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천사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4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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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드거 월리스라는 작가는 이번 책, <공포의 천사>로 처음 만났다. 1875년에 태어나 1932년에 사망했고 20세기 스릴러물 작가 중 가장 다작한 작가이며 킹콩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거의 100여년 전 소설이니 오늘날의 상황이나 관점에 대입한다면 허술한 점이 꽤 있다. 이를테면 대놓고 드러나는 범인의 행각, 백치미 한껏 드러내는 여자 주인공, 그 대척점에 서있는 아름다운 악녀 캐릭터에, 흠을 잡으려면 잡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정도의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이었다면 당시에는 꽤 인기있었을 것도 같다. 요즘은 영화든 추리소설이든 예기치 못한 사건 전개와 극적 반전에 노출이 많이 되어있어 이 소설을 심심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래도 거의 1세기 전에 쓰여진 소설이니 까방권 한 장 주고, 가독성 좋은 것에 한 장 더 주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물욕에 가득찬 여자가 온갖 흉계를 꾸며 남의 돈을 가로채려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이 뼈대에 그녀의 행각들 하나하나를 살로 붙이면 소설이 된다. 그렇게 하면 책을 읽어보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심각한 스포일러가 되어 급 관심 추락으로 이어질 것 같아 생략한다. 이 소설은 1세기가 지나 처음 수입 번역된 책이라 어떤 독자는 공감과 감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비판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층위의 감상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1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한 논쟁거리에 대해 쓰려고 한다.

 

변호사 잭 글로버가 암살에 대해 이야기하자, 인간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지나친 순진녀 리디아는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한다. 그러자 잭 글로버는 이렇게 말한다.

p.91

이천년 동안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살인 본능은 여전히 강하죠. 그렇지 않다면 전쟁은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냉혹한 살인을 한 번이라도 저지른 사람이 백 번을 저지르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잭 글로버의 주장을 오늘날 벌어지는 사건과 동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쇄살인범들의 살인 이유가 워낙 다양하고, 미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총기 사건의 경우도 총기규제와 로비집단과의 알력이 기저에 깔려있는 문제라서 단순화 할 수는 없다. 또한 성선설과 성악설의 이분법적 논리에 대입시키기에도 마뜩찮다. 그러나 살인을 한 번 한 후에 두 번, 세 번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실행되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보아도 그렇고 최근에 일어난 고유정씨의 살인사건을 보면 인간의 잔혹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에게 거슬린다 싶은 것은 제거하려 한다. 그것이 사람이더라도 말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 ‘진 브리거랜드’의 경우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가차없이 제거한다.


 

그런 쪽으로는 머리도 비상하게 돌아간다. 인간의 자기합리화가 극대화 되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아래와 같은 진의 대사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p.164

 “인간을 죽이는 것은 베이컨을 얻기 위해 돼지 목을 베는 것보다 더 잔인할 게 없어요.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요리 중에 고의적 살생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요? …… 무언가를 죽이는 행위는 편의의 문제예요. 전쟁이라 부르면 괜찮게 들리고, 살인이라 부르면 끔찍하게 들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제게 그건 그냥 죽이는 행위일 뿐이에요. 아버지가 누군가를 죽인 것을 들키면 사람들은 아버지를 죽일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정당한 처사라고 말하겠지요. 인간 삶이 신성하다는 말 따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이 만들어낸 슬로건에 불과해요.”


앞의 잭 글로버 대사, 살인의 본능에 대한 주장에 진이 뒷받침 문장을 쓴 것처럼 딱 떨어지는 내용이다. 잭은 진의 본성을 알아본 것이고 그에 걸맞는 진의 생각을 작가가 이렇게 구성한 듯 하다.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진 진의 물욕이 어떠한지는 위 대사 다음에 연결되는 대사로 확인 가능하다.

 

저는 돈이 없는 삶이 두려워요. 저는 냉담하고 심술궂은 고용주를 위해 일해야 하는 긴 나날들이 두려워요. 붐비는 기차에 손잡이를 간신히 잡고 서서 초라한 내 방이 있는, 전날 먹다 남은 식은 양고기가 기다리는 그런 집에 돌아오는 게 두려워요. 아침에 일어나서 손수 침대를 정리하고 손수건과 블라우스를 직접 빨고, 작년에 유행한 모자를 수선하여 올해 유행하는 모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처지가 될까 봐 두려워요. 가난한 남편과 그 밑에 줄줄이 태어난 아이들, 무능한 하녀와 함께, 아니 그마저도 없이 집안일을 하는 것이 두려워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돈이 있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있고 그러지 못하는 삶은 죽기보다 싫은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꿈이 건물주가 되는 것이라는 얘기도 들리는 판니 돈에 대해선 그저 다다익선이다.

이 대사에서 확인 가능한 작가의 의도, 한 가지 더!

살인을 해서라도 남의 돈을 갈취해 풍요롭게 살고 싶은 사고방식을 가진 진이라는 여성을 작가는 절세미녀로 세팅했다. 이것은 여자는 예쁘면 무조건 오케이!”라는 남성들의 시각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눈에 뻔히 보이는 의심스런 행동을 일삼는 진을 보면서도 그럴 리 없다고 하는 동성인 리디아까지 그 시각에 합세하고 있다.

 

100여 년 전, 영국 작가의 시각을 오늘에 대입하여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돈에 대해, 여성을 보는 시각들이, 그리 변한 게 없다는 것은 확인했다. 그리고 막장드라마 같은 사건의 구성들이 예전 영국에서도 통한 것을 보니 욕하며 본다는 막장드라마가 참으로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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