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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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이 료의 <생식기>는 이곳 저곳에서 추천이 많아 언젠가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딱 그 뿐이었다.

제목이 왜 <생식기>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생식기가 화자로 등장하는 걸 본 순간 난 충격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생식기가 화자라고...생식기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간에 대한 내용이라고...누가 감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시각과는 별개로 내가 이 이야기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을지 걱정됐다.

생식기인 '나'가 하는 이야기는 놀라웠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간의 행동, 심리, 감정 변화 등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필을 손에서 놓지 못한 독서 시간이었다.


화자인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수 많은 종의 생식기 역할을 수행해 왔다. 현재 '나'가 생식기로 활동하고 있는 개체의 이름은 다쓰야 쇼세이. 32살의 평범한 직장인으로 '나'가 맡은 두 번째 인간 개체, 수컷 인간으로는 처음이다.

쇼세이는 흔히 말하는 공동체 감각이 없는 개체이다. 쉽게 말해 공동체를 위해 개체가 노력한다 거나, 타인을 도와주려는 행위는 일절 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쇼세이는 어릴 적부터 자신은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껴왔다. 바로 동성애 개체라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특히 1989년 생인 쇼세이가 학창 시절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히는 것은 공동체로부터, 즉 가정과 학교로부터 방출될 가능성과 연결되는 행동이었다.

그랬기에 쇼세이는 이 비밀을 홀로 간직한 채 이성애 개체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 의태 과정을 거친다.


쇼세이라는 개체가 생성된 지 18년 후, 쇼세이는 자신의 생성지가 아닌 다른 서식지로 옮기게 된다. 대학에 진학한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쇼세이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다른 이성애 개체와 동일 시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쇼세이는 그렇게 [온전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서 쇼세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 개체들은 공동체 감각을 지니고 있다.

공동체에 공헌하려는 마음이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생성하는데 가장 중요하며, 이 관계는 개인의 행복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즉 공동체의 확대, 발전, 성장이 이루어질 수록 개인 또한 행복하다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든 성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더 좋은 집으로, 더 좋은 직장으로, 더 좋은 인간으로.

끝이 없는 레이스,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은 이 경쟁 속에서 인간들은 다른 누군가가 탈출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있다.

아니면 탈출한 누군가를 보고 자신 역시 멈추길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또한 이 책에서 크게 다루는 것이 동성애이다.

책에 등장하는 한 국회의원은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며, 공동체를 위한 생산성이 전혀 없는 인간이라 비난한다. 심지어 동성애는 제발 숨어 살길 바란다고 까지 말한다.

그리고 쇼세이가 가족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히지 못한 이유는 아버지가 이 국회의원과 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클 것이다.


동성애가 생산성이 없다는 말, 즉 아이를 생산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종은 자신의 종족을 유지하려 애쓰며 그것은 가계도를 끊임없이 늘리는 행동으로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며, 동성혼, 커밍 아웃 등과 같은 행동들은 언제나 이성애의 오케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애는 동성애의 오케이를 받지도 않으면서, 멋대로 공동체의 주축으로 행세하며 이것 저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과 한마디 없이.


동성애, 자연 파괴, 성장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나는 이 시대의 문제점 모두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 역시 항상 [다음]을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았나. 

[다음]이 없을 때 불안 해하지 않았었나 하고 말이다.

이 모든 행동들엔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결국엔 내가 속한 공동체(가정, 회사, 지역, 사회)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개체가 아니다. 그저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또 다른 동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인간일지라도 차별하고 배척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제멋대로 자연 위에 자신들의 잣대를 올려놓고, 자연계를 착취하고 섭렵하려 한 뒤 이제 와서 자연을 되살리 자며 악다구니를 쓴다.

생식기가 바라본 인간이란 참 나약하고 어리석으며 한없이 작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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