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그 이후 - 애플tv 플러스 드라마 원작
셰리 핑크 지음, 박중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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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며 혼란스러웠다. 꽤나 논쟁적인 측면이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05년 발생한 허리케인으로 5일동안 메모리얼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을 재구성한 책이다. 


허리케인카트리나의 발생으로 메모리얼 병원이 침수되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의 모회사인 테닛에 구조요청을 보냈으나, 그런 체게가 없었던 본사는 병원에서 자체적인 대비체계를 말할뿐이였다. 한여름 전력이 끊기고 상수도도 끊긴상태, 하수도는 역류를 시작하는 최악의 상황이였다. 병원은 미칠듯한 더위와 어둠에 갖혔고, 주방위군과의 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은 통에 왔던 헬기가 그냥 돌아가야 하는 등의 어이없는 소통부재도 존재했다. 한마디로 재난 상황에 대한 어떠한 프로토콜도 없는 상태였던 것.

그렇게 병원은 자체적인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가장 위급한 사람을 대피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증, 스스로 움직이거나 부축을 받아 움직임이 가능한 환자와 보호자의 안전을 최우선하기로 했다. 병원의 구조팀이 도착했을 때 그들을 먼저 보내고, 7층의 위중한 환자들은 나중에 대피시키겠다는 말만 할 뿐이였다. 그 5일의 끔직했던 상황이 지나가고, 그저 재난 상황에 구해지지 못한 환자들이 있었다는 것 정도로만 넘어갔던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증환자가 머물렀던 7층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던것.

그렇게 시작된 수사. 밝혀진 사실은 사망한 사람의 대다수가 DNR에 사인한 환자였고, 의식이 없는 중증환자 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체내에는 각종 안정제가 검출되었다. 밝혀진 사실은 그들을 보트가 들어오는 2층이나 헬기가 오는 옥상으로 올릴수가 없었기에 고통속에 죽어가도록 둘수 없으니 대량의 혼합 안정제를 의사들이 투여하고, 구조/비구조자들을 나눴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그런 결정을 내렸던 의사들은 보호자들에게조차 상황을 공유하거나 통보하지 않았다. 중증환자인 어머니 곁을 지켰던 보호자는 심지어 어머니는 추후 구조될 것이니 먼저 구조보트를 타고 떠나라는 의료진의 말을 믿었고, 먼저 떠난 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서명한 DNR이 어머니를 구조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였다며 흐느꼈다.

 결국 재판에 회부된 의료진 모두 풀려났다. 재난 상황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모두 민사소송을 면책한다는 법조항에 따라서 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과연 어떤 선택이 옳았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의료진의 선택이 반드시 잘못되었는가?! 라는 질문과 나 라면? 이라는 질문이 함께 한다. 

당시의 측면은 의료진만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정말 총제적 부재였다.  테닛이라는 메모리얼 병원의 모회사의 방치, 주 정부에서 역시나 재난 상황에 대한 프로토콜 부재,  고립된 병원. 놀랍지 않은가. 고작 5일동안 벌어진 이 상황이.  그 지옥같은 고립 속에서 의료진이 마주한 것은 재난 그 자체보다 비 이성적 공포가 만든 터널 시야였는지도 모른다.

 환자나 보호자가 고립되어 있는 동안 목이 말라 생수를 요구했는데 거절당했다. 비축분이 모자라다는 것.  하지만 나중에 수사 시 밝혀진 사실은 병원에는 생수/통조림/음료수가 꽤나 쌓여있었다고 한다. 뭐지. 이런 상황. 이후 언론보도에서는 병원이 약탈당해 최악의 상황이였다 사실은 아니였던 것. 또한 엘리베이터 고장 등으로 인해 환자의 이송이 힘들었다는 보도 또한 사실이 아니였다. 여러 경로를 통해 대피가 가능해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병원의 주 발전기가 홍수 수위보다 훨씬 높이 있었기에 일부 위급한 환자들에게 필요한 전력 공급은 가능했다고…


저자는 이 책을 의료진에 대한 비판/옹호의 목적으로 쓴것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그대로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시민사회의 합의가 없을 때 비상상황에서 비이성적 판단일지도 모를 판단에 의해 누군가의 생명이 맡겨져서는 안된다는 것.

당시 같은 상황에 놓엿던 코네티컷  호스피스에서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위중한 환자를 대피시킬 예정임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알렸으나, 그들은 더 건강한 사람을 최우선 대피 순위로 변경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듯 우리사회의 재난상황에 정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모두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구조 순위에 대한 문제는 적어도 우리 사회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 그래야 그 상황 안에서 슬프지만 우리가 납득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 놓이면 우리의 생은 소수 몇명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빈번하다고도 저자는 말한다. 

”이런 끔찍한 압력 하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싶은지 미리 한번 생각해보는 사치를 누릴 수는 있다.“ p.647


재난은 대비를 하여도 늘 발생을 하고, 그런 시기마다 우리는 백서를 출간하며 그런 상황에 대해 피해 및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늘 그런 상황 속에 놓일 때 해야하는 결정을 그저 소수에게 맡기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가 위중증 환자에 대해 존엄사를 논의하는 과정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환자본인/보호자/그리고 의료진/생명윤리위원회 등. 그런 것은 그만큼 우리가 한 생명에 대하여 내려지는 결정의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메모리얼 병원의 재난 상황에서 발생했던 몇몇 의료진의 결정에 대해 법적 면책에 대해 의료계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의사의 주관적 판단이 재난이라는 이유로 법적 정당성을 획득한 것 자체가 의사가 가지는 생명 윤리에 대한 위기, 그리고 환자와 의사가 갖는 믿음의 측면에서는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수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겠지만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에 몰렸을 때, 누군가의 생명은 누군가의 손에 달린다. 그것이 제도화 되었다고 한들 어쩌면 이 잔인한 선택을 오롯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고 불편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 한다.


우리는 잘되어있을까.


추천.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어야 할까? 환자들을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 죽게 내버려두었어야 할까?


당신이 도대체 뭔데. 내 동의나 허락도 없는 상태에서 내 고통을 핑계로 나를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결정한단 말인가?”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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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
박혜윤.신성준.최은경 지음 / 아몬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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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고통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일은 가능한가” 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던 책.

최근 방영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비롯해서 여러 매체를 통해 알게된 존엄사.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존엄사, 안락사라는 측면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이 책은 3명의 의사가 조력임종이라는 죽음을 놓고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보아야하는 지를 보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시작은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의다. 단순히 어떤 사례들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라는 측면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죽음이라는 결과만을 놓고 다투어야할 논제가 아니라 그것에 이르기 까지의 우리사회의 생에 대한 질/ 돌봄 등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으며 반드시 검토해야할 쟁점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의사조력임종을 채택한 국가들이 마주한 난제,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우리 문화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등까지를 읽고 있다보면 정말 내가 선택한 죽음이라는 결과를 위해 단순히 생각했던 문제가 타인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결코 가벼운 논제가 아님을 알게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선택 역시, 단순히 호흡기 연결을 종료하고, 심페소생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임종에 다다를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즉  임종기에 들어선 상태가 아니라면 연명의료중단 역시 자기선택 사항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치료결정권은 연명의료중단 뿐인데, 그렇다면 왜 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부터가 논의의 시작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예를 들어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고가의 신약이 필요한 암환자가 있다고 가정하면, 해당 환자는 가족에 대한 피해, 어려운 진료환경, 간병, 고가의 치료비 등은 환자에게 오로지 자신의 삶에 대한 “순수한 동의”라는 측면에서 성립할 수 있을까? 

결국 죽음이라는 한 인간의 마지막 결정에 대해 오롯한 자신의 결정이라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가 임종에 이르기 전까지, 소위 조력임종이라는 선택지를 떠올리기 전까지 우리는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저자는 이 대복에서 '말기 돌봄/완화 의료'의 화두를 다시 던진다. 호스피스. “죽음”과 연결지은 치료가 아니라, 끝까지 내가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평안한 삶을 위한 치료의 측면에서 호스피스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으나, 호스피스가 대안이 될 수 있을만큼 우리 사회에 보편적 접근성이 있는지를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10년전이긴 했으나 말기 암이셨던 할머니를  호스피스로 모시려했으나 서울 내에서는 3-4일 내 사망하지 않으면 퇴원해야 한다고 들었고, 경기권에서는 입원은 가능했으나 우리 가족의 접근성이 너무나 떨어지는 위치였기에  포기해야만 했다.  수도권조차 이러할진데, 지방의 현실은 더 열악하지 않을까?


결국 돌봄에 대한 의료의 공백은 가장 경제적/신체적 취약계층에게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의사조력임종이라는 것이 제도화 되었을 때 모두에게 이 제도는 정말 안전하게 이용될 수 있을까?!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나 노인 자살 1위가 대한민국인데..

’임종기’의 환자뿐 아니라  만성질환/난치병의 측면에서 본다면 운동신경장애/만성폐질환/심부전등등 임종기는 아니나 끊임없이 누군가의 손길과 치료가 평생에 걸쳐 필요한 질환을 가진 사람들 역시 돌봄이나 완화의료의 접근성을 놓고 본다면 너무나 낮은 수준의 현실 속에 놓여있다.


이 책은 이밖에도 굉장히 폭넓게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 봐야할 점을 짚고 있다. 자살과 의사조력임종의 차이, 그리고 의사조력임종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가지 현상 등. 그리고 우리가 TV에서자주 보는 스위스의 이그니타스라는 단체 등. 그리고 의사로써 가지는 딜레마. 인간생명의 존중측면에서 행했던 의료행위에서 “죽음”을 두고 내려야 하는 행위는 결국 환자에게 의사에게 가지는 절대적 믿음의 훼손 측면에서는 어떤 의미가 될지.

그럼에도 여전히 조력임종에 대해 합법화 되지 않은 나라에서 자신의 환자가 가지는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내린 몇몇의 의사와 그들의 양심고백등으로 재판에 대한 판결은 집행유예로 결론이 나기도 했지만, 그것을 지극히 의사나 환자/환자가족 의 개인적 이슈로만 언제나 묶어둘 수는 없는 상황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더 음성화 될 때 나타나는 문제 역시 존재함을 저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비류잉 작가의 “단식 존엄사”도 생각이 났고, 또다른 의미로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책도 떠올랐다. 한사람의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라는 사실이 새삼 무섭다.

깨끗한 죽음. 이것은 깨끗한 삶이라는 말처럼 어려운 일임을.

그럼에도 죽음이라는 엔딩까지 이르는 삶에 대해 개인의 문제이면서도 사회의 문제임을 다시 알게 하는 책이다. 

그렇기에 참 어렵고 아팠다.  죽음을 앞두고 있기에 더욱 남은 삶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끝내 살아야할 이유'를 찾지 못해 조력임종을 택했을 누군가의 고통을 너무 뒤늦게서야 알았다. 그 깊은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 채, 그동안 그저 쉽게 '죽을 권리'라는 측면에서 조력임종 도입을 찬성했던 나의 한없는 가벼움이 부끄러워졌다.


진짜 추천.


”삶과 죽음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개인의 자율성뿐 아니라 가족 관계와 사회적 맥락, 그리고 돌봄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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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와 시 ㅣ 클래식 리이매진드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데이비드 플렁커트 그림,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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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어디서 들어본 익숙한 이끌림에 읽은 책이다. 사실 표지가 너무... 강렬했다.  근데 이 책은 정말 이야기도 강렬했다. 이야기와 그 사이 사이의 그림이 너무 찰떡이면서도 기괴함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여기저기서 들어본 듯한 작가의 이야기는 여름을 맞는 나를 너무나도 서늘하게 만들었다.


기괴함과 어두움, 인간의 가장 저변을 드러내는 이야기들. 우리 어렸을 때 들어봤던 귀신이야기인듯한 이야기들의 모음집을 외국작가가 썼다고?! 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검은 고양이는 정말.. 오래전에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의 고전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도  이 작가의 이야기가 원형이였나보다. 진짜 검은 고양이는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들이 정말 서늘하게 다가왔다. "구덩이와 추", "생매장"을 읽다보면 죽음을 목전에 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완전히 한정된 공간 속에서 오로지 죽음만이 그 앞에 놓여진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극한의 공포에 대한 묘사는 정말 글을 읽는 내내 숨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밖에도 "고자질 하는 심장", "검은 고양이"는 가장 최악의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자 했으나, 그 감출수 없는 본성에 대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이 양심인지 정의인지는 모르겠지만,


"붉은 죽음의 가면" "절름발이 개구리"는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을 극대화한 이야기들이였다. 맞닥뜨린 위험을 회피만 한 인간의 최후와 오로지 재미와 흥미'만'을 추구한 인간의 마지막은 자신이 멀어지고자한 것들을 마주하게 했고, 오로지 추구했던 행위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M. 발데마르 사건의 진실" 이였다. 최면으로 죽었지만 살아있는 사람, 최면을 해제했을 때 드디어 마주한 물리적인 죽음.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왜 우리의 존엄사가 생각났을까. 현대 의학으로 오로지 살아있는 상태로만 존재하는 누군가의 삶은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아닐까. 충분한 논쟁이 필요한 사항이긴 하지만, 1800년도 중반의 사람이 쓴 이 책에서 나는 왜 그 논쟁이 떠오르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인간이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생과 사라는 그 경계선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인간의 두려움을 유예할 때 발생하는 기괴함을 보여주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금의 시각에서 그 유예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낳는다.


사실 제일 놀라웠던 점은 에드거 앨런 포라는 작가가 그린 이야기는 무겁고, 어둡고, 보고 싶지 않은 인간의 심연에 대한 묘사로 점철된 이야기가 주제 였다면, 시는 정 반대라는 점이다. 죽음에 대한 주제는 같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저물어가는 노을을 연상케 하는 느낌이었다. 이야기와 시가 이토록 다른 느낌을 주는 작가의 메시지는 "죽음"이라는 한 인간의 엔딩을 놓고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을 묘사할 수 있었던 그의 글들에 소름이 돋을 정도 였다.


정말 마지막 시 한편까지 흥미롭게 읽혔던 책.

뒷편의 시를 읽으며 계속 앞의 이야기가 대비되어 더 계속해서 떠올랐는지도.

무시무시한 여름밤의 서늘함이 필요하다면 단연코 으뜸!


"그러나 이 운명은 절대 알릴 수 없다는 자각, 이런 가망 없는 상황이야말로 진짜 죽음이라는 인식. 이런 생각들을 하면 아직도 박동하는 심장은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공포 때문에 가장 대담한 상상의 날개조차 펴지 못한다."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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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김희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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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가 왜 중요하죠? 중요한 건 지금 뭘 기억하고 있느냐에요. 우리가 산 세월만큼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 인생이 되거든.” p.53


이 책은 기억에 관한 책이다. “성”에 갖힌 여자들. 그곳에서 나오고도 다시 성에 갖혔던 여자들에 대한.

책의 시작은 지신영이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간병인 소희. 소희는 신영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환자를 환자로써 대하면서도, 어느덧 신영의 이야기속 이소가 되기도 새언니 주연이 되기도 하는 소희.

이 이야기는 네 여자의 이야기로 꾸며진 연작소설이다.


아버지의 폭력에 숨죽이고 살던 쌍둥이. 그중 하나의 소희다. 아버지가 죽고나서 쌍둥이와는 따로지냈지만, 쌍둥이는 늘 말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쌍둥이가 결혼을 해 다시 아버지집에 산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의아했다. 그러면서도 선뜻 그집으로 향하지 못했는데, 어느날 조카 이소의 생일케익을 사던 동네 빵집 아저씨가 쥐어주던 빵하나. 그녀는 그 빵을 보고 알았다. 그리고 매번 집앞에만 놓아주고 오던 선물을 들고 초인종을 눌렀다.


성인이 된 이소는 14살이전의 기억이 없다. 그래서 어머니의 일기장을 통해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때의 시절을 기억하려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작품활동을 하게하는 원동력이였다. 온통 빨간 화면에 그려진 알루미늄 집하나. 그녀는 왜 알루미늄을 택한 것일까.  

엄마는 왜 일기장에 그런 글을 남긴것일까. 그녀는 엄마의 일기장을 수도 없이 읽으며, 그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지만, 그래도.


주연에게는 난장이인 아버지가 있었다. 유전적인 원인으로 가진 선천적 장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존재적 쓸모를 증명하고자 살아가기에 충분한 자산이 있었음에도 끊임없이 일을했고, 끊임없는 차별을 당해야 했다. 자신에게 ‘노력‘씩이나 하고 이는 딸을 보면서 그는 슬펐다. 

딸은 대학을 가고,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런 딸이 어느날 전화를 해왔다. 회사를 다닐 수없다고, 두렵다고. 회사의 팀장이 그녀를 스토킹한 것. 그렇게 사회를 떠나 집으로 숨어든 딸은 동네에 괜찮은 이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딸이 창고가 된 방안에 숨어들어와 자고 있었다. 찾아온 사위. 사위를 달래려는 아버지는 무참히 폭행을 당했고, 아버지는 더이상 일어서 걸을 수 없었다. 딸은 그런 폭행 속에서 버텨온 것이였다.


작가님은 왜 이토록 참혹한 기억을 ‘삶‘이라고 말했을까. 잊을 수 있다면 잊어야하고, 아니면 아예 인생에서 지워버려야 할 기억들이였는데. 왜.

“언니도 지나온 시간을 굳이 잊으려 말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p.265

아마도 잊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그녀들을 그 성에서 더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그 성에서의 끔찍한 기억만이 아니라 그 성에서 같이 있었던 서로에 대한 연민이 그녀들을 살게했기 때문이였을까.


빵 하나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 주연과 이소의 손을 잡아줬던 소희도.

이 삶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딸 이소를 위해 일어서야했던 주연도.

자신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그럼에도 일어서 나아가야했던 성희도.


모두 그 성을 떠나고도 그들은 그 감옥에서 여전히  살고 있었다. 기억을 모두 잃는 병에 걸렸음에도 매번 성희에게 엉켜버린 자신의 삶을 말하는 소희. 그런 소희에게 죽기전 남기는 주연의 말들. 이 두여자가 이소에게 남기고 싶지 않은, 그래서 그녀는 영원히 이 성 바깥의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는 소망.  그리고 그 말들을 듣고 이는 성희.


이 네 여자의 이야기가 얽히고 섥힌 이 소설은 펼치는 순간 덮을 수가 없었다.

뭐라 그 시절의 일을 감히 잊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할수 없게 만들었던 먹먹한 소설.

그저 오래오래 안녕하시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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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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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이 꽤나 명랑하게 읽혔는데, 이 이야기를 다 읽고서는 이토록 내용과 잘 어울리는 제목의 "명랑함"이라니 하는 생각이 제일 처음 들었다.

누군가를 내가 돌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그를 위해 나은것인지 아닌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명랑“함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왜 저 단어를 생각나게 했을까. 제목때문만은 아닌듯.


이시봉이라는 개를 키우고 있는 나. 나는 타인이 보기엔 그저 주저앉아있는 하루라도 술을 먹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나와 이시봉이 새벽 산책을 하던 중 형집행인이라 불리는 고양이 살인마를 이시봉이 쫒아 버리는 릴스가 공개되면서부터 이상한 일이 펼쳐진다. 

동네에 고양이를 처형하듯 죽이는 인물이 있었고, 새벽 산책을 하던 이시봉이 막 또 한 마리의 길고양이를 죽이려던 형집행인을 쫒았다. 다행히 고양이는 살았고, 그 영상이 공개된 후 몇일 뒤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 

이시봉이 그들이 찾던 프랑스 왕실에서 키우던 후에스카르 계열의 비숑프리제라나 뭐래나. 국내에 단 한마리 살아있는.


그렇게 알게된 정채민이라는 알수 없는 인물.

그렇게 찾아간 비숑프레제 전문 브리더를 양성하고 그들을 돌보는 앙시앙하우스라는 곳이고, 그들은 이시봉에게 걸맞은 예우를 하고 싶다며, 그에게 이시봉을 인계받을 구체적인 계획과 액수를 제안한다.

그들의 제안에 나는 두렵다. 이시봉이 나를 떠날까봐, 그리고 그를 보내지 못하는 마음에 나의 욕심이 남아있는 것 같아서. 정말 그곳은 이시봉이 지내기에 너무나도 훌륭한 곳이였기에 그러했다.

나의 집과 달리, 나의 돌봄과는 달리.


하지만 묘하게 불편한 그들의 대화.

그리고 문득 그들 중 수의사가 말하는 한마디


”우리 대표님은 …원하는 건 다 갖고 마는 사람이에요.“ 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꼬인 데 없고 착하죠.“

그녀는 계속 말햇다.

“한데, 그런 사람이 정말 무섭거든요. 무구해서 무서워요.” p.287


아픈 할머니를 돌보던 어느날 어머니로부터 할머니의 위독 소식을 듣고 나는 리다에게 이시봉을 맡기고 할머니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위독하였으나 고비를 잘 넘긴 할머니를 보고 돌아온 날 집에 이시봉은 없었다. 리다가 그들에게 이시봉을 넘긴것.

이유는 분명했다. 어머니와 이시봉의 관계, 그리고 이시봉이 더 나은 곳에서 살길 원하는 마음, 그리고 이시봉에게 너무 메여있는 나를 위한 마음. 그 모든 것 상황을 이해하고도 나는 알았다. 내가 이시봉을 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게 다시 찾아간 곳에서 발견된 수많은 메모리얼 스톤들.


이 이야기는 어떤 자격을 뭍는 것인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한?!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결국 그 사랑에 정말 자격이란 것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했다. 이시봉의 부모였던 카이와 루시를 돌봤던 박유정. 그리고 박유정과 정채민의 관계. 그리고 지금 정채민이 세웠던 앙시암하우스의 실체등을 보고 있으면 보여지는 자격과 보이지 않는 상대에 대한 생각을 감히 누군가가 판단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했다.


아버지를 잃고도 여전히 이시봉이 가장 좋아하는 것, 그가 보내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나, 그리고 화려하게 누군가를 제대로 돌볼 수 있다고 말하며, 그를 찾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누군가. 둘중 누가 더 나은 반려인인가?! 라는 질문에 당사자 말고 누가 그 답을 할 수 있을까. 책 속 중간에 등장하는 그 비숑의 혈통을 지켜냈던  고도이의 이야기 속에 숨겨진 것은 사랑이였을까. 집착이였을까 싶기도 하는.

 그럼에도 오래동안 함께 했던 한 생명에 대해 내가 정말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생각하지도 않는 이와 그 생각에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를 보고 있자면 아이를 앞에두고 내 아이라고 말하는 두어머니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시봉이는 아마 계속 쭉 행복했을것.


이밖에도 이 소설은 저런 생각 외에도 이시봉이라는 인물(진짜 사람임..)의 등장,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채민과 이시봉(강아지)의 관계, 그리고 새로 드러나는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작가님의 서사력에 입이 떡 벌어진달까. 어떻게 "이시봉"이라는 강아지 한마리를 두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거지!? 이야~



추천.


”그제야 나는 와락, 무섬증이 들었다. 이시봉이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이시봉을 내가 더 사랑해서, 그래서 나는 무서웠다.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았다.“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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