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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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신과 그의 관심사는 천지 차이였다. 맨디는 자신이 그와 매치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둘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다가 그녀는 데이트 사이트나 어플을 이용할 때 필요했던 마음가짐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DNA 매치는 생물학과 화학물질, 과학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맨디는 전혀 모르는 분야였다. 하지만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이 서비스를 신뢰했다. 수십억 명의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p. 10~11)




소설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섯 명의 이야기가 돌아가며 진행된다. 매치 상대를 소개받았지만 그를 처음 만난 곳이 그의 추도식장이었던 맨디, 경찰관 에이미와 매치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크리스토퍼, 매치 상대의 형을 사랑하게 된 제이드, 결혼을 앞두고 여자친구의 권유로 받게 된 DNA 매치에서 남자를 매치 상대로 소개받은 , 서비스 가입 10년 만에 매치 상대를 찾은 억만장자 기업가 엘리.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DNA 매치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 유전자와 딱 맞는 짝을 만나기 위해 이 서비스에 가입하고, 이메일을 통해 그들의 짝을 소개받는다. 세상에 단 한 명 밖에 없다는 DNA 매치. 유전자를 통해 짝을 찾은 그들의 미래는 정말 행복할까.




너무 계산적인 것같이 들리시겠지만, 그저 그런 사람을 솎아낼 가장 좋은 방법이거든요. 뭐랄까, 그 모든 미친 사람을 거치지 않고 천생연분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p. 87)




매치로 맺어진 사람들은 대부분 첫눈에 반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곧이어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강렬한 이끌림의 파도가 지나간 뒤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전자로 자신의 짝을 찾는 면에서는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어 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렇게 만난 연인이 이상적인 관계가 된다고 100퍼센트 보장할 수는 없다.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완벽한 짝을 만나고 나면 동화 속 이야기처럼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들은 완벽한 짝을 만나기 위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야 했거나, 이상하게도 완벽한 짝의 옆 사람에게 눈이 가거나, 사랑에 완전히 빠져버려 자신의 일을 망치게 되기도 하고, 거짓말에 휩싸여 위기에 빠지게 되기도 했다. 세상에 단 한 명. 나의 짝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와 함께하는 삶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DNA 매치는 하늘이 정해준 단 하나의 인연을 찾아주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시험하는 상황을 가져다주었다.



소설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돌아가며 짧게 전하는데, 각자의 이야기마다 반전이 거듭되어 흥미가 끊기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앞의 반전들은 대체로 예상 가능한 범위였으나, 마지막 반전은 의외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소설의 전체 내용을 흔들만한 반전이었고, 이 장치를 통해 주제가 더 강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뒷맛이 씁쓸한 소설이었다. 추천사만큼 대단한(?) 소설은 아니었지만, 유전자로 사랑하는 이를 찾는 세상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반전을 거듭하는 작품을 좋아한다면 가볍게 한 번 읽어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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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짓읍니다
박정윤 지음 / 책과강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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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따뜻한 음식 에세이였다. 저자는 음식을 매개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풀어내고, 그 이야기의 끝에는 저자만의 레시피도 알려준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에게 음식은 외롭고 쓸쓸했던 지난 시절들의 정신적 허기를 채워준 위로’(p. 5) 였다고 말한다. 저자의 첫 번째 책인 <십이월의 아카시아>에 이어 이 책을 펼친 지라, 저자가 말하는 외롭고 쓸쓸한 삶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 주신 저자의 할머니. 저자는 할머니가 사랑을 담아 만들어 주셨던 음식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녀를 위로해 준 음식들, 그 음식들과 이어진 기억과 추억이 궁금했고, 글이 전하는 분위기도 기분 좋게 느껴져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책장을 넘겨갔다.




된장이며 두부며 호박이며 양파며 고추며 대파도 본디 제가 있던 곳이 있었을 텐데 그곳을 떠나와 한 그릇 안에서 만나 서로 엉켜 있는 것 같았다. 사람과의 만남도 된장찌개 안의 그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운명과 같은 만남으로 각자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서로의 삶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서로 엉키고 엉켜서 더 이상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된다. (p. 20)




할머니 집 마당에서 사람들과 북적거리며 김장을 하던 날들의 추억은 춥고, 맛있고, 따뜻했다. 그날들 이후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김치를 매일 먹지만 그때 할머니 김치처럼 맛있는 것을 아직까지 먹어보지 못했다. 앞으로도 할머니의 맛을 흉내 내려고 애를 쓰겠지만 불가능할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때의 할머니처럼 나를 사랑할 수 없고, 그만큼 정성을 다한 음식을 만들어주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슴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어서 더 간절히 그리운 그 맛. 나 역시 그만큼의 간절한 사랑으로 가족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싶다. 내가 곁에 없을 때에도 그 맛과 그 마음을 기억할 수 있도록. (p. 159)


할머니의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는 나와 비슷한 마음을 발견해서인지 저자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유난히 그 마음에 공감하며 읽었다. 저자의 말처럼 그 음식이 특별했고 그리운 것은 그 속에 담겨있던 마음을 함께 먹어서 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앞서 읽었던 <십이월의 아카시아>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온기 가득한 한 그릇의 음식을 먹고 난 것처럼 마음에 따뜻함이 차올랐다.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니 내 기억 속 사람들이 자꾸만 그리워졌다. 마음이 가득 담긴 한 상, 다 같이 모여 앉아 즐겁게 먹고 이야기 나누던 시간. 당연한 것이고 영원한 것인 줄 알았던 그 시간들은 지나고 보니 당연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았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가장 특별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위로를 주는 따뜻한 감성의 음식 에세이를 찾는 이에게, 책 한 권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싶은 이에게 이 책 <밥을 짓읍니다>를 추천한다.




이 글은 박정윤 작가님으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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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의 아카시아
박정윤 지음 / 책과강연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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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몇 번의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의사는 앞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는데 침묵을 깨고 나올 의사의 말을 기다리고 앉아 있는 그 순간이 실은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유방암입니다.”

설마 했는데··· 탑처럼 쌓아 올렸던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지만 순간 목이 콱 막혀버려 울음은 밖으로 흐르지 못하고 목젖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토해내지 못한 감정이 갇히고 나니 손발 끝이 찌릿하게 저려오기 시작했다. (p. 12~13)




책의 첫 페이지부터 저자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이어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그날의 기억을 차분히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그녀가 느꼈을 두려움, 불안, 절망의 감정이 묻어 있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 마음도 무거워져 갔다. 물론 이 책은 끝까지 어두운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반부부터는 그녀를 둘러싼 과거의 경험들과 그와 관련된 사색의 시간들,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앞서 들었던 어두운 이미지와 대비되어 별일 없는 평범한 일상을 더욱 감사한 시간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이 책은 계절에 비유하자면 겨울 같았다. 한겨울에는 바람만 불어도 살이 에이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차가운 기온은 평화롭게만 보였던 들판과 강물을 얼어붙게 만든다. 저자가 부모를 일찍 여의고 슬퍼했던 날들, 암 투병으로 힘들어했던 시간들은 겨울처럼 저자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 듯이 보였다. 추웠던 과거의 기억들을 듣고 있으니 저자가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쉽게 털어놓기 어려웠을 이야기들을 용기 있게 솔직히 풀어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아팠던 그녀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었기를 바라본다.




사람은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사람과 잊지 못할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평생을 그 사람과 그 기억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가끔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어느 순간 따뜻하고 소중한 기억을 놓치는 날이 올까 봐 그게 두렵다. 죽는 순간까지 그 기억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눈감을 수 있기를 또 바란다. (p. 115)




한 사람의 아픈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서 품었던 솔직한 마음의 말을 들어보고 싶은 이에게 이 책 <십이월의 아카시아>를 권하고 싶다.



겨울 뒤에는 반드시 따스한 봄, 울창한 여름, 풍요로운 가을이 차례로 오듯이 저자의 남은 시간도 역시 그러할 것이라 믿는다.




이 글은 박정윤 작가님으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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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브레인 - 몰입을 빼앗긴 시대, 똑똑한 뇌 사용법
안데르스 한센 지음, 김아영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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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점점 좋아지는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걸까? 지금처럼 많은 사람과 서로 연결되어 있던 적이 없는데도 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외롭다고 느끼는 걸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이 질문들에 근본적인 원인이 뭔지를 파헤치고 싶었다. 한 가지 답변을 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지금 우리 스스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낯설다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우리가 지금까지 진화해온 세상 간의 불일치가 우리 기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p. 9~10)




우리는 인터넷, 스마트폰, SNS 등의 새로운 기술들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뇌는 아직도 먼 과거의 조상들처럼 수렵 채집 생활에 익숙한 상태라고 한다. 과거 인류는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칼로리를 갈망하도록 적응했으나, 이것은 먹거리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는 맞지 않아 비만이나 당뇨 등의 질병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위협적인 외부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적응했던 우리의 뇌는 새로운 기술 앞에서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작동되어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을 만나게 되었다.


과거에는 우리의 생존에 유리했을 방식인 새로운 것을 향한 욕구 역시 스마트폰 환경에서도 유효했다. 화면 속 새로운 페이지를 볼 때마다 우리의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되어 그 행동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덕분에,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들에 머물며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기 어렵게 된다.



당신의 뇌는 지난 1만여 년 동안 진화한 그대로 행동했다. 불확실한 결과, 즉 문자 메시지에 도파민을 분비하여 보상을 제공했고 그 결과 휴대전화를 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힌 것이다. 뇌는 새로운 정보, 특히 감정적으로 흥분되거나 위험과 관련 있는 내용을 추구한다. 이 경우에는 강도 사건 기사 같은 것이 그렇다. 그리고 푸시 알림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당신의 이야기를 적은 피드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좋아요를 눌렀는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p. 91)



우리의 뇌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는 것만으로도 주의력을 빼앗긴다. 심지어 그 휴대전화가 남의 것일 때조차도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멀티태스킹을 어려워하는 우리의 뇌에게 휴대전화는 존재 자체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또한 휴대전화는 우리의 수면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잠을 자기 전 앱이나 SNS를 사용하면서 분비되는 도파민은 우리의 뇌를 깨우고,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는 멜라토닌 생성을 억제하여 잠을 깨우게 된다. 블루라이트는 공복 호르몬을 분비하게 하여 식욕 또한 높인다고 하니 여러모로 밤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해로웠다.



페이스북, 스냅챗, 트위터는 자유롭게 메시지와 사진, ‘좋아요같은 디지털 인정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주는 곳이 아니다.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우리의 관심이다. 이들은 다양한 광고주에게 팔려고 메시지, 사진, 디지털 인정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잡아끈다. 만약 공짜로 SNS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잘못 짚은 것이다. (p. 178)




이 책은 우리가 왜 스마트폰을 가까이할수록, SNS를 사용할수록 우울함을 느끼는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이유를 설명해 준다. 흥미로운 사실들을 매우 쉽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 페이지는 빨리빨리 넘어갔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앞부분만큼의 재미가 줄어들고 힘이 빠지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저자는 우울감을 줄이고 충동 억제력을 높이기 위해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너무 뻔한 조언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이 부분에선 다시 한번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보다 집중력이 줄어들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SNS를 사용할수록 공허함과 우울감을 느꼈던 사람에게,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고민인 사람에게 이 책 <인스타 브레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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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에 꽃은 피듯이 - 요즘 너의 마음을 담은 꽃말 에세이
김은아 지음 / 새로운제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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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긋했던 꽃망울이 얼굴을 드러내며 활짝 피어 있었다. 그렇게 꽃은 피는데, 나의 시간은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딪치고 부딪쳐서 꺾여 있을 뿐······.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자 눈에 어릴 만큼 강렬한 빨간 꽃잎이 냉랭한 가슴을 서서히 달구었다. ‘그래도 이겨내야지, 나아가야지라고 하면서. 한 시간 반 남짓 걸리는 기나긴 출근길을 뒤로한 채 멈춘 듯 피어나는 꽃의 시간 속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다.

느려도 좋다. 오롯이 피어날 수만 있다면.’ (p. 21, 『장미, 늦은 출근』 중에서)




관엽식물처럼 순하게 자라나 이십대가 된 저자는 진정한 자신을 찾아 헤매며 젊음을 보냈고, 시간이 흘러 마흔을 앞둔 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표지에서꽃말 에세이라고 했지만, 여기에 실려 있는 꽃말은 기존에 알려진 꽃말이 아니라 저자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쓰인 글이다. 저자의 마음과 만나 새롭게 쓰인 꽃말과 예쁜 일러스트는 책 속 글과 너무나 잘 어울렸고, 이 책을 한층 더 감성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저자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꽃이 있었다. 그녀에게 꽃은 부족했던 마음 한구석을 채워주는 힘이 있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꽃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삼십 대 가장 반짝이는 시간 속에서 헤매고 아파하는 이야기였고, 그 시간을 지나오고 있거나 지나왔다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였다. 마음에 그늘이 졌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책 속에서 들려오는 저자의 목소리는 봄날 오후의 햇살 같았다. 적당히 따스하고 가벼운 바람을 머금은, 그리고 햇살이 비치는 곳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런 따뜻하고 차분한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문체 덕분에 저자가 들려주는 과거의 순간들은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는 파스텔 톤의 필터로 보정된 것처럼 그려졌다. 그리고 이것은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전했던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 기억 속에는 순간의 감정이 아련한 향기와 빛깔로 물들어 있고,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순간을 예전보다 여유롭고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다. 마치 공원에 핀 한 송이의 꽃을 지긋이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돌이켜 보면 꽃처럼 아름다운 시간이 아니었다 해도 그때를 바라보는 지금의 시선이 아름답다면 삶이 분명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p. 5)



지나고 보니 내 경험도 그러했던 것 같다. 막막하고 불안했던 그때. 그렇지만 지나고 보니 그조차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던 기억들. 이 책은 내 기억과 어렴풋이 닮아 있는 이야기로 지나간 나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숫자가 오락가락하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하품을 시원하게 하는데, 흩어진 서류와 얼룩진 커피 잔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히아신스가 보였다. 낯설지만 그 파릇파릇한 생기가 싫지는 않았다. 흐리멍덩한 눈에도 꽃은 파란 별처럼 선명하게 빛이 났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쳐다보자 작은 꽃 하나가 밍밍한 마음에 별 한 조각을 떨어뜨렸고, 화한 향기는 졸음을 깨울 만큼 시원한 봄 내음을 몰고 왔다. (p. 42, 『히아신스, 별이 빛나는 야근』 중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계절에 어울리는 예쁘고 감성적인 에세이집이었다. 가볍게 휘리릭 읽는 것보다는 천천히 아껴가며 오래오래 읽고 싶은 글이었다. 내가 지나왔던 날들처럼, 새로 다가올 날들 역시 좋은 날들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흐리고 비가 오는 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나에게 닥칠 힘든 시간들도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는 역시나 예쁘게 채색되어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이 나에게 그런 믿음을 심어 주었다.



가을밤을 함께 할 감성적인 에세이집을 찾고 있다면, 피어나는 꽃들을 통해 지친 마음에 위로를 건네고 싶다면 이 책 <모든 순간에 꽃은 피듯이>를 추천한다.


내가 그러했듯이, 이 책을 펼친 이들도 마음속에 피어나고 있는 각자의 꽃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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