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하게, 자신의 상처투성이 과거를 우스개 섞어 이야기하는 상대를 눈앞에 둔 듯, ‘달려라 아비’를 비롯해 때때로 비루한 현실을 반어적으로 혹은 덤덤하게 풀어가는 이야기들을 듣노라면, 씁쓸한 느낌이 들다가도 왠지 헛헛한 웃음을 짓게 된다. 때론 만화적인 앙증맞은 상상력이 너무 귀여워 웃어버리게 되고, 감칠맛 나는 표현 또한 서서히 착착 감겨든다.


 싸한 현실에 마음이 시리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정감있는 모습하나, 행동하나에 가슴이 저릿저릿하고, 쓸쓸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하늘에서 예쁘게 꽃피우는 불꽃놀이를 함께 바라보는 내가 있고, 스카이 콩콩을 타며 가로등과 함께 눈을 깜빡이며 그 순간 일어난 변화들을 꿈꾸는 내가 있고, 차마 소리내어 말 못하고 노크조차하지 못한 채, 수많은 비슷한 ‘나’ 중의 한명이 되어버린 그녀가 방문에 귀를 대고 숨죽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있다.  ‘영원한 화자’에서 말하는 사람, 나 역시 그런 사람임을 발견하고, ‘그녀가 잠 못드는 이유’와 나의 이유를 맞추어보며 어쩐지 모를 공감대에 반가워하다, 문득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이야기속의 이 모든 것들이 인생이고, 그 안에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때로 인생은 마법같기도 하고, 처절한 생존이기도 하며, 눈감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기도 하고, 한 조각 꿈같기도 하다. ‘종이 물고기’에선 흩어진 꿈의 조각을 발견하고,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에선 불꽃놀이 같은 화려한 인생의 한 조각을 발견한다. 현실에 전혀 발 담고 있지 않은 듯한 이야기들과 다른, 현실을 떠나 한동안 다른 세계에 푹 잠겨볼 수 있는 이야기와는 또 다른, 설령 지지리 궁상스러워도 내 피부 가깝게 살가이 느끼면서 울고 웃고 찡그리고 미소짓고 할 수 있는 매력, 삶의 여러 단면들을 한번에 조각조각 볼 수 있는 것, 이 모든 매력이 <달려라 아비>속에 있다. 어느덧 살아가기보단 살아내어가고 있는 현실, 그 다양한 조각들을 한데 엮어 때론 기다리고 아파하고 잊어버리고 또한 꿈꾼다.


 선잠에서 깨려는 때의 꿈과 현실과의 모호한 경계. 피부에 싸늘한 바람이 한줄기 스치는 걸 느끼며 이제 현실로 돌아가는구나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깨기 아쉬워 울먹이게 되는 그때와 같은 느낌. 사람냄새 나면서 남다른 감수성이 느껴지는, 김애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어쩐지 끝내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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