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 바일라 9
김혜진 지음 / 서유재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혜진 작가의 소설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은 주인공인 여고생 와 친구 와 스무 살 네이의 이야기다. ‘의 중심은 가족인데 집에서보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편하다. 혼자 있을 때도 마찬가지. ‘는 전학한 학교에서 이사한 집으로 가는 여러 가지 방법을 기록한다.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집으로 가는 길도 써둔다. 이름 없는 주인공, ‘의 가정은 평범해 보인다. 부모님이 있고 언니와 오빠도 있는 집의 막내딸이다. 하지만 언니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프다. 무슨 병인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불치병 같은데 시한부인 것도 같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불친절하다. 친구 둘의 이름은 있고 마지막엔 언니 이름도 한 번 나오는데 는 이름이 없다. 어찌 보면 또 아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 주인공이 네이를 설명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나오는 게 당연하니 말이다. ‘는 집에서 관심과 귀여움을 받는 막내딸이 아니다. 집안의 모든 일은 아픈 언니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일찍 철들 수밖에 없고 남의 눈치를 잘 본다. 분위기 파악이 빠르단 뜻이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지 않는다. 자신의 요구가 수용된 적이 없었기에 원하는 것이 있어도 지레 포기한다

 

일견 답답해 보이는 주인공이지만 이사 후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이 생긴다. 집으로 가는 방법을 찾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 루트를 보는 독자들 중 자신의 집 근처라서 그 경로가 머리에 선연히 그려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처럼 역 이름만 겨우 아는 정도인 사람도 있을 테고, 아주 낯선 길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기록한 길의 이름을 알고 모르는 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등장인물에 공감하기 좀 힘들 경우, 소설 속에 나오는 것들 중 무엇이라도 아는 것이 있으면 반갑다. ‘에게 감정이입하기 쉽지 않았다. 청소년 시기를 지나왔지만 나는 장녀이고 가족 중에 환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의 루트를 보며 내가 가본 곳이라며 반가워했다가 의 생각과 행동을 보며 요즘 저런 아이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는 길을 찾고, 모는 글을 쓰고, 네이는 오래된 물건을 모은다. 아래는 이들 셋이 무언가를 모으고 기록하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걸 확인한 후 주인공이 한 생각이다

 

"왜 모으고, 기록하고, 알려 했을까? 무엇이 결핍되었기에 그런 것들로 채우려 했던가? 우리가 뭔가를 특별히 원할 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만족이란 뭘까?"  p.89

 

모와 네이가, ‘가 기록한 길을 알아보는 것에 는 놀란다. 알아본다는 것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라는 발견을 하다니! 일찍 철든 아이들의 특성이다. 나이보다 어른스럽다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건 칭찬이라기보다 애잔함이다.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어왔다는 뜻이므로.

 

는 언니가 네이에게 중고 직거래로 판 포세린돌갖고 싶었다. 그 인형의 주인은 물론 언니지만 팔지 말고 자신에게 줬으면 했지만 말하지 못했다. 동생이라면 언니에게 징징거릴 수도 있을 텐데, 내게 주면 안 되냐는 그 말을 못했다. 제법 고가의 인형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은 대신 그것을 꼭 사야만 하는 이유를 손 편지로 쓰는 것이 조건이었다. 그 유별난 요구를 충족시킨 사람이 네이였다. ‘와 모는 그 직거래에 같이 나갔고 그렇게 셋은 만나게 된다.

 

둘은 의 무채색 일상에 들어와 색을 입힌다. 책을 많이 읽는 모에게서는 보르헤스 소설을 이야기로 듣고, 재개발 현장에 버리고 떠난 사람들의 물건을 줍는 네이와 함께 다니며 타인의 삶을 보게 된다. 이 소설은 여백 많던 '나'의 도화지에 여러 색들이 칠해지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 여정은 23가지다. 단순한 길도 있고 복잡하고 긴 방법도 있지만 그 길들은 모두 다르기에 풍광도, 색감도, 다르다.

 

집으로 가는 방법 23번째는, 언니를 찾아서 집으로 데려오는 길이다. 네이와 언니가 말없이 떠난 속초 여행을 와 오빠와 모가 뒤따라가서 함께 돌아오는 길이다.

모는 자신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만 있는 것 같고 는 아닌 것 같다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너로서 살고 있는 것 같아. 길을 찾는 거, 그것도 그래.”

 

네이도 말한다.

나도 두려운 게 많아. 하지만, 사랑은 …… 모든 두려움을 이긴다고 했어.”

 

는 모와 네이의 말을 들으며 마음으로 느낀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 살면서 매 순간을 다 마음으로 느끼다간 눈이 짓무를 정도로 눈물이 날지 모르겠다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길을 기록해 두는 것에 의미도 찾지 못했던 가 친구들과 함께한 그 때만큼은 간절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제 집으로 가는 방법을 찾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게 습관이 된 경로 기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특수한 가정 상황 때문에 어리광같은 건 부릴 줄 모르고, 자심의 감정도 꾹꾹 눌러 숨겨야 했던 소녀가 집으로 가는 길을 기록하면서 타인의 길을 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주인공의 삶에 공감하며 재미와 감동을 느끼려고 읽는다. 이 소설은 그 둘 모두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은 문장들을 건진 건 수확이었다.

 

- 우리는 기억을 먹고 산다. 가끔 꺼내 씹고, 맛보고, 도로 넣어 놓는다. 쓰거나 시거나 고소한 기억들이 밥솥의 밥처럼, 가방 속 껌처럼 뭉쳐 있다.

-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은 지금 내 옆의 누군가에 대한 신뢰로 변했다.

-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두 복권을 뽑은 거야. 그게 상인지 벌인지는 모르지. 그리고 그걸 언제 받게 될는지, 지금 받고 있는지도 우리는 몰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맘대로 고전 읽기 - 신화부터 고대까지 동서양 역사를 꿰는 대표 고전 13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맘대로 고전 읽기>는 유수의 출판사 편집장과 대표를 엮임한 최봉수씨의 책이다. 그는 고전에서 사람과 인간관계와 역사를 읽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사람 내면의 목소리를 상상해 보고, 그 상황에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마음대로 해석해 본다. 그는 마음대로 고전을 읽은 것을 이 책으로 썼고,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이 책으로 입문하는 독자가 있다면 감사하다고 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읽은 고전은 대부분 역사서이다. 1부 서양 고전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그리스 비극> <역사> <변신 이야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부 동양 고전은 <사기>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삼국사기> <일본서기>를 소개한다.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전쟁사를 포함한 역사이다. 목차를 본 순간 뭔가 뜨끔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읽다가, 앞부분만 읽다가 포기한 책의 제목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도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책, 제목은 알고 내용도 대충 알지만 사실 잘 모르는 책등이 대부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뜨끔했다고 읽어 본 책이 한 권도 없다 하더라도 너무 죄책감 가지진 말길! 우스갯 소리로 누구나 아는 제목이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 고전이라고 하지 않나.

 

저자가 먼저 읽고 요약해 준 것을 고맙게 받아 읽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진짜 고마운 일이다. 표지의 부제에도 쓰여있다시피 “16만 쪽에 달하는 동서양 고전을 한 권으로 읽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내용 중간중간에 요약 내용을 초록색 박스안에 넣어두었다. 아주 컴팩트한 요약되겠다.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거나 영웅, 전쟁에 관심 많지만 읽지 못한 독자라면 워밍업 하듯이 이 책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소개된 13권의 책 중에서 더 자세히, 직접 읽어보고 싶은 책이 생긴다면 저자가 진짜 감사해할 것 같다.

 

고백하자면 13권 중에 내가 완독한 책은 한 권도 없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단편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어 이 책을 읽으며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영웅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나 삼국지, 열국지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그리스 비극>이나 <변신 이야기> <사기>처럼 등장인물들의 기구한 서사가 펼쳐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2부에서 <삼국사기><일본서기> 설명은 흥미로웠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저자가 꽂힌 부분을 자세히 기술했다.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평가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특히 어떤 시인의 역사 지식 부재로 인해 김부식을 잘못 평가했다는 내용이다. 어떤 시인이 쓴 시집은 <만인보>라고 굳이 제목을 밝혔다. <만인보>면 고은 시인이 아닌가. 이름을 직접 쓰지 않았지만 직접 비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자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저자는 김부식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 보인다. <삼국사기>편 마지막에는 이렇게 쓴 것으로 보아 김부식이라는 인물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바로잡고 싶은 것 같았다.

 

김부식을 유교적이니 사대적이라는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김부식이 유교적, 사대적이라 <삼국사기>사대주의적 역사서라는 비판은 서투르다. 더욱이 대표 편찬자에 의해 <삼국사기>가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까지 폄훼하는 것은 편협한 접근이다

 

<일본서기>는 일본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정사라고 한다. 역사시간에 제목만 들어봤지 내용은 전혀 몰랐는데 이 책 덕분에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그런데 굳이 <일본서기> 원저를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책의 내용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며 그래도 될 만큼 요약이 잘 되어 있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출간되어 있는 고전 읽기 책에서 소개하는 책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이 책은 주로 역사 책을 소개하고 있으니 소설보다 역사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역사적 흐름을 먼저 정리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홉 번째 여행
신현아 지음 / 오후의소묘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홉 번째 여행>은 출판사 '오후의 소묘'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그림책입니다.

고양이는 아홉번을 산다는 영어 속담에서 힌트를 얻은 걸까요?

속 표지와 같은 그림의 이 고양이는 별과 하늘과 우주를 품고 있는데요, 어떻게 아홉번의 여행을 했을까요?

"나는 그곳에 없어"

로 시작하는 첫 장에서 어두운 밤, 지붕위를 걸어가는 검은 고양이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으슥한 주차장에서!

이른 아침 시장통에서!

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가을날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

혼자 걷는 고양이의 외로움이 느껴지지만,

슬픔보다는 쓸쓸한 아름다움이 발걸음 뒤로 묻어납니다.

친구 고양이들이 하나 둘 더해집니다.

친구들과 모여 두런두런 얘기 나누는 모습, 경쾌하지만 조용히 움직이는 모습은 고양이의 매력을 드러냅니다.

무늬도, 크기도, 자세도, 표정도 제각각인 고양이들을 봅니다.

풀숲에 숨어 검은 형체로만 보이는 아이들의 얼굴을 상상해 봅니다.

하나하나 쓰다듬어 보았습니다.

고양이의 보드라움이 손 끝으로 전해졌습니다.

제가 고양이 집사라서 털의 감촉을 아니까 느껴진 것이겠지만, 그것보다는 작가의 애정이 그림속에 살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흑백톤, 세피아톤이 주는 그림의 느낌이 쓸쓸하기보다 따뜻하거든요...

 

"나는 이름없이 피고 지는 들꽃"

 

 

"나는 새벽하늘 총총한 별빛"

 

그곳에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생명,생명들...

길 위에서 짧은 생을 살다 가는 고양이들의 발걸음을 생각합니다.

부지런히 걸어가고, 또다른 생명을 낳고, 일찍 별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여행은 즐거웠고, 어떤 여행은 힘들었고, 또 어떤 여행은 예기치않게 끝나버리기도 했겠지요.

그러나,

지구에서의 여행이 너무 고단하지 않았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의 여행이 행복했을거라 믿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한 고양이가 다른 모습으로 다시 와준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 그림책은 신현아 작가가 2014년에 독립출판물로 냈던 것을 재출간한 것입니다. 작가와 고양이들과의 만남이 어떻게 그림책으로 나오게 되었는지를 읽어보면 고양이에 대한 작가의 애틋함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에 별 관심없는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너였을 때
민카 켄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 <내가 너였을 때>는 미국 작가 민카 켄트의 스릴러 소설이다. 작가의 데뷔작 <훔쳐보는 여자>는 세계 각국에 번역 판권을 판매했고 영화화도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 후 네 번째 소설까지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심리스릴러계의 무서운 신예로 떠올랐다. 이번 작품 <내가 너였을 때>는 다섯 번째 소설이며, 나는 한스미디어 포스트 이벤트에 당첨되어 처음으로 그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만약에!

나와 똑같은 얼굴로 내 이름을 하고 사는 여자가 있다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겠지!

내 행세를 하고 있는 저 여자는 누구일지 꼭 알아내야만 한다!

 

주인공 브리엔은 얼마 전 강도 습격을 당했다. 경찰의 말에 따르면 운이 좋아 죽지 않았다고 한다. 칼에 찔리고 폭행 당해 피투성이인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살아있으니 말이다. 6개월전에 당했던 사건 이후로 브리엔은 철저히 고립되었다. 외조부가 물려주신 성같이 커다란 집의 4분의 1만 쓰면서 외롭게 지내고 있다. 세입자 나이얼이 있어서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는 종양외과 의사이고 예의바른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2주전 자신의 이름으로 원룸이 계약되었다며 열쇠가 든 우편물이 도착한다. ‘브리엔 두그레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여성의 존재를 실제로 확인한 후 진짜 브리엔은 점차 혼란에 빠진다.

 

내가 진짜 브리엔이 맞다.

내가 나인데 나를 증명해야 하다니!

누구에게 증명하나

 

1장은 브리엔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고 2장부터는 나이얼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브리엔과 나이얼이 교차로 서술한다. 1장의 마지막 즈음, 소설의 3분의 1이 끝나갈 때 쯤, 진짜 브리엔이 사실은 케이트 콘웨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나이얼 엠벌린이 실은 자신의 남편이라는 것이다. 둘의 혼인 신고서가 그것을 증명하며 둘은 이미 3년 전에 결혼했다. 그런데 남편이 어떻게 세입자? 남편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했다. 브리엔이 직원이었는데 둘이 친구처럼 지내다가 점점 그녀를 따라하기 시작하더니 거의 스토커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이얼이 케이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으로 1장이 끝난다

 

내가 분명 브리엔인데 나더러 케이트란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그리고 출생신고서부터 혼인신고서까지 모든 서류들이 내가 케이트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나는 브리엔으로 살아온 기억밖에 없는데...

 

1장까지 읽었을 때 위처럼 브리엔 입장이 되어보니 무슨 음모에 빠진 게 아닐까 싶었다. 한편으론 강도 사고 때문에 기억에 이상이 온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이 케이트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2장으로 넘어가 나이얼의 시점으로 쓰인 내용을 읽으니 기가 찼다. 모든 것은 나이얼이 꾸민 짓이었다. 이 내용은 리뷰에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러면 더 이상 리뷰를 연결해서 쓸 수 없어서 공개해야만 했다. 반전을 밝히면 어쩌냐고 해도 할 수 없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1장에서 나이얼이 세입자에서 남편으로 변신할 때 눈치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이얼이 왜 브리엔에게 접근했는지 그 이유와 어떻게 감쪽같이 신분을 속이고 남편행세를 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2장은 이 내용들을 밝히고 나이얼의 사기행각의 디테일도 확인할 수 있어 1장보다 훨씬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런 장르의 소설을 읽을 땐 꼭 이런 마음이 든다. 사기치는 사람을 욕하면서도 들통나지 않았으면 하는, 웬지 사기꾼의 편을 드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의사 나이얼 행세를 하는 그 남자는 어릴 때부터 남을 속이는 것을 보고 자랐고 어떻게 하면 사람의 환심을 사는지도 잘 알고 있으며 문서위조는 기본실력이다. 온 인생이 거짓말로 점철된 사람이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이란 생각에 측은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다 사기꾼이 되는 건 아니란 양가감정이 들었다또 다른 마음으로는, 나이얼의 사기행각이 들통나서 케이트라는 이름으로 정신 병원에 갇힌 브리엔이 자신을 되찾길 바라게 되었다.

 

줄거리를 계속 쓰면 책의 결말까지 나오게 되므로 더 이상은 쓸 수가 없다. 브리엔이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 나이얼은 체포가 될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스릴러 소설 장르로서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주인공이 사기꾼인 경우 그의 논리에 나도 모르게 설득당하게 되는데 그것이 재미있다는 사람도 있고 언짢다는 사람도 있다. 사기야 사람 사는 곳에선 끊이질 않지만 요즘은 온라인 사기가 극성이라는 뉴스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일명 보이스피싱은 언택트시대에 더 늘고 있다고도 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사기를 왜 당하냐? 바보냐?라고 하지만 진짜처럼,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의 논리로 작정하고 다가오면 깜빡 속는다고 한다.

 

p.179 

 

열세 살이 채 안되었을 때부터 나는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면 사람들이 언제든 내게 문을 열어준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 다들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진실이라서 믿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다는 말!

 

요즘 더욱 느끼게 된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과 유튜브 등등,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곳을 자꾸 보니까 추천 영상이 뜨고 그걸 또 계속 보게 되고 진짜라고 믿는다. 그곳에서 하는 말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듣고 싶은 말을 들으며 만족하고 여력이 되면 후원을 한다. 자신이 먹이 준 그들은 본인에게 새로운 피드라는 이름으로 돌려준다. 악순환이다. 악순환인줄 모르고 돌고 도는 이 시스템에서 이득을 취하는 자는 따로 있다!

 

, 스포를 줄이려고 했더니 리뷰가 영 다른 쪽으로 흘러버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의 쓸모 - 시대를 읽고 기회를 창조하는 32가지 통찰
강은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술의 쓸모>는 아트 큐레이터 강은진씨의 신간이다. 10여년 넘게 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온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예술과 예술가의 삶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그들의 삶에서 교양, 지식뿐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통찰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화가를 비롯한 디자이너, 건축가, 컬렉터, 후원자 40여명의 삶을 통해 32가지 통찰을 소개하고 있다. 1부는 예술에서 얻을 수 있는 여섯 가지 가치를, 2부는 시대를 매혹한 스마트한 전략가로서의 측면을, 3부는 예술이 브랜드가 되는 과정을, 4부에서 현대 예술을 통해 우리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5부에서는 예술이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워본다. 저자는 이 32가지 예술의 통찰이 독자의 삶에 든든한 무기가 되고 당당하고 단단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예술 관련 서적을 챙겨 읽는 편이다. 특히 신간일 경우 같은 예술가라 하더라도 기존과 다른 새로운 정보들이 있기도 하고, 저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흐를 예로 들어보자. 너무나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흐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몹시도 단편적이다. 그림 ‘해바라기’나 ‘별이 빛나는 밤’이 고흐의 그림이라는 건 기본이고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정보도 알고 있다. 그 외 동생 테오가 형을 많이 후원해 주었다는 것이나 다른 그림들의 메이킹 스토리까지 안다면 고흐관련 책을 좀 읽어본 사람이라 할 것이다. 테오는 형이 죽은 이듬해에 죽었고 그 둘은 생전에 800여 통의 편지를 남겼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있다.

 

고흐가 사후에 유명해졌다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유명해졌는지에 대해서는 몰랐는데 바로 테오의 아내 요한나 덕분이었다. 그녀는 한 점도 팔리지 않았던 고흐의 그림과 둘이 주고받은 편지의 가치를 알고 그것으로 빈센트 반 고흐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보통은 짐같아 보이는 그림과 편지를 버리거나 불태워 버렸을텐데 테오의 아내는 그러지 않았다. 1915년 뉴욕에서 전시회를 연 이후, 비운의 천재 캐릭터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책을 출간한다. 고흐의 철학이 녹아있는 편지들을 직접 번역하고 정리해서 출판사에 투고해서 <빈센트 반 고흐 : 동생에게 보낸 편지>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고흐의 이름도 알려지게 되었다.

 

위 내용은 ‘3부 예술은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의 첫 챕터 ‘캐릭터를 팔아라’에 나오는 내용이다. 3부에서는 제목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 화가나 예술사조가 어떻게 유명해지게 되었는지를 살피면서 예술도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장에서는 유명 화가뿐아니라 인상주의가 만들어진 히스토리, 알콜중독자였던 잭슨 폴록을 후원한 기획자 페기 구겐하임, 예술과 삶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염원한 윌리엄 모리스까지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가 된 예술가들을 다룬다.

 

고흐 이야기부터 시작하다보니 3장을 가장 먼저 소개하게 되었지만 이 책은 각 장 모두 저자의 희망처럼 독자들 저마다 예술애서 쓸모를 찾아내어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데 도움받을 수 있다. 저자의 설명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아니 텍스트니까 술술 읽힌다고 해야하나? 흥미롭게 읽은 부분 위주로 몇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1부에서 저자가 독자에게 강조하는 내용을 인용해 본다.

 

p.22

 

운동을 하면 근력이 좋아지는 것처럼, 예술을 감상하면 자연스레 심미안이 좋아집니다. 심미안이 잇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전자는 후자가 무의미하다고 지나치는 많은 것에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일상을 훨씬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지요. 심미안을 지닌 사람에게 예술은 더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교양 지식이 아닙니다. 일상에 온전히 스며들어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2부에서 흥미롭게 읽은 내용은 화가 '윌리엄 호가스'와 '자크 루이 다비드'이다. 호가스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화가이다. 그의 그림은 17세기 영국의 사회상과 풍속을 알 수 있는데 동일 주제를 시리즈 형식으로 그렸다. 단순히 그림만 봐서는 숨어 있는 디테일과 화가의 주제의식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유행에 따른 결혼"시리즈를 저자의 설명으로 읽으니 막장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살짝 아쉬운 점은 그림의 크기가 작아서 나같이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은 저자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그림속의 의미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돋보기로 확장해서 보고 싶단 생각과 함께 소장되어있는 런던 국립 미술관에 가보고 싶단 마음이 올라왔다. 그러나 코로나19때문에 언감생심이다. 이전에는 책을 읽다가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도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으면 바로 실행 계획을 짰는데... 물론 국내만 바로 가봤지 해외는 그러진 못했다. 그래도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짜는 건 희망이 있지만,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곳을 계획하는 건 그림의 떡이란 생각에 김이 샌다. 앗, 글이 삼천포로 많이 샜다. 다시 돌아가보자.

 

다비드의 그림중에 그 스토리도 알고 있었던 그림은 "마라의 죽음"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비다의 인생역정과 그림이야기를 읽으니 거의 프랑스역사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한 예술가의 일생이 곧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림이야 워낙 유명해서 알지만(본적 있지만이라고 해야하나ㅠ) 화가가 누군지 몰랐는데 다비드였다.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다.

 

 

 

다비드의 생애를 저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p. 103

 

오늘날 다비드의 그림은 유럽의 대격변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참고자료입니다. 비록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논란 많은 생애였지만, 어쨌든 그가 시대를 매혹할 수 있었던 것은 위기를 또다른 기회로 삼았던 순발력과 권력자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알아챈 영민함 같은 무기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죠. 어쩌면 우리는 그의 그림과 생애를 통해, 역사지식뿐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법도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자가 알려주는 예술의 쓸모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리뷰로는 부족할 것이다. 예술책을 좋아하고 화가의 스토리텔링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