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에 꽃은 피듯이 - 요즘 너의 마음을 담은 꽃말 에세이
김은아 지음 / 새로운제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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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긋했던 꽃망울이 얼굴을 드러내며 활짝 피어 있었다. 그렇게 꽃은 피는데, 나의 시간은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딪치고 부딪쳐서 꺾여 있을 뿐······.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자 눈에 어릴 만큼 강렬한 빨간 꽃잎이 냉랭한 가슴을 서서히 달구었다. ‘그래도 이겨내야지, 나아가야지라고 하면서. 한 시간 반 남짓 걸리는 기나긴 출근길을 뒤로한 채 멈춘 듯 피어나는 꽃의 시간 속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다.

느려도 좋다. 오롯이 피어날 수만 있다면.’ (p. 21, 『장미, 늦은 출근』 중에서)




관엽식물처럼 순하게 자라나 이십대가 된 저자는 진정한 자신을 찾아 헤매며 젊음을 보냈고, 시간이 흘러 마흔을 앞둔 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표지에서꽃말 에세이라고 했지만, 여기에 실려 있는 꽃말은 기존에 알려진 꽃말이 아니라 저자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쓰인 글이다. 저자의 마음과 만나 새롭게 쓰인 꽃말과 예쁜 일러스트는 책 속 글과 너무나 잘 어울렸고, 이 책을 한층 더 감성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저자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꽃이 있었다. 그녀에게 꽃은 부족했던 마음 한구석을 채워주는 힘이 있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꽃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삼십 대 가장 반짝이는 시간 속에서 헤매고 아파하는 이야기였고, 그 시간을 지나오고 있거나 지나왔다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였다. 마음에 그늘이 졌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책 속에서 들려오는 저자의 목소리는 봄날 오후의 햇살 같았다. 적당히 따스하고 가벼운 바람을 머금은, 그리고 햇살이 비치는 곳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런 따뜻하고 차분한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문체 덕분에 저자가 들려주는 과거의 순간들은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는 파스텔 톤의 필터로 보정된 것처럼 그려졌다. 그리고 이것은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전했던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 기억 속에는 순간의 감정이 아련한 향기와 빛깔로 물들어 있고,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순간을 예전보다 여유롭고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다. 마치 공원에 핀 한 송이의 꽃을 지긋이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돌이켜 보면 꽃처럼 아름다운 시간이 아니었다 해도 그때를 바라보는 지금의 시선이 아름답다면 삶이 분명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p. 5)



지나고 보니 내 경험도 그러했던 것 같다. 막막하고 불안했던 그때. 그렇지만 지나고 보니 그조차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던 기억들. 이 책은 내 기억과 어렴풋이 닮아 있는 이야기로 지나간 나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숫자가 오락가락하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하품을 시원하게 하는데, 흩어진 서류와 얼룩진 커피 잔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히아신스가 보였다. 낯설지만 그 파릇파릇한 생기가 싫지는 않았다. 흐리멍덩한 눈에도 꽃은 파란 별처럼 선명하게 빛이 났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쳐다보자 작은 꽃 하나가 밍밍한 마음에 별 한 조각을 떨어뜨렸고, 화한 향기는 졸음을 깨울 만큼 시원한 봄 내음을 몰고 왔다. (p. 42, 『히아신스, 별이 빛나는 야근』 중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계절에 어울리는 예쁘고 감성적인 에세이집이었다. 가볍게 휘리릭 읽는 것보다는 천천히 아껴가며 오래오래 읽고 싶은 글이었다. 내가 지나왔던 날들처럼, 새로 다가올 날들 역시 좋은 날들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흐리고 비가 오는 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나에게 닥칠 힘든 시간들도 먼 훗날 돌아보았을 때는 역시나 예쁘게 채색되어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이 나에게 그런 믿음을 심어 주었다.



가을밤을 함께 할 감성적인 에세이집을 찾고 있다면, 피어나는 꽃들을 통해 지친 마음에 위로를 건네고 싶다면 이 책 <모든 순간에 꽃은 피듯이>를 추천한다.


내가 그러했듯이, 이 책을 펼친 이들도 마음속에 피어나고 있는 각자의 꽃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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