소권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이다. 고소가 있을 때까지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정지조건부 범죄‘라고도 한다.
친고죄를 둔 입법취지는 ① 범죄에 대하여 공소제기를 허용하는 것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명예 등의 불이익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비밀침해죄)에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 주거나 ② 범죄 (피해)가 경미한 경우(모욕죄)에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할 여지를 주려는 데 있다. 형법은 모욕죄, 비밀침해죄 등을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다. - P100
(2) 반의사불벌죄에 있어서 피해자의 의사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단 공소를 제기할 수는있으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힌 때에는 공소제기가 부적법하게 되어 처벌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해제조건부 범죄‘라고도 한다. - P100
형법은 폭행죄협박죄, 명예훼손죄, 과실치상죄 등을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군형법 제60조의 6은 소정의 폭행 또는 협박이 행해진 경우에 형법 제260조 제3항 및 제283조 제3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배제하는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 P100
4. 범죄의 성립요건·처벌요건 소추요건의 구별실익
범죄의 성립요건·처벌요건ㆍ소추요건을 구별하는 실익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 재판의 종류
범죄의 성립요건이 구비되면 원칙적으로 유죄판결을 하게 되고, 범죄의 성립요건이 결여되면 ‘무죄판결‘을 하게된다. 따라서 행위의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다든가 위법성이 조각된다든가 책임이 조각되는 등, 범죄의 세 가지 성립요건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무죄판결을 받게 된다.
그러나 범죄의 ‘처벌요건‘이 결여되면 유죄판결이지만 형벌만을 면제해 주는 ‘형의 면제판결‘을 하게 되고, ‘소추요건‘이 결여되면 공소기각 등의 형식재판을 하게 된다. (나) 고의의 대상
범죄의 성립요건 중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사실은 고의의 대상에 속하지만, 처벌요건과 소추요건인 사실은 고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 P101
(다) 정당방위의 가능성
정당방위는 ‘위법‘한 침해행위에 대하여 허용되는 것이므로, 범죄의 성립요건 중 위법성이 조각된 행위에 대하여는 정당방위를할 수 없지만, 처벌요건 또는 소추요건을 결여한 범죄에 대하여는 정당방위가 가능하다. - P101
(라) 간접정범 또는 공범의 성립가능성
범죄의 성립요건 중 구성요건해당성이 없거나 위법성이 조각되는 타인의 행위를 이용한 경우에는 간접정범이 성립될 수 있으나, 처벌요건 또는 소추요건을 결여한 타인의 범죄행위를 이용한 경우에는 간접정범은 결코 성립될 수 없고 협의의 공범 (교사범, 방조범)이 성립될 수 있을 뿐이다. - P101
(마) 형사보상청구권의 유무
헌법 제28조와 형사보상법 제1조에 의하면, 형사피고인은 원칙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때에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범죄의 성립요건 중 하나를 결여하면 무죄판결을 받아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되지만, 처벌요건 또는 소추요건을 결여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없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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