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의 아카시아
박정윤 지음 / 책과강연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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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몇 번의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의사는 앞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는데 침묵을 깨고 나올 의사의 말을 기다리고 앉아 있는 그 순간이 실은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유방암입니다.”

설마 했는데··· 탑처럼 쌓아 올렸던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지만 순간 목이 콱 막혀버려 울음은 밖으로 흐르지 못하고 목젖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토해내지 못한 감정이 갇히고 나니 손발 끝이 찌릿하게 저려오기 시작했다. (p. 12~13)




책의 첫 페이지부터 저자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이어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그날의 기억을 차분히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그녀가 느꼈을 두려움, 불안, 절망의 감정이 묻어 있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 마음도 무거워져 갔다. 물론 이 책은 끝까지 어두운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반부부터는 그녀를 둘러싼 과거의 경험들과 그와 관련된 사색의 시간들,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앞서 들었던 어두운 이미지와 대비되어 별일 없는 평범한 일상을 더욱 감사한 시간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이 책은 계절에 비유하자면 겨울 같았다. 한겨울에는 바람만 불어도 살이 에이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차가운 기온은 평화롭게만 보였던 들판과 강물을 얼어붙게 만든다. 저자가 부모를 일찍 여의고 슬퍼했던 날들, 암 투병으로 힘들어했던 시간들은 겨울처럼 저자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 듯이 보였다. 추웠던 과거의 기억들을 듣고 있으니 저자가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쉽게 털어놓기 어려웠을 이야기들을 용기 있게 솔직히 풀어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아팠던 그녀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었기를 바라본다.




사람은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사람과 잊지 못할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평생을 그 사람과 그 기억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가끔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어느 순간 따뜻하고 소중한 기억을 놓치는 날이 올까 봐 그게 두렵다. 죽는 순간까지 그 기억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눈감을 수 있기를 또 바란다. (p. 115)




한 사람의 아픈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서 품었던 솔직한 마음의 말을 들어보고 싶은 이에게 이 책 <십이월의 아카시아>를 권하고 싶다.



겨울 뒤에는 반드시 따스한 봄, 울창한 여름, 풍요로운 가을이 차례로 오듯이 저자의 남은 시간도 역시 그러할 것이라 믿는다.




이 글은 박정윤 작가님으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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