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상 책임이나 형법상 책임은 책임이 성립하는 데 필요한 객관적 요건으로 ‘인과관계‘(Kausalitat)나 ‘객관적 귀속‘ (objektive Zurechnung)을 제시한다.
이러한 객관적 요건은 특정한 법적 결과가 발생하였을 때 이 결과의 원인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을 적절하게 제한한다. 말하자면 근대적 책임은 ‘인과관계‘나 ‘객관적 귀속‘을 통해 책임과 관련을 맺는 무수한 원인행위들의 복잡성을 줄이는 데 기여를 하는것이다. - P17
책임구상이 가변적인 것처럼 책임구상은 각기 다양한 차원으로 분화되기도 한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책임구상이 법적인 책임과 비법적인 책임으로 분화되는 것을 언급할 수 있다. 법적인 책임은 우리가 법체계 안에서흔히 접하는 민사책임, 형사책임 등을 말한다. 이에 대해 비법적인 책임은 법적제재를 부과하지 않는 책임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도덕적 책임을 거론할 수 있다. - P17
우리가 법과 도덕을 개념적 내용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법적인 책임과 비법적인 책임을 다음과 같이 구별할 수 있다.
우선 법적 책임은 ‘동기‘ 등과 같은 행위자의 내면적인 측면보다는 외부적인 결과에 더욱 중점을 두는 데 반해 도덕적 책임은 행위자가 어떠한 내면적인 동기로 행위를 하였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평가한다.
나아가 법적 책임은 책임의 성립요건이 법규범을 통해 ‘정형화‘(Formalisierung)되어 있는 데 반해 도덕적 책임은 책임의 성립요건이 이렇게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법적 책임이 성립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이나 형벌 등과 같은 법적 제재를 부과하는 데 반해 도덕적 책임이 성립하는 경우에는 법적 제재와 같은 직접적인 제재를 부과하지 않는다. 대신 도덕적 · 사회적 비난과 같은 간접적 제재가 부과된다. - P18
한편 비법적인 책임은 도덕적 책임 이외에도 정치적 책임이나 역사적 책임등으로 분화되기도 한다. 이때 정치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을 뭉뚱그려서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정치적 책임은 정치체계 혹은 정치적 공론장에서 이루어지는 책임귀속을 말한다.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흔히 접하는 정치가들의 책임 운운이 정치적 책임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역사적 책임은 현재가 아닌 과거를 지향하는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령 "과거사 정리를 위한 진실화해위원회" 등이 수행하는 작업 등은 역사적 책임을 새롭게 정리하고 규명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책임은 정치적 공론장에서 또는 학문체계 안에서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된다. 두 책임은 도덕적 책임과 마찬가지로 정형화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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