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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자 - 전쟁, 기만, 생존
이안 부루마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7월
평점 :
얼마전 시사 라디오에서 평론가가 친일에 대한 범위를 말한 적이 있다. 친일 행위라는 것의 범주를 어느범위까지 볼 것인가의 분쟁이 있었고, 그 범위를 정함에 있어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일제 과거청산의 실패 중 하나였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이 책이 떠올랐다. 내 책장에 고이 꽃혀있던 "부역자"
나도 궁금했다. 정말 상위 1%의 친일을 제외하고, 폭넓게 범주를 잡는다면 친일행위란 어디까지일까?
이안부르마 역시 그 질문에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이 책에는 총 3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유대인 학살의 가장 정점에 있었던 하인리이 힘러의 맛사지사 였던 케르스텐
만주국의 공주였지만, 일본우익세력의 양녀로 스파이노릇을 했던 요시코(중국 이름은 셴위, 하지만 책에서는 요시코라 일컬음)
네덜란드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을 구해주는 역할을 맡아 그들에게 돈을 받으면서도, 일부는 독일로 유대명단을 넘기기도 했던 바인레프.
저자는 이 3명의 전기를 따라가며, 인간의 다면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도덕적 판단은 선악의 정도를 따져야 한다." p.17
어느 인간도 딱 일관된 면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프로파간다, 선동, 전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이들의 행위에 대한 결과는 반드시 악만도 반드시 선만도 남지 않는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케르스텐은 의사를 할만큼의 인물이 아니였고, 굵고 큰 그의 손은 마사지사가 되기에 적합했다. 핀란드에서 유행이기도 했고, 실제로 케르스텐의 맛사지는 굉장했었다 한다. 그렇게 힘러에게까지 그 소문이 닿은 그는 그의 개인맛사지사로 활약했다. 당시 그는 그 기술을 이용해 독일의 상류층의 인맥을 넓혔다. SS 단원으로 넣어줄 수 있다 했지만, 그는 그것을 거절했다. 독일의 패망이후 그를 나치로 볼 것인지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았으나, 그는 그의 인맥과 당시 그의 주장(유대인을 구했었다는)이 받아들여져 살아 남았다. 어떤 이들은 그가 전형적인 사기꾼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말할정도. 또한 그의 숙적의 위치에 있었던 이들이 사망한 것도 그의 전적을 숨기는데 한몫했다.
공주였지만 일본 우익의 양녀가 되었던 요시코.
일본의 만주 침공으로 당시 만주국의 왕이였던 부친 숙친왕의 14번째 딸. 중국역시 격동의 순간으로 만주국은 사라지고, 혁명군등으로 혼란스럽던 시기 그들 가족은 일본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그렇게 도음을 받은 이가 가와시마 나니와 였고, 숙친왕은 다시 만주국을 꿈꾸먀 포트아서로 향했다. 그렇게 맺게된 인연으로 요시코는 나니와의 양딸이 된다. 사실 표면상 양딸로 보내지긴했으나, "선물"의 의미가 강했다. 숙친왕 자체가 나니와에게 '선물'이라는 단어를 썼으니까. 나니와는 숙친왕이 가진 재력이, 숙친왕의 입장에서는 극우였던 나니와의뒤에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힘을 통해 만주국에 대한 이상을 놓지 못한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른 친목관계였다. 이런 관계속에서 요시코가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매끄러운 친목과 자신의 안위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자신을 늙은 이에게 보낸 노리개 였기에 자신의 성을 버리고 싶은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살았던 인물인지도.
네덜란드 유대인이였던 바인레프. 개인적으로는 가장 혼란스런 인물이다. 1차세계대전이후 부터,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유대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에 가난했고, 쫒겼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외할아버지를 만나 유대인의 현자와 학자 이야기를 배우면서 스스로를 선택받은 자로 여기게 된다.(이런 그의 인식이 그의 말미까지를 지배한 것을 보면,,)
네덜란드에 독일군이 진입했을 때, 네덜란드는 시민들이 국가의 정책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 시민불복종의 행위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유대인 위원회가 등장하는데, 저자는 시민 복종의 상징이였다 말한다. 그들은 독일의 행정부담을 줄이기위해 유대인을 색출하고 유대인이라는 표식을 나타내는 다윗의 별을 달게했다. 유대인 위원회를 구성하는 사람 중에는 교수, 의사, 랍비등이 있었다고 하니..그들이 그런 행위를 했던 이유는 다양하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위해 또는 나치의 행위를 경감시키기 위해 그랬다고 하나,, 글쎄. 여기서 바인레프는 유대인 위원회를 가장 경멸하였으며, 그들에게 가짜 유대인 명단을 제출함으로써 유대인들이 잡혀가는 것을 막기도 했다. 바인레프가 공직에 나아가게 된 경위는 알려진바가 없으나, 나중에는 유대인들로부터 돈을 받고 그들을 안전한 해외로 빼돌려주기도 하였으나, 그 위치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위해 독일에 유대인을 넘기기도 했다. 마치 그가 그토록 경멸했던 유대인위원회처럼 말이다.
이 3명의 행적은 이후로도 꽤나 복잡하다. 그리고 그들의 복잡한 행적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2차세계대전 이후 말그대로 부역행위를 밝혀가는 과정도 복잡하다. 결국은 부역행위의 일부가 드러나 형을 살았던 인물도 있고, 3명중 어쩌면 가장 약자였고 매도되기 쉬웠던 요시코는 사형을 당해야 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머릿말이 이 책의 요시코가 등장할때마다 맴돌았다.
가장 약한고리가 가장 강하게 매도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어쩌면 그녀가 했던 행위의 원인은 그녀에게 있지 않았다. 생존의 방식이였고, 살아남는 다는 것을 배운것이 그것 뿐이였던 그녀는 군중에게 가장 매도되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나는 이 3명의 행적을 읽으며 그들을 이해해주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히 당시 나치나 일본의 잔학한 행위에 대해 자신의 안락함이나 생존을 위해 부역한 면은 분명 존재하니까. 하지만 한편 드는 생각은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 암살의 이정재의 대사가 떠오른다. '몰랐으니까. 독립이 될 줄 몰랐으니까.'라는 말을 대입해보면, 나라면.. 이라는 찝찝함은 왜 드는 걸까.
나라가 어느 편을 강요할 때, 너가 가지는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강요하듯 묻는 다면 나는 과연 저시대에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저자가 말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당신이 지은 죄를 말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이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역시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다. 나치의 부역자들, 일제의 부역자들을 찾고 처단하는 행위 역시 카오스 그 자체였다. 비교적 나치에 대한 청산이 잘 되었다고 평하고 있는 독일에서조차 시대상황은 거짓과 진실이 얽히고, 그에 대한 정치적 행위, 이념, 사상 모든것이 휘몰아치던 시대였다. 어떤 명확한 선이 보이지 않던 시기. 어쩌면 인간이란 모호함위에 서있는 것인건가. 싶기도 하다.
저자는 3명의 삶을 돌아보며, 인간의 다면적 측면에 대해 생각하게한다. 그리고 저자는 진실을 위해 거짓을 당신의 생으로 들이지 않기위해 당신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인간이 가지는 진실성 역시 너무나 상대적이기에 내가 믿는 것이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사회 속에서는 결국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것 아니면 저것. 친구 아니면 적. 이렇게 이분법적 정체성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의심은 답이 될 수 있을까.
"책 속 부역자들의 문제는 이들의 기만이, 때로 아마도 거짓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던 기만이, 결국 자기기만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거짓 속에서 살다보면 흔히 그런 결과를 맞는다." p.439
그들이 했던 살아남기 위해 했던 행위가 자기기만이 되어버렸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어버린 세상 속에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선택이 옳지 않아도, 결과는 옳을 수 있고, 선택이 옳아도 결과는 옳지 않을 수 있는 사회라면 나는 선택과 결과 중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친일파라는 행위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정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더 많은 고민만을 남겼다.
분명 타자의 일일 때는 명확하게 보였는데, 왜 거기에 '나'를 대입하면 답을 내기 어려운 걸까. 나도 나를 기만하고 있는 걸까.
"진실 속에 살고 자유로워지는 첫걸음은 바로 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p.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