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악셀 하케 지음, 장윤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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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악셀 하케<무례한 시대를 품위있게 건너는 법>이 쌤앤파커스에서 출간되었다. 처음 만나는 독일 작가라서 출판사의 소개를 옮겨본다.

 

악셀 하케는 최고의 언론인에게 수여하는 요제프 로트상’, 최고의 보도 기사에 수여하는 에곤 에르빈 키슈상’, 독일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테오도르 볼프상등을 받았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에 연재 중인 칼럼 내 인생 최고의 것들은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순간을 깊이 사유해 그려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언어의 집을 짓는 글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독일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된 <하케 씨의 맛있는 가족 일기>를 비롯해 <신과 함께 보낸 날들>,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등이 있다.

 

 

<무례한 시대를 품위있게 건너는 법>은 제목부터 궁금증이 일게 만든다.

 

요즘 무례한 사람들이 참 많아. 그러니 무례한 시대가 맞지!’

품위 있게라... 어떻게 해야 품위 있는 것일까?’

 

품위있는 사람이라 하면 보통 예의가 바르고 에티켓을 잘 지키는 사람을 떠올리고, ‘매너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웬만한 성인군자가 아니고는 무례한 상대에게 예의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책의 앞 표지에는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라고 쓰여 있다. 이 부제를 보면 단순히 예의와 매너를 갖추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럼 품위에 대한 저자의 고찰을 따라가보자.

 

독문학자 카를 하인츠 괴테르트의 책 <시간과 풍습:품위의 역사>라는 책을 인용한다.

사람이 모인 공동체에는 늘 예절이 존재한다. 예의범절을 포기한 문화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두가 동일한 예절, 동일한 품위를 지닐 필요는 없다.”

 

괴테르트가 인용한 키케로의 품위에 대한 정의는 아래와 같다.

"품위는 다치지 않을 권리이다. 이 권리는 칼이 들어오지 않도록 지켜준다. 이처럼 품위는 말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칸트의 말을 빌리면 품위는 타인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작가는 앞부분에서 품위에 대한 여러 정의들을 불러온다. 수긍하기도 의심하기도 하면서 독자들에게도 묻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품위란 무엇인가?”

 

그리고 작가는 이 시대를 왜 무례하다고 했는지 독일과 유럽의 근현대사와 정치인들의 사례를 가져와서 하나하나 논증한다. 특히 무례함의 대명사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러시아의 푸틴을 든다. 브렉시트 사태를 불러온 영국의 보리스 존슨도 빠트리지 않는다. 무례한 시대가 된 책임의 일정 부분을 정치인들에게 묻는 것이다. 나도 작가가 지적한 그들의 잘못은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100프로 정치인들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예전보다(1세기 전과 비교하자면)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기아나 전쟁도 많이 줄었으며 정보가 열린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사는데도 자학하거나 타인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일명 프로 불편러라 불리는 사람들도 많다. 수준 낮고 거짓말만 하는 정치인을 탓할 일이 아닌 것이다. 작가는 그 원인을 밝히는데 유발 하라리나 에리히 케스트너의 책을 인용하기도 하고 친구와 주고받는 대화도 가져온다.

 

펍에서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시작한 대화는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유명 작가나 철학자만 인용하면 자칫 딱딱할 수도 있으니 일반인의 대화를 집어넣으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 것 같은데, 작가와 친구의 대화 내용도 그리 쉬운 건 아니다.

 

나는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난 오히려 우리가 뭔가를 너무 모를 때가 빈번하다고 생각해. 우리는 스스로 굉장히 많은 걸 알고 있다고 느끼곤 하지. 그런데 그건 우리가 매 순간 어디선가 정보를 얻거나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정보에 파묻히기 때문이야.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지식의 핵심이 아닌, 그저 지식의 표면이나 핵심으로 가는 중간 단계 정도만 알고 있을 때가 종종 있어. 그렇게 지식의 맥락을 알지도 못하고 배후 관계가 빠진 상태에서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반응하곤 하지. 정치 현상을 해석할 때도 이랬다저랬다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잖아.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래. 그럼에도 우리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면 안 돼. 도리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해.”

 

우리 현실이 그렇긴 하지. 그래서 넌 뭘 하고 싶은데?”


 적어도 우리 현실이 이렇다는 걸 분명히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품위가 아닐까 싶어. 그리고 우리가 미덕이라 여기는 가치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자기 확신을 조금 낮추어 잡는 것이 이성적인 태도라 생각해
.”

 

위 대화는 거의 마지막 내용이다.

 

이 결론까지 오는 동안 작가는 여러 작가들의 책을 인용하여 논증했다. 작가는 사람들이 타인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왜 이렇게 극단으로 치달으며 더 과격해지는 건지, 극과 극으로 치달으면 인간의 공존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궁금해 했다. 그 답은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의 <불안사회>라는 책을 인용했다. 현대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다양성도 증가하면서 개인 삶의 확실성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건하에서 무탈하게 살아가려면 고도의 유연성과 신속한 적응력이 따라 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현대인이 자신의 삶을 자기 뜻대로 이끌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개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정 집단에 속하려 하고 이 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배척과 투쟁의 대상이 된다.

 

한편 인간은 공동체에서 타자와 어울려 살아가길 바라며 자신의 맡은 바를 완수하여 공존에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그 공동체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길 원한다. 그러나 세계화의 특징은 개인이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게 만들었고, 공동체를 통제할 능력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이라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 역시 힘들어졌고 민주주의도 그 힘을 잃었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를 인용한다. 공존과 공생의 핵심에는 타인을 위한 어떤 행위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데 그 행위는 결심이다.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활용해 자동으로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아 돌리려는 자세를 말한다. 이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고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즉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비전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여유와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책은 품위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해 우리는 왜 타인을 혐오하고 배제하게 되었는지, 정치가 얼마나 무례해졌는지 고찰한 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었다. 인간은 서로 다르므로 그 차이를 통해 배우게 된다는 말은 헤세의 <데미안>에서 읽은 개별성과 독자성과 연결되었다. 작가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하며 각각의 다른 모든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모든 유형의 인간에게 인정을 넘어 존중해야 한다고. 이것은 인간다운 품위라고 칭하는 근본적 토대이며 바로 연대감이라고 정의내리면서 이 책은 끝났다.

 

독일작가의 책이라 해서 독일에 국한된 내용만 다루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상황들이 있고, 작가가 인용한 사례들은 누구에게나 해당될 내용이라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단순한 예의범절이 아닌 품위 있게 사는 법을 알고 싶다면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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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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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의 신간 <철도원 삼대>를 사전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서 읽었다. 가제본으로 222쪽인데 출판될 책은 600쪽이 넘는다. 가제본은 전체 3분의 1분량으로 앞부분에 해당되는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은 철도원으로 살아온 집안 삼대에 걸친 이야기다. 그러면 거의 대하소설 분량으로 한 권으로는 양이 적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요즘 긴 호흡의 대하소설로는 독자에게 어필하기 힘들 것이므로 한 권짜리로 낸 게 아닐까 싶다. 글의 호흡을 빠르게 가져간다면 100여 년에 걸친 이야기도 한 권에 담을 수 있겠지만 작가의 필력이 더 중요할 터인데 그것은 황석영 작가니까 믿을 수 있겠다. 본 책이 출간되면 연결해서 읽어 보고 싶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조선 수탈을 용이하게 하려고 이 땅에 철도를 깔았고, 조선 민중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사를 배웠어도 노동 운동하면 전태일밖에 모르는 무식자이다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일제 강점기때부터 노동자로서 어떻게 살아왔고 그들의 노동력이 우리나라의 기반을 어떻게 닦아왔는지 놀라며 읽었다.

 

소설은 이진오가 발전소 공장의 굴뚝 위에서 단식투쟁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그의 노동자 인생은 부친 이지산, 조부 이일철, 증조부 이백만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훑어나간다. 필부로 태어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가문도 돈도 아니었다. 건강하게 태어난 몸으로 그저 성실하게 일하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일본인의 사환으로 일할 때 일어를 몰라도 눈치빠르게 적응했으며 철도공사 현장에서도 빠르게 기술을 취득해 숙련공이 되었으며 야학에서 <자본론>을 읽고 쓰며 노동운동의 당위를 알아갔고, 독서회를 결성해서 모임을 꾸려나갔다.

 

짧은 분량임에도 100여 년 전 식민치하에서도 성실과 패기로 일상을 살아낸 이 땅의 민중에게 경외심이 들었고 작가에 감탄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제가 아닌 악덕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김용균 노동자가 화력발전소에서 그렇게 희생된 후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며 김용균법 제정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었지만 이번에 또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고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얼마 전 일어난 사망사고에서 삼표시멘트는 21조 근무지침을 어긴 것을 하청업체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이 소설의 이진오도 해고 노동자 복직 투쟁중이다. 일제이후 노동력 착취는 이름만 바뀐 자본가들에게 승계되어 왔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현재 진행 중이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매년 산업재해로 2400여명이 죽어나간다. 우리 대부분은 재벌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노동하며 살아야 한다. 노동에 경중이 있을 순 없으나 스스로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자신은 산재사고로 죽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더럽고 힘든 곳에서 일을 하는 이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함에도 그들은 생명의 안전도 담보 받지 못한 채 노동 현장에 투입되고 급여도 가장 낮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노동운동뿐 아니라 정치권에서 법안으로 연결되어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소설에서는 철도현장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책에서 다루지 않는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00여년 전 민중들의 생활 양식도 엿볼 수 있다.

 

서울 인근 지방 사람들은 초봄이 지나면 인천 주안서 온 조기를 짝으로 들여놓았다. 조기를 소금에 절여 집집마다 채반에 넣어 장독대에 두거나 새끼줄에 매달아 담장에 널어놓고 햇볕에 말려 굴비를 장만했다. 초겨울에 김장을 하듯이 봄에 조기를 절이고 말리는 일은 집안의 제철 행사였다.”

 

굴비가 먹고 싶으면 시장에 갈 것도 없이 인터넷이나 홈쇼핑에 주문하면 아이스박스에 깔끔하게 포장되어 집으로 바로 배송되는 시대에, 저런 풍속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1세기 만에 우리 사회는 변한 것, 사라진 것이 너무나 많다. 이 소설은 그것을 기억하게 해주며, 인정할 여러가지 중에 이 의미도 크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나는 어릴 때 생선을 자주 접하지 못해서인지 생선은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다. 물론 서울 사람들의 저런 굴비장만 풍속을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안동식혜는 잘 알고 좋아하는 음식이다. 살얼음 동동 뜬 발그스름한 그것을 한 입 들이켜 입안으로 들어온 무를 씹을 때 그 아삭함은 어떤 음료에도 비길 바가 못 된다. 그러나 그 맛을 본지도 한 10년은 된 것 같고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안동식혜의 맛을 즐기고 싶어 안도현의 안동식혜를 소리내어 읽으며 입맛을 쩝쩝 다실 뿐이다.

 

안동식혜를 담아온 사발에는 잘 삭은 밥알이 동동 뜨고 나박나박 썬 무와 배도 뜨고 잣이나 땅콩 몇 알도 고명처럼 살짝 뜨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역사와 서사가 있는 이런 책은 앞으로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문화사 및 역사 교재로 쓰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민중의 노동사 속에 여성들의 삶과 노동도 빠지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철도원 삼대의 가족사와 기이한 에피소드를 읽으면서는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천명관의 <고래>도 오버랩 되었다.

 

이번 소설은 한국문단의 거장이라는 수식이 빛바래지 않았길 바란다. 가제본으로는 그렇지 않았는데 본 책도 실망하고 싶지 않다. 남은 3분의 2는 어떨지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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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빛나는 삶의 비밀
스에모리 지에코 지음, 최현영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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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이라는 말은 무척 친숙하지만 의외로 깊이 성각해 본 적이 없는 공기와도 같은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는 여러 상황에서 축복, 곧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끼며 지내왔습니다."

 

 "'산뜻하다'는 말에는 정말 기분 좋은 울림이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의미로 가득 찬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기후나 날씨를 표현할 때도 산뜻하다는 말은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뜻한 미소나 옷차림, 산뜻한 날씨 등 어떤 단어와 연결해 보아도 정말 멋진 말이지요."

위는 <언어, 빛나는 삶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문구입니다. 제목과 인용한 내용을 보면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책일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아닙니다.

이 책의 저자 '스에모리 치에코'씨의 남편은 아들이 여섯 살, 여덟 살 일때 과로사했습니다.

20년 후엔 큰아들이 사고로 척수손상을 입어 가슴 아래 몸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재혼한 남편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대화가 힘든 상태가 되고 있습니다.

인생에 한 번도 아니고 저렇게 어려운 상황이 자꾸만 닥쳐올 때, 그 파도를 넘기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저는 아마 욕하고 짜증냈을 것 같은데요...

아, 이 책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쓴 책이 아닐까요? 저자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하늘이나 운명을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습니다. 저자의 개인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곱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의 에세이라고 여길 정도의 글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을 전달하는 훈계조의 책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은 빛나는 삶의 비밀을 말하는 책이 된 것입니다. 견뎌내기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도 저자는 늘 따뜻한 시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눈을 가졌기에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사물에서,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겠지요.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한결같이 밝고 긍정적입니다.

제목처럼 저자는 언어에서 삶의 비밀을 발견했나 봅니다. 현실은 지옥처럼 무섭고, 그래서 부정적인 언어를 쓰는 게 당연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는 반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비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걸까요.

"'윤기'라는 단어는 매우 멋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세 거칠어지기 쉬운 무엇인가를 수분을 머금은 솔로 정성껏 쓰다듬어 주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 띄지 않는 것들입니다. 주인공이 아님에도 빠지면 정말로 허전한 것들입니다."

"사진이 고마운 이유는 이렇게 뜻밖의 순간에, 예전의 건강하고 즐거웠던 날들을 생생하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지요. 남편과 저는, 점점 불편해지는 몸을 한탄하기보다 둘이서 아름다운 산을 바라보고 고요한 전원 풍경을 즐기며, 그렇게 즐거웠던 때도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기에 행복합니다."

 

 

읽다보면 저자는 원래 긍정적인 성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습 혹은 수양으로 쉽게 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예쁘고 다정하게 말하자고 다짐하는 건 그때뿐, 벌컥 화 잘내고 흥분하면 과격한 말을 마구 쏟아내는 저로서는 수양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생각이네요. 그래도 이렇게 글로 쓰는 건 맞춤한 단어를 고르려고 고민도 하고 어색하면 고치기라도 하지만 말은 정말이지 내뱉으면 주워담기 힘듭니다. 계속 노력해야지, 별달리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을 빛나게 만드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고, 그렇게 만드는 건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속에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저자의 남은 생이 안녕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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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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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제목에 끌려서 선택한 책이다. 각잡고 진지하게 애썼고, 노오력했지만, 그렇게 살았어도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 편안하지도 않았다. 애썼다면 그에 합당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그건 당위라고, 누가 세뇌시켰는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이 책을 읽어보니 제목의 ‘애쓰지 않고’는 내가 생각한 ‘애씀’과는 달랐다. 나의 ‘애씀’은 앞에서 말한대로 개고생했지만 결과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는 의미라면, 책의 ‘애씀’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유사하지만 그리 부정적 뉘앙스는 아니다. ‘애쓰지 않고’ 뒤에 ‘편안하게’라는 말이 붙어있기 때문인 듯하다. '편안하게' 뒤에 연결될 서술어는 긍정적으로 완성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보면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도 됩니다!”라는 말을 줄였을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술어는 독자가 마음대로 바꾸어도 된다. “살아도 됩디다”, “살면 행복합니다”, “사는 게 나답게 사는 것입니다” 등등.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문제들을 누구에겐가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너무도 다양해서 어디 가서 물어볼지 난감할 때, 한편 그 문제가 너무 사소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을 때, 이 책을 읽어보면 좋다. 제목처럼 작가는 그리 애쓰는 것 같지 않게 편안하게 얘기해준다. 작가의 평소 말투도 그럴 것만 같다. 이 책은 어려운 심리학 용어를 사용해 가르치려하지 않는다. 작가 자신이 경험한 일상, 혹은 강연에서 만난 이들의 고민등을 사례로 풀어내기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인용하기도 하고 법륜스님의 상담 사례를 가져오기도 한다.

 

 

책의 소개처럼 ‘나를 지키면서도 갈등은 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간관계 처방전’되겠다. 그런데 인생의 문제는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고 그것만 해결하면 내 인생 아무 문제없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그게 아니다. 실은 남과의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 내가 나와 잘 지내지 못하는 문제인 것이다. 책에 나오는 여러 사례나 처방을 읽으며 독자 본인에게 해당하는 것이 있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다 읽고나면 결국 독자 자신을 바라보는,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이전보다 자신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책을 읽은 뿌듯함과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책으로 위로받는 느낌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다 제목아래에 소제목도 덧붙였다.

 

1장 휘둘리지 않고 단단하게 : 자존감을 지킨다는 것

2장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 나답게 산다는 것

3장 신경질 내지 않고 정중하게 : 타인과 함께한다는 것

4장 쫄지 말고 씩씩하게 : 당당하게 산다는 것

5장 참지 말고 원활하게 : 마음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6장 냉담해지지 말고 다정하게 : 사랑을 배운다는 것

 

하나의 에피소드가 길지 않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입말체라서 술술 읽히고, 각 챕터에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등장해 한 호흡 가다듬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해준다. 술술 읽힌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이런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너무 다양한 사례들과 그에 해당하는 조언을 고개 끄덕이며 읽었지만 그렇기에 남는 게 뭐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니 한 번에 다 읽고 덮을 게 아니라 한 문장과 그림이 있는 페이지에서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생각정리를 한 번 해보면 좋겠다. 물론 포스트잇이나 책갈피로 표시해 두겠지만.

 

 

 

각 장에서 나에게 와닿은 내용들을 골라보았다.

 

p. 47 “신세도 좀 지고 삽시다

어쩌면 당신도 오랜 시간을 낯선 섬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버텨왔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이제 신세 좀 지고 살자.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할 필요는 없다.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기쁨을 누군가에겐 주자.

겁먹지 않고 주변에 손을 내밀고,

나 역시 상대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더 단단해지기 위하여.

우리에겐 도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p.89 “일상을 견딘다는 것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았을지라도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힘겨웠던 순간들과 버거웠던 감정들은

이미 온 힘을 다해 삶을 지켜낸 증거다.

지나온 모든 순간은 그대의 최선이자 성취다.

사느라 너무나도 애썼다.

그리고 잘 버텼다.

정말, 수고했다.

 

 

p.129 “둔감함이라는 위로

 

우리는 나 혼자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며

자기 연민과 분노에 빠지지만,

우리가 받은 상처를 상대가 전부 알지는 못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도 몰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순간,

상대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해준다면

네가 나쁜 마음으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준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p.163 “나부터 신경을 끕시다

 

애정 없는 이들의 SNS룰 염탐하지 말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근황도 업데이트하지 말고,

누군가 자꾸만 소식을 전해준다면 화제를 돌리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누군가가 우리의 삶을 지켜보며

불행을 고대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시간 낭비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고,

누군가가 우리의 불행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해도

그건 저열한 이들의 초라한 위안일 뿐이다.

그러니 나부터 신경을 끄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삶에 집중하는 힘이다.

 

 

p.222 “사람은 고쳐 쓸 수 없어요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

그런데 이 말은 변하지 는 상대에 대한 자조적 체념이 아닌,

어느 누구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강제할 수 없다는

겸손의 깨달음이어야 했다.

사랑은 정교한 관계의 영역이기에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내게 딱 맞는 완벽한 상대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었고,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아도 관계는 달라질 수 있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발견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을 멀리서 찾지 말자.

사랑해서 노력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p.277 “행복에도 노력이 필요해요

 

행복하고 싶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 자신과 내 결을 조건 없이 대하고, 다정하고 소중하게 여겨주며,

성장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봐야 한다.

감사하고 현재에 머무르며, 세상에 다정해야 한다.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이들은 결코 불행할 수 없으니

그대 부디, 사랑하며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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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클래식 미스터리의 정수!

일본의 국민 추리 소설가의 초기 작품!

진부한 수사처럼 보이지만 옮긴이도 언급했다시피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위 문구에 해당되는 일본 작가는 니시무라 교타로”,

1971년에 출간된 추리 소설 제목은 <살인의 쌍곡선>이다.

 

먼저 작가소개 부터! 이번 소설로 처음 알게 된 '니시무라 교타로'1930년 생으로 1961년 데뷔작 <검은 기억>을 시작으로 20197월 현재까지 출간 작품 수가 총 622편에 달하는 작가이다. 올해 나이 아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소설을 집필 중이다. 그는 도쿄의 대형 전파탑 스카이트리의 높이(634미터)를 넘기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10권 정도는 가뿐하게 더 쓰지 않을까 싶다. 60년간 600편 넘게 썼으니 평균 잡자면, 1년에 10, 거의 한 달에 한 편은 썼다는 뜻이다. 한 달에 소설 한 편을 썼다는 건 놀랍다. 물론 작품성이 받쳐주니까 국민 소설가라는 칭호도 얻었으리라 본다.

 

일본 추리 소설 작가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유명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데뷔가 85년이니 니시무라 교타로는 한참 전에 이미 활동중이었던 것이다. 일본소설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아서 몰랐겠지만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이유도 있다. 옮긴이의 말 마지막에도 이렇게 나와 있다.

"현지에서의 명성과 비교하면 국내에는 아직 덜 알려진 감이 있지만, <살인의 쌍곡선> 출간을 계기로 국내에도 니시무라 교타로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접하고 소개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제 소설로 들어가 보자.

출간 년도가 1971년이니 경찰이 범인을 쫓는데 CCTV나 휴대폰 위치 추적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니 클래식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사건의 단서를 토대로 흩어진 퍼즐을 맞추듯 범인의 행적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정통 추리소설은 작가가 던져주는 힌트로 독자가 형사가 되어 같이 추리해 나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독자가 예상한 사람이 범인이 맞는지, 주어진 단서로 다음에 벌어질 일을 추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구나 이 책의 배경이 70년대이기 때문에 젊은 독자들의 경우 당시 일본의 문화와 일본인의 사고방식등을 엿보는 맛도 있다.

 

이 소설은 쌍둥이를 메인 트릭으로 삼는다. 그래서 소설 시작전에 작가는 아래 내용을 당부했다.

 

일란성 쌍둥이 형제인 고시바 가쓰오와 고시바 도시오는 강도행각을 일삼는다. 너무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둘 중에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 헷갈리게 만드는 작전이다. 피해를 본 가게 주인들의 진술로 만든 몽타쥬와 동일한 얼굴한 사람을 보고 범인이라고 지목했으나 똑같이 생긴 다른 한 명이 나타나자 누가 진범인지를 지목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게다가 범행당시 장갑을 꼈기 때문에 지문으로도 확인이 안 되었으며 들통나기 일보직전까지 가도 그들은 너무나 태연자약했다. 이들의 범행은 소설 전반부에 이미 드러나 버린다. 경찰은 그들 중 한 명이 범인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잠복하고, 왜 저렇게 당당한지 추리하는데 고심한다. 그러다가 그들이 저지른 일과 동일한 내용의 시나리오 같은 글이 경찰서로 도착하면서 경찰은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한다

 

또 다른 사건 하나. 관설장이라는 눈덮인 산속 별장같은 숙소에 초대장을 받은 젊은이 6(남자 넷, 여자 둘)이 모인다. 그런데 그곳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유사한 내용이 전개된다. 모인 사람들이 한 명씩 살해되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모인 첫 날, 한 명이 목메달아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때만해도 살인이 아니라 자살인 것으로 보였으나 그 방안에서 이런 카드가 발견되는데, 이 모양은 여기서 벌어지는 살인의 중요한 힌트가 된다.

 

 

물론 그들은 저 동그라미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며 범인이 던져준 힌트라고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한 명씩 살해당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읽은 독자라면 그 소설과 유사한 점을 찾아보며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은 산장 주인 하야카와였다. 왜냐하면 미심쩍은 무료 초대장을 보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외부로 연락을 취하거나 그곳에서 벗어냐면 되지 않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럴 수 없도록 차단당해 버렸다. 전화선은 잘렸으며 산에서 운행가능한 설상차는 엔진이 망가지고 스키도 부서진다. 또 눈이 계속 오락가락 하여 맨몸으로 도저히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므로 고스란히 죽음을 기다리는 꼴이 된다.

 

소설은 이렇게 두 축으로 교차 전개된다. 이 두 사건이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졌고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 지 궁금했다. 혹시 접점이 있었는데 놓친 건 아닌지 뒤로 갈수록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특히 산장에서 살인이 벌어질 때마다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를 의심하게 되면서 대체 남은 자들 중 누가 범인일지 궁금했는데 마지막에는 7명 모두 죽는다. 여자 두 명과 주인 하야카와가 살아있을 때 신기하게 전화가 연결되서 경찰에 신고되어 피해자의 가족과 신문기자들까지 현장으로 오게 되지만 악천후 때문에 신고후 이틀이 지나고 그 사이 모두 죽는다.

 

이때까지도 쌍둥이 강도사건과 산장 살인사건의 접점은 없었다. 도대체 두 사건의 연결 고리는 무엇이며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의도가 무엇인걸까? 산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고 나니 범인이 누구인지 보다는 살해의도가 더 궁금해졌다. 상상력 부족한 나로서는 여기까지 드러난 힌트로는 추리불가였다.

 

이 소설에서는 경찰의 추리력이 빛을 발한다. 요즘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무능력한 경찰하고는 다르다. 산장에서 살해된 여성 한 명이 그 곳에서 겪은 일들을 밤새워 써서 일지처럼 남겨놓은 것을 토대로 하나하나 맞춰나간 것이다. 그 내용에서 사라진 몇몇 부분과 현장에 남겨진 수상한 증거들을 토대로. 그 중 살해 현장마다 남겨진 동그라미 그림과 초대받은 사람들의 출퇴근 동선이 지하철 노선도(아래 그림)와 같다는 것에서 실마리가 풀린다.

 

 

이 리뷰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면 소설을 직접 읽어보려는 이들에게 김빠진 사이다를 마시라고 하는 꼴이니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이 재미있다는 것만은 장담한다. 직접 읽으면서 형사가 되어 추리해 보고 범인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클래식하게도 이 소설의 교훈이 있다.

타인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방관자가 되지 말자는 것이다.

 **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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