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어쩌면 올리버 색스라는 작가이름보다 영화 <사랑의 기적>의 원작을 쓴 사람이라고 하는 편이 더 친숙할지도 모르겠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사랑의 기적>, 살아있기는 하지만 나무토막처럼 감정도 움직임도 없이 그저 ‘존재’하기만 했던 사람들이, 열혈의사 로빈 윌리엄스의 처방으로 웃고, 말하고, 움직이며, 가족들과 부둥켜안는 모습에 감격에 겨워 울고, 그들이 다시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워 울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의 원작인 ‘소생’이란 작품을 썼던 올리버 색스가 써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우스꽝스러운 제목과는 달리 뇌의 우반구에 손상을 입어 신경장애를 겪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라는 4개의 큰 챕터로 나누어진 이 책은, 상상을 초월하는 증세를 겪는 이들을 꼼꼼이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정감어린 시선이 곁들여진 하나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선 겉으로 드러나는 병세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숨겨진 열망과 재능, 정신적 평온함을 찾아주기 위해 애쓰는 작가,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 이루어내는 기적처럼 느껴질만큼 삶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이들의 이야기가 마음 따스하게 펼쳐진다. 어느날부터인가 몸이 ‘존재’한다는 현실감을 상실해서 신체부위를 직접 보며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지만, 애쓰고 또 애써서 삐걱대며 움직일 수 있게 된 크리스티너의 모습이나, 15년간 다른 이들과의 교류없이 갇힌채 살아오는 동안 하루에 20회이상 거듭되는 발작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던 호세, 그가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해 이전에 그렸던 물고기 옆에 친구 물고기를 그려넣는 모습엔 마음이 찡해진다. 리베커와 마틴은 또 어떤가. 리베커의 지능은 고작 8세수준이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줄 알고 자연스레 시적인 표현들을 떠올릴 줄을 안다. 마틴은 비록 지능은 낮지만 한번 들으면 어떤 음악이고 잊지 않는 비상한 기억력을 자랑하며, 바흐의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음악에 대한 정열까지 품고 있다. 시나 음악과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그들은 더 이상 저능아도, 결함투성이의 존재도 아닌 어엿한 한사람의 온전한 인간이 된다.

우리는 병명을 알고 그 증세를 알더라도, 병마에 시달리는 인간의 내면은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른바 정신장애라는 것을 앓고 있는 사람을 보거나 그런 이야기를 접하면, 왠지 몸이 움츠러들지는 않는가. 하지만 단 몇 개의 단어만으로 어떤 사람의 병을 설명할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진료카드 한 장으로 그 사람과 그가 겪고 있는 병, 그리고 그 내면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까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물며 그 인간의 깊은 곳에 숨겨진 열망과 재능을 들여다 보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저자가 환자들을 보면서 느낀 감상을 노트에 메모하곤 하는데, 그 구절들이 참 맘에 와닿으면서 가슴아프기도 하지만, 관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더 나은 인간의 삶과 앞으로 나아가야할 바를 모색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조금만 이해심을 가진다면 그들의 숨겨진 재능이 꽃피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저 무의미한 존재가 되버리게 하고 만다. 인간적인 눈길로 이들의 내면까지 관찰하고 이해하며 더 나은 곳을 향해가려는 연구는 그래서 더 가치있다.

이미 쓰여진지는 20여년도 더 지난 책이라, 그 사이에 이 병들의 치료법이 발견되었을런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뇌의 우반구에 관심을 갖게 되기까지, 그리고 그에 대한 연구들이 쌓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감안해 볼 때, 이 책이 쓰여진 시점과 지금의 의학적인 수준의 갭이 전혀 동떨어지지는 않을 거 같은 기분이다. 이 소설이 쓰여진 80년대에도 이미 100여년전, 몇십년전에 제기된 이론이나 근거자료들조차 증명의 사례나 기술이 부족할 뿐 이론은 그때부터도 탄탄한 느낌이니. 물론 20년이란 세월 속에 과학기술이나 의학적인 진보, 많은 사례와 연구들이 녹록치않게 쌓였을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지만, 과학적인 ‘기술’이 진보할수록 인간에 대한 ‘관심’은 외려 부족해지기 마련이니, 무엇이 얼마나 변했을지는 감히 자신하지 못하겠다.

논문을 다시 옮겨 싣고 한 것이 많아서, 학술적인 분위기도 나고 가끔 어려운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허나 전문적인 용어와 지식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하며 골머리를 썩일거라는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작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 참으로 편안하고,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인용문이나 그림들도 이해에 도움을 준다. 특히, 작품전체를 아우르는 독특한 삽화들은 산만하게 마구잡이로 그려낸 듯 하지만, 너무나 절묘하게 이야기들을 표현해내는지라 정말 딱이란 느낌이다. 인간미가 흠뻑 묻어나고 훈훈한 온기가 느껴지는 작품, 이 작품이 정말 가슴 따뜻하고 감동적인 것은, 바로 인간적인 접근을 해나가는 연구자와, 자신의 상황을 극복해내려고 애쓰고 또 애쓰는 인간들의 의지와 희망을 느낄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삶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