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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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제작인 ‘혼모노’는 알고 있던 작품이다. 젊은 작가상에서 이효석 문학상에서 이미 만났었다. 제목도 그러했고 내용도 꽤나 강렬해서 인상에 깊게 남았었다. ‘잔짜‘라는 것을 부여하는 기준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했으니까. 타인의 인정을 통해 부여되는 진짜와 내가 믿는 진짜의 기준이 다르다면, 둘 중 하나는 오판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 무당이라는 직업이라면, 신할머니라는 피상의 존재에서 부여되는 조건이라면. 진짜의 기준은 누가 부여할 수 있는가?!



혼모노에 실린 성해나 작가님의 소설은 어디쯤 불편한 부분을 콕 하고 건드리는 것 같았다.
 ’길티플레저’ 김곤이라는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일어나는 불편함. 그 모임안에서 느껴지는 어쩌면 계급간의 모임. 추문일지 사실일지를 판단하지 않은채 이익과 즐거움 그 어디쯤을 두고 모인 사람들의 실체는 진실에 대한 것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삶 속에서 소소하게 외면하는 무엇에 대해 돌려까는 느낌이랄까. 나의 이익 또는 나의 이익과 맞물릴때 우리가 무엇을 외면하는가를 말이다. ‘길티플레저‘라는 제목이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구의 집”나는 이 집을 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 건축물에 대한 책을 보았었다. 그 건축물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설계 되었는지를 읽으며 인간이 어떻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작품은 그 건축물을 지은 가상의 인물 구보승과 그의 스승 여재화의  이야기이다. 책의 뒤에 평론가님도 언급했듯 이 작품은 읽는 내내 한나 아렌트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을 위한 건축‘을 하고 싶었던 평범하지만 꼼꼼했던 한 인물이 ‘인간’이라는 중심을 누구냐를 생각하지 않았을 때, 그 건축물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 지를 여실이 보여주고 있었다. 끔찍해서 자신의 이름을 실을 수 없었던 스승 역시 어쩌면 수동적 방관자여다. 
나는 이 작품과 묘하게 연결되는 것이 ’잉태기‘라는 작품이였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사고하지 않고 맹목적인 시선, 감정이 자신을 또 다른 이를 어떻게 좀먹는지를 보여주는 느낌이 유사해서 였을까. 시아버지와 자신의 딸을 두고 벌이는 묘한 경쟁심은 딸을 위해 무엇이 좋은지를 가늠할 수 없는 사태까지 이른다. 딸의 인생을 두고. 결국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맹목적인 투쟁만 남은 사태. 스스로 생각하지 않기에 망가지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책 혼모노에 실린 이야기들이 내게는 조금씩 다 까끌거렸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불편감. 불합리를 스스로 합리화하는 행동들. 이 책의 인물들이 보이는 극단의 모습이 내게도 투영되었기 때문일까.


재밌다. 
박정민 배우님의 유명한 추천사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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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파란 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9
토니 모리슨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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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흑인여성 노벨상 수상자의 최초의 작품. “가장 파란 눈” 이 책을 다른 책에서 소개하는 것을 읽고서, 토니모리슨의 “빌러비드“를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읽었었는지가 기억이 났다. 이 책 역시 그렇겠지. 싶었다. 
 책은 얇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1960년대 흑인인권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지만, 2025년 여전히 인종차별은 존재한다. “Black Lives Matter” 라는구호와 함께.

흑인소녀 페콜라는 아버지 촐리가 음주 방화로 감옥에 간 중 잠시 다른 흑인가정에 맡겨진다. 그 가정 역시 열악하다. 가난했고, 주변에는 소위 사회 가장 바깥계급으로써 일하는 노동자 집이였을 뿐이다. 하지만 페콜라는 그곳에서 자신이 살았던 집과 다른 안락함을 느낀다.
사회적 시선, 온전치 못한 가정에서 받은 폭력으로 페콜라는 스스로를 못생기고 추하게 여긴다. 이 책에서 페콜라는 주인공이면서도, 페콜라 스스로의 말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고 소비되는지만 보일 뿐. 주변에 어른이라고는 자신을 추하다 말하는 이들 뿐이다.  그래서 였을까. 그녀는 “푸른 눈”을 가지고자 한다. 아름다운 백인들의 전유물. 그런 눈을 가진다면 다른 이들이 자신을 달리봐주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품으며.

저자 토니 모리슨은 친구가 자신은 ”푸른 눈“이 가지고 싶다는 말을 듣고서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이 오로지 백인에게 맞춰져 있던 시절.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못생기고 더럽다는 이미지를 가져야했단 그녀에게 이 책은 필연적이였을까. 차마 글로는 적지 못한 일을 당하고도 페콜라를 둘러싼 세간의 날카로운 시선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인 그녀에게 향한다. 그녀가 가장 약한 사람이였으니까.

몇년전에 유행했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에 대한 비판중 하나가 어떻게 그 모든 사건이 김지영에게 일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였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보기보다 흔하다. 강도의 차이일 뿐. 이 책의 페콜라 역시 그 모든 일이 어떻게 페콜라에게 모두 일어날 수 있느냐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 토니모리슨은 
”페콜라의 삶이 비록 남다르지만 그 취약성의 몇몇 면모는 모든 여자아이 안에 자리잡고 있다“ 라고 말했다. 

흑인, 아이, 그것도 여자. 가장 최약층에서 보호받지 못한 아이가 가진 욕망. 그것이 ”푸른 눈“을 갖는 것이라는것에 감히 어떻게 고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 토니모리슨이 친구의 그 말에 이상했지만 쓸 수 밖에 없었던 이 작품은 아마도 저자 스스로가 그녀의 바램이 왜 생겨났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람이였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책 속의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가장 숨막히게 했다. 행복한 일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 뿐. 스스로는 물론 같은 인종끼리도 경멸만 남은 공동체.
“페콜라가 자기도 그들처럼 살겠다고 선언했다 하더라도, 놀란다든지 말리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p.78 - 이 글의 앞뒤 맥락이 이 공동체의 바닥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부모조차 딸을 추하게 여기고, 아버지 촐라의 말도안되는 가해행위에 대한 토악질 나는 변명을 읽고 있자면 페콜라의 ”푸룬 눈“은 그녀가 그곳을 탈출 할 수 있는 오롯한 희망이였을까. 그녀의 희망에 감히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싶었다.

내게는  빌러비드도 그랬지만 이 책 역시 매끄럽게 읽히는 책은 아니였다. 난해하다기보다 내가 당사자로써 갖는 이해의 폭이 좁달까.  
 인종차별에 대해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바에서 오는 차이..?! 라고 해야할지. 이 책은 지식으로 알았던 것을 좀더 사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느낌이다. 빌러비드가 그랬던것처럼. 이야기가 주는 힘이겠지.
 끔직하지만, 우리가 사람으로써 사람을 대해야하는 가장 근본적인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치게 하는 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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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 사람 편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케다 가요코 지음, 더글러스 루미즈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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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떠도는 민화(네트로어)를 통해 누군가의 메일로 시작된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처음 알았다. 본 책은 이미 절판된 책이기에 도서관을 통해  읽었다. 어디선가 이 책의 추천을 보고 궁금했기도 했으나, 이 책의 시작이 메일을 통해 덧붙여진 것일 줄이야.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전세계가 100명의 사람이라면, 인종/성별/국가별등등 다양한 기준을 놓고 실제 전체 인구 비율에 맞춰 인원수를 설명한다. 그림과 함께.
100명이라는 인원은 우리가 추측 가능한 수치다. 아. 이정도면 100명쯤 되겠구나라고. 그 인원안에 다양한 기준에 따라 구분이 가능하다는 점은 전체 인구수에 맞춘 비율임에도 보다 구체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
그리고 100명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는 타자화되지 않으며, 나의 일상 깊숙히 다가온다.
그렇기에 빈사나 영양부족 인구가 내 곁의 누구일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은 나에게 넘쳐나는 것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보다 가깝게 느끼게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먼나라 이야기가 내 곁의 누구라고 인식하게 하고, 그렇기에 내가 아는 누구라는 것은 경계심보다는 친숙함으로써 타자를 바라보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달까.
100이라는 숫자는 너와 나를 가르지않고, 우리라는 테두리안에서 각자를 바라보게 한다. 그렇기에 색으로 표기된 숫자는 결국 책의 표지처럼 모두라는 대상으로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우리'가 된다.

전세계 인구를 놓고 축소화 된 비율로 100명의 사람을 구분한 책이지만, 나와 다른 누군가를 혐오가 아닌 공감으로 바라보게 하고, 나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기에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식량부족/식수부족/내란 등이 새삼 달리 보이지 않게 하기도 하고.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이 다시 떠올랐다.

혐오가 짙어지고, 양극단으로 나뉘는 요즘.
무엇보다 필요한 책.
나와 타인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지금이기에.

"먼저 당신이 사랑하세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당신과 다른 모든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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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적인 경제학 - 당신이라는 자산을 지키는 자본주의 생존 교양
최재용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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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주식시장이 활황이라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현재.. 문득 나는 궁금해졌다. 세상에 돈은 정말 많은 것 같은데, 대체 왜!!!! 나는 왜 돈이 없는가.. 그렇다고 내가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나의 주머니는 이토록 빠듯한 것인지ㅠ(사실 한탄이다..)
그래서 최근 경제 관련 책을 몇 권 읽으며 든 생각은 내가 정말 경제의 'ㄱ'자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였다.(이건 매번 읽으면서 매번 하는 생각인데,, 그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사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나와 관계 없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실 채권이니 달러니 금리니 이런 말들이 '나'라는 사람이 가진 돈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가 연동 지어지지 않는 다는 느낌이랄까.
그러던 중 이 책의 제목 중 "사적인"이라는 말이 내 눈에 띄었다.

책은 오랫동안 한국은행에서 근무했던 저자가 경제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놓은 책이라고 한다.(사실 그렇기엔 그래프랑 숫자가 ㅠㅠ 천상 문과인 나로써는 그래프와 저자의 설명을 꽤나 여러번 읽었다는 것은 안비밀..) 그래도 다른 경제학 책과는 달리 이론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물건, 시장, 가격 등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1장. 가치에 대한 이야기.
나라는 가치. 즉 내가 선택하는 무엇에 따라 얻어지는 이익과 포기되는 가치의 차이에 따라 내가 얻는 이윤의 측면에서 내가 선택하는 것의 비용을 최대한으로 얻기 위해 나의 가치에 무엇을 어떻게 가치를 극대화 시켜야 하는 지를 경제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많이 놀랐고,, 다시 생각하게했던 2장. 
2장은 전략이다. 실제적으로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전략이다. 나라는 상품을 놓고 내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또는 내가 시장안에서 경제적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 어떻게 전략을 세워야하는지, 그리고 손익 계산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화폐라는 것의 시간가치를 포함하여. 
내가 놀라웠던 점은 이 챕터에서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부분이였다. 
'레버리지란 다른 사람의 돈을 지렛대 처럼 이용해 수익률을 높이는 행위를 말한다' p.123
이 챕터는 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파트는 빚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총 자산에 차지하는 부채 비율을 줄일 수도 물론 늘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던 부분이지만, 사실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책에서 말하고 있기에 놀라웠던 걸까. 특히나 최근 활황의 주식시장에 빚내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람이 많다는 기사로 인해  좀더 생생하게 다가와서 였을까.. 나는 완전 소심한 인간이라..

3장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다. 즉 경제 돈과 맞물린 시점에서인간은 어떻게 행동하고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랄까. 
흥미로운 부분은 손실 앞에서는 최소한의 손실을 위해 모험을 하지만 이익 앞에서는 극대화된 이익보다 확실한 이익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손실회피를 위한 모험을 선호한다는 측면은 떨어지는 주식에 물려 오도가도 못하는 나를 말하는 것일까.ㅠ 역시나 이익이 주는 기쁨보다는 손실이 주는 고통이 2배정도 크다니.. (3장이 눈에 확 들어온건 나의 케이스가 맞물려서 였는지도.ㅠ)
이 파트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하는 부분은 "현금 흐름" 부분이다. 내가 지금 버는 돈이 지금만을 위한 돈은 아님을, 그렇기에  나라는 상품의 재무제표를 구성함에 있어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손익계산서를 만들 때는 가장 '보수적'으로 해야 최악을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별도의 파트이지만 인플레이션을 통한 돈의 가치 변동을 읽다보면 지금의 경제가치와 미래의 경제가치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전세"라는 제도가 다시 보였다. 꽤나 큰 목돈이 어떤 경제적 이익도 없이 누군가에게 맡겨놓은 상태라는 것이 인플레이션과 맞물릴 때 얼마나 큰 손실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전세와 월세에 대해 가졌던 나의 생각이 완전히 반전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4장은 그런 우리에게 그렇다면 나라는 상품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 운용 측면을 설명한다.

 나를 파악하고, 지금 시장이 향하는 곳이 어디이며, 그렇기에 경제적으로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쥘 수 있는 시장의 지혜를 통해 투자에 있어 내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래서 인지 마지막 장에 경제의 용어가 꽤나 등장한다. 하지만 어렵다기보다는 1,2,3장을 통해 4장에서 맞닥뜨린 현실의 경제용어나 개념은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구나..라는 납득이 들게 했다. 이정도는 알아야 돈의 흐름이 보이고 시장의 패러다임을 쫓을 수가 있으니까.

뭔가 나와는 거리가 먼듯해 보이는 경제를 나의 자산과 맞물려 '사적으로' 설명해주는 책. 중간 중간 조금은 어려웠지만 어쩌면 안일했던 나라는 사람이 꾸리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제에 대해 좀 더 현실 경제를 맞물려 생각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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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자 - 전쟁, 기만, 생존
이안 부루마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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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시사 라디오에서 평론가가 친일에 대한 범위를 말한 적이 있다. 친일 행위라는 것의 범주를 어느범위까지 볼 것인가의 분쟁이 있었고, 그 범위를 정함에 있어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일제 과거청산의 실패 중 하나였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이 책이 떠올랐다. 내 책장에 고이 꽃혀있던 "부역자"
나도 궁금했다. 정말 상위 1%의 친일을 제외하고, 폭넓게  범주를 잡는다면 친일행위란 어디까지일까? 
이안부르마 역시 그 질문에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이 책에는 총 3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유대인 학살의 가장 정점에 있었던 하인리이 힘러의 맛사지사 였던 케르스텐
만주국의 공주였지만, 일본우익세력의 양녀로 스파이노릇을 했던 요시코(중국 이름은 셴위, 하지만 책에서는 요시코라 일컬음)
네덜란드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을 구해주는 역할을 맡아 그들에게 돈을 받으면서도, 일부는 독일로 유대명단을 넘기기도 했던 바인레프.
저자는 이 3명의 전기를 따라가며, 인간의 다면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도덕적 판단은 선악의 정도를 따져야 한다." p.17
어느 인간도 딱 일관된 면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프로파간다, 선동, 전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이들의 행위에 대한 결과는 반드시 악만도 반드시 선만도 남지 않는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케르스텐은 의사를 할만큼의 인물이 아니였고, 굵고 큰 그의 손은 마사지사가 되기에 적합했다. 핀란드에서 유행이기도 했고, 실제로 케르스텐의 맛사지는 굉장했었다 한다. 그렇게 힘러에게까지 그 소문이 닿은 그는 그의 개인맛사지사로 활약했다. 당시 그는 그 기술을 이용해 독일의 상류층의 인맥을 넓혔다. SS 단원으로 넣어줄 수 있다 했지만, 그는 그것을 거절했다. 독일의 패망이후 그를 나치로 볼 것인지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았으나, 그는 그의 인맥과 당시 그의 주장(유대인을 구했었다는)이 받아들여져 살아 남았다. 어떤 이들은 그가 전형적인 사기꾼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말할정도. 또한 그의 숙적의 위치에 있었던 이들이 사망한 것도 그의 전적을 숨기는데 한몫했다.

공주였지만 일본 우익의 양녀가 되었던 요시코.
일본의 만주 침공으로 당시 만주국의 왕이였던 부친 숙친왕의 14번째 딸. 중국역시 격동의 순간으로 만주국은 사라지고, 혁명군등으로 혼란스럽던 시기 그들 가족은 일본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그렇게 도음을 받은 이가 가와시마 나니와 였고, 숙친왕은 다시 만주국을 꿈꾸먀 포트아서로 향했다. 그렇게 맺게된 인연으로 요시코는 나니와의 양딸이 된다. 사실 표면상 양딸로 보내지긴했으나, "선물"의 의미가 강했다. 숙친왕 자체가 나니와에게 '선물'이라는 단어를 썼으니까. 나니와는 숙친왕이 가진 재력이, 숙친왕의 입장에서는 극우였던 나니와의뒤에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힘을 통해 만주국에 대한 이상을 놓지 못한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른 친목관계였다. 이런 관계속에서 요시코가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매끄러운 친목과 자신의 안위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자신을 늙은 이에게 보낸 노리개 였기에 자신의 성을 버리고 싶은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살았던 인물인지도.

네덜란드 유대인이였던 바인레프. 개인적으로는 가장 혼란스런 인물이다. 1차세계대전이후 부터,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유대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에 가난했고, 쫒겼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외할아버지를 만나 유대인의 현자와 학자 이야기를 배우면서 스스로를 선택받은 자로 여기게 된다.(이런 그의 인식이 그의 말미까지를 지배한 것을 보면,,) 
네덜란드에 독일군이 진입했을 때, 네덜란드는 시민들이 국가의 정책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 시민불복종의 행위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유대인 위원회가 등장하는데, 저자는 시민 복종의 상징이였다 말한다. 그들은 독일의 행정부담을 줄이기위해 유대인을 색출하고 유대인이라는 표식을 나타내는 다윗의 별을 달게했다. 유대인 위원회를 구성하는 사람 중에는 교수, 의사, 랍비등이 있었다고 하니..그들이 그런 행위를 했던 이유는 다양하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위해 또는 나치의 행위를 경감시키기 위해 그랬다고 하나,, 글쎄. 여기서 바인레프는 유대인 위원회를 가장 경멸하였으며, 그들에게 가짜 유대인 명단을 제출함으로써 유대인들이 잡혀가는 것을 막기도 했다. 바인레프가 공직에 나아가게 된 경위는 알려진바가 없으나, 나중에는 유대인들로부터 돈을 받고 그들을 안전한 해외로 빼돌려주기도 하였으나, 그 위치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위해 독일에 유대인을 넘기기도 했다. 마치 그가 그토록 경멸했던 유대인위원회처럼 말이다.

이 3명의 행적은 이후로도 꽤나 복잡하다. 그리고 그들의 복잡한 행적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2차세계대전 이후 말그대로 부역행위를 밝혀가는 과정도 복잡하다. 결국은 부역행위의 일부가 드러나 형을 살았던 인물도 있고, 3명중 어쩌면 가장 약자였고 매도되기 쉬웠던 요시코는 사형을 당해야 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머릿말이 이 책의 요시코가 등장할때마다 맴돌았다.
가장 약한고리가 가장 강하게 매도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어쩌면 그녀가 했던 행위의 원인은 그녀에게 있지 않았다. 생존의 방식이였고, 살아남는 다는 것을 배운것이 그것 뿐이였던 그녀는 군중에게 가장 매도되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나는 이 3명의 행적을 읽으며 그들을 이해해주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히 당시 나치나 일본의 잔학한 행위에 대해 자신의 안락함이나 생존을 위해 부역한 면은 분명 존재하니까. 하지만 한편 드는 생각은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 암살의 이정재의 대사가 떠오른다. '몰랐으니까. 독립이 될 줄 몰랐으니까.'라는 말을 대입해보면, 나라면.. 이라는 찝찝함은 왜 드는 걸까.
나라가 어느 편을 강요할 때, 너가 가지는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강요하듯 묻는 다면 나는 과연 저시대에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저자가 말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당신이 지은 죄를 말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이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역시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다. 나치의 부역자들, 일제의 부역자들을 찾고 처단하는 행위 역시 카오스 그 자체였다. 비교적 나치에 대한 청산이 잘 되었다고 평하고 있는 독일에서조차 시대상황은 거짓과 진실이 얽히고, 그에 대한 정치적 행위, 이념, 사상 모든것이 휘몰아치던 시대였다. 어떤 명확한 선이 보이지 않던 시기. 어쩌면 인간이란 모호함위에 서있는 것인건가. 싶기도 하다.

저자는 3명의 삶을 돌아보며, 인간의 다면적 측면에 대해 생각하게한다. 그리고 저자는 진실을 위해 거짓을 당신의 생으로 들이지 않기위해 당신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인간이 가지는 진실성 역시 너무나 상대적이기에 내가 믿는 것이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사회 속에서는 결국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것 아니면 저것. 친구 아니면 적. 이렇게 이분법적 정체성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의심은 답이 될 수 있을까. 

"책 속 부역자들의 문제는 이들의 기만이, 때로 아마도 거짓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던 기만이, 결국 자기기만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거짓 속에서 살다보면 흔히 그런 결과를 맞는다." p.439


그들이 했던 살아남기 위해 했던 행위가 자기기만이 되어버렸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어버린 세상 속에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선택이 옳지 않아도, 결과는 옳을 수 있고, 선택이 옳아도 결과는 옳지 않을 수 있는 사회라면 나는 선택과 결과 중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친일파라는 행위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정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더 많은 고민만을 남겼다.
분명 타자의 일일 때는 명확하게 보였는데, 왜 거기에 '나'를 대입하면 답을 내기 어려운 걸까. 나도 나를 기만하고 있는 걸까. 

"진실 속에 살고 자유로워지는 첫걸음은 바로 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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