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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크기
이희영 지음 / 허블 / 2025년 11월
평점 :
이렇게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나는 항상 지인에게 내가 느낀 것들을 말해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안의 크기>를 읽은 뒤 친구에게 물었다.
"행복의 반대말이 뭐라고 생각해?"
"행복의 반대말이면..불행 아니야?"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행복의 반대말은 안행복이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대."
오랫동안 곰곰히 곱씹어 보았다.
안행복과 불행의 차이.
행복하지 않은것은 불행한 건가?
그냥 안행복한 상태인 것 아닌가?
불행이 행복의 반대말이라면 안불행한 것이 무조건적인 행복을 말하나?
사실 생각해보면 인생은 무작정 행복하지도 마냥 불행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새해를 맞아 서른 한 살이 된 설우.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 사직을 당한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애인인 S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원하지 않던 새해 계획표가 촤르르 펼쳐지는 느낌이다.
사직과 이별은 설우 계획에 없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 덕(?)에 설우는 티비에 나온 잔치 국수 맛집에 찾아가 보기로 결심한다.
지하철을 타고 또 다시 버스를 타 몇 분을 걸어가서 도착한 흑호 시장.
잔치 국수 집에 들어가 국수 한 그릇을 시킨다.
여기, 엄청난 맛집이다.
설우는 흑호동이 마음에 든다.
설우에게는 작고 파란, 동그란 빛의 형태인 친구 "조"가 있다.
설우는 조의 정제를 알고 있다.
엄마의 뱃속에 있던 시절, 자신의 옆에 꼭 붙어있던 아이, 태어났다면 설 과 우 라는 이름을 각각 가지고 살았을 쌍둥이 자매.
베니싱 트윈.
엄마의 자궁에 있던 쌍둥이 아기 중 한 명이 자연스레 엄마의 몸으로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
설우는 그 사실을 엄마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고 알게 되었다.
설우는 그때부터 매 해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조가 나 대신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왜 조 말고 내가 태어났을까'
조가 늘 설우의 곁에 있었기에 설우는 언제나 죽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은 항상 붙어 있는거라고.
그래서 설우는 미지근한 삶을 살아왔다.
안선택하고 안욕망하는 삶을.
욕망과 행복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무의미한 것이니까.
<안의 크기>에서 '안'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 '안행복'의 안은 '아니다' 라는 부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실과 고통으로 안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면 안의 크기는 늘어나고 만다. 바람 넣은 풍선이 부풀듯이.
그 크기를 행복한 순간으로 줄여 나가는 것.
안의 크기를 줄이는 것.
행복한 순간들은 매일 있다. 짧고 빠르게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언제나 우리의 안행복을 줄여주고 있을 것이다.
'안'은 아주 작아질 수도 매우 커질 수도 있지만 아예 사라지지는 않는다.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없고 무참히 불행하기만 한 사람은 없듯이.
안이 너무 커져 나를 덮쳐오기 전에, 잠식되어 버리기 전에 짧고 행복한 순간들을 이어 붙여 크기를 줄여 나가는 것. 그렇게 섬세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나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설우가 만난 흑호동 사람들은 설우의 안은 물론 나의 안도 줄여 주었다.
각자의 슬픔과 비밀들을 안고 살아가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잘 사는것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곤 하지만
직접 만든 필통을 나누어주고, 함께 술 한 잔 걸치며 속마음을 털어 놓고, 실수는 있더라도 화내지 않고 같이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어두움이 있기에 더욱 빛나는 찬란한 행복의 순간들을 그들은 켜켜히 쌓아가고 있었다.
푸릇푸릇한 잎사귀가 돋아 나올 때쯤, 설우와 이름 모를 서점 주인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별 뜻 없는 농담을 주고 받고, 서로의 옷자락을 여며 주며 맛있는 샌드위치와 잔치 국수를 먹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