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문지아이들 163
김려령 지음, 최민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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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작가의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을 재미있게 읽었다. <완득이>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완득이>와 너무나 마음이 아렸던 <우아한 거짓말>이후로 사실 그 둘만큼 인상깊은 소설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작가의 신작 소식을 들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의 가제본 서평단 이벤트에 신청했는데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가제본의 표지 그대로 출간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형제같기도 친구사이 같기도 한 사내아이 둘이 앉아 있다. 뭐하는 녀석들일지 궁금증이 인다. 아무것도 안하지는 않을 것 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책 제목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은 현성과 장우가 영상을 올린 유튜브 채널명과 같다.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는 현성을 장우가 찍어서 올리는데 이 영상이 의외로 조회수가 올라간다. 둘은 친구사이이고 초등학교 6학년이다.

 

주인공 현성은 철거 직전의 화원 (비닐하우스 꽃집, 양지화원)에서 살고 있다.

 

 

 

봄이 오면 아파트로 이사갈 줄 알았지만 삼촌에게 사기를 당해 쫓겨날 판인데 일년 가까이 뭉개고 있다. 그 일로 부모님이 싸운후 아빠는 집을 나갔고 엄마는 식당에서 이교대로 일하고 있다. 집안 형편때문에 학원 못다닌지 오래 되었고, 방학중엔 갈데가 없으니 너무 심심하다. 그와중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터넷은 빵빵하게 쓸 수 있어서 하루종일 게임하며 시간 보내는 중이다.

친구 장우는 부모님이 이혼 후 각각 재혼했다. 장우는 아빠랑 살고 있었는데 새엄마가 얼마전 이사를 들어왔다. 새엄마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장우는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지만 현성이랑 노는 게 재미있다. 새엄마가 태어날 아기의 방을 꾸민다고 집안의 물건들을 버리려고 해서 자신의 장난감들을 아지트로 옮겨놓았다. 현성이네 집(화원)근처에 빈 화원에 아지트를 만든 것이다.

 

 

두 아이는 각자의 집안 사정때문에 힘들다. 현성과 장우의 부모님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을 서술할 때 두 아이는 무덤덤한 것처럼 보인다. 부모의 문제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그 부모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현성의 입장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부모의 심정까지는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형제 없는 두 아이가 친해지면서 각자 가정의 고충을 한시름 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친구마저 없었다면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특히 주인공 현성이 더 그렇게 보인다. 아빠가 말한마디 없이 집을 나가버렸고 가계를 책임진 엄마는 일 하느라 바쁘고 늘 혼자 집에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요즘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가끔은 말도 이상하게 한다. 김밥을 주면서 순대를 먹으라고 하고, 냉장고에 돈가스 있으니까 끓여 먹으라고도 했다. 저녁 늦게 와서 씻지도 않고 잠들기도 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출근했다. 출근하고 첫 주말에는 당연히 쉬는 줄 알았는데, 휴일이 이주일에 한 번이라고 했다. 속상했다. 하루의 절반을 일하는데도 휴일은 저것밖에 안 됐다. 엄마는 이교대 근무에 적응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엄마가 출근하면 늘 나 혼자 있다. 너무 심심해서 화원을 정리하기도 하고 세탁기를 돌리기도 했다. 내가 빨래에 소질이 있는지 널어놓은 빨래를 보고 엄마가 칭찬을 하기도 했다.

p. 50~51

 

 

 

 

현성이 살고있던 화원에 전기와 수도가 끊겨 엄마와 2주동안 찜질방을 전전하다 지하방을 얻어 이사하게 되면서 끝이 난다. 책의 3분의 2까지의 내용만 실린 가제본이라서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현성이 이사 전날 아빠에게 연락을 했으니 아빠가 돌아올 것 같다. 동화책이기 때문에 새드엔딩은 아닐 것이다. 아빠가 돌아온다해서 갑자기 현성이네 상황이 좋아질리는 없다. 하지만 세 식구가 다시 같이 지내는 모습은 어린이 독자에게 안도감을 줄 것이다. 현성은 부모님과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고 외식을 했던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현성이네를 통해 행복이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 가족이 함께하는 사소한 순간들에 있다고 말한다.

장우네도 동생이 태어나 새엄마와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해소되면 좋겠다. 그리고 두 친구가 유튜브에 새로운 영상을 올릴까? 가제본이라 3분의 2까지의 내용만 있다보니 뒷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아마 본책을 읽는 독자도 이쯤 읽으면 유사한 궁금증이 일 것이다. 두 친구네가 행복한 결말을 맞을지, 또 아무것도 안 하는 영상을 찍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것이다.

동화를 읽으면서 아이들은 자신과 유사한 상황에 감정이입하게 되고 힘들어하는 주인공에게 공감하며 응원하는 심정이 된다. 그러면서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을 헤쳐나갈 자양분을 얻기도 한다. 이 책의 두 소년이 겪는 일들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길 것이다. 충격적인 서사는 없지만 일상생활에서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상황들이 어린이 독자들의 공감을 충분히 끌어낼 책이다.

나는 두 녀석이 뭐라도 하면서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엄마 맘이 들었다!

** 위 리뷰는 문학과 지성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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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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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사람들은 그것을 들여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저 이쁘구나! 몽환적이다! 라는 생각뿐일까? 스노볼을 아래 위로 흔들어 보면 동그란 세상 속에서 파티가 벌어지는 것 같다. 동그란 돔은 아래쪽에 부착된 세상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스노볼을 보던 박소영 작가는 아마도 창조주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영원히 따뜻하고 반짝거리기만 할 스노볼 세상과 영하 41도의 평균 온도가 지속되는 바깥 세상을 만들어낸 박소영 작가는 창비와 카카오페이지가 주최한 제 1회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대상을 거머쥐었다.

 

당신이 460쪽이 넘는 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한다면,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상 속으로 훅! 빨려들어갈 것이고, 더 적극적이라면 등장인물이 될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자신이 스노볼 세상 속 액터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안락한 곳에서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며 특별히 연기라 할 것도 없이 자신의 삶이 그대로 중계되니 이 얼마나 누워서 떡먹기인가. 방금, 앞 문장을 읽는 순간! 어라! 하며 문제 혹은 부작용을 발견했다면! 당신은 영화나 책 쫌 본 사람이다.

 

그렇다. ‘액터로 발탁되면 인기를 먹고 살아가지만 사생활이 없다. 비록 편집방송이기는 하지만 모든 생활이 오픈되어 있다. 배우 발탁과 연출은 디렉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한다. 스노볼 세계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은 연예 기업인 이본미디어 그룹이 100년 넘도록 대를 이어서 하고 있다. 스노볼과 정반대로 혹한기만 계속되는 세상인 바깥 세상에 사는 아이들은 이본미디어에서 송출하는 방송을 보며 액터와 디렉터를 꿈꾼다. 스노볼에 입성하는 것이 소원이다.

 

이 문단까지 읽고,

, 트루먼쇼랑 설국열차 믹싱버전인데?’

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는 마시라! 위 내용보다 더 흥미진진한 반전에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 내용을 쓰고 싶은 맘 굴뚝같지만 그러면 줄거리를 써야하고, 그러면 책에 흥미가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직접 읽어보길 추천한다! 소설 멋진 신세계를 연상시키는 의료 윤리문제도 들어있다.

 

서두에도 밝혔듯 작가의 상상력에 그저 놀라면서 읽었다. 다양한 영화와 소설들을 믹싱한 것 같지만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이, 거기에 스토리텔링 능력까지 결합하여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꽤 긴 분량이었지만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아니? 아니! 이러면서, 이젠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며 읽었는데 돌아보니 정말 순삭이었다. 보통은 소설을 읽을 때, 특히 이런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나오면 다음 내용을 예상하며 읽는다. 그래서 내 예측이 맞을지 아닐지 확인해보는 재미가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가상의 세계, 디스토피아적 미래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현실에 대한 은유가 많다. 유튜브로 모든 걸 배웠다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우린 눈 뜨고 있는 동안 미디어 속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짜 뉴스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고 가짜 뉴스인지 모르고 휘둘리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계급 없는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소설 속에 나뉘어진 공간은 계급이다. 스노볼이 안락함을 누리려면 에너지를 생산하는 이들이 있어야한다. 스노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이 세상이 별일 없이 잘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부정적인 부분은 가려져 있지 않나. 책이니까, 미래의 가상세계니까, 현실과 다르고 더 극적인 거라고 치부할 순 없다.

 

이 소설은 우리가 포장한 세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가리고 있는 세상을 생각해 보게 한다. 십대후반 여자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 소설은 비슷한 또래의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고 사회문제와 연결하여 비판적 토론을 해볼 수 있겠다. 이 한권에 다양한 토론거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소설가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여성 캐릭터와 플롯 분석을 재미있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어덜트를 넘어선 나같은 나이든 독자는 혀를 내두르며 읽은 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앗, 스포주의에 신경쓰느라 등장인물 소개도 없이 리뷰를 썼다...

 

 

** 위 리뷰는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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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오강남.성소은 지음, 최진영 그림 / 판미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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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못한지 오래되어 하고 싶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

, 지금! 여기! 있는데, 찾아야 한다고??

내가 여기 있는데 나를 잘 모른다.

나를 모르니 나를 알아야 하고 찾아야 한다.

 

파랑새를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니 파랑새는 집에 있더라는 이야기처럼, 이 책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도 비슷한 면이 있다. 불교의 선종에서 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그림인 십우도를 최진영씨가 다시 그렸고, 그 내용은 오강남 교수와 성소은 선생이 공동으로 정리했다. 두 공동 저자는 각 그림 내용에 대한 설명을 심도 깊게 하기 위해 그 내용과 연계되는 다른 책들을 여러 권 소개한다. 그러므로 이 책 한 권 안에 27권이 더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불교나 종교관련 책 뿐아니라 철학, 명상, 과학까지 망라되어 있다. 그간 제목만 들어봤지 읽어보지 못했거나 계속 미루었던 책을 이 책에서 발견했다면 이번에 정독의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소를 찾아 나섰다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행에서 그 소는 진짜 소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다. 책에서는 참나라고 부른다. 나를 찾아 떠났다가 근원으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에서 고통과 번뇌, 공부와 깨달음의 과정을 겪으면, ‘참나를 찾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 의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 과정을 겪는 건 아닐 것이다. 배경지식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저마다 갈구하는 바도 다를 것이며, 소개하는 책을 구해 읽는 실천력도 분명한 격차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나를 찾는 여행을 성공하기는 어렵다.

 

나는 책 소개를 보고 내가 누구인지, 나를 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판사 서평단에 신청했다. 허나 리뷰를 쓰기 위해 책을 빠르게 읽어야했고, 해설하는 다른 책들을 찾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아쉽다. 혹 이 리뷰를 읽는 사람들도 이것을 참고했으면 한다.

 

이 책은 한 번에 쉽게 읽어지는 책이 아니다. 10개의 그림 하나하나를 보고 설명을 읽고 추가로 소개하는 책을 찾아 읽고, 그 그림이 말하는 바를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욕심 부리면 안 된다. 하나의 그림과 연계된 책까지 읽으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릴 것 같다. 십우도니까 10달이다. 넉넉하게 1년으로 잡고 책에 소개된 27권의 책을 다 읽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소개한 모든 책을 다 읽지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더 관심가는 분야의 책으로 확장되어 더 많은 책을 읽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처음의 과제인 참나를 찾게 된다면 성공인 셈이다.

 

물론 내가 추천하고도 위 과정을 실천하리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그렇지만 이 책에 소개된 책 중에서 꼭 읽어야겠다고 고른 책은 있다. 숭산의 <선의 나침반>과 타라 브랙의 <자기 돌봄>, 김상봉의 <호모 에티쿠스>이다.

 

이 나이 먹도록 굽이치는 감정의 격랑을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다. 명상을 해야 한다! 마인드 콘트롤을 하자!며 다독여봐도 안 된다. 그런 때에 맞춤한 글을 찾았다. 아래에 첨부하며 이 리뷰를 마친다.

 

너무 오래 스스로를 위장한 채 살다보니 점점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면, 그래서 이젠 자신을 찾아야겠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p. 168~169

 

내게 무시로 찾아오는 감정의

인간은 여인숙이다.

날마다 새로운 손님이 찾아온다.

 

기쁨, 우울, 슬픔

그리고 찰나의 깨어있음이

예약 없이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대접하라.

비록 그들이 방을 거칠게 어지럽히고

거칠게 휩쓸어 아무것도 남기지 않더라도

 

손님 하나하나를 존중하라

그들이 스스로 방을 깨끗이 비우고

새로운 기쁨을 맞이하게 할 것이다.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웃으며 맞으라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찾아오든 감사하라

모든 손님은 나를 안내하기 위해

먼 곳에서 온 분들이니.

 

- 루미, <여인숙> -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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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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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90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

우리는 지고 가지 못하고 남기지도 못한다. 정말로 남는 것은 집이 아니고 학벌이 아니고 돈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내가 죽은 뒤에도 세상 한구석을 따뜻하게 덥혀줄 것이다.

 

 

위 내용을 읽는 순간,

다 아는 얘기 아닌가, 가족끼리 사랑을 표현하자?’

있을 때 잘 하자고? 그런 뻔한 말, 누구라도 하겠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다!

위 인용한 내용만 읽는다면 그렇겠지만 저런 말을 한 사람의 경험을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얼마나 절절한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의 저자 두 명이 하는 일은 유품 정리와 특수 청소이다. 고독사나 살인 사건 현장을 청소하고, 가족의 의뢰로 사망한 사람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 저자 김새별씨는 2007년 특수청소 업체 바이오헤저드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천여건이 넘는 현장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최근에는 tvN<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며 우리 이웃의 죽음과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공동저자 전애원씨는 2014년부터 특수청소 현장에서 유품을 정리하며 죽음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2015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개정 증보판으로 나왔다. 나는 몇 달 전, 비슷한 책을 읽었다. 일본 여성이 쓴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이다. 두 책의 저자는 직업이 같지만 그 책의 저자는 자신이 청소한 현장을 미니어처로 남겼고 책에는 미니어처 사진도 같이 실려 있다. 미니어처의 장점이 현장성이 강한 반면 선정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 책을 먼저 읽어서였을 것이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은 읽기가 수월했다. 시체만 없을 뿐 죽음의 기운이 그대로 남아있는 현장에서 만나는 끔찍하거나 역겨운 장면,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한 인간(가족 혹은 집주인)의 태도까지, 처음 접하는 장면이 아니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이 책에서는 유난히 고독사한 아버지들의 사연이 많았는데 저자가 특별히 안타까워하는 게 느껴졌다. 고인은 자신의 병을 자식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앓다가 죽어갔다. 어떤 사람은 딸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지도 않아서 딸에게 연락이 늦게 갔고 그 딸은 부친의 사망에 대한 죄책감에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가족들에게 병을 숨기는 일은 짐 대신 죄책감을 얹어주는 일입니다. 병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잠깐의 짐이 될 수 있지만, 병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면 자식으로 하여금 평생의 죄책감을 안고 살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때론 자신의 짐을 다른 가족들과 나눠 질 줄 아는 현명함도 필요합니다."

 

저런 아버지와는 정반대인 자식도 있었다. 30대 초반의 아들이 아버지가 고독사한 집을 청소하는데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고 저자는 청소를 시작했는데 전기장판 아래에 오만원 짜리 지폐들이 빼곡히 깔려 있었다. 순간 아들은 대야를 들고 황급히 뛰어 들어와 장갑도 끼지 않고 지폐를 쓸어 담았다. 그리고 수고하란 말도 없이 사라졌는데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깨끗이 소독 후 가족에게 전달할텐데 굳이 현장을 지켜보겠다고 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싶어 저자는 씁쓸했다고 한다.

 

부모의 재산은 야금야금 다 털어가고 혼자 지내는 아버지가 고독사했는데 와보지도 않는 자식도 있었다. 자식에게 부담 안 주고 싶어하는 부모와 달리 부모에게서 얻을 건 다 얻고 나몰라라 하는 자식, 죽은 뒤에도 가져갈 게 더 없는지 눈이 벌건 자식까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최근에 나는 나의 사후를 자주 생각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고독사후 늦게 발견될 일은 없지만 돌연사의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있다. 그럴 때 가족들이 난감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정리해두어야겠다는 생각! 내가 가진 물건들을 가족이 처분하면서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여름옷을 정리하면서 보니 안 입는 옷이 너무 많았다. 이번에도 버리지 못하고 또 옷상자에 든 가을 겨울옷을 꺼내고 여름옷을 넣었다. 자리만 바꾼 셈이다. 옷 뿐아니라 책도 너무 많다.

 

이 책에 빈번하게 나오는 내용이 쓰레기장처럼 물건이 가득 쌓여 있는 현장 청소다. 빈 술병이 몇 백 개 쌓여 있는 현장, 비닐 포장된 새 옷이 그득하게 들어있는 옷장 등등. 그래서 저자는 정리를 습관화하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나이 여부를 떠나 손쉽게 물건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조언이었다.

 

"주거 공간을 정돈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삶을 방치하는 일과 같습니다. 실제로 쓰리기 집에 가보면 처음부터 쓰레기가 쌓이도록 내버려둔 경우는 없습니다. 세상에 상처받고, 사람에 실망하고, 먹고사는 일에 치여 삶의 의지를 놓을 때 게으름도 함께 찾아옵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먼지 앉은 가구를 닦고, 바닥을 걸레질하는 것처럼 사소한 일들에서 시작됩니다. 쓸모없는 물건은 과감히 버리세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공간을 단순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떠나고 난 자리가 아름다울수록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은 덜어집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을 청소하는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 중에서 나는 위 말에 가장 공감했다. 이 책을 읽고 독자마다 공감한 지점은 다를 것이다. 떠난 이의 사연을 읽고 안타까워하고 남은 사람들의 예의없는 행동에 분노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리고 작지만 행동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저자는 일을 마치고 부친에게 안부전화를 건다고 한다. 짧은 인사가 소중한 사람이 죽음 아닌 삶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며. 나는 당장 안 입는 옷부터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미뤄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러 가야겠다. 내 죽음이후를 처리하는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도록 미리미리 하나씩 정리해두어야겠다.

 

 

 

**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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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아빠의 바다
김재은 엮음, 김무근 그림 / 플랜씨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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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다가 아니었다. 우체국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유치환의 시, “행복”속의 그 우체국 말이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며 짝사랑 그녀 이영도에게 편지를 2000통이나 써서 부친 곳이 바로 통영 우체국! ‘행복’이라는 시와 유치환의 짝사랑 사연은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내게 통영이라는 곳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해나 거제는 가봤지만 통영엔 가지 못했다. 부산과 그리 멀지도 않은 그곳을 오랜 시간이 지나 백석의 시 ‘통영’을 읽고 나서야 가보게 되었다.

백석의 ‘통영’은 오감을 일깨우는 시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짭쪼름한 맛이 혀 끝에 묻어나는 듯하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꽝꽝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백석 시, 통영 중에서-

 

이 시에 등장하는 명정골 사는 난이라는 여성, 백석은 그 이가 명정골에 있을 것만 같아 만나러 갔지만 몇 번이나 허탕을 친다. 이 사연 속엔 배신자 친구 이야기가 들어있어 흥미진진하다.

아, 처음 통영에 가서 내가 찾은 곳은 바다가 아니라 우체국이었다. 그런데 감성이라곤 티끌도 없는 그저 관공서일뿐이었다. 절절하던 사랑의 감정을 시어에서 낚아낼 감성충만하던 시기가 다 지나 당도한 통영우체국은 문이 닫혀 있었다.(찾은 날이 토요일이라ㅠ)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지 아닌지 확인을 못했다. 맥없이 동피랑 마을을 한바퀴 돌고 그 언덕에서 통영항을 내려다보며 귀를 기울여봤다. 배가 뿡뿡하고 우는가 싶어서...

사실 통영은 유명 예술가들이 활동한 도시다. 예술가들은 통영 바다에서 예술적 상상력과 영감을 많이 받은 듯하다. 그러나 일반인도 통영 바다에 서면 예술가가 되는가 보다. 책 <통영, 아빠의 바다>에 그림을 그린 김무근씨는 평범한 아버지다. 그는 고향을 떠나 경기도 일산에서 살다가 환갑이 되던 해에 사고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그 후 친구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통영으로 아예 내려왔다. 50년만의 귀향이었지만 그의 눈에 바다는 그대로였다. 등대가 있는 바닷가에 자릴 잡고 앉아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리고 그는 이제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침바다”를 보는 순간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겹쳐졌다. 두 그림은 분명 차이가 있다. 물감이 다르고 붓 터치가 다르고 장소도 다르다. 그런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해뜨는 바다에 나간 화가의 감성은 비슷했으리라 짐작된다.

 

 ↑↑ "미래사"

한 장 한장 넘기다가 또 “수련연못”이 떠오르는 그림을 발견했다. 구도와 다리가 “수련연못”과 이미지가 비슷했다. 아무래도 이 분이 모네를 좋아하지 않을까? 또 짐작해봤다.

"엄마가 또 다리를 건너고 계시네요? 저 뒤에 손잡고 따라가는 아이랑 아이 엄마는 주원이랑 미라죠?"

 

"아이다, 그냥 절에 온 사람들이다. 철수 아저씨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 보고 그린기라."

 

편백나무 숲길로 유명한 통영 미륵산 남쪽 기슭, 미래사 가는 길. 통영에 가면 엄마가 앞장서서 온 가족을 끌고 가시는 단골 등산 코스라 당연히 엄마랑 올케, 조카인 줄 알았는데... 휠체어 탓에 같이 등산을 못 가시는 아빠가 직접 보신 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책을 받아서 그림만 먼저 보고, 다시 처음부터 그림을 보며 설명을 읽었다. 딸 김재은씨는 아빠의 그림을 자신의 페이스북 배경이미지로 썼다가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아 아빠의 그림을 계속 올리게 되었다. 그림에 짧은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그러기 위해 통영에 계신 아빠와 자주 전화를 하고 카톡을 했다. 젊어서는 일만 하신 아빠를 보며 일을 정말 좋아하시는가보다, 딸은 생각했다. 300km가 넘는 먼 거리였지만 온라인으로 전시회를 하며 부모님과 가깝게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보통의 부녀 사이에는 별로 대화가 없다. 멀리 떨어져 산다면 자주 만나지도 않을 것이고 안부 전화나 가끔 주고 받는 사이일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취미생활인 그림을 딸이 관심가지고 물어보면서 자연스레 대화하게 되었다. 참 부러운 부녀사이다. 가족 간에 공통의 소재로 대화하기 쉽지 않은데 그림이 매개역할을 했으니 역시 예술이다.

그동안 통영은 나에게 시인의 도시였는데 이젠 바다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내 머릿 속에 통영 바다의 이미지는 이 책의 그림, 김무근씨의 고향 바다, 김재은씨의 아빠의 바다로 각인되었다. 요 근래 통영 소개 책을 몇 권 읽었다. 마침 이번 토요일, 통영에서 홍승은 작가의 북토크가 있어서 갈 예정이다. “등대가 있는 풍경” 그 바다를 찾아볼 시간까지 될진 모르겠지만, 통영 바다는 꼭 보고 와야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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