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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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순신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테니 말이다. 유명한만큼 관련 연구가 많고 다양한 미디어로 계속 재창조되고 있다. 더이상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은데 이번에 이순신의 어머니를 다룬 책이 나왔다. 가디언 출판사에서 나온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가 그것이다. 이 책은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 초계 변씨의 행적과 이순신에게 미친 영향을 탐구했다.

 

사실 이순신 장군이야 조선왕조실록의 선조편에서부터 징비록, 난중일기까지 사료가 많지만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료가 있을지 궁금했다. 저자부터 확인했다. 윤동한씨는 역사학자가 아닌데 어떻게 연구를 했을지 또 궁금했다. 책 마지막에 저자가 밝힌 부분을 확인하니 박종평 작가의 <난중일기> 해설부분을 상당수 인용했다. 그리고 변씨 문중과 덕수 이씨 가문 사람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초계 변씨의 직접적인 자료는 부족했기 때문에 역사추적과 문헌 검증이 어려운 부분에 일부 필자의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이 있음을 양지해야 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었으며 사진과 그림을 첨부하여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했고, 각 부의 마지막에는 내용을 요약한 '정리편'을 두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부록에는 초계 변씨 가계도, 초계 변씨와 이정, 이순신의 가계도, 초계 변씨 연보, 이순신 장군의 삶을 실어 최종 정리를 하도록 했다.

[1부 주요 내용 정리]

- 이순신의 모친 변씨, 지금의 충무로 인현동인 서울 건천동에서 셋째 아들 이순신을 낳다. 1545년 음력 3월 8일

- 변씨가 가르친 이순신은 목표를 위해 결심을 변치 않는 올곧은 신념이 있었다. 그는 어떤 위협에도 타협하지 않았으며 바른 길을 걸어가려는 정도의 가치관을 지녔다. 충성심과 위민의식으로 백성들을 사랑했다.

- 장자이지만 서울살이를 시작한 순신의 아버지 이정은 명목상의 직함은 있었으나 결국 벼슬에 나가지 못했다. 2대째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자 가문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에 이순신의 모친 변씨는 고단한 서울살이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추측된다.

[2부 주요 내용 정리]

- 명종 인종 때 위세를 떨쳤던 영의정 이준경이 순신의 앞날을 도와주고자 보성 군수를 지낸 방진의 집안과 연결하며 중매를 선다.

- 이준경은 예지력이 뛰어난 인물로 수하에 있던 정걸 장군에게 판옥선을 만들게 하고 왜란을 예견해 선조에게 유언ㄲ지 남겼던 청백리 명재상이었다.

- 모친 변씨는 셋째 아들 순신이 급제 후 변방으로 돌고 있을 때 가문을 지키며, 기울어져 가던 집안을 철저한 재무관리를 통해 다시 일으켜 세웠다. 또 <별급문기>로 모든 재무 기록을 자세히 남겨두었다. 이를 통해 변씨의 철저하고 꼼꼼하며 청렴하고 독립적인 재무 능력을 엿볼 수 있다.

- 둘째 아들 요신이 병으로 사망하고 남편 이정과 맏아들 희신도 잃었ㄷ. 게다가 아산 이거 후 살아왔던 집도 화재로 잃어버렸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남은 아들 순신과 우신, 그리고 손자들을 더 아끼고 위하며 새로운 터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독립심과 대쪽 같은 성격이 아들 순신에게 그대로 전해져,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청렴한 공직자 순신을 낳게 했다.

[3부 주요 내용 정리]

-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모친 변씨는 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발령 나자 아산으로 일단 돌아갔다가 앞뒤 일을 세심히 살핀 후 여수로 단독 이겋기로 마음먹었다. 며느리 방씨는 아산에서 고향과 본가를 지키게 하고 셋째 손자 이면이 어머니 방씨를 모시게 하면서 자신은 셋째 아들 이순신을 여수에서 지켜주기로 결단한 것이다. 이미 78세의 고령이었다.

- 변씨는 고령이라 육로 이동이 불가능하자 뱃길을 통해 아산에서 여수 전라좌수영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이 뱃길은 나중에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자 아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하는 길로 다시 이용하게 된다.

- 순신은 송현마을에 모친을 모심으로써 정신적인 안정을 얻었고 어머니 안위를 걱정하지 않으며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모친 변씨는 "내 아들이 기쁠 수만 있다면..." 오직 이 마음 하나로 고달픈 타향살이를 기꺼이 감당한 것이다.

- 왜군 수뇌부의 이간질로 아들의 하옥 소식을 들은 모친은 아들을 잃을 수 있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서울행을 결심한다. 아들 손자가 모두 말리는 와중에도 "내 관을 짜서 배에 실으라, 나는 죽어서도 서울에 가서 통젯 아들을 만나고야 말 것이야."라고 외쳤다.

- 뱃사람도 움직이기 싫어하는 음력 2, 3월의 죽음의 뱃길을 택한 것은 자신을 운명의 제물로 드리고 아들을 살리려는 결심이었다. 83세의 고령에 노환으로 앞날을 기대하지 못하는 노인이 순신에게 줄 마지막 선물이었다. 결국 모진 뱃길 속에서 버티던 모친은 결국 숨을 거두었고 순신은 풀려났다. 그와 모친이 상봉한 것은 4월 13일, 아산 게바위 앞이었다.

[4부 주요 내용 정리]

- 덕수 이씨 후손들은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변씨 할머니의 희생정신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다. 종군과 순국의 길로, 공직자의 길로, 전란의 현장에서 후손들은 멸사봉공, 위국, 애민의 길을 걸었다.

- 장흥 지역 변씨 후손들은 명량과 지포해전, 노량해전에 적극 참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 넣었다. 변씨 형제들은 기꺼이 살길을 찾을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핏줄들이 전사하는 모습에 분개하여 함께 전사하는 용맹함을 보여주었다.

저자가 가장 많이 참고한 책은 역시 <난중일기>였다. 이순신 장군의 효심이 절절히 드러나고 모친의 행적도 기록되어 있다. 그의 일기가 없었다면 이런 책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을 키운 것은 어머니지만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의 일기 덕분이다. 기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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