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크기
이희영 지음 / 허블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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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나는 항상 지인에게 내가 느낀 것들을 말해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안의 크기>를 읽은 뒤 친구에게 물었다.

"행복의 반대말이 뭐라고 생각해?"

"행복의 반대말이면..불행 아니야?"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행복의 반대말은 안행복이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대."


오랫동안 곰곰히 곱씹어 보았다.

안행복과 불행의 차이.

행복하지 않은것은 불행한 건가?

그냥 안행복한 상태인 것 아닌가?

불행이 행복의 반대말이라면 안불행한 것이 무조건적인 행복을 말하나?

사실 생각해보면 인생은 무작정 행복하지도 마냥 불행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새해를 맞아 서른 한 살이 된 설우.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 사직을 당한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애인인 S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원하지 않던 새해 계획표가 촤르르 펼쳐지는 느낌이다.

사직과 이별은 설우 계획에 없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 덕(?)에 설우는 티비에 나온 잔치 국수 맛집에 찾아가 보기로 결심한다.

지하철을 타고 또 다시 버스를 타 몇 분을 걸어가서 도착한 흑호 시장. 

잔치 국수 집에 들어가 국수 한 그릇을 시킨다.

여기, 엄청난 맛집이다.

설우는 흑호동이 마음에 든다.


설우에게는 작고 파란, 동그란 빛의 형태인 친구 "조"가 있다. 

설우는 조의 정제를 알고 있다.

엄마의 뱃속에 있던 시절, 자신의 옆에 꼭 붙어있던 아이,  태어났다면 설 과 우 라는 이름을 각각 가지고 살았을 쌍둥이 자매.


베니싱 트윈.

엄마의 자궁에 있던 쌍둥이 아기 중 한 명이 자연스레 엄마의 몸으로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

설우는 그 사실을 엄마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고 알게 되었다.

설우는 그때부터 매 해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조가 나 대신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왜 조 말고 내가 태어났을까' 


조가 늘 설우의 곁에 있었기에 설우는 언제나 죽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은 항상 붙어 있는거라고. 

그래서 설우는 미지근한 삶을 살아왔다. 

안선택하고 안욕망하는 삶을. 

욕망과 행복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무의미한 것이니까.


<안의 크기>에서 '안'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 '안행복'의 안은 '아니다' 라는 부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실과 고통으로 안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면 안의 크기는 늘어나고 만다. 바람 넣은 풍선이 부풀듯이.

그 크기를 행복한 순간으로 줄여 나가는 것.

안의 크기를 줄이는 것. 

행복한 순간들은 매일 있다. 짧고 빠르게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언제나 우리의 안행복을 줄여주고 있을 것이다.


'안'은 아주 작아질 수도 매우 커질 수도 있지만 아예 사라지지는 않는다.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없고 무참히 불행하기만 한 사람은 없듯이.

안이 너무 커져 나를 덮쳐오기 전에, 잠식되어 버리기 전에 짧고 행복한 순간들을 이어 붙여 크기를 줄여 나가는 것. 그렇게 섬세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나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설우가 만난 흑호동 사람들은 설우의 안은 물론 나의 안도 줄여 주었다.

각자의 슬픔과 비밀들을 안고 살아가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잘 사는것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곤 하지만

직접 만든 필통을 나누어주고, 함께 술 한 잔 걸치며 속마음을 털어 놓고, 실수는 있더라도 화내지 않고 같이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어두움이 있기에 더욱 빛나는 찬란한 행복의 순간들을 그들은 켜켜히 쌓아가고 있었다.


푸릇푸릇한 잎사귀가 돋아 나올 때쯤, 설우와 이름 모를 서점 주인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별 뜻 없는 농담을 주고 받고, 서로의 옷자락을 여며 주며 맛있는 샌드위치와 잔치 국수를 먹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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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 환영의 집
유재영 지음 / 반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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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이라는 단어가 주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축축하고 어두운, 어떤 시선이 따라 붙는 듯한 느낌.

<호스트-환영의 집>은 제목 그대로 적산가옥에 남아 새로운 이들을 반기는 호스트 역할의 존재가 등장한다. 이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당신이 보는 <환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자고로 '집'이란 그 어디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소중한 집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나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고 상상해보라. 읽는 동안 누군나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규호는 어느 날 변호사에게 전화를 받는다.

최근에 돌아가신 규호의 큰아버지가 규호 앞으로 청림의 집 한 채와, 현금 2억원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큰아버지가 남긴 편지에는 단 여섯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그 집을 지켜라.'

영원히 묻어두길 바랬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규호는 어린 시절 그 집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 떠올랐지만 지금 집을 팔고 현금을 보태면 빚을 갚을 수 있다. 실비의 병원비까지 해결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가족들과 청림으로 이사를 간 수현, 드넓고 공기 좋은 이런 환경이라면 딸 실비도 금방 나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새로운 환경에서 규호와의 관계도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가족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진다. 자꾸만 이상한 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수상하다 여기던 중 실비와 실리가 편지 봉투를 하나 발견한다.

일본어로 써진 편지의 수신자는 이 적산가옥에 살았던 오카다 나오라는 여성이다.

편지에는 죽음과 삶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기이하고 잔인한 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써져 있다.

그리고 오카다 나오는 이 실험을 실제로 행한 것 같다.

과연 이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오는 엄마가 죽기 전 한 말들을 종이에 옮겨 적는다. 엄마는 떠나기 전 경성에 가보고 싶다 말한다. 자신의 고향인 경성으로.


그렇게 의사가 된 나오는 교토를 떠나 경성에서 근무하다가 청림으로 근무지를 옮긴다.

나오는 우연히 청림 방직공장 사장 다카히로라는 남자를 치료해주게 된다.

청림호 근처, 2층 집 목조 주택을 짓고 있던 다카히로는 집이 완성되자 나오를 그 집에 데리고 가 청혼을 한다.

다카히로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오는 이 집이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녀는 결혼을 승낙한다.

하지만 모든 비극의 이 집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니, 꼭 비극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오가 살던 1940년대, 규호의 어린시절 사건이 벌어진 1995년. 그리고 현재인 2025년의 이야기가 각자 서술 되면서 적산가옥에 묻혀진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세가지 시간은 얽히고 설켜 하나로 맞물린다.


나오와 수현은 각자 죽은 명숙과 실비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다. 나오가 되살린 명숙은 그렇게 그 적산가옥의 호스트가 되어 수현의 가족을 환영해주었고 그 시간들은 돌고 돌아 실비를 살리게 되었다.


그런데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비와 명숙은 정말 살아 있는 것인가.

규호는 수현을 살인자라 비난한다. "당신이 죽였어." 

하지만 수현은 말한다.  "그리고 내가 살렸지." 

과연 어떤게 맞고 어떤게 틀린 것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오의 엄마인 금자에서부터 시작된 모성애는 나오와 명숙을 건너 수현과 실비에게도 전해진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삽입된 사진의 적산가옥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환영은 나를 또 한번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진정한 환영의 집이었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가족과 집이라는 소재와 <프랑켄슈타인>의 새롭게 만들어진 생명체, 그리고 적산가옥이 만나 새로운 K-호러가 펼쳐졌다.

이 특이하고도 놀라운 조합은 읽는 동안 높은 몰입감을 선사했고 색다른 호러를 맛보게 해주었다.

추운 겨울날 이불 속에서 오싹한 호러를 원한다면 <호스트>를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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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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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이 료의 <생식기>는 이곳 저곳에서 추천이 많아 언젠가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딱 그 뿐이었다.

제목이 왜 <생식기>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생식기가 화자로 등장하는 걸 본 순간 난 충격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생식기가 화자라고...생식기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간에 대한 내용이라고...누가 감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시각과는 별개로 내가 이 이야기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을지 걱정됐다.

생식기인 '나'가 하는 이야기는 놀라웠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간의 행동, 심리, 감정 변화 등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필을 손에서 놓지 못한 독서 시간이었다.


화자인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수 많은 종의 생식기 역할을 수행해 왔다. 현재 '나'가 생식기로 활동하고 있는 개체의 이름은 다쓰야 쇼세이. 32살의 평범한 직장인으로 '나'가 맡은 두 번째 인간 개체, 수컷 인간으로는 처음이다.

쇼세이는 흔히 말하는 공동체 감각이 없는 개체이다. 쉽게 말해 공동체를 위해 개체가 노력한다 거나, 타인을 도와주려는 행위는 일절 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쇼세이는 어릴 적부터 자신은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껴왔다. 바로 동성애 개체라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특히 1989년 생인 쇼세이가 학창 시절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히는 것은 공동체로부터, 즉 가정과 학교로부터 방출될 가능성과 연결되는 행동이었다.

그랬기에 쇼세이는 이 비밀을 홀로 간직한 채 이성애 개체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 의태 과정을 거친다.


쇼세이라는 개체가 생성된 지 18년 후, 쇼세이는 자신의 생성지가 아닌 다른 서식지로 옮기게 된다. 대학에 진학한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쇼세이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다른 이성애 개체와 동일 시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쇼세이는 그렇게 [온전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서 쇼세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 개체들은 공동체 감각을 지니고 있다.

공동체에 공헌하려는 마음이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생성하는데 가장 중요하며, 이 관계는 개인의 행복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즉 공동체의 확대, 발전, 성장이 이루어질 수록 개인 또한 행복하다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든 성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더 좋은 집으로, 더 좋은 직장으로, 더 좋은 인간으로.

끝이 없는 레이스,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은 이 경쟁 속에서 인간들은 다른 누군가가 탈출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있다.

아니면 탈출한 누군가를 보고 자신 역시 멈추길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또한 이 책에서 크게 다루는 것이 동성애이다.

책에 등장하는 한 국회의원은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며, 공동체를 위한 생산성이 전혀 없는 인간이라 비난한다. 심지어 동성애는 제발 숨어 살길 바란다고 까지 말한다.

그리고 쇼세이가 가족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히지 못한 이유는 아버지가 이 국회의원과 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클 것이다.


동성애가 생산성이 없다는 말, 즉 아이를 생산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종은 자신의 종족을 유지하려 애쓰며 그것은 가계도를 끊임없이 늘리는 행동으로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며, 동성혼, 커밍 아웃 등과 같은 행동들은 언제나 이성애의 오케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애는 동성애의 오케이를 받지도 않으면서, 멋대로 공동체의 주축으로 행세하며 이것 저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과 한마디 없이.


동성애, 자연 파괴, 성장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나는 이 시대의 문제점 모두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 역시 항상 [다음]을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았나. 

[다음]이 없을 때 불안 해하지 않았었나 하고 말이다.

이 모든 행동들엔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결국엔 내가 속한 공동체(가정, 회사, 지역, 사회)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개체가 아니다. 그저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또 다른 동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인간일지라도 차별하고 배척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제멋대로 자연 위에 자신들의 잣대를 올려놓고, 자연계를 착취하고 섭렵하려 한 뒤 이제 와서 자연을 되살리 자며 악다구니를 쓴다.

생식기가 바라본 인간이란 참 나약하고 어리석으며 한없이 작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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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방정식 2
보엠1800 지음 / 어나더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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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은 매들린이 이안에게 어떤 방식으로 사랑과 죄책감을 품게 되는지, 과거에 이어서 현재에서도 이안이 어떤 식으로 매들린에게 빠지게 되는지 서술 되었다면 

2권에서는 격동의 사건들과 상황이 펼쳐졌다.

1권 마지막에서 매들린이 이사벨의 부탁을 받고 제이크를 지하실에 숨겨주었다가 들통나고 만다.

이안을 온갖 수를 써서 매들린을 자신의 곁으로 데려오려 했지만 자신은 옳은 일을 했다고 믿는 매들린은 차마 거짓 증언을 할 수 없었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매들린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생각보다 출소 후 용서를 빌고 노팅엄 저택으로 돌아올 매들린을 위해 이안은 집안의 집기들을 바꾸고 인테리어를 손보며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매들린은 과거에 이어 이안의 곁에 자신이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홀로 배에서 또 타지에서 외로웠을 매들린이 참 안쓰러웠다.


하지만 이안은 도저히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죄책감도, 동정심도 그 무엇도 좋으니 자신을 안아 달라고, 내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했다.

순애남도 이런 순애남이 없다.

매들린은 간호학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펼쳤고 이안은 매들린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점차 생기를 얻어갔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혼란스러운 유럽과 미국, 공산주의를 외치는 청년들, 치솟는 소비량과 뒤바뀐 사람들의 인식.

그런 시대 속에서 이안와 매들린은 아무리 멀어지려 노력하고, 다른 삶을 찾아 떠나봐도 결국 서로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대방이 진창에 빠진다면 나 역시 흔쾌히 그 진창을 굴러주겠단 마음이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뭐냔 말이야...


많은 고난과 사건이 있었지만 이 책은 확실한 해피 엔딩이다. 그 점이 너무 좋았다.

매들린은 이안에게, 이안은 매들린에게, 수만가지 단어로 서로에게 단단히 묶여, 오랜 시간 동안 구원을 위한 방정식을 써 내려갔고, 많은 시행착오가 난무했을지언정 마침내 수식을 완성해냈다.

심장이 두근대는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나약함, 사랑과 시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에 빠진 서로를 위한 그물이 되어 주었다.

서서히 쌓아올린 서사와 사건들 속에서 성장하는 동시에 서로를 구원하고 사랑하는 쌍방구원 로맨스물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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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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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천쓰홍 작가님의 <귀신들의 땅>을 아주 재밌게 읽었던 독자로서 타이완 문학을 접하는 것이 새삼 두렵진 않았다. 설레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타이완은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품어낸 아름다운 도시임을 <1938 타이완 여행기>를 읽으며 또다시 느꼈다.

<1938 타이완 여행기>는 단순히 타이완의 음식이나 문화재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느꼈을지언정 읽는 중간 중간 나의 마음에는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불편함과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이 들어찼다.

향긋하고도 달콤한 미식들의 향연 속에서 피어나는 두 사람의 빛나고도 어두운 우정과 사랑을 그려낸 이야기였다.


일본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여성 작가 아오야마 치즈코.

자신의 소설 <청춘기>가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어 어느정도 성공을 이루고 타이완에서도 상영되어 인기를 얻는다. 치즈코는 타이완 주재 일본인 부인회의 초청으로 1년간 타이완에 머물며, 타이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요청받는다.


어릴 적부터 미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치즈코, 그녀는 장대한 몸과 믿을 수 없는 식성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가족들에겐 그래서는 시집도 못 간다며 구박을 받곤 하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타이완의 화려한 먹거리들을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배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타이완에 도착한 치즈코는 타이완 총독부 소속 직원과 역에서 만나기로 한 것도 잊어버린 채 홀린듯 시장으로 간다. 처음 보는 음식들이 즐비해있다. 어떻게 먹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사고 본다.

가게 점원은 본섬(타이완)의 말로 뭐라 뭐라 말하지만 치즈코는 알아 듣지 못한다. 그런데 그때 작은 체구의 여자가 뒤에서 일본어로 말을 건다. "봉투는 무료라네요"라면서, 그 음식을 먹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로 뜯어먹는 짭짤한 씨앗 볶음, 과쯔였다.


곧이어 치즈코는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타이완에서 1년 간 자신의 통역을 맡아줄 왕첸허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일본어 뿐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까지 능통하며 똑똑하고 성격까지 온화하다.

그녀는 요리 실력까지 훌륭해서 타이완의 먹거리 설명은 물론, 치즈코가 먹고 싶다고 요청한 음식들까지 척척 해낸다. 그녀는 통역사 업무 외에도 비서 업무까지 군말 없이 수행한다. 그런 왕첸허를 샤오첸이라 부르며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은 치즈코. 하지만 샤오첸은 언제나 노멘(노 가면극에서 사용되는 가면)을 쓴 채 자신의 곁을 내주지 않는다.

샤오첸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은 채 아오야마를 대하고 아오야마 또한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관계는 우정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을까.


<1938 타이완 여행기>는 식민자인 일본인의 입장에서 타이완을 바라본 시각을 다루고 있다. 치즈코는 일본의 강경하고도 불친절한 정책과 행동들에 치가 떨린다고 말하지만 철도, 건설 측면에서 타이완의 큰 발전을 이루도록 도와준 것에 대해서는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한다.

특히 타이완에서 본 벚꽃 나무에 대해서 말할 때는 그 생각이 진하게 전해진다.

"제국의 강경한 방식은 확실히 불쾌하죠, 하지만 아름다운 벚꽃은 죄가 없는걸요, 샤오첸과 함께 벚꽃을 구경하러 갈 수 있다면, 꿈을 꾸는 기분일 거에요."

라고 말이다.

이 구절을 읽는 동안 나는 큰 불편함을 느꼈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일제 강점기라는 어두운 역사를 오래도록 들어와서였을까. 그래서 내가 그 고통을 직접 느낀 것처럼 생각한 것일까. 그렇게 나는 의문을 품었다.

타이완의 오래된 역사와 문화재를 파괴한 뒤 그 곳에 세운 철도선과 건물들은 진정 타이완이 원했던 것인가. 그들은 벚꽃 나무를 진정으로 원했던 것인가. 타이완의 음식이 이토록 발전한 것이 정말 일본의 강경하고도 친절한 정책 때문인가.


치즈코는 샤오첸이 하대받는 것을 보며 진정으로 대신 화낼 줄 알고, 원하지 않는 결혼은 그만두고 자신과 일본에 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며 선의가 가득 담긴 말을 건낸다. 타이완 음식과 문화에 진심이 담긴 경이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식민자의 입장에서 그저 희귀하고 새로운 짐승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오만이자 편견이다.

샤오첸은 이를 모를리 없다.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는 이 착하고 사랑스러운 치즈코를 대할 때면 고맙다가도 밉고, 사랑스럽다가도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며 건네는 선의만큼 거절하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는 없다.

삼키지도, 뱉지도, 손에서 놓지도, 꽉 쥐지도 못하는 샤오첸의 양가감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1938 타이완 여행기>는 단순히 타이완의 먹거리와 문화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이루어 내고 그 속에서 빚어진 갈등과 오해가 만들어낸 성찰과도 같다.

하지만 동시에 화려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타이완 음식에 매료된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을 읽고 다짐한 것이 두 가지 있다.

내년에 발간될 양솽쯔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읽어보는 것, 그리고 타이완에서 짭쪼롬한 케이크 셴단가오를 먹어보는 것.

양솽쯔 작가가 마지막까지 치밀하게 만들어낸 허구 속에서 나는 인간으로서의 진실된 감정과 오래도록 남을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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