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행정처는 과연 별난 존재다. 농단이란 뜻을 다시 살펴보자. *농단은 깍아지른 듯이 높이 솟은 언덕이란 뜻으로 권력의 이익을 혼자서 독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권력과 이익이 모두 위로 몰리는 일종의 피라미드를 연상하면 되지 않을까(389쪽)
사법농단의 경과를 추적한 이 책은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인 사법개혁, 즉 우리 사회의 핵심부이기도 한 법을 다루는 자들 주변의 또 다른 그림자들이 법위의 법이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소상하게 다뤄보고 있다.
이게 아닌데. 뭐가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나. 실소를 자아내게 했던 반칙 사회는 법 바깥에서 그렇게 법 중심을 끝없이 공략하고 있었다.
"그 분들이 무슨 장기판의 돌도 아닌데 어떻게 사퇴시킨다는 거예요?"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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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존버 정신을 가지고 같이 버팁시다(존나게 버티는 정신요)'(102쪽)
사법개혁의 전후 사정은 사실 잘 알지 못했다. 법원 내의 한 연구회를 겨냥했던 법원행정처의 문건 하나에서 시대의 오류를 읽어낸 이탄희 판사는 몇 년 후 다시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항의.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내가 조직을 바꿀 수 없고, 조직이 나를 바꿀 수 없다는 예감이 들면 어쨋든 스스로 칼을 빼들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조오현 시인의 시 <마음 하나>를 인용한 뒤 "도를 넘은 공격에 대해서 이런 마음 하나로 견뎌왔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290쪽)
그가 법관으로 살았던 42년간, 형사법정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유신시대, 잔혹하게 고문당한 이들이 판사 양승태의 법정에 들어와 억울함을 호소할 때 그는 어떻게 판결했나. (291쪽)
판사 임종헌의 법률 규정에 능한 '법 기술자'라는(299쪽) 저자의 인상처럼 법에 무지한 우리 시민들도 어렴풋이 아니 많은 이들은 너무나 선명하게 법정과 싸운 이야기들을 통해 두 얼굴의 법원을 이미 터득하고는 있었다.
얘들아, 우리가 지금 그 집에서 무사히 나왔지? 그리고, 우리 식구들 말고 아무도 모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러니까 아무일도 없었던 거야. 알겠어?(300쪽)
기생충의 한 장면이 인용된다. '숨기면 술겨질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계속 되어 왔다.
강제징용 소송이 시작된 건 1997년 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내면서다. (327쪽)
민주화로 외부의 압력에 순응하지 않으면 판사로서의 평판에 금이 가고 판사사회에서 따돌림을 받게 된다. '이제는 양심껏 재판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오히려 법관의 양심을 지키기 어려워진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379쪽)
한국 사회에서 조직의 힘은 참 세다. 우리는 각종 조직을 구성하며 조직에 몸담으며 소속감과 어떤 종류든간의 안식,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보호받는 느낌마져 갖는다. 그래서 자기가 속한 크고 작은 조직을 지켜가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단련하고 또 개인 너머의 조직을 위해 자신의 의견을 끼워맞추기를 잘 해내야 정상이라는 판단에 이르기도 한다. 조직이 와해된다는 건, 자신을 둘러싸는 하나의 세계를 잃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처럼 정의나 원칙이 작동하는 사회는 실현되지 않을 수 있어도, 최소한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법정은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를 믿고 우리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는 생각이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한일갈등과 화이트리스트 또 일본불매운동, 사법개혁과 조국 후보자. 모든 것이 순리대로 풀려가면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 매의 눈으로 현재를 분석해낼 차례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