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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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온 미래. 2017년에 "이미 와있는 미래"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의 내용보다, 막연히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이미 산업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곧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책이였다.  이 책은 AI가 특정 산업 전반에 깊숙히 들어온 상황에 대한 르포타주이고, 그 대상은 바둑이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세계는 놀라움에 잠겼다. AI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경기인 바둑에서 인간을 이겼고, 이세돌 이후 인간의 승리는 없었다. 그 이후 바둑은 어떻게 되었을까? AI의 등장 이후 바둑에서는 인간 스승이 없어졌다. AI가 훌륭한 선생이며, 대국 상대가 된 것.  누군가의 특징, 이 사람 만이 둘 수 있었던 수, 프로 기사들의 특징을 엿볼 수 있었던 기보 등등 모든 것이 사라졌다. 모든 수에 대한 확률계산이 즉시 되며, 그 계산에 따라 그 수에 대한 평가가 바로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즉 유명 기사들의 기보가 무용지물이 된 것.
"바둑이 싫어진 건 아니고, 바둑을 좀 잃어버린 기분이에요.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을 뺏겨버린 느낌." p.58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계에서 AI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특정 프로 기사와의 대국, 어떤 선생 밑에서 수련 하는 등의 타인에 기대지 않고, 내가 노력하는 만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AI가 제공하는 시대인 것이다.

사실 바둑에서 "인간"의 맛은 사라졌지만, 바둑 그 자체의 기술은 우상향 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사항은 AI의 등장으로 심리적 위축감이 줄었다는 점이였다. 신진 세력들은 유명 프로 기사들과 대련을 할 때 많이 두려워한다고 한다. (기세 싸움에서 밀리는 것!) 하지만 AI 등장 이 후  '너희가 AI보다 세겠느냐'라는 마음으로 임하기에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어짜피 최강자는 AI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라는데,, 왜 나는 이 부분이 웃펐을까.

사실 나는 바둑 경기의 룰 포함 그 세계를 거의 모르다 보니 바둑의 기보가 사라졌다, 평준화 되었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깊이 알 수 는 없었지만, 어떤 인간이 가지는 특별성이 사라졌다는 의미 만큼은 이해 할 수 있었다. 
바둑 기사들이 경기 이후 복기 시에 두었던 모든 수를 기억하는 것은 그 자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특징을 기억함으로써 따라가는 인데 AI 등장 이후 특정 기사만의 특징이 사라졌기에 복기도 굉장히 힘들다는 글을 읽고서야 "특별성"이라는 의미가 이해가 갔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는 느낌이 사라진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제는 그저 하나 하나의 수에 확률만이 남은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상을 바꿔 창작물의 관점에서 AI는..?
이미 인공지능을 이용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일반화 된다면,,작가들은 오로지 자신의 손과 머리로만 글을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바둑이 맞이했던 그 세계가 곧...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오래전 김영하 작가님은 독자들은 AI가 쓴 창작물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이라했다. 사람이 아니라 AI가 썼다는 사실에 감정이 식어버릴테니. 하지만 그것이 사람인지 AI인지 모르는 순간이 온다면. 사람같이 생각하는 AI. 사람의 감동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쓴 AI 창작물이라면.... 
아직은 여러 작품상들에서 ChatGPT 등의 AI를 이용한 창작물이 아니여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AI 창작물인지 인간창작물인지를 판가름하기 불가능한 세상이 멀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AI가 EndUser 즉 일반 사용자까지 내려오기는 쉽지 않아보였지만 ChatGPT를 필두로 이미 세계 여러 회사에서 만만찮은 AI를 만들어냈고, 등장의 놀라움은 잠시. 모두가 그 AI를 이용하고 있다. 심지어 그런 AI를 만들어낸 회사들에서 개발 인력을 30% 감축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AI로 개발하면 되니까. 인간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요즘 이슈인 저출산. 미래엔 정말 인간이 필요한 세상이 올까? 인간의 모든 사실이 밝혀져 사고사가 아니라 질병으로 죽는 이들이 없고, 늙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정말 인위적으로 인구 수를 줄이는 어느 소설 속 세계는 먼 미래가 아니라 근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왜 SF가 SF가 아니라 현재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건지..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두려웠던 점은 어쩌면 바둑은 오래 남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AI를 통해 바둑을 배우고, AI를 통해 각 수의 확률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세상 속에서도 바둑이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각 기사들의 특징과 감정이 보이는 인간의 바둑이라는 것. 그런데 만약 그 부분을 AI가 만들어 낸다면..? 마치 인간의 바둑처럼 두는 볼거리를 만들어 낸다면. 그 분야에서 우리가 설 자리가 있을까. 비단 이 의구심은 바둑 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경기를 보고, 글을 읽고, 감동을 받는 그 포인트를 AI가 만들어 낸다면..."인간성"이라는 것을 흉내 낼 수 있는 AI. 이 것이 어떤 의미일지.. 나는 모르겠다.

 기술의 개발 그 자체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은 부분 진행되어있고, 어느 산업 하나 만을 틀어막는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 

 분명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이로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 빠르게 백신이 나올 수 있었던 기반에도 기술의 영향력은 지대했으니 말이다. 다만 기술 발전과는 별개로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왜 기술이 필요한 것인지, 기술의 발전에서 불가피하게 외면되어지는 부분을 우리는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해지는 지금이다. 
작가님은 "먼저"와 버린 바둑세계를 통해 저자는 지금 당신은?!이라는 질문과, 질문을 통해 우리가 어떤 가치로 그것을 활용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의 글처럼 오웰이 말한 텔레스크린은 현실이 되었다. 수많은 CCTV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것을 1984의 시대처럼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지켜온 가치이고, 질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AI 시대를 생각해 볼 때이다.

진짜 추천!

"<1984>에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해 통제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즐길거리를 쏟아부어 사람들을 통제한다. 한마디로, 오웰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킬까봐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우리가 좋아서 집착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킬까봐 두려워 했다.
이 책은 오웰이 아니라 헉슬리가 옳았을 가능성에 대한 내용이다."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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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5 - 사과와 링고
이희주 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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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제부터 이효석 문학수상작품집을 읽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해부터인가 수상작품집을 보는게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는데, 그 시간이 참 신기했다. 해가 거듭될 수록 나는 (그저 나이만 들어가는..) 같은 자리에 머무는 듯한데, 단편이지만 소설 속 이야기 주제는 매번 확 바뀌는 느낌이랄까. 굉장히 버라이어티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맛에 읽는지도.


올해의 대상수상작 “사과와 링고”
그저 K장녀의 이야기인가 싶었던 이야기는 끝으로 갈수록 (내 생각에는)고구마를 백만 개쯤 먹이는듯한 답답함을 주다가 갑자기 입 속 고구마가 사라지며 뒤통수를 확 치는 느낌!

“죽었다는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다 p.9”

이 이야기의 첫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주인공 사라는 말그대로 K장녀다. 한없이 연장만되는 비정규직 직장을 다니며 5500원짜리 회사밥을 먹는. 그것을 만찬이라 부르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지만 늘 그 돈들은 허공에 뿌려진다. 동생 사야의 ”빌려달라는“ 말한마디에.

동생 사야는 소위 한량의 삶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며, 자신이 가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조차 관심이 없다. ”가서 배우면 되지뭐..“마인드랄까. 아.. 속터져. 그러다 돈이 필요해지면 언니 사라에게 ”빌려“달라한다. 그리고 가져간 돈의 10%정도만 갚는 동생.
언니 사라의 독백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신이 믿지 않았으니까. 왜 내 환상인데 내게도 각박한 것일까. 내가 남에게 각박하기 때문인가“ p.36

사라와 사야의 관계 속에 나는 놓여본적이 없어 모른다. 아니면 내가 대문자T인지도모르겠으나, 나라면 진작에 인연을 끊었을 동생이다.
 결국 파국으로 맞이하는 결말은 사라가 끊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어떤 미련에 대한 각성일까.  언니에게 매번 기대는 동생에 대한 분노 일까.

작품평에서 ”교환“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사라에 대해 “권력적 관계이다. 무력한 타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동시에원할 때면 언제든 그 권리를 회수할 수 있는 권력” p.115 이라고 평론가는 말했다.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때 끊임없이 ‘사라‘는 을의 위치였다. 동생 사야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모두가 너아니면 누가하니라는 말뒤에 숨어버리고 소위 뒤치다꺼리는 사라에게 떠넘기는. 하지만 해결을 하는 사라는 가족에게 그 내가 당신들에게 베푸는 행위는 언제든 멈출 수 있음을 말할 수 있는 권력이 있다. 그렇기에 딱 그만큼의 등가교환이라는 평을 읽으며, 글쎄... 싶었다. 왜냐면 실제 그것은 실제 휘두를 수 없는 권력이지 않나 싶어서. 실제로 결국 그녀의 파국은 동생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표출되었으니까. 
가족은 참 유전자 하나 공유했다고, 너무나 복잡한 무엇으로 이어진 신기한 관계이긴 하다..

다른 작품들도 다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남숙 작가님의 “삽” 이 인상 깊었다. 학원 선생과 학생사이의 '성폭력 무고'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결국 무고 였지만, 그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무고당사자는 무방비로 사회의 폭력적 시선 속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감옥안에 갖혀버린 한 개인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역시 결말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번 이효석 문학상을 읽으며 든 생각은 시선이었다. 나는 책을 비판적으로 읽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작가가 써놓은 스토리의 감정선을 따라서 딱 그만큼만 이해하며 읽는 꽤나 단순한 독자이지만, 이번 편을 읽으며 ”시선”이라는 의미를 생각케했다. 내가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주인공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 내가 이 이야기속에서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시선에 대해 말이다. 대상작을 읽으면서는 사라의 시선에서 보았지만, 내가 사야라면. 언니 사라를 어떤 눈으로 볼것인지. 샆에서 내가 재구를 바라보던 원오브 뎀의 선생 중 하나라면 재구를 어찌바라볼지. 함윤이 작가님의 <우리 적들이 산에오를 때>를 읽다보면 화자인 선화가 바라보는 종교집단의 <선화> 집단속 <선화>가 바라보는 또다른 <선화>에 대해서 말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상대와 나사이의 관계 안에서 전개된다. 근데 왜 이번 편을 읽으면서는 그 관계와 관계 속에서 내가 놓이는 위치에 따라 너무도 달리보이는 이 시선을 떠올렸는지는 모르겠다. 너무나 극단적으로 갈라져 각자의 말만을 하는 지금 사회가 나의 시선을 그 방향으로 이끌고 간건지도..

뭔가 잔잔한 이야기같은 작품같으면서도 각 인물의 감정은 꽤나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들. 눈을 뗄수 없었고.
뭣보다 진짜 재밌었다!

2026년 수상작품집을 기다리며.
으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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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자 수확자 시리즈 1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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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셔스터먼의 최근작 "언와인드 디스톨로지"를 읽고서 이 책이 궁금해졌다. 오호라. 수학자라고 알고있었는데, "수확자" 였다. 뭐지?

인간의 모든 것이 정복된 어느 미래. 유전자고 뭐고 다 정복되어 인간은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 모든 병이 다 정복되었기에 영생의 삶을 사는 세상. 그래서 였을까. 책의 초입부터 왜 나는 디스토피아 같았을까. 끝이 없는 삶이라는 그 자체 만으로.

인간은 계속해서 태어나기에 인구 폭발을 막기위해 전 세계는 수확자를 두었다. 죽음이 사라진 시대부터.
이것은 죽음이 존재했던 시대를 바탕으로 사고, 질병, 나이, 성별, 인종 등등에 따라 당시의 평균으로 무작위로 사람을 선별해 죽인다.  죽일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 수확자이다.
흥미로운 점은 수확자라는 존재가 마치 성직자를 넘어서 신과 동등한 위치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누구도 그들의 존재를 거스르지 않고, 그들 앞에서는 두렵지만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수확된 이들의 가족은 1년간 수확면제권을 부여받는다. 그들의 반지에 입을 맞추어 DNA를 등록함으로써.

반지와 그들이 두르고 다니는 로브가 그들의 상징이다. 

어느날 시트라의 집에 수확자 패러데이가 왔다. 가족들 중 누군가를 수확하러 온것일까. 하지만 패러데이는 그곳에서 식사를 한다. 가족 모두가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지만 시트라는 수확자 앞에서도 당돌하다. 마치 죽일테면 얼른 죽여라..식이랄까. 10대는 역시.. 하지만 패러데이는 식사만 하고, 그 댓가로 시트라의 어머니에게 1년 면제권을 부여한다. 그리고는 그들의 집에서 빌려간 칼로 옆 집 브리짓을 수확한 후 칼을 돌려준다. 그리고는 말한다.

"수확자는 죽음의 도구일 뿐이고, 나를 휘두르는 것은 여러분의 손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중략.. 여러분은 그 책임을 공유해야 해요" p.23

로언. 어느날 로언이 다니는 학교에 수확자 패러데이가 등장하고, 패러데이의 물음에 그는 직접 안내해준다. 그리고 그느 그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 콕을 수확하러 왔음을 알린다. 어쩌다 콜 옆에 남게된 로언. 두려움에 어쩔 줄 모르는 친구의 손을 잡고 그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킨다.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던 친구를 위해. 함께 전기충격을 견뎌가며.

수확자 패러데이는 후배 수확자 후보로 시트라와 로언을 선택한다. 두 사람 모두 누군가의 목숨의 무게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 이유 였다. 선택된 둘은 패러데이에게 수확자 후보생으로써 교육을 받는다. 둘 중 훌륭한 한명을 수확자로 선정하기로 하지만, 수확령에서 위대한 수확자 퀴리의 질문에 둘 모두 임의로 오답을 대답함으로  다른 수확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한다. 서로가 서로를 동정함에 공정한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결국 둘 중 하나가 수확자가되는 때에 나머지 한명을 수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둘 중 한명은 수확자가 되고, 한명은 죽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도 믿고 의지했던 이의 손에 죽어야 하는 잔혹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패러데이가 막고자 했지만, 이미 고위 수확자들로 인해 판결이 난 상황.

누가 죽고 누가 수확자가 될 것인가.
수확자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누군가는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것에 끊임없는 고뇌와 고민을 하고, 수확자 고다르 같은 이들은 그 자체를 즐긴다. 연쇄살인범이 살인 면허를 가졌다면 딱 그 모습일 것이다. 정해진 할당량이 있다는 것 조차 우습게 여기고, 인간 그 자체가 재생이 가능한 세상이기에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수확자 연습생 후보의 교육을 시킨다. 실제 사람을 죽이는 그 행위 자체를 연습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것이 밝혀진 그런 미래에 어떤 인간에게 타인을 살해할 권한을 남긴 것은 그 시대에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하는 AI 선더헤드에게만큼은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넘기지 않겠다는 그 시대의 마지막 몸부림이였던 걸까.

 극도로 발달된 과학, 모든 지식이 다 밝혀진 시대에 인간 위에 인간을 남겨야했던 그 시대의 합의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였는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1권은 수확자와 살짝 등장하는 선더헤드의 존재. 불멸의 삶을 살며, 타인의 삶을 수확하는 이들과 그들로 길러짐으로써 인간성을 잃어가는 로언과 시트라의 이야기가 숨쉴틈 없이 몰아친다. 이번 신작 언와인드에서도 느꼈지만, 작가의 이야기 흡입력은 진짜 최고인듯. 


 하지만 그 시리즈도 이 시리즈도 배경은 참.. 그 자체가 디스토피아 같은 느낌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라 말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인간의 삶. 그 자체를 가질 수 없는 시대의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기에 모든 것이 밝혀진 시대는 결코 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만든다.
"문명의 성장은 완료되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았다. 인류의 경우 배울 것은 더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 존재에 대해 더 해독할 것이 없었다. 그것은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사실 크게 보면 모두가 똑같이 쓸모가 없었다." p.19

2권 선더헤드 시작.

"나는 여기 비내리는 방식이 좋아. 저 비를 보고 있으면 어떤 자연력은 결코 완전히 제압 할 수 없다는 걸 떠올리게 되지. 자연력은 불멸이고, 그건 불사보다 훨씬 나은 성질이야"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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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에서 사회와 힘을 묻다 거인의 어깨에서 묻다 철학 3부작
벤진 리드 지음, 진승혁 기획 / 자이언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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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언제나 대립이였다. 양측. 좌우. 냉전이 끝났음에도 우리나라는 지리학적 특성에 의해 여전히 이념을 벗어나지 못하는듯 보인다. 하지만 이전에는 적어도 TV라는 공중파에서는 서로가 대화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였는데, 점점 더 서로의 말을 듣지않고, 각자의 말만으로 얼룩진 토론이 되어간다. 소수이기에 별로 다뤄지지 않았던 극우가 득세하고, 법원을 향해 폭동을 일으켰다. 왜 이리 사회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다만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이런 상황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무엇이 문제일까? 궁금했다.

“거인의 어깨에서 사회와 힘을 묻다”는 62명의 철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들의 저서와 말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시작은 사회의 탄생이다. 국가의 탄생. 국가가 탄생했다면 국가에게 주어진 권력은 각 학자마다 어떤 의미로 읽히는가? 그 연장선에서 권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홉스와 로크의 차이였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을 통해 국가 권력을 절대성을 의미한다면, 로크는 그점을 사회 계약으로 권력의 위임을 말한다는 것. 비슷한듯 전혀 다른 의미 이다. 국가의 존재 규정은 같지만, 그 국가에 부여한 개인의 권한의 차이랄까. 

그렇다면 국가는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요 파트는 가장 치열하게 이분법적으로 서로를 대해왔던 냉전시대의 철학이다. 엥갤스, 뒤르켐, 베버 등.
엥겔스의 사상 중 흥미로웠던 점은 
”현실에서 국가는 궁극적으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기계에 불과하며, 민주공화국에서도 군주제만큼이나 그러하다“ p.112
그는 결국 국가역시 권력의 한 집단일 뿐이며,,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 역할로써만 존재한다는 것. 그렇기에 그 자체에 순응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존재하는 도구이기에 결국 국가는 계급 혁명을 통해 소멸할 것이라 말한다.
이 말이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조금 다른 의미로 내게는 다가왔다. 계급 투쟁이 아닐라, 양극화된 사회속에서 마치 서로 다른 국가를 가진듯한 말들이 쏟아지기에 그러했다. 분명 하나의 국가에서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작금의 사태가 엥겔스의 ”국가 붕괴“라는 말을 새삼 두려움으로 다가왔달까. (물론 이런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렇다면 국가는 시장 속에서 어떤 위치여야 할까.
이 파트는  사회 이념 논쟁보다 더 첨예하게 다가온다. 사회이념은 이미 어느 한쪽은로 판가름 난 이슈이겠지만, 경제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위에 있다. 스미스, 프리드먼, 폴라니, 마추카토. 자유시장경제와 국가주도경제. 이 부분은 일종의 경제학적 이념논쟁으로는 첨예하게 갈리지만 나의 짧은 이해로는 상황에 따라…라고 이해할 수 밖에. 그 상황 속에서 어떤 것이 더 의미를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아. 경제는 정말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이 던지는 모든 파트가 어렵다. 어느 한쪽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사회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해, 국가간 이해에 다 얽혀있기 때문일까.)

요기까지를 읽고나면 현재와 미래에 대한 파트가 시작된다. 물론 앞선파트가 모두 과거를 의미하진 않는다.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그 모든 사상, 철학, 개념들이 현재와 이어지기에 그렇다. 지금부터 현재, 미래라고 생각된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첨예한 논쟁 속에 있는 많은 주제들이 등장하기 때문.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민주주의의 다음 ”주의-ism”에 대한 언급까지. (민주주의가 -ism 의 개념은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는 사상이나 이념에 대한 양극화에 대한 부분에서 다수의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어느 한 곳을 소외하고, 그들의 발언 자유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을 군중으로 만들고, 그것은 붕괴를 넘어서, 정치의 소멸이라 말한다. 
”‘이데올로기의 본질은, 하나의 생각을 전체 현실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면서 사고할 필요를 제거하는데 있다.‘ - 이데올로기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지만, 그 대가로 사고할 필요를 제거한다.“ p.236
 이 파트를 읽으며, 이데올로기에 갖힌 이들의 대화 거부, 토론 거부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끌어내야할 것인가? 나는 이데올로기에 갖혀있는가 갖혀있지 않은가. 서로가 서로를 극단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금에서 토론의 가능 여부와, 그 효용성이 있을까를 생각케하지만, 휴.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렌트 외에도 많은 이들이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공론의 장뿐인가. 싶다.

민주주의의 다음은 있을까? 뜨거운 논쟁으로 보이는 무페, 왕후이, 드닌의 이론은 글쎄.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 역시 민주주의 기반하에 현재와는 많이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보였으나, 하조니의 민족보수주의는 보편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민족의 가지는 특장점을 이용(?)하자는 의미 이긴했으나, 민족보수주의라는 경계는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모습이 아닐까? 보편성을 강조한다기보단, 서로의 다름을 이제는 이해해야 하는 시대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그의 이론은 마치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바우만의 "레트로토피아'가 생각이 났나..
이밖에도 지금의 기술 환경. SNS등을 통해 나타나는 기업과 개인간의 관계를 보드리야르의 사상과 주보프, 카르텔의 이론.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소수자, 인종, 계급에 대한 논쟁을 말하는 스피박, 크렌쇼, 버틀러, 누스바움의 사상등.

이 책은 인간을 구성하는 ”사회 “전반에 대하여 여러 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생각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회를 이렇게 생각했어. 너의 생각은? 지금 우리앞에 놓인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라고 묻고있다.

내게 조금 어렵긴했지만,
좋았다.
답을 찾을 순 없었지만,
질문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 (원래 질문 속에 답이 있으니까..) 
Good!!!!


”정의란 무엇을 나누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라는 그녀의 사상은 불평등과 차별과 생명권의 위기 속에서 근본적인 질문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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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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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왜 이 책이 궁금했을까.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책이였다. 왜였는지,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절판되어 읽을 수 없는 책이였는데, 이번에 재 발간되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마침 신형철 평론가님의 추천사도 있었고.

다와다 요코라는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이 책은 작가의 산문이며, 일본어와 독일어로 책을 쓰는 작가라고 한다. 전혀 다른 두 언어라. 작가인데 제목이 “영혼 없는 작가”라는 점도 꽤나 신선했다. 궁금하기도 했고,

이 책은 진짜 묘했다. 내가 아는 에세이 즉 산문은 주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긴다. 그 생각들이 대체로 내가 해보지 못했던 하지만 작가의 생각을 따라간다(?) 이해한다(?) 싶은 스토리가 흘러가는데, 이 책은 아니다. 뭐랄까.. 7살 어린아이가 어떤 주제를 놓고 말하는걸 굉장히 유려하게 표현한 글 같달까. 유치하다는 말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이 굉장히 독특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혀 생각치도 못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언어에 매이지 않은 느낌. 딱 그 느낌이다.
일본어와 독일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럴까. 그녀가 쓰는 언어들은 전형적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묘한.

“유럽이 시작하는 곳”
어떤 대화의 끝마다 모스코바로 가야한다는 부모님의 대화를 듣고 자란 작가가 드디어 시베리아에 도착했다. 도쿄에 있었던 것 같은 그녀는 어느새 기차로 시베리아에 도착했고, 여권 문제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그 때, 연못을 보고 갈증을 느낀 그녀는 연못의 물을 마시고 땅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그녀는 배가 불러와 물공이 되었다. 물공이 된 그녀가 물로 뛰어들었고, 거기서 본 단어가 M,O,S,K,A,U .. 하나씩 쪼개진 철자에서 엄마, 오물, 공,, 괴물,,,, 사과를 생각했고, 그녀가 유럽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통해 듣고 자란 모스코바를 현재의 모스코바와 연결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시선은 내가 마치 어렸을 때 살던 곳에 갔을 때, 그 때의 나와 지금이 연결되는 듯한 그 묘한 기분을 나는 그저 묘해.라는 단어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는 거구나.. 랄까.

오로지 모국어만 가능한 나로써는 또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기능적으로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만 막연히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또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것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동일한 사물을 놓고도 일본어와 독일어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독일어는 단어마다 “성”을 갖는다. 여성, 남성. 
 한국어나 일본어에는 없는 특징. 사물이 성을 갖는다는 것은 같은 사물을 보고도 언어에 따라서 보이는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말엄마라 말한다. 언어가 나에게 또다른 엄마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모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사회가 나에게 각 사물을 표현할 수 있는 의미를 제공한다는 것인데, 다른 언어는 또 다른 의미를 나에게 부여한다.
‘타자기 앞에 앉아있으면 타자기가 나에게 어떤 언어를 제공한다는 느낌이들었다. 이 시도 덕분에 독일어나 내 모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나는 새로운 말엄마를 얻게 되었다.‘ p.45-p.46
여기서 타자기는 여성일까 남성일까?ㅎ

그리고 제일 아. 싶었던 ”전철에서 책읽기“
나도 전철(요즘은 지하철이 더 익숙한데.ㅎㅎ)에서 책읽는 걸 좋아한다. 집중도 잘되고, 시간도 잘가고. 
저자는 책을 읽는 시선에 집중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의 행위에 집중한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얼마나 혼잡해도 누군가 책을 펼쳐든다면 사람들은 약간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아이가 그림책을 펼쳐들면 아이보다 큰 책을 펼쳐드는 상황에 자신의 몸을 움츠리고 공간을 만들어준다.
지하철에서 시선이 다른이에게 향하면 그것은 모욕이거나 기분 나쁨을 의미한다. 하지만 책으로 돌려진 시선은 그런 의도가 없다.
“시선은 폭력이다. 책들은 시선을 받아서 글자로 바꾼다” p.107

"영혼 없는 작가"를 읽으며 든 생각은 그녀와 영혼이 분리되어, 어디선가 그녀 대신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겪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그녀의 생각에 아. 싶었다.
”나는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내 영혼은 항상 어딘가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p.57
그녀의 영혼이 겪는 경험을 사람인 다와다 요코가 그녀만의 시선으로 그녀만의 철학적 에세이로 녹여 놓은 듯한 이 산문은 다른 에세이들과 다르게 조금은 그녀만의 쫒아가기 어려운 세계가 낯설기도 하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글이 가득하다.

낯선 흥분을 느끼게 해주는 작가의 글. 그저 놀라울 뿐!
오!

”배우지 않은 언어는 투명한 벽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멀리까지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도 방해를 하지 않으니까. 모든 단어는 무한히 열려있고 그것은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다.”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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