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
강물결 지음 / 메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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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래로부터 장수를 꿈꿨다. 진시황은 오래 살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고 애썼고, 현대는 안티에이징 산업이 활황이다.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자본주의는 십분 이용하고 있다. 누군가는 돈을 쓰고 누군가는 그 돈을 벌어들인다.


이젠 백세시대를 너머 12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만약에 죽지 않고 계속 계속 산다면 어떨까? 직관적으로 죽지 않는다? 건 쫌 아닌 듯...’ 할 것이다. 만약 죽지 않고 계속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 미래 언젠가는 인간의 죽음을 계속 유예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향연>의 작가 강물결씨도 인간이 죽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같은 상상으로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싶다. 고즈넉이엔티의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 <향연>에는 작가의 말이 없어서 작가의 의도를 알 수는 없었다.


아무리 미래가 배경이고 상상력이 기반이라지만 누구나 죽지 않는 건 아니다. 작가는 자비인지 고난인지 모를 기회를 사형수에게 주었다. 중범죄 사형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재생인간이 된다. 사형 집행 후 자신의 뇌에 아미토(유도 전능 줄기세포에서 인간 체세포에 존재하는 핵지도를 결합한 것으로, 주입된 지도에 맞게 배아 단계부터 스스로 분화하는 일종의 씨앗)로 재배한 신체가 이식되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재생인간의 굴레는 죽을 수 없고 평생 감시당하며 노동을 하며 살아야 한다.


재생 인간도 두 종류로 나뉜다. 무죄의 재생인간은 죄를 짓지 않는 한, 계속 일하며 살아가야 한다. 만약 범죄를 저지르면 형량만큼 복역한 후 다시 일해야 하지만 그 죄가 무기징역이나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라면 콜로니 행판결이 내려진다. 형장 콜로니는 중죄를 지은 유죄의 재생인간을 미립자로 완전히 소거하기 전에 머무는 최종의 장소다. 주인공 유진은 콜로니21에서 일한다. 유진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자를 죽여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유진이 하는 일은 유죄의 재생인간의 죽음을 다룬다. 그런 죽음을 환원이라고 부른다. 환원을 희망하는 재소자를 배웅하는 마지막 잔치가 향연이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기본 뼈대다. 재생인간으로 태어난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뇌는 그대로인 채 몸만 바뀌었기 때문이다. 노동만 하고 사는 그들이 행복해 보일 리 없다.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어두운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미래의 신기술은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소설 속 미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러면 작가가 이런 소재로 소설을 쓴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에서 환원은 중요한 의식이다. 주인공 유진도 재소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배려가 환원이라고 생각한다. 고통 없이 생명을 끊어주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히 죽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 삶에 의욕이 없는데 원치 않는 목숨이 붙어있다면? 불행일 것이다. 재소자들이 자살을 택하는 방법에 SF적 상상력이 동원되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오래 살기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삶을 종결하기를 원한다. 아쉽게도 그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없다. 종교적으로는 신의 뜻이라 하고, 주역에서는 사주에 따라 정해져 있다고도 한다. 우리가 원해서 이 세상에 오지 않았듯 사라지는 것 역시 원하는 대로 가능하지 않다. 기억을 간직한 채 새로운 몸이 주어져 계속 산다는 것을 반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현실에서 내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존엄사가 떠오른다. 안락사 혹은 존엄사는 자살과는 달리 인간답게 죽고 싶다는 의지다.


책으로 다시 돌아가면 죄인은 영원히 노동만 하고 살아야 하는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없나? 죽음을 선택하려는 이들이 있다. 또한 그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세력과 그 죽음을 도와주려는 이가 있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연에 집중하면 그저 사람 사는 평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살인이 주 내용이긴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존엄하지 못한 상태로 생명을 연명하느니 자신의 삶을 종결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라는 메멘토 모리는, 반드시 죽을 것이니 겸손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령도 들어있는 게 아닐까. 그러기 위해 건강한 식사는 필수다. 환원의 마지막 행사인 향연이 식사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죽을 텐데 뭘 굳이 먹나? 하지만 마지막 식사의 메뉴가 자신의 추억이 깃든 먹고 싶은 음식인 것은 죽기 전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굴 만나면 뭐 먹을까?부터 생각하고 여행을 가서도 맛집을 찾는다. 맛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도 중요하다. 죽기 전 인간의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채우고 함께 했던 이들을 기억하는 것을, 작가는 향연이라고 이름 붙였다.


수수기장밥, 근대된장국, 파래무침과 콩나물무침, 두부조림과 애호박볶음, 배추김치


위는 유진의 향연 식단이었다. 엄마가 해준 평범한 집밥 같다. 그리고 음악은 말러의 교향곡 2번이 연주된다. 이 곡의 부제는 부활이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그해 여름엔 죽음이 속출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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