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사는 숲 낮은산 작은숲 21
임어진 지음, 홍선주 그림 / 낮은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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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오랜 시간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아주 먼 공간적 차이가 있음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이야기 전하는 것을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힘이 인류 지속의 원동력이었을 것으로 예상한 철학자도 있다. 인간은 입으로 전달하던 이야기를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더 멀리 퍼지게 했고, 그것은 오늘날 드라마나 영화라는 영상장르로 재현되어 즐기고 있다.

 

이야기를 문학이라는 장르로 한정해보자. 문학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인간에게 상상력이 없다면 장르화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있다. 그렇기에 문학 안에는 자유가 있다. 원하는 대로 상상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 그런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어떨까?

 

동화 <이야기가 사는 숲>은 이런 상황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먼 옛날 어느 나라에는 이야기가 사람 모습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그 나라의 왕과 왕비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기를 낳았는데 사내아이였고 이름을 해마루라고 지었다. 신하들의 덕담을 듣고 기분이 좋았던 왕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역관이었다.

 

열다섯 살이 되면 왕자님은 장차... 이 세상 이야기의 수호자가 될 것입니다.”

 

이야기 따위를 수호할 자식은 바라지 않는다며 왕은 자신의 나라에서 이야기를 모두 쫓아내라고 지시한다. 왕자가 훌륭한 통치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이야기가 사라진 후 웃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이야기가 없어져서 이렇게 되었다고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사라진 이야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제목처럼 이야기는 숲으로 갔다. 왕자 해마루의 열다섯 번째 생일 날, 해마루는 노루를 쫓다가 이야기 숲으로 들어가게 되고 여기서부터 환타지가 시작된다. 해마루는 숲에서 말을 걸어오는 나무들을 만나는데 왕에게 쫓겨난 이야기들이 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마루는 이야기가 뭔지도 모른다는 사실! 노루로 변해 해마루를 유인했던 달우물은 역관과 숲에서 살고 있었고 해마루에게 이야기와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해마루는 숲 속 나무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매력에 흠뻑 빠진다. “나무 아이이야기와 노루와 왕자이야기가 은유하는 것이 자신과 달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늘 피리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p.92

이야기 속의 소년처럼 사람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들 같았다. 이룰 수 없는 걸 간절히 바라고, 보이지 않는 것에도 목숨을 거는 게 사람이다. 해마루는 자신도 지금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언제 다 들을 수 있을지,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들에 둘러싸여 미련한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이야기를 다 듣겠다고...

 

 

오랜 시간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마루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동안은 전쟁을 해서라도 땅을 빼앗아 나라를 크게 키워야겠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라를 이루는 것은 그저 땅덩어리가 아니라 거기에 붙박고 사는 사람과 그 많은 목숨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게 자신이 이야기의 수호자가 되어야하는 이유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해마루가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왕은 아들을 찾기 위해 숲을 없애려고 했다. 나무를 베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해마루는 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왕에게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겠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돌려주겠어요. 아버지에게 두 번이나 버림받은 이야기를 살려 낼거예요. 이야기는 사람들 속에서 비로소 제구실을 하고 또 그만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테니까요. 쓰러진 나무들, 그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어요.”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은 숲에 쓰러진 나무로 이야기책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나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오래오래 남기겠다는 해마루의 결심은 책으로 남아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이 동화는 이야기의 영속성을 소재로 한다.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재미와 활력을 주는 것인지, 또 그것이 계속 전해져야만 하는 이유를 말한다. 이야기가 숨은 곳이 나무였고 그 나무가 책이 되어 다시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이 동화를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면 짚어주어야 할 부분이다. 책의 역사를 백과사전식 설명보다 이렇게 문학적으로 들려줄 때 이야기의 맛과 중요성을 더 재미있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미있는 독후활동으로 연결하면 좋겠다. 아이들이 직접 이야기를 지어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저학년이라면 말로만 이야기를 지어내도 괜찮다. 어른이 재미있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술술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혹시 말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한 컷의 그림을 그리게 한 후 그 그림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지어보도록 해도 좋다. 상상화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의 경우 책의 삽화를 보고 따라 그리도록 해도 된다. 이 책의 삽화는 글과 잘 어울리면서도 다양한 그림 기법을 사용해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살려주고 있다.

 

고학년은 자신이 상상한 내용으로 짧은 동화 쓰기를 해보면 좋다. 동화라고 하면 어렵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 이야기부터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까지 대부분 아이들이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것들임을 상기시켜주면 된다. 구전되는 이야기의 특성과 함께 편집의 공통점을 알려주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에 부담감을 덜어주면 좋다.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쁨과 서로 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맛보는 재미는 문학의 순기능을 직접 경험해보는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종이책보다 영상물을 더 재미있어 하며 직접 동영상을 만들기까지 하는데 책을 읽고 글쓰기를 유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영상 작업의 출발점이 이야기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고 각 장면마다 필요한 것이 스토리보드라는 것도. 영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영상의 기본은 탄탄한 스토리라는 것을 인식시키면 동화 쓰기도 부담없이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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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의 품격은 말투로 완성된다 - 말 따로 마음 따로인 당신을 위한 말투 공부
김범준 지음 / 유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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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중요성이야 시대를 막론하고 강조되어 왔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까지 가지 않아도 요즘은 뼈때리는 말!이라는 금언으로 회자되는 말들이 많다. “라떼 is horse는 그만!” 에서부터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라고 조언을 시작하려는 이에게 안 하려고 했으면 하지마!”라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요즘 사람들은 충고는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나이와 상관없이 이미 꼰대 마인드라 하겠다. ‘들어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과 충고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저 잘난 척하며 가르치려 들었으면 이제 그만!’ 이라고 할까?

 

<50의 품격은 말투로 완성된다>의 저자 김범준씨는 자신의 말투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한다.

 

살다보면 아는 척을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게 말투로 굳어버리면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어.”

 

나이 50이 될 때까지 아무거나 말투가 기피대상이란 것을 본인만 몰랐다면서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50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깨닫고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이 책은 총 5종에 걸쳐서 품격있는 말투를 사용했을 때 품격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각종 사례를 인용해 풀어놓는다. 본인의 경험에서부터 시작해 주위 사람들의 사례, 유명인까지 다양하다. 특히 성공한 CEO들의 사례는 그들의 성공 요인중에 분명 말투도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책 제목에서, 작가의 나이로, 50세를 중심에 두고 그 나이 정도라면 이런 말투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꼭 50세만 품격있는 말투를 써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 책은 말투 때문에 아찔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잘 고쳐지지 않는 말버릇 때문에 고민인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각 장에서 공감한 내용 위주로 골라서 정리해 보았다.

 

[1장 말이 곧 나다]

 

p.25~26

언젠가 나이 마흔의 한 여성을 만났다. 프로페셔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전문직 여성이다. 옷차림이 세련됐을 뿐만 아니라 표정도 그지없이 편안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표하느라고 나도 모르게 말했다.

여성스러워졌네?”
그 말에 상대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차!’ 싶었다. 칭찬이라고 했지만 잘못된 말투였다. 이렇게 실수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사실 나는 평소에 남자답다!’, ‘직장인답다!’ 같은 말을 답답하다고 생각해왔다. 누군가에게 함부로 ‘xx답게 행동해’, ‘oo다운 모습을 보여야 해라는 말투가 폭력적임을 나는 늘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그런 말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 습관인 말투를 갑작스레 바꾸는 것은 힘들다. 그래도 모든 것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저 말투 하나만 고치는 것이니 가능하지 않을까?

 

 

"말투는 영혼의 숨결이며 말은 행동의 그림자다."

 

[2장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자기계발서의 선구자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에서 실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축하편지를 보냈다.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카네기 한 명 뿐이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것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서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을 챙기는 세심한 태도와 축하의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3장 나를 낮출수록 품격은 올라간다]

 

p.120

50이 된 사람의 말투가 내가 말이야, ! 동기 중에서 제일 먼저 대로로 승진했고, ! 팀장 될 때도 전사 최연소였고, ! 임원이 되는 것도 나이 마흔이 넘어서 바로, !” 이런 식이라면 얼마나 없어 보이는가. 오히려 인생에서 실패를 맛보았던 경험을 자주 들려주는 50을 볼 때, 사람들은 그를 가깝게 느끼고 소통을 원하며 존경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오히려 높여주게 되는 겸손의 말투를 50에게 적극 추천한다.

 

"자기 비하 말투와 멀어지되, 자기 낮춤 말투와 친해질 것."

 

[4장 더 이상, 말로 상처주지 않는다]

 

우울증에 걸려 정신의학과를 찾은 환자가 제가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글쎄요, 이런 병은 어차피 완치라는 게 없어서 말이죠.”라는 말은 의사스럽다. 막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향해 원론적인 얘기만 하는 의사스러운 말투는 환자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의사스럽지 않은 의사의 출현때문이었다. 실제 병원에서 만나고 싶은 의사를 드라마에서 보게 되니 환호할 수 밖에! 저자는 부정적인 예로 의사스러운 말투를 가져와 소통의 예의를 갖춘 ‘50스러운 말투를 장착해보자고 한다.

 

 

 

[550에는 조금 힘 빼고 말하기]

 

p. 225

중요한 사람이란 자기가 모두 행하고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숫자, 성과, 돈 등으로 인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은 다르다. 문득 떠올렸을 때 곁에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중요한 사람이기보다 누군가에게 잠시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인생에 중요한 사람이 되기 이전에 누군가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사람이 되자."

 

 

이 책의 내용은 어려운 이론이 아니다.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물리학 이론이 아닌데도 저자가 말하는 대로 해보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말투를 고친다는 건 힘들다. 단번에 고치려하기 보다는 이 책을 옆에 두고 매일 아침 한 챕터씩 읽어보고 하루를 시작해 보자.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말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괜찮은 게 아닐까. 하루 아침에 품격있는 말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완성된 존재가 아니듯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되어가는 자신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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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게 온 까닭은
조일희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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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게 온 까닭은>의 저자 ‘조일희’씨는 자기 글의 원천이 외로움이라고 책소개에서 밝혔다. 그 말에 이끌려 바른북스 서평단에 신청해서 책을 받아 읽게 되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2015년에 <수필과 비평>에서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으며 각종 수필상을 받은 수필가이다. 나는 수필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소설은 있을 법하지만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므로 그저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 지어낸 이야기가 타인의 내밀함을 들여다보는 수필보다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에 욕심이 과했던 걸까? 수필이라는 문학을 유목적적 도구로 생각한 내 이기심이 이 책을 문학으로 감상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처음, 저자의 외로움이라는 말에 관심이 갔다는 것은 타인의 외로움을 엿보고 싶다는 속내가 있었다는 것을 잠시 간과했다. 그 외에도 저자의 외로움은 내 것과 어떤 유사함이 있는지, 외로움의 원천으로 쓴 글은 어떨지, 나아가 내 외로움으로도 글을 쓸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이런 사심들을 내려놓고 다시 읽어야 했다.

저자의 글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이미 나이 육십이 되었다고 밝혔지만 어렸을 때의 기억은 엊그제 같은 모양이다. 부모님이 따로 살게 되면서 자신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었는데(이혼은 아님)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과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는 생생하다. 아직까지 생생함으로 남아있다니 당시에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모친이 안 계셨던 그 때, 첫 생리가 시작되었을 때 느꼈던 무서움을 아동센터의 수영이라는 아이를 통해 드디어 떨쳐내는 일화를 읽으니, 그의 외로움은 엄마의 부재로부터가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꽃망울을 터트린 수영이와 꽃이 진 나의 손깍지를 끼고 동네 빵집을 향해 걸었다. 우리만의 은밀한 꽃 파티를 위해...

 

 

 

 

수영이는 자신이 느꼈던 괜한 두려움 속에 오래 갇혀있지 않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의 제목과 같은 꼭지 “네가 내게 온 까닭은‘의 내용은 길에서 만난 노견을 집으로 데려와 그 생명의 마지막까지를 지켜본 이야기이다.

 

 

 

 내가 저를 품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속절없이 시들어가는 내게 온기를 주기 위해 내 품에 깃든 거였다.

할 말을 내장에 쌓아두고 뱉지 못하는 내게 용기를 주기 위해 녀석이 온 거였다.

 

 

 

길에서 떨고 있던 생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거둔 이유가 대입을 앞둔 아들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은 위에 서술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자신도 몰랐겠지만, 복길이라 이름 붙인 그 노견이 생명을 다하는 순간 저자는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였다고, 용기내기 위해서라고...

자세한 내용을 밝히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저자는 복길이를 들인 이후에 수필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등단까지 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p. 73

나는 오랜 세월 수인처럼 나를 가두고 살았다. 순응이 복종이 되고 복종이 타성이 되어 타인 앞에 서면 자동으로 허리가 굽혀졌다. 종내에는 단독자로서의 자유의지마저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근원적인 생각이 자아의 밑바닥에서 고개를 들었다. 텅 비었기에 잃을 것도 없었다. 잃을 게 없으니 두려움도 없었다. 본연의 나를 찾고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위는 학인들과 평사리에 다녀온 “발산섭수”라는 글의 내용 중 일부이다.

발산섭수(跋山涉水)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다, 즉 먼 길을 가는 노고,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공부를 시작했다며, 평사리에 다시 오겠다는 다짐은 몇 년후 토지 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루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마 죽을 때까지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 출판사의 서평단 활동으로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지를 계속 자문하게 된다. 그 누가 강제한 것이 아님에도 마감이 있는 책 읽기를 자처하는 이 짓은 왜 하고 있나?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 잊고 있던 고민들이 고개를 들었다. 저자의 외로움은 수필가로 꽃피울 씨앗의 양분이었던 것 같은데 내 외로움은 무엇에 쓸모인지 생각해본다. 어려서 나의 결핍은 돈이었지만 돌아보면 극단적이리만치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계셨지만 자매가 없던 것은 감정공유 대상의 결핍이었다. 나이를 먹는다 해서 여형제가 생길 것도 아니며 여태껏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그때그때의 감정을 교류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아마 죽을 때까지 그대로일 듯하다. 끝까지 함께 할 외로움을 자양분삼아 뭔가를 해야 한다. 그 뭔가를 찾지 못해 책 읽기에 목 메는지, 찾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려고 이러고 있는 건지 자신을 더 들여다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글에는 아름다운 낱말이 많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이 많았다. 문맥상의 의미를 유추해보면 뉘앙스를 알듯한 것도 있었지만 사전적 정의를 확인해보고 싶어 일일이 찾아보았다.

하늬바람 마파람은 들어봤지만 ‘손돌이 바람’과 ‘살바람’을 들어본 적 있는가?

 

손돌이 바람은 음력 10월 20일경에 부는 몹시 매섭고 추운 바람이고,

살바람은 봄철에 부는 찬바람 또는 좁은 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을 뜻한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 낱말이 들어 있는 글은 가독성이 떨어져서 독자들이 읽기 꺼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쓸데없는 걱정이길 바란다. 어쩌면 잊혀져가는 우리 말을 사용해서 그 생명이 이어지도록 하는 게 수필가의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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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말할 진실 창비청소년문학 93
정은숙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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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말할 진실>은 ‘창비 청소년 문학’ 93번째로 선정된 정은숙의 소설집이다.

이 책에는 단편 소설 7편이 실렸으며

각 단편은 청소년 소설임에도 다루는 소재가 다양하다. 교사의 성추행, 가족의 죽음, 학교 폭력과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버티고(vertigo:비행착각현상), 가난이 성적과 연애에 미치는 상관 관계, 그리고 공연음란죄까지. 이렇게 스펙트럼 넓은 소설 속 주인공이 모두 청소년이다. 자칫 “애들이 뭘 알아?” 라며 이 복잡한 세상 속 진실을 아이들이라 불리는 청소년(이 책에서는 주로 고등학생)이 알 리가 없다고, 혹은 알아선 안 되는 존재로 치부한다.

하지만 정은숙 작가는 청소년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어른인 나조차 맞닥뜨려본 적 없는 각종 사건에 내몰린 주인공들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과 동시에 작가가 너무한 게 아닌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파르르 떨리는 나비의 날갯짓 같이, 너무 사소해서 놓칠 뻔한 사건 속에 숨겨진 진실을 알아차리는 건 아이들이다.

그 진실이 얼마만큼 큰지 아이들은 가늠할 수 없고 어른들은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살아간다.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 비록 자신의 오류라 하더라도 밝히고 바로잡아야 하지만 어른들은 그러지 않는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귀찮아서, 자신의 권력으로 숨길 수 있어서... 갖가지 이유로 모른 척 외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놓지 말아야할 정의와 신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7편의 소설 중 문제적 소재를 다룬 것은 표제작 “내일 말할 진실”이다. 주인공 세아가 따르던 임선생님이 성추행 교사로 몰려 학교를 떠나게 된다.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인 예주는 학교에 남았고, 그 일은 세아 본인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주가 밝힌 사건이 일어난 그날, 그러니까 예주가 상담실을 나간 후 세아가 임선생님과 상담실에 들어갔던 그 날 일이다. 그곳에서 임선생님은 교지 편집실에 보낼 프로필 사진을 세아에게 찍어달라고 했는데, 세아는 그 사진이 예주의 폭로에 반전용으로 사용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주가 폭로한 사건정황의 빈틈을 임선생님은 세아에게 찍어달라고 한 사진으로 뒤집었다. 늘 그렇듯 사람들은 처음엔 임선생님을, 나중엔 예주를 비난하기 바빴다. 급기야 대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임선생님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사건에 휩쓸린 세아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외삼촌에게 사기당해 전 재산을 날린 엄마는 끝까지 외삼촌의 진심만은 믿는다고 했다. 세아는 자신에게 다정하게 격려하던 임선생님의 모습이 거짓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러나 세아는, ‘오래전 제일 작은 인형을 쓰다듬으며 외삼촌의 진심을 믿었던 엄마처럼 혹시 나도 안쪽에 숨어있는 인형은 까맣게 모른 채 듬직하게 우뚝 선 제일 큰 인형만을 보면서 오해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날 상담실에서 자신이 본 것,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이 진실이라 생각하지만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하지 못한다. 한편 ’무엇보다 볼품없고 초라해도 진실의 편에 서고 싶다‘는 예주의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 소설의 서사는 두 축이다. 임선생의 성추행 사건과 세아의 편의점 알바 생활이다. 엄마가 사기당한 후 부모의 이혼으로 고모네 집에 얹혀사는 신세인 세아의 경제적 궁핍은 편의점 알바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든다. 고모의 생리대를 꺼내 썼다가 심한 퉁박을 받고, 진상 손님들을 대해야만 하는 스트레스는 통장에 입금되는 알바비로 상쇄된다. 작가가 예주의 성추행 사건과 외삼촌의 사기를 같이 진행시킨 것은 인간이 타인에게 보여주는 한 면이 그의 전체가 될 수 없음을 말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누나에게까지 사기 친 동생의 그 진심만은 믿는다는 엄마와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던 임선생님의 행동을 진심이라 생각하는 세아. 그들의 진심이 분명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심이 그들의 전부도 아니다. 한 번의 행동으로 인간의 다면성을 말할 순 없음을 이제 세아도 깨달아 갈 것이다. 그것을 엄마보다 일찍 겪은 세아는 어쩌면 엄마와는 다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주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는 작가의 문장이 세아를 믿어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독자에게 질문도 던진다.

“진실을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거둘 용기가 있는가?”

이것은 나서서 진실을 말하라는 말보다 무겁다. 용기있게 나서기 전, 남들은 모르고 자신만 아는 것을 맞다고! 안다고! 인정하는 것이 더 큰 용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알리려는 묘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지막 소설 “그날 밤에 생긴 일”도 유사한 주제이다. 진미식당 앞에서 바지 지퍼에 두 손을 모르고 이상한 행동을 하던 남자의 사진을 찍은 묘성이 경찰에 신고를 한다. 묘성이 보기에 변태 같은 짓을 한 남자를 신고했더니 경찰은 그 사건을 종결하겠다는 전화를 걸어온다. 일단 근처 CCTV에 묘성이 특정한 사람이 찍히지 않았고, 그 시간대 근처에서 신원 확인이 된 남자는 수년 전부터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활동한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니 종결 처리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학생이니까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는 훈계를 잊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는 담배피우는 여학생인 묘성이 학교와 어른들로부터 어떤 시선을 받는지, 청소년 흡연자이기 때문에 따르는 행동 제약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 때문에 한 번 더 조사 요청을 했을 때는 오히려 묘성이 죄인인양 취급받는다. 그날 밤 CCTV에 묘성이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장면이 찍혔기 때문이다. 이정도 되면 오순경의 말처럼 똥밟은 셈치고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지만 묘성은 그러지 못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 묘성은 ‘누가 봐도 충분히 훌륭한 그 남자도 어둡고 쓸쓸한 밤거리에서 했던 몹쓸 짓을 인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오순경에게 전화를 건다. 아직 학생이고, 학생에게 금지된 흡연을 하는 묘성의 발화는 어른들에게 신뢰는커녕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그런 묘성의 행동은 어쩌면 세아보다 용기있다고 하겠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날의 진실을 가지고, 잘못된 건 잘못된 게 맞다고 주장하니 말이다. 교사는 한 번만 더 흡연이 들키면 퇴학이라며 협박하고, 공권력의 대표격인 오순경은 그 동네 권력자를 감싸기에 급급하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는 묘성은 세아의 업그레드 버전이라 하겠다.

이 소설을 읽는 학생들에게 저런 딜레마적 상황들이 얼마나 생길지는 모른다. 하지만 소설 속 제 또래의 행동을 보며 만약 유사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으로 충분한 간접경험이 될 것이다. 혹은 친구들과 이 소설을 읽은 후 그런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겠다. 나와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들으며 문제해결하는 다양한 방식을 접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앞으로 겪게 될 현실이 조금이나마 덜 힘들고 덜 우울했으면 좋겠다.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바람뿐이라 미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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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러블리 와이프
서맨사 다우닝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시간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올 들어 읽은 책 중에 작가들의 첫 소설이 꽤 여러 권이다. <마이 러블리 와이프>도 황금시간 출판사의 출간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다. ‘서맨사 다우닝’이라는 작가는 이 책이 첫 번째 장편소설인데 영미권 미스터리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 권위의 애드거 상 최우수 신인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니콜 키드먼이 영화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속도감 있는 진행과 반전이 스릴러적 긴장감을 극대화하여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한 소설이라 생각한다.

소설은 미국 플로리다주 우드뷰에서도 부유층이 모여 사는 히든오크스를 배경으로 한 가정의 숨겨진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겉으로 단란해 보이는 결혼 15년차 가정이며 4명의 구성원으로 아내는 부동산 중개업자, 남편은 테니스 강사,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 결혼 생활을 15년 정도 유지하다 보면 부부사이에 사랑보다는 의리로 산다는 말이 자연스럽고, 경제공동체를 잘 유지하면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이다. 허나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실금은 집집마다 있기 마련이다. 그 균열이 어떤 계기에 의해 쩍 벌어질 때, 잘 봉합할 수 있는 가정이 있는가하면 완전히 갈라져 다시 붙이기에 역부족일 수도 있다. 그것은 동서양 막론하고 비슷하다 하겠다.

이 소설 <마이 러블리 와이프>의 가정은 겉으로 단란해 보이지만 위태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결혼생활이 연쇄살인으로 유지되는 까닭이다. 비행기에서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게 된 이들 부부의 오르가즘은 여성을 살해할 때에 극에 달한다. 소재가 몹시 자극적이다. 그런데 남편의 1인칭 현재 진행형의 서술은 평온하게 들린다. 그리고 잔인한 살해장면 묘사도 없다. 이런 서사가 독자의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남편의 1인칭 서술이 반전의 요소로 사용되었음을 독자가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남편이 청각장애인 흉내를 내기로 하고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지 의논하는 장면은 마치 가정사를 의논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건 살해 대상에게 접근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둘은 대상을 같이 고르고, 남편은 여성에게 다가가 유혹하고, 아내는 살해한다.

그렇게 그들만의 평온한 일상을 보내다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아내 밀리센트의 언니 홀리가 정신병원에서 나오면서부터다. 그들의 집으로 찾아와 협박하자 남편이 홀리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아니다. 남편이 유혹한 여성과 섹스를 하면서부터인지도! 아니, 자신들의 행동을 예전에 그 동네에서 살인을 저질렀던 남성 오언으로 가장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건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사춘기에 접어든 14살 아들 로리와 11살 딸 제나였다. 대체로 요즘 부모들은 십대 자녀를 컨트롤하기가 아주 버겁다. 로리는 아빠의 밤외출을 외도하는 것으로 확신한다. 엄마에게 알리겠다고 아빠에게 협박을 하여 자신의 일탈을 눈감아주는 것으로 협상을 한다. 아빠가 아들에게 거의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다. 딸 제나는 더 심각하다. 연쇄살인범 오언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며 학교에 칼을 들고 가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집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

제나를 위해서라도 멈추어야 했다. 이제 더 이상 살인을 할 수 없고, 오언으로 가장하는 행동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부부가 내린 결론은 오언이 떠나겠다고 알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경찰에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더 이상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으나 오언의 여동생이 나타나 자신의 오빠는 이미 죽었다고 밝히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것으로 제나의 공포심이 되살아난다. 이제 이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마지막을 여기에 쓰면 소설을 읽을 맛이 뚝 떨어질 것이므로 쓸 수가 없다.

오언이 다시 나타나 연쇄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며 떠나겠다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진짜 살인범이므로 이제 진범을 찾아야 한다. 그 내용이 이 소설의 마지막 4분의 1 정도이다. 그 부분을 읽기 위해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이들 부부가 왜 살인을 해야만 했는지가 더 궁금했다. 결혼은 현실이다. 연애의 유효기간도 최대 3년이라 하지 않나. 그런데 결혼생활을 잘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배려는 결혼생활을 유지함에 있어 중요한 덕목이다. 여기에 아이까지 태어나면 몇 배나 더 노력해야 한다. 밀리센트 부부가 선택한 원만한 결혼생활의 비결은 살인이었다. 사건을 모의할 때 그들은 엔돌핀이 솟았고 팀플레이가 성공할 때 안정감을 느꼈다. 이러한 설정은 물론 과도하다. 결혼생활의 원만한 유지를 위해 연쇄살인이라니! 아마 작가는 그만큼 결혼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극적 설정을 한 것이겠지만 너무했다는 생각이다. 그럴바에야 이혼이 낫겠다.

작가의 의도에 공감하지 못했기에 이 소설은 좀 아쉽다. 아, 그러고보니 이 소설에서 남편은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청각장애인 흉내를 내기 위해 토비아스와 퀜틴이라는 이름 둘 중 토비아스로 정했다. 초반에 토비아스를 사용하고 끝일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퀜틴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소오름이었다. 소설 속 남편은 자신의 진짜 이름 없이 가명만 쓰는 것이다. 소설 제목은 또 My lovely wife다. 누가 진짜 주인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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