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악셀 하케 지음, 장윤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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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악셀 하케<무례한 시대를 품위있게 건너는 법>이 쌤앤파커스에서 출간되었다. 처음 만나는 독일 작가라서 출판사의 소개를 옮겨본다.

 

악셀 하케는 최고의 언론인에게 수여하는 요제프 로트상’, 최고의 보도 기사에 수여하는 에곤 에르빈 키슈상’, 독일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테오도르 볼프상등을 받았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에 연재 중인 칼럼 내 인생 최고의 것들은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순간을 깊이 사유해 그려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언어의 집을 짓는 글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독일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된 <하케 씨의 맛있는 가족 일기>를 비롯해 <신과 함께 보낸 날들>,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등이 있다.

 

 

<무례한 시대를 품위있게 건너는 법>은 제목부터 궁금증이 일게 만든다.

 

요즘 무례한 사람들이 참 많아. 그러니 무례한 시대가 맞지!’

품위 있게라... 어떻게 해야 품위 있는 것일까?’

 

품위있는 사람이라 하면 보통 예의가 바르고 에티켓을 잘 지키는 사람을 떠올리고, ‘매너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웬만한 성인군자가 아니고는 무례한 상대에게 예의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책의 앞 표지에는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라고 쓰여 있다. 이 부제를 보면 단순히 예의와 매너를 갖추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럼 품위에 대한 저자의 고찰을 따라가보자.

 

독문학자 카를 하인츠 괴테르트의 책 <시간과 풍습:품위의 역사>라는 책을 인용한다.

사람이 모인 공동체에는 늘 예절이 존재한다. 예의범절을 포기한 문화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두가 동일한 예절, 동일한 품위를 지닐 필요는 없다.”

 

괴테르트가 인용한 키케로의 품위에 대한 정의는 아래와 같다.

"품위는 다치지 않을 권리이다. 이 권리는 칼이 들어오지 않도록 지켜준다. 이처럼 품위는 말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칸트의 말을 빌리면 품위는 타인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작가는 앞부분에서 품위에 대한 여러 정의들을 불러온다. 수긍하기도 의심하기도 하면서 독자들에게도 묻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품위란 무엇인가?”

 

그리고 작가는 이 시대를 왜 무례하다고 했는지 독일과 유럽의 근현대사와 정치인들의 사례를 가져와서 하나하나 논증한다. 특히 무례함의 대명사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러시아의 푸틴을 든다. 브렉시트 사태를 불러온 영국의 보리스 존슨도 빠트리지 않는다. 무례한 시대가 된 책임의 일정 부분을 정치인들에게 묻는 것이다. 나도 작가가 지적한 그들의 잘못은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100프로 정치인들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예전보다(1세기 전과 비교하자면)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기아나 전쟁도 많이 줄었으며 정보가 열린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사는데도 자학하거나 타인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일명 프로 불편러라 불리는 사람들도 많다. 수준 낮고 거짓말만 하는 정치인을 탓할 일이 아닌 것이다. 작가는 그 원인을 밝히는데 유발 하라리나 에리히 케스트너의 책을 인용하기도 하고 친구와 주고받는 대화도 가져온다.

 

펍에서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시작한 대화는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유명 작가나 철학자만 인용하면 자칫 딱딱할 수도 있으니 일반인의 대화를 집어넣으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 것 같은데, 작가와 친구의 대화 내용도 그리 쉬운 건 아니다.

 

나는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난 오히려 우리가 뭔가를 너무 모를 때가 빈번하다고 생각해. 우리는 스스로 굉장히 많은 걸 알고 있다고 느끼곤 하지. 그런데 그건 우리가 매 순간 어디선가 정보를 얻거나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정보에 파묻히기 때문이야.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지식의 핵심이 아닌, 그저 지식의 표면이나 핵심으로 가는 중간 단계 정도만 알고 있을 때가 종종 있어. 그렇게 지식의 맥락을 알지도 못하고 배후 관계가 빠진 상태에서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반응하곤 하지. 정치 현상을 해석할 때도 이랬다저랬다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잖아.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래. 그럼에도 우리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면 안 돼. 도리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해.”

 

우리 현실이 그렇긴 하지. 그래서 넌 뭘 하고 싶은데?”


 적어도 우리 현실이 이렇다는 걸 분명히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품위가 아닐까 싶어. 그리고 우리가 미덕이라 여기는 가치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자기 확신을 조금 낮추어 잡는 것이 이성적인 태도라 생각해
.”

 

위 대화는 거의 마지막 내용이다.

 

이 결론까지 오는 동안 작가는 여러 작가들의 책을 인용하여 논증했다. 작가는 사람들이 타인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왜 이렇게 극단으로 치달으며 더 과격해지는 건지, 극과 극으로 치달으면 인간의 공존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궁금해 했다. 그 답은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의 <불안사회>라는 책을 인용했다. 현대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다양성도 증가하면서 개인 삶의 확실성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건하에서 무탈하게 살아가려면 고도의 유연성과 신속한 적응력이 따라 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현대인이 자신의 삶을 자기 뜻대로 이끌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개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정 집단에 속하려 하고 이 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배척과 투쟁의 대상이 된다.

 

한편 인간은 공동체에서 타자와 어울려 살아가길 바라며 자신의 맡은 바를 완수하여 공존에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그 공동체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길 원한다. 그러나 세계화의 특징은 개인이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게 만들었고, 공동체를 통제할 능력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이라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 역시 힘들어졌고 민주주의도 그 힘을 잃었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를 인용한다. 공존과 공생의 핵심에는 타인을 위한 어떤 행위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데 그 행위는 결심이다.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활용해 자동으로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아 돌리려는 자세를 말한다. 이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고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즉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비전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여유와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책은 품위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해 우리는 왜 타인을 혐오하고 배제하게 되었는지, 정치가 얼마나 무례해졌는지 고찰한 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었다. 인간은 서로 다르므로 그 차이를 통해 배우게 된다는 말은 헤세의 <데미안>에서 읽은 개별성과 독자성과 연결되었다. 작가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하며 각각의 다른 모든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모든 유형의 인간에게 인정을 넘어 존중해야 한다고. 이것은 인간다운 품위라고 칭하는 근본적 토대이며 바로 연대감이라고 정의내리면서 이 책은 끝났다.

 

독일작가의 책이라 해서 독일에 국한된 내용만 다루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상황들이 있고, 작가가 인용한 사례들은 누구에게나 해당될 내용이라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단순한 예의범절이 아닌 품위 있게 사는 법을 알고 싶다면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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