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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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봤지만 소설은 읽지 못했다. 그래서 김영사에서 출간한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하버드 스퀘어>를 읽게 되었다. 작가는 1951년 이집트에서 태어났으나 반유대주의를 비롯한 정치적 문제로 1965년에 가족 전체가 고국에서 추방당한 후 로마를 거쳐 뉴욕에 정착했다. 이번 <하버드 스퀘어>는 그의 자전적 소설이다. 실제로 하버드에서 약 7년간 학업에 정진하던 애치먼은 전문적인 연구가 오히려 문학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을 짓누른다고 느끼고 학교를 떠나 증권사에 입사했다가 되돌아와 비교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스스로 하버드에서의 나날은 증오와 사랑의 시간이라고 밝혔듯, 자기애와 자기혐오가 뒤섞인 청춘의 기록이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소설 주인공은 아들과 캠퍼스 투어를 위해 하버드에 왔다가 지난 날의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1977년 여름, 이집트 유학생이던 는 종합시험 재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도서관 알바, 프랑스어 과외로 바빴고 하버드에 적응하느라 더웠던 나날들이었다. 카페 알제에서 칼라지라는 아랍인을 만나며 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랑스어를 쓰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과 동시에 동지를 재회한 듯했다. 택시 운전사와 아이비리그 대학생의 조합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둘은 자연스레 어울리게 된다. 대화는 인간이 다른 인간과 함께 있을 때 즐기는 것이자 자연스러운 것이고, 일요일 오후에 사람들은 대화하고 웃고 커피를 마시며 산다는 것을 잊고 살던 시절이었다.


는 칼리지를 닮고 싶고 좋아하면서도 이질감을 허물기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이방인이라는 동질감의 자장 안에 있었다.


p.74

나는 그를 부러워했다. 그에게서 배우고 싶었다. 그는 진정한 남자였다. 나는……. 나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는 목소리였고, 내 과거와의 잃어버린 연결고리였으며, 내가 다른 길을 택했다면 나의 롤모델이 되었을 사람이었다. 그는 야성적이었지만 나는 길들여지고 억눌려 있었다. 그런 누군가 나를 강력한 용액에 담가서 내가 학교에서 배운 모든 습관과 미국에서 양보한 모든 것을 내 피부에서 벗겨낸다면 내가 아니라 그가 발견될 것이다.


p.96

우리 둘 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내겐 버티고 설 땅이 있었고 그는 언제나 방랑자였다. 내게는 영주권이, 그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벼랑 끝에 서 있었지만 나는 벼랑 밑을 내려다봐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게는 그 심연을 가릴 담장이나 생울타리가 항상 있었던 반면 그에게는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편 또 다른 차이도 있었다. 그는 그 벼랑에서 물러서서 살아나올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벼랑과 나 사이에 그를 세워놓았다. 그는 내 가림막, 내 스승, 내 목소리였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추구했던 삶이 그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칼라지의 이민국 인터뷰 준비를 도와주던 장면과 월든 호수 피크닉은 칼라지의 엉뚱한 매력을 드러낸다. 조르바와 체게바라가 여실히 오버랩되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이 감탄했던 칼라지의 문장들은 프랑스어였다. 옆방에선 아무도 자지 않는다이 집에선 아무도 음악을 듣지 않는다가 절묘하게 대구를 이룬다고 했는데, 한글 번역본이므로 프랑스어의 맛을 느낄 수 없어 살짝 아쉬웠다. 시처럼 보였던 그 글은 이민국 직원들이 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써둔 것이었다.


그해 여름, 주인공은 자신의 이율배반적 감정이 혼란스러웠다. 카페 알제에 가면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어떤 이야기든 나눌 수 있는 친구지만 하버드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아가면서부터 서서히 그를 피하기 시작한다. 새 여자친구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엔 우연히라도 마주치기 싫었다.


p.303

나는 그를 부끄러워했고, 그를 부끄러워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속물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우리의 공통점이 열악한 경제 형편 말고도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들키는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게 ,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저급한 카페에서 어울리기 좋아하는 극빈자 정체성뿐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급기야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는 칼라지와 마주칠까봐 두려워하고 변명거리를 걱정하는 상황에 지쳐갔다. 그를 떨쳐내지 못하면서 그와 엮일까봐 걱정하는 자신이 싫었다. 운전면허가 정지된 칼라지를 프랑스어 시간강사 자리에 소개해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한 집에서 살게 되고 그의 직장까지 주선해주었으면서도 사적인 영역이 침범당하고 점령당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런 양가감정에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칼라지가 미국을 떠나던 날 그를 배웅하러 가지 않았다.


p.372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고 싶었던 것은 눈물의 작별이었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그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울고 싶지도 않았다. 포옹도 싫었고, 야단스러운 약속도 싫었고, 슬픔을 과장하는 피상적인 말도, 비참한 기분도 싫었다. 깨끗하고 태연하게 작별하고 싶었다. 나는 완전히 구제불능으로 가식적인 인간이었다.


칼라지가 자신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며 다른 사람을 통해 작별인사를 대신 전해 받으면서 는 수치심과 슬픔 사이에 오가는 격통을 느낀다. 한편 안도감과 해방감도 동시에 느끼는데 결국 이러한 양가감정은 칼라지를 만나고 헤어지는 내내 지속됐다.


아들과 입학처를 나오며 그해 여름 하버드 광장의 추억에서 빠져나온 는 그 때가 좋은 시절이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뜨거운 여름날 청춘의 시절을 회상하는 일은 심장이 간질거리면서 뻐근하고 애틋했다. 함께 한 시간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해서 무어라 단정 짓기 힘든 감정이었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그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문장은 프랑스어로 끝난다. ‘칼라지의 대화로.


자네가 날 찾아내서 정말 다행이야. 난 잘 지내. 딸이 둘 있지. 좋은 추억을 갖고 있고. 사랑해.”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그 어떤 첨언보다 이상은의 노래 가사로 리뷰를 마무리 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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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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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순신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테니 말이다. 유명한만큼 관련 연구가 많고 다양한 미디어로 계속 재창조되고 있다. 더이상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은데 이번에 이순신의 어머니를 다룬 책이 나왔다. 가디언 출판사에서 나온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가 그것이다. 이 책은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 초계 변씨의 행적과 이순신에게 미친 영향을 탐구했다.

 

사실 이순신 장군이야 조선왕조실록의 선조편에서부터 징비록, 난중일기까지 사료가 많지만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료가 있을지 궁금했다. 저자부터 확인했다. 윤동한씨는 역사학자가 아닌데 어떻게 연구를 했을지 또 궁금했다. 책 마지막에 저자가 밝힌 부분을 확인하니 박종평 작가의 <난중일기> 해설부분을 상당수 인용했다. 그리고 변씨 문중과 덕수 이씨 가문 사람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초계 변씨의 직접적인 자료는 부족했기 때문에 역사추적과 문헌 검증이 어려운 부분에 일부 필자의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이 있음을 양지해야 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었으며 사진과 그림을 첨부하여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했고, 각 부의 마지막에는 내용을 요약한 '정리편'을 두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부록에는 초계 변씨 가계도, 초계 변씨와 이정, 이순신의 가계도, 초계 변씨 연보, 이순신 장군의 삶을 실어 최종 정리를 하도록 했다.

[1부 주요 내용 정리]

- 이순신의 모친 변씨, 지금의 충무로 인현동인 서울 건천동에서 셋째 아들 이순신을 낳다. 1545년 음력 3월 8일

- 변씨가 가르친 이순신은 목표를 위해 결심을 변치 않는 올곧은 신념이 있었다. 그는 어떤 위협에도 타협하지 않았으며 바른 길을 걸어가려는 정도의 가치관을 지녔다. 충성심과 위민의식으로 백성들을 사랑했다.

- 장자이지만 서울살이를 시작한 순신의 아버지 이정은 명목상의 직함은 있었으나 결국 벼슬에 나가지 못했다. 2대째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자 가문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에 이순신의 모친 변씨는 고단한 서울살이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추측된다.

[2부 주요 내용 정리]

- 명종 인종 때 위세를 떨쳤던 영의정 이준경이 순신의 앞날을 도와주고자 보성 군수를 지낸 방진의 집안과 연결하며 중매를 선다.

- 이준경은 예지력이 뛰어난 인물로 수하에 있던 정걸 장군에게 판옥선을 만들게 하고 왜란을 예견해 선조에게 유언ㄲ지 남겼던 청백리 명재상이었다.

- 모친 변씨는 셋째 아들 순신이 급제 후 변방으로 돌고 있을 때 가문을 지키며, 기울어져 가던 집안을 철저한 재무관리를 통해 다시 일으켜 세웠다. 또 <별급문기>로 모든 재무 기록을 자세히 남겨두었다. 이를 통해 변씨의 철저하고 꼼꼼하며 청렴하고 독립적인 재무 능력을 엿볼 수 있다.

- 둘째 아들 요신이 병으로 사망하고 남편 이정과 맏아들 희신도 잃었ㄷ. 게다가 아산 이거 후 살아왔던 집도 화재로 잃어버렸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남은 아들 순신과 우신, 그리고 손자들을 더 아끼고 위하며 새로운 터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독립심과 대쪽 같은 성격이 아들 순신에게 그대로 전해져,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청렴한 공직자 순신을 낳게 했다.

[3부 주요 내용 정리]

-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모친 변씨는 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발령 나자 아산으로 일단 돌아갔다가 앞뒤 일을 세심히 살핀 후 여수로 단독 이겋기로 마음먹었다. 며느리 방씨는 아산에서 고향과 본가를 지키게 하고 셋째 손자 이면이 어머니 방씨를 모시게 하면서 자신은 셋째 아들 이순신을 여수에서 지켜주기로 결단한 것이다. 이미 78세의 고령이었다.

- 변씨는 고령이라 육로 이동이 불가능하자 뱃길을 통해 아산에서 여수 전라좌수영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이 뱃길은 나중에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자 아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하는 길로 다시 이용하게 된다.

- 순신은 송현마을에 모친을 모심으로써 정신적인 안정을 얻었고 어머니 안위를 걱정하지 않으며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모친 변씨는 "내 아들이 기쁠 수만 있다면..." 오직 이 마음 하나로 고달픈 타향살이를 기꺼이 감당한 것이다.

- 왜군 수뇌부의 이간질로 아들의 하옥 소식을 들은 모친은 아들을 잃을 수 있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서울행을 결심한다. 아들 손자가 모두 말리는 와중에도 "내 관을 짜서 배에 실으라, 나는 죽어서도 서울에 가서 통젯 아들을 만나고야 말 것이야."라고 외쳤다.

- 뱃사람도 움직이기 싫어하는 음력 2, 3월의 죽음의 뱃길을 택한 것은 자신을 운명의 제물로 드리고 아들을 살리려는 결심이었다. 83세의 고령에 노환으로 앞날을 기대하지 못하는 노인이 순신에게 줄 마지막 선물이었다. 결국 모진 뱃길 속에서 버티던 모친은 결국 숨을 거두었고 순신은 풀려났다. 그와 모친이 상봉한 것은 4월 13일, 아산 게바위 앞이었다.

[4부 주요 내용 정리]

- 덕수 이씨 후손들은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변씨 할머니의 희생정신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다. 종군과 순국의 길로, 공직자의 길로, 전란의 현장에서 후손들은 멸사봉공, 위국, 애민의 길을 걸었다.

- 장흥 지역 변씨 후손들은 명량과 지포해전, 노량해전에 적극 참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 넣었다. 변씨 형제들은 기꺼이 살길을 찾을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핏줄들이 전사하는 모습에 분개하여 함께 전사하는 용맹함을 보여주었다.

저자가 가장 많이 참고한 책은 역시 <난중일기>였다. 이순신 장군의 효심이 절절히 드러나고 모친의 행적도 기록되어 있다. 그의 일기가 없었다면 이런 책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을 키운 것은 어머니지만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의 일기 덕분이다. 기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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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배달룡 선생님 - 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저학년) 신나는 책읽기 61
박미경 지음, 윤담요 그림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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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창비출판사의 가제본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떴다! 배달룡 선생님>은 2022년 창비 '좋은 어린이책' 저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박미경 작가는 일 때문에 방문한 어떤 중학교에서 지나가다 들은 대화에서 영감을 얻어 이 책을 썼다. 교장선생님과 학생이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보통 교장선생님하면 권위적이고 훈화 길게 하는 지겨운 느낌이다. 그런 교장 선생님이 어떻게 학생과 허물없이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에이, 동화책이니까 그런 거겠지. 실제로 그런 교장선생님이 어딨겠어." 라고. 그러나 직접 읽어보면 배달룡 교장선생님의 매력에 푹 빠질지도 모른다.

배달룡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진심이다. 151명이나 되는 전교생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다. 300명도 거뜬히 외울 수 있는데 151명뿐이라 아쉬워할 정도다. 권위적이지도 않다. 교장실 바로 위에서 들려오는 소음의 근원이 딱지치기 인 것을 알게 되는데 못하게 하거나 혼내지 않는다. 오히려 같이 딱지치기를 한다. 또 막대사탕을 항상 들고 다니며 칭찬할 학생, 위로가 필요해 보이는 학생에게 건넨다.

사실 배달룡 학생의 어릴 적 꿈은 학교 짱이 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친구들 괴롭히는 '짱' 말이냐며 묻자, 달룡이는 손사래를 치며 세상에서 아이들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짱이 될 거라고 했다. 드디어 배달룡은 햇살초등학교의 짱이 되었다. 학교짱? 교장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챙기는 짱이 되었다.

교장선생님의 다른 활동들을 보자. 분식집 테이블에 낙서를 한 학생때문에 불려가서는 떡볶이 맛있게 만드는 비법을 전수해주고, 학생에게는 테이블에 그림을 마저 다 그리라고 한다. '수진이의 그림'이라는 에피소드는 현실적이지 않다며 너무 판타지라고 딴죽을 걸 독자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학생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짱이 되겠다던 어린 시절 달룡이를 환기해 보자면, 교장선생님이 되어 그것을 실천한 것이니 비판이 아닌 칭찬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어른이 되면 어릴 때 가졌던 마음을 죄다 잊고, 직위가 높아질수록 어린이를 이해하는 마음은 점점 사라진다. 어릴 적 다짐을 잊지 않고 그대로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숙제 셔틀 시키려는 학생들의 대화를 듣고 교장선생님이 직접 해주겠다고 나서고, 눈이 많이 온 날에는 학교 운동장에 눈썰매장을 만든다. 교장선생님 아내는 역도코치라서 학생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준다. 이러니 학생들에게 인기 짱일 수밖에 없다. 교장선생님들은 왠지 좀 무섭고, 학생들에게 훈계만 할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이라면 몰라도 교장선생님이 내 이름을 알리 없다. 이렇게 현실에서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멀고 먼 존재다.

배달룡 교장 선생님은 반대다. 전교생의 이름은 당연히 알고 있고, 학생들이 친구처럼 생각할 수 있게 허물없이 대해 준다. 이렇게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어른이 학교에 있다면 학교 가는 일이 얼마나 즐거울까. 멀리서 교장선생님이 다가오면 줄행랑을 치는 게 아니라 책 속 친구들처럼 반갑게 인사할 것이다. 이 책은 학생들에게 교장선생님의 인상을 긍정적으로 심어줄 것이며, 어른들에게는 모범적인 어른 상을 제시할 것이다.

학부모나 교사가 이 책을 읽는다면 뜨끔할 것이다. 그동안 자녀나 학생들에게 엄근진 교장선생님처럼 굴었던 게 아닌가 싶어서. 사실 모든 어른은 어린이였었다. 어린이였을 때 어떤 어른을 좋아했는지, 어떤 어른으로 자라고 싶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지금 자신의 태도에 낯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당장 아이들을 이해해주고 진심을 알아주는 말을 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말 대신 배달룡 교장선생님처럼 막대사탕 하나 스윽 내밀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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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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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에 목마른 사람, 누군가와 소설 이야기를 실컷 하고픈 사람, 새로운 작가나 책을 소개받고 싶은 사람, 아니 이 모든 것을 한 방에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을 주목하라!
일석 이조, 삼조가 가능하다고?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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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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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에 목마른 사람, 누군가와 소설 이야기를 실컷 하고픈 사람, 새로운 작가나 책을 소개받고 싶은 사람, 아니 이 모든 것을 한 방에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을 주목하라!

      

일석 이조, 삼조가 가능하다고?

가능하다!

책 한 권으로 위를 모두 이룰 수 있다.

 

소설을 쓰고 여행을 하고, 여행을 다녀와 에세이를 쓰는 함정임이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독자로서 누리기만 하면 된다. 에필로그에서 한 작가의 말이 격하게 반가웠다.

   

p.337~338

 

작가와 작품을 쫓아 지구를 돌고 돌면서, 태양과 바람, 별과 구름이 함께했다. 어느 글은 태양의 저쪽에서, 또 어느 글은 밤의 이쪽에서 썼다. 오래 품어 쓰고 보니, 제목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겅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흐름 속에 있다 

글쟁이로 살면서 소설이 소설을 낳고, 책이 책을 낳는 경우를 목격해왔다. 글쟁이들은 글로 대화하고, 글로 고백하고, 글로 추모한다. 이보다 더 황홀하고 숭고한 일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리뷰를 읽고 책을 읽으려는 이들에게 에필로그를 먼저 읽길 권한다. 이 책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지도와 장소와 작가와 작품에 대한 맛보기를 먼저 하고 기대어린 심정으로 목차를 열어보시라! 1부에서 4부까지 챕터의 제목을 보고 어떤 이는 작가 이름이 눈에 먼저 들어올 것이고 어떤 이는 장소가 보일 것이다. 그렇다. 자신에게 먼저 닿은 것부터 읽으면 된다. 가보았던 곳 중 좋은 기억이 남은 곳의 페이지를 펼친 사람은 같은 장소임에도 분명 새로운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시각으로 그 장소와 소설을 연결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마치 새로운 장소를 여행하는 기분이 된다. , 각 장소마다 사진도 첨부되어 있어 상상으로 하는 여행에 구체성을 부여해 줄 것이다.

 

 

나는 플로베르의 루앙을 먼저 펼쳤다. 프랑스에 가보지 못했지만 내게 프랑스의 이미지는 인상파 화가들이 심어주었다. 루앙은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으로 만났다. 모네나 르누아르의 그림으로 만난 프랑스는 눈부신 자연과 사랑스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루앙은 플로베르와 모파상과 아니 에르노의 도시다.

 

이 챕터에서는 주로 플로베르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래전 플로베르 문장의 아름다움에 열변을 토하던 어떤 교수님의 추천으로 <보바리 부인>을 읽었지만 사실 문장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플로베르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데 이 챕터에서 플로베르의 삶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준다. 조부와 아버지, 형이 의사였기 때문에 <보바리 부인>의 남편이 의사였고 자신이 살았던 동네가 비슷하게 서술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십여년 전 루앙 대성당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기에 이번에는 이틀에 걸쳐 플로베르의 족적만 쫓았다. 그가 태어난 사립병원의 사택과 평생 칩거하며 글을 썼던 루앙 외곽 센강 변의 크루아세 별관, 그리고 루앙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모뉘망탈 공동묘지에 있는 그의 묘도 찾았다.

 

p.150

 

19세기 중반에 쓰인 <마담 보바리>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도 더욱 왕성히 살아나는 것은 바로 작가가 극도의 고통 속에 구현한 스타일의 창조와 함께 '보바리즘''모방 욕망'이라는 현대인의 심리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마담 보바리의 비극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세상에는 지금도 무수한 마담 보바리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사방에서 매 순간 그들의 욕망을 사로잡는 홈쇼핑 상품들이 즐비하다. 단 몇 초, 버튼만 누르면 욕망은 실현된다. 그러나 최신 유행으로 치장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한 사채 빚에 쫓기고 쫓기다가 결국 비소를 마시고 피를 토하며 처참하게 삶을 마감하는 마담 보바리의 최후는 낭만적 몽상과 삶의 서늘한 진실을 보여준다. 그것은 21세기 도처에서 숨쉬는 마담 보바리들에게 19세기 작가가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루앙과 플로베르와 보바리 부인을 현재까지 연결시키는 글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장소와 소설가와 작품 이야기가 지금의 나를 만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서두에 밝혔듯 독자의 눈에 먼저 들어오는 제목부터 읽어나가면서 반가워 하다가 새로운 정보와 사고의 확장이 만족감을 줄 것이다.

 

나는 소설을 제법 읽었고 작가도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만이었다. 이 책에서 몰랐던 작가를 여럿 소개받았다. 그중 이장욱이라는 작가에 관심이 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도스토옙스키와 고골과 이장욱을 만났다.

p.288  

 

이장욱은 러시아문학 전공자다. 그의 소설집 <고백의 제왕><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수록된 소설들에서 두 가지 특징을 주목할 수 있다. 한 가지는 고골과 도스토예스키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장소애(場所愛)와 공간에 대한 적확한 제시와 묘사이고, 다른 한 가지는 누군가의 생애를 마치 어느 시기 같은 공간에서 동고동락했던 피붙인 친구의 그것처럼 가깝게 당겨 들려주거나 복원해주는 것이다. 이 둘은 모두 고유명과 관계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공간, 이반 멘슈코프(<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정귀보(<우리 모두의 정귀보>), 하루오(<절반 이상의 하루오>) 같은 인물들의 생애 그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작가를 소개받으면 그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독자들은 나와는 다른 인물이나 장소에 꽂힐 것이다. 읽다가 인덱스를 붙이거나 책을 검색해 볼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책 맨 뒤에 '참고 및 인용 도서'에 모두 실려있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메모를 했다. 그만큼 읽어보고 싶은 책이 많았다.

 

 

<국경의 밤>으로 유명한 시인 김동환의 딸 김지원과 김채원이라는 소설가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함정임은 마지막 챕터에서 김지원과 김채원과 아니 에르노를 밤낮없이 기웃거리고 기미를 살폈다고 썼다. 평생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 알고 싶어서.

 

 

"소설이 줄 수 있는 것, 소설이라는 장르가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맑고 투명한데, 찌르듯 아프고, 아프면서 아름다움에 몸을 떨게 만드는 힘. 그녀를 처음 보았던 순간부터, 소설을 읽고 쓰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도록 단 하루도 그것 없이 살아오지 않은 내게, 김채원의 소설은 처음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묻는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그보다 작가란 무엇인가."

 

김채원의 <쪽배의 노래>로 그의 집에 초대받았다고 표현한 함정임 작가는, 정작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멀리서 마음껏 흠모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쓴 글은 김채원에게 한 뒤늦은 인사요,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나도 이 책에서 소개받은 소설을 찾아 읽고 그 작가의 문체에 감동하고 싶고 작가의 장소에 가고 싶다. 함작가는 지중해 서쪽의 작은 도시 세트에서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만났지만 일정에 쫓겨 기차로 이동하며 읽었다고 했다. 나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베네치아에서 우연히 발견하길 기대한다. 영화와 오페라로만 봤기 때문에 소설 원작을 읽고 싶다. 베네치아에서, 리도섬에서 그 책을 발견하면 좋겠지만 그런 낮은 확률에 기대느니 책을 챙겨가서 읽은들 어떠리. 베네치아에서 토마스 만의 아름다움을 향한 절절한 외침을 듣고 싶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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