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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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내가 어머니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서 그녀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가 보다." p. 41


엄마와 딸. 그 관계는 그 관계속에 놓여보지 않고서야 마음을 어찌 이해한다 말할 수 있는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 관계속에 있어서. 더 그렇다. 이 책은 노벨문학상 작가 아니에르노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쓴 책이다. 얇은 책인데, 작가는 이 책을 꽤 오랫동안 썼다. 아마도 자신이 기억하는 어머니가, 더이상 이 세계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기에 그랬던것 같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 책을 써야 했던 이유는 작가로써 그녀가 어머니를 가장 그리워하는 방법이지 않았을까.


그녀의 어머니는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를 만나 전쟁통에 그녀를 낳았다. 그녀만큼은 자신처럼 살지 않게 하기위해 어머니는 그녀에게 참 많은 것을 주려했다.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 상점에서 물건을 팔던 어머니는 <먹고 살게 해주는 손님 p.52> 들을 위해 웃음을 짓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으면 금방 표정이 변했다. 그들은 언제라도 더 싼곳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기에. 

그녀가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어머니는 그녀가 좀더 품안의 자식이길 바랬다. 그래서 그녀와 어머니는 많은 사소한 것들로, 둘의 서로 다른 차이로 다투었고, 그녀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이였던 어머니를 점차 떠나보낸다. 대부분의 사춘기 아이들이 그렇듯. 


"이 글을 쓰면서 때로는 <좋은> 어머니를, 때로는 <나쁜> 어머니를 본다." p.62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이 참 많이 와닿았다. 내가 태어나 가장 오래 내 곁에 있던 사람임에도 나는 온전히 엄마를 모르고, 엄마도 온전히 나를 모른다. 그러기에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좋은> 엄마는 아니였다. 반대로 나도 항상 <좋은> 딸은 아니였듯이. 작가는 그런 엄마와의 관계를 말한다.

 결혼을 통해 부모로부터 독립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같이 살게 된 시간, 그리고 엄마의 독립. 그리고 엄마의 노년까지 그녀가 기억하던 엄마와의 시간은 마냥 행복하지만도 그렇다고 서로가 대면대면할 정도 먼 사이는 아니였다. 딱 어디만큼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가까이 있으면 어색한 . 하지만 그 어디만큼은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그런 거리이다.

 그리고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돌보는 딸, 결국 돌아가신 엄마.


그녀의 글을 보며 나는 나의 어머니의 늙음을 생각한다. 

나의 엄마에게 나이듦이란 어떤 모습일까. 이미 사회적으로는 노년의 시간속에 계시지만 나는 어머니의 늙음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의 어머니에게 어떤 감정도 감추지 않고 다 쏟아낸다. 그녀가 늘 어렸을 때 보던 모습 그대로의 엄마인것처럼..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는 이러다 많이 후회하겠지..정말 많이 후회하겠지..하는 생각을 한다. 다른 이의 어머니에 대한 글을 읽으며 굉장히 담담하게 쓴 글임에도 자꾸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늙어가는 나의 엄마에대한 연민을 가지지 못하는 못난 딸이라서 그런지도.


진짜 많이 슬펐다.

그냥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 속에 있는 분이라면 특히 딸의 입장이시라면 작가의 글을 읽으며 드는 나의 생각에 많이 공감하실듯.. 아니실려나.. 나만 후회가 많이 들어 그런걸까..ㅠ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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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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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님이 최근 신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신간에 대한 추천이 꽤 많았다. 다만 김연수 작가님 책을 아직 읽어본 적이 없어, 신간보다 기 출간된 책 중 한권을 읽어보고싶어 선택한 책이 이 책이다.  책은 북한의 시인 기행의 이야기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기행은 시인 백석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백석이라는 인물을 잘 몰라서, 마지막에 백석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까지도 백석 시인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런 무지랭이..ㅠㅠ)


사실 북한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당시 남한이라고 다를 것이 있으랴 싶었다. 그저 내 안의 말들을 꺼내놨을 뿐인데, 사상 검열이니 뭐니 하면서 자백위원회에 사람을 불러다놓고 고백이 아니라 자백을 강요하던 시절의 시인은 너무도 혼란 스러웠다. 그 시대 누군들 그러지 않았으랴. 무엇이 왜 이 것이 잘못인지 조차 알 수 없던 시대인데.. 그 시대에 러시아 번역가이면서 시인 기행은 어떤 글도 번역할 수도, 내안의 글도 써내려갈 수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이념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한다. 이념이란 무엇일까. 여전히 우리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그 때의 이념으로 싸운다. 서로를 적으로 대하며.


이념 :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네이버 사전


 그렇다면 이념은 개인마다 다른것이 아닌가. 모두의 이상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자유의지라는 것을 가졌다는 사람이니까. 같은 이념을 가지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것 또한 사람이기에 다 다르다. 경중도 다를 것이고 말그대로 문자로 표현하는 것도 다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의 사상으로 만들려는 것. 그것은 너무 위험한 발상 아닌가. 우리모두가 로봇으로 똑같이 프로그래밍 된 기계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하나의 사상을 부르짖던 시기, 시인 기행은 삼수까지 밀려나 결국 자신의 글을 쓰고, 그 글을 불태운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유를 찾는다. 그리고 독골까지 밀려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의 동시를 읽는 것 뿐. 


 당시의 일반인들은 시대에 동조하는 척을 했거나 , 그저 모른척 입 다물고 살아야 했었다. 하지만 시인은 작가는 무엇이든 써야했기에…. 지금을 사는 김연수 작가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했던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고뇌를... 이 소설을 통해 풀어내고 싶었던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더 먼 미래의 지금의 인물을 소설로 쓴다면 그 배경은 어떤 모습일까. 다만 누군가가 숨죽여 글을 쓰는 시대는 아니였기를 바래본다.



“하루에 일만 톤에 가까운 네이비팜탄과 칠백 톤이 넘는 폭탄이 떨어지는 등 종일토록 불비가 쏟아져 평양 곳곳이 불타오르던 순간에도 기행은 적개심 가득한 문장을 통해서만 그 잔인한 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살던 집도 불타버리고, 빼곡히 꽂혀있던 책이며 은은하게 풍기던 커피 향내 같은 것도 모두 사라지고, 아내와 어린것들과도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그는 문자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그 문자들을 스거나 읽을 수 있어 그는 전쟁이 끝난 뒤 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쟁의 광기로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을 구원한 그 언어와 문자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기행은 궁금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인가, 당의 것인가? 인민들의 것인가? 아니면 수령의 것인가?”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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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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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알게된 책.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대략의 내용을 알고 읽었지만, 읽는 내내 그녀의 글이 아팠다. 그녀의 담담한 고백이 쓰렸다. 


12살에 그녀가 동경했던 이와 그의 무리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폭력을 자신의 문제로 가두고, 스스로를 아름답지 않도록, 그런 폭행으로 부터 멀어지기위해 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거대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여전히 12살의 폭행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거대해진 몸에 갖혀버린 그녀의 글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을 딛고 일어나, 다이어트에도 성공해, 멋진 여성으로 거듭난 한 여자의 글을 보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그 사건에 고통받고, 그렇게 뚱뚱해져버린 자신의 몸도 사랑하지 못하고, 그렇게 자신을 내버려둔 스스로도 사랑하지 못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고 있다보면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타인을 볼때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타인의 외면만을 보고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눈을 내게로 돌렸을 때, 나는 내 몸을, 나 스스로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특히나 타인의 시선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아는 내가 말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의 근거, 그 기준은 무엇일까. 미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를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마음이 예쁜것이 가장 아름다운 다운 것이라고 말하는게 거짓임은 세살 짜리도 아는 나라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몸에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고 1년 365일 다이어트를 하는 나라이고, 살이 찌는 것은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그리고 누군가가 살이 찐것이 흘깃거림을 참아야하고, 누군가의 눈쌀을 찌푸리게 할 일인걸까. 그게 왜.


보여지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안됨을 알지만, 우리는 판단한다. 그렇기에 타인으로 인한 상처로 스스로 만들었지만, 그 몸에 갖혀버린 그녀는 그 상처를 온전히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자신과 타인의 시선속에 갖혀버린 20,30대를 지나,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바라 볼 준비를 하고 있다. 여전히 아프고,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생존자라는 표현보다는 피해자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한다. 생존자라는 표현 자체가 그 때 그 사건을 더 약하게 만드는것 같아서 싫다고,

이 책은 그런 그녀의 고백이다. 감히 나는 상상도 못할. 

그녀가 나의 친구라면 어떤 위로도, 안다는 눈빛 조차도 나는 보낼 수가 없을 것 같다. 감히.


이 책이 왜 더이상 살 수 없는 것인지, 어찌어찌 도서관을 통해 읽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그녀의 고백을 들을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승리가 계속 되길 바란다.


"한동안은 내가 있었고, 내 머릿속에서 살면서 나 자신을 타인처럼 바라보는 여자가 있었고, 나의 이 과체중인 몸뚱이를 지니고 다녀야만 하는 여자가 있었다. 이 세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나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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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 에세이 - 개정증보판 동녘선서 93
김교빈 지음, 이부록 그림 / 동녘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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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 에세이" 김교빈 교수님의 다른 책을 먼저 읽고, 그 책이 너무 좋아서 교수님의 책을 찾던 중 이 책을 알았다. 제목을 처음 보고는 "한국철학"이라는 말이 왜 그리 낯설었던지.

동양철학이라는 말도 입에 착 붙지는 않았고, 내게 철학이라는 단어는 서양과 맞물려 있었다.  철학을 거의 모르는 해당 분야의 문외한임에도 그러했다.(몰라서 그랬던걸까..ㅠ)


책은 인물 중심으로 한국 철학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다. 원효부터 수운 최제우까지.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책 한권에 담기에 벅찰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철학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모를뿐이지. 그리고 우리가 국사공부를 통해 알았던 인물들이 사실은 시대의 철학자였다는 점도 놀라는 부분중 하나였다. 우리가 우리의 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하는 이유와 같다. 우리는 뿌리를 가진 민족이며, 그 민족의 근거가 되는 사상을 가졌고, 이것은 곧 다른 민족과 우리의 차별성을 나타내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우리 철학의 흐름은 통합과 합치를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원효와 지눌을 통해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들어온 불교도 우리만의 불교 사상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선종과 교종으로 나뉘었지만, 결국은 그 둘이 불교의 석가모니가 말하는 가르침을 놓고 볼때, 결코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서로의 사상을 존중하는 합침의 철학이 있었다.

조선시대 근간이 되었던 성리학에서도 그 중심에 있는 이기론 역시 서경덕, 이황, 이이, 정제두를 거치며 이와 기의 논쟁으로 시작해 결국은 인간을 중심으로 두 이념을 나눌수 없음으로, 그 이념이 형이상학적인 이론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과 당시 백성을 중심의 이념으로 연암 박지원을 거쳐 다산 정약용까지 발전을 거치며, 그 사상의 근간을 인간을 통해,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 모두의 기반이 되는 철학 사상으로 퍼져가는 500년의 시간이였다. 

또한 그 사상은 수운 최제우의 동학을 거쳐, 일제치하 의병활동에서 3.1운동,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현대 우리의 시민혁명까지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잘 몰랐지만 책을 통해 알게된 하곡 정제두라는 분의 생각의 발전은 놀라웠다. 그 시대 가장 깨기 힘들었던 이념이였던, 신분차별 문제에 대하여 젊을 때(30대)와 훗날(80대)의 생각이 전해 다르다는 것이다. 30대에는 서자와 적자의 구별을 엄격히 해야하고, 남녀 문제에서 역시 당시의 시대상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가 80대에 쓴 글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적서의 차별은 옳지 않고, 여성의 개가 역시 허용해야한다는 점 등을 말한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 되어가는 생각을 그는 시대적 상황과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에서 보다 나아가는 방향으로 바꿨다는 점이였다. 그런 그의 생각은 강화학파로 그리고 실학으로 그 이후 우리의 독립운동으로 발전되어 갔다. 그가 학문을 연구하면서도 현실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자신의 이념에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그 이념의 근간을 지켰기에 그의 철학은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빛났다.


이런 많은 우리의 사상은 수 천년간 쌓이고 쌓여 현재까지 이어져 우리가 되었고, 우리의 근간이 되었음을 알았다, 이것이 저자가 말한 우리가 우리의 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임을 책을 덮으며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였다.

한번 읽고 두는 책이 아니라, 생각이 날때마다 한번씩 들춰보게 하는 책이다. 에세이라고 쓰여졌지만, 한국 철학의 큰 흐름을 책한권에 담아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개인적으로 책에서 언급된 철학자 한명 한명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강력 추천!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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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세 딸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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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문학. <이브의 세딸> 사실 튀르키예 문학이 처음이기도 하고, 동서양이 섞여있는 터키의 지정학적 특성이 어떻게 돋보일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소설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묘했다.


알라신을 믿지만, 맹목적이지 않은 아버지, 동일하게 알라신에게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을 보이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 페리. 페리는 어렸을 때부터 어린 아이를 본다. 푸른색이기도 하고, 보라색 이기도 한 아이를. 그 아이는 실제가 아니나, 페리가 위험에 쳐했을 때 보이기도 했고, 잠을 자던 중 보이기도 한다. 그런 페리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페리는 더이상 그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다. 페리는 알라신을 믿는 이슬람이지만, 아버지 쪽에 좀더 가깝다. 종교가 평화를 말하고 있지만, 왜 늘 분쟁, 전쟁이 끊이지 않는지, 신은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고통속에 있는지, 정말 신은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인물이다.

 비록 이슬람이지만 남녀의 차별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페리는 태어나고 자랐던 이스탄불을 떠나 옥스퍼드로 향한다. 아버지의 지지와 어머니의 떨떠름한 허락이였지만, 그동안 보아왔던 환경을 떠나 보다 자유로운 세계로 나온 페리. 그곳에서 페리는 이란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을 떠나야만 했던, 그래서 무신론자가 된 쉬린, 그리고 반대로 알라신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보이는 모나를 만난다.  그리고 '신'이라는 주제에 대해 페리가 품어왔던 의문과 생각에 대한 답을 열어주는 열어주는 교수 아주르를 만난다. 옥스퍼드는 페리가 어렸을 적부터 가졌던 질문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서도, 옥스퍼드와 이스탄불의 문화적 차이에 더 방황할 수 밖에 없는 페리를 보여주는 장소이다. 옥스퍼드에서도 이스탄불에서도 여전히 중간자적 입장인 페리. 


이 책은 '신'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놓고,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이는 두명의 딸과 그 중간에 또 한 명의 딸  페리, 그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게 하는 교수를 통해 해당 주제의 양극에 서있는 사람과 그 중간에서 끊임없는 의심을 하는 인물을 통해 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심지어 중간에 있는 사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그 생각의 간극에 대해 말이다. 보편성에 대해 양극단의 화자, 중간자적 화자를 통해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좁힌다는 말 자체가 가능은 한것일까..) 그리고 과연 중간에 서있는 이의 소리없음은 어떤 의미일까. 중간자의 묵음은 양극단의 소리보다 나은 것인지도 작가는 묻고 있는것 같았다. 


그저 동서양의 문화가 모두 공존한다는 터키에서 보여지는 세 딸의 성장기 정도로 생각하고 읽었던 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물론 주제는 '신'이지만, 이것을 현재 각 사회가 보이는 어떤 이슈를 대입시킨들 다르겠는가. 남녀갈등, 장서갈등, 정치적 이해갈등, 난민이슈 등등등. 그 어느 사회보다 서로에 대한 혐오로 날선 표현이 어떤 필터링도 없이 보여지는 지금, 책이 던지는 질문은 무거웠다. 나의 절대적 공감이 나의 생각과 다른 누군가에게는 혐오로 표현되고, 그 표현은 타인을 향하는 날선 칼이 되어버렸다.


그 간극의 이유를 페리의 16년의 끝자락, 아수르와의 통화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어떤것도 집착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그 집착이 독단을 불러온다고. 그것은 광기를 만들고 우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것은 모든 관계에서 동일하다고. 그렇게 페리는 중간자의 묵음을 털고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가졌지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다. 누군가의 생각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설득당할까봐 두려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주장을 나의 논리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중간자여도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개진할 수 있어야, 우리의 문명은 더디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재밌다. 동시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한 책. Good!!


"내 말은, 이 나쁜 자식이 말을 하게 놔두라는 거네. 사상에는 사상으로 저항하는 것이지. 책에는 더 좋고 더 믿을 만한 책으로 대답하는 것이고, 유머에는 유머로.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그 사람들을 거부해서는 안되고, 입을 막아서도 안되네. 그렇게 하면 정작 우리가 파시스트가 되는 걸세. 연사들을 못들어오게 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는 말이지. 특히 대학에서는. 자유로운 생각과 다원주의를 억압해서는 안되네.." p.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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