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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 - 심리학의 눈으로 보는 두 나라 이야기
한민 지음 / 부키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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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은 문화심리학자 한민씨의 신간이다. 2년 전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를 인상 깊게 읽어서 이번 신간 서평단에 신청하게 되었다.<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책이다. 문화심리학자이므로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다루고 있다.
이번 책 역시 흥미롭게 읽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문화를 위시한 여러 분야에서 한마디로 잘나가고 있는데 비해 일본은 점점 쭈그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2019년 일본의 무역제재를 가뿐히 넘겼다. 2020년 이후 코로나를 대처하는 일본정부의 무능함을 보니 좀 이상했고, 일본인들은 아베나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일어가 안 되니 일일이 일본 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나의 이런 궁금증을 저자가 해결해주었다.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의 차이를 비교하고, 2부는 민족의 특징적인 면을 비교한다. 3부는 양국 문화에 숨어있는 특이점을, 4부에서는 심층적인 심리를 비교한다. 저자는 일본을 전공하거나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심리학에 기반하여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고 다양한 일본 저자들의 책을 인용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1부 첫 챕터의 제목부터 시선을 끈다.
“먹방의 나라 한국 VS 야동의 나라 일본”
성생활 만족도가 낮다는 일본에서 성산업이 아직 활발한 이유가 뭘까? 저자는 일본인의 욕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싶은 욕구가 성으로 표현되는데 일본인에게 가장 문화적으로 보편화된 방식인 엿보기로 나타난다 는 것이다. 일본인은 자신과 타인, 내부와 외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타인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다. 일본에 몰래카메라 형식의 예능이 많고 카메라 기술이 발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즉 야동은 교류와 엿보기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반면 한국인에게는 밥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고마울 때 “밥 한 번 살게.”라고 하고, 이성에게 작업을 걸 때도 “저랑 밥 한 번 드실래요?”, 친구가 아프면 “밥 꼭 챙겨 먹어.”라고 할 정도다. 밥을 함께 먹는 행위는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 용서하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혼밥, 혼술의 시대이고 1인 가구가 늘어나도 함께 밥을 먹으며 충족해왔던 욕구가 사라진 건 아니다. 저자는 먹방이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가장 한국적으로 드러난 문화현상으로 본다. 즉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피드백하며 함께 뭔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사회적 교류의 방법이다.
제목과 같은 챕터는 2부에 나온다. 한국인의 선 넘기는 오지라퍼들에게서 볼 수 있다. 저자는 오지랖의 긍정적 사례로 2001년 도쿄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이수현씨를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이유는 남이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치 않는 참견은 사생활 침해나 갑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을 지지해 줄 버팀목이 될 수도 있고, 공통의 문제에 대처하는 사회적 연대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IMF 금모으기나 태안 유조선 사고, 코로나 사태 등 우리에게는 ‘국난극복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인들은 참견을 극도로 꺼리는데 그 이유는 민폐를 저지르지 않으려는 동기에서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민폐라고 인식하는 것은 물론, 국가나 사회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도 자신이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 할머니는 자신을 구조해준 구조대원에게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또한 일본인들은 입은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것을 온가에시라고 한다. (온:恩 태어나면서 주군, 천황, 국가, 일반적인 사회와 타인들의 존재로부터 받게 되는 사회적 의무를 뜻함) 따라서 일본인은 애초에 남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일 자체를 피하는 쪽으로 행동한다.
일본인은 수동적이고 변화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3부에서 찾았다.
“아버지면 죽이고 보는 한국 VS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 일본”이다. 정신역동이론에서 부친살해는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근대는 아버지를 죽인 자식들이 새롭게 연 시대를 의미하는데 일본은 한 번도 기존의 권위를 타파하고 새 질서를 구축한 적이 없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일본을 연 것은 기존 지배계급이었고 그들은 과거의 권위 위에서 새 시대를 원했다. 그 후손들은 아버지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2차 대전 패망 후 미군정에 의해 사회 개혁이 이루어질 때도 천황을 비롯한 기존의 권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결국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의 주체로 서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안부, 강제 징용 등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오히려 피해자로서 자신들의 모습만을 부각시키려는 행태는 일본이 주체로서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객체로서 자신들이 당한 일에만 민감한 경험 방식 때문인 것이다.
p. 271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 자식들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강하고 잘난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편안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위에 의존해 버릇한 자식은 자신의 앞날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의지를 갖기 힘든 법이지요.
이에 비해 한국현대사는 계속해서 새로운 아버지가 나타나고 자식들은 그 아버지를 죽이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일제 강점기동안 독립 투쟁, 전쟁 분단이후 사상투쟁, 독재와 싸웠던 4.19, 5.18, 6월 항쟁, 2016년 촛불까지 우리의 역사는 부당하게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한 자들을 물리치고 주체로 서기 위한 자식들의 투쟁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워낙 빠른 시간 내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다보니 그만큼 해결해야할 문제도 많은 것이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숙제이긴 하다.
이 책에서 짚어주는 비교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 딴죽을 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린 너무 정이 많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많아서 자꾸 참견을 한다지만 실제 내 주위에서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남 참견하는 거 싫어한다. 일본사람들이 저자가 말하는 대로 다 저럴까 의심할 수도 있겠다. 이에 저자는 이렇게 이해하고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인간의 종種적 보편성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적 상대성을 만들어 내고 문화적 상대성은 개개인의 성향 및 생물학적 보편성과 만나 무수한 개별성을 만들어 냅니다. 개별성 차원에서 보자면 인간 개개인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모두 똑같다’나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사람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 전제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죠. 우리가 진정 가져야할 의문은 ‘보편성을 가지고 잇는 사람들에게서 왜 차이가 나타나는가’ ‘개개인의 행동들에서 왜 특정한 행동의 패턴이 관찰되는가’같은 것들입니다.
문화는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그 환경에서 계속해서 잘 살아가려면 이러한 것들을 후속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교육을 통해 후속 세대는 해당 문화에서의 요구에 부응하는 공통적인 삶의 방식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문화의 유형입니다. 저는 바로 이 관점, 상대성의 차원에서 문화의 유형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인간의 행동은 보편성의 틀 안에서 규정되지만 문화에 따른 상대성으로 구분되고 개개인은 개별적 존재지만 문화는 사람들의 행동을 패턴화시키니까요.
일본 여행을 언제 갈지도 모르겠고, 일본인을 만날 일도 없는데 이 책은 일본인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의 문화적 특징과 심리를 비교하며 설명해주어 더 재미있게 읽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