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헤르만 헤세 지음, 김윤미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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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를 좋아하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길만한 책이 나왔다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가 그 책이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지만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의 사상과 문장에 반했다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 두 권만 읽어봤다. 그럼에도 이 책 서평단에 신청했다. 헤세는 음악을 어떻게 문자로 표현했을지 궁금했다. 나는 음악을 글로 쓰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멋지다, 대단하다같은 단어로 뭉뚱그려 쓰면서 늘 답답했다.

이게 아닌데... 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어휘력 부족인가? 감동 부족인가?’


그래서 헤세의 시각이 텍스트로 어떻게 변환되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 책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는 헤르만 헤세 전문 편집자 폴커 미헬스가 헤세의 모든 글 가운데 음악을 대상으로 한 글을 가려 뽑아 책으로 출간했다그의 글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 바탕엔 수준 높은 지식이 있었다. 같은 문화권에 같은 독일출신 작곡가들의 음악이니 이해도가 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하더라도 같은 언어와 문화안의 동질성은 아무래도 문학으로 쉬이 흐르는 것일 터이다. 


어느 중국 피아니스트의 쇼팽 연주를 듣고 헤세는 이렇게 썼다.


p.170


젝 들은 건 그저 대가다운 피아노 연주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들은 건 쇼팽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쇼팽요. 그것은 바르샤바와 파리를, 하인리히 하이네와 젊은 리스트의 파리를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제비꽃 향기와 마요르카섬에서 맞는 비의 향기가 났어요. 최상류 살롱에서 풍기는 향기도요. 음악은 멜랑콜리하면서도 고귀한 느낌을 자아냈고, 리듬의 분화와 셈여림의 차이는 섬세했습니다. 기적이었어요.



나같은 사람이 쇼팽 연주를 듣고 기적이라고 쓰면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헤세는 바르샤바와 파리로 먼저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는 마요르카섬의 보라빛 향기를 피웠다가 일순간 살롱의 멜랑콜리한 향기를 맡게 한 후 주의깊게 들어보라고 했다. 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음악을 사랑하는 작가는 음악 관련 책(모차르트 전기)를 읽고 이런 리뷰를 쓴다.


p.227


모차르트를 사랑하고 모차르트를 탐구할수록 모차르트라는 인물은 더욱 신비로워 보인다. 열한 살 된 아이의 초상화들은 조숙하고 숙련되고 고도로 완성된, 자기 안에 침잠한 한 인간을 보여준다. 더 나이 든 모습의 초상화들과 편지들에서는 한 아이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기존의 전기들에 기대 모차르트의 생애를 추적하는 이에게 이 불가사의한 이의 초상은 호기심을 품고 해명을 바라는 바로 그 지점에서 거의 언제나 형체 없음으로 도로 미끄러져버린다. 모차르트가 심신을 불살라 사랑하고 고통 받으며 살아간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모차르트는 도무지 인간의 삶을 살았던 적이 없던 것처럼, 이 축복받은 정신 속에서는 그 어떤 자극도 현실의 유혹도 우회로를 거치지 않고 곧장 음악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삶을 살았던 적이 없던 것 같다 는 그동안 모차르트를 표현한 어떤 문장보다 적확한 것 같다.


헤세의 경험과 유사한 내 경험이 있어 옮겨본다. 어느 연주회의 휴식시간에 독주가의 대기실 바깥에 서서 연습연주를 듣는 장면이다.


p.159


꼼짝없이 사로잡힌 채 서서 귀 기울이는 시간이 무한히 계속되었다 해도 우리 중 누구도 애석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발이 아프지 않았던가? 아니다. 발이 아팠다. 그러나 아무 상관없었다. 발의 통증은 다른 차원, 다른 세상과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나직하지만 맑고 평화롭고 밝고 비현실적일 만큼 성스러운 음악이 회색칠 된 나무판자 저 편에서 샘솟고 있었고, 지금 내가 나를 꼼짝없이 사로잡은 문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요제프 크네히트’(소설 유리알 유희 주인공)가 언젠가 야코부스 신부의 방문 앞에 서서 소나타 연주에 귀 기울였던 장면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때 좋아하던 친구 집 담벼락에 기대서서 그 친구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 배우던 피아노를 중학교 1학년 때 그만뒀기 때문에 바흐 연습곡 정도 겨우 치다 말았다.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오래 쳐왔고 그 때는 콩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발 아픈 줄 모르고 친구의 방 창문 아래에서 연주를 들었다. 헤세처럼, 그의 소설 주인공 요제프처럼 그랬다. 귀 기울여 들었던 그 기억은 두근거리는 즐거움이다. 작가처럼 글을 쓰진 못해도 작가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걸 확인하니 웬지 기뻤다.


헤세는 바흐와 모차르트를을 가장 좋아한다 했지만 슈만도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슈만의 음악에 심취하기 어려웠다. 클래식 음악의 종류가 많아도 듣는 곡은 늘 정해져 있다. 기분에 따라 듣는 곡도 정해져 있다. 그 리스트 중에 슈만 곡은 없다. 슈만은 가곡을 포함 피아노곡이나 현악곡등 유명한 곡이 많은데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헤세가 슈만의 음악을 들으며 쓴 글을 읽으니 나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p102


그의 음악 안에서는 끊임없이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꾸준하지도 짓누르지도 무겁지도 일정하지도 않다. 껑충거리는, 유희하는, 돌풍 같은, 버릇없는, 부단히 놀라게 하며 시작되고 다시 사라져버리는 윙윙거림이다. 모래와 나뭇잎의 앙증맞은 소용돌이 춤을 보는 기분이다. 화창한 날의 바람, 근사한 방랑 벗이며 놀이 친구다. 활기차고 아이디어 넘치며 신나게 수다 떨다가, 때로 달리거나 춤추고 싶어 했다가 하는. 우아함과 청춘으로 가득한 이 음악 속에서는 팔랑거리고 나부끼며 나풀거리고 한들한들하며 춤추고 폴짝거린다. 빙긋 웃고 깔깔 웃고 유희하고 놀려댄다. 일부러 심술궂었다 애틋했다 하며. 이 마법 같은 리듬을 지은 시인이 우울과 분열 증세 속에 꺼져가다 죽었다는 건 납득할 수 없을 것 같다.


책에는 슈만의 가곡이 빈번하게 등장하기에 검색해서 들으며 책을 읽었다. 요나스 카우프만이 부른 시인의 사랑”, 디아나 담라우가 부른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들었다. 역시 슈베르트 가곡과 비슷했다. 피아노 반주가 귀에 더 잘 들어왔고, 독일어의 높은 벽에 부딪혔다 튕겨 나와 주저앉아야 했다. 한국어 자막과 피아노 반주에 만족했다. 슈만의 음악 안에 부는 바람을 부디! 나도 느껴보고 싶다.


이 책의 부록에는 헤세의 시로 만들어진 가곡 리스트가 실려 있다. QR코드나 URL주소를 첨부해놓았다면 헤세의 시가 어떤 노래로 탄생했을지 들어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그래도 이 책에는 헤세의 시가 여러 편 실려 있다. 번역된 시는 원어의 맛을 다 살리긴 어렵다. 그렇지만 독일어를 모르니 한글로라도 헤세의 감성을 느껴보았다그 중 플루트 연주의 시구가 의미심장하여 옮겨보았다



위 시의 부연 설명으로 음악에 대한 헤세의 통찰이 든 설명으로 이 리뷰를 마무리 한다.



"음악을 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미적으로 지각 가능하게 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시간이란 현재를 말하고요. 음악을 듣고 있으면 순간과 영원의 동일성이 또다시 떠오릅니다." - p.281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룬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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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강물결 지음 / 메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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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래로부터 장수를 꿈꿨다. 진시황은 오래 살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고 애썼고, 현대는 안티에이징 산업이 활황이다.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자본주의는 십분 이용하고 있다. 누군가는 돈을 쓰고 누군가는 그 돈을 벌어들인다.


이젠 백세시대를 너머 12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만약에 죽지 않고 계속 계속 산다면 어떨까? 직관적으로 죽지 않는다? 건 쫌 아닌 듯...’ 할 것이다. 만약 죽지 않고 계속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 미래 언젠가는 인간의 죽음을 계속 유예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향연>의 작가 강물결씨도 인간이 죽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같은 상상으로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싶다. 고즈넉이엔티의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 <향연>에는 작가의 말이 없어서 작가의 의도를 알 수는 없었다.


아무리 미래가 배경이고 상상력이 기반이라지만 누구나 죽지 않는 건 아니다. 작가는 자비인지 고난인지 모를 기회를 사형수에게 주었다. 중범죄 사형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재생인간이 된다. 사형 집행 후 자신의 뇌에 아미토(유도 전능 줄기세포에서 인간 체세포에 존재하는 핵지도를 결합한 것으로, 주입된 지도에 맞게 배아 단계부터 스스로 분화하는 일종의 씨앗)로 재배한 신체가 이식되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재생인간의 굴레는 죽을 수 없고 평생 감시당하며 노동을 하며 살아야 한다.


재생 인간도 두 종류로 나뉜다. 무죄의 재생인간은 죄를 짓지 않는 한, 계속 일하며 살아가야 한다. 만약 범죄를 저지르면 형량만큼 복역한 후 다시 일해야 하지만 그 죄가 무기징역이나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라면 콜로니 행판결이 내려진다. 형장 콜로니는 중죄를 지은 유죄의 재생인간을 미립자로 완전히 소거하기 전에 머무는 최종의 장소다. 주인공 유진은 콜로니21에서 일한다. 유진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자를 죽여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유진이 하는 일은 유죄의 재생인간의 죽음을 다룬다. 그런 죽음을 환원이라고 부른다. 환원을 희망하는 재소자를 배웅하는 마지막 잔치가 향연이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기본 뼈대다. 재생인간으로 태어난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뇌는 그대로인 채 몸만 바뀌었기 때문이다. 노동만 하고 사는 그들이 행복해 보일 리 없다.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어두운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미래의 신기술은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소설 속 미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러면 작가가 이런 소재로 소설을 쓴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에서 환원은 중요한 의식이다. 주인공 유진도 재소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배려가 환원이라고 생각한다. 고통 없이 생명을 끊어주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히 죽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 삶에 의욕이 없는데 원치 않는 목숨이 붙어있다면? 불행일 것이다. 재소자들이 자살을 택하는 방법에 SF적 상상력이 동원되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오래 살기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삶을 종결하기를 원한다. 아쉽게도 그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없다. 종교적으로는 신의 뜻이라 하고, 주역에서는 사주에 따라 정해져 있다고도 한다. 우리가 원해서 이 세상에 오지 않았듯 사라지는 것 역시 원하는 대로 가능하지 않다. 기억을 간직한 채 새로운 몸이 주어져 계속 산다는 것을 반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현실에서 내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존엄사가 떠오른다. 안락사 혹은 존엄사는 자살과는 달리 인간답게 죽고 싶다는 의지다.


책으로 다시 돌아가면 죄인은 영원히 노동만 하고 살아야 하는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없나? 죽음을 선택하려는 이들이 있다. 또한 그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세력과 그 죽음을 도와주려는 이가 있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연에 집중하면 그저 사람 사는 평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살인이 주 내용이긴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존엄하지 못한 상태로 생명을 연명하느니 자신의 삶을 종결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라는 메멘토 모리는, 반드시 죽을 것이니 겸손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령도 들어있는 게 아닐까. 그러기 위해 건강한 식사는 필수다. 환원의 마지막 행사인 향연이 식사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죽을 텐데 뭘 굳이 먹나? 하지만 마지막 식사의 메뉴가 자신의 추억이 깃든 먹고 싶은 음식인 것은 죽기 전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굴 만나면 뭐 먹을까?부터 생각하고 여행을 가서도 맛집을 찾는다. 맛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도 중요하다. 죽기 전 인간의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채우고 함께 했던 이들을 기억하는 것을, 작가는 향연이라고 이름 붙였다.


수수기장밥, 근대된장국, 파래무침과 콩나물무침, 두부조림과 애호박볶음, 배추김치


위는 유진의 향연 식단이었다. 엄마가 해준 평범한 집밥 같다. 그리고 음악은 말러의 교향곡 2번이 연주된다. 이 곡의 부제는 부활이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그해 여름엔 죽음이 속출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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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대 패싱 - 튀고 싶지만 튀지 못하는 소심한 반항아들
윤석만.천하람 지음 / 가디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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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대 패싱>이라는 제목을 보고 갸웃했다.

 

낀대? 낀세대라고 한다. X세대, MZ세대는 들어봤어도 낀세대라니? 그럼 어디와 어디에 끼어 있는 세대일까? 이 책에서는 낀대를 구분하기 전에 먼저 이런 설명을 한다.

 

"MZ세대에 앞서 19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X세대, 1960년생들은 586세대로 불러왔다.

세대를 10, 20년 주기로 나누는 구분법은 착각이다."


그럼 낀대란?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을 뜻한다. X세대와 밀레니엄 세대에 중첩돼 있다. 위로는 586세대에 치이고 아래로는 진짜 MZ세대에 낀 샌드위치 세대다.”

 

이 책은 낀세대 두 명(중앙일보 논설위원 출신 윤석만, 변호사이자 국힘당 소속 천하람)이 공동집필했다. 4장으로 구성되었으며 1부에서는낀대의 실체와 의미를 살펴보고 낀대들의 특성이 다른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살펴본다. 2부는 정치사회 영역에서 세대 간 갈등을 초래하는 문제점을 짚는다. 3부에서는 낀대 갈등을 유발하는 사회 중요 쟁점들을 짚고, 4장에서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D세대(디지털 세대:90년 이후 출생자들)를 맞이할 때임을 강조한다.

 

낀대는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하고,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유.청소년기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월을 보내고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로 큰 기대를 받았지만, 정작 성년이 되고 현실에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세대적 좌절을 경험했다. 그러나 X세대의 반골적 기질은 그들이 이미 사회 주류가 된 뒤에도 DNA처럼 남아 사회 전반과 조직 내에서 중추가 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겉돌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5060세대가 보기에 낀대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워라밸을 추구하고 윗 세대에 비해 개인주의적인 낀대는 5060이 보기에 덜 치열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낀대는 개인주의적 성향과 동시에 조직에 대한 충성심, 국가에 대한 사명감을 지닌 세대다. 506020대와 직접 소통하는 것은 쉽지 않고, 20대도 벽을 느끼기 쉽다. 낀대가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처럼 낀대는 특히 조직이나 사회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해야 하는 숙명인 것이다.

 

입시제도와 정년연장, 정규직 전환, MZ노조, 연금 개혁등 낀대에게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2,3부에서 풀어내고 있다. 낀대를 포함 586세대, MZ세대에게 이 책은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참고서가 될 것이며 저자들의 문제의식과 해법에 찬반 의견을 개진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마지막으로 낀대의 가치와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낀대를 젊은 꼰대라고 단정하기 전에 낀대가 없는 회사나 단체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586세대 부장님과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신입사원이 직접 소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날로그 환경에서 가난과 독재, 민주화를 경험한 586세대와 디지털 환경에서 선진국 국민의 삶을 살아온 90년대생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모두를 아우르면서, 중진국의 설움도 느껴본 낀대의 존재가 소중한 이유다. 앞으로 낀대가 변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어댑터(Adapter)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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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 - 심리학의 눈으로 보는 두 나라 이야기
한민 지음 / 부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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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은 문화심리학자 한민씨의 신간이다. 2년 전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를 인상 깊게 읽어서 이번 신간 서평단에 신청하게 되었다.<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책이다. 문화심리학자이므로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다루고 있다.


이번 책 역시 흥미롭게 읽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문화를 위시한 여러 분야에서 한마디로 잘나가고 있는데 비해 일본은 점점 쭈그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2019년 일본의 무역제재를 가뿐히 넘겼다. 2020년 이후 코로나를 대처하는 일본정부의 무능함을 보니 좀 이상했고, 일본인들은 아베나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일어가 안 되니 일일이 일본 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나의 이런 궁금증을 저자가 해결해주었다.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의 차이를 비교하고, 2부는 민족의 특징적인 면을 비교한다. 3부는 양국 문화에 숨어있는 특이점을, 4부에서는 심층적인 심리를 비교한다. 저자는 일본을 전공하거나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심리학에 기반하여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고 다양한 일본 저자들의 책을 인용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1부 첫 챕터의 제목부터 시선을 끈다.

먹방의 나라 한국 VS 야동의 나라 일본

성생활 만족도가 낮다는 일본에서 성산업이 아직 활발한 이유가 뭘까? 저자는 일본인의 욕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싶은 욕구가 성으로 표현되는데 일본인에게 가장 문화적으로 보편화된 방식인 엿보기로 나타난다 는 것이다. 일본인은 자신과 타인, 내부와 외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타인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다. 일본에 몰래카메라 형식의 예능이 많고 카메라 기술이 발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즉 야동은 교류와 엿보기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반면 한국인에게는 밥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고마울 때 밥 한 번 살게.”라고 하고, 이성에게 작업을 걸 때도 저랑 밥 한 번 드실래요?”, 친구가 아프면 밥 꼭 챙겨 먹어.”라고 할 정도다. 밥을 함께 먹는 행위는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 용서하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혼밥, 혼술의 시대이고 1인 가구가 늘어나도 함께 밥을 먹으며 충족해왔던 욕구가 사라진 건 아니다. 저자는 먹방이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가장 한국적으로 드러난 문화현상으로 본다. 즉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피드백하며 함께 뭔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사회적 교류의 방법이다.


제목과 같은 챕터는 2부에 나온다. 한국인의 선 넘기는 오지라퍼들에게서 볼 수 있다. 저자는 오지랖의 긍정적 사례로 2001년 도쿄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이수현씨를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이유는 남이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치 않는 참견은 사생활 침해나 갑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을 지지해 줄 버팀목이 될 수도 있고, 공통의 문제에 대처하는 사회적 연대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IMF 금모으기나 태안 유조선 사고, 코로나 사태 등 우리에게는 국난극복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인들은 참견을 극도로 꺼리는데 그 이유는 민폐를 저지르지 않으려는 동기에서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민폐라고 인식하는 것은 물론, 국가나 사회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도 자신이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 할머니는 자신을 구조해준 구조대원에게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또한 일본인들은 입은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것을 온가에시라고 한다. (:태어나면서 주군, 천황, 국가, 일반적인 사회와 타인들의 존재로부터 받게 되는 사회적 의무를 뜻함) 따라서 일본인은 애초에 남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일 자체를 피하는 쪽으로 행동한다.


일본인은 수동적이고 변화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3부에서 찾았다

아버지면 죽이고 보는 한국 VS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 일본이다. 정신역동이론에서 부친살해는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근대는 아버지를 죽인 자식들이 새롭게 연 시대를 의미하는데 일본은 한 번도 기존의 권위를 타파하고 새 질서를 구축한 적이 없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일본을 연 것은 기존 지배계급이었고 그들은 과거의 권위 위에서 새 시대를 원했다. 그 후손들은 아버지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2차 대전 패망 후 미군정에 의해 사회 개혁이 이루어질 때도 천황을 비롯한 기존의 권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결국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의 주체로 서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안부, 강제 징용 등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오히려 피해자로서 자신들의 모습만을 부각시키려는 행태는 일본이 주체로서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객체로서 자신들이 당한 일에만 민감한 경험 방식 때문인 것이다.


p. 271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 자식들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강하고 잘난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편안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위에 의존해 버릇한 자식은 자신의 앞날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의지를 갖기 힘든 법이지요.

 

이에 비해 한국현대사는 계속해서 새로운 아버지가 나타나고 자식들은 그 아버지를 죽이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일제 강점기동안 독립 투쟁, 전쟁 분단이후 사상투쟁, 독재와 싸웠던 4.19, 5.18, 6월 항쟁, 2016년 촛불까지 우리의 역사는 부당하게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한 자들을 물리치고 주체로 서기 위한 자식들의 투쟁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워낙 빠른 시간 내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다보니 그만큼 해결해야할 문제도 많은 것이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숙제이긴 하다.


이 책에서 짚어주는 비교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 딴죽을 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린 너무 정이 많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많아서 자꾸 참견을 한다지만 실제 내 주위에서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남 참견하는 거 싫어한다. 일본사람들이 저자가 말하는 대로 다 저럴까 의심할 수도 있겠다. 이에 저자는 이렇게 이해하고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인간의 종적 보편성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적 상대성을 만들어 내고 문화적 상대성은 개개인의 성향 및 생물학적 보편성과 만나 무수한 개별성을 만들어 냅니다. 개별성 차원에서 보자면 인간 개개인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모두 똑같다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사람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 전제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죠. 우리가 진정 가져야할 의문은 보편성을 가지고 잇는 사람들에게서 왜 차이가 나타나는가’ ‘개개인의 행동들에서 왜 특정한 행동의 패턴이 관찰되는가같은 것들입니다.


문화는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그 환경에서 계속해서 잘 살아가려면 이러한 것들을 후속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교육을 통해 후속 세대는 해당 문화에서의 요구에 부응하는 공통적인 삶의 방식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문화의 유형입니다. 저는 바로 이 관점, 상대성의 차원에서 문화의 유형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인간의 행동은 보편성의 틀 안에서 규정되지만 문화에 따른 상대성으로 구분되고 개개인은 개별적 존재지만 문화는 사람들의 행동을 패턴화시키니까요.



일본 여행을 언제 갈지도 모르겠고, 일본인을 만날 일도 없는데 이 책은 일본인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의 문화적 특징과 심리를 비교하며 설명해주어 더 재미있게 읽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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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자꾸 책방
안미란 외 지음, 국민지 그림 / 사계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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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자꾸 책방>은 부산에 있는 어린이청소년책 전문서점 책과 아이들을 모델로 한 작품집이다. 10편의 짧은 동화 속 배경인 자꾸자꾸 책방의 모델이 바로 책과 아이들이고등장인물인 잠잠이 선생님과 구름아저씨는 책과 아이들의 공동대표 둘의 별명이다. 2019년 이곳에서 열렸던 동화 창작 공부모임이 독립출판으로까지 이어져 동화로 완성된 것이다.


10편의 동화 속 배경은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책과 아이들의 실제 장소와 같고 이야기들은 실제 있었던 일에 기반한 것과 지어낸 이야기가 섞여있다책방에서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사람들과 동물들의 이야기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평범하기 그지 없는 내 이야기 같은어릴 때 상상해본 적 있는 그런 이야기 속에전래동화 속 인물 우렁각시와 실제 인물 소파 방정환 선생이 등장하기도 한다.


당연하다책방에는 책과 사람이 있고 어떤 꿈도 꿀 수 있는 장소이니 말이다자꾸자꾸 책방에 자꾸 가고 싶고자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10편의 동화들은 어린이나 동화작가를 꿈꾸는 어른들 모두가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자녀와 같이 읽을 부모라면 아이의 취향에 맞춰 독후활동을 해보면 되겠다저학년이라면 이 책의 삽화를 참고삼아 책방을 그려보면 좋겠다그대로 따라 그려도 좋고 자신이 원하는 책방의 모습을 그려도 좋다가까이 산다면 책과 아이들을 직접 방문해도 된다.


중학년 이상은 마음에 들었던 동화의 뒷이야기를 이어 써보기를 추천한다자신이 원하는대로 이야기를 바꾸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다두 활동 모두 글 짓는 활동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학년 구분 없이 부모가 읽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귀로 들으며 머릿 속에서 장면을 상상해 보게 하는 거다들은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문장이나 단어를 말하게 하면 집중해서 듣게 된다단 이 활동을 할 때 들려주는 분량은 한 장면이나 하나의 사건이 들어간 짧은 부분을 사용해야 한다.


이 책에는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책을 읽고 싶어하는 강아지와 몸이 바뀌는 이야기책방과 책 속에서 나온 먼지를 모아 책을 쓰는 쥐동화마다 배경처럼 자리를 차지하는 고양이까지 어린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마지막 동화 동백나무 책방은 마당에 있는 동백나무가 주인에게 말을 걸고 씨앗을 주는데 실제 책과 아이들 책방 마당에 있는 나무라고 한다서점 운영이 어려워 지친 주인에게 동백나무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알게 된 게 있어책방에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따는 것그 이야기 속에는 책방도 있고 나도 있었어이야기에 나오는 기분나쁘지 않았어아니참 좋았어나만 그런 게 아니라 마당 식구들도 다 그랬나봐이제 이곳은 두 사람만의 책방이 아니야여기 오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이곳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기로 했어.”


그리고 다음날 힘센 지킴이들이 책방으로 우르르 들어온다. 1학년 꼬맹이들이책방을 지켜줄 어린이가 있고 동화를 만드는 어른들이 있는 한 자꾸자꾸 책방에 오고 싶어질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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