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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극의 희극
이정원 지음 / 퍼스널에디터 / 2025년 12월
평점 :
일면식도 없는 부부인데 이렇게나 친근해도 되는걸까..
작가의 유려하고 거침없는 문체가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글을 한번도 쓴 적 없는 작가라기엔 글 속에 노련함과 당당함이 있었다.
책을 읽으며 수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건 그녀의 일상이, 남편의 생각이 나의 것들과 조금씩 닮아 있어서 였을 것이다.
상극인 사람끼리 결혼을 어떻게 하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볼 수 있는 <상극의 희극>은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 잡는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르는 나로서는 서평단을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취향과 성격은 상극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 희극을 만들어 내는 이야기, 궁금하지 않은가!
작가와 그녀의 남편은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술을 좋아하는 그녀와, 술자리는 피하는 게 상책인 남편.
오후 12시가 지나서야 서서히 정신이 드는 야행성인 그녀와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히 일과를 보내고는 아홉시면 꾸벅꾸벅 조는 남편.
남이 차려주는 밥, 남이 해주는 정리정돈을 즐기기 위해 호캉스를 가는 그녀와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실천하는 남편.
이 정도면 어떻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렸는지 궁금해진다.
그 비법은 오랜 시간동안 반복된 싸움과 화해에 있다.
그들은 서로의 다른 점을 포기하지 않았다.
도저히 이해가지 않던 일들도 서로의 방식과 이유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 상대방이 나에게 건네는 배려에 대한 고마움을 가졌다.
p.43 사랑이 시작될 때 그것은 사랑의 모습이기만 하지만, 사랑이 지속될 때 그것은 이해와 포기, 체념, 희생, 용서와 같은 모습일 때도 있다는 걸 그와의 관계 속에서 배웠다. 배려나 양보가 실은 사랑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위의 문장처럼 사랑은 사랑 자체로 시작될 수 있다.
두근거림, 설렘, 정반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
하지만 이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나의 것을 포기하고 희생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의 것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대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디선가 연인이나 가족을 향한 잔소리는
'왜 나와 같은 행동과 생각을 하지 않는가' 에 대한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왜 이렇게 하지 않지, 왜 저렇게 행동하지, 이해가 가지 않네 하는 생각때문에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내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는 그렇게 자라왔고, 수십년을 그렇게 행동했다.
그것이 나의 잔소리로 단번에 바뀐다면 그것 또한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 역시 조금은 내려놓게 되었다.
그럴수도 있구나, 나도 저렇게 해볼까 가 되는 것이다.
<상극의 희극>을 읽으면서 이해와 포기가 참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그들은 두 아이를 낳고 각자가 평생 세워온 관념을 포기하는 과정을 거친다.
부모로서 때로는 말없이 지지해주는 기둥이 되어주기도 하고,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가 치는 아이들의 날카로운 말들을 흘려 보내기도 해야했다.
누군가의 딸과 아들이었던 그들은 그렇게 부모가 되었다.
작가의 경험 중 누군가를 이 세상에서 떠나보낸 이야기에서는 많이도 울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더이상 고향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남편의 모습은 더 없이 노력했던 자만이 할 수 있는 애도라는 것이 참 깊이 와닿았다.
내년에 결혼을 앞둔 나에게 이 책은 앞으로 타인과 살아갈 지난할 날들에 대한 예고같은 것이었다.
평생을 따로 살아온 이들이 순식간에 한 지붕 아래 사는데 어찌 안 싸울 수 있겠는가.
그저 포기하지 않기, 그의 무던함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기,
나의 감정을로 이불을 만들어 덮어 쓰지 말기,
책을 읽으며 나에게 또 한번 되새겨 주었다.
나 역시 작가처럼 나와는 많이 다른 이와 오래도록 희극을 써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