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는 아무나 보나 - 어쩌다 할머니가 된 박 여사의 시끌벅적 노년 적응기
박경희 지음 / 플로베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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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제목에 낚였다..

<손주는 아무나 보나>는, 손주 돌봐주며 겪는 좌충우돌 사연일줄 알았다.

그런데 아녔다!

아니, 어쩜 맞다!

아니다!!

노년을 맞아 어쩌다보니 조부모가 되어(이런 과정은 어서 오라고 환영하지 않아도 어느새 그 처지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여 흠칫 놀라게 된다) 생에 전환기를 맞은 이들의 면면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그 모습 속에는 첫손주를 맞은 환희의 순간도 있지만 황혼 육아에 인생을 저당잡혀 더 늙고 병들었다며 한탄하는 모습도 공존한다.

그렇다면 그 처지, 그 나이인 사람만 읽어야겠다?

그렇다!

아니, 아니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읽으며 폭풍공감할 수도 있겠고, 그 상황을 맞을 사람도, 이미 지나간 사람도 읽으면 고개 끄덕일 내용들이다. 오히려 자식의 양육을 부모님에게 맡긴 이들이 꼭 읽어보면 좋겠다. 부모에게 직접 듣지는 않더라도 책을 통해 어른들이 얼마나 힘든지 확인하고 최소한의 경제적 보답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이책을 읽었나?

실은 지난번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했던 낭독극의 반응이 좋아 다른 노인복지관에서 낭독극 의뢰가 들어왔는데 원고로 사용할 책을 찾다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책을 읽다보니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 노년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부제도 '어쩌다 할머니가 된 박여사의 시끌벅적 노년적응기'라고 되어있다. 작가 박경희씨는 1960년생으로 아직 할머니라 부르기엔 어린? 나이다. 젊었을때 방송작가로 활동했고 소설과 수필도 썼으며 지금도 책관련 강의를 다니고 있다. 어쩐지... 작가니까 이런 책도 낼 수 있는 거였다. 작가 소개도 제대로 안 읽고 급한 마음에 본문을 읽다보니 배우 김혜자씨와의 인연이 나오고 방송작가 시절 이야기도 나와 책날개의 소개를 다시 읽어봤다.

책에서 만난 작가의 모습은 아름다운 분이었다. 닮고 싶은 인생 선배 같다고나 할까. 첫 손주 아민이를 만났을 때의 황홀함, 고된 시간이었을 게 분명한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따뜻한 눈길, 이젠 더욱 여유로워진 마음,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습까지.

노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뉘앙스는 세대갈등의 원인제공자로서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이 책은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혐오의 대상이 된 노인들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할머니의 표상같아 따라해봐야겠다고 책귀를 접어둔 게 여럿이다.

나도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연년생으로 두 아들을 두었고 독박육아를 하며 사회생활을 했다. 지나고보니 너무나 여유없게 애들을 키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마지막 씬을 보면서, 후회와 미안함에 눈물 흘렸었다. 작가처럼 나이 들어서도 사회활동을 하고 싶고 손주와 같이할 소풍계획을 세우며 설레고 싶다.

친구들과의 수다가 떠오른다. 나중에 자식들이 손주 데려와 좀 돌봐달라고 하면 절대 봐주지 말자며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작가가 한 경험을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울 아들이 손주를 데려온다면 선뜻 안아올릴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예상 자체가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애는 이미 비혼주의자 선언을 했고, 큰 애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서울에 살고 있다.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시대를 사는 아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일수도 있어 가만히 있어야겠다 싶기도 하다. 어쩜 내게 그런 기회는 요원한 일일지도...

그나저나 어떤 꼭지를 발췌해서 낭독극에 올릴지 다시 읽어봐야겠다. 아직 미확정 상태이긴 하나 작가님이 반대하진 않겠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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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 정작 우리만 몰랐던 한국인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
한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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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행복 관련 책들을 꽤 읽어왔다.

대부분 심리학자의 책들이었다.

황상민, 김정운, 최인철, 서은국, 김혜남, 김경일, 하지현등등...

오오~ 따져보니 제법 많다!

열거한 이들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러 권 읽었고 많이 웃었던 책의 저자는 김정운인데, 며칠 전 경험한 내 사례에 부합하는 책은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이었다. 그 사례가 이 글에 계속 언급될 행복이란 단어(한국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뜻)에 딱 떨어지는 건 아니다. 잠시의 만족감에 해당된다.


그날은 영상 편집 교육을 받으며 하루 종일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다 자기비하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못난 인간! 못난 인간!!을 되뇌며. 그러다 늦은 점심으로 김밥 한 줄을 먹고 난 후에 부정모드에서 긍정모드로 급 전환되었다. 신체에 무슨 스위치 같은 게 있는 줄 알았다. <행복의 기원>에서 강조했던, 인간은 100% 동물이라던 말이 내게 그토록 딱 맞아떨어질 날이 올 줄 몰랐고, 그래서 놀랐다. 몇 년 전 그 책을 읽으며 고개 끄덕였으나 시간이 지나니 다 까먹고 또 원래대로 돌아갔던 것이다. 나는 동물보다 고등한 이성을 가진 인간이란 존재이며 먹는 것에 연연하는 것은 너무나 동물적 행위라고 폄하하며 살다가 그런 경험을 하고 보니, <행복의 기원>이 딱 떠올랐다. 그리고 때마침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를 읽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인가.

 

저자 한민씨는 지금,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를 밝혀내는 데 관심이 많고 남들이 해온 이야기보다는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공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행복이란 주제를 다룬 책들에서 주장한 내용들과 시각이 달랐고, 내가 했던 생각과도 다른 관점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에 읽었던 책들의 내용이 알콜성분처럼 빠르게 휘발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행복은 나의 몫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행복은 나의 삶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리고 행복을 위한 과정 중에 경험되는 수많은 고난과 고통은, 불행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제목에 딱 부합한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행복지수는 왜 늘 세계 최하위로 조사되는지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유를 찾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짓은 그만두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고 진정한 내 행복을 찾을 것인가? 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저자가 논증한 순서는 이러하다.

 

1. 미국식 행복과 한국식 행복의 차이

2. 열심히 사는데 왜 힘들기만 할까?

3. ‘소확행욜로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4.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5. 우리는 이미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다

 

책 제목의 대담성에 비해 목차의 제목들은 예측가능할 정도로 평범하다. 그럴만도 하다.

행복해지는 비밀 같은 건 없다.”처럼 대부분의 행복 연구자들 입에서 나오는 래퍼토리는 비슷하고 평범하다, “공부에 왕도는 없다!” 만큼이나.

 

그럼 각 장에서 내가 무릎을 탁 친 내용이나, 그간 내가 해온 생각에 돌을 던진 내용들을 위주를 발췌해 보려고 한다.

 

1장에서 고른 문장은 이것이다.

 

조건은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대기업에 취직하면? 공무원이 되면?

과연 행복해 지나? 행복할 법한 조건들은 그것을 성취했을 당시에 느끼는 행복감이지 그것이 달성되었다고 행복감이 평생을 가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상태이며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한 그 당시 며칠간은 행복하다고 느끼겠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병원에 가봐야 한다. 두근거림이 몇 주간 지속된다면 심장에 이상에 있는 것, 조증이 오래되면 정신과에 갈 필요가 있다는 것~~ㅎㅎ

 

인생의 본질은 삶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

 

이 문장은 나도 좋아하는 표현이다. 지질하고 구질구질해도 자살하지 않는 이상 삶은 계속되며, 또 살아가야만 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인생 최대의 과업인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는데 매 순간 행복할 순 없다.

 

1장에서 놀랐던 부분은 이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경쟁에서의 패배가 곧 생존가능성의 박탈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나친 경쟁의 근본원인인 인구밀도를 줄이는 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그것이 출산율 감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행복하기 위해 출산하지 않는다!! 신박한 주장이다.


그동안 저명 학자들의 출산율 관련 주장은 대부분 국가경쟁력을 위해 인구감소를 막아야 한다든가 요즘 젊은 여성들이 이기적이라서 출산을 하지 않는다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주장들을 접할 때마다 여성으로서 화가 났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여성들에게 출산하라고 협박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출산장려정책에는 코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지만, 저러면 저럴수록 더 안 낳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 현상에 대한 평가로, 자신의 행복을 위한 한국인들의 전략적 선택이며 생존보다 출산이 가치롭다고 생각될 때 비로소 출산율이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2장의 제목은 열심히 사는데 왜 힘들기만 할까? 이고 소제목들을 주욱 훑어봐도 부정적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한국인들의 특징을 장점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2장을 읽다보니 세상 불편한 것 투성이였던 내 뾰족한 부분이 두루뭉술하게 연마되는 느낌을 받았다. 프로 불편러들의 긍정적인 면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타인의 공감을 받으려면 그리고 타인의 공감을 바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얼마나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느냐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나 혼자 느끼는 불편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이 아무리 옳은 신념에서 비롯된 불편감이라 해도.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찾아가려는 노력과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줄이려는 지혜가 뒷받침된다면 프로 불편러들의 불편감은 사회를 변혁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3장에서 내 고정관념을 깨뜨려준 부분은 자존감과 자존심에 관련된 내용이다. 이 생각이 어쩌다 고정관념이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시작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존심은 부정적 의미로 자존감은 긍정적으로 내 의식에 자리잡았다.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통용되면서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거의 유행어가 되기에 이르렀다. 자존감 관련 서적들도 우후죽순격으로 출간되었다. 이러한 유행 아닌 유행에 작가는 시각교정을 권유한다. 한국문화에서 자존심이 정신건강과 행복에 있어 매우 중요함에도 자존심이 나쁘다는 인식 때문에 자존심, 자존감과 관련된 시각이 굴절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자존심 때문에 부정적인 일까지 하는 이유는 그만큼 자존심이 갖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존심을 지켜야겠다는 동기가 있으니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태도까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개인적 성숙이나 여러 상황적 조건에 따른 편차가 있다. 자존심을 열등감의 발로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지만 성숙한 내면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데 사용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는 것이다. … …

세상에는 돈도 안되고 남이 알아주지도 않지만 꼿꼿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내가 나의 길을 가고 있다는 자존심일 것이다. 먹고살기가 어려워도 내가 가진 기술을 이어가겠다는 장인의 자존심, 초가삼간에 살면서도 고관대작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선비의 자존심, 감옥에 갈지라도 펜을 굽히지 않는 언론인의 자존심, 평생을 시간강사로 떠돌지언정 자신의 학문적 정체성을 지키는 학자의 자존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드는 이들은 일신의 안위와 눈앞의 향락을 쫓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자존심을 지키는 이들이다. 현재 한국이 헬조선이라면 그 이유는 선비들이, 언론인들이, 학자들이 자존심을 내팽겨쳤기 때문은 아닐까?“ p.173

 

리뷰를 쓰면서 책 내용을 길게 인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 내용을 길게 인용을 하는 이유는 작금의 조국사태와 관련된 언론과 권력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키려는 자존심은 과연 무엇인가? 자신들이 정해놓은 결론에 부합하는 논리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가. 위 내용을 읽다보니,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심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하려는 그 짓거리들은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아니라 곤조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곤조라는 단어가 일본어일지라도 써야겠다. 검찰과 국회의원과 언론의 작당에 자존심이라는 단어는 아깝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내가 걷는 내 갈 길은 내 자존심인가? 한발한발 내 딛을 때마다 두리번거리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의기소침해지기도, 한없이 비굴해지기도 하는 이런 소심함을 자존심이라 불러도 되나?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덕분이다. 그간 자존심이라는 부정적 뉘앙스의 단어를 긍정적 언어로 재정립하게 해주었으니까. 나는 언론인같은 전문직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독서인이다. 그런 내가 나 자신을 지키고, 더 나은 지점을 향하게 하는 힘으로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좋다.

 

저자는 우리가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 게 아니라 이미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행복이 일시적인 기분좋음이 아니라 우리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들을 하루하루 맛보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이 일시적 기분좋음이 아니라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허물없이 사용하는 것에 주저해왔다. 이제 내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까? , 러셀을 인용한 저자의 주장은 이미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취미생활 같은 것, 사소한 관심으로 해오던 것들 말이다. 그러나 그 행복의 유효기간을 늘이려면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려고 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혼자 책을 읽고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독서모임을 만들어 타인과 교류하는 것이고, 악기가 취미라면 밴드를 만들어 타인과 뭔가를 나누는 상호작용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 결과로 세상에 긍정적 영향이 생긴다면 개인의 행복감이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한 몫하게 된다. , 그런 거 해봤는데 사람들 모이면 술먹고, 뒷담까고, 싸우기만 하더라...며 딴지거는 사람도 있을 줄 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분명 기쁘고 좋았던 일도 같이 있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울 집 막내 고양이 토르가 다가와 방해 아닌 방해를 했다.

 

 

 

 

노트북 귀퉁이를 물고 자판 위에 올라오는 행동들을 저지하며 내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이제 나는 행복이라고 부르겠다. 그래서 글을 쓰는 시간이 지체되는 단점은 이 귀여운 녀석과 잠시 놀아주고 사진으로 담아 리뷰에 써먹을 수 있게 되는 더 많은 장점과 상쇄된다. 물론 자판에 발을 얹어 전원이 나가거나 글이 딜리트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저장,저장,저장하며 쓰느라 다행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내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해준 이 심리학자, 한민씨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한민이라는 이름이 내가 아는 심리학자들의 이름 맨 앞에 오게 되었다. 한민씨도 고마워할까?ㅎㅎㅎ

 

 

*** 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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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천사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4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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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월리스라는 작가는 이번 책, <공포의 천사>로 처음 만났다. 1875년에 태어나 1932년에 사망했고 20세기 스릴러물 작가 중 가장 다작한 작가이며 킹콩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거의 100여년 전 소설이니 오늘날의 상황이나 관점에 대입한다면 허술한 점이 꽤 있다. 이를테면 대놓고 드러나는 범인의 행각, 백치미 한껏 드러내는 여자 주인공, 그 대척점에 서있는 아름다운 악녀 캐릭터에, 흠을 잡으려면 잡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정도의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이었다면 당시에는 꽤 인기있었을 것도 같다. 요즘은 영화든 추리소설이든 예기치 못한 사건 전개와 극적 반전에 노출이 많이 되어있어 이 소설을 심심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래도 거의 1세기 전에 쓰여진 소설이니 까방권 한 장 주고, 가독성 좋은 것에 한 장 더 주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물욕에 가득찬 여자가 온갖 흉계를 꾸며 남의 돈을 가로채려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이 뼈대에 그녀의 행각들 하나하나를 살로 붙이면 소설이 된다. 그렇게 하면 책을 읽어보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심각한 스포일러가 되어 급 관심 추락으로 이어질 것 같아 생략한다. 이 소설은 1세기가 지나 처음 수입 번역된 책이라 어떤 독자는 공감과 감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비판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층위의 감상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1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한 논쟁거리에 대해 쓰려고 한다.

 

변호사 잭 글로버가 암살에 대해 이야기하자, 인간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지나친 순진녀 리디아는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한다. 그러자 잭 글로버는 이렇게 말한다.

p.91

이천년 동안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살인 본능은 여전히 강하죠. 그렇지 않다면 전쟁은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냉혹한 살인을 한 번이라도 저지른 사람이 백 번을 저지르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잭 글로버의 주장을 오늘날 벌어지는 사건과 동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쇄살인범들의 살인 이유가 워낙 다양하고, 미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총기 사건의 경우도 총기규제와 로비집단과의 알력이 기저에 깔려있는 문제라서 단순화 할 수는 없다. 또한 성선설과 성악설의 이분법적 논리에 대입시키기에도 마뜩찮다. 그러나 살인을 한 번 한 후에 두 번, 세 번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실행되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보아도 그렇고 최근에 일어난 고유정씨의 살인사건을 보면 인간의 잔혹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에게 거슬린다 싶은 것은 제거하려 한다. 그것이 사람이더라도 말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 ‘진 브리거랜드’의 경우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가차없이 제거한다.


 

그런 쪽으로는 머리도 비상하게 돌아간다. 인간의 자기합리화가 극대화 되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아래와 같은 진의 대사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p.164

 “인간을 죽이는 것은 베이컨을 얻기 위해 돼지 목을 베는 것보다 더 잔인할 게 없어요.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요리 중에 고의적 살생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요? …… 무언가를 죽이는 행위는 편의의 문제예요. 전쟁이라 부르면 괜찮게 들리고, 살인이라 부르면 끔찍하게 들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제게 그건 그냥 죽이는 행위일 뿐이에요. 아버지가 누군가를 죽인 것을 들키면 사람들은 아버지를 죽일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정당한 처사라고 말하겠지요. 인간 삶이 신성하다는 말 따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이 만들어낸 슬로건에 불과해요.”


앞의 잭 글로버 대사, 살인의 본능에 대한 주장에 진이 뒷받침 문장을 쓴 것처럼 딱 떨어지는 내용이다. 잭은 진의 본성을 알아본 것이고 그에 걸맞는 진의 생각을 작가가 이렇게 구성한 듯 하다.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진 진의 물욕이 어떠한지는 위 대사 다음에 연결되는 대사로 확인 가능하다.

 

저는 돈이 없는 삶이 두려워요. 저는 냉담하고 심술궂은 고용주를 위해 일해야 하는 긴 나날들이 두려워요. 붐비는 기차에 손잡이를 간신히 잡고 서서 초라한 내 방이 있는, 전날 먹다 남은 식은 양고기가 기다리는 그런 집에 돌아오는 게 두려워요. 아침에 일어나서 손수 침대를 정리하고 손수건과 블라우스를 직접 빨고, 작년에 유행한 모자를 수선하여 올해 유행하는 모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처지가 될까 봐 두려워요. 가난한 남편과 그 밑에 줄줄이 태어난 아이들, 무능한 하녀와 함께, 아니 그마저도 없이 집안일을 하는 것이 두려워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돈이 있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있고 그러지 못하는 삶은 죽기보다 싫은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꿈이 건물주가 되는 것이라는 얘기도 들리는 판니 돈에 대해선 그저 다다익선이다.

이 대사에서 확인 가능한 작가의 의도, 한 가지 더!

살인을 해서라도 남의 돈을 갈취해 풍요롭게 살고 싶은 사고방식을 가진 진이라는 여성을 작가는 절세미녀로 세팅했다. 이것은 여자는 예쁘면 무조건 오케이!”라는 남성들의 시각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눈에 뻔히 보이는 의심스런 행동을 일삼는 진을 보면서도 그럴 리 없다고 하는 동성인 리디아까지 그 시각에 합세하고 있다.

 

100여 년 전, 영국 작가의 시각을 오늘에 대입하여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돈에 대해, 여성을 보는 시각들이, 그리 변한 게 없다는 것은 확인했다. 그리고 막장드라마 같은 사건의 구성들이 예전 영국에서도 통한 것을 보니 욕하며 본다는 막장드라마가 참으로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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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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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의 작가, '로버트 디세이가 정의내린 여가는 이러하다.

 

여가란, 결코 물질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설사 그것이 결국엔 우리는 물론 타인에게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해도) 순전히 그 즐거움을 위해서 자유로이 선택한 것, 빈둥거리고, 깃들이고, 단장하고, 취미 활동을 하는 등 광범위한 영역을 두루 아우를 때 쓰는 단어다. 여가를 누릴 때에는 가치보다는 기교가 훨씬 중요하다. 현명하게 선택한 여가는 아무리 짧은 삶에도 깊이를 준다. 느긋하게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치열하고 유쾌하게 인간다울 수 있다. p.29

 

작가는 호주에서 러시아 문학을 연구하며 소설가, 에세이스트이다. 이 책에서 그는 바쁘다고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이 노예 상태임을 광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동안 지배계급이 부르짖은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장난에 놀아나 지배계급을 제외한 모두가 뼈 빠지게 일만하도록 만든 논리 속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여가 시간을 현명하게 활용했을 때 우리 삶에 깊이가 생기고 행복으로 가까워진다고 한다. 일과 휴식 사이에, 즉 소유와 존재 사이에 더 나은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 여가의 정의처럼 느긋하게 있음으로 가장 치열하고도 유쾌하게 인간다워질 수 있다.

 

그렇다면 게으름이라는 말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할 자유가 게으름이라고 재정의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것이든 한다는 것은 빈둥거림을 포함하여 이런 것을 말한다. 독서, 걷기, 놀이, 낮잠, 섹스, 목욕, 청소 요리, 세탁, 아무것도 하지 않기, 여행 등등.

 

, 왠지 저런 것들은 게으름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부제가,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있는 휴식법이라고 붙여 두었다.

어찌보면 게으름이라는 단어보다는 자유롭다는 말과 더 어울리는 부제라고 하겠다. 마지막에 작가는 이렇게 권유하고 있다. 시간을 주변에 흩어져 있는 물웅덩이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 말이 아주 중요하다.

 

 

이 웅덩이는 둥글고(예를 들어 낮잠은 매끈하게 둥글고 테니스도 둥글다), 저 웅덩이는 비죽비죽하며(정원 가꾸기와 새 구두를 사기 위한 쇼핑), 꽤 많은 웅덩이가 마름모꼴이며(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 어쨌든 먹어야 하니까), 더러는 사방으로 물이 가지를 뻗어간 흔적이 있다(라오스에서 보낸 휴가, 라틴어 배우기). 더러는 반짝이기도 하고(어젯밤 특별한 친구와 함께 본 <마술피리>), 더러는 잔물결이 찰랑이고(수요일의 스크래블 게임), 더러는 거울처럼 매끄럽다(이를테면 당신이 끝까지 하기로 마음먹고 바짝 주의깊게 들은 수업). 당신은 한 웅덩이에서 다른 웅덩이로 지그재그로 옮겨간다. p.294

 

 

위 내용은, 다르게 생긴 물웅덩이를 이리저리 자유롭게 옮겨다니며 주체적으로 사용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럼으로써 노예상태가 아닌 어떤 것이든 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품격 있는 휴식법이라는 것이다.

 

 

, 그럼 이제 우리의 삶을 한번 보자.

워라밸을 강조하지만 매일 시간이 없다고 허덕거리며 무너진 밸런스에 한숨 쉬고 있지는 않나?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휴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남들이 올리는 SNS속 사진들을 보며 부러워만 하고 있지 않나?

캠핑클럽속 핑클 멤버들을 보며 캠핑카나 캠핑 장소를 검색하고 있는 건 아닌가?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여가생활이라 여기며...

 

 

굳이 작가가 말하는 소설이나 영화 속의 사례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충분히 일중독이고 사회 분위기도 그래왔다. 이젠 조금씩 개인의 여가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는 말처럼 별로 놀아본 적이 없다보니 어떻게 여가를 써야할지 모르는 게 문제다. 그러다보니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여행지를 맹목적으로 방문하는 것처럼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으로 즐거운 여가를 보냈다며 만족하는 경우가 있다. 작가의 말을 따르자면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멍 때려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고 청소를 해도 좋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가 시간을 만족스럽게 보낸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품격있는 휴식법인지는 모르겠다. 작가가 인용한 내용들이 우리 정서에 바로 와닿지 않아서 책을 읽으며 폭풍 공감까지는 어려울 듯하다. 허나 지금 내게 필요한 휴식은 어떤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는 것, 자신의 시간 사용이나 라이프 패턴에 맞춰 무엇을 해볼까 고민해 봤다면 이 책의 효용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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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만남과 시간으로 태어난다 - 매일이 행복해지는 도시 만들기 아우름 39
최민아 지음 / 샘터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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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살며 도시를 떠나 본적이 없다. 아파트 생활도 20년동안 하다가 작년에 주택으로 이사왔다. 이사온 곳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읍이라서 시골 같지만 신도시라서 지하철뿐 아니라 상가도 밀집되어 있고 주위엔 주택보다 아파트 단지가 더 많다.
평생을 도시에 살았으나 어떤 도시를 만들지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저 내 사는 집에 대해서만 이런저런 고민을 했을 뿐, 그것조차 아파트 시세나 인테리어에 대한 것 정도였다.

도시학자이자 건축가 최민아씨의 책 <도시는 만남과 시간으로 태어난다>의 부제처럼 '매일이 행복해지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뭐가 있을까? 평소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이런 책을 만나 해보게 된다.

1장 시간과 기억이 담긴 공간은 따뜻하다 에서는 관광객들에게 세상 불편하기 그지 없는 도시, "파리"에 그렇게들 방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p.24~25
"파리를 걷다보면 편안함을 느낍니다. 거리 어디에나 카페나 작은 공원이 있어 언제든지 앉아 쉴 수 있고, 도시가 크지 않아 원하는 곳 어디나 걸어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건물에서는 오랜 시간이 전해주는 깊이와 품격이 느껴지고, 높지 않은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 따뜻한 느낌마저 듭니다. 차곡차곡 시간이 쌓인 모습과 그 도시의 모습을 아끼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파리는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많은 사람이 따뜻함과 편안함을느끼고 아름다운 도시라고 입을 모아 칭찬합니다."

그외 도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간과 기억이 담긴 장소는 어디일까? 작가는 학교 운동장과 도서관, 기차역, 구멍가게, 골목등을 찾아냈다. 지금은 아파트촌이 잠식해버린 공간들도 있지만 그런 공간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이 만들어낸 레트로 열풍이 우리의 기억을 끄집어내게 하고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히트 요인중 하나가 이젠 사라져버린 향수어린 공간의 기억을 되살려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인정했듯이. 공간에서 따뜻함을 느낀다는 말은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어야 함을 재확인 시켜주고 있다.

2장 길 속에 담긴 도시 는 세계 유명 길을 사례로 가져와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p.112
"걷고 싶은 길이 많은 곳, 도시 구석구석 연결하는 길이 모세혈관처럼 발달한 곳이야말로 제가 생각하는 좋은 도시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워야 하고, 동네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길. 달동네에서 볼 수 있는 좁고 작은 길처럼 다양한 길이 많은 도시가 이야깃거리가 많고 풍부한 삶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와 서울의 육조거리를,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와 서울의 서울로 7017을 비교해준다. 운전을 하며 다니든 걸어다니든 그저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데만 급급했던 나로선 길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는 장이었다.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는 길을 빨리 지나치는 게 아니라 계절과 동네를 느끼도록 해봐야겠다.

3장의 제목은 "도시는 만남을 위해 존재한다"이다. 핵가족을 너머 점점 1인가구가 많아져가고 있다. 2017년 조사를보자면 1~2인 가구 비율이 55.3%나 되고, 아파트 거주자는 60.6%라고 한다. 도시에 홀로족의 숫자가 늘어갈수록, 아파트거주자가 많을수록 만남의 공간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작가는 매력적인 도시의 주요 조건중 하나로 공원을 꼽고 있다. 파리에서 공부하는 동안 가장 좋았던 공간도 공원이었다고 한다. 도시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공원들도 좋았지만 그곳을 다양하게 이용하는 각기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보며 공원이 도시에 선사하는 마법을 보았다고 표현한다.

포르투갈의 도시 포르투에 있는 콘서트 홀 '카사 다 뮤지카'의 건축을 예로 들며 건물과 도시, 역사와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에 대한 중요성도 말해준다.

4장 "무엇이 사라지지 않을까?" 에서는 점점 인공지능을 이용한 스마트 기기를 한 몸처럼 사용하는 이 시대에, 도시는 우리에게 어떤 공간이어야 하며 스마트 도시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바르셀로나의 스마트 도시 사례를 들어 작가는, 스마트 도시의 최신 기술은 사람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환경이 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지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쪽으로 사용할 수 있다 고 했다.

결국 도시 생활이란, 첨단 기술을 사용하여 저 혼자 집콕하는 게 아니라 공원이든 극장이든 텃밭이든 개인들이 밖으로 나와 자연과 건물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그리는 것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래서 제목처럼 도시라는 공간은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써 살아 숨쉬는 곳이 된다. 도시도 사람처럼 유기체라는 것이다.

도시를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도시에서 활기차게 살아가려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공간에 모여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 이 책을 읽고 나가보면 어떨까.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 책을 읽고 집 밖을 나서보면 그 전과 다르게 보일 것이다. 아우름 시리즈는 중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어 자녀와 함께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어보면 좋다. 이번 책도 그러기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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