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게 온 까닭은
조일희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네가 내게 온 까닭은>의 저자 ‘조일희’씨는 자기 글의 원천이 외로움이라고 책소개에서 밝혔다. 그 말에 이끌려 바른북스 서평단에 신청해서 책을 받아 읽게 되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2015년에 <수필과 비평>에서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으며 각종 수필상을 받은 수필가이다. 나는 수필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소설은 있을 법하지만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므로 그저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 지어낸 이야기가 타인의 내밀함을 들여다보는 수필보다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에 욕심이 과했던 걸까? 수필이라는 문학을 유목적적 도구로 생각한 내 이기심이 이 책을 문학으로 감상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처음, 저자의 외로움이라는 말에 관심이 갔다는 것은 타인의 외로움을 엿보고 싶다는 속내가 있었다는 것을 잠시 간과했다. 그 외에도 저자의 외로움은 내 것과 어떤 유사함이 있는지, 외로움의 원천으로 쓴 글은 어떨지, 나아가 내 외로움으로도 글을 쓸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이런 사심들을 내려놓고 다시 읽어야 했다.

저자의 글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이미 나이 육십이 되었다고 밝혔지만 어렸을 때의 기억은 엊그제 같은 모양이다. 부모님이 따로 살게 되면서 자신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었는데(이혼은 아님)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과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는 생생하다. 아직까지 생생함으로 남아있다니 당시에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모친이 안 계셨던 그 때, 첫 생리가 시작되었을 때 느꼈던 무서움을 아동센터의 수영이라는 아이를 통해 드디어 떨쳐내는 일화를 읽으니, 그의 외로움은 엄마의 부재로부터가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꽃망울을 터트린 수영이와 꽃이 진 나의 손깍지를 끼고 동네 빵집을 향해 걸었다. 우리만의 은밀한 꽃 파티를 위해...

 

 

 

 

수영이는 자신이 느꼈던 괜한 두려움 속에 오래 갇혀있지 않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의 제목과 같은 꼭지 “네가 내게 온 까닭은‘의 내용은 길에서 만난 노견을 집으로 데려와 그 생명의 마지막까지를 지켜본 이야기이다.

 

 

 

 내가 저를 품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속절없이 시들어가는 내게 온기를 주기 위해 내 품에 깃든 거였다.

할 말을 내장에 쌓아두고 뱉지 못하는 내게 용기를 주기 위해 녀석이 온 거였다.

 

 

 

길에서 떨고 있던 생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거둔 이유가 대입을 앞둔 아들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은 위에 서술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자신도 몰랐겠지만, 복길이라 이름 붙인 그 노견이 생명을 다하는 순간 저자는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였다고, 용기내기 위해서라고...

자세한 내용을 밝히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저자는 복길이를 들인 이후에 수필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등단까지 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p. 73

나는 오랜 세월 수인처럼 나를 가두고 살았다. 순응이 복종이 되고 복종이 타성이 되어 타인 앞에 서면 자동으로 허리가 굽혀졌다. 종내에는 단독자로서의 자유의지마저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근원적인 생각이 자아의 밑바닥에서 고개를 들었다. 텅 비었기에 잃을 것도 없었다. 잃을 게 없으니 두려움도 없었다. 본연의 나를 찾고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위는 학인들과 평사리에 다녀온 “발산섭수”라는 글의 내용 중 일부이다.

발산섭수(跋山涉水)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다, 즉 먼 길을 가는 노고,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공부를 시작했다며, 평사리에 다시 오겠다는 다짐은 몇 년후 토지 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루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마 죽을 때까지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 출판사의 서평단 활동으로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지를 계속 자문하게 된다. 그 누가 강제한 것이 아님에도 마감이 있는 책 읽기를 자처하는 이 짓은 왜 하고 있나?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 잊고 있던 고민들이 고개를 들었다. 저자의 외로움은 수필가로 꽃피울 씨앗의 양분이었던 것 같은데 내 외로움은 무엇에 쓸모인지 생각해본다. 어려서 나의 결핍은 돈이었지만 돌아보면 극단적이리만치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계셨지만 자매가 없던 것은 감정공유 대상의 결핍이었다. 나이를 먹는다 해서 여형제가 생길 것도 아니며 여태껏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그때그때의 감정을 교류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아마 죽을 때까지 그대로일 듯하다. 끝까지 함께 할 외로움을 자양분삼아 뭔가를 해야 한다. 그 뭔가를 찾지 못해 책 읽기에 목 메는지, 찾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려고 이러고 있는 건지 자신을 더 들여다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글에는 아름다운 낱말이 많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이 많았다. 문맥상의 의미를 유추해보면 뉘앙스를 알듯한 것도 있었지만 사전적 정의를 확인해보고 싶어 일일이 찾아보았다.

하늬바람 마파람은 들어봤지만 ‘손돌이 바람’과 ‘살바람’을 들어본 적 있는가?

 

손돌이 바람은 음력 10월 20일경에 부는 몹시 매섭고 추운 바람이고,

살바람은 봄철에 부는 찬바람 또는 좁은 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을 뜻한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 낱말이 들어 있는 글은 가독성이 떨어져서 독자들이 읽기 꺼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쓸데없는 걱정이길 바란다. 어쩌면 잊혀져가는 우리 말을 사용해서 그 생명이 이어지도록 하는 게 수필가의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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