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지?! 고양이
이주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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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초,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처음으로 가게 된 모임이었고 어색함을 없애려고 그랬는지 사람들이 우리집 고양이를 자꾸 화제에 올렸다. 아무래도 반려동물 이야기는 무람하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고양이 키울 때의 단점만 자꾸 부각시키면서 내게 답을 종용했다. 그의 가족 네 명중 본인 빼고 모두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한다며 내가 반대해주길 바라는듯 했다.

 

그럴리가!

집사인 내가?

왜 반대를??

나는 빙빙 웃고 말았다.

 

 

그 사람이 반대하는 이유를 듣다보니 예전에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집안에서 털 달린 동물을 키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승낙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지금! 삼냥이의 집사다! 이러니 그 모임에서 고양이 키우는 걸 결사 반대하던 사람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허나 보통 집사들은 그 사람이 문제나 애로사항이라고 짚었던 것들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어째서 그럴까? 집사들은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깟 불편함들은 고양이에게서 받는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키우기 전엔 반대하던 이유가 수두룩했지만 그런 건 별 문제 되지 않는다는 걸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야 알았다. 그러니 일단 집에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계속 데려오지 못할 이유만 쌓아갈 게 분명하다.

 

어른도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 고민이 이렇게 많은데 아이들이라면 어떨까? 아이다운 고민부터 시작해 부모님의 반대까지 선결과제가 너무나 많다. 이렇게 고양이를 집에 데려오기 전에 하는 고민들로 내용이 구성된 그림책이 나왔다.

이주희 작가의 <어떡하지?! 고양이>이다. 제목 ‘어떡하지’ 뒤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연속으로 들어있는 이유가 있다. 고양이가 이럴 땐 어쩌지? 라는 질문의 물음표이고, 책이 끝날 때는 ‘어떡하지’ 뒤에 기쁨과 즐거움의 느낌표가 된다. 문학동네 프리뷰어에 신청해서 받게 된 이 그림책은 일반적으로 어린이용이라 분류된다. 하지만 나는 집사용이라고 부르겠다. 나처럼 고양이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집사들에게는 소장각이기 때문이다.

 

이주희 작가는 이 책에서 고등어 무늬를 가진 고양이를 너무나 귀엽게 그려냈다. 주인공 여자아이도 그렇고 고양이도 그렇고 머리가 동글동글하니 크다. 고양이는 일본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을 연상시켰는데 도라에몽보다 훨씬 귀엽다. 얼굴은 그대로인데 눈동자와 꼬리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표정과 감정을 살려냈다. 이 그림책을 본 아이들이라면 고양이를 따라 그리겠다고 할 것 같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고양이 대신 이 책을 사준 부모라면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가 책을 읽고 오히려 부모를 설득하게 되는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부작용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부작용은 얼마든지 일어나도 좋다. 무슨 일이건 그 일을 해보기 전에 부정적 예측만 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할 것이다.

그게 사는 건가, 어디! 

뭐든 직접 부딪혀보는 게 중요하다.

미리 겁 먹지 말자!

 

 

사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고양이 입장에선 웃기는 소리다!

고양이한테 물어나 봤나??

인간들 맘대로 정해놓고 좋다했다 싫다했다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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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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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글은 분명 여러 번 읽었을 터인데도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위는 박완서 작가님의 딸 호원숙씨가 쓴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다. 작가님이 쓴 660여편의 에세이 중 35편을 선별하여 낸 책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의 프롤로그이다.

 

호원숙씨의 저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작가님의 모든 작품을 다 읽지 않은 일반독자는 늘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그 반대일 때가 있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어라 이거 소설에서 읽은 내용인 것 같은데 하고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이번 책에서도 박적골 이야기와 할아버지, 친정어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는 듯했다. 그렇다고 다 아는 얘기 또 듣는 식상함이 아니라 할머니가 해주시는 옛날이야기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때의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나처럼 작가님의 책을 어느 정도 읽은 독자라면 반가움과 새로운 마음이 교차했을 것이다.

 

이 책을 내면서 작가님의 작품을 고르느라 심혈을 기울였겠지만 만듦새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양장본에다가 표지 그림은 거친 듯 부드러운 유화이고, 내지 그림도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다. 660 여 편이나 되는 에세이 중에 고르고 골랐으니 얼마나 빛나는 문장들이 숨어있을까? 나는 그 문장들을 한편한편 차분하게 음미하듯 읽어보았다. 70~80년대에 쓴 글에서 드러나는 시대상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고, 작가로서 세태를 바라보는 시각, 그 긍정성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의 구성을 시대 순서대로 해 놓은 건 아니다. 작가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라면 조금 헷갈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년의 기억이 살아 있는 글부터 시작해 나목으로 당선되었을 때의 이야기, 아들과 남편을 잃은 후의 글은 작가의 생애에 있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기 때문에 작가 정보 확인으로 적당하다. 그와 함께 시대상을 알게 되는 건 덤이다. 작가님이 데려가는 그 시절 속 지하철과 백화점 같은 일상적 장소에서는 요즘은 볼 수 없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격세지감과 함께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해도 인간 심리의 보편성도 확인하게 된다. 역시 좋은 글이란 이런 것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 마음이 더 걍팍해졌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들이 작가님의 따뜻한 문장으로 위로받으면 좋겠다. 작가님 타계한지 10주기로 출간된 이 책이 딱 걸맞다. 화나서 울긋불긋해진, 모나서 삐쭉빼쭉해진 마음을 동글동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고른 문장들]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중-

 

남의 좋은 점만 보는 것도 노력과 훈련에 의해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으니 누구나 시험해보기 바랍니다. 남의 좋은 점만 보기 시작하면 자기에게도 이로운 것이, 그 좋은 점이 확대되어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변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믿을 수 없다면 꼭 한번 시험해보기 바랍니다. -행복하게 사는 법 중-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중년 여인의 허기증 중-

 

재물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내가 쓰고 살던 집과 가재도구를 고스란히 두고 떠날 생각을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내가 끼고 살던 물건들은 남 보기에는 하찮은 것들이다. 구식의 낡은 생활필수품 아니면 왜 이런 것들을 끼고 살았는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어린 물건들이다.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될 수 잇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잃어버린 여행가방 중-

 

 -그 때가 가을이었으면 중-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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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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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유명한 박노자 교수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처음 듣는 이름일 수 있는 박노자는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인데 2001년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이름을 박노자로 바꾸었다. 노자는 러시아의 아들이란 뜻이다. 한국에서 역사학자로서 자리를 잡기에 그는 너무나 비주류였다. 시간강사를 벗어날 수 없었기에 오슬로 대학의 정교수 자리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지난 20여 년간 오슬로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쳐야 했기에 국내의 동향에 관심을 놓을 수 없었고, 글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왔고, 간간이 책도 출간하고 있다.

 

이번 신간 <미아로 산다는 것>의 제목에 미아를 저자가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한다. 저자는 지그문트 바우만액체 근대를 빌려와 설명한다. 액체 근대란 모든 것이 흐르는 물처럼 너무나 빨리 바뀌어 어떤 장기적 관계 맺기가 불가능한 상황을 일컫는 것 으로 현재 한국의 20대 젊은 층들이 주로 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또한 오늘날 대부분 온라인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는 자본에 사생활을 내어주었으므로 액체 근대의 미아들은 전부 투명인간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 자신을 포함해 미아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는 각자가 스스로에게 나의 생각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는 것이야말로 혁명적 질문이 될 것이라고 한다. 동양철학사상가 이지(이탁오, 1527~1602)의 일성을 가져와 주류 의식이 나에게 주입되기 전 본래 진심을 회복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동심이라 부르며, 동심을 회복한다는 것은 변화를 말하는 것이고, 그 변화는 타인의 계몽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심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독자가 동심을 회복하는 변화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위 내용이 들어있는 머리말에서 오래 머무를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타인에 의해 주입되거나 권위자의 시각으로 필터링 된 것이 아닌 동심을 회복한다는 것에 대해 숙고한 후, 저자가 책에서 진단하는 문제의식에 동조 혹은 비판의 입장을 정리를 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접하는 시각에 대한 수용 여부를 판단하고, 자신의 동심을 찾아가게 된다면 독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혹여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해도 괜찮다. 저자의 사유에 본인이 동조하는지 아닌지를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도 수확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찾아가다보면 진심 회복의 길이 보이는 것이 될테니까.

 

이런 책은 사유의 폭을 확장시키는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박노자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모든 내용을 위처럼 하지 말고 본인의 관심사에 해당하는 챕터나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을 깊이 파고들어도 좋다. 저자의 기고 글과 책을 계속 만나온 독자라면 그의 사유에 변화가 있는지, 제시하는 대안에 대해 찬성인지 반대인지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그에 따르는 논거를 정리해보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저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 때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에 그는 시간강사였기에 말도 안 되는 처우에 대해 길고 자세히 논했었다. 우리사회의 여타 다른 문제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과격한 면을 띠기도 했고, 대안 제시는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그에 비해 이번 책에서는 그의 펜촉이 두루뭉술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회문제를 진단하는 시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글의 말미에서 좋은 말로 끝내려고 하는 느낌이었고 이론적이거나 피상적인 대안 제시(시쳇말로 하나마나한 이야기) 로 끝이 났다. 나는 왜 그런지 생각해봤다. 그가 한국을 오래 떠나 있어서일까? 미디어로만 접하는 한국을 표현하는 것은, 예전에 몸으로 부딪히며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때와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마 서술어가 경어체라서 그런가? 이것이 과연 저자의 변화때문일까? 글을 수용하는 독자의 변화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14년 전의 내 사고와 지금의 내 정신세계의 차이를 간과하고 읽은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축적된 독서량과 사회문제에 대한 내 시각의 변화가 저자를 변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의 대한민국>과 이번 책 사이에 출간된 책을 읽지 않았기에 14년의 간극을 크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의 이런 사유들이 저자가 머리말에서 강조했던 내용에 부합되는 활동인 것 같아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책 내용 중 인용하고 싶은 일부를 소개한다.

 

p.82~83

도대체 한국 남자들은 바보인가요? 신자유주의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면 신자유주의를 상대로 투쟁하고 노동당이나 정의당에 대량 가입해야 답이죠. 신자유주의로 인해 남성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보는 여성들에게 도대체 왜 한풀이를 하는 것일까요? 강자에게 얻어맞고 약자를 때리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물론 안 되죠.

(……)

페미들에 대한 혐오 하나로 자한당(현 국민의 힘)에 투표하려는 한국의 젊은 중하위층 남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xx 달린 사나이로서의 특권, 다시 말해 페니스 하나가 여태까지 한국 사회에서 보장해주었던 특권의 잠재적 상실을 더욱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페니스 파시즘은 미국의 백인 특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당장에 상실될 일이 없는데도 그들은 그 특권이 약화되는 경향에 위기감을 느끼고 극우화하는 것이죠

   

p.205

그런데 비정규직 양산이 사회문제가 되어 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적어도 정부의 직접적 영향력이 미치는 공공부문에서만이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사실 정규직화도 아니고 기존 비정규직에 대한 경쟁 채용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를 시도한다면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주동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요? 맞습니다. 비정규직 착취로 발생하는 이윤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고 바로 독자들의 질투심에 호소합니다. 어렵게 채용 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을 예로 들어 정규직화로 무임승차하는기존 비정규직에 대한 질투를 북돋우는 것입니다. 실제 취준생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정규직화 경향으로 전체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비율이 높아지고 계절 노동이나 임시적 노동이 아니면 정규직으로 뽑아야 한다는 당위 의식이 퍼지면 사실 노동시장 진입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유리한 것이죠. 그러나 취준생의 분노를 가장한 극우 언론의 기사들은 사회적 질시에 호소하여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하기도 하지요.

 

p.186

동유럽에 비해 아직도 상당히 남아있는 조직 노동의 힘, 노동자를 조직화할 가능성, 나름대로 발전된 일부 공공부문(대중교통 등), 비록 우파 헤게모니의 사회이긴 하지만 그나마 가능한 정권 교체, 군사주의의 폐단이 매우 심한 가운데 그나마 전쟁에 대한 혐오증, 평화 추구적 분위기의 공고함 등은 한국 사회의 커다란 장점들입니다. 이런 장점들을 기반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죠.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이제 걱정할 것이 없다고 단언했던 미국의 저명한 석학 브루스 커밍스와 달리 저는 우파 헤게모니 속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비관적이라서 걱정할 것이 태산 같다고 봅니다. 하지만 특히 커밍스 옹이 사시는 미국 등과 비교하면 낙관의 이유들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위 리뷰는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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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흡혈마전
김나경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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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흡혈마전>은 제1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김나경 작가는 그림작가였는데 이번에 온전히 자신이 텍스트로 완성한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그동안 작가가 그림으로 완성했던 스토리텔링 능력이 여실히 반영되어 그런지 1930년대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소재가 흡혈마인데 배경이 일제강점기, 거기다 주인공은 14살짜리 여학생과 사감 선생! 선뜻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감이 안오는데 일단 읽기 시작하면 그런 이질감은 느낄 수가 없다.

 

이 소설은 영어덜트 장르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청소년이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드러나야 하는데 그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현대물이거나 시간적 배경이 미래라면 모르겠으나 이 소설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이기에 여학생에게 너무 많은 난관들이 예상되었다.

 

"여성에게 중요한 것은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만이 아니야. 곱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모습도 아니지.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 스스로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야. 당연해 보이지만 연습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야."

 

위 대사는 희덕이 다니는 진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선배 단이가 한 말이다. 거의 요즘 우리가 하는 말인 것 같다. ‘과연 저 당시에 저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지배층 일본인이나 조선인 중 일부는 전근대적 대사를 한다. 그러나 한 남자의 인형처럼 살지 않겠다고 외쳤던 나혜석이라는 여성이 실재했는데, 당시에 단이처럼 저런 사고를 한 여성들이 없었을리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에 이 소설 속 세계관은 독자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와 유사한 지점을 하나 더 발견했는데 흡혈귀(뱀파이어)에 대한 우리들의 사고이다. 이 책에서 희덕은 친구 경애네 집에 갔다가 <서양 귀() 의 형태와 양상>이라는 책을 빌려온다. 그 책에는 흡혈마의 특징에 대한 설명과 목격담이 나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한 내용이다. 이 내용이 들어있어서이기도 할 것이고 우리가 그동안 미디어에서 각종 흡혈귀에 대한 정보를 접했기 때문에 역시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새로 부임한 사감선생 계월이 흡혈마로 나오며 희덕이 흡혈 장면을 목격하는데도 몹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기이한 일들은 아직 과학으로 해명되지 않았을 뿐이야. 하지만 가끔은…… 그래, 세상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아 둬. 나름으로는 살아가는 데 도움이 돼."

 

위는 경애의 오빠 일균이 희덕에게 하는 말이다. 이 대사 역시 오늘날 우리가 구미호나 도깨비, 뱀파이어 같은 이야기들을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많이 접했기 때문에 바로 수긍하게 만든다. 우리 정신세계는 이것이 비과학적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일어나는 일일 거라는 믿음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진짜 벌어지는 일이라서 믿는 것인지? 구전되어온 것이 다양한 미디어로 변주되고 재생산되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 순환적 사이클 안에 우리가 갇혀있기 때문에 비과학적이지만 믿는다는 모순적인 상태를 수용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책을 읽으며 일제 강점기하 주체적 여성흡혈귀에 대한 인식 , 이 두 가지를 계속 생각했다. 위를 잘 활용한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독자의 의심, 비판이 예상되는 것을 역으로 잘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만든 세계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재미있게 읽도록 만들었으니까!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주된 인물은 여성이다. 여학생 희덕과 사감 선생 계월, 계월을 도와주는 무당 백송과 기생 화란, 그리고 진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까지. 주체적 여성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의 한 축과 흡혈마의 이야기의 한 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진행되는데 이것은 교훈과 재미의 두 축이 잘 굴러가게 만든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여기에 시대적 배경이 일제 강점기이므로 마지막에는 희덕과 계월이 항일 투쟁에 한 몫을 담당하면서 여성성장 서사의 축까지 완성한 것이다.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오늘의 희덕은, 어제와 다른 모습은 아니었다. 키가 자란 것도 아니고, 얼굴이 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고, 학교 밖으로 떠나는 것도 마냥 두렵지만은 않게 되었다.  -p.286-

 

 

희덕은 결혼해야하니 돌아오라는 편지를 받았지만 결혼 대신 계월과의 동행을 선택한다. 고향과 남편이 아닌 더 먼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희망적 결말이다.

 

 

사실, 이젠 더 이상 young 하지 않고 완전한 adult 인 나로선 조금 싱겁긴 했다.

다른 여학생들은 계월이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희덕만 모든 걸 기억한다. 이 부분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작가는 이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계월을 도와 함께 만주로 갈 파트너의 능력으로 필요한 설정인 것 같다. 대상을 받은 <스노볼>과 비교하고 싶어서 읽었는데 스노볼만큼 흥미진진한 건 아니었다. 1등과 2등상의 차이인지 나의 개인적 취향의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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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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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곳에 삼악산이 있었지

북쪽은 험하고 가팔라 모르네

남쪽은 산을 파내고 큰길을 뚫어

골목마다 채국채국 집을 지었지

그래봤자 동네 이름이 삼벌레고개'

 

 

삼악동이라는 멀쩡한 이름을 두고 삼벌레고개에 산다고 해야 통하던 동네, 산 중턱 즈음 우물집 순분네 셋방에 이사를 들어온 가족이 있었으니 새댁네. 그 우물집을 위시로 삼벌레고개 사람들이 아웅다웅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설 <토우네 집>, 권여선 작가의 2014년 작품이 이번에 재출간되었다.

 

 

아파트도 없고, 집집마다 자가용도 없던, 1970년대 어느 달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편의 동화처럼 펼쳐진다. 일곱 살 동갑인, 순분네 둘째 아들 은철과 새댁네 둘째 딸 원이의 시선으로 그려지기에 그렇다.

 

 

 

어른들의 말과 행동이 일곱 살짜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벌어지는 우스꽝스런 상황, 제멋대로 해석해버리는 경우는 피식하고 웃게 된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보고 배워 뜻 모른 채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 마치 어른인양 내뱉는 말투나 마치 다 안다는 듯 결론짓는 모습을 볼 때면 ‘고 녀석들 참...’하면서 앞이마의 머리칼을 쓸어주고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아홉살 인생>이 자연스레 오버랩되었다. 권여선 작가가 이렇게 한글을 아름답게 구사했었나? 놀라워하며 읽었다. 실은 그의 장편 <레가토>를 읽고 적잖이 실망한 상태였고, <레몬>은 전작 단편 소설집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의 소설을 더 이상 읽지 않고 있었다.

<봄밤>과 <이모>를 읽고 끄억끄억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소설들에서 묘사와 우리말의 운율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토우의 집>은 필사하고 싶은 표현들이 많았다.

 

 

‘삼십 분 넘게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원은 멀미에 시달렸다. 목과 가슴 어디쯤에서 수십 개의 개구리 알이 올챙이로 부화하는 느낌이었다.’

 

 

일곱 살 여아가 멀미로 토하기 직전 위장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어릴 적으로 빠르게 되감기를 시키는 문장이었다. 나는 어릴 때 버스를 타면 무조건 토했다. 토하기 직전 배 속이 꿀렁꿀렁거리다가 혀 깊숲한 곳과 목구멍이 만나는 아래쪽에서 샘솟는 노릿한 침을 시작으로 토사가 시작된다. 그 다음 솟구쳐나오기 직전이, 개구리 알의 부화라니! 놀라운 표현이었다.

 

 

새댁이 은철더러 집에 손님이 올 때는 놀러오지 말라고 한 말에 은철은 거의 연인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되고 마는데, 은철의 내상은 이렇게 표현된다.

 

 

‘가슴속 유리 상자에 쫙쫙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달리면 달릴수록 그의 마음은 심하게 베었지만, 파란 호스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로 항상 질척거리는 창자처럼 길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은철은 온통 신발에 진흙을 튕기며 달리고 또 달려 나갔다. 아 시시하다, 시시해. 칫칫!’

 

 

가슴 속에 깨지기 쉬운 유리 상자를 가지고 있던 여리디 여린 일곱 살 남아는 조각나버린 유리조각에 심각한 내상을 입는다. 저렇게 맘껏 달리고 달릴 수 있었던 은철이 더 이상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된다. 형 금철의 무모한 장난으로 무릎뼈가 아작난 것이다.

 

 

순분네 우물집에 불행이 겹으로 시작되면서 계주인 순분네에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 하던 동네 여자들은 발길을 끊었다. 몇 번의 수술을 하고 회복을 비는 굿판을 벌였어도 은철은 다리를 구부리지 못했고, 원의 집에도 무시무시한 불행이 덮쳐왔다. 소풍을 떠나기로 하던 날 김밥을 싸며 즐거워하던 원의 집에 들이닥친 사내들은 아버지 안덕규를 잡아갔고 그는 돌아오지 못한다. 어떤 문서에든 펜대에 펜촉을 끼워 일필휘지로 한자를 써냈고, 늘 단정한 매무새로 정갈한 음식을 만들어 내오던 원의 엄마는 남편의 죽음으로 실성을 하기에 이른다.

 

 

소설 중반까지 이어지던 동화 같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우울한 모드로 바뀌고 말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시련이 닥친 은철을 보며 순분네는 자신이 찧고 까불며 뒷담하던 새댁네의 시누이에게 너무나 미안해진다. 피아니스트로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던 원의 고모는 불의의 사고로 앉은뱅이가 된 후 똥을 못 눠서 어땠다는둥, 목숨을 버리면서 어떻게 했다는 둥 신나게 떠들어댔었다. 아들 은철이 한 방에서 그 모든 말을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때는 은철이 다치기 전이었다. 작가는 은철을 스파이 활동 때문에 그 방에 앉혀둔 이유도 있겠지만 순분네의 뒤늦은 후회와 자각을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원의 집에 들이닥친 불행은 작가도 언급했지만 인혁당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국가가, 권력의 유지를 위해 저지른 범죄행위였음을 30여 년이 지나서야 인정했지만 저렇게 한 가정을 파탄내버린 책임은 누가 진단 말인가? 당시 희생된 분의 유족 중에 원이 같이 어렸던 자녀가 있었을 것이다. 가장의 부재와 빨갱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우리같은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인혁당 사건 처럼 우리 역사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내 가족이거나 친척이 아니라면 그들의 고통이 어떨지 알기 어렵다. 어떤 고통인지 모르므로 이해는커녕 공감도 할 수 없다.

 

p.301~302

 

그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알까요? 죽을 때까지 어떻게 견뎠는지 누가 알까요? 그이 몸이 성한 데가 없었어요. 머리... 가슴... 팔다리... 손발... 어디 하나...”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그이가 어떤 사람인데... 그 악마들이... 어떻게 하면 사람을 그렇게...”

그건 그이가 그은 거였어요... 자기 손으로 그은 거였어요...”

 

나는 새댁이 남편의 시체를 보고 와서 순분네에게 포효하듯 하던 저 말을 읽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나의 시어머니가 아주 오래전 남편의 시신을 찾아 헤맸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해 100세가 되신 어머님은 여순 사건 때 첫 남편을 잃었다. 남편이 여순 사건 때 군인이라서? 아니었다. 큰집의 형님을 잡으러 온 정부군이 형님 대신으로 남편을 잡아갔고 감옥에 1년 가까이 수감되어 있다가 사살되었는데 한참이 지난 후에야 시신 수습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머님은 거의 70여 년이 지난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말씀하셨다. 얼마나 한이 맺히셨을까.

 

 

구덩이에 던져둔 시신들 사이에서 남편을 찾아야 했으므로 어머님은 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하나하나 들추어 볼 수밖에 없었다. 총살당한 시신들이었기에 피로 진창이었던 무더기 속에서 겨우겨우 남편을 찾아냈다. 당신이 옥바라지하면서 만들어 들여보냈던 상의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남편을 붙잡고 미친 듯이 울었다던 어머님의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 새댁이 남편의 시신을 보고온 뒤 순분네에게 울면서 말하던 저 장면에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국가가 저지른 폭력이 개인의 삶을 파탄내고 어마어마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명예회복과 금전적 보상으로 그 상처가 치유될 리 없다. 우리 시어머니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으며 남편도 명예회복 되지 않았다. 우리 같은 일반 국민들이 이런 소설 작품을 읽으며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타인의 고통을 도대체 모른 체 할 수 없기에 이런 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오래전 이곳에 삼악산이 있었지

북쪽은 험하고 아득해 모르네

남쪽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산다네

그래봤자 토우의 집은 캄캄한 무덤'

 

 

토우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토우가 아닌 사람이었던 때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리뷰를 끝내려고 했는데 자꾸만 뭔가 미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두 번 연거푸 읽으면서 리뷰를 잘 쓰겠단 욕심이 났다. 그런데 이런 편지 추신 같은 문단을 덧붙이다니... 할 말과 욕심은 많지만 실력이 안 되는 탓임을 절감할 따름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도대체 울지 않을 수 없었고 리뷰를 쓰면서도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이렇게 울었다는 것을 자꾸 쓰면 글이 너무 감정적이 될 것 같아 덧붙이지 않으려 했으나 솔직한 감정을 쓰고 싶었다.

 

 

소설 마지막에 원은 말을 잃었고, 언니 영과 인형 동생 희와 함께 큰아버지네 집으로 가게 된다. 순분네가 영,원,희 자매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p.326

 

 

원은 영의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순분이 다가가 안아주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우물에 묶여 있던 원을 안았을 때도, 덕규의 장례식에서 쓰러진 원을 안았을 때도, 순분은 지금처럼 가슴이 저리지는 않았다. 비록 허깨비로라도 새댁이 원의 곁에 있었어야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분은 갓 딴 살구처럼 솜털이 보송한 원의 볼에 입술을 대고 기도하듯 속삭였다.

제발... 잘 살아라... 원아...”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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