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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빛나는 삶의 비밀
스에모리 지에코 지음, 최현영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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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이라는 말은 무척 친숙하지만 의외로 깊이 성각해 본 적이 없는 공기와도 같은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는 여러 상황에서 축복, 곧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끼며 지내왔습니다."
"'산뜻하다'는 말에는 정말 기분 좋은 울림이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의미로 가득 찬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기후나 날씨를 표현할 때도 산뜻하다는 말은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뜻한 미소나 옷차림, 산뜻한 날씨 등 어떤 단어와 연결해 보아도 정말 멋진 말이지요."
위는 <언어, 빛나는 삶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문구입니다. 제목과 인용한 내용을 보면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책일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아닙니다.
이 책의 저자 '스에모리 치에코'씨의 남편은 아들이 여섯 살, 여덟 살 일때 과로사했습니다.
20년 후엔 큰아들이 사고로 척수손상을 입어 가슴 아래 몸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재혼한 남편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대화가 힘든 상태가 되고 있습니다.
인생에 한 번도 아니고 저렇게 어려운 상황이 자꾸만 닥쳐올 때, 그 파도를 넘기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저는 아마 욕하고 짜증냈을 것 같은데요...
아, 이 책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쓴 책이 아닐까요? 저자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하늘이나 운명을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습니다. 저자의 개인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곱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의 에세이라고 여길 정도의 글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을 전달하는 훈계조의 책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은 빛나는 삶의 비밀을 말하는 책이 된 것입니다. 견뎌내기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도 저자는 늘 따뜻한 시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눈을 가졌기에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사물에서,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겠지요.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한결같이 밝고 긍정적입니다.
제목처럼 저자는 언어에서 삶의 비밀을 발견했나 봅니다. 현실은 지옥처럼 무섭고, 그래서 부정적인 언어를 쓰는 게 당연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는 반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비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걸까요.
"'윤기'라는 단어는 매우 멋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세 거칠어지기 쉬운 무엇인가를 수분을 머금은 솔로 정성껏 쓰다듬어 주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 띄지 않는 것들입니다. 주인공이 아님에도 빠지면 정말로 허전한 것들입니다."
"사진이 고마운 이유는 이렇게 뜻밖의 순간에, 예전의 건강하고 즐거웠던 날들을 생생하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지요. 남편과 저는, 점점 불편해지는 몸을 한탄하기보다 둘이서 아름다운 산을 바라보고 고요한 전원 풍경을 즐기며, 그렇게 즐거웠던 때도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기에 행복합니다."
읽다보면 저자는 원래 긍정적인 성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습 혹은 수양으로 쉽게 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예쁘고 다정하게 말하자고 다짐하는 건 그때뿐, 벌컥 화 잘내고 흥분하면 과격한 말을 마구 쏟아내는 저로서는 수양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생각이네요. 그래도 이렇게 글로 쓰는 건 맞춤한 단어를 고르려고 고민도 하고 어색하면 고치기라도 하지만 말은 정말이지 내뱉으면 주워담기 힘듭니다. 계속 노력해야지, 별달리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을 빛나게 만드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고, 그렇게 만드는 건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속에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저자의 남은 생이 안녕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