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빛, 청자 2
정찬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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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학창시절 국사책을 벗어나고는 별로 들어본적 없는 단어. 책은 그런 청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소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려청자라기보다 탐진청자의 발자취이다. 재밌다. 청자의 발자취라니. 


시작은 해상왕 장보고라는 인물부터이다. 당나라 월주청자를 장보고가 가져오면서부터, 탐진청자의 시작을 알린다. 당구(지금의 해적)들에 의해 당나라에 노예로 팔려가 월주청자를 만들던 신라인들을 구제해 탐진으로 데려와 당시 탐진에서 만들던 청자를 더 발전시키기 시작하는 장보고. 그는 해상무역을 통해 그런 탐진청자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곳곳에 퍼뜨린다. 소위 K-컬처의 시작인셈. 
월주청자가 찐한 녹색이라면 탐진청자는 바다색과 같은 투명한 비취색을 띠는 것이 특색이다. 책의 1권이 이런 장보고와 탐진의 도공들이 탐진청자의 시작을 말한다면, 2권은 그런 청자가 고려로 넘어오면서 지금의 가치를 가지게 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장보고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던 소설은 1권 말미에서 장보고의 죽음으로 뭍혔던 청자가 다시 100년을 지나 고려 광종의 노비안검으로 인해, 다시 청자의 명맥을 잇기 시작한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탐진청자를 기억하고 만들어온 이름모를 도공들의 노력과, 청자의 가치를 알았던 당시 귀족과 스님들의 노력, 결국에 이르러서는 탐진 출신의 공예 태후의 손을 지나, 고려 말기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며, 그토록 오랜 세월 사랑받았던 우리의 청자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에게 그저 수업으로 외워야할 대상으로만 기억되는 우리의 청자가 다시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였다. 

어떤 유형의 물건이 지금까지 전해져, 우리에게 그 가치의 중요성이 전달되었다는 것은 지금도 흉내내가 힘든 무엇이 있어서 이지 않을까. 
 청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림이나 무늬에 그토록 공을 들이고도 유약이 잘못 발려서, 굽는 온도, 가마 문제등등 수도 얺는 이유로 말그대로 도공의 ‘성’에 차지 않는 결과물은 가차 없이 깨버리는 그들의 자존심. 그래서 최상품만을 팔고, 진상했던 그들의 의지가 새삼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박물관을 간다면 청자 앞에서 오랜 시간을 서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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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빛, 청자 1
정찬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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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학창시절 국사책을 벗어나고는 별로 들어본적 없는 단어. 책은 그런 청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소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려청자라기보다 탐진청자의 발자취이다. 재밌다. 청자의 발자취라니. 


시작은 해상왕 장보고라는 인물부터이다. 당나라 월주청자를 장보고가 가져오면서부터, 탐진청자의 시작을 알린다. 당구(지금의 해적)들에 의해 당나라에 노예로 팔려가 월주청자를 만들던 신라인들을 구제해 탐진으로 데려와 당시 탐진에서 만들던 청자를 더 발전시키기 시작하는 장보고. 그는 해상무역을 통해 그런 탐진청자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곳곳에 퍼뜨린다. 소위 K-컬처의 시작인셈. 
월주청자가 찐한 녹색이라면 탐진청자는 바다색과 같은 투명한 비취색을 띠는 것이 특색이다. 책의 1권이 이런 장보고와 탐진의 도공들이 탐진청자의 시작을 말한다면, 2권은 그런 청자가 고려로 넘어오면서 지금의 가치를 가지게 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장보고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던 소설은 1권 말미에서 장보고의 죽음으로 뭍혔던 청자가 다시 100년을 지나 고려 광종의 노비안검으로 인해, 다시 청자의 명맥을 잇기 시작한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탐진청자를 기억하고 만들어온 이름모를 도공들의 노력과, 청자의 가치를 알았던 당시 귀족과 스님들의 노력, 결국에 이르러서는 탐진 출신의 공예 태후의 손을 지나, 고려 말기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며, 그토록 오랜 세월 사랑받았던 우리의 청자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에게 그저 수업으로 외워야할 대상으로만 기억되는 우리의 청자가 다시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였다. 

어떤 유형의 물건이 지금까지 전해져, 우리에게 그 가치의 중요성이 전달되었다는 것은 지금도 흉내내가 힘든 무엇이 있어서 이지 않을까. 
 청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림이나 무늬에 그토록 공을 들이고도 유약이 잘못 발려서, 굽는 온도, 가마 문제등등 수도 얺는 이유로 말그대로 도공의 ‘성’에 차지 않는 결과물은 가차 없이 깨버리는 그들의 자존심. 그래서 최상품만을 팔고, 진상했던 그들의 의지가 새삼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박물관을 간다면 청자 앞에서 오랜 시간을 서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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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천
이매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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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서 나는 왜 이 책의 제목이 “음천”일까 궁금했다. 왜일까? 책의 말미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아. 싶었다.

책 소개 글에 분명히 드러나 있었는데, 소개글을 제대로 안읽었다는…이 책은 재미교포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책 제목인 “음천”은 그녀의 어머니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한국에서 여성이라는 위치,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불합리를 말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했고, 자식을 길러야 했던 어머니들의 이야기 이다. 아이를 낳지 못한 음천은 결국 작은 댁을 들인다. 남편과의 사이나 돈독하지 않다면, 좀더 나았을까? 남편과의 사이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음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결국 들인 작은 댁 수양. 그녀라는 존재 자체가 음천에게는 재앙이겠지만, 수양의 삶 역시 녹록치 않았다. 다리에 흉이 있다는 이유로 첫날밤에 소박을 맞아 돌아와 결국 어느 누구의 작은댁으로 가는 수양. 아들을 낳지 못해도 아들을 낳아도 내자식인냥 키울수나 있을까,  본처에게 구박을 당한다 해도 하소연 할 곳이나 있으랴. 


그렇게 만난 두여인. 그리고 터지는 한국전쟁. 귀용과 음천 사이의 업둥이 미나. 미나는 자신이 말그대로 고추를 달고 나오지 못해 엄마가 고통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데 누군가 내게 너는 업둥이라 말한다. 그럴리가 없는데, 나는 엄마를 닮았고, 내가 업둥이라면 우리엄마와 아빠가 내게 이렇게 할리가 없는데, 엄마는 결단코 아니라고 하고, 나는 작은엄마가 밉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하나의 가족으로는 살 수가 없는 묘한 관계는 이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아들선호사상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님에도 대체 죽어서 받드는 제사가 무엇이간데. 과학적으로도 모계유전이라는데, 대체.


그래도 이젠 큰댁, 작은댁(첩)같은 일은 없지만, 여전히 그 시대를 살아내셨던 분들은 계시다. 어떻게 버텨내셨을까. 사실 책속에 소위 빌런은 누구도 없다. 작은댁을 들여야 했던 시어머니도 음천에게 미안했고, 수양에게도 미안했다. 두 부인 사이에서 음천에게 미안하고 수양에게 미안했던 귀용 역시 쉽지 않은 삶이였다.

모두가 피해자였던, 심지어 그들의 자식조차 듣지 말아야할 말을 듣고 차별을 견뎌내야했던 시절.


다시는 이런 악습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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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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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작품집은 대체로 읽어보는 편이다. 대체로 시의성이 있는 작품들이고 새로운 작가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어서랄까. 아는 작가님도 있고 처음 만나는 분들도 있었다. 김승옥 문학상 작품집은 처음인데, 내게 꽤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뭔가 굉장히 사실적인 작품들이였다. 조금 더 과장하자면 노골적이라는 느낌이 들정도로…


대상작품인 편혜영 작가님의 포도밭 묘지.
수영, 한오, 윤주, 그리고 나의 이야기.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동기 4명이 현실사회에 나오는 이야기. 지금 88만원 세대, N포 세대의 이야기 이기도 하면서, 어쩌면 그 세대에서 더 약자인 이들의 삶이였다. 
 우리 4명중 가장 우등생이였고, 가장 준비된 인재였지만 외모로 인해, 백화점 판매직에 머물다 2년만에 퇴사하여, 알바와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수영, 하지만 윤주가 지금도 시험준비를 하는지는 모른다.
 가장 반항적인 성격을 가진 이로, 불합리를 참지않지만, 다니던 회사에서 그녀의 실수로 오타를 내었고, 그 모든 책임이 가장 말단에 있던 그녀에게 쏟아지자, 결국 그 때 아주 간단한 도움을 주었던 13살 연상 대리와 결혼하여, 직장을 그만두었으나, 결국 못배우고, 아랫사람 취급으로 무시당하며 사는 윤주.
 은행에 취직해 가장 성실하게 일하지만, 소위 호구 취급을 당하지만, 끝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 공부를 병행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현오.
 가장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누구보다 현실속에 사는 나. 
 이런 4명의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의 기일을 보내다 발견한 나무에 다 말라비틀어져 있는 포도. 
지금의 현실이면서, 너무나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말라비틀어진 포도는 지금 사회에 누군가의 노동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태움을 강요하고, 가장 말단에서의 아귀다툼을 외면하는 사회 속에서 희생당하는 이들에 대한 묘사이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으며 드는 답답함은 아마도 현실은 더 어둡기에 느껴지는 감정일까.


개인적으로는 김연수 작가님의 “진주의 결말”이였다.
뭐랄까.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의 진의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했달까. ‘이해’라는 단어는 결국 타인을 향한 것일까 나를 향한 것일까? 우리가 오롯히 타인을 이해 할 수는 있는 것일까? 납득이라는 말이 맞는것은 아닐까. 뭐 어휘의 정확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이야기는 타인의 삶을 결과를 놓고, 판단하는 것의 어불성설을 말하고 있었다. 
 치매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집에 불을 낸 유진주의 삶. 그녀를 심리를 분석하는 법 심리학자인 나. 그리고 나와 그녀의 사건을 두고 방송을 하는 강PD의 <사건의 전말> 프로그램. 각자의 시선에서 각자의 생각으로 유진주라는 인물을 분석하지만, 결말에서 드러나는 반전. 사실 반전인지 여부조차 확실치 않은 결말이지만, 결국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였을까를 골똘이 생각하게 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p.68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는 행위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소위 선입견, 판단이라는 것을 너무나 쉽게 누군가를 마녀사냥하듯 그저 가십거리로만 씹어대는 지금에 대해 말하고 싶은것은 아닐까. 

 소위 브루주아의 위선과 그 위선을 바라보는 프롤레탈리아의 반란. 웃음으로 그 위선을 보기 좋게 뭉그러뜨리는 이연의 연기가 통쾌하면서도, 우리는 왜 그런 브루주아의 위선을 동경하는 것인지 시원하면서도 씁쓸한 김애란 작가님의  ’홈파티‘.

K를 잃은 나가 깊은 우울감에 빠지는 내용인가 싶다가 결국 나의 이야기로 귀결되게 만든 다소 으스스하면서도 뭐지 싶었던 정하나 작가님의 ’일시적 이탈‘

성수대교와 그 성수대교의 생존자인듯 아닌듯한 내가 성수대교를 토대로 논문을 쓰며 다시 그 때를 돌이키며 논문인듯 소설같은 이야기를 쓰는 문지혁 작가님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때‘


딸과의 관계가 그리 썩 좋지 않고, 정해진 일정대로 살던 내게 어느날 맡겨진 앵무새. 그 불편함이 어느덧 소중한 일상으로 바뀌던 어느날 떠나고 남은 내가 드디어 나를 제대로 돌이켜 보게 만드는 날. 내게 무엇이 없었던 것인지를 내가 놓쳐버린 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백수린 작가님의 ’아주 환한 날들‘


지금 우리가 외면하는 것, 놓쳐버린 것, 잊지 말아야 함에도 잊어버린 사건들에 대해 각 작가님들의 작품은 불편하지만 직시해야 함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굉장히 사실적이면서 내게는 다소 노골적인 찌름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재밌었지만 아팠고, 이 이야기를 읽으며 각 사건들을 돌이킬 때는 쓰렸다.

굿.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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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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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수의 레토릭에 관한 책이다. 알릴레오에 출연했던 경제학 교수님이 언급하신 것을 보고 궁금해진 책이다. 책은 보수의 언어에 대해 3가지로 분류하고, 설명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명제 자체는 많이 들어봤던 말이지만, 설명하는 부분은..... 어렵다.ㅠ

첫번째 명제, 그래봐야 너만 힘들어진다. 역효과의 명제.
두번째 명제, 해봐야 소용없다. 무용 명제.
세번째 명제, 그러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위험명제.

정말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재밌는 점은 이런 보수가 내세우는 명제가 프랑스 혁명당시에도 있었다는 것이고, 더 끔찍한것은 지금도 흔히 쓰이는 말이라는 것이다.


첫번째. 역효과의 명제.
이 명제는 최근 실업급여 사태를 보면 뚜렷히 보인다. 시럽급여같은 소리를 하며, 실업급여가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악용되고 있는 몇가지 경우를 들어, 그 실업급여의 취지 자체를 흔들었었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목적을 가진 사회적 행위"는 의도 하지 않은 긍정적 결과과 부정적 결과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으며, 어느 것이 더 큰지는 분명치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정적 부작용에 대해 더 큰 인식을 갖는 경향이 있으며, 본래의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판단이 흔히 내려지게 된다고 한다. 몇 명의 악용사례를 마치 전체 인마냥 호도하며, 그 본질 자체를 흐리는 행위를 통해 본래의 취지마저 빛바랜것으로 만들어 없는 것으로 만든다면 사회는 결국 진보할 수 없지 않은가.

두번째 명제. 무용 명제. 
저자는 이 무용명제가 가장 나쁘다고 말한다. 왜냐면, 다른 명제는 시도라도 할 수있지만, 무용은 말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무엇이라도 해보고 그것이 옳든 그르든 판단할 수 있지만, 무용 즉 해봐야 소용없다는 식의 인식은 결국 인간을 무력화 시킬 뿐이라는 것. 무용명제의 예로 든 사건 중 하나는 프랑스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이 과연 무엇을 가져왔는지에 대해, 그 혁명과 혁명이 나아가고 있는 시민권, 투표권등을 무력화 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는 것. 우리는 지금 그 결과를 뚜렷히 보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시도가 있었다는 점이 그저 놀라웠을 따름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우리가 절대권력을 타파하려고 시도 할 때마다, 우리는 노예의 몸 위에 자유의 머리를 엊는 일에만 성공했을 뿐이다." p. 86

세번째 명제. 위험 명제.
이것은 역효과 명제보다 더 과격한 언어이다. 말 그대로 더 위험해진다는 말이다.  이 명제가 쓰였던 것이 대표적으로 선거권의 확대가 이뤄졌던 20세기 초반이다. 대중에게 투표권을 주는 행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보통선거권은 기본적 자유, 재산을 소유할 자유를 침해하고, 부자의 재산을 강탈함으로써 군부의 개입이나 독재정부로 이어저 자유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니... 이런 모순적 주장이라니. 
즉 위험명제는 제로썸이 아니라 마이너스를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진보의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왔지, 피폐하고 황폐함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 아닌가.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이 아주 얄팍한 논리에 의거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_-;

이런 세가지 명제는 하나의사건에 하나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등장하고, 하나의 명제는 다른 하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모순적이며, 양립 불가능한 명제 들이다.  

"형식적인 관점에서 위험론과 무용론 사이의 상호작용이 지닌 한가지 흥미로운 모습은, 두 주장이 각기 참정권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돕기보다는 모두 서로를 손상시킨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대체로 일종의 속임수라고 보는 무용 명제는, 민주주의를 '자유'에 대한 공포스런 위협이라고 보는 위험 명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p.198

허.. 참.. 그런데 왜 우리는 저런 말들에 쉽게 혹하는 것일까..?

재밌는 부분은 저자가 이런 보수의 명제들에 반대되는 진보의 명제들에 대해서도 짧게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 역시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반동주의자(보수)들이 제로섬이나 마이너스를 주장할 때, 진보는 대체로 '좋은 일들은 공존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한쪽은 극히 어두운 면을 한쪽은 극히 밝은 면을 본다니,, 양쪽은 대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정치는 각자 말만 하는 것인지.)

이런 나의 생각에 대해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균형을 말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 진영의 치열한 싸움 즉 논쟁, 토론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양쪽 진영이 얻고, 그런 정보를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기반으로 변화된 사항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있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만들어 진다는 것.... 

어렵다. 책의 내용을 오롯히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만, 우리가 지금 택한 민주주의라는 것 그 자체가 참 어려운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나같은 팔랑귀는 더더욱 ㅠ

좋은 책.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음 좋겠다!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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