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법은 법학의 체계적 방법에 의존한다
법적 규율이 타당하려면 관련된 이익들을 적절히 저울질한 것이어야 한다. 법률문제는 종종 선악(善惡)의 대립보다 복잡한 형태를 띤다. 명백한 부정의를 피한 후에는 현실성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 - P3
정의가 곧 법이고 정의론이 곧 법학이라는 생각은 오해이다. 사회철학자의 정의론만으로 만족하기에는 대개의 법률만으로 문제는 훨씬 까다롭다. 법적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하여 이익을 신중히 형량하고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인이 법의 형성과 분쟁해결에 적절히 참여하는 가운데, 연루된 이익들을 파악하고, 이익 사이의 균형점을찾아야 한다. 어떤 이익을 우선시킬지도 생각해야 하지만, 뒤로 물러나는 이익을 어떻게 배려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 P3
법은 시간 속에 존재하므로, 현실적으로는 법적 안정성 (legalstability) 내지 법적 안전(legal security)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기존의 법과 사회제도의 연속성을 최대한 유지하고, 개인 및 사회적 삶에 개입하는 일을 최소화하면서, 합리적이고 또 자연스러운 법감정에도 어그러지지 않는 해결을 찾아야 한다. - P3
내용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도, 불필요한 변화는 금물이다. 법률가의 완벽주의가 법에 기대어 사는 당사자들을 혼란시키는 결과를 빚는 것은 법의 임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언제든지 백지상태에서 판을 새로 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도 금물이다. 법률가는 시간 속에서 법률가직역에 몸담는 존재이다. 자신의 일생이 정점에 도달한 기회를 이용하여 새 시대를 열어젖히는 일은 근본적 개혁과 역사적 단절의 시점을 임의로(또는 우연한 사정에 의해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본질상 정치적이며, 개인사를 앞세워 사회를 괴롭히는 일이다. 그런 일은 법률가의 몫이 아니다. - P4
법은 개인의 자유를 돕기도 하지만, 2인 이상이 부딪치는 상황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법도 적을수록 좋다. 그래서 법적 규율이 실험의 성격을 띠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즉, 입법이나 법의 적용이 사변적 실험(thinking exercise)이나 사회공학 social engineering으로 흐르는 일은 극히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그런데 법률가는 법의 최소화의 필요를 충분히 느끼기 어렵고, 오히려 법적 실험을 좋은 일로 여기기 쉽다. 법륜가는 법의 형성과 적용의 현장에 가까이 놓여 있어,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권력을 누리기 때문이다. - P4
자의를 억제하고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려면, 잦은 입법적 변혁이나 우왕좌왕도 피해야 하지만, 법을 명확히 정하지 않고 "개별사건별 (case by case)"로 판단하는 일도 최소화해야 한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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