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겉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에만 휘둘리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쓰레기 처리장에 살고 있는 데쓰조는 파리를 기른다. 남들은 세균이 득시글대는 더러운 것을 기른다며 인상을 찌푸리지만, 막상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쓰레기통 같은 환경 속에서 파리를 기를 수밖에 없던 데쓰조의 현실이 가슴아프다. 데쓰조 뿐만 아니라 쓰레기처리장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넝마주이라는 놀림을 받기 일쑤고, 선생님들에게도 무시당하고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 그러나 고다니가 데쓰조를 좋아해주니까 자신들도 고다니가 좋다고 말하고, 말주변도 없는 데쓰조를 위해 자꾸만 말을 걸어주고, 데쓰조를 어떤 편견도 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맘속으로 아껴주는 것은 모두들 더럽고 위험하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처리장 아이들이다.

데쓰조의 담임이 된 고다니는 처음엔 지저분하고 거칠기만 한 데쓰조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고다니가 더러운 데쓰조를 탓하기만 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깨끗하게 씻겨준 후 데쓰조는 고다니의 흉내를 내서 자신의 개 기치를 열심히 씻어준다. 결국은 사람의 손길이 그리운 사람의 자식 데쓰조. 누군가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신도 사랑을 주고 싶은 아이. 말도 하지 않고 글씨도 쓸 줄 모르던 학교에서의 데쓰조는 고다니의 말 그대로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지만, 드디어 그 데쓰조가 깨어났다. 고다니와 함께 파리이름이 적힌 카드로 글씨를 연습하고, 파리 실험도 같이 한다. 여전히 말수는 적지만, 데쓰조가 2학기 글짓기 시간에 쓴 ‘고다니 선생님 조아’라는 글을 봤을 땐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시큰해졌다. 데쓰조가 쓴 그 말엔 어떤 미사여구도 없기에 그만큼 솔직하고 의미있게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초짜선생 고다니는 아직 완벽하게 준비된 선생님은 아니지만, 처음의 편견을 버리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동안 데쓰조와 처리장 아이들을 비롯한 아이들 각자가 지닌 사랑스러움이나 그안에 품고 있는 보석같은 재능들도 발견해내게 된다. 까마귀가 모아놓은 쓸모없는 물건들을 가리키는 말인 까마귀 저금. 그 까마귀 저금같은 물건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고, 구김살 없는 마음을 크게 키워나가고 있는 아이들. 마치 똥을 거름으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듯 척박한 환경을 배경으로도 아이들은 생명력과 재능을 꽃피운다. 편견에 눈이 멀어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뿐이지, 아이들은 이미 그 안에 저마다의 보물창고를 그득그득 품고 있을게다. 함께 부대끼고 진실되게 다가서려는 과정 속에서 고다니선생은 선생님이란 역할에 대해서는 물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새롭게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데쓰조를 비롯한 아이들의 성장기면서 바로 선생님인 고다니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처리장 사람들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사건들에 관심을 기울이다보면 어느덧 억지로 등을 떼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변화해 가는 아이들과 주위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뜨끈해진다. 마냥 아름답게만 포장하여 동화 속 같은 해맑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데도, 힘든 과정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순수하고 따뜻한 기운이 흠뻑 느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이 결정나고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출발하는, 이것이 시작이라는 느낌의 마무리가 무척이나 맘에 든다. 그들의 활기찬 발걸음에서 희망이 느껴지고, 앞으로 펼쳐질 더 무한한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어 한편으론 벅차면서 또한 설레기까지 한다.

이 작품의 원제는 ‘토끼의 눈’이다. 고다니가 좋아하는 절인 사이다이 절의 선재동자 조각상의 눈이 그윽하고 다정한 눈빛을 지닌 토끼를 닮은 눈동자다. 결국 처리장의 아이들도, 처리장의 사람들도, 그들을 걱정하는 선생님과 주위사람들도, 모두들 토끼의 눈을 가진 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쩐지 하이타니 겐지로야말로 진정 토끼의 눈을 가진 사람일 것 같다.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풀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도, 충분히 공감갈만한 이야기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풀어가는 하이타니 겐지로의 솜씨가 놀랍다. 그리고 이론만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진실을 담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준 그에게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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