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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먹는 존재들 - 온몸으로 경험하고 세상에 파고드는 식물지능의 경이로운 세계
조이 슐랭거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10월
평점 :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신호등을 대기하며 이팝나무 가로수 수피를 만져보곤 합니다.
마음속으로, "나무는 내가 만지는 걸 어떻게 느낄까? 식물도 나를 알아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최신 뉴스에서 식물도 '기억'을 하고, 화학물질로 서로 소통한다는 등에 관한 이야기를 간간이 접하긴 했지만 식물이 지능이 있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빛을 먹는 존재들(조이 슐랭거, 생각의힘)'
이 책은 저처럼 이런 궁금증을 안고 계신 분들에게 식물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현대 과학의 최신의 발견과 연구 결과를 집대성하여 알려주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책에서 제가 주목한 점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식물 덕후나 식물에 관심과 애정이 있는 분들이라면 감탄할 만한 과학적 발견들입니다.
최신 과학이 밝혀낸 식물의 능력은 경이롭습니다. 식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 세계를 지각하고, 식물들끼리 혹은 동물들과 의사소통을 합니다. 경험한 일을 기억하여 계획에 맞게 행동하거나 유전을 통해 생존력을 높이기도 합니다. 자기 친족이나 가족을 알아보고 서로 돕는 사회적 삶이 존재하며 생존기술을 자녀에게 대물림합니다.
저자가 전세계적으로 조사하여 정리한 과학적 발견들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쿠바 열대림, 하와이 카우아이섬, 베를린 식물원, 칠레 온대우림 등 전세계 현장을 누비며 연구원들을 만나 나눈 대화와 연구 결과물들이 흥미롭습니다.
둘째, 식물학을 주축으로 한 과학적 논쟁과 식물관련 과학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2장 과학은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에서 식물 지능과 감각을 인정하지 않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서부터 다윈의 <식물의 운동력> 등 식물에 대한 과학의 역사적 인식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식물에게 지능이 있다는 패러다임 전환은 현재 과도기로 여겨졌습니다.
저자는 과학이 '지능'이라는 단어에 담긴 사회적 함의들 때문에 식물 지능에 대한 결론에 완전히 도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식물의 경이로운 능력에 대해서는 의인화된 언어 사용을 넘어서 엄연히 실재하는 발견들이기에 빠른 시일에 식물 지능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리라 생각합니다.
불과 몇십 년 전의 식물학자들이 식물 지능에 대한 과학적 발견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연구자로서 서서히 퇴출되는 사례들은 안타까웠습니다. 여러 과학자들이 발견하는 작은 조각들이 쌓이고 쌓여 과학의 발전,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셋째, 식물을 대하는 저자의 모습과 생각에서 식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느낄 공감대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도 산책을 하며 눈에 보이는 고사리, 이끼, 지의류를 관찰하고, 양치식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식물을 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얼마나 유익한 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화분을 보고 우리에 갇힌 동물을 떠올리기도 하는 등 식물에 대한 저자의 엉뚱해보이는 생각은 저도 그런 적이 있어 친밀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자는 "식물 전체가 뇌와 비슷한 뭔가일 수도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한 과학자에게 하는데 그 과학자는 속삭이며 "나도 그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요. 그저 그런 말을 안 할 뿐이지"라며 대답합니다. 식물에 대한 현재 과학 분야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이런 논쟁은 계속되겠지만 저는 식물에 대해 말한 한 과학자의 말ㅡ "유기체 전체가 뇌일 수도 있다는 것(p.218)" ㅡ을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과학책이지만 에세이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독자의 몰입을 유지하는 기자로서의 저자의 글쓰기 역량도 있었겠지만, 꼼꼼하고 매끄러운 정지인 번역가의 번역이 돋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이 훌륭해서 정지인의 다른 번역책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책에서 열거된 다양한 식물들의 놀라운 능력치를 읽노라면 식물에 대해 경이로운 감정이 듭니다. 과학의 최신 발견은 식물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되는 놀라운 것들이면서도 동시에 아직 식물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을 넘어서 섬세한 뉘앙스를 담아 식물의 능력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새로운 발견의 해석을 두고 논쟁 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몸으로 감각하고, 기억하고, 계획적으로 사는 식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되니, 앞으로 함부로 나뭇잎을 뜯거나 이파리를 따는 못된(?) 행동은 못할 것같습니다.
식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인간은 지구상에서 훨씬 더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식물들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세계를 탄생시켰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에마누엘레 코차가 말했듯이, 우리의 우주는 식물이 건설했다. "무엇보다 세계는 식물이 세계를 재료로 사용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결국 나를 만든 건 식물이다. 내 몸의 모든 근육 다발들은 식물이 수분과 공기로 자아낸 당분으로 만들어졌다. 가느다란 뿌리 속을 흐르는 물처럼 내 정맥 속을 돌아다니는 혈액 세포들이 새빨간 색을 유지하는 건 식물이 만들어준 산소 덕분이다.
나의 조용한 인정, 이는 작은 제스처일 뿐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 삶의 무언가가 변했다는 신호로 본다. 나는 식물을 움직이는 존재들로 보게 되었다. 내 머릿속 생동하는 존재들의 무리 안에 그들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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