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 정작 우리만 몰랐던 한국인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
한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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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행복 관련 책들을 꽤 읽어왔다.

대부분 심리학자의 책들이었다.

황상민, 김정운, 최인철, 서은국, 김혜남, 김경일, 하지현등등...

오오~ 따져보니 제법 많다!

열거한 이들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러 권 읽었고 많이 웃었던 책의 저자는 김정운인데, 며칠 전 경험한 내 사례에 부합하는 책은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이었다. 그 사례가 이 글에 계속 언급될 행복이란 단어(한국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뜻)에 딱 떨어지는 건 아니다. 잠시의 만족감에 해당된다.


그날은 영상 편집 교육을 받으며 하루 종일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다 자기비하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못난 인간! 못난 인간!!을 되뇌며. 그러다 늦은 점심으로 김밥 한 줄을 먹고 난 후에 부정모드에서 긍정모드로 급 전환되었다. 신체에 무슨 스위치 같은 게 있는 줄 알았다. <행복의 기원>에서 강조했던, 인간은 100% 동물이라던 말이 내게 그토록 딱 맞아떨어질 날이 올 줄 몰랐고, 그래서 놀랐다. 몇 년 전 그 책을 읽으며 고개 끄덕였으나 시간이 지나니 다 까먹고 또 원래대로 돌아갔던 것이다. 나는 동물보다 고등한 이성을 가진 인간이란 존재이며 먹는 것에 연연하는 것은 너무나 동물적 행위라고 폄하하며 살다가 그런 경험을 하고 보니, <행복의 기원>이 딱 떠올랐다. 그리고 때마침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를 읽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인가.

 

저자 한민씨는 지금,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를 밝혀내는 데 관심이 많고 남들이 해온 이야기보다는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공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행복이란 주제를 다룬 책들에서 주장한 내용들과 시각이 달랐고, 내가 했던 생각과도 다른 관점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에 읽었던 책들의 내용이 알콜성분처럼 빠르게 휘발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행복은 나의 몫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행복은 나의 삶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리고 행복을 위한 과정 중에 경험되는 수많은 고난과 고통은, 불행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제목에 딱 부합한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행복지수는 왜 늘 세계 최하위로 조사되는지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유를 찾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짓은 그만두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고 진정한 내 행복을 찾을 것인가? 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저자가 논증한 순서는 이러하다.

 

1. 미국식 행복과 한국식 행복의 차이

2. 열심히 사는데 왜 힘들기만 할까?

3. ‘소확행욜로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4.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5. 우리는 이미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다

 

책 제목의 대담성에 비해 목차의 제목들은 예측가능할 정도로 평범하다. 그럴만도 하다.

행복해지는 비밀 같은 건 없다.”처럼 대부분의 행복 연구자들 입에서 나오는 래퍼토리는 비슷하고 평범하다, “공부에 왕도는 없다!” 만큼이나.

 

그럼 각 장에서 내가 무릎을 탁 친 내용이나, 그간 내가 해온 생각에 돌을 던진 내용들을 위주를 발췌해 보려고 한다.

 

1장에서 고른 문장은 이것이다.

 

조건은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대기업에 취직하면? 공무원이 되면?

과연 행복해 지나? 행복할 법한 조건들은 그것을 성취했을 당시에 느끼는 행복감이지 그것이 달성되었다고 행복감이 평생을 가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상태이며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한 그 당시 며칠간은 행복하다고 느끼겠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병원에 가봐야 한다. 두근거림이 몇 주간 지속된다면 심장에 이상에 있는 것, 조증이 오래되면 정신과에 갈 필요가 있다는 것~~ㅎㅎ

 

인생의 본질은 삶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

 

이 문장은 나도 좋아하는 표현이다. 지질하고 구질구질해도 자살하지 않는 이상 삶은 계속되며, 또 살아가야만 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인생 최대의 과업인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는데 매 순간 행복할 순 없다.

 

1장에서 놀랐던 부분은 이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경쟁에서의 패배가 곧 생존가능성의 박탈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나친 경쟁의 근본원인인 인구밀도를 줄이는 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그것이 출산율 감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행복하기 위해 출산하지 않는다!! 신박한 주장이다.


그동안 저명 학자들의 출산율 관련 주장은 대부분 국가경쟁력을 위해 인구감소를 막아야 한다든가 요즘 젊은 여성들이 이기적이라서 출산을 하지 않는다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주장들을 접할 때마다 여성으로서 화가 났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여성들에게 출산하라고 협박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출산장려정책에는 코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지만, 저러면 저럴수록 더 안 낳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 현상에 대한 평가로, 자신의 행복을 위한 한국인들의 전략적 선택이며 생존보다 출산이 가치롭다고 생각될 때 비로소 출산율이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2장의 제목은 열심히 사는데 왜 힘들기만 할까? 이고 소제목들을 주욱 훑어봐도 부정적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한국인들의 특징을 장점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2장을 읽다보니 세상 불편한 것 투성이였던 내 뾰족한 부분이 두루뭉술하게 연마되는 느낌을 받았다. 프로 불편러들의 긍정적인 면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타인의 공감을 받으려면 그리고 타인의 공감을 바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얼마나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느냐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나 혼자 느끼는 불편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이 아무리 옳은 신념에서 비롯된 불편감이라 해도.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찾아가려는 노력과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줄이려는 지혜가 뒷받침된다면 프로 불편러들의 불편감은 사회를 변혁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3장에서 내 고정관념을 깨뜨려준 부분은 자존감과 자존심에 관련된 내용이다. 이 생각이 어쩌다 고정관념이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시작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존심은 부정적 의미로 자존감은 긍정적으로 내 의식에 자리잡았다.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통용되면서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거의 유행어가 되기에 이르렀다. 자존감 관련 서적들도 우후죽순격으로 출간되었다. 이러한 유행 아닌 유행에 작가는 시각교정을 권유한다. 한국문화에서 자존심이 정신건강과 행복에 있어 매우 중요함에도 자존심이 나쁘다는 인식 때문에 자존심, 자존감과 관련된 시각이 굴절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자존심 때문에 부정적인 일까지 하는 이유는 그만큼 자존심이 갖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존심을 지켜야겠다는 동기가 있으니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태도까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개인적 성숙이나 여러 상황적 조건에 따른 편차가 있다. 자존심을 열등감의 발로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지만 성숙한 내면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데 사용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는 것이다. … …

세상에는 돈도 안되고 남이 알아주지도 않지만 꼿꼿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내가 나의 길을 가고 있다는 자존심일 것이다. 먹고살기가 어려워도 내가 가진 기술을 이어가겠다는 장인의 자존심, 초가삼간에 살면서도 고관대작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선비의 자존심, 감옥에 갈지라도 펜을 굽히지 않는 언론인의 자존심, 평생을 시간강사로 떠돌지언정 자신의 학문적 정체성을 지키는 학자의 자존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드는 이들은 일신의 안위와 눈앞의 향락을 쫓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자존심을 지키는 이들이다. 현재 한국이 헬조선이라면 그 이유는 선비들이, 언론인들이, 학자들이 자존심을 내팽겨쳤기 때문은 아닐까?“ p.173

 

리뷰를 쓰면서 책 내용을 길게 인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 내용을 길게 인용을 하는 이유는 작금의 조국사태와 관련된 언론과 권력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키려는 자존심은 과연 무엇인가? 자신들이 정해놓은 결론에 부합하는 논리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가. 위 내용을 읽다보니,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심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하려는 그 짓거리들은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아니라 곤조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곤조라는 단어가 일본어일지라도 써야겠다. 검찰과 국회의원과 언론의 작당에 자존심이라는 단어는 아깝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내가 걷는 내 갈 길은 내 자존심인가? 한발한발 내 딛을 때마다 두리번거리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의기소침해지기도, 한없이 비굴해지기도 하는 이런 소심함을 자존심이라 불러도 되나?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덕분이다. 그간 자존심이라는 부정적 뉘앙스의 단어를 긍정적 언어로 재정립하게 해주었으니까. 나는 언론인같은 전문직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독서인이다. 그런 내가 나 자신을 지키고, 더 나은 지점을 향하게 하는 힘으로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좋다.

 

저자는 우리가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 게 아니라 이미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행복이 일시적인 기분좋음이 아니라 우리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들을 하루하루 맛보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이 일시적 기분좋음이 아니라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허물없이 사용하는 것에 주저해왔다. 이제 내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까? , 러셀을 인용한 저자의 주장은 이미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취미생활 같은 것, 사소한 관심으로 해오던 것들 말이다. 그러나 그 행복의 유효기간을 늘이려면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려고 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혼자 책을 읽고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독서모임을 만들어 타인과 교류하는 것이고, 악기가 취미라면 밴드를 만들어 타인과 뭔가를 나누는 상호작용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 결과로 세상에 긍정적 영향이 생긴다면 개인의 행복감이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한 몫하게 된다. , 그런 거 해봤는데 사람들 모이면 술먹고, 뒷담까고, 싸우기만 하더라...며 딴지거는 사람도 있을 줄 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분명 기쁘고 좋았던 일도 같이 있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울 집 막내 고양이 토르가 다가와 방해 아닌 방해를 했다.

 

 

 

 

노트북 귀퉁이를 물고 자판 위에 올라오는 행동들을 저지하며 내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이제 나는 행복이라고 부르겠다. 그래서 글을 쓰는 시간이 지체되는 단점은 이 귀여운 녀석과 잠시 놀아주고 사진으로 담아 리뷰에 써먹을 수 있게 되는 더 많은 장점과 상쇄된다. 물론 자판에 발을 얹어 전원이 나가거나 글이 딜리트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저장,저장,저장하며 쓰느라 다행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내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해준 이 심리학자, 한민씨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한민이라는 이름이 내가 아는 심리학자들의 이름 맨 앞에 오게 되었다. 한민씨도 고마워할까?ㅎㅎㅎ

 

 

*** 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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