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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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90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

우리는 지고 가지 못하고 남기지도 못한다. 정말로 남는 것은 집이 아니고 학벌이 아니고 돈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내가 죽은 뒤에도 세상 한구석을 따뜻하게 덥혀줄 것이다.

 

 

위 내용을 읽는 순간,

다 아는 얘기 아닌가, 가족끼리 사랑을 표현하자?’

있을 때 잘 하자고? 그런 뻔한 말, 누구라도 하겠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다!

위 인용한 내용만 읽는다면 그렇겠지만 저런 말을 한 사람의 경험을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얼마나 절절한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의 저자 두 명이 하는 일은 유품 정리와 특수 청소이다. 고독사나 살인 사건 현장을 청소하고, 가족의 의뢰로 사망한 사람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 저자 김새별씨는 2007년 특수청소 업체 바이오헤저드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천여건이 넘는 현장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최근에는 tvN<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며 우리 이웃의 죽음과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공동저자 전애원씨는 2014년부터 특수청소 현장에서 유품을 정리하며 죽음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2015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개정 증보판으로 나왔다. 나는 몇 달 전, 비슷한 책을 읽었다. 일본 여성이 쓴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이다. 두 책의 저자는 직업이 같지만 그 책의 저자는 자신이 청소한 현장을 미니어처로 남겼고 책에는 미니어처 사진도 같이 실려 있다. 미니어처의 장점이 현장성이 강한 반면 선정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 책을 먼저 읽어서였을 것이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은 읽기가 수월했다. 시체만 없을 뿐 죽음의 기운이 그대로 남아있는 현장에서 만나는 끔찍하거나 역겨운 장면,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한 인간(가족 혹은 집주인)의 태도까지, 처음 접하는 장면이 아니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이 책에서는 유난히 고독사한 아버지들의 사연이 많았는데 저자가 특별히 안타까워하는 게 느껴졌다. 고인은 자신의 병을 자식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앓다가 죽어갔다. 어떤 사람은 딸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지도 않아서 딸에게 연락이 늦게 갔고 그 딸은 부친의 사망에 대한 죄책감에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가족들에게 병을 숨기는 일은 짐 대신 죄책감을 얹어주는 일입니다. 병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잠깐의 짐이 될 수 있지만, 병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면 자식으로 하여금 평생의 죄책감을 안고 살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때론 자신의 짐을 다른 가족들과 나눠 질 줄 아는 현명함도 필요합니다."

 

저런 아버지와는 정반대인 자식도 있었다. 30대 초반의 아들이 아버지가 고독사한 집을 청소하는데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고 저자는 청소를 시작했는데 전기장판 아래에 오만원 짜리 지폐들이 빼곡히 깔려 있었다. 순간 아들은 대야를 들고 황급히 뛰어 들어와 장갑도 끼지 않고 지폐를 쓸어 담았다. 그리고 수고하란 말도 없이 사라졌는데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깨끗이 소독 후 가족에게 전달할텐데 굳이 현장을 지켜보겠다고 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싶어 저자는 씁쓸했다고 한다.

 

부모의 재산은 야금야금 다 털어가고 혼자 지내는 아버지가 고독사했는데 와보지도 않는 자식도 있었다. 자식에게 부담 안 주고 싶어하는 부모와 달리 부모에게서 얻을 건 다 얻고 나몰라라 하는 자식, 죽은 뒤에도 가져갈 게 더 없는지 눈이 벌건 자식까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최근에 나는 나의 사후를 자주 생각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고독사후 늦게 발견될 일은 없지만 돌연사의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있다. 그럴 때 가족들이 난감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정리해두어야겠다는 생각! 내가 가진 물건들을 가족이 처분하면서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여름옷을 정리하면서 보니 안 입는 옷이 너무 많았다. 이번에도 버리지 못하고 또 옷상자에 든 가을 겨울옷을 꺼내고 여름옷을 넣었다. 자리만 바꾼 셈이다. 옷 뿐아니라 책도 너무 많다.

 

이 책에 빈번하게 나오는 내용이 쓰레기장처럼 물건이 가득 쌓여 있는 현장 청소다. 빈 술병이 몇 백 개 쌓여 있는 현장, 비닐 포장된 새 옷이 그득하게 들어있는 옷장 등등. 그래서 저자는 정리를 습관화하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나이 여부를 떠나 손쉽게 물건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조언이었다.

 

"주거 공간을 정돈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삶을 방치하는 일과 같습니다. 실제로 쓰리기 집에 가보면 처음부터 쓰레기가 쌓이도록 내버려둔 경우는 없습니다. 세상에 상처받고, 사람에 실망하고, 먹고사는 일에 치여 삶의 의지를 놓을 때 게으름도 함께 찾아옵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먼지 앉은 가구를 닦고, 바닥을 걸레질하는 것처럼 사소한 일들에서 시작됩니다. 쓸모없는 물건은 과감히 버리세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공간을 단순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떠나고 난 자리가 아름다울수록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은 덜어집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을 청소하는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 중에서 나는 위 말에 가장 공감했다. 이 책을 읽고 독자마다 공감한 지점은 다를 것이다. 떠난 이의 사연을 읽고 안타까워하고 남은 사람들의 예의없는 행동에 분노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리고 작지만 행동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저자는 일을 마치고 부친에게 안부전화를 건다고 한다. 짧은 인사가 소중한 사람이 죽음 아닌 삶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며. 나는 당장 안 입는 옷부터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미뤄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러 가야겠다. 내 죽음이후를 처리하는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도록 미리미리 하나씩 정리해두어야겠다.

 

 

 

**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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